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
일정 10월 12일까지 장소 스페이스K 서울
SF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들고, KBS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 제이디 차(Zadie Xa)의 국내 첫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한국인 어머니가 들려준 전래동화를 통해 한국의 샤머니즘에 흥미를 느꼈고, 마고할미나 바리공주 등 설화 속 인물, 구미호 같은 요괴 캐릭터를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세계가 담긴 작품 33점을 만날 수 있다.제이디 차의 작품에는 여성,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뭇 남성을 홀리는 존재로 통하는 구미호마저 할머니다. 작가에게 할머니는 지혜와 통찰을 겸비한 존재다. 더불어 마고할미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신이고, 삼신할매는 인간의 탄생에 관여하는 신이다. 다양한 반인반수 캐릭터도 작품 속에 많이 나온다. 인간과 여우, 까마귀, 갈매기 등 동물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는 서로 다른 종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헤더윅 스튜디오 : 감성을 빚다
일정 9월 6일까지
장소 문화역서울284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세기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감성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모습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 30점을 만날 수 있다. 그를 대표하는 프로젝트인 중국 상하이엑스포의 ‘UK 파빌리온’,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 영국 런던 ‘2층 버스’와 서울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 ‘사운드스케이프’ 등이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또한 드로잉과 스케치 노트부터 실제 제작된 3D 프린트와 시제품들이 함께한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한영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로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Stage
◇레베카
일정 8월 19일~11월 19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류정한, 민영기, 에녹, 테이, 신영숙, 옥주현, 리사, 장은아, 김보경, 이지혜, 이지수, 웬디 등
뮤지컬 ‘레베카’가 10주년 공연을 한다. 대프니 듀 모리에 소설과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맨덜리 저택에 얽힌 비밀을 그린다. 한국에서는 2013년 초연을 올렸고, 2019년 여섯 번째 시즌까지 누적 관람객 95만명을 기록한 메가 스테디셀러다.
10주년 공연답게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초연 이후 전 시즌에 출연한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은 이번에도 함께하며 명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레베카’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인물 옥주현 또한 댄버스 부인 역을 연기한다. 레드벨벳 웬디는 나(I) 캐릭터를 연기하며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프리다
일정 8월 1일~10월 15일
장소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연출 추정화
출연 김소향, 알리, 김히어라, 전수미, 리사, 스테파니, 임정희 등
서양화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생애를 액자 형식으로 풀어낸 쇼 뮤지컬 ‘프리다’는 지난해 초연 당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극은 프리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 ‘더 라스트 나이트 쇼’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을 짓누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환희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프리다의 이야기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초연에서 ‘프리다 그 자체’라는 극찬을 받은 김소향과 함께 가수 알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인기를 끈 김히어라가 프리다 역할을 맡는다.
◇곤 투모로우
일정 8월 10일 ~ 10월 22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이수인
출연 강필석, 최재웅, 고훈정, 조형균, 김재범, 신성민, 백형훈, 윤소호 등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갑신정변이라는 근대 개혁운동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피신한 김옥균의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갑신정변부터 한일합병까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순간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는 관객에게 가슴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1년 반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김옥균’, ‘한정훈’, ‘고종’ 등 주요 인물들과 조연 역할에 초・재연을 함께했던 출연진들과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뜨거워진 무대를 예고하고 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Exhibition
◇에릭 요한슨 사진전 Beyond Imagination
일정 2022년 10월 30일까지 장소 63아트
스웨덴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은 사진가이자 리터칭 전문가다. 그의 작품은 여타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처럼 단순한 디지털 기반의 합성 사진이 아니다. 그는 작품원(園)의 모든 요소를 직접 촬영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세계를 사진 속에 가능한 세계로 담아낸다. 요한슨은 상상의 풍부함이나 표현의 세심함, 특히 포토샵을 이용한 이미지 조작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디어로 탄생한 요한슨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연출로 구성된 여러 포토존을 통해 에릭 요한슨의 작품 속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요한슨은 해학과 풍자를 내포한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과 상충적 개념의 이미지 충돌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다.
◇상상의 정원
일정 11월 28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상상의 정원’은 조선 후기 ‘의원’(意園) 문화에서 탄생했다. 18~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은 경제적 형편에 제한받지 않고 마음껏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의원, 즉 ‘상상 속 정원’을 경영했다. 동시대 ‘의원’을 염두에 둔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작가들은 정원의 역사, 실천을 다시 생각하면서 다양한 초점을 지닌 열린 정원을 만들어낸다.
각 작품은 자체로 이야기가 있는 하나의 정원이면서 동시에 서로 조화와 긴장 관계를 이루며 더 큰 정원을 구성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 정원은 기존의 자연을 최대한 살리면서 담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인위적인 조경을 최소화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도록 조성해 동선도 자유롭다. 방문객은 다음에 이어지는 작품 설명 순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마치 전통 정원을 산책하듯 덕수궁을 느긋하게 거닐며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Book
◇50 이후, 더 재미있게 나이 드는 법 (스벤 뵐펠·갈매나무)
우리는 100세 인생이 더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이제 괜한 수사가 아니다. 밀라논나도 윤여정도 청년들의 롤모델을 넘어 자신의 분야에서 인생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50대라고는 믿기 힘든 ‘동안’을 자랑하는 셀럽들의 이야기가 이제 놀랍지도 않으며, 50은 인생의 고작 절반을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50세 이후, 즉 중년이 길어지고 있다. 보통 70세가 가까워질수록 암과 심혈관 질환 또는 심리 질환 같은 문명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는데, 이때 삶의 질은 50세 이후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나이 들어서도 자신을 가꾸며 젊게 생활하려는 ‘신중년’(Young-Old)으로서의 삶이 인생 후반기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독일에서 사회 경제 분야와 연계해 선구적으로 노화 연구를 개척해온 스벤 뵐펠(Sven Voelpel)은 중년의 건강관리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 ‘늙지 않는 7가지 공식’(마음가짐, 식사, 운동, 수면, 호흡, 이완과 휴식, 사회관계)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학문 연구와 사례를 바탕으로 건강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담은 이 책은 2020년 독일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로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유튜브 등을 통해 그는 재치와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몸소 보여준다.
선구적 노화 전문가가 제안하는 과학적 일상 루틴 가이드에 따라, 인생 후반기를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보자.
◇다산의 철학 (윤성희·포르체)
빠르게 변화하며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게 알맞은 속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다산의 철학을 보여준다.
◇면역 습관 (이병욱·비타북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보완통합의학 권위자인 이병욱 박사는 이럴 때일수록 면역과 개인 위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고치는 암 의사 이병욱 박사가 말하는 올바른 면역 습관에 귀 기울여보자.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정연희·허밍버드)
“딸아 처음부터 너는 너였단다. 누구의 딸, 아내, 며느리, 엄마가 아닌 네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눈부신 삶을 살아갈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로서, 한 시대를 먼저 산 여성으로서 ‘누구의 딸, 아내,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라는 애정 어린 당부를 전한다.
