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흔히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영어를 사용하고, 사회적 인프라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며 부동산 투자가 활발한 점 등을 들어 은퇴자를 위한 해외 이주 정보를 다루는 미국 매체 ‘인터내셔널 리빙’에서 ‘은퇴자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로 여러 차례 추천된 바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6.5%이다. 그러나 5년마다 장노년 인구가 약 2%씩 증가해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노인을 위한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2020년 열린 온라인 포럼 ‘고령친화도시: ’MyAgeing™‘과 함께 가꾸는 미래의 삶’에서는 은퇴자, 연금 수령자, 노인을 위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시니어 주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패널들은 말레이시아의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새로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은 채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으로 쫓겨난 시민들이 나이가 들어 필요한 때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나중에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
노인들 또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Aizan Hamid 연구교수는 포럼에서 “말레이시아의 노인 약 77%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늙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노인들이 연령이나 소득, 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의 지역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페락(Perak)주 타이핑(Taiping)시
페락 주 서부의 타이핑은 고원 휴양지인 라루트 언덕을 비롯, 녹지가 많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에 타이핑 시는 노인에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지역 이니셔티브를 조성하고,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GNAFCC)에 가입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는 이동 시 진동을 최소화한 고령자 및 장애인 친화적인 중형 전기버스(EV-Bus)를 운행하고 있다. 도시 개발을 위한 ‘페락2030비전’ 중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도 포함돼 최근 관광지를 경유하는 노선을 신설했으며, 시범 운행 이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는 할인된 가격에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을 예정이다.
또한 노인과 장애인 등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타이핑 시의회와 말라야 국립 대학교는 2017년 ‘마치노에키 프로젝트’를 타이핑에 도입했다. 마치노에키란 일본의 쇠퇴한 도시 중심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된 프로젝트다. 지역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해 화장실이나 휴식 공간 등의 시설이나 지역에 대한 지식, 안내를 제공한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고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굴러가는 이 프로젝트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마을 환경 정비로 인한 보행성 개선으로 주민들이 차를 타는 대신 걷게끔 이끄는 효과까지 수반한다. 타이핑 시의회는 이러한 정책들과 그로 인해 축적한 지식들을 푸트라자야시 노인 협회에 공유하며 고령친화도시 조성 프로젝트에 있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페낭(Penang) 주정부와 페낭2030비전
페낭주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의료관광지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은퇴 이민지 중 한 곳이다. 또한 페락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으로, 2020년 60세 이상 인구는 14.9%이나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6.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는 2018년 ‘페낭2030비전’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활동적인 노후’(Active aging)가 중요 요소로 포함됐다. 페낭학회(Penang Institute)에 따르면, 주정부는 이를 위해 고령친화적 인프라를 강화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등의 형태로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페낭2030비전이 제시하는 장노년 친화도시 정책’ 보고서가 소개하는 내용에 의하면 페낭 주정부는 ‘안녕 디지털’(#Dah Digital)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클리닉’(Digital Clinic)에서는 동영상 편집기술이나 구글렌즈 사용법, 스캠, 피싱 등 사이버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등을 무료로 교육한다. ‘디지털 페낭’(Digital Penang)의 2022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캠페인으로 2022년 101개의 강좌가 개설됐으며 총 2465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이번에는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호주 퇴직연금 계좌 보유자는 근로자 수보다도 많으며, 대형 기금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연금 백만장자 만든 ‘슈퍼애뉴에이션’
호주에 연금계좌 잔액이 백만 달러가 넘는 ‘연금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잔액이 100만 호주달러(약 8억 7000만 원) 이상인 퇴직연금 계좌는 2만 677개로 2015년 대비 약 8배 증가했다.
1992년 7월 도입한 퇴직연금 상품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은 연 8% 수익률을 내며 근로자들의 은퇴 후 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월 소득 450호주달러 이하의 소득을 얻는 근로자, 18세 미만의 비정규 근로자, 65세 이상 근로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의무적으로 슈퍼애뉴에이션에 가입을 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 가입이 원칙이지만, 기금에 따라서 배우자 명의로도 가입할 수 있다.
호주 퇴직연금의 특징은 기초연금을 보완하기 위한 상품으로서 사용자(고용주) 부담률을 지속해서 인상했다는 점이다. 처음 도입했을 때는 고용주가 월급의 3%를 의무적으로 근로자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야 했는데, 2022년에는 10.5%까지 높아졌다. 오는 2025년에는 12%까지 오른다.
다양한 기금 선택권 보장, 규모의 경제 이뤄
호주의 퇴직연금은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공적기금이 있다. 정부기관 공무원과 공공부문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으며, 가입 후 공공부문 일자리를 그만두더라도 기여금은 계속 낼 수 있다.
다음으로 가장 보편적인 기업형 기금이 있다. 슈퍼애뉴에이션의 원형으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설립한다. 여러 기업의 퇴직연금을 묶어서 운영할 수 있고, 가입자는 다른 기금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특정 산업에 속한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는 산업형 기금이 있다. 다만, 현재는 근로자가 아닌 일반인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소매형 기금도 있다. 이 상품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금융자문서비스 비용을 내면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관리기금이 있다. 최대 6명까지 가입할 수 있고, 가입자가 직접 기금 설립, 운영 등 모든 부분을 책임진다. 이 상품은 주로 가족 단위로 가입이 이뤄지며, 주로 부유층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KIRI(보험연구원)는 호주 퇴직연금에 대해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기금 투자수익률 및 수수료는 기금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규모의 경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대형기금 중심으로 운영되면서도, 금융회사를 수탁자로 포함해 소비자가 개인의 선호에 맞게 다양한 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물론 근로자라면 슈퍼애뉴에이션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겠지만, 동시에 산업형과 소매형 기금에 중복 가입도 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규모는 3조 3100억 원 호주달러 수준이다. 2017년 대비 33.8% 증가했다.
이렇게 다양한 기금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금의 활발한 합병 활동 때문이다. KIRI는 “감소세가 가장 두드러진 기업형 기금 개수는 2004년 1088개에서 2021년 14개까지 급감했다”면서 “기업형 기금 적립금은 소매형이나 산업형 기금으로 이전되었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운영관리비는 낮아지는 대신 투자상품 옵션이 많고 운용전문가가 많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기금 간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연금 수익률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호주금융감독원(APRA)는 매년 일정 수준 이하의 수익률을 내는 수탁법인을 발표한다. 2021년부터는 최하위 수익률을 낸 곳은 시장에서 퇴출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퇴직연금으로 재테크를?
호주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확정기여형(DC형) 기금형 중심으로 운영된다. 2020년 DC형 계좌 수는 약 2200만 개로 자기관리기금을 뺀 퇴직연금 계좌 중 95%를 차지하고 있다. 적립금 기준으로는 약 79%가 DC형이다. 계약형인 퇴직저축계좌(RSA) 상품이 있지만, 호주 퇴직연금 시장에서 이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대형 기금을 중심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퇴직연금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민이 많다. 호주 국세청(ATO)에 따르면 2020년 퇴직연금 계좌를 보유한 호주 국민은 약 1700만 명으로 근로자 수(1291만 명)보다 많았다. ‘퇴직’ 연금이지만 근로자 수보다도 많은 계좌가 운영될 수 있는 건 앞서 언급했듯 여러 상품을 중복으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자가 아니어도 소매형이나 산업형 기금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ATO에 따르면 퇴직연금 계좌를 1개만 보유한 사람은 1260만 명이고, 2개 이상의 퇴직연금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약 450만 명이다.
