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역시 다사다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국민MC 송해도 세상을 떠났다. 10월 29일에는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연말을 맞아 중장년 관련 2022년 10대 뉴스를 꼽아봤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공식 취임했다. 1960년생인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대통령실 이전 논란, 이태원 참사 등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4개 여론조사기관 공동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잘하고 있다’(매우+잘함)라는 긍정적 평가는 34%를 차지했다. ‘잘못하고 있다’(매우+못함)라는 부정적 평가는 56%였다. 특히 60대(52% 대 44%), 70대 이상(61% 대 26%)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중장년층의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확인케 했다.
◇노인 일자리 축소 논란
정부는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시행, 만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8월 2023년도 예산안이 공개됐는데, 노인 일자리 수는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은 82만 2000개였다.
그중에서도 정부는 공공형 일자리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로 대폭 축소했다.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노인빈곤율 심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공공형 일자리는 줄였지만,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는 3만 8000개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일요일 아침마다 들리던 송해의 힘찬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국민 MC’ 송해가 지난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백세 인생의 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 송해의 사망은 대한민국에 슬픔을 안겼다.
송해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국내 최장수 MC를 넘어 지난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송해의 후임으로 김신영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슬픈 소식이 많았다. KBS ‘가족오락관’을 25년간 진행한 또 다른 ‘국민 MC’ 허참과 ‘원조 월드 스타’ 배우 강수연도 세상을 떠났다. 해외의 유명인들도 세상을 떠나 별이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동산 시장 급락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던 부동산이 꺾였다. 올해 들어서만 부동산 가격이 10% 이상 급락했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와 달리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마저 줄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전세 가격 10% 하락 시 4만 가구가, 40% 급락 시 13만 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정책을 마련했다. 8·12%로 설정된 다주택자 대상 취득세 중과세율은 4·6%로 완화한다. 내년 5월까지 한시 유예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조치는 일단 1년 연장한 후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고독사 증가
한국의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독사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고독사 10명 중 5명은 50· 60대의 중년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고독사 사망자는 지난해 3378명으로 2017년 2412명보다 40.0% 증가했다.
노년층보다 50·60대 중장년층 남성의 고독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가 1001명(29.6%)으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981건(29.0%)으로 뒤를 이었다. 50·60대 중장년층이 60% 가까이(58.6%) 차지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사망자는 고연령층일수록 많지만 고독사는 50대~6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50대 남성은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지 못하며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희망퇴직 시작
금리 인상으로 올해 큰 실적을 거둔 시중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적극적인 감원에 나섰다. 최대 5억 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내년 초까지 약 2000명의 은행원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은행은 한 번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닌다는 이른바 ‘철밥통’ 직장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전환 바람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앱 비대면 서비스 이용객이 늘면서 인력 효율화를 노려야 하는 은행의 상황과 핀테크 기업 등 인터넷 은행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 은행원들의 바람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2023년에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 감독), 남우주연상(이정재)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작품이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도 상을 받은 것도 모두 최초였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가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K-컬처의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 이태원 10·29 참사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악몽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 총 158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2~30대 젊은이들로, 어린 자녀를 둔 중장년들을 더욱 비통케 만들었다.
10·29 참사는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면서, 영정 없는 분향소, 뒤집힌 근조 리본, 희생자 표현 사용 금지, 마약 부검 등 다양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이 공개된 합동 분향소는 참사 후 한 달이 넘은 지난 14일에야 차려졌다. 현재는 분향소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 항의의 대상이 되면서 조롱과 멸시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
올해 우리나라는 7대 우주 강국으로 우뚝섰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도 8월 5일 발사에 성공, 달 궤도에 안착했다.
누리호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시작돼 2022년 6월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총예산 1조 9572억 원이 투입됐다. 누리호의 성공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 250명의 피, 땀, 눈물이 서린 노력이 있었다.