●Stage
◇지킬 앤 하이드
일정 10월 19일~2022년 5월 8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데이빗 스완
출연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 윤공주, 아이비, 선민 등
국내 최초 스릴러 로맨스 뮤지컬로 150만 관객을 열광시키고 가슴 설레며 기다리게 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지킬앤하이드’는 1886년 초판된 영국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을 원작으로 선과 악, 인간의 이중성을 ‘지킬과 하이드’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하는 작품이다. 무대를 압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극대화하는 연출로 관객에게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초연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누적 공연 횟수 1410회, 누적 관객 수 150만 명,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95% 등 압도적인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리어왕
일정 10월 30일~2022년 11월 2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현우
출연 이순재, 소유진, 지주연, 오정연, 서송희, 이연희 등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인간 존재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아우르는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압도적인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올해 데뷔 65주년을 맞은 연기의 거장 이순재, 대문호와 대배우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금껏 수많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해온 이현우 교수가 기존의 공연에서 간과됐던 부분까지 면밀히 분석해 셰익스피어 본연의 ‘리어왕’을 선보일 예정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일정 10월 8일~11월 21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봉건
출연 박해미, 김예령, 고세원, 임강성, 임주환, 태항호 등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초연 직후인 194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남부 명문가 출신의 한 여성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급변하는 미국 사회, 특히 남부 상류사회의 쇠퇴와 산업화 이후를 다소 충격적으로 전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번 공연은 각색을 통해 주요 인물들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해 더욱 밀도 높게 극을 이끌어갈 예정이다.
인터넷에 안경을 파는 쇼핑몰도 없던 시절부터 안경 디자인을 시작해 25년간 디자이너로서 묵묵히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1세대 안경 디자이너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 디자인 회사 ‘디자인 샤우어’를 운영 중인 김종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인터넷이 낯선 시대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이 된 세상으로 변했지만, 같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났다. 그가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그 원동력에 관해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암기나 받아쓰기는 못해도, 그림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어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녔다. 그림 그리는 걸 얼마나 좋아했던지 다빈치의 해부도를 보고 큰 감명을 받고 직접 따라서 매일같이 그렸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타고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대학에서도 금속공예 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한 계기로 선택한 첫 직장이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어릴 때부터 안경 디자이너가 꿈은 아니었어요. 다만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안경에 끌렸어요. 당시 렌즈와 테가 조립되는 구조적인 디자인이 제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운 좋게 안경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유명했던 ‘서전안경’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직장인으로서 애환은 누구나 있지만,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과 안정적인 생활은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어떤 결심으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든 걸까?
“첨엔 안경 디자인 리뷰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라고 할까요? 막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라 ‘블로그’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죠. 심지어 안경원 하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들은 이메일조차 못 쓰셨어요. 그때 전 세계의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안경을 수집하면서 리뷰를 꾸준히 올렸어요. 이 디자인이 왜 좋은지, 브랜드 스토리는 어떤지 스스로 공부도 할 겸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기술로 승부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군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해외 브랜드 담당자들이 한국 업체에 그의 사이트를 문의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투자해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디자인만 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잘 몰랐어요. 기회가 오니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같으면 착실하게 준비했을 텐데, 어린 나이에 그냥 저질러보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경제관념도 없던 때라 다달이 통장에 꽤 많은 금액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계속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업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리가 잘되지 않았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빚만 지고 돈을 벌지는 못한 채 계속 적자를 메우기에 바빴다.
“안경원을 4개나 운영하고, 내근직과 영업직도 있고, 도매까지 손을 댔는데 잘 안 됐어요.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직원이 24명이나 있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직원의 이름을 잘 모를 때도 있었어요. 통장 잔고 0원에서 시작했는데 빚이 13억 원까지 불어나니까 아찔하더군요. 결국 폐업 위기까지 갔고, 밀린 월급을 챙겨주면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냈는데 참 미안했어요.”
빚이 불어나고 직원을 보낼 정도라면 폐업을 신청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터. 그는 어떻게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걸까?
“다시 살아야겠다! 이 마음 하나밖에 없었어요. 거래처 가서 부탁도 많이 하고, 욕도 무진장 많이 먹었어요.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고요. 한 8년을 그렇게 지나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앞만 보고 달렸어요. 다른 건 죽어도 할 자신 없고, 이걸로 끝장 본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때부터 기술로 승부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빚도 많이 줄었고, 신용불량자 상태도 풀렸어요.”
고심이 만든 고집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나? 그가 만든 안경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하나둘씩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특히 대중에게 얼굴을 자주 비추는 연예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골손님이 가수 양희은이다.
“저희가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양희은 선생님 스타일리스트가 저희 안경을 보고 선생님께 추천을 드린 거예요. 선생님도 안경을 보시고 맘에 들어 하셔서 그때부터 저희 안경을 자주 찾으세요. 이제까지 30개 이상은 구매하신 것 같아요. 황재근 디자이너나 김영하 작가도 저희 안경을 쓰세요. 대체로 보면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와요. 그렇지 않은 일반인 분도 종종 오시는데, 그분들도 개성이 강한 편이에요.”
그렇다면 단골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수제 안경의 독특한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 찾다 보니 재미있고 차별화된 걸 좋아하세요. 예를 들어 안경알의 좌우 형태가 다른 안경이 있는데 하나는 둥그렇고 다른 하나는 네모예요. 굉장히 특이한 안경인데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시는 분이 꽤 많아요. 테가 탈착되는 방식이라 부러지지 않고 빠져요. 빠지면 다시 끼우면 돼요. 충격을 받아도 잘 부러지지 않는 것이 제가 만드는 수제 안경의 장점 중 하나예요. 오로지 제 손끝에서 나온 하나밖에 없는 안경들이에요.”
수제 안경의 장점은 확실히 특별하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안경인 동시에, 한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다만 대량 생산과 비교해서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오랫동안 수제 안경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다 하는 걸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똑같은 걸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평소에 생각하던 걸 손으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처음엔 공장에 최소 수량을 맡길 자금도 수중에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사실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중요해요. 머릿속 생각을 구체적인 오브제로 실현하는 동시에, 과정 중에 하나둘씩 문제를 발견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요. 그 과정이 더 좋은 안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봐요.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실험이에요. 제 공방은 연구소나 다름없어요.(웃음)”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지만, 사람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기계와 비교해서 한계와 단점도 존재한다. 이제껏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물론 있죠.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요. 거칠게 말하면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그 한계치까지 고심해서 만들어내는 고집인 거죠. 기계나 기술이 부족하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제 성격상 그게 잘 안 돼요. 같이 일하는 후배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지만, 저는 이게 좋아요. 매번 똑같은 걸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롭고 더 좋은 안경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요. 늘 한계를 실험 중인 거죠. 제 고집이란 게 그래요.(웃음)”
한 뼘이라도 나아지는 삶
안경 디자이너로서, 숱하게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히 있을 터.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안경의 기준과 디자이너로서 철학을 물어봤다.