호주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8.5%를 기록했다. 유형별로 보면 2021년 기준 최근 10년 투자수익률은 산업형이 8.6%, 공적 기금이 8.1%, 기업형이 7.5%, 소매형이 6.8% 수익률을 보였다. KIRI는 “산업형 기금의 중장기 투자수익률이 다른 퇴직연금 기금에 비해 높은 것은 기금 규모가 클수록 규모의 경제가 작용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투자수익률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호주 퇴직연금 수익률이 계속 높아질 수 있었던 건 2013년 6월 도입된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의 역할이 컸다. 수탁회사들이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절하게 자산을 배분하면서 수익률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슈퍼애뉴에이션 가입자의 약 80%가 디폴트 옵션을 이용하고 있다.
2021년 호주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은 70% 이상이 주식, 채권 등의 금융자산에 투자되고 있다. 부동산 등의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미만이다. 자산은 해외주식 28%, 호주주식 23%, 호주채권 10%, 해외채권 8%, 부동산 8% 등 다양한 자산으로 분산투자되고 있다.
수익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수수료는 낮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수수료를 보면 공적 기금이 0.5%, 기업형과 산업형이 0.6%, 소매형이 0.8%다. 자기관리기금의 수수료는 1.2% 수준으로 가장 높다. KIRI는 “가입자 수와 기금 규모가 작으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수수료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가 사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길목의 인구 20만 명이 사는 도시입니다. 온타리오의 많은 주택지처럼 계속 인구가 팽창해 집값이 많이 오른 타운입니다만 제 주거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큰길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콘도를 구입했던 게 6년 전인데 한적하고 운치 있는 동네를 떠나 큰길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결코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쾌적한 동네가 아니어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수년 전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던 이유는, 제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건강이 빨리 나빠지고 있어 시니어(senior, 65세 이상의 노인을 칭함)가 될 때를 위한 필수 준비를 서둘렀던 것입니다.
모든 편리한 시설들이 가까이 있습니다. 가정의 병원과 치과, 약국, 우체국, 급할 때 필요한 일용품과 간단한 식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 버거킹 햄버거 숍까지 근처 500m 거리에 있어서 차를 더 이상 몰 수 없게 되었을 때 걸어서 가거나 휠체어를 밀고도 갈 수 있습니다. 1km 떨어진 곳엔 백화점이 있는 쇼핑센터와 거래 은행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에는 예술대학교가 있어 학교 입구에 여러 곳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들이 있고, 그 버스들은 대개가 버스로 5분 거리인 GO(Government of Ontario) train 기차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근처 도시와 토론토까지 한두 시간 정도면 승용차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캐나다 노인복지혜택은?
시니어가 된 후 처음으로 캐나다에 사는 시니어들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시에서 받는 일반 혜택은 전혀 없고 한국처럼 노인정 같은 편리시설은 인구 20만 명인 이 도시에 오직 두 곳인데 거리가 멀어 자동차 없이는 불편합니다.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수업료는 무료가 아니며 치매 환자들을 도와주는 데이케어센터(Daycare Center)도 없습니다. 집에서 오갈 수 있는 시니어 데이케어센터가 아니라 아예 치매 환자만 모여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연방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OAS)과 시니어이지만 저축성 국민연금(CPP)을 적립하지 않았거나 다른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시니어에 대한 보조금 액수도 알아봤습니다. 현재 캐나다 국적자이거나 영주권자 시니어가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은 최고 한도액이 한 달에 613.53달러(약 55만 원)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으로 40년 이상 캐나다 거주자만이 최고 한도액을 수령할 수 있으며 거주기간에 따라 수령액수가 달라집니다. 25년을 거주한 저는 현재 242.98 달러(약 21만 원)를 받고 있으며 정부 보조금은 일절 없습니다. 저소득층 시니어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GIS)은 노인기본연금과 보조금을 합해 최고 한도액이 1529.95달러(약 136만 원)입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활 어려워
노인기본연금 수령액이 적든 많든 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의 총합계이며 별도의 소득이 있다면 보조금 액수는 적어집니다. 정부 보조금 최고 한도액은 916.38달러(약 81만3000원)입니다. 그리고 저축성 국민연금의 최고 한도 수령액은 한 달에 1200달러 정도이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적립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연금은 소득으로 계산되어 정부 보조금 수령액이 적어집니다.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매월 정부 보조금과 노인기본연금을 합한 최고 한도 수령액 1529.91달러(약 136만 원)의 연금과 저축성 국민연금 최고 한도 수령액 1200달러로 캐나다에서, 특히 GTA(Great Toronto Area) 토론토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는 보조금이 줄어듭니다. 제 경우는 저축성 국민연금 수령액이 약 600달러여서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과 국민연금 합계는 842.98달러입니다.
그래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산이나 저축이 없는 시니어들은 연금으로 살 수 없어 집을 담보로 역대출을 받아 살아가든지 집을 팔고 정부 보조 임대 아파트로 옮겨가야 하는데 신청에서 입주까지 10년이 걸립니다. 이런 경우에도 무료가 아닌 연금 액수와 소득에 비례한 임차료를 정부에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주택 소유자가 아니거나 수입원이 없거나, 저축한 돈이 없는 시니어들은 홈리스가 되거나 빈민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서민층의 오래된 아파트 임대료가 한 달에 1800달러(방1, 거실1, 부엌, 욕실), 2000달러(방2, 거실1, 부엌, 욕실)인데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니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식품비도 30%나 올랐습니다(온타리오 한국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식품비는 2년 전에 비해 40~50% 상승). 지하철과 버스 이용료도 무료가 아닙니다.
캐나다의 IT 통신요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습니다. 제 경우 핸드폰 수수료는 8기가 사용료로 매월 82~100달러, 가정용 인터넷은 제한된 TV 채널 사용료와 전화비를 포함해 125달러를 지불합니다. 제가 받는 노인기본연금이 통신 시스템 사용료로 모두 쓰이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콘도 관리비는 매월 1000달러, 주택세는 1년에 3000달러 정도 됩니다. 여기에 식품비, 약값, 보험료, 유류, 차량 유지비 등까지 더하면 아무리 절약해도 정부에서 받는 연금으로는 매월 수천 달러 적자입니다. 그러니 임대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든 자가 소유의 콘도가 있든 상관없이 정부가 저소득층 노인에게 주는 최고 한도액 보조금으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물론 직장연금(소방서원이거나 공무원, 은행 같은 대기업의 경우)을 많이 받는 시니어는 형편이 좋겠지만요.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지만 시니어들도 예외 없이 MRI·CT 촬영, 암 검사 등을 하려면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리며 수술은 1~2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약값도 개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1년에 한 번 시력검사, 폐렴·대상포진·독감 예방주사, 건강검진이 정부에서 무료로 주는 혜택이지요. 긍정적인 일은 슈퍼나 백화점이 일주일에 하루 시니어를 위한 날을 정해 5~10%의 할인 판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맥도널드는 시니어에게 커피를 1달러에 판매합니다.
