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팝페라 월드스타’이자 국민 애창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의 원곡 가수로 알려진 세계적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라는 타이틀로 이달 12일(수) 저녁 7시 30분에 열리는 이번 콘서트에는 뉴저지 신포니에타 음악감독 출신의 마에스트로 이태영의 지휘와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함께 할 예정이다.
이번 음악회는 서울특별시 산하 25개 자치구에 거주 중인 코로나19 관련 의료진, 자원봉사자, 구급대원, 관계공무원 등의 ‘국민 영웅’들에게 티켓 기부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와 (재)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총괄후원을 통해 진행되는 이번 기부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자 마련되었으며, 공연 관람을 원하는 신청자에 한해 티켓을 제공할 예정이다.
임형주의 소속사 ㈜디지엔콤은 공연의 제목을 ‘평화콘서트’로 정한 점에 대해 “완벽히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19 대감염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혼란스러운 요즘”이라며 “오랜기간 대한적십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UN,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약한 바 있는 임형주가 수많은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했다”고 밝혔다. 이달 말 발매될 자신의 팝페라 정규 8집 ‘Lost In Memory’(잃어버린 추억 속으로)와 동명의 타이틀을 부제로 붙임으로서 새 앨범의 발매를 기념하는 의미도 함께 살렸다는 후문이다.
임형주는 이번 공연에서 이태영 마에스트로의 지휘와 50인조의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완벽한 호흡을 자랑할 예정이다. 1960~1980년대 한국음악계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패티김, 펄 시스터즈(배인숙),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 등과 같은 국민 가수들의 대표 대중가요들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선구자’, ‘비목’ 등 정규 8집의 수록곡들은 물론 임형주를 위해 작곡된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꽃 한 송이’까지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클래식, 팝, 재즈, 뮤지컬 등 장르를 총 망라한 팝페라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할 것으로 알려져 뜨거운 호응이 예상된다.
이번 공연에는 이탈리아의 ‘2022 산레모 국제 신인 가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팝페라가수이자 테너 박종수(HUNKTENOR)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배출한 예능인 겸 작곡가 유재환(UL)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한다. 더불어 해당 콘서트 티켓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세계평화를 위한 기금으로 지정 기부 될 예정으로 밝혀져, 관객들에게 여러모로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음악회로 기억될 것으로 기대된다.
총괄후원을 담당한 천주교서울대교구 산하 (재)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천주교서울대교구 산하의 비영리 NGO 단체로서 해외 원조 및 국내 각종 불우이웃 지원사업, 장기기증, 자살예방 등 생명 존중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재)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경촌 주교는 “코로나 시기에 사회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긴급 모금과 지원을 진행해왔다”라며 “이번 기회로 마음을 위로하는 ‘천상의 목소리’의 소유자 임형주와 함께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분들을 초대하는 ‘평화콘서트’를 총괄후원하고, 서울시청과 협의해 공연 티켓 기부를 진행하여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공연의 티켓은 인터파크, 예스24, 예술의전당 공식 홈페이지에서 절찬 예매 중에 있다.
한편, 임형주는 지난 2021년 5월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 신자로 개종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4월부터 현재까지 cpbc 가톨릭평화방송 FM 라디오 종합음악프로그램 ‘임형주의 너에게 주는 노래’의 메인 DJ 로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2~4시에 팬들을 만나고 있다.
반짝이는 것은 늙지 않는다. 일을 향한 열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짝이는 이 역시 늙지 않는다. 춘삼월 여린 잎 같던 목소리는 푸르다 못해 영글었고, 소년은 단단한 어른이 되었지만 반짝이는 두 눈은 24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사람을 사랑하며 오래도록 푸른 청년(靑年)으로 남을 임형주(37)의 이야기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최연소’, 하나 덧댄다면 ‘최초’를 꼽겠다. 2003년 만 17세 나이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정사상 최연소 애국가 독창자가 됐다. 같은 해에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단독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국내 3대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여는 대기록은 10년 전에 세웠다. 데뷔 15주년에는 앨범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한 독창회를 열면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무대(대극장, M씨어터, S씨어터, 체임버홀)에 서본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음악가로서 세울 수 있는 기록은 전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두 살 소년이 상상 못한 숫자들
수집하듯 온갖 기록을 쓸어 담은 세월이 24년이다. 지금의 임형주는 데뷔 25주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 팝페라 테너지만, 1998년 데뷔 당시 열두 살 소년은 이 모든 기록적인 숫자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4년이 ‘꽃길만 걷는’ 시간이었을 것 같지만, 그는 스스로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평가한다. 선배가 없는 팝페라 장르에서 활동하는 건 흙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작업과도 같았다.