“일단 기능적으로 충실한 것이 기본이죠. 편하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안경을 손님에게 드릴 수는 없죠. 덧붙여 수제 안경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에요. 새롭지 않으면 손으로 만들 필요가 없죠. 안경은 오브제에 대한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완벽한 안경은 없다고 생각해요. 광이 잘 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은 안경과 제대로 된 브랜드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시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고, 새로운 시도는 열정에서 출발해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걸 만들려고 매일 다짐해요.”
끝으로 더 나은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디자이너로서의 계획을 물었다.
“죽을 때까지 조금씩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 삶의 목표예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건 기대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그렇게 조바심을 내면 많이 힘들었어요. 남들에게 보이는 성공보다는 행복하게 재밌게 보내는 하루가 더 소중해요. 어제보다 조금씩 더 성장하고, 일 년 전보다 한 뼘씩이라도 나아지는 것. 그게 디자이너이자 한 인간으로서 목표예요. 그런 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앞으로 사업을 조금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요. 올해는 친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려고요.”
베테랑 안경 디자이너 김종필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은 ‘성장’과 ‘차별화’였다. 그의 차별화는 명함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쓰는 종이 명함이 아니라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안경닦이 위에 수제 안경 사진과 함께 새겨진 명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을 차별화하는 수단이자 실용성을 더한 명함이었다.
한편 그는 늘 성장하고자 했다. 폐업에 내몰렸을 때 사업가로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영·마케팅·브랜딩 책을 400권 이상 독파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경영인으로서의 판단 기준이나 관점을 많이 익힐 수 있었다고.
이제껏 그는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안경을 만들며 자신만의 사유를 표현했다. 그게 단순히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고, 구체적인 실행과 기본을 충실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더욱 빛나 보였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디자인적으로 차별화에 신경 쓰면서 편안함이라는 안경의 실용성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종필 대표는 디자이너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추기 위해서 지난 25년 동안 밤낮없이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가 수제 안경이었다. 흔히 나이테라고 부르는 ‘연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할수록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늘 시도하고 매일 성장하려는 그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큰 연륜을 만들고, 후에 품이 넓은 나무로 성장해서 넉넉한 그늘을 사람들에게 드리우는 안경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고 있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이곳 동네 책방 한쪽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가슴속 묻어뒀던 작은 행복 하나가 ‘똑똑’ 심장을 두드리며 응답한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행복한 삶’이 좋다. 오늘 당장 떠날 것, 가까운 동네 책방으로!!”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 가입된 독립서점들을 살피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 있다. 마치 “저를 찾아와주세요…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드는 것처럼 시선을 붙잡아 맨 곳. 바로 ‘날일달월’이다.
일단 인터넷에서 ‘날일달월’ 웹사이트와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찾아봤다. 색다르다. 비건식당? 아니, 책방에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음식을 판다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 속에는 컬러풀한 채소들로 가지런히 상차림한 사진이 올라와 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번 호에 소개할 동네 책방으로 선택했다.
‘날일달월’은 2호선 강변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강변역에는 동서울터미널이 있어 늘 사람이 북적이고 어수선한 곳이다. 이런 번잡스런 곳에 독립서점이라니? 의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동네 책방이 산골에도 생기고 우리 동네 구석탱이에도 있는데 터미널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날일달월’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열심히 채소를 씻던 분이 반겨준다. 먼저 점심 메뉴로 미역콩국수진지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라 불리는 이효재 씨와 언뜻 인상이 비슷하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광목 앞치마를 둘렀다. 한눈에 봐도 대표인 듯 보였다.
창가를 제외한 벽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출판사별로 칸이 나뉘어 있다. 서가를 살펴보다 음식 준비에 바쁜 주방으로 다가가 물었다. “혹시 이곳 대표님이신가요?” 그러자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제가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답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희숙 대표와 날일달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생채식 식당과 작은 책방의 조합
‘날일달월’은 2018년에 문을 열었다. 비영리법인인 한국도서관친구들 대표를 맡고 있는 여희숙 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생채식 식당이자 작은 책방이다. 여 대표는 교사 생활과 독서시민운동 등을 하며 평생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2017년경 자녀들이 모두 성장해 독립을 하고 은퇴한 남편과 덩그러니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큰 공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즈음 건강이 안 좋아진 남편 덕(?)에 먹거리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이래저래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할 때 거추장스럽기만 한 대형 아파트를 호기롭게(?) 팔고 두 부부가 살기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로 옮겼다. 그리고 집 앞의 빌딩 3층을 임차해 책방 공사를 시작했다.
나만의 공간인 동네 책방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전국 각지의 ‘도서관친구들’ 회원 성원이 하늘을 뚫을 듯했다. 이왕이면 전국 곳곳에 그물망처럼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친환경 농산물이나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식재료를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 전국에서 도서관 서포터즈를 하는 이들의 경우 귀농을 해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거나 여러 가지 먹거리 관련 일을 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희숙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책’과 ‘가장 필요한 생채식 먹거리’가 조합된 ‘날일달월’이 탄생했다. 책방에 식당?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날일달월에 들어서면 오묘한 조합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흔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확’ 풍기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놀라게 된다. 여 대표는 생채식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채식이라 지지고 볶을 일이 없어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서 책을 읽거나 고를 때 거슬리는 게 전혀 없습니다. 채식동호회나 환우회 카페 등을 통해 알고 방문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오히려 이분들은 ‘채식 전문식당인 줄 알고 왔는데 책방이네?’ 하며 놀라고 가요.”
낭독모임, 희곡 대본 읽기 등 프로그램 다양
여희숙 대표는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꾸리고 진행해왔던 터라 작은 책방을 열고 나서도 꾸준히 모임을 이끌고 있다. 현재 4팀의 독서모임을 이곳에서 하고 있는데 성격도 다채롭다. 주로 시니어들이 함께하는 월요일의 독서모임은 낭독모임이다. 얼마 전 1년간 이어진 ‘열하일기’ 낭독이 끝나고 현재는 ‘돈키호테’를 낭독 중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모임도 있다. ‘연극배우와 함께 희곡 대본 읽기’다. 연극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힘들어진 연기자들을 조금이나마 지원하고 싶어 ‘좋은 희곡 읽기 모임’ 대표인 장용철 연기자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희곡 대본을 함께 읽으며 연기의 맛을 조금 맛봤다. 이후 6주 코스로 ‘햄릿’을 낭독했고 현재는 ‘오이디푸스’를 함께 읽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도 2팀이나 있다. 22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한 여희숙 대표는 어린 시절의 독서 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과의 모임은 아무리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이끌어나가고 있다. “어느 날은 오전 오후 꽉 찬 독서모임을 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때가 많지만 마음만은 너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밖에 ‘그림책 따라 그리기 100일 프로젝트’도 있다. 그림책 한 권을 정해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모임이다. 최근에는 안승준, 홍나리 작가의 ‘어느 날 우리는’을 따라 그렸다. 이 책에는 고양이와 사자, 돌고래 등의 동물들이 등장하며 그림책 속 QR코드를 스캔하면 노래와 함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까지 감상할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의 호응이 특히 높다.