복지국가로 소문난 캐나다이지만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시니어의 실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시니어들이 모여 놀 곳도 없는지 특히 남성들이 맥도널드 숍이나 백화점 입구 소파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에 사는 시니어들만 힘든 게 아니고 한국에만 빈곤층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세계 어느 국가를 가도 복지국가 캐나다처럼 빈민도 있고 거지도 있고, 힘없고 돈 없는 퇴직한 노인들이 길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지하철 연결이 잘되어 있어 시니어들이 무료 지하철을 이용해 갈 곳도 많아 보였습니다. 또 빠른 의료 시스템,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 보조금과 간병 도우미를 쓸 수 있는 혜택이 있고, 노인 무료 데이케어센터도 있으니 여기 캐나다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고생만 많이 하고 이젠 젊은 세대들에게 부양은커녕 존경도 받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저 역시도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삶을 다 바친 후 이 시대까지 숨차게 달려온 코캐네디언(Ko-Canadian) 시니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씁쓸하지만 이제 그 슬픔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 디자이너로 종사.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구름 따라 떠돌며 구름 사진 찍는 나그네로 활동 중.
산중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천지가 마주 붙어 눈보라에 휘감긴다. 어렵사리 차를 몰아 찾아든 산간 고샅엔 오두막 한 채. 대문도 울도 없다. 사람이 살 만한 최소치의 사이즈를 구현한 이 갸륵한 건물은 원시적이거나 전위적이다. 한눈에 집주인의 의도가 짚이는 집이다. 욕심일랑 산 아래 고이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그런 내심이 읽힌다. 대한성공회 윤정현 신부(64)의 집이다. 그가 이 산중으로 귀촌한 건 3년 전.
귀촌 초기, 윤 신부는 자그만 중고 컨테이너를 산기슭에 앉혀 거기에 살았다. 그러나 불편이 컸단다. 여름엔 찜통처럼 더웠고, 겨울엔 냉장고처럼 차가워서였다. 그래 용한 꾀를 냈다. 컨테이너 뒷면에 흙벽을 쌓고 지붕을 얹은 두 평 반짜리 골방 하나를 지어 붙였던 것. 말하자면 철제 건조물과 흙집이 한 몸으로 붙은 복합건축이다. 이 흔치 않은 오두막 한 채로 그의 주거는 완성에 도달했다. 더 이상 늘리거나 꾸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일종의 절경이 펼쳐진다. 컨테이너 공간은 서재로, 골방은 거실 겸 침실로 쓰는데, 그저 소소한 생활도구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책과 옷가지들, 다구와 식기, 전기장판과 이불 한 채. 이게 그가 깃들어 사는 집 내부를 이룬 사물의 거의 전부다. 그러니 절경!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지향과 실천이 완연히 비친다. 자칫 욕망 쪽으로 흘러가는 머리를 쓰는 대신 몸을 주로 써 수행을 닮은 생활을 하자는 게 그의 귀촌 푯대. 쾌활한 언사를 구사하는 이 단구(短軀)의 사제는 흙집을 혼자 지었다. 한 달 여에 걸친 신역으로.
“주변에 널린 돌과 흙을 퍼 나르는 걸로 일에 착수했어요. 비용은 별로 들질 않습디다. 창문과 출입문을 가져오며 고물상에 치른 돈이 36만 원, 장작난로 구입에 30만 원, 시멘트나 각목, 연장, 못을 사는 데 들어간 얼마간의 비용 등, 총 80만 원을 들여 지었어요. 흙집의 탁월한 단열 효과, 그거 참 놀랍더라고요. 초기의 불편이 일거에 해결됐죠. 화장실은 없지만 삽 한 자루 들고 숲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에요.(웃음) 욕실도 없지만 가끔 읍내 목욕탕엘 가서 때를 벗기죠. 식수는 계곡물을 끌어다 탱크에 받아 쓰고.”
그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 뒤 성공회대학교 사목신학연구원에서 사제 양성 과정을 밟아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여러 곳의 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했으며, 영국 버밍엄대학교로 유학을 가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귀촌 직전까진 청주 수동교회 관할 사제직을 맡았다. 성공회 사제의 정년은 65세. 그는 정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귀촌을 위한 휴직을 신청했으며, 이것으로 교회의 일은 사실상 마감되었다. 성공회 사제는 은퇴 뒤 자력으로 여생을 꾸려야 한다. 연금이라는 게 없으며, 거처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예순 나이에 접어들 즈음 그의 마음은 자연으로 쏠렸다. 이미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삶이었지만 더욱 소박한 쪽으로 생활을 바꾸고 싶었더란다. 해서, 득달같이 나서 귀촌을 단행했다.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행복하다
“평생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 있지만 제게는 정신의 스승이 한 분 계십니다.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1981년 작고)이죠.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능통했던 다석 선생께선 기독교와 불교, 유교와 도교를 조화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웅대한 사상체계를 정립했어요. 저는 다석의 혜안을 빌려 서구 신학적 관점이 아닌 동양 신학적 관점으로 성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종교와 종파와 교리를 뛰어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다석 사상을 공부하면서였죠.”
“박사 논문 주제도 다석사상이죠? 다석은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통했죠.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다 은퇴한 뒤에는 농사를 지으며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유 신부님의 귀촌은 다석의 행장에 영향을 받은 선택?”
“삶을 돌아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저를 이끌었다는 걸 알겠습디다.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뭔가의 힘 말이죠. 순리나 무위자연의 흐름일 수도 있겠지. 다석 선생의 가르침 역시 길잡이였죠. 선생께선 농사를 자주 권장했어요. 농사짓는 사람이 예수라는 말도 늘 했어요.”
“농사의 정신을, 땅에 땀을 쏟는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말한 거겠죠?”
“그렇죠. 귀촌을 해 몸을 쓰는 노동을 하며 이거 참 좋구나, 하는 느낌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선은 몸이 건강해져요. 정신도 맑아지고, 영성에 대한 각성도 하게 돼요. 현재 닭과 산양을 치고, 소규모의 농사를 짓지만 향후 영성공동체랄까, 자율공동체로 가꿔나갈 참이에요. 이미 집 둘레의 임야 1만 평을 확보해뒀어요. 저의 뜻에 공감한 산주(山主)께서 좋은 가격에 땅을 넘겨준 덕분이죠.”
“자율공동체엔 어떤 사람들이 모이죠?”
“누구나 다! 내 안의 영성을 일깨울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영성공동체의 뜻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든 함께 살아가야죠. 공동체 참여자는 이곳의 너른 산림 한 곳에 농막이나 움집을 짓고, 공동 생산을 해 함께 나누는 생활을 하게 될 겁니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극장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인부들이 지렁이가 나오자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정성스레 지렁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감성이란 아마도 영성적 에너지일 게다. 생명 모두에 깃든 존귀함을 의식하는 자는 이미 자신 안의 영성을 일깨운 존재일 테지. 그러나 때 묻히지 않고 생존할 방법이 있던가. 살길을 찾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서야 안 되겠지만, 내 안의 영성을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게 닦는 일은 우리네의 관심사 자체가 못된다. 산야에서, 야생에서 담백한 생활을 지속할 경우엔 문제가 달라지나?