지쳤던 걸까. 언제부터인가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만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노래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명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뜬소문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로마시립예술대학 성악과 석좌교수, 미국 그래미상 심사위원, 음악평론가 임형주로 살았다. 대중과 멀어지면서 ‘세월호 추모곡 가수’, ‘애국가 소년’쯤으로 이미지가 축소됐다.
그러다 가수 임형주가 지난 5월 JTBC ‘뜨거운 씽어즈’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췄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예상 못 한 깜짝 등장이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은 다 차치하고 진정성을 전하는 노래가 최고의 노래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출연진의 도전을 응원한 그는 시니어 합창단과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겸손한 자세와 청아한 목소리가 갖는 힘은 여전했다. ‘뜨거운 씽어즈’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함께 부르는 장면의 유튜브 동영상은 두 달 만에 134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중의 관심이 전보다 덜하리라는 예상을 뒤엎은 수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수로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데뷔한 지 오래되다 보니 ‘왕년의 스타’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도 잘 출연하지 않았으니 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의 데뷔 무대이자 첫 방송 출연이었던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영상은 ‘온라인 탑골공원’(1990~2000년대에 유행한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계정을 총칭하는 신조어)에 게재됐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하지 않느냐며 너스레 떨지만, 대중의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있는 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 사랑을 위한 노래
그는 노래를 고를 때도 대중을 생각한다. 스스로 청중이 되어보고, ‘팝페라 테너’라는 정체성을 되새기며, 이 시대의 대중이 무얼 가장 원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고민한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곡들로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연인의 애정보다는 인류애에 가깝다.
“연인의 사랑을 다루는 가수는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를 다루었어요. 대중이 가장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인 팝을 통해서 인간애를 노래하죠. 사실 예술은 무한하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는 향유, 즐기는 데 있거든요. 저는 세상에 듣기 좋은 음악과 듣기 싫은 음악, 딱 두 가지 음악만 있다고 이야기해요. 예술가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죠.”
고고하고 우아한 음악을 한다는 생각에 괜히 으스대는 클래식 전공자들을 종종 봤다. 그 역시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싫었기에 팝페라 테너로 전향했다. 정치·경제만큼이나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그는 뿌듯한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전부터 ‘문화예술의 일상화’를 주장하던 입장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전하기 위함이다. 즐기기 위해선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콘텐츠가 일상에 스며들 자리는 없으니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며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감상은 물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고,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로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세계 유수의 작가와 작품명이 쏟아졌다. 최근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한 책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지난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도 그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타인을 돌보는 마음, 그 사랑이 있기에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다.” 인간애를 노래하는 가수다운 모습이다.
숲을 만드는 일을 꿈꾸다
올해로 서른일곱의 나이지만, 데뷔한 지 24년이 지났다. 인생의 3분의 2를 올곧이 음악에 바친 셈이다. 인간 임형주의 삶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지만 흘러간 과거가 아쉽지는 않다. ‘음악과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몇 시간 지나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앨범 제작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지만, 사람은 죽어도 앨범은 세상에 남아 있을 걸 생각하면 열심히 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굉장히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다른 음악가들보다 조금 이르게 은퇴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커리어상 최정상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지금이 제 목소리의 전성기임이 느껴지거든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뒤에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하려고 해요. 돌이켜보니 데뷔하던 때도 왠지 ‘나는 일찍 은퇴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네요.”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을 떠올리자니 가수 임형주를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태도다.
현역에서 은퇴한다 해도 문화예술계에 일조하려는 계획은 확고하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행사를 직접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가 꽃이자 나무라면, 가수로서 노래 부르는 것은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일이다. 예술감독은 행사에 쓰이는 모든 음악을 심고 가꾸며 배치한다.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개·폐막식이라는 하나의 숲을 만드는 작업이다.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줄 묘목을 가꿀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국내 대학에서 제안한 교수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팝페라’의 길을 걸을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행정가로도 활약하고 싶다. 인생 2막에 대한 계획을 늘어놓는 모습이 장래 희망이 너무 많아 고민인 어린아이를 닮았다.
