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50대, 늦어도 60대에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달려왔던 모든 목표에 대한 결실을 본다. (중략)
논리적으로는 성취감이 있어야 하지만 심리적인 공허함이 들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럴 때 매주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축제의 장에 주인공으로 참여한다면 어떨까.
- 편은지, KBS PD
(《덕후가 브랜드에게》 중)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디자인 유영현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연예인이 밥 먹여주냐?”
팬심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맞는 말이다.
팬 활동이 밥을 먹여주거나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이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밥을 먹여주지 않아서’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 ‘덕후가 브랜드에게’ 187p
팬(Fan).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편은지 PD는 ‘연예인이 밥 먹여주냐’는 질타를 한 번쯤 들어봤을 이들의 극성스런 호기심을 수면 위로 올렸다. 예능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에 이은 신간 ‘덕후가 브랜드에게’는 수치로 설명하기 어려운 팬덤 경제를 파헤친다.
취향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시대. “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져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한다”며 무시당하던 빠순이‧빠돌이들은 이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로 존중받고, 강한 소비력으로 시장 트렌드를 주도한다. 관심 분야에 돈이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관련 정보와 후기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입문시킨다.
그러나 합리적인 기준을 벗어나면 불매 운동을 감행해 기업의 대형 프로젝트를 뒤집기도 한다. 팬들은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홍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팬덤의 가치가 곧 기업의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수의 기업들은 소비자가 주력 제품의 팬이 되길 바라며, 직원 역시 단순한 직원을 넘어 팬으로 만들기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덕후가 브랜드에게’는 주변 산업이나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는 팬덤 문화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분석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팬심을 겨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담은 책이다. 가수 겸 방송인 은지원의 팬클럽 회장 출신이자,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덕질로 행복한 삶을 지속하는 ‘주접단’ 집중 조명 예능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을 제작한 PD로서 얻은 통찰력과 내공을 한데 풀어냈다. 장기적인 불경기와 취향의 다각화라는 어려움을 뚫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픈 기획자나 경영인, ‘덕질’에 빠진 자녀·부모와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가족이 참고할 만하다.
대가를 바라는 사랑은 피곤하다
‘덕후가 브랜드에게’ 저자이자, 현재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메인 연출을 맡은 편은지 PD는 오래전부터 팬이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올 거라 짐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언젠가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접이 풍년’ 편성 직전에는 ‘그냥 팬도 보기 싫은데, 나이 많은 팬들이 주접떠는 걸 왜 봐야 하나. 당장 중단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결국 2022년 선보인 신규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파일럿*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극성팬’이었어요. 가족끼리 외식하러 가선 갈비 굽는 아빠 맞은편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오빠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적도 있죠. 아빠가 ‘벌써 저러면 커서 뭐가 되겠냐’고 혀를 끌끌 차셨으니, 완전 ‘불량 초딩’이었네요. 덕질에 진심이라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팬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해요. 팬의 팬이랄까요?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책까지 출간하게 돼 너무 뿌듯합니다.”
편은지 PD는 ‘주접이 풍년’을 통해 가수 남진, 송가인, 임영웅, 박서진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신화, 하이라이트, 강사 김미경, 축구선수 손흥민 등 다양한 스타의 팬들을 마주했다. 각자 특성과 문화가 조금씩 다르나,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지녔다. 팬들은 ‘최애(가장 아끼는 대상)가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먹을 힘을 준다’고 말한다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고도 합당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스타와 팬의 관계는 특별해요.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은 공연 전 서로 모여 응원법과 군무를 연습해요. 큰 가마솥에 족발을 삶거나 어묵탕을 끓여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가수를 홍보하고요. 누가 지시하거나 보상을 주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스타를 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죠. 팬 카페 내 악성 댓글 관련 법적 조치, 운영진 자문을 하는 변호사 팬은 수임료를 전혀 받지 않는대요.”
빠르면 50대, 늦어도 60대에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달려왔던 모든 목표에 대한 결실을 본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회사에서도 퇴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나의 모든 역할과 직급이 하루아침에 종료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성취감이 있어야 하지만 심리적인 공허함이 들 수 밖에 없는 시기다.
이럴 때 매주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축제의 장에 주인공으로 참여한다면 어떨까.
- ‘덕후가 브랜드에게’ 236p
으른(어른) 팬덤의 원동력
‘엄마는 왜 임영웅 편의점 알바했던 거 짠해하냐, 나도 했었잖아.’