“영성생활이란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게 아닙니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일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 상생하자는 것, 개인의 자족만이 아니라 사회변혁까지도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것, 그런 걸 위해서는 영성 회복이 필요하다 보는 거예요. 모두들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무한경쟁을 벌이는 세태에서 과연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빈부 양극화만 날로 심해지는 것을…. 저는 말이죠, 적게 가지고 적게 쓰는 쪽으로 마음을 두는 게 훨씬 현명하다고 봐요.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우는 게 행복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봐요. 초목들의 동향과 동물들의 삶을 통해 세상에 적용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야생이란, 일테면 교실 같은 곳이죠.”
세상의 광기와 아귀다툼이 침범 못할 적막한 산중. 거기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들어앉았으니 완전한 고립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의 희망과 실천은 사방으로 활달하게 열려 있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목적을 쾌락 추구에 두었다. 욕망을 채우는 쾌락이 아니라, 욕망을 비우는, 비워서 마음의 고통을 몰아내는, 마침내 평안과 안락의 상태에 접어들어 단순 담박한 생활을 하는 게 에피쿠로스의 ‘쾌락’이다. 윤 신부가 추진하는 공동체란 어쩌면 ‘에피쿠로스 스쿨’이겠지. 육체와 욕망,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난 삶이 행복을 데려다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은 한바탕의 ‘소풍’
집 밖엔 한파가 맵차지만 골방은 훈훈하다. 난로 속에서 관솔 내음을 솔솔 풍기며 타는 소나무 장작불이 열을 뿜어서다. 창문가엔 벚꽃 잎처럼 분분히 내리는 눈 풍경. 집 뒤편 언덕배기 닭장에선 오골계들이 세찬 눈발을 피하고 있고, 산마루에선 산양들이 전설처럼 눈을 흠뻑 뒤집어쓴 채 양양하게 뛰논다. 윤 신부는 닭들에게서 계란을 얻는다. 산양의 젖을 짜 우유 대용으로 먹는다. 자급자족이 그의 목표다. 산 아래 농부들과 물물교환을 통해 부족한 양식은 보충해나갈 계획이다.
“점차 농사 규모를 키우고, 작목 수효도 늘려나갈 작정이에요. 귀촌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그간에 터를 다듬고, 연못을 만들어 연(蓮)을 심거나 잉어를 넣어 길러왔어요. 이 산림엔 원래 공동묘지가 있었어요. 그걸 용케도 거의 다 이장시켰죠. 무덤이 많아 산 아래 토착민들조차 무섭다며 아예 접근하길 꺼린 땅이었는데, 보시다시피 이젠 달라졌죠. 수시로 드나들며 찬탄합니다.”
“사제란 세상에 빛을 보태는 존재겠죠. 그런데 말이죠, 성직자들은 늘 옳은 얘기, 반듯한 말만 하지만 정작 실천과는 먼 경우가 많다는 게 중론이에요. 동화작가 고(故) 권정생 선생은 본인이 크리스천이었지만 차라리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사회가 됐을 거라는 얘길 했죠.”
“예수님이 가르친 핵심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을 네 몸처럼 섬겨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요약하면 그 두 가지예요. 그러나 종교인들의 노력이 부족해요. 수행을 일삼는 수도원에서조차 이기심의 충돌이 잦아요.”
성공회 사제에게 결혼은 금기가 아니다. 윤 신부의 처자는 먼 곳에 따로 산다. 아내는 김포에서 미혼모의 자녀들을 돌보는 쉼터를 운영한다. 아내가 곁에 없으니 주야간에 외기러기처럼 외로울 것 같지만, 서로 자유롭게 선택한 길을 존중하며 지내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인생이란 한바탕의 소풍이에요. 소풍을 잘 즐기는 나그네의 짐은 가벼워요. 이전의 편리를 다 버린 귀촌생활의 불편이 사실 한둘이 아니지만, 거꾸로 사는 인생 같지만, 자유로운 나그네로 살기 위해선 세태를 거스를 수밖에 없어요. 세태의 물살에 무기력하게 떠밀린 채 비문명적 야생생활을 누리거나 무소유를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인생은 육십부터라고들 하죠. 이건 맞는 말일까?”
“중생(重生), 즉 영적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나 동기부여가 되는 구호이니 썩 긍정적인 명제가 아닐까.”
“돈이나 욕망을 앞세우지 않고서도 행복을 누릴 방도를 슬슬 찾기 시작하는 게 시니어죠. 무소유까지야 어렵겠고, 각자 주어진 현실 여건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다고 보나요?”
“돈·권력·명예를 나만을 위해 쓰지 않고 남도 덩달아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죠. 돈이란 잘 쓰면 사랑이 되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면 평화의 초석이 되죠. 명예 역시 정의롭게 사용하면 상생의 힘이 될 테고.”
“당신은 사제예요. 천국은 어떤 곳이죠? 사후엔 무엇이 오죠?”
“마음을 비우고 애착과 집착을 다 놓을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려울 리 없겠죠. 모든 하루를 최고의 날로 산다면, 내일 죽어도 진정 여한이 없을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 천국을 사는 겁니다. 사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누구도 다녀온 사람이 없으니.”
집착도 후회도 슬픔도 없는 인생이라면 이미 성자이겠지. 그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과 같겠지. 그러나 과욕과 과속으로 어긋나기 쉬운 게 오늘 하루. 눈 쏟아지는 하오의 귀로에 어둠살이 내린다. 삶을 돌아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저를 이끌었다는 걸 알겠습디다.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뭔가의 힘 말이죠.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두 번째 해외근무를 앞둔 김 부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해외근무를 두 번이나 가게 된 행운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다. 10년 전, 첫 번째 해외근무를 갈 때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환희에 들떠 있었던 김 부장이다. 회사 돈으로 생활을 하고, 아이들 영어교육도 받을 수 있고, 5년간의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땐 제법 큰돈을 모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 입장에선 시댁과 멀어지니 그렇게 홀가분한 일도 없었다. 해외근무를 앞두고 가족 모두는 행복한 마음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두바이에서 5년간 근무 후 5년간 본사에서 근무하다 다시 5년간 해외근무 명령을 받은 김 부장의 표정이 10년 전과 다르다. 그가 180도 달라진 이유는 뭘까?
두바이에서의 첫 번째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김 부장의 손에는 목돈이 아닌 빚 청구서만 가득했다. 쇼핑 천국 두바이에서 아내가 쇼핑 중독에 걸린 탓이다. 가족이 회사로, 학교로 떠난 뒤의 빈자리가 아내에게는 너무 크게 와 닿았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무료한 생활에 지친 아내가 쇼핑 중독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김 부장의 계획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5년간 모은 목돈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빚 청산을 위해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김 부장은 이혼까지 생각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이런 그에게 빚 청산이 끝난 직후 떨어진 두바이 해외근무 명령이 달가울 리 없었다.
