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간선택제의 일자리가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산업은 어디일까?
현대경제연구소가 통계청 데이터를 추산한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 기준 182만6000개 시간제 일자리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은 도·소매(17.5%)로 꼽혔다. 2위는 음식숙박(15.5%)이 차지했다. 이어 교육(13.9%), 보건복지(11.5%), 공공행정(9.1%), 건설(4.4%), 제조(4.0%) 순으로 나타났다.
먼저 1, 2위를 차지한 두 업종은 대부분 서비스, 판매, 관리 등 단순노무 형태로, 자영업자가 많다는 특징을 가진다. 교육, 보건복지, 공공행정 등은 정부의 행정력이 크게 미치면서 비중이 높아졌다. 반면 부가가치가 높거나 대규모 사업체가 주를 이루는 제조, 건설 부문은 저조한 상태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시간제 일자리가 저부가가치 사업에 집중된 것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기업과 고숙련 근로자들이 시간제 시장에 흡수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에 경영컨설팅 등 생산성 향상 대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임금 수준 현실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2006년과 비교해 연평균 6.0%(9500원→1만3400원) 증가한 반면, 시간제 근로자는 2.4%(5900원→6800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시간제 임금 증가율이 정규직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다.
특히 국내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중구조화가 고착됐다는 점이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배경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연구원은 “5년 내에 93만개에 달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무리하다 보면, 의도와는 달리 나쁜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즉, 파견, 용역, 특수고용종사자, 일일근로자 등 규제가 약한 비전형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현재 여성을 위한 일-육아 양립형뿐만 아니라 학생을 위한 일-학원 양립형, 남성을 위한 장시간 직무 분할형, 베이비부머를 위한 사회참여형, 전문직 근로자를 위한 핵심업무형 등 다양한 유형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직무 형태 다변화를 제시했다.
끝으로 이 연구원은 정부가 2010년부터 시행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을 통한 지원금 등이 더 확대돼 시간제 도입 기업의 부담을 완화시키도록 다양한 인센티브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지난해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고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고용이 안정되고 전일제와 비례한 임금·복리후생ㆍ사회보험이 보장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야심차게 제시한 시간선택제에 대한 경영계와 노동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게다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정부측 입장을 반박하는 노동계뿐 아니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경영계조차도 비용 부담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감’과 ‘부담’ 공존 = 재계는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에 대해 일ㆍ가정 양립문화 확산과 시간제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이 함께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또 실업률로 노동시장을 평가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고용률로 평가하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뤘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는 일자리의 양적 확대를 넘어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을 통해 중산층 회복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시의 적절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해 기업들의 공감도는 높지만 이를 실행하거나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기업 비율은 상대적(20% 미만)으로 낮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3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일·가정 양립 관련 기업의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44.6%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의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응답했지만 채용을 실천했거나 채용 예정인 기업은 6.8%에 그쳤다. 또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기업도 10.7%에 불과했다.
시간선택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부정적으로 검토 또는 결정을 보류한 기업(33.8%)은 결정적인 이유로 ‘적합직무 부족’과 ‘업무연속성 단절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을 꼽았다. 물론 인건비 부담 역시 이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경영계 관계자는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시간제를 적극 수용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로, 이 같은 상황에서는 인건비 부담만 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 경총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확산을 위해 시간제에 적합한 직무 개발이 시급하며 동시에 생산성 저하에 대한 기업의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며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가 생산성 격차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동일 수준의 높은 임금 지급이 강제될 경우 특히 중소기업에서 더욱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질의 일자리 아니다… 우려도 커 = 노동계는 정부의 시간선택제에 대해 “용돈 벌이용 알바에 불과하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대비 50%가 채 안되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평균 근속기간도 비정규직보다 낮아지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결국 비정규직을 양산하라고 사용자들을 부추기는 데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라며 “진정 노동자, 특히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면 정부가 먼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보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해 경력이 단절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저임금이 강요되는 시간제 일자리의 열악함을 정부가 거짓 홍보로 은폐하려 하고 있다”며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와 청년층에게 ‘실업이냐, 시간제냐’를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지속적 정규직 채용을 통해 민간을 선도하겠다고 공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근로 조건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ㆍ확대하고 있다”며 “부천 방문간호사 사례에서도 보듯이 시간제 일자리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시간제근로의 확산을 위해서는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문제 해결은 물론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한 고용 유인을 제공하는 투트랙(two-track) 접근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노동시장 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인력 활용의 유연성 제고가 가장 시급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