2026.07.30

물질적 고생이 많지만 정원과 함께 사니 됐다!

입력 2026-07-30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에 사는 정혜린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한적한 초여름 한낮,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정원으로 들어선다. 화초들이 길어 올린 색과 빛으로 공간이 통째 환하다. 푸른 잎들은 속살거리듯 연신 살을 맞비빈다. 화려한 태깔과 발랄한 생기가 가득한 정원이다. 보은군 내속리면 법주사 초입의 명물 ‘속리산 정이품송’ 근처에 있다. 귀촌인 정혜린(57, ‘수풀리에’ 대표)이 가꾼 정원이다.

정혜린이 정원을 만든 건 꽃에 쏠리는 취향을 양껏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업 용도로 정원을 꾸렸다. 삶을 과감하게 리셋하기 위해 서울을 뒤로하고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6년째. 그간 그는 몇 가지 일에 손을 댔다. 무료감에서 벗어나는 한편 소득을 거두기 위해 알바 수준의 일들을 찾아 뛰었다. 다년간 찻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미리 사두었던 논을 돋우어 화초 농원을 만들었고, 아울러 꽃 판매장을 차려 영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접어야 할 형편이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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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착상한 게 치유 체험농장이다. 시간과 노동력을 쏟아 꾸린 정원의 다채로운 식물과 빼어난 경관의 저력을 기반으로 삼아 화초 판매 농원을 치유농장으로 전환한 것. 농장을 오픈해 체험자들을 받기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쯤 지났다. 신생 농원이다. 고민과 모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모저모 궁리할 가짓수가 많고, 고심의 농도도 짙다. 그의 한마디에 현황이 함축돼 있다. “쉬운 일도, 거저 얻는 것도 하나 없다!” 그렇다고 사기 저하로 구겨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자전거를 탔으니 냅다 달려야 하는 게 나의 책무일 뿐’이라고 판단하며 일의 맥락을 잡아나가고 있다. 정혜린이 재화와 문화가 넘쳐 시골에 비할 바 없이 매력적일 수 있는 서울과 굳이 결별하고 귀촌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고향은 춘천의 농촌으로, 성장기에 새겨진 좋은 기억이 많다. 그러나 시골이 싫었다. 팍팍하고 단조로운 일상과 온갖 해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던 시골이 나이 먹으면서는 문득문득 그리워지곤 하더라.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 생활이 지닌 정서적 측면을 새삼 귀하게 돌아보게 됐다. 나의 본성을 유지하며 살기엔 시골이 낫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남편과 상의해 귀촌을 결심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마흔 살 한창 젊은 나이에 서울을 떠나 고즈넉한 시골로 이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뭔가 절실한 동기가 있었나?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가 있었다. 당시 초등생이었던 아이 둘을 시골에서 기르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시골에 간신히 남은 아주 작은 학교들 중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촌을 서둘렀다. 우리 부부는 물론 아이들까지 행복한 삶이 가능한 게 시골 생활이라는 최종 판단을 하고서. 서울에 직장이 있었던 남편은 즉시 동행이 어려워 5년 뒤에 내려왔다.”


보은군을 귀촌지로 정한 이유가 있나?

“시골 곳곳에 산재하는 작지만 유능한 초등학교를 열 곳 이상 추려 순례한 뒤 이곳을 골랐다. 속리산 자락답게 자연환경 좋고, 마트나 병원도 가깝고, 너무 외지지도 않고, 이쯤이면 딱 됐다고 봤다.”


처음 한 일은 어떤 것이었나?

“집부터 고쳤다. 당초 계획은 빈집을 임대해 사는 것이었지만, 여의치 않아 허름한 주택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사 첫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는 게 아닌가.(웃음) 서울의 아파트와 너무도 다른 구색에 경악했던 거다. 그래서 집을 리모델링했다. 예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놀랐다.”


시골에 외지인이 등장하면 이웃들은 한동안 주시한다.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나?