만약 김 부장이 외로운 아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미리 대처했더라면, 또 아이들이 엄마의 쓸쓸함을 좀 헤아렸다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 부장 아내의 쇼핑 행위는 전형적인 과소비였다. 과소비의 결과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순간적인 욕망을 참지 못하면 가족의 미래까지 용해되어버리고 만다. 가치소비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가치소비는 소비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채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하게 따져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무조건 아끼고 보는 알뜰소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과소비와는 다른 소비 행태다. 가치소비는 실용적이고 자기만족적 성향이 강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가치소비가 최근 중장년, 나아가 노인세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5070세대가 가치소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소중한 기회다
가치소비에서 방점은 ‘소비’가 아니라 ‘가치’에 있다. 5070세대가 진정한 가치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먼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가치가 명확하지 않으면 가치소비로 둔갑한 고가품 소비를 할 수 있다. 사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가치소비는 고가품 소비를 아름답게 포장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치소비자를 흔히 ‘포미(For Me)족’이라고 하는데, 이를 대문자로 표기하면 가치소비의 경향이 잘 드러난다. FORME는 For Health(건강), One(싱글), Recreation(여가), More Convenient(편의), Expensive(고가) 등 다섯 가지의 경향을 포괄하는 합성어다. 정보분석기업 닐슨이 작년에 발표한 에 의하면, 한국 소비자들이 ‘평균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가장 높은’ 분야는 의류·신발, 화장품, 개인용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제품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며 가치소비로 치장한 고가품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반드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생의 전환기에 있는 5070세대의 가치소비는 전환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를 두고 싶은 분야는 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5070세대에게 가치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5070세대에게 가치소비는 정체성 찾기의 소비 버전이다. 김 부장의 아내가 진정한 가치소비자였다면 두 번째 해외근무를 앞둔 김 부장의 기분은 어땠을까?
삶의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다
가치소비자의 행동 중 눈에 띄는 것은 불필요한 물건정리다. 가치소비자는 새로운 물건만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집안 구석구석 쌓여 있는 물건 중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한다. 보지 않는 책을 중고매장에 팔고 그 돈으로 관심 분야의 신간을 사는 사람들, 옷가지나 가재도구를 중고매장 또는 아나바다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 중에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5070세대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두고 있다. 손때가 묻어 있고, 삶의 추억이 담겨 있는 까닭에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자. 물건정리는 삶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젊게 살 수 있는 하나의 포인트다
영원한 젊음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최대한 오래 젊게 살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게 살고 싶은 욕망은 더욱 깊어진다. 가치소비는 중장년이 젊게 살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써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알뜰소비를 위해 발품을 팔듯 가치소비를 위해서는 ‘손가락품’을 팔아야 한다. 가치소비자의 가장 큰 무기는 정보력이다. 그래서 해외쇼핑몰 사이트, 국내 소셜커머스 사이트 등을 꼼꼼하게 뒤지며 가격을 비교하고 할인쿠폰을 내려 받는다. 5070세대도 가치소비를 즐기려면 이런 수고쯤은 감수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주로 활용하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접속은 5070세대가 간접적으로나마 젊은이들과 교감하면서 젊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다.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 문화센터, 스포츠센터에 어린이집, 뇌 건강센터까지. 경기도 용인에서 만난 삼성노블카운티는 스포츠와 문화 서비스와 함께 지역 주민과의 공존, 가족적 연대까지 추구하고 있는 하나의 마을공동체였다. 또한 자연과 도시의 장점을 혼합하여 이상적인 융합형 시니어타운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의 시니어타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모종의 해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곳이었다. 고준호(高準浩·59) 삼성노블카운티 원장이 직접 말하는 노블카운티의 특별한 강점을 확인해 봤다.
고준호 원장은 출근하면 항상 확인하는 일이 있다. 호숫가에 산책 나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어머님, 잘 주무셨나요?”, “아버님,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아드님은 잘 다녀가셨나요?” ,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오늘은 패셔니스타 같아요” 살갑게 건네곤 한다. 매일 회원들을 살피고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 주는 것이 몸에 배었다. 가끔씩 나누는 일상의 안부는 회원들에게 힐링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가족들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됐다. 회원들은 남 보다 못한 자식들보다 고 원장이 때로는 든든한 안식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회원들이 더 활기차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일조하고 있는 고 원장은 세상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시니어타운은 부자들만 간다’는 말은 좀 과장된 거죠. 부유한 어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열심히 벌어 안정적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면 부부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다양한 동호회가 잘 조직돼 있어 회원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요. 그래서 이 안에서는 교우관계가 왕성해요. 여기서는 어머님들의 활동이 활발하고요. 합창단, 당구, 사진, 탁구도 새로 배우시고, 회원들끼리 인생의 선후배로서의 교우관계로 행복한 시간을 채워 나가고 계십니다. 노블카운티 정원에서 서로 부축해 가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회원부부를 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더 편하게 해드려야지 싶어집니다.”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분이라면 큰 걱정 없이 비교적 품위 있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며 취미와 사교활동으로 행복을 누리면서 노후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존엄이 아닐는지.
이러한 삼성노블카운티는 2001년 5월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시니어타운이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시니어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일반세대(타워A, B동)와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를 위한 프리미엄 세대로 구분되는 노블카운티에는 총 553세대가 입주해 있다. 지상 20층, 지하 3층 규모의 건물 2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실의 면적은 30평형대, 40평형대, 50평형대, 70평형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타운 내 시설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되어 함께 이용하는 장소로 운영되는 등 도심형 시니어타운의 이점도 있는, 세대 간 소통으로 대표적인 시니어타운이다.
도심과 자연의 만남, 세계적으로 이런 시설은 드물다
“15년이 넘은 곳이라 여기는 외국 분들이 자주 방문합니다. 우선 외국 분들은 조경을 보며 아름답다며 놀랍니다. 그리고 지역민과 함께 쓸 수 있는 센터들이 같이 운영된다는 것에도 놀라죠. 일본도 도심형 시니어타운이 있는데 아주 도심에 있지 않으면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지역 주민과 어울리는 곳은 거의 없어요. 노블카운티는 도심과 자연의 장점을 갖춘 시설이죠. 설립할 때부터 이런 취지로 개발한 시설은 드물어요.”
