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명의 기운 스미는 신비로운… 제주 서귀포 치유의 숲
-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 2022-01-28 11:10
-
- 타임머신 타고 선사시대로 떠나는 오이도
- 6000년 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삶, 바쁜 세상에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시간 여행은 이럴 때 재미를 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한 곳, 서울이나 수도권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게다가 놀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맛도 쏠쏠하다. 지하철 4호선이 닿는 곳, 오이도역.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좋다. 소박한 바다마을 오이도의 다채로운 스폿들 중에 선사유적공원은 나지막한 능선 아래 편안히 자리 잡았다.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느껴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의 자연을 산책하듯 색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 해볼 만하다. 한적한 구릉 선사유적공원 선사유적공원은 뜨겁던 햇살도 적당히 누그러진 아침나절, 혼자도 좋고 친구나 부부, 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 편한 공원이다.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공원과 비슷한 면적인 33만5859m²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서 띄엄띄엄 거리두기를 하며 느긋함과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해본다. 여기저기에 선사시대 마을을 구현한 움집들은 규모와 마을 크기가 작지 않다. 이곳은 우리나라 중부 서해안 최대의 패총 유적지이면서 다양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그래서 선사시대 서해안 생활문화유산의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문화적 가치를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2018년에 공원으로 조성해 국가 사적 제441호로도 등재됐다. 선사 마당에서는 한반도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적당한 곡선의 구릉 위에 드문드문 만들어진 움집 마을 마당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옛사람들이 오갔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TV예능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 족장처럼 불씨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통나무를 굴려서 목재이동 방법도 체험해 볼 수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 심심하지 않다. 야영 마을과 발굴터를 비롯해서 움집 생활과 수렵 모습, 둘러앉아 조개를 구워 먹는 모습은 조개구이로 유명한 요즘의 오이도 맛집 거리를 연상시킨다. 그 옛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피며 선사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보는 색다른 시간이다. 놀이 참여도 여행의 맛 움집 건물마다 주제가 달라서 한군데씩 구경하다가 문이 열린 곳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이때 안에서 누군가가 “들어오세요”하며 상냥하게도 맞아준다. 무심결에 들어가 보니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교실이었다. 선사인들의 생활도구나 의류 같은 걸 진열한 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진행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계획에 없던 조가비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나니, 체험 프로그램의 맛이 요런 것이구나 싶게 즐겁다. 아이들처럼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어? 이렇게 구워 먹었구나, 이런 데서 잤나 보다’ 하며, 그저 눈으로만 느끼다가 이렇게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며 만들어 보니 한층 이채롭고 뜻 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비상 사태에 빠뜨린 이즈음 ‘코시국’ 모습이 훗날 시간을 거슬러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될는지….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변동으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해설사 안내는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선사 마을 뒤편에 펼쳐진 억새가 꾸며놓은 예쁜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차분한 자연 속에서 제 빛을 내는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몇 년 되지 않은 신상 공원이다 보니 아주아주 오래된 신석기시대를 보여줌에도 대부분이 산뜻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꼭 새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한쪽에는 고사를 지내고 도당굿을 했다는 불타버린 당산나무가 있고, 그 옆에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세상은 또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니 공원 전체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이럴 땐 걷다가 벤치나 풀숲에 털썩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맛도 세상 행복하다. 잔디 능선길 옆으로 한적하게 앉혀진 패총전시관이 보인다. 조개무덤인 패총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각종 전시물과 영상이 오이도 지역에 있었던 신석기시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패총이 만들어진 과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다시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이도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송도 국제도시가 보이고, 더 멀리에는 서해바다까지 내다보인다. 