“이곳은 법주사 아래편 관광지에 딸린 마을이다. 상업이 발달해 여느 시골과 달리 개방적인 편이다. 간섭이나 텃세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이 초기에 꽤 고생했다.”


그 이유는?

“기존 급우들에게 소외랄까, 왕따랄까, 좀 이상한 걸 당했던 거다.(웃음)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기에 당혹스러웠다. 시골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데엔 장단점이 고루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우리 애들이 한때 겪은 맘고생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깊은 고민을 하면서 한결 튼튼하게 내적 성장을 하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청년으로 자랐으니까.”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남편 몰래 많이도 울었다

보통 귀촌인들은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누리는 데 목적을 둔다. 정혜린의 방식은 달랐다. 줄곧 경제활동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 이건 애초의 계획은 아니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일 없이 놀길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지만, 뜻밖에도 경제 형편이 나빠져 불안감을 야기한 나머지 팔을 걷어붙이고 일에 나서게 됐다. 자본주의 세상에선 시골이라고 예외적 변방이 아니다. 그는 상황을 민첩하게 읽고 마땅한 활약을 했다.

“우린 별로 가진 것 없이 시골에 들어왔다. 게다가 시골살이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갔다. 예컨대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과중했다. 그렇다면 소소하게나마 돈벌이를 하자는 생각에 알바를 하고, 카페를 운영했다. 그리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카페를 무난하고 재미있게 유지했다.”


비결이 있었겠지?

“보은군 최초의 베이커리 카페를 차렸는데 순탄했다. 북 카페 타입의 콘셉트를 구사한 덕분이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 인기를 끌었으니까.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침체했으며, 그즈음 진력이 나 손을 뗐다. 이후 새로 시작한 게 화훼 판매업이다. 이건 매우 난처한 경험을 했다. 금전 문제에 코가 꿰인 시발점이었다.”


상주인구는 적고 관광 시즌 외엔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시골에 꽃가게를?

“아주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다. ‘이왕 소유한 논을 복토하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가꾸어 팔면 뭐 잘되지 않겠어?’ 그쯤의 단견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문제는 별로 팔리는 게 없는 반면 투자 비용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약 1653㎡(약 500평)에 달하는 농장에 화초를 가득 심어 조경을 하고 매장과 편의시설을 만든 수년 사이에 경제 형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남편 몰래 많이도 울었다. 우울증에 걸릴 상황이었다.”


작년부턴 치유 체험농장을 가동하고 있다.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나?

“만만찮은 일이지만, 안정권에 도달할 날이 멀지 않은 걸로 본다. 이전의 화훼 사업과 달리 이번엔 충분히 숙고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간 다녀간 참여자들의 높은 만족도에서 자신감도 얻었다. 치유 체험의 주된 재료는 정원이다. 사람들은 정원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통해 힐링을 만끽하고 돌아간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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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삶을 담고

정원엔 다종다양한 화초들이 산다. 여름꽃들 만발해 저마다 절정을 누린다. 사는 일은 덧없어 때로 쓸쓸하지만 꽃밭에선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몽환에 잠겨 떨리는 음성을 내는 듯한 자엽안개꽃, 풀섶엔 곱살한 노랑 민들레꽃, 덤불 속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 모든 식물이 한낮의 햇살을 머금고 반짝인다. 인공미보다 자연미가 두드러지는 정원이다. 그래 평화롭고 조화롭다. 정혜린의 가드닝 솜씨가 예사로운 게 아님을 알 만하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드나들며 가드닝 스쿨에서 1년간 정원 공부를 했다. 식재부터 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방법을 배웠다. ‘테스트 베드’를 만들어 식물의 생태를 익히기도 했다. 화초의 생애주기도 파악했다. 이후 조경 콘셉트를 만들고 본격적인 식재에 나섰다. 정원의 방향은 ‘자연주의’에 두었다.”


‘자연주의 정원’의 특징은?