성공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기주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은 “2002년 나로호 사업을 시작으로 항공우주연구원이 되었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체 개발을 하면서 연구·개발하는 모든 것이 우리나라 우주 개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다”면서 감격의 소감을 본지에 전한 바 있다.
◇월드컵 16강 진출
‘2022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국민을 위로해줬다. 이번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려 경기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많은 국민은 경기를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번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2002년 월드컵에 비교할만하다. 그때의 추억을 안은 중장년층은 특히 열광했다.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축구 강국을 이기고 얻은 성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입증했다.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에 핼러윈(Halloween)을 앞두고 인파가 몰리면서 최악의 압사 사고가 벌어졌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참사 다음 날인 30일부터 오는 11월 5일 밤 24시까지 일주일이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됐다.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핼러윈은 무슨 날이길래 매년 이태원에 사람이 몰릴까. 핼러윈은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 전야제(All Hallows’ Day evening)의 줄인 말이다. 매해 10월 31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축제를 즐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중세 유럽에서 켈트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의 축제였다. 이후 1840년대 아일랜드인이 대기근으로 미국에 대거 이주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유령을 쫓기 위해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의상을 입는 켈트족의 풍습이 미국으로 전파됐다. 유령이나 괴물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은 핼러윈에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얻는다. ‘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는데,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초반 본격적으로 핼러윈 문화가 전파됐다. 외국 유학생, 외국인 강사 등이 영어유치원, 영어학원 등에서 핼러윈 문화를 소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세계 각국의 외국인이 모여 사는 이태원을 통해서도 핼러윈을 즐기는 문화가 빠르게 전파됐다.
외국인들은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모여 소규모 파티를 즐겼다. 이태원은 특히 클럽 문화가 발달해, 외국인들은 핼러윈 때 유령·해적·마녀 등 독특한 의상을 입고 이 지역 클럽을 찾았다. 이를 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코스튬 문화가 빠르게 퍼졌다. 해를 거듭할 수록 참여 인원이 많아지고, 축제의 규모가 커졌다.
어느 순간 젊은이들이 독특한 분장을 하고 이태원 클럽을 찾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MZ세대의 젊은이들이 여의도 불꽃 축제를 즐기고,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많아도 명동 거리를 걷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일상에서 벗어나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이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핼러윈은 10월 31일이지만 앞선 주말에 이태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지난 29일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다.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열린 ‘야외 노마스크’ 행사였다. 오랜만에 빗장이 풀리자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폭 3.2m짜리 내리막 골목길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1일 오전 6시 기준 사망자 154명,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 등 총 303명이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정확히 30년 전인 1990년 10월, 나는 미 국무부의 ‘국제교류 연수 프로그램’(IVP, International Visitor Program)에 초청을 받아 한 달간 미국을 여행했다. IVP는 각국 사람들을 초청해 돌아보게 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영어가 서투른 나 같은 사람에게는 통역안내인을 붙여주고 매일 얼마씩 용돈(per diem)도 준다.
그때 나는 ‘미국의 교육’을 살펴보기로 여행 주제를 정하고, 땅을 딱 반 갈라 북쪽만 돌았다. IVP는 워싱턴에서 1주일간 국무부 의회 등 여러 군데를 방문(이건 필수)하고 나서 자유여행을 하게 돼 있다. 땅덩어리가 크니 나머지 3주 동안 욕심내지 말자고 그리 한 건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짓이었다. 미국 남부를 돌아볼 기회는 그 뒤 한 번도 없었으니까.
워싱턴 일정을 마친 뒤 나는 뉴욕, 보스턴을 거쳐 일리노이주의 프리포트(Freeport)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보스턴에 이어 두 번째 민박을 했다. 거기서 만난 분이 유리시(Urish) 할아버지다. 보험회사 부사장이었던 그는 명랑 쾌활하고 남을 잘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이틀 묵는 동안 느슨하지 않고 즐겁게 나를 성심성의껏 안내해주었다.