‘나 3년 했잖아.’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였던 게시글의 제목과 내용이다. 억울한 자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전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외면(?)하면서 ‘우리 영웅이’에게 심취하게 된 걸까? 편은지 PD는 ‘스토리가 가진 힘’이 그 원천이라고 말한다.
임영웅은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세상의 영웅이 돼라’며 비범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사고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는 긴 무명 시절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도 군고구마를 팔며 꿈을 이어왔다. 노래를 향한 열정과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무대로 풀어냈고, 이에 마음이 동한 팬들은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내 모바일 투표에 참여해 임영웅이 최종 1위가 될 수 있게 도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시판 고추장은 큰 죄책감 없이 버릴 수 있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비법으로 외할머니가 직접 만든 고추장은 골마지가 껴도 아까워하죠. 겉 부분만 살짝 걷어내고 먹으면 맛은 변함이 없다고 느끼면서요. 감정과 정서를 서로 나눈 팬과 스타는 오죽할까요.”
사실 ‘엄마 팬’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남진, 나훈아 등의 오빠 부대가 있었고,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영웅시대’의 임영웅은 좀 더 특별하다. ‘그땐 그랬었지’ 추억하게 하는 과거의 스타와 달리, 당장이라도 20대 청춘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한단다.
“KBS2 ‘불후의 명곡’ 녹화장에서 MC 신동엽 씨가 객석을 찾은 어머니 팬들에게 자주 하는 농담이 있어요. ‘아들로서 좋아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죠? 지금 눈빛들이 아주 음흉해요. 전 딱 보면 압니다’라고요. 그러면 다들 자지러지듯 웃죠. 임영웅 씨도 마찬가지로 중장년 팬들을 순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화법으로 친근함을 더하고, ‘젊게 살고 싶은 분은 저한테 오빠라고 하셔라’라며 너스레를 떠는 매력 덕이 아닐까요.”
‘팬덤=극성’ 공식은 틀렸다
팬들은 스타에게 애끓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그러나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않으며, 진정한 응원과 지지로 아티스트의 가치가 성장하길 바란다. ‘주접이 풍년’에서 가수 박서진과 그의 팬클럽 ‘닻별’을 녹화할 때 일이다. 팬들은 박서진이 어린 시절 상처로 상대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며 사진 찍기를 한사코 사양했다. 전국 각지에서 노란 단체복을 입고 달려왔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가수가 불편해할까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채 그를 보낸 뒤 쓰레기를 줍고, 제작진에게 ‘우리 가수의 고생을 알아주고 주인공으로 불러줘 고맙다’며 간식까지 건넸다고. 이렇듯 팬들은 저마다 성향이 있어 ‘무조건 열광할 거야’라고 성급하게 판단해선 안 된다. 즉각적인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 않고, 고차원의 감성적인 배려를 일삼기도 해서다.
“스타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팬들 또한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요. 노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를 둔 한 스태프가 ‘우리 엄마도 덕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처음엔 연예인 다 부질없다며 팬 활동에 부정적이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행복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본인 어머니 또래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고요. 취미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또래 집단과의 만남은 여생의 원동력이 돼요. 팬 카페 가입은 계기일 뿐이죠. 팬이라는 건 그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제가 기획하는 콘텐츠로 팬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해요.”
지난해 ‘주접에 나이 제한이 있냐?’고 되묻는 발칙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 이름도 방정맞은 ‘주접이 풍년’이다. 시니어 팬덤을 ‘주접단’으로 명명한 프로그램은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며 아예 ‘팬심 자랑대회’를 열였다. 숨어 있는 사연을 듣고 덕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 토크 버라이어티는 스물세 번의 주접 이후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주접이 풍년’ 연출자를 만나 목격담을 들었다.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한다고 했다. KBS라는 이름이 부담스럽고,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작가들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르고 질문을 해대는 것도 낯설어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고 말이다. 이때 편은지 ‘주접이 풍년’ 메인 PD가 분위기를 깨는 마법의 주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OOO(좋아하는 스타) 좋아하시죠?”