또 백승우 감독이 진행하는 금요시네마는 2018년 8월부터 꾸준하게 진행해왔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둘째 주 금요일 백 감독이 큐레이션한 작품을 함께 보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날일달월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한편 8월부터 11월까지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금요일, 달이 뜨면 심야책방으로!’ 이벤트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단법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함께하는 ‘심야책방 2020’은 서울 지역에서 ‘날일달월’을 포함, 15곳의 동네 책방이 참여한다.
‘날마다 달마다 좋은 책과 음식을 먹으면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는 ‘날일달월’. 이곳에서 금요일 둥근 달이 뜨면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조용히 책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심야먹방 아닌 심야책방을 꿈꾸며.
Mini Interview ‘날일달월’ 여희숙 대표
여희숙 대표는 출판계와 교육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마산과 하동, 광양, 포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22년을 근무했다. 교사 시절 교실마다 작은 학급 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선생님’으로 소문이 날 만큼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생활화를 몸에 익히게 했다.
교사 일을 천직으로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던 여 대표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포스코를 다니던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였다. 천직을 포기할 수 없어 주말 부부로 살기를 3년. 결국엔 사직서를 쓰고 남편과 합류하면서 서울 광진구에 정착했다. 낯선 서울 생활은 오로지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즐거움으로 버텨냈다.
독서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 역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여희숙 씨를 사서가 눈여겨보고 도움을 요청하면서였다고. 이후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서관친구들’ 활동을 시작해 현재 전국 회원 1만2000명에 달하는 비영리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도서관친구들’은 보령, 정읍, 남원, 광주, 진주, 울산, 창녕 우포, 부산, 제주, 부천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4년부터 활동했으니 16년의 세월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독서시민운동가로 활동한 여 대표는 KBS, EBS, 교통방송 등을 통해 아이들의 독서와 토론 지도를 위한 학부모 강좌를 진행하거나 패널로 출연, 독서 토론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펴낸 책으로는 2001년 ‘1년을 쓰고 50년을 간직할 독서노트’를 시작으로 ‘책 읽는 교실’, ‘토론하는 교실’,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 ‘아이는 도서관에서 자란다’ 등이 있다.
‘날일달월’ 서울 광진구 구의강변로 57 서림빌딩 3층
파주시 광탄면 야트막한 산 앞, 3305㎡(약 1000평) 규모의 야외 스튜디오에 푸른색의 인사하는 조각품들이 서 있다. ‘그리팅맨’(Greeting Man, 인사하는 사람)과 ‘월드미러’(World Mirror, 세계의 거울)의 조각가 유영호(55) 씨가 작업 중인 작품들이다. 유 작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유영호 작가는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년에는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행사와 교류가 중단된 초여름 날 만난 유영호 작가는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가 제일 바빠야 하는 해였어요. 연초부터 해외에 작품 설치가 계획돼 있었는데 다 연기됐죠. 베트남에도 3월에 보내려고 포장까지 해놨는데 미뤄졌어요. 멕시코 메리다에서는 아직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8월 말까지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서 다음 주 중 컨테이너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6월에 프랑스 노르망디 쿠탕스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작품은 1월 말에 자리만 잡아놓은 상태다.
자비로 해외에 ‘그리팅맨’ 설치
유영호 작가가 그리팅맨 해외 설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미술계에서 작가가 성장해가는 데는 몇 가지 길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뮤지엄에서 작품 발표를 해서 이름을 알리고 경력을 쌓는 것이죠. 선진국들은 그런 루트가 확실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작가, 갤러리, 컬렉터가 어우러져 작품의 가치가 책정되는 케이스죠.”
그런데 한국은 대부분 국공립 뮤지엄이어서 작가들이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다음 국내에서 전시하는 방법을 선호한단다.
“국내의 조각작품 시장은 협소해요. 해외 극소수 작가의 작품만 거래되는 정도죠. 한국에서 조각가로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제 작품을 해외로 보내는 방식을 선택한 거죠.”
그가 자비를 들여 해외에 작품을 설치하는 이유는 기증 프로젝트가 아니면 힘들어서다. 어느 한 장소에 영구적으로 외국 작가의 작품을 설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 작가가 그리팅맨을 제작하게 된 동기도 궁금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깊이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큰절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시하자 그것을 본 네덜란드의 유명 작가 헨크 비스가 “그 행위가 인사가 맞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유럽 사람들은 인사를 잘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관계가 시작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죠.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관계의 출발은 인사로부터 시작된다고 봤어요. 우리의 큰절 문화가 유럽인들에게는 낯설었겠지만 인사에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는 헨크 비스의 질문에서 영감을 받았고 인사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됐다. 그리팅맨이 탄생한 배경이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상대방도 존중하는 자세는 고개를 15° 숙인 각도예요. 너무 낮추는 건 가식적으로 느껴지거나 비굴해 보일 수 있거든요. 정치적 행위로도 인식되죠. 그리팅맨의 15° 각도 인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온 결과예요.”
이 작품의 푸른색은 인종을 초월한 중립적인 색으로 전 인류를 의미하며, 고려청자의 빛깔을 띤 색은 작품 배경인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해외의 폭발적 반응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그리팅맨을 처음 세운 후, 지금까지 국내외 10여 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당시 우루과이에서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찬반토론을 할 정도로 반대가 극심했다.
“어느 곳이든 이질적인 것들에는 반감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그리팅맨이 설치된 후에는 시민들 반응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다음 해에 우루과이 관광청에서 만든 책자 앞 페이지에 그리팅맨이 소개될 정도였어요.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거죠. 작품이 설치된 자리는 우루과이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인데 현재 ‘대한민국 광장’으로 이름까지 바뀌었어요. 해외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 힘이 나요. 모두 자비로 설치하지만 문화 전파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얻고 있죠.”
설치비보다 문화적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일 게다. 해외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고, 유 작가는 그리팅맨이 전 세계 소통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설치되는 도시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천재지변을 당한 지역, 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곳, 그리고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들입니다.”
조만간 작품이 들어설 멕시코 메리다는 한국과도 관계가 있는 도시다. 1905년 ‘지상낙원’이라는 말만 믿고 멕시코 이민선을 탔던 조선인들이 애니깽(선인장의 일종)이라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지낸 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5~6세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수만 명이 그곳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했고요. ‘대한민국로’로 이름이 바뀐 거리의 원형 광장에 그리팅맨을 세울 겁니다.”
연천 옥녀봉의 화해 메시지
국내에서는 2007년 파주 헤이리에 처음 그리팅맨을 세운 후 분단의 현장에도 작품을 설치했다. 유 작가에게 제일 의미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2016년에 10m짜리 그리팅맨을 세운 연천 옥녀봉이에요. 북한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곳이죠. 남북 화해의 메시지를 담았어요.”
북녘을 향한 그리팅맨은 현재 연천의 랜드마크로 불리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북한에도 그리팅맨이 설치되어 남과 북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기를 바란다.