“지나친 꾸밈과 관리를 배제, 식물 본연의 생태적 순환이 가능한 공간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테면 정원의 식물이 산에 사는 나무처럼 햇볕과 빗물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이게 쉽진 않다. 방치를 일삼으면 고사한다. 정원주와 화초가 공생하는 자세로 세세하게 관찰하고 돌봐야 한다. 초기엔 실수가 잦았다.”


정원 일을 통해 새삼 느낀 게 있다면?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은 엄청 빠르게 흘러간다. 반면 꽃나무들은 느리다. 태연하게 순리를 따르며 기다릴 줄 안다. 아날로그적으로 사는 게 좋다고 보는 난 식물들의 완만한 행보에서 잘 사는 일의 귀감을 본다. 이는 전에 느끼지 못한 큰 깨달음이다. 어쩌면 정원은 내 삶의 스승이다.”


정원주들은 흔히 자신의 정원을 일종의 유토피아로 여긴다. 식물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당신의 꽃 사랑에도 특유의 경향이 있겠지?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나는, 식물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게 좋다. 애착을 갖고 푹 빠지진 않는다. 그저 꽃나무에게 필요한 걸 잠자코 뒷바라지할 뿐이다. 잘 자라준 나무 옆에서 호미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시간, 그땐 너무도 행복하다.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해?’ 내가 중얼거리는 말이 그렇다. 그러나 머릿속은 자주 시끄럽다.(웃음) 그간 까먹은 막대한 자금이 떠올라서.”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나?

“그럴 리가. 후회는 해봤다. 자책감이 컸다. 우리가 팔고 내려온 서울의 아파트값이 무지막지하게 뛰는 사이에 난 시골에서 실패를 하다니. 완전히 망가진 인생 같았다. 이건 현재의 얘긴 아니다. 얼마 전까지 그랬단 뜻이다. 지금은 꽤나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본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나?

“나름의 고통을 겪으면서 겸손해진 한편 단단해졌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만한 독립적 자아도 형성된 것 같다. 전엔 물적 자산이 풍족해야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이젠 기준치를 확 줄이고 산다. ‘밥은 굶지 않잖아!’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그렇다. 요즘 생각하는 건 ‘텅 빈 충만’으로 자족할 수 있는 삶이다. 극히 소박하게 산 헬렌 니어링을 감히 따를 순 없지만, 그의 생활 방식을 가슴에 담고 산다.”


정혜린이 생각하는 건 청빈(淸貧) 같은 것일까? 덜 가지고도 행복한 삶. 부를 움켜쥐려는 욕망이 날뛰는 세상에서 그게 가능할까? 가지지 못한 자를 루저 취급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혜린은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


정혜린이 주는 귀촌 Tip

•도시와 시골의 풍속엔 다른 게 많다. 일단 시골 생활을 경험하고 귀촌하자. “난 자연환경이 살아 있는 시골이 너무 좋아!” 이렇게 외치며 덜컥 귀촌했다간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사전에 5도2촌(五都二村)식의 생활을 해보거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미리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경험을 쌓는 게 안전하다.

•시골에 정착하기까지 꽤 긴 적응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농촌의 문화와 시간과 땅에 익숙해지는 데는 순발력과 적응력도 필요하다. 몸을 쓸 일이 많아 체력도 요구된다. 따라서 은퇴자나 고령자의 귀촌은 신중하게 판단한 뒤 실행하자.

•자금의 여유도 점검하자. 시골 생활에도 의외로 돈 들어갈 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된 집의 리모델링이나 신축엔 거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시골에 와서 돈만 많이 나갔다”고 넋두리하는 귀촌인들이 적지 않다. 물질적 여유가 충분할 경우엔 시골 생활이 훨씬 수월할 수 있다. 시골 자체는 복잡한 도시보다 좋은 여건이 풍부한 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재정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그러나 자급자족 스타일의 간소한 생활 방식도 추구할 만하다. 과욕을 버린 소박한 생활로 기분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시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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