삼성노블카운티의 원장으로 취임한 지 1년 6개월이 되는 고준호 원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시니어타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노블카운티에 대해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시설은 드물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노블카운티를 국제적으로 키우겠다든지 하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노블카운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고 더 만족하며 살 수 있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와서 보니 실버타운의 경영자는 반은 호텔 지배인이고 반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더군요. 호텔 지배인은 뭐랄까, 고급스런 고객을 모시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이죠. 아파트 관리소장은 서민들이 사는 문제, 예를 들어 수도 흙탕물이 나온다, 왜 쓰레기 제때 안 치우냐, 관리비 왜 비싸냐 등등 소소한 불편 사항을 해소해 주는 역할입니다. 저는 그 롤들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고 원장은 회원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것처럼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회원들 생활의 작은 것부터 다듬어 주자는 생각은 겸손함도 있지만 보다 회원들의 주거만족도를 높여 주자는 현실적인 차원도 있었다.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문제점들이 흔히 지적되는데 그런 것에 관심 갖는 것보다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치는 한 분 한 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거죠.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여기가 천국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게 여기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다가 아니라 그런 시스템에 만족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나이 들면 모여서 살아야 한다
고 원장은 자신이 와서 새롭게 한 건 하나도 없고, 이미 구축된 시스템이 훌륭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철 회장님은 노블카운티를 어떻게 지으라고 말씀은 안 하셨고 복지의 사각지대인 의료, 육아, 여성, 노인 문제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걸 하라고 공익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게 삼성의료재단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집이었으며 다음이 노블카운티였죠. 노블카운티를 지을 때는 이건희 회장님이 선대 회장님의 마인드를 갖고 노인 복지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블카운티를 지으면서 이건희 회장님이 지시한 게 하루 종일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 원장은 노블카운티에 오기 전에는 시니어 주거시설에 대해 호감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시설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블카운티와 함께 시니어타운을 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나이 들면 모여서 살아야겠구나 싶어요. 안전에 관한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의료적인 안전도 있고 생활 안전, 보안 등의 문제도 있어요. 시니어들 집은 방범에 다소 허술하기 때문에 범죄 등에 취약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전철역까지 가는 게 다 건강 면에서 리스크가 돼요. 한마디로 안전 리스크에 항상 노출돼 있는 게 시니어입니다. 특히 낙상이 문제죠. 넘어져서 다치면 그로부터 노환이 시작돼요.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비 지출 커지고 운동을 못 하니 건강도 나빠지고…. 특히 80세가 넘어가면 그런 리스크가 항상 있게 됩니다. 아파트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있나요? 그런데 여긴 식사할 때 다 같이 모여요. 산책할 때도 모이고. 그리고 직원들이 항상 보고 있고. 그래서 혼자 살 때 발생하는 리스크가 없어요. 단체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모여 사는 게 유리할 수 있는 겁니다.”
노후인구 급증, 이들의 주거를 충족시킬 방안 조성해야
노블카운티의 입주회원들 나이 평균은 83.5세. 부부는 35%정도고 65%가 싱글이다. 남녀 비율은 7:3으로 7이 여자다.
“당뇨병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이분들 식단은 별도로 차려 드립니다. 그 외에는 집 밥처럼 만들고 있어요. 건강식만 챙기는 게 아니라.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냉면이죠. 그 외에도 다양한 메뉴를 제공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가 아니라 영양사, 주방장 등을 직접 고용하여 자체적으로 만드는 음식들입니다.”
노블카운티에서 일하는 스태프는 총 450여 명에 달한다. 이 많은 숫자는 노블카운티에 다른 시니어타운과는 다르게 지역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스포츠센터 등의 시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설 관리 감독 및 프로그램 제공과 강사 등을 위한 다양한 인력들이 노블카운티에서 일하고 있다.
“시니어타운을 경험해 보니 어른들에게 권할 만한 시설이 전국에 얼마 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국에 수없이 많은 요양시설들이 있는데, 시니어타운 같은 양로시설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요양시설은 정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간부문도 계속 활성화되어서 시니어들이 믿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블카운티는 비싸니까(웃음). 그런데 그 숫자가 너무 적어요. 양로시설은 신뢰도가 확실한 곳이 20곳도 채 안 될 거예요. 양로시설은 요양시설과 달리 초기 투자가 필요한데 정부를 탓할 건 아니지만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게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기업들은 안 그러면 안 해요. 특히 요즘 기업주들은 젊어져서 이런 데 신경을 잘 안 쓰거든요.”
고 원장은 사회공헌도 좋지만 그보다는 기업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분은 창대하되 운영은 기업답게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사회공헌이라고 하면 할 기업들이 없어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고 기업 활동으로 하게 해 주면서 경영 이념을 공익사업으로 하면서 운영하게 해 줘야지 공익사업이라고 하면 누가 합니까. 정부에서도 지원해 주고, 운영이 정상화되면 그 다음부터는 민간 사업자들도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고 해야죠. 공익사업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게 개인들도, 기업들도 이윤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움직이거든요. 과거 기업 1세대들은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서 더 그렇습니다.”
공부와 함께 인생 2막 설계해요
고 원장은 삼성생명에서 전무로 은퇴한 후, 삼성생명에서 운영하는 재단으로 다시 와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재취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제2의 취업에 성공한 셈이죠. 솔직히 인생 2막이라고는 생각은 안 하고 1막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한 직업이 과거에 비해 다른 점이 있을까?
“일은 현업에 있을 때보다 적죠. 다른 부서랑 협업하고 경쟁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선 업무강도는 높지 않은데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입주자들의 불편이 늘어나고 시설은 노후화됩니다. 그런 면에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인생 2막을 보다 청년다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는 고 원장은 나이 듦에 대하여 ‘좋다’라고 표현했다.
“청춘예찬이란 말도 있지만 20대, 30대 시절의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아닌 거 같아요. 투쟁적이고 경쟁적이라서 힘든 시기죠.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피해의식도 많고.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때로 가고 싶진 않다는 말이 맞는다니까. 피곤한 시대였으니까요.”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고 원장의 생각에는 시니어타운의 관리자를 호텔 지배인이자 아파트 관리소장이라고 칭한 그 특유의 담대함이 있었다.
“나이 들면 성공에 대한 부담,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 가장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 의욕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세상을 다 알고 달관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좋아요. 말하자면 나이 들었다는 건 진짜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예요.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이 뭘 배운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대부분의 지식은 사회에 나와서 배우게 되잖아요. 정작 학생일 때는 정말 필요한 공부를 못 했던 거죠. 나이 든다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아요. 앞으로 나이 듦으로써 겪는 또 다른 낯선 경험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소중한 삶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고 원장의 그 기다림은 더욱 뜻 깊은 것이리라.
>>삼성노블카운티
삼성노블카운티는 약 22만4000㎡(6만8000여평) 부지 위에 독립생활이 가능한 타워 동(2개동 553세대, 30~72평)과 치매·중풍 등의 노인성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24시간 간호와 간병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요양센터인 너싱홈(178 베드, 1, 2, 4인실)을 운영하고 있다. 입주에 필요한 비용은 입주 거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타워 동 36평(전용 18평)에 입주하는 경우 보증금은 3.5억~4.8억원, 월 생활비는 독신 210만원, 부부 340만원 정도이다. 보증금은 퇴소 시 전액 반환되며, 생활비는 회원 전용 식당에서 맛과 영양, 건강을 고려한 식사, 청소 및 침구류 세탁, 부대시설 이용, 세대 관리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미국은 노인천국이다. 그러나 백인 노인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외로움이 그 한 몫을 차지했다. 미국의 노인들은 대체로 검소하지만 부유하고 고독한 만큼 사랑도 넘쳤다. 미국인들이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자본주의가 넘치는 미국에 살면서 얻을 것과 배울 것은 끝이 없었다.
하얀 은발머리가 햇빛에 반짝이며 곱게 단장한 백인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뒤뚱뒤뚱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소리를 질러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얼른 뛰어나가 할머니를 두 팔로 부축했다. 필자는 아직 외국인 손님이 어색하기만 해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얼굴에 소녀 같은 천진한 미소를 띠며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처음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언뜻 봐도 80은 넘어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예쁜 미국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두 부부의 모습을 번갈아 보시더니 이것저것 물어왔고, 남편은 상냥하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변을 했다.