“옥녀봉은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 지역으로, 남북 간 DMZ에서 6km 정도 거리에 있어요. 그리팅맨을 남과 북에 설치한다는 것은, 70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이 작은 힘을 보탠다는 걸 의미하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평화의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는 아니라며 겸손해한다. 단지 분단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2014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 세운 월드미러는 영화 ‘어벤져스2’에서 소개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명 ‘미러맨’(Mirror Man)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붉은 사각 틀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는 거울이 없지만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우리는 결국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재작년에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월드미러를 설치했어요. ‘세상의 거울’이자,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도 있죠. 에콰도르는 적도에 위치한 나라여서 남반부와 북반부가 만난다는 의미도 됩니다.”
현재 터키 북서부의 항구도시 차낙칼레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장 길이의 다리를 만들고 있다. 내년에 다리가 완공되면 동양과 서양 두 세계의 만남을 상징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세울 예정이다. 그리팅맨은 형태가 둥글둥글한 반면 월드미러는 각과 면으로 이루어졌다. 누드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라에서는 각이나 면으로 그런 느낌을 순화한단다. 그래서인지 월드미러를 원하는 나라들이 꽤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이슬람 국가들을 위해 옷을 입힌 작품도 만들고 있다.
5년 안에 20개국에 그리팅맨 세우겠다
그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 여러 지역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공공미술은 보기에 편안하고, 내용도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젊은 시절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요.”
공공미술로 선정된 작품들의 수익금은 해외 프로젝트에 사용한다. 이러한 뜻에 공감하는 지인들이나 친목 단체가 후원도 한단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 그리팅맨에 관한 이야기다.
“5년 안에 20개 나라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이에요. 지금의 시공간에서 선택한 특별한 일이기도 하죠.”
그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다.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말년에는 은둔자로 살고 싶어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공감 등을 추구하는 그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니 아이러니하다. 젊은 시절에는 늘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요즘엔 글을 쓴다. 최근에는 그리팅맨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리팅맨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그가 직접 낭송한 자작시 ‘프란체스코’, ‘형과 누나’ 등은 미세한 울림을 준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기자가 출발할 때까지 배웅하며 그는 그리팅맨처럼 15° 인사를 했다.
‘실그림’이라는 한국문화의 깊이와 이채로움을 만나볼 수 있는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가 해외 문화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자리 잡은 아파트 1층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경탄을 금치 못하는 방문객이 대분분이다. 손인숙 작가의 아틀리에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손인숙 작가의 실그림 작품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지난 2016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6개월간 특별 전시됐던 적이 있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이 한 개인의 작품을 반년 동안 전시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다. 그러다보니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손인숙 작가는 우리 예술의 세계적 위상을 가다듬는 전략을 모색하려면 예술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참다운 의미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각 분야 문화예술인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더 큰 문화예술의 아트코어 역할을 해 나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된다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제 작업실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해외 국빈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 출판 제안차 방문
실그림 작품은 이후 니스에서도 전시돼 유럽 전역에서 극찬을 받았다. 이후 실그림 아틀리에 명성도 높아지면서 이제 예술 관련 문화 관련 명사와 해외 유수 박물관장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최근 손 작가는 프랑스 대형 출판사 갈리마르(Gallimard)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으며 지난 10월 25일부터 3일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장과 예술 담당 편집자 등 프로젝트 책임자가 실그림 아틀리에를 방문해 작품집 출판 협의를 심도 있게 나눴다.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서 만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장 캐롤라인 레베스크는 “2015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전시 작품을 봤을 때도 놀라웠지만 서울에서 직접 보니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손 작가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세계적으로 통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호평을 쏟아냈다.
1919년에 설립된 갈리마르는 20세기 프랑스 제일의 출판사로 알려져 있으며 그동안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카뮈를 비롯한 많은 유명 작가의 주요 작품을 출판했다.
캐롤라인 레베스크 편집장은 “작업실에서 본 손 작가의 작품 중 ‘수월관음도’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독특한 작품세계에 매료됐다. 갈리마르가 실그림 작품을 소개하는 일은 저희에게 엄청난 모험이 될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손 작가의 대형 작품을 저희 회사에서 출판하는 작품집을 통해 프랑스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그녀는 출판하고자 하는 손 작가의 작품집 콘셉트는 작가의 정신을 드러나게 할 것이고 작품의 앞보다는 뒤를 더 배려한 손 작가의 작품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질감을 밀도 있게 보여줄 수 있도록 디자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내년 가을쯤 출간을 목표로 일정을 체크하는 등 짧은 방문기간에 손인숙 작가와 의견을 다양하게 나누는 등 작가의 개인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점검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갈리마르 출판사 프로젝트 팀들은 작품집 판형, 페이지 분량, 표지 콘셉트, 내지 용지, 목차, 카테고리, 가격, 사진 구도등 전체적인 디자인 구성 체제를 세워놓고 있다.
실그림 작품을 통해 한국 문화에 취한 갈리마르 출판사 프로젝트 팀들은 손인숙 작가의 작품집이 프랑스에서 유일한 베스트셀러로 탄생할 거라는 설렘을 안고 돌아갔다. 내년에 출간할 프랑스어판·영어판 작품집은 ‘실그림의 거장’ 손인숙 작가가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美 조지아 귀넷카운티 방문단 영접
지난 10월 28일 강남구청(구청장 정순균)이 미국 조지아 주 귀넷카운티와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귀넷카운티(의장 살럿 나시) 방문단 12명을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에서 영접했다.
2009년 귀넷카운티와 자매결연 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강남구는 예원 실그림 문화재단(이사장 이기수)을 통해 강남구의 우수 행정을 홍보하는 기회를 특별히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월 29일에 작업장을 방문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디자이너는 “손 작가 작품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 환상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듯, 불타는 듯했다. 지난 수년간 보았던 아름다운 다른 작품들 중 단연 최고이며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감동을 전했다.
지난 10월 31일에는 소피 듀어르망 루이비통 이사가 손 작가와 인증 사진을 찍으며 “숨이 막히는 발견이었고 실을 이용하여 강한 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며 방문객으로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소피 루이비통 이사는 지난 10월 30일 서울 청담동서 열린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 ‘루이비통 메종 서울’ 오픈 행사 참석과 국내 주요 면세점과 백화점 방문을 위해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처럼 25권이 넘을 정도로 찬사와 극찬을 하며 기록을 남기고 간 방문객들의 방명록이 아틀리에의 보물이기도 하다.
최근 손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셀럽들만 봐도 실그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로르 슈왈츠 극동박물관장, 소피 마카리우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 이사장, 올리비에 갸벨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장, 다니엘 올리비에 전 프랑스 문화원장,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전 프랑스 장관 장 마르크 에호의 부인 브리지트 에호,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상원의원, 오렐리 사무엘 입생로랑 박물관 컬렉션 디렉터, 프랑스 건축가 장누벨 수석 디자이너, 프랑스·독일·일본·인도네시아·모로코 등지에서 온 대사와 그 부인들이 다녀갔다.