군데군데 몇 척의 갯배가 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도시생활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호젓한 기분에 잠긴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펼쳐지는 멋진 해넘이가 장관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도 사랑의 열쇠 꾸러미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체험을 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면서 단순한 공원을 넘어 역사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10분 거리에 있는 시흥 오이도 박물관에 들러 선사인들의 삶과 역사를 더 알아볼 만하다. ♧경기 시흥시 서해안로 113-27 바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바다의 맛 오이도에는 선사유적공원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많다. 이 중에서도 섬이 아니면서 섬인 듯 빨간색 등대의 강렬함이 먼저 떠오르는 곳, 도심 가까이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오이도 거리를 꼽는다. 선사유적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는 어딘가로 훌쩍 나서고 싶었던 마음들이 모여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눈앞에 우뚝 선 빨간 등대와 비릿한 바닷바람이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설렘을 부추긴다. 등대전망대는 코로나19 여파로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무수한 갈매기 떼가 시시때때로 날고 있어서 바다여행을 실감할 수 있다. 제방 둑으로 새하얀 생명의 나무가 한낮의 햇볕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생명의 나무는 오이도가 가진 역사와 생명, 사람의 흔적을 되살리고 후대에 길이 알리고자 제작됐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를 지나면 함상 전망대가 바다를 앞에 두고 나타난다. 쭉 걷다 보면 바닷길을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무리 지어 씽씽 지나간다. ♧경기 시흥시 오이도로 175 부둣가 쪽으로는 작은 수산시장이 난전을 이루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도로 아래로 건너가면 오이도 전통수산 시장이 있어 꽃게와 소라, 조개류 같은 싱싱한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천천히 다녔음에도 한나절이 지나 점심 무렵에 이른다. 오이도 제방을 따라 쭈욱 늘어선 음식문화거리엔 각종 활어회와 조개구이 같은 이곳만의 향토음식이 넘쳐난다. 맛집 밀집 지역으로 오이도가 패총 유적지답게 지금도 각종 어패류 요리가 지천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무한리필 되는 쫄깃한 모둠 조개구이 한판? 콜~! 가리비와 대합, 백합, 키조개 등 푸짐한 구성에 풍미를 더하는 모차렐라 치즈를 포함해 모두 무한리필로 실컷 먹을 수 있다. 치즈 조개구이가 대표 메뉴인데 알밥과 라면까지 추가된다. 슬기롭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 음식문화거리에서 유혹을 즐기고 나면 어느덧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 이른다. 이럴 때 시원한 실내에서 창의적인 놀이로 차분하게 보낼만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오이도와 인접한 섬이었던 옥구공원에 가면 재밌는 목공체험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요즘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공원에서는 이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산림 부산물을 적극 활용하는 실습으로 숲의 자원화를 실현하고 목재문화 활성화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온라인과 현장 접수를 선택해서 이용하면 된다. 두 시간 정도면 손잡이 달린 멋스런 트레이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트레이 체험비는 1만4000원이었다.) 준비된 나무 재료에 자연색감의 칠을 하고 → 사포로 문지르고 → 모양대로 짜 맞추기 → 스텐실 무늬 넣기 → 손잡이 달고 → 다시 한번 유약 칠하면 → 완성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목공 작품 하나, 볼 때마다 뿌듯하다. 시흥의 옥구공원은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워낙 넓어서 자연 생태계를 살피며 공원을 산책하기에도 좋다. 축구장에서는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군데군데 조각 작품들이 품격을 더한다. 숲 속 도서관과 장미원, 옥구 숲과 곰솔 누리 숲을 이용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으로 차분한 힐링 공간에서 심신을 안정화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 2138 축복처럼 번지는 노을 풍경, 미생의 다리 시흥에 가면 저녁 무렵에 또 한 군데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시흥 늠내길 들판에 펼쳐진 생태 교량인 자전거 다리다. 일명 '미생의 다리'로 부른다. 시흥시 월곳의 갯골과 소래포구 사이에 새롭게 만든 다리로, 일출과 일몰 시점에 다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연말이나 연초엔 해넘이와 해돋이 풍경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이 일대가 대규모 염전 지역이어서, 이 다리의 모양을 염전에 물을 대는 수차 바퀴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 제목과 같은 동음인 '미생'이긴 하지만 바둑의 미생(未生)과는 뜻이 조금 다르다.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의 다리'라는 의미다. 짭짜름한 생명력 가득한 갯골 앞에 미려한 곡선으로 놓인 미생의 다리. 이곳엔 짜릿한 노을 풍경이 여러분을 맞이한다. ♧경기 시흥시 방산동 779-43
- 2021-09-07 17:07
-
- 세계 속에 빛나는 한국전통문화의 미래
