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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외부에서도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집이 최첨단 전자기기처럼 진화했지만, 여전히 망치로 못을 박는 기술 없이는 건축이 완성될 수 없다. 지금도 건축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행위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집을 짓기 위해 이어온 기술의 연장선에 있다.
- ‘이런 집에 살고 싶다’, 98p
대한민국 곳곳의 집을 탐구해온 김호민 건축가. 그는 한국 주택의 유전자(DNA) 속에서 ‘좋은 집’의 기준을 찾는다. 집의 가치는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어지는 삶에 있다. 결국 집의 품격은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말한다.

“과연 어떤 집에 살면 행복할까?”
EBS ‘건축탐구-집’ 진행자로 대중에게 친숙한 김호민 건축가는 3대째 건축가 집안에서 자라 영국건축협회 건축학교를 졸업한 건축 전문가다. 방송 5년째, 전국의 특별한 집 260여 채를 찾아다니며 수많은 삶의 현장을 마주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좋은 집’이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삶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첫 건축 교양서 ‘이런 집에 살고 싶다’를 펴낸 그는 “좋은 집은 이것이다”라고 단정해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오랜 탐구 끝에 정리한 여덟 가지 ‘한국 주택의 DNA’를 제시한다. 그 안에는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가족 문화, 사회적 환경이 녹아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이어온 주거의 흔적 속에 미래의 집을 향한 단서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책은 과거 ‘불란서 주택’에서 오늘날 ‘아파트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주거의 변화를 조망한다. 거실과 안방, 부엌과 다락방의 변천사를 따라가며 집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응축된 문화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토지와 전세 제도, 층간소음 등 집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짚는다.
결국 이 책은 오늘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주거의 지혜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김호민 건축가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집, 그것이 내가 찾아가려는 ‘좋은 집’의 기준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런 집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주택의 유전자’를 탐구하게 된 계기와, 집을 바라보는 건축가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집이란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축적해온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간’이라는 개념 안에는 그 사회의 성향과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사는 집의 특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어떤 집에서 가장 행복한지 고민하며 그 특성을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집을 통해 우리가 선호해온 공간의 이유를 풀어내고, 앞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의 집’을 모색하는 작업입니다. 제목 역시 그 방향을 담았습니다.
건축가로서 변치 않는 원칙이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집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집은 환경과 삶의 방식에 맞게 변해갑니다. 저는 이를 ‘자생적인 문화’라고 부릅니다.
건축가는 공간을 설계하지만, 완성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저는 디자인이 완결된 공간이 아니라, 삶이 스며들며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집을 지향합니다. 그것이 제가 지켜온 원칙이자 신념입니다.
책에서 시니어 독자들이 특히 공감할 지점은 어디일까요?
저 역시 1970년대생으로 이제는 시니어 세대에 속합니다. 제 또래는 아마 가장 다양한 집을 경험한 세대일 겁니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그리고 아파트가 주거의 중심이 되는 과정을 모두 겪었으니까요.
과거에는 집에서 안방이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부엌과 식당이 중심이 됩니다. 이렇게 변화의 흐름을 읽어보는 것 자체가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이자 공감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 주택의 DNA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거 문화 역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구들 같은 전통 요소를 낡은 문화로 여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방 하나쯤은 구들방으로 꾸미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죠.
새로운 감각적 공간으로 부상한 서울의 북촌이나 익선동의 도시형 한옥 역시 전통을 그대로 보존한 결과라기보다, 도시환경에 맞게 변형되고 진화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집은 어떤 방향으로 달라질까요?
정확한 예측은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 주거 모습 안에 이미 미래의 단서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아쉬움은 물론 있지만, 아파트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 주거 형태가 된 현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는 서구에서 도입됐지만 이미 ‘한국형 아파트’로 진화했습니다. 앞으로도 주요한 주거 유형으로 남겠지만, 그 안에 단독주택의 요소, 즉 한국 주택의 DNA가 더 스며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5일은 도시에, 2일은 시골에서 생활하는 ‘5도 2촌’ 같은 이중 거주 흐름도 예상해봅니다.
책 출간과 맞물려 ‘로망의 집’이 완공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공간인가요?
제주 종달리에 있는 어머니의 땅에 집을 지었습니다. 바다 풍경에 매료돼 설계를 시작했지만, 자연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바람이 강한 지역이라 환경에 맞는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원형 구조를 택했습니다. 제주 초가에서 착안해 낮은 지붕과 담장이 바람을 흘려보내도록 했죠.
집을 지으며 또 하나 배운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집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더군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일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삶이 완성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와 제주를 오가며 삶의 균형을 찾는 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아파트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변화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대부분의 가족이 1~2인 가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2050년쯤에는 지금의 25평형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사회가 변하듯 집의 형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 작은 안방, 북향 침실, 서향 거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대신 집의 중심은 거실에서 식당과 부엌으로 옮겨가고 있다.
- ‘이런 집에 살고 싶다’, 280p
노후에 살기 좋은 집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보시나요?
많은 분이 ‘완벽한 집’을 떠올리지만, 저는 오히려 약간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완벽하지 않듯이, 집 역시 어느 정도 불편함을 허용해야 합니다. 작은 정원처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공간은 삶에 활력을 줍니다.
집이 지나치게 편리해질수록 가족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기도 합니다. 예전 집은 불편했지만 서로를 필요로 했습니다. 노후의 집은 완벽함보다 관계를 이어주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노후 주거를 바꾸려 할 때, 공간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리모델링·이사 등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터를 찾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래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어디인지 충분히 탐색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노후에 살고 싶은 지역이 있다면, 단기간이라도 먼저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전세든 월세든 실제로 머물러보며 그 지역의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의 방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시니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집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드웨어’일 뿐이고, 그 안을 채우는 사람과 관계, 일과 일상이 ‘소프트웨어’입니다.
미래의 집은 과거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이어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관계가 살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 당연함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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