바빠 나이 들 시간조차 없는 청년
차차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지만, 당장은 9월에 발매될 정규 앨범 8집 ‘Lost In Memory’를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번 앨범에는 1970~1980년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 대중가요를 담을 예정이다. 독립군 애국가나 ‘봉선화’, ‘사의 찬미’ 등 1920~1960년대 노래를 수록한 정규 7집 ‘Lost In Time’과 시대적으로 연결되는 앨범이다.
“지난 앨범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는 ‘잃어버린 추억’에 대해 다뤄보려고 해요.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에는 트로트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곡가 길옥윤, 박춘석, 이봉조와 그들의 뮤즈인 패티김, 혜은이, 정훈희나 이미자의 가요를 녹음하고 있어요. 패티김의 ‘이별’이나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정훈희의 ‘안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빠질 수 없죠.”
10월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신보와 같은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8집에 실린 노래 외에도 가을에 어울리는 추억의 팝송이나 연주곡을 함께 선보이려 한다고. 5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를 곁들일 예정이라, ‘사랑은 생명의 꽃’(패티김)처럼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곡을 듣다 보면 특히나 코끝이 찡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선 첫 베스트 앨범을 내려고 한다. 그의 모든 대표곡을 앨범 한 장에 담을 예정이고, 앨범 발매 기념 독창회 역시 진행하려 한다. 내년에 코로나19가 완화되면 국내나 해외 순회공연도 떠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전국 25개 도시를 돌아보고 싶어요. 숫자 맞추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TV 프로그램이나 매체 인터뷰 등 섭외 제안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해요. 순회공연을 돌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난 뒤겠지만, 내년은 인간 임형주이자 음악가 임형주로서 제 인생을 결산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바빠서 나이 들 시간이 없다”던 유명 배우의 발언이 떠올랐다. 임형주는 배움을 멈추고 안주하려 할 때 사람이 비로소 ‘늙는다’고 생각한다. 고로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잠을 설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받고 싶은 상이 남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라고 대답한다. 오래도록 푸르를 청년일 수밖에.
10여 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설립하고 ‘웰다잉’과 관련해 선구자 역할을 해온 최준식(崔俊植·63)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당시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그는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를 넘어 성장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자고 말한다.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등의 질문들을 평소에는 외면해도, 죽음을 목전에 둔 임종기에는 대면하게 된다. 그때야말로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에, 죽음을 ‘인생 마지막 성장의 기회’라 일컫는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이하 ‘임종학 강의’)가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책이 있었다. 2014년 최준식 교수가 펴낸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이하 ‘죽음학 강의’)다. 그는 “두 책은 자매 도서”라며 “함께 읽었을 때 죽음에 대한 공부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임종학 강의’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운 말기 질환 상태에 들어갔을 때부터 죽음까지를 이야기합니다. ‘죽음학 강의’는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 그러니까 사후세계나 환생 등에 대해 다뤘지요. 일부분 겹치긴 하지만 관장하는 부분이 달라요. 특히 ‘임종학 강의’는 최근 5년 사이에 제 부모와 처의 부모까지 네 분을 모두 여의면서 현실적으로 깨닫게 된 실질적인 문제들까지 담았습니다.”
그가 부모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알게 된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장례문화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론으로는 대개 이상적인 방법들만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사실상 이론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요. 경황도 없지만, 자식들 간에 의견 통합이 문제입니다. 제 경우만 해도 셋째 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관여를 안 했어요. 제가 한국죽음학회 회장이라 한들, 한국 장례절차는 장남 위주로 흘러가니 간섭하기 어렵지요. 연명치료하면 안 된다, 화장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설득하기 힘듭니다.”