- ‘문화유산’이란 인류가 창조한 유·무형의 역사적인 조형물과 자연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관심을 두고, 세계 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퇴직 후 향토문화해설사와 전통문화지도사로 활동하며 그동안 노트에 끼적여둔 ‘우리 문화’에 대한 것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택견과 아리랑 ‘택견’은 2011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유쾌한 몸짓으로 발을 움직이며 마치 무용처럼 리듬감을 지닌 동작은 보는 사람에게도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다음해인 2012년, ‘아리랑’ 역시 유네스코의 같은 목록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어릴 적 붉은 댕기를 휘날리는 누님들을 따라 아리랑을 부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다. 그때가 메아리처럼 마냥 그리워진다. 누님들은 내가 노래 가사를 틀리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 목청 높여 크게 부르도록 연습시켰기에, 아리랑은 그 누구보다 익숙하다. 아리랑은 1392년 7월 28일 고려가 망하고 왕조교체기에 만들어진 비밀결사의 참요(어떤 정치적 징후들을 암시하는 민요)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곡애-나마간다/ 날 바리고 가서-니믄/십 리도 몬가서 발병난다.’ 단순히 민요나 유행가가 아니고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충신의 생사의 대서사시라고도 한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혼과 민요의 정수가 되었다. 4행에 압축한 5000년의 민족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아리랑 고개는 추상적이며, 아리랑(阿里郞)은 여성을 뜻한다. ‘아리랑 쓰리랑’ 비밀결사의 내용이 숨겨져 있다한다. 김장과 농악, 그리고 제주 해녀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처음에 ‘김치’로 등재하려 했으나 상업적인 불합리성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장 문화는 가족, 이웃, 마을, 민족 간 정과 공동체 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채택됐다. 이제 한국 전통음식도 세계 음식 문화 대열에서 영양가 높은 고급 음식으로 당당히 소개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농악’은 2014년 우리나라에서 17번째로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장구, 북, 꽹과리, 징 등 타악 합주에 상모돌리기 같은 춤과 흥겨운 연극요소가 있어 때와 장소 구분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는 전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2015년에는 우리나라에 등재된 무형유산이 많아 단독 등재 자격이 없다고 전해졌었다. 2016년에는 ‘제주 해녀’가 등재 심사될 예정이라 하여 주목받았으며, 계속되어가는 중이다. 이렇듯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의 멋과 향을 잘 알아야만 다른 문화까지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무형문화유산을 잘 보호하고 보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학문, 예술 등의 문화 향상의 과정에서 산출된 재화인 유형과 무형의 문화재를 넘어서, 무형문화유산에 관해서도 익히며 해설의 폭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는 우리 문화의 세계화와 존귀함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나라'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택견, 아리랑, 김장, 농악 등 우리 고유의 문화가 세계에 감동을 선사하며 문화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 2018-08-24 17:17
-
-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문화의 힘
-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경치와 물이 좋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이처럼 좋은 나라에 태어난 나는 문화인인가, 혹은 야만인인가? 지성과 교양이 있는 사람은 문화인(文化人)이고, 그 반대는 야만인이다. 또 문화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가리켜 문화인이라고도 말한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 이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우리나라를 일컫는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퇴직하고, 향토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았다. 그때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과 사적 등을 비롯해 서울시지정문화재에 관해 배웠고, 해설을 할 때 설명을 해 주며 자원봉사도 했다. 하루는 해설을 하러 서울 봉화산에 갔다.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어 1971년 봉화산 근린공원으로 문을 열었던 곳이다. 전에는 산책이나 등산 등 여가를 즐기러 다녔으나, 해설가로 임무가 주어졌을 때는 그곳에 있는 문화재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친구들은 복잡하게 뭣 하러 그 일을 하느냐고 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것이 너무나 많았고, 유익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우재는 해발 160.1m로 문화재가 두 개 있어 서울특별시와 담당 문화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상에 있는 아차산 봉수대지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1993)로 지정문화재로 복원했다.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해 강원도를 거쳐 남양주 한이산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목멱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주민들은 이 봉수대 부근에서 음력 3월 3일 삼짇날 무형문화재 제34호(2005)인 봉화산 도당제를 지낸다. 이때는 국내외의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이는데, 친구들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잔칫상을 푸짐하게 대접한 일이 있다. 