“응원하는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면 돌변해요. ‘OOO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야’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낯선 팬덤 문화에 반문이라도 하면 ‘PD가 그런 것도 몰라요?’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시죠. 나중엔 ‘아, 지금 투표할 시간이 돼서 잠깐만요!’ 하면서 팬덤 활동까지 다 하세요.(웃음)”
‘주접단’의 세 가지 특징
시니어 팬이라고 하면 자녀의 ‘효도 티케팅’으로 어렵게 콘서트 한 번 가고, 공연이 끝나면 밖에서 자녀와 만나 “어땠어? 재밌었어? 그렇게 좋아? 하하하” 하며 행복하게 귀가하는 풍경을 그리기 쉽지만, 편은지 PD가 만난 팬들은 사실 그 이상이다. 전국에서 선별해 모집한 ‘주접단’은 그야말로 시니어 팬덤의 핵심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구매력이다. “규모가 달라요. 운영하는 가게를 덕질하는 아티스트로 도배하는 건 흔하죠.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으세요.”
‘주접단’은 포용의 폭도 남다르다. 일부 K팝 팬덤의 경우 스타의 잘못이나 실수에 보이콧을 선언하고 응원봉을 끄는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시니어 팬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정말 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아요. 아들·딸이 실수했다고 내치지 않는 것처럼 시니어 팬덤은 조금 더 품으시죠. 한번은 제작진이 한 스타의 논란을 물은 적이 있는데 바로 날을 세우시더라고요. 강하게 보호하려는 마음을 느꼈어요.”
세 번째 특징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바로 과몰입이다. ‘덕후 마음은 덕후가 안다’고 외치는 자칭 ‘빠순이’ 편은지 PD지만 시니어 팬덤은 몰입도가 때론 과할 정도라고 한다. 그가 들려준 두 사연은 이렇다.
“김호중 씨 팬인 자매가 있어요. ‘김호중 떴다’ 하면 두 분이 보라색(김호중 팬덤 상징색) 옷을 입고 밤이면 밤마다 나가시죠. 김호중 씨 관계되는 일이면 다 가는 거예요. 김호중 씨와 인연 있는 PD님 모친상에도 가셨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동생 남편분께서 너무 화가 나서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처형께도 ‘손절’ 문자를 보낸 거죠. ‘이제 우리 집에 오지 마소’라고요. 근데 나중에 자매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대요. ‘김호중 생각하니까 없던 힘도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또 한 분은 울면서 이야기하셨어요. 아버님이 위독해서 입원을 하셨는데, 그 와중에 ‘미스터트롯’ 문자 투표하는 날이라 울면서 아버님 휴대폰으로 투표를 하셨다고요.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생각하면서도 표를 던지셨대요. 후회는 안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과몰입을 보는 PD의 시선
시니어 팬덤의 과몰입 현상은 객관성이 결여된 비논리적인 팬덤 문화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편은지 PD는 ‘주접단’의 과몰입을 이해해보려는 듯 나름의 짐작을 전했다.
“기본적으로 팬은 객관적일 수 없어요. 이건 깔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시니어 팬덤은 보고 끝나는 수동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해요. 투표를 하면서 이미 내 행동이 개입되죠. 개입된 일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일은 몰입도가 달라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오다가 내가 표를 준 사람이 순위권에 들고 스타가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K팝 팬들도 ‘내가 스타 만들었어’, ‘소속사 기둥 하나 내가 세웠어’라고 말하기도 해요. 내가 키운 스타라고 생각하면 계속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편은지 PD는 시선을 팬덤이 가지는 의미로 돌렸다. ‘주접단’을 만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작가들은 인터뷰 대상자와 함께 참 많이 울고 웃었고, 무던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터뷰 대상자보다 더 많이 운 것 같아요. 약 없이는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송가인 씨 팬이 되고 송가인 씨 노래 가사를 나무에 새기면서 일상을 회복했다는 팬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러고 보면 ‘주접단’은 굉장히 주체적으로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팬덤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편은지 PD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스타들의 반응이다. 넉넉지 않은 제작비 탓에 변변찮은 출연료를 지불하고 읍소하듯 모신 출연진은 하나같이 촬영 종료 뒤 감사 인사하기 바빴다. “사실 ‘주접이 풍년’은 스타 입장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상처받을 수 있는 수많은 팬을 일일이 헤아려야 하는 굉장히 껄끄러운 촬영장일 수 있거든요. 촬영 시간이 짧지도 않고요. 그런데 스타들이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1회를 장식한 가수 송가인은 작가진의 자녀 돌잔치 참석을 즉석 약속해 소속사 대표가 진땀을 흘릴 정도였고, 데뷔 60년이 가까워오는 가수 남진은 제작진에게 따로 식사 대접까지 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접’이 뭐냐…”는 말 속에 막이 오른 편은지 PD의 입봉작은 가수 남진의 극찬(?) 속에 막을 내렸다. “여기 PD가 대그빡(머리의 사투리)이 돌아가는구먼!”