장례식도 결혼식처럼 직접 디자인하자
‘임종학 강의’에서 다루는 ‘임종 단계’는 대체로 환자가 말기 질환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다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유족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장례까지 마쳐야 한 인간의 죽음과 관계된 일이 모두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행하는 ‘장례식’에 대해 최 교수는 “장례식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우리나라 장례는 ‘문상 절차’만 있지, 정작 ‘장례식’은 없어요. 결혼식처럼 특정한 날과 장소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행하는 의례가 없잖아요.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일본이나 미국의 장례식만 떠올려도 곧바로 알 수 있어요. 그들은 어느 한 날을 정해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의례를 치르죠. 그러면서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족에게는 형식적으로 간단히 인사하고 문상객들끼리 잡담하다 오는 게 전부잖아요. 이런 장례 문화는 겉치레만 있을 뿐이지, 내용이 없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전통사회에서는 마을의 훈장이나 노인 등이 장례 절차를 담당하곤 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상조회사에 의존해 그들이 하는 절차를 지켜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이처럼 보내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직접 장례를 치르는 방법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길 권한다는 최 교수다.
“예비부부가 자신들의 결혼식을 디자인하듯 장례식도 당사자의 뜻에 따라 절차와 방식을 정해볼 수 있어요. 물론 상조회사의 절차를 따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죠. 그렇지 않다면 직접 장례 계획을 짜보세요. 먼저 초청할 사람들을 정해요. 이때 나중에 자식들이 초대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함께 적어야죠. 그다음에는 식순을 짜고, 각 순서를 누가 맡을지 정하거나 조가는 어떤 곡을 틀지 써놓으면 좋아요. 그 외에도 각자 원하는 것에 따라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꾸며보는 거죠.”
장례를 직접 디자인하려는 이들에게 최 교수가 제안하는 것이 있다. 바로‘마지막 인사 남기기’다. 임종을 맞이하기 전, 몸과 정신이 성성할 때 직접 마지막 인사를 녹음 또는 녹화해두는 것이다.
“자신이 한평생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주위로부터 어떤 은덕을 입었는지, 그동안 신세 진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 등을 전하면 됩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영상을 보면 하객들이 주인공과의 인연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축하하는 마음도 더 커지잖아요. 그런 의미로 만들어보자는 거죠. 장례식 당일에 이 마지막 인사를 들려주면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유족들도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죽음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죽는다’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이에 최 교수는 ‘죽는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몸을 벗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우리가 말하는 죽음은 단지 몸을 벗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몸’, 즉 ‘육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화장을 꺼리거나 무덤 터를 살피는 것 등이 그 이유죠. 성묘 가면 무덤 앞에서 자식들이 그러잖아요. ‘아무개야, 여기 할아버지께 인사드려. 아버지 손주 아무개 왔어요.’ 도대체 거기 뭐가 있다는 거죠? 제사 지낼 때도 봐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먹는다고 산 사람 음식을 차리나요. 고인의 넋을 기리려면 향을 피우거나 기도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게 현세 중심적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도 다른 민족보다 더 터부시하는 거예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추모곡을 예로 들었다. 일본 곡을 번안해 임형주가 부른 노래인데, 원곡의 첫 소절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요”라는 가사가, 번안곡에서는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로 바뀌었다.
“아마 죽음, 무덤 이런 것을 기피하는 현상 때문에 가사를 그렇게 바꾼 모양인데 그러면 그 곡이 지니는 의미가 사라져요. 그 뒤에 나오는 가사를 보면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가을에는 곡식들을 비추는 빛이 되고, 겨울에는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이런 식이에요. 해석하면 나는 무덤에 잠들어 있지 않고, 내 영혼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고 있으니 그곳에서 슬퍼하지 말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몸만 머물러 있는 무덤은 의미가 없다는 건데, 그게 사진으로 바뀌니 본뜻이 사라진 셈이죠.”
‘몸을 벗었다’는 그의 표현대로, 일생 수많은 고비를 지나며 고달팠던 육신을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다 여기면 죽음이 꼭 괴로운 것은 아닐 터. 최 교수는 죽음을 공부하고, 성찰하며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지녔을 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두렵지 않을 것이라 조언했다.
“죽음은 지상에서의 삶을 잘 마치고 가는 것이니 일종의 인생 졸업식이지요.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여러 가지 제약으로 작용했던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니, 오히려 축하할 일 아닐까요. 죽음을 ‘삶의 적’으로 두지 말고, ‘삶과 함께’하며 잘 준비해두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