손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을 마주한 외빈들은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에 감탄을 연발했다고 한다. 실그림이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철학적으로 작업을 펼쳐온 손 작가의 아틀리에를 보고 해외 문화예술인들은 어떤 콜라보를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국민연금공단(이사장 김성주, 이하 ‘공단’)을 국민연금만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60이 되고부터 연금을 받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가 215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연금수급자 431만 명, 기금도 601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종합복지서비스 기관이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표는 ‘노후의 행복한 삶’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노후준비 서비스는 어쩌면 공단의 당연한 업무. 공단은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연금을 중심으로 신중장년과 시니어를 위한 노후준비서비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의 각 지역본부에서는 국민연금 관리에 덧붙여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한 “NPS 아카데미”를 2017년부터 개설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작년 7월 한 달여 간 ‘작가탄생프로젝트’ 진행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신중년 글쓰기 마라톤’, ‘1인 크리에이터 과정’,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은퇴자의 구미를 잡아끌었다. 적당한 놀이터가 없는 신중년들에게 문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즐겁고 보람과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중년을 위한 문화 플랫폼 특화 서비스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백수현 본부장(이하 북부본부)은 ‘노후준비 서비스가 공단의 소명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 사업의 기본은 연금관리입니다. 더 큰 틀에서 봤을 때 국민들의 안정된 미래 노후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부본부에서 ‘신중년 특화서비스’를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하는 참신한 노후준비 롤모델로 발전함에 미래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중단 없는 핵심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백 본부장은 덧붙였다. 공단 업무의 블루오션으로 나아가 글로벌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관리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광의의 사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체적 목적은 첫째, 역량 있는 시니어가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 기획으로 자발적 노후 준비 서비스 희망 고객을 발굴하여 사업 추진 효과를 높인다. 셋째, 국정과제의 하나인 ‘신중년 일자리 보장 및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신중년 노후준비 교육 특화 사업으로 일자리 및 커뮤니티 활동 지원 서비스를 연계 추진한다. 지금까지 ‘작가탄생프로젝트’와 ‘글쓰기 마라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쓰게 하는 작가탄생프로젝트
첫 번째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바로 작년 여름내 진행된 ‘작가탄생프로젝트’였다. 방법과 내용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의아해하거나 불가한 일로 단정 짓거나 반신반의했다. 일주일에 2회 강좌와 글쓰기 지도를 통하여 한 달 동안에 참석자 모두가 각자 1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 40명 중 37명이 그 기간 안에 집필을 마치고 37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달 안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로 신중년의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됐다. 그러한 성과를 안고 뒤이어 2018년도에 2기 작가탄생프로젝트를 출범시켜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43명이 참가하였고 그중 36명이 총 6,352페이지의 책 38권을 만들었다. 수강생 김도영 씨의 “은퇴 그리고 아름다운 삶”, 곽정숙 씨의 ”나를 위한 여행” 황선호 씨의 “황 첨지의 독일 유랑기” 등이 있다. 수강생들의 참가 소회에서 프로그램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강정석 씨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만난 “작가탄생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로 표현했다. 신영균 씨는 이렇게 소회의 글을 남겼다. “이 변화의 와중에 덤으로 성찰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이다.
다양한 신중년 문화 플랫폼 성공리에 안착
이러한 여세를 몰아 공단의 북부본부는 지난 5월 5일 일정으로 책 한 권을 쓰는 “글쓰기 마라톤 과정”을 새로 열었다. 2018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마라톤 거리와 같은 총 42.25시간에 걸쳐 글을 온종일 집중적으로 쓰게 했다. 33명이 참가하여 23권의 책을 완성됐다. 권수연 씨의 ‘마르지 않은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화수분’, 장의영 씨의 ‘더 곱게 살즈아’, 조왕래 씨의 ‘브라보마이라이프’, 김종억 씨의 ‘별 하나 꿈 하나’ 등이다. 시니어에 불가능은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북부본부는 여행을 콘텐츠로 하는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를 2017년 11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해 여행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보 여행가 황안나 씨가 함께해 ‘여행하고 일하며 나이 들기’가 주요 과제다. 매달 한 번 국내외 도보와 여행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동영상 시대에 발맞춰 1인 크리에이터을 위한 과정을 열기도 했다. 2018년 2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총 30시간 일정으로 23명이 참가하여 인기리에 진행됐다. 유튜브 채널 기획, 촬영, 편집 과정이었다. 동영상을 통한 새로운 후반생 활기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퇴자 1000만 명 시대다. 변화무쌍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에게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창출해갈 수 있는 신중년 문화 플랫폼 구축은 크게 기대되는 사업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희망의 빛으로 다가옴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소일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시니어에 적당한 놀이터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보람 있는 후반생을 꿈꾸는 시니어가 함께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난 아직 새내기 작가다. 작가가 된 계기는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퇴직 후 강사로 활동하는데, 지인으로부터 “유능한 강사가 되려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고, 자신의 책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조언이 깊이 와 닿았다. 곧바로 ‘작가 탄생 프로젝트’, 문화센터의 ‘작가도전’ 과정, ‘CEO 책 쓰기 포럼’ 등의 모임에 참가했다. 그렇게 글쓰기와 출판에 대해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해 벌써 여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첫 책의 제목은 ‘강소기업의 17가지 경영노하우’이며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에 출간된 ‘꼰대 될래, 오빠 될래’는 유난히 애정이 가는 책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크게 세 가지의 매력과 보람을 느꼈다.
첫째, 욕구를 충족시켜줬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와 책 출간이다.
둘째, 스스로를 재발견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통해 삶의 의미도 되찾을 수 있다.
셋째,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경로의존성’이란 일정한 경로에 한 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인 사실을 알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내게 글쓰기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세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줬다.
원고를 탈고할 때의 보람, 밤새워 다듬고 공들여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감동은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작가가 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힘들었던 점을 생각해보니 몇 가지가 떠오른다. 나는 무엇보다 엉덩이가 가벼워 고생했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래 앉아 있어야 한 문장이라도 건지니 그만큼 견뎌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엉덩이가 가벼운 나는 조금만 앉아 있어도 지루하고 허리도 불편했다. 내 인내심에 대해 여러 번 실망하기도 했다.
선배 작가들은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 분량의 글을 꼭 쓰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그런 습관이 전혀 몸에 배어 있지 않았으니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차라리 고역이고 고문이었다. 그래도 이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하면 작가는커녕 제2직업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채찍질을 했다.
‘글감’도 문제였다. 나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메모지가 없으면 식당의 냅킨이나 신문 쪼가리에 적어 호주머니에 넣어뒀다. 그러나 제때 노트나 컴퓨터에 옮겨 적지 못하고 그대로 옷을 세탁해 소중한 아이디어가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 후부터 메모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휴대하고 다닌다.
글쓰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단어로 적은 분량의 글부터 써보자. 작가가 되고 싶다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봐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이미지나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작가라면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것들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다.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가인 엄정순(57) 디렉터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이 화두였다. 보이는 것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답답함. 엄 디렉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진실과 본질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눈을 쓰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탐험으로 이어졌고 ‘우리들의 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시각예술을 하는 작가로서 안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과의 미술 작업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눈과 보이지 않는 눈이 만나서 다르게 보는 눈 ‘Another Way of Seeing’이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했어요.”