그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아 찰스! 앞으로 널 찰스라 부르겠어”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미국 와서 젊은 아가씨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이 주책아!)라고 했더니 자기 회사에 데리고 가서는 “여기 이 한국에서 온 찰스라는 청년이 젊은 아가씨들을 찾고 있다”며 이 방 저 방 떠들고 다녔다. 여직원들이 “나 젊은데”, “나도 젊은데?”라며 들이대 나는 거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유리시 부부, 통역안내인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어떠냐?”라고 묻기에 “맛이 별로다”(이 주책아!)라고 해서 그들 부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솔직한 게 좋은 줄 알고 그랬던 건데, 옆에 앉아 있던 통역안내인은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도 유리시 할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를 따뜻하게 배려했다. 그 지역의 전직 하원의원(상원의원이었나?)을 만날 때, 나는 “미국 하원의원(상원의원이었나?)의 절반은 도둑놈이다”라는 미국 어느 신문의 보도를 거론했다(이 주책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하자 그 신문은 “미국 하원의원(상원의원?)의 절반은 도둑놈이 아니다”라고 정정했다. 말하자면 정정을 하지 않은 건데, 통역안내인이 “그들은 도둑놈이 아니다”라고 정정했다고 옮기기에 잘못된 통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리시 할아버지는 말뜻을 알아듣고 배꼽을 쥐며 크게 웃었다.
나는 신이 나서 미국 정치가 어떻고 한국 의회제도는 어떻고 하고 떠들어댔다(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하니까 얼마든지!). 코리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던 그 의원은 내내 떨떠름한 표정인 채 “한국 의회도 양원제냐?”, 이런 걸 나에게 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유리시 할아버지는 내게 엄지를 치켜 올리며 “Charles, I’m proud of you!(찰스,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했다. 자기 조카가 장한 일을 한 것처럼 즐거워하면서.
그는 매일 3마일씩 걷는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1마일이 1.6km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핼러윈이 다가오는 무렵이어서인지 유리시 할아버지는 나를 차에 태워 호박 등을 파는 농산물 시장에도 데려갔다. 미국 사회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집의 넓은 지하실을 혼자서 쓰는 동안 나는 화장실 변기에 남은 미제 똥도 보았다. 그때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 중 한 대목을 생각했다. 그 소설에 열차를 탄 미국인들이 철로에 남긴 똥을 주워 맛보다가 ‘고바또’(고씨+세퍼드)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나온다. 미제 똥이 궁금해서 그랬던 거다.
유리시 할아버지는 유대계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대의 ‘유’ 자에다 ‘영광의 탈출’(Exodus)의 작가 레온 유리스라는 이름이 유리시와 겹쳐져 유대계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때 그는 거의 일흔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니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다. 내가 두고두고 미안한 건 귀국한 뒤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 것이다. 유리시 할아버지는 두 번인가 편지를 보내 “Charles, what’s new?”라며 소식을 물었는데,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영어로 작문을 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이 한심한 멍청이, 주책아!). 그 편지는 지금 찾기도 어렵다. 미국 여행에 관한 기록이나 문서도 버리진 않았지만,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유머, 관용과 배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선의, 인류 번영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었다. 9·11테러를 겪은 데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이후의 미국과 미국인은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30년 전에 미국, 미국인의 좋은 점을 알게 해주었으니 IVP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가이후 도시키 전 일본 총리, 이런 사람들도 젊어서 IVP 여행을 경험하고 미국을 호평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이 제도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나 10여 년 전부터 여행기간이 3주로 줄어들었다. 한 달씩 시간을 내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조정했다고 한다. 사실 한 달간 직장과 가정을 비우고 자기가 정한 주제 아래 마음대로 원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미국인들도 수도 워싱턴에 가보지 못하고 평생을 마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시인 최승자(崔勝子)가 어느 시에선가 “10월의 자유는 아름다웠다”라고 썼던 거 같은데, 그 10월은 아름답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 10월은 미안하고 빚진 기분으로 되살아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