그 연세에 운전을 직접 하고 세탁물을 하나 가득 차 트렁크에 담아오셨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 트렁크를 열고 세탁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져 천장으로 세어난 빗물이 옷장으로 들어와 옷들이 망가졌다며 대충 50장은 가져온 것 같았다. 달러로 치면 대략 500달러는 될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남편은 친절을 있는 대로 하더니 300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필자는 조금은 못마땅했지만 참아야 했다. 남편은 신이 난 듯 가게를 돌아나가는 할머니 손님을 차에까지 부축하며 정중하게 모셨다. 필자도 그때는 함께 인사를 했고, 할머니는 고맙다며 몇 번이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일주일 후, 백인 할머니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다시 왔다. 필자 부부가 너무 친절하고 상냥해서 모셔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소개를 해주겠다며 주름진 환한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후로는 무슨 때마다 초콜릿과 손수 구운 비스킷뿐만 아니라 각종의 선물도 있는 대로 가져다주었다. 그 이후로도 5년 정도 단골이 되어 꾸준한 왕래를 했고 주위의 사람들로 매상은 늘어갔다.
어느 날부터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모습이 뚝 끊겨 필자 부부는 무슨 일인가 걱정을 했다. 얼마 후 보스턴에 사는 아들이 할머니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아들은 할머니에게 들었다며 그동안 친절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할머니 옷에 대한 거금을 지불하며 모두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날은 필자 부부도 행복했던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몹시 슬픈 날이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건장하게 생긴 백인 할아버지가 세탁물 한 보따리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개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치매 끼가 있는지 한쪽 손을 심하게 덜덜 떨었다. 남편은 반갑다며 여윈 두 손을 덥석 잡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는 사우스 코리안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6.25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다며 필자 부부 만난 것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혼자 노인 아파트에 사셨고 아들딸은 타 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노인들은 거의가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살고 있어 안타까웠다.
남편은 한국에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몇 배로 친절을 베풀었다. 어느 때는 직접 집에까지 배달을 했다. 할아버지는 올 때마다 고맙다며 고액의 팁을 용돈처럼 건네주었고 매주 월요일 첫 손님으로 기분 좋은 매상도 채워주었다. 와이셔츠 5장과 바지 2벌로 매주 똑같은 옷과 속옷 몇 벌이 전부였지만 금액은 만만치가 않았다. 반복되는 세탁으로 옷들은 너덜너덜해갔지만 할아버지는 편하고 좋아하는 옷이라며 변함이 없었다. 필자에게 할아버지 옷은 곧 익숙해졌고 그 할아버지 냄새가 배어있어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자기가 맘에 드는 것이면 똑같은 옷이 몇 벌씩이나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사치가 아닌 굉장히 검소하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골 노인 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은 추수감사절 및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가장 먼저 각종의 선물을 가져왔다. 시시때때로 이것저것을 가져다주면서 마음의 정을 나누었다. 정이 그립고 외로운 이민자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토박이인 그들도 외로움은 가득했지만 정이 넘치고 마음이 따뜻했다. 그들은 부가 넘치는 나라에 살았지만 고독을 몸에 품고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자식들은 있어도 성인이 되면 부모를 떠나야 했고 부모는 나이가 들면 외로움 친구도 품어야 하는것이 그들 전통적 문화의 일부였다.
미국에 노인들은 거의가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가 어느 날 병원으로 실려가 조용히 혼자 죽어간다.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혼자 또는 부부만이 사는 것에도 자연스레 익숙해져 갔다. 노인들은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아주 저렴한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며 정부 보조금인 웰 페어(기본보장 연금)나 쇼셜 연금(사회보장 연금)으로 살고 있다. 메디칼(병원)은 물론이고 후드(음식) 스탬프까지 어쩌면 부자로 생활할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차곡차곡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외로움의 단어는 인간이 풀지 못하는 커다란 공통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필자 부부가 조금 친절과 애정을 베푸니 대가는 그 열 배는 돌아왔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단히 합리적으로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결코, 차고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기본적인 질서의 바탕 위에 인간적인 따뜻한 사랑이 마음속 깊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의 정서는 누구나 비슷했고 겉의 생김새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진실로 대하니 진실로 통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육체적 고생은 참된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참으로 진솔한 생활이었다.
필자 이민생활 초기에 선배 지인이 말했다. ‘미국은 살수록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물론 전혀 다른 문화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살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한다는 것은 창조의 세계와도 같았고, 황무지의 낯선 땅에서 매력이라는 단어는 생소할 뿐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의 나라 미국도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아름다운 백인 노인들, 부디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오래 살아 주기만을 바라고 싶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라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와 정책마련이 시급하다. 예컨대 서구 선진국의 경우 프랑스 130년, 스웨덴 85년, 미국 70년 등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에 따라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금 제도와 노인복지 서비스 등에 대해 점차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로 진입하기 까지 25년이 소요돼 그 속도가 매우 빨랐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보다 더 짧은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고령화 속도를 염두에 둘 때, 서구 선진국의 고령화 대응정책과 경험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지난 2월부터 진행한 선진국 대사와의 만남을 통해 들은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의 복지정책과 우리나라의 실정을 비교해봤다.
◇ 복지천국 노르웨이, 연금제도 원칙은 같아도 우리 재정에 알맞은 방법 찾아야
노인 복지에 대해서는 가히 ‘천국’, ‘유토피아’라 칭하는 노르웨이의 노인복지 핵심은 국민연금이다. 세계 10대 산유국에 속하는 노르웨이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익금으로 조성한 국민연금 규모가 840억 달러(882조원)다. 이는 전세계 최고치이며, 지난해 대한민국 국민연금(423조50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인의 연평균 소득은 7만8637달러(약 8339만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노인의 연평균 소득 1만4541달러(약 1543만원)의 5배가 훌쩍 넘는다.
노르웨이의 톨비요른 홀테 대사는 “노르웨이 복지 시스템은 사회복지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복지를 통해 인생 경로 전반에 걸쳐 벌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며 “연금 제도의 기본원칙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이고 사회적인 보장을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의 복지 시스템은 은퇴 이전 소득과 연계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은퇴를 늦게 할수록 연금수령액을 높여 좀 더 일을 오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퇴직, 질병, 노화 등으로 인해 소득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일정한 소득으로 노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노르웨이 연금제도의 기본원칙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원칙은 같아도 재정규모와 분배의 차이가 불러오는 노인의 삶의 질은 현저히 차이난다. 노르웨이의 재정형편과 비교가 안되는 우리나라로서는 적은 재정으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묘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시행 초기인 기초연금에 대해 이런저런 찬반 의견과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노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스웨덴, ‘사오정’, ‘오륙도’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세대간 갈등이 노인 복지예산 배정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스웨덴의 라르스 다니엘손 대사는 이러한 원인을 세대간 경제적 의존에서 찾으면서 각자가 독립된 세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스웨덴은 복지제도를 둘러싸고 큰 세대차이가 없다. 태어나서부터 대학까지 모두 무료로 다니며 혜택을 받고, 대학 졸업 시점인 25세부터 은퇴 시점인 65세까지는 세금을 내고, 그 이후에는 다시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며 “이러한 구조는 국민 자신이 내가 복지를 내놓을 시기와 받을 시기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간 충돌이 덜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인터내셔널에서 전세계 91개국 노인들의 소득, 건강, 고용 등을 평가 대상으로 복지수준과 삶의 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총점 39.9점으로 67위에 머물렀고, 1위는 총점 89.9점으로 스웨덴이 차지했다. 스웨덴의 경우 정년을 못 채우고 퇴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노인의 소득과 고용 등의 평가항목에도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도 한 사람을 해고시키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사오정(사십대, 오십대에는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오륙도(오십대, 육십대까지 계속 회사에서 근무하면 도둑놈이다)라는 은어가 통하는 대한민국과는 상반된 이야기다.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 사회는 젊은이들의 창의력과 열정만큼 노인들의 경험을 중시한다. 하물며 노인공경 사회로 잘 알려진 한국에서 그들의 능력을 저평가하는 것은 이해가 지 않는다”며 “한국의 낮은 출생률을 고려할 때 머지않아 노년층의 경험을 더 높이 사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은퇴 이후 살기 좋은 나라 17위에 선정됐다고 CNBC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티시스글로벌에셋매니지먼트가 전 세계 150개국을 대상으로 은퇴 이후 살기 좋은 국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7위로 전년보다 10계단 뛰었다. 한국은 유리한 금리수준과 낮은 국가부채비율로 은퇴자들을 위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나티시스는 평가했다.