엄정순 디렉터가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지는 벌써 20년이 됐다.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공유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는 눈, 보이지 않는 눈, 모두가 우리들의 눈이란 뜻이 담겨 있다. 미술에서 가장 멀리 있었던 시각장애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각예술가들이 함께 미술 작업을 하고 서로 다른 눈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시각장애인들이 미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중심이 맹학교 미술 수업이다. 예술가들이 직접 맹학교로 찾아가 시각장애 학생들과 창의적인 융·복합 수업을 하는 것이다. 드로잉, 조소 등 미술 수업 외에도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사진 수업, 요리연구가와 함께하는 미각 수업, 조향사와 함께하는 후각 수업 등 학생들과 함께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예술적 시도를 했다. 그리고 예술적 역량을 가진 아이들을 발굴해 미술대학에도 보내고, 작가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로 시각장애인 예술가 성장도 지원하고 있다. 미술 수업에서 작가 데뷔까지 시각장애인들에게 열려 있는 미술 교육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와 미술을 주제로 한 전문 공간인 ‘우리들의 눈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보와 도움을 주는 복지 차원만이 아닌 예술적 접근을 통해 서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전시, 교육, 출판, 워크숍 등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미지 학습을 위한 점자촉각아트북도 제작한다.
“우리 주변에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이미지를 담고 있는 수많은 도서들이 있는데 시각장애 학생들은 그런 세계에서 너무 멀리 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도 소통을 위해 공동으로 쓰는 이미지를 배우고 즐기는 다양한 통로가 필요해요.”
‘우리들의 눈’ 내의 보르헤스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수작업 샘플북을 제작해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미술 표현 중 시각은 작은 일부
‘우리들의 눈’이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시각장애학교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는 엉뚱한 발상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있었다.
“생각의 차이는 ‘미술’이란 단어에서 나왔어요. 미술과 그림, 이미지는 보는 것과 연결되는 시각예술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어서 시각장애인은 못 보니까 시각적 표현이 불가능하고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거죠. 저는 미술, 즉 이미지의 시작은 상상력과 오감의 산물이기 때문에 시각은 작은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엄 디렉터에게 미술은 시력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였던 것. 여전히 미술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술은 잠과 사랑처럼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킨 후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을 표현하면서 성취감, 자존감, 인간으로서의 품위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처음에 ‘너를 표현해봐라’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보여줘라’ 하고 주문했을 때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어려워했고 제대로 못했어요. 미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동떨어져 있던 시각장애인들은 미술은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또 콤플렉스를 가장 많이 느끼게 하는 과목이었던 거죠.”
그런데 시도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안 된다’고 하고 자신도 ‘못할 거야’라고 했던 무엇을 뛰어넘는 경험이 되었다.
“저는 그들이 느낀 것을 일본의 한 시각장애인이 말했던 ‘미술 수업은 인간으로 사는 품위를 알게 해주었다’는 고백으로 알 수 있었어요. 미술은 논리와 감성의 조화를 배우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게 하는 힘을 갖게 해줘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미술의 의미를 시각장애인들의 경험을 통해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미술가들과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이 다른 것처럼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 작업을 하며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눈빛이 많이 생겼어요. 예술가로 또는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볼 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며 놀랄 때가 많아요. 일반 예술가들과 달리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매우 적극적입니다.”
사물에 대한 선입견이 적고 촉각, 청각 등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접하다 보니 보이는 대로 이해하는 비장애인들보다 형태와 표현 면에서 창의적인 작품이 많다.
“저희는 창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돼요. 맹학교 학생들이 만든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작품들도 그중 하나인데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전형적인 코끼리의 모습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코끼리스러움’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변화를 몰고 온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시각장애인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코끼리를 만지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창의적으로 풀어보자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2009년 6월, 33명의 인천혜광학교 학생들과 15명의 티칭 아티스트들이 인천에서 광주까지 311.5km 첫 번째 코끼리 로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네 번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12년 7월에는 청주맹학교 학생 8명과 관계자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기 위해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비유잖아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고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인간을 보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한다’고 하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뜬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메타포로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는 비유입니다.”
엄 디렉터는 이 메타포로 아트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경험하게 하면서 한눈에 파악이 안 되는 거대한 무엇에 다가가는 상상력과 시각장애 학생들의 부족한 스케일 감각에 도전해보는 한편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창의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이 프로젝트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참여했던 맹학교 학생들이 훌쩍 성숙해졌고 ‘우리들의 눈’ 활동도 각종 방송과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2009년 시작된 프로젝트가 2010년 7월 TEDxSeoul에서 발표됐고 이 발표를 계기로 2013년 EBS 다큐멘터리 가 방송됐다(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TV부문 다큐상과 한국피디협회 PD상 수상). 이어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지학사) ‘작문과 화법’에 실리기도 했다. 동물원, 동물보호단체들과의 네트워크도 생겼고, 2015년 ‘코끼리 주름 펼치다 展’으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블루메미술관(파주 헤이리) 순회 전시도 했다. 미술 교육과 함께 진행되는 코끼리투어 프로젝트는 12개 맹학교 순회 투어를 계획중이다.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
비영리 단체인 ‘우리들의 눈’은 소중한 가치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덕에 운영되고 있다. 기업 후원을 중심으로 매월 소정의 금액을 후원하는 사람들, 매년 바자회를 열어 행사 수익금을 기부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20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어려움이 생겼다. 운영비 지원이 줄어들어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도 잠정 중단 중에 있다. ‘우리들의 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북촌에 갤러리를 열었는데 임대료 때문에 고민이다.
“맹학교에서 진행되는 미술 교육 강사비, 재료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이 개안수술을 하거나 하면 봉사나 후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만 시각장애인에 대한 미술 교육은 제대로 짐작되지 않아서 그런지 후원이 잘 안 되는 편이죠. 갤러리 장소 또는 후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기업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내외적으로도 선례가 드문, 시각장애인과 미술 작업을 하는 ‘우리들의 눈’은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생활 정보를 주는 복지적 관점이 아닌 예술적 협업으로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어 오해도 많이 샀고 이해받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착한 마음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수많은 편견과 척박한 물리적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예술적 해법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런 시도에 즐겁게 사심 없이 동참하는 이들을 만날 때 엄청 신이 나죠.”