"30년 넘게 우울증에 걸려서 많이 힘들었는데, 송가인 가수 님을 만나고 약을 안 먹고 있어요." - 송가인 중년 팬클럽 회원
'덕질'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이다. 사회에서는 보통 '덕질'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한 팬들의 '팬질'로 통용된다. 특히 요즘은 40~60대의 중장년 층 사이에서 덕질이 화제인데, 10, 20대의 젊은 층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열성적이기도 하다.
40~60대 사이의 팬 문화는 2019년 TV조선 '미스트롯', 2020년 '미스터트롯'으로 이어지면서 꽃폈다. 중장년 층은 추억과 애환이 담긴 트로트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가수들에게 열광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용기와 위로를 받았다. '미스터트롯'은 최대 시청률 35.7%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수들에게 푹 빠진 중장년의 팬들은 팬클럽 활동으로 덕질을 이어갔다. 현재 공식 팬클럽 기준 회원 수를 보면 송가인은 5만 8천 명이 넘었고, 임영웅은 16만 명을 넘어 17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트로트 가수 뿐만 아니라 K팝 가수들에게도 중장년 팬덤이 생겼다. 특히 월드 스타 방탄소년단은 세대 불문 팬 층이 두터워지며 세대 통합을 이루었다. 30대의 조 모 씨는 "시어머니도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셔서 같이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의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TV 프로그램 챙겨 보기, 콘서트 관람, 스밍(음원 스트리밍) 작업은 기본이다. 중장년층은 스마트 폰과 인터넷이 취약하기 때문에 팬클럽 내에서 자체적으로 스트리밍 교육까지 진행한다. 또한 조공, 굿즈 제작 등의 문화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중장년의 덕질 문화를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지난 20일 첫 방송된 KBS2 예능 '팬심자랑대회 주접이 풍년'(이하 '주접이 풍년')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덕질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접단'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편은지 PD는 "기획하면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이 낯설었던 중장년 층이 '덕질'을 시작하면서 요즘 세대 못지않게 스마트폰을 잘 다루게 됐다는 점이다. 덕질을 하며 젊어졌다는 이분들은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TV에 나오는 것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다. 이분들이 가장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스타를 모셔서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드리는 것이 목표이자 섭외 포인트다"고 밝혔다.
첫 방송에서는 송가인이 나왔고, 다음주에는 임영웅의 출연도 예고됐다. '핑크 깃발 부대'로 유명한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Again)은 체계적으로 운영되기로 유명하다. 자문, 고문, 지역별 장 등, 조직도도 있다. 그 중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는 진시호 변호사는 "팬카페 고문 변호사는 제가 최초인 것 같다"면서 "수임료는 무료다. 팬심으로 해준다. 누군가 악플을 달면 법적 조치도 하고, 카페 운영진들한테 자문도 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중년의 팬들은 딸뻘인 송가인을 보고 눈물을 보이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또 재발이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가수 님을 만나고 제 삶이 달라졌다. 남편이 동참해서 부부가 같이 팬클럽 활동을 하고 있다", "30년 넘게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정신과 쪽에서 최고 권위자인 분들을 만나 뵙고 입원 치유 권유도 받았는데 가수 님을 만나고서는 약은 안 먹고 있다"는 팬들도 있었다.
2021년 2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 발표에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팔 세대의 팬덤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관련된 소비에 매우 적극적이며 지속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오팔(Opal) 세대는 '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약자로, 5060 액티브 시니어를 말한다.
또한 "팬클럽 활동을 통한 네트워킹과 소비를 통해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고 나를 표현함으로써 사회 생활을 할 때와 같은 활력을 느끼는 것"이라며 "시간적 여유가 있어 결집력과 행동력이 매우 강하며 활동 빈도도 높고 1020세대와 달리 좀 더 관대하게 스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속성이 긴 편이다. 높은 디지털 향학열로 디지털 기반의 활동과 소비에도 MZ세대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