1위는 스위스로 높은 생활수준과 낮은 세금, 완벽한 의료 시스템 등이 높게 평가됐다. 탄탄한 공공·민간 연금 시스템 역시 은퇴 이후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르웨이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독일, 핀란드, 룩셈부르크 등 유럽 국가들이 ‘톱10’을 차지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국인 아일랜드와 키프로스는 24, 25위였으며 스페인은 29위였다.
미국은 19위로 영국과 한국, 체코 등에 뒤처졌다.
‘26억짜리 저택에 사는 목수와 학자금 대출 갚느라 고생하는 판·검사.’ ‘1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1년에 무조건 평균 230만원 지급, 접시닦이로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했을 경우 월 400만원.’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를 통해 노르웨이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 교수는 노르웨이의 복지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돈 벌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시장 사회에서 노동을 팔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생계와 복지를 사회가 당연히 책임진다.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똑같은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 같은 이념이 복지국가 노르웨이를 지켜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노르웨이는 노인 복지에서도 ‘천국’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노인들의 연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조사됐다. 노르웨이 노년층의 연평균 소득은 지난해 7만8637달러(약 8339만원)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65세 이상 노년층의 세계 평균 소득은 1만4541달러(약 1543만원)에 불과했다. 톨비요른 홀테 주한 노르웨이 대사를 통해 노인들이 ‘천국’에 가까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노르웨이에 대해 알아봤다.
◇유토피아에 가까운 복지제도
노르웨이는 세계 여러 국가 중 가장 유토피아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나라다.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교육이고 공립학교의 경우 대학원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다. 병원비는 공짜다. 병에 걸려 직장에 못 나가면 국가에서 돈을 준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은 기본이고 실업자와 장애인에 대해서도 수당을 지급한다. 풍족한 복지제도로 인해 노르웨이에는 개인연금이 필요 없을 정도다.
홀테 대사는 “노르웨이 복지시스템은 사회복지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복지를 통해 인생 경로 전반에 걸쳐 벌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며 “노르웨이 노인복지의 핵심은 국민연금이다. 연금 제도의 기본 원칙은 스스로 돈을 벌수 없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이고 사회적인 보장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복지제도는 긴 투쟁과 타협의 결과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노동 운동에 의해 실업급여 도입으로 시작된 복지제도는 사회 보험 체계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발전했다. 건강 보험에 대한 최초의 법률은 1909년에 제정됐고 퇴직 연금법은 실업수당법이 생긴지 2년 후인 1963년에 채택됐다.
세계2차 대전 이후, 복지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놓고 정치적 충돌이 있었다.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세금을 재정기반으로 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반면, 우파는 연금이 은퇴 이전 소득에 따라가는 시스템 을 추진했다. 1950년대의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우세했기 때문에, 1956년에 건강보험 제도가 모든 주민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다시 연금제도의 균형을 잡았다. 1966년, 의회는 모든 복지 제도를 하나로 병합해 은퇴 이전 소득을 기본으로 책정되도록 했다. 홀테 대사는 “오늘날 노르웨이의 복지 시스템은 오랜 투쟁의 결과이며,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뿐만 아니라 은퇴 이전 소득과 연계되도록 한 타협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에 대한 노르웨이의 정책은 긴 전통을 가진 종합적인 복지시스템의 일부다. 노르웨이 복지시스템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삶의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라며 “노르웨이의 사람들은 복지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세금을 납부하려고 한다.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위한 부의 재분배 원칙은 노르웨이 정치권 전반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르웨이도 정책 수정
노르웨이가 꿈같은 복지제도를 실행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컸다. 노르웨이는 정권 변화에 연금제도가 영향 받는 것을 최대한 차단해 연금 가입자에게 신뢰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르웨이의 복지제도를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복지제도를 위한 재원을 노르웨이는 도대체 어디서 충당했을까.
알아둬야 할 것은 노르웨이는 세계 10대 산유국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60년대 후반 북해를 시작으로 해안선을 따라 잇따라 유전이 발견되면서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노르웨이는 유럽국가 중 대륙붕에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갖고 있는 나라다. 현재는 세계 7위의 원유수출국이고 가스생산량은 세계 3위다.
노르웨이 복지제도 재정의 근간은 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GPFG)이다. GPFG는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다. 지난 1월 기준, 자산규모가 약 8300억달러(약 880조원)에 달한다. 노르웨이 인구가 50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니 국민 1인당 약 1억8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나눠가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펀드 자금은 대부분 거대 석유 기업들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석유 산업을 통해 인구에 비해 연금기금을 든든하게 쌓아놨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넉넉한 복지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도 급속한 고령화의 충격에 연금개혁에 나섰다. 2011년부터 1963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에만 선별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최저보증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은퇴를 늦게 할수록 연금 수령액을 높여 좀 더 일을 오래하도록 유도했다. 이웃 나라 스웨덴처럼 연금제도를 명목확정기여 방식으로 변경했다. 자신의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내면 경제성장률과 기대수명을 반영해 연금을 주는 것이다. 지출되는 연금도정부의 예산에서 나가도록 하고 GPFG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석유고갈에 따라 GPFG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홀테 대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1967년 3.9명 근로자가 필요했지만, 2050년에는 1.7명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금개혁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금제도의 개혁에도 세대 간 갈등이나 진통은 없었을까. 홀테 대사는 “노르웨이에서는 복지 시스템에 대한 세대 간의 갈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 년의 과정을 거쳐 개발됐고 복지 정책의 효율성이 입증돼 대중의 신뢰가 생겼다”며 “복지 시스템의 기초에 대한 폭 넓은 정치적 합의로 세대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인 복지정책에 대한 조언을 묻자 한국인 특유의 효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노인 봉양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한국의 가정이 노인복지 정책에 큰 자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노령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지원해 노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노르웨이에서는 노인을 돌보는 가족에 지원금을 줘 출근 하지 않고도 노인을 돌볼 수 있게 한다. 가족만큼 노인을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는 노인 복지 정책에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