‘우리들의 눈’이 창설된 지 20년째인 2016년, 그간의 활동 자료들을 정리한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 자료집을 기점으로 20년간 펼쳐졌던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이 대중들과 만나고 우리 사회 속에서 쓸모 있는 문화 예술이 소비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들의 눈’은 올해 두 권의 책 출판과 아트상품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17대 고려대 총장, 사립대총장협의회장,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중국연변과학기술대·러시아모스크바국립대·미국조지워싱턴대 등 국내외 유수 대학의 명예교수 및 석좌교수를 역임한 이기수(李基秀·71)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의 경력은 법학자로서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성공 사례들의 목록이다. 그런 그가 법학이 아닌 예술계의,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의 이사장이 된다고 했을 때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소 돌출적인 행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그 선택이야말로 확고한 기준을 갖고 이뤄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사장이 예술을 접하는 시니어로서의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평생 학자로 살면서 몸에 밴 버릇이자 의지일 것이다. 이기수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은 요즘도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 말,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를 신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유한합니다.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살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체험하는 거니까 책을 읽는 만큼 내 삶이 더 윤택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죠. 나는 법학을 공부했으니 법학에 대해선 조금 알지만, 그 밖의 경제와 인류, 문학과 예술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모든 것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가져와서 내 삶에 녹여 삶을 좀 더 향상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예술의 후원자가 되다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이사장은 그동안의 삶을 법 연구로 세운 대표적인 법학자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배영 이화여대 총장께서 가까이 지낸 사람들을 예원실그림문화재단에 초청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손인숙(예원실그림문화재단 관장) 작가가 만든 를 보고 ‘어떻게 저런 작품을 직접 만들 수가 있었을까. 저건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싶었죠. 그런 걸 오천 점 정도 만들었다니까, 신의 경지여야 할 수 있는 거로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작품에 매료되어 있는데 손 작가가 재단을 만들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가 갖고 있던 돈 삼십만원을 후원금으로 냈어요.”
이 이사장은 손 작가의 첫 후원자였다. 재단 통장에 첫 번째로 후원금을 넣은 첫 후원자로서 이 이사장은 손 작가의 요청으로 이사장까지 맡게 됐다.
“한국의 예술이 파리를 침략했다”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작품 전시와 공연이 진행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부터 12월 말까지 130개의 작품을 전시 및 공연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파리에서 3개의 작품 전시 및 공연이 이뤄졌는데 각각 종묘제례, 공예 작품, 그리고 손 작가의 실그림 작품이다.
실그림 작품 전시는 우선 프랑스 국립박물관인 기메박물관에서 했고 이어서 니스 동양박물관에서 콜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8월까지 3개월 동안 8만 명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르몽드 지는 ‘한국의 예술이 파리를 침략했다’라는 카피를 내놓으며 두 번이나 지면에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예원실그림문화예술로 한국 예술의 위대함을 유럽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흡족해했다.
“지난 9월에는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과 만났어요. 이분이 여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을 가서 프랑스 부모님 밑에서 프랑스 사람으로 자랐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으로 소개됐던 사실이죠. 그런데 손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서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다는 걸 자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원실그림문화재단에 와서 작품을 보고는 계속 감탄하시더군요. 전통과 모던의 조화라고요.”
이사장이 추구하는 ‘헌법에 입각한 예술론’
이사장 역할까지 하면서 실그림을 알리는 데 열정적으로 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는 할 수 없고, 예술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총장을 끝내고 난 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결론은 나머지 인생을 대한민국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바치겠다는 거였죠.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까 또 고민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만든 헌법 소책자가 눈에 띄었어요. 헌법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근거를 헌법에서 찾았고, 그 텍스트에 입각해 자신을 설명했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가 성립되려면 주권, 국민, 영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입니다. 이는 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죠. 그리고 해야 할 게 9조입니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제 남은 인생을 대한민국 헌법 가치 제고와 통일, 문화가치 창달에 투신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예원의 작품들을 보고 내 나머지 인생을 위한 이사장직을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던 거죠.”
실그림에 담긴 민족문화 창달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이라는 빨간색 소형 책자. 그는 기자에게 헌법 제9조와 69조를 읽어보라고 했다.
“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고, 69조는 대통령 취임 선서문인데, 여기에도 대통령으로서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라고 적혀 있지요.”
현재에 만족하는 삶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 중
이 이사장은 1945년생이다. 이제 70이 넘어가는 시니어로서 젊을 때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정년을 했기 때문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웃음). 명예교수로서의 생활이 참 좋습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시간이 있어 국선도를 배우기 시작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주가였는데 이제는 반주 정도로 줄였어요,”
이 이사장은 최근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쓰면 손녀가 정리해주고 있다. 이 이사장으로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이고, 손녀에게는 할아버지의 삶을 체험하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쓰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가 이렇게 잘 기억이 나네’ 하고 마누라한테 얘기하니까 마누라가 ‘당신이 술을 안 먹으니 머리가 맑아져서 그런 거잖아’라고 하더라고(웃음).”
이 이사장의 경력은 대부분의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 자신은 잘살아왔다고 생각할까?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둘 다 시집 장가 잘 갔어요. 친손녀가 대학 3학년, 친손자가 대학 1학년, 외손주 중에 가장 큰 녀석이 대학 1학년이고 둘째가 고3, 셋째가 중3이죠. 제 처가 오십 될 적에 가족들 전부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이번에 칠순잔치 때 다시 모여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찍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 또 있었다. 올해 3월 1일, 그의 제자들 중에서 마흔 번째 교수가 탄생한 것이다.
“학문을 하는 학자 입장에서 제자가 마흔 명이나 4년제 대학 교수로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확실히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총장 재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그때 사진보다 지금 사진이(웃음) 다들 좋다고 그래요. 그때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시간에 쫓겼고 저녁에도 두세 군데 들러 인사해야 하고 그랬으니까. 지금은 자유를 느껴요.”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사장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대답은 천생 학자다웠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로 돌아가고 싶죠. 공부할 때가 가장 좋았어요. 가장 행복했고. 논문만 쓰면 되니까(웃음).”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과 함께 진행하는 작업이 또 있다. 30년 동안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 중 조교가 스물일곱 명, 교수가 마흔 명이 나왔다. 그 제자들이 그와의 인연을 원고로 만들고 있다. 이제 제자들과의 인연을 정리한 원고는 책이 되어 그의 삶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회고하는 증거로 남게 될 것이다.
“2010년 12월 30일은 제가 만으로 예순다섯 살 되던 날이었어요. 정년퇴임 논문집을 만들어 롯데호텔에서 기증식을 가졌는데 그때 말했어요. 내 인생 20년은 준비기간이었고, 45년은 고대 법대, 독일 박사, 회사법·공정거래법·지식재산권법·국제거래법 갖고 먹고 살았는데 예순다섯 살부터 45년간은 다른 나라들에서의 인연과 대한민국의 가치를 제고하면서 살겠다고. 그럼 110세예요. 그런데 왜 하필 110세냐. 고려대가 1905년에 만들어졌는데 2055년이 고려대 150주년이에요. 그해가 마침 제가 110세 되는 해고. 그래서 고려대 150주년이 되는 5월 5일에 17대 고대 총장을 한 사람으로서 축사하는 게 마지막 내 꿈이에요.”
그는 호탕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사실 이 이사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가장 쓰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내용은 그의 섬세한 친화력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 당일 약속시간보다 좀 늦었다. 자식뻘 되는 기자인데 늦어도 괜찮다며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웃었다. 며느리에게도 이름을 불러주는 시아버지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110세까지 발굴에 나설 민족문화의 정수로서 마르지 않은 깊은 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깊은 연구와 후덕한 인품으로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내고 학계에서 우뚝 섰던 그가 요즘 부단히 자신에 관한 기록물을 만들면서 스스로 정한 가치에 열렬히 투신하고 있다. 이런 이사장은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 대답은 단순했으나 여운이 길었다.
“저는 전주 이씨 경남 하동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산 사람이다’라고 기억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