그때야 친구들은 부푼 배를 두드리며, 나처럼 해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는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을 왜 하느냐고 핀잔했으나, 지금은 나를 자주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문화인이 되려면 지성과 교양을 쌓아야 하며, 야만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나 역시 문화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아침에 바로 되는 것일까? 문화란 세상이 깨고 발달하여 문명이 개화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이상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발전과 향상을 지상목표로 삼는 나라인 문화국가(文化國家:cultured nation)에서 문화인다운 삶을 지향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김구 선생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을 위해 강조한 그의 이야기가 귓가에 아스라이 메아리쳐 오는 듯하다. 나 역시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나라’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친구들과 더불어 해설가로서 최선을 다해 활동해보려 한다. 수년 전에 배웠던 수업자료들을 친구들에게 주려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중이다. 소중한 자료를 넣을 예쁜 봉투를 준비해 친구들에게 줄 반가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 2018-05-29 10:47
-
- [Part6 2막에서 이룬 꿈] 어릴 적 꿈이 중년의 새로운 꿈으로 - 문화관광해설사 윤민용씨
- 독일에 한 소년이 있었다. 호메로스의 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아이는 언젠가 신화 속 도시 트로이를 발견해낼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어른이 되어 러시아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손에 쥔 소년은 어릴 적 꿈을 잊지 않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고고학을 공부했고, 그리스로 건너가 고대 유물 발굴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터키 히사를르크 언덕에서 꿈에 그리던 고대도시 트로이 유적지를 발견한다. 그가 바로 고고학계에서 잘 알려진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竹山)에서 만난 윤민용(尹民鎔·79)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는 이 슐리만의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글·사진 이준호기자 jhlee@etoday.co.kr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가 자랐던 고향 죽산에는 유난히 다양한 모양을 한 돌이 많았다. 산과 들을 뛰놀던 유년시절 소년 윤민용은 이 돌들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지만 당최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커서 돌들의 유래를 알아내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0년이 훌쩍 넘어서야 겨우 알게 됐다. 그 소년이 봤던 돌들은 통일신라 때 축성돼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죽주산성(竹州山城)의 일부였고, 그의 고향 죽산은 ‘경기도의 경주’로 불릴 만큼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라는 것을. 그가 어릴 적 꿈에 먼 길을 돌아 도착하게 된 이유는 가난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는 학비를 벌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고향에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배달했고, 졸업할 즈음에는 죽산지국장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신문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게 됐고, 그의 타고난 웅변 실력은 세상이 그를 새 꿈에 다가가도록 종용했다. 정치였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면서 그 꿈은 구체화되는 듯했지만, 5·16 군사정변을 만나 그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금배지 대신에 타워호텔의 총무부장 직함을 달았다. 롤링스톤스가 울려 퍼지던 1969년의 일이다. 타워호텔은 1961년 민간에 매각되기 전까지 군사정부의 외빈용 숙소로 사용되었던 만큼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남북적십자회담이 1972년에 시작돼 2년간 7차례 진행됐는데, 그 역사적 사건 실무의 중심에 그도 서 있었다. 그렇게 10년간 호텔리어로 생활했다. 다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화학장치주식회사에서 20년간 근무 한 뒤 정년을 앞두고서였다. “당시 퇴직 이후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향을 자주 찾다 보니 칠장사(七長寺)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칠장사의 다양한 유물들을 호기심에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유년시절 꿈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2001년 안성시에서 문화관광해설사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고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화해설사로서의 활동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새로 했죠. 관련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곳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문화해설사는 단순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읊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죠. 해설의 흥미와 사실감을 살리려고 정확한 역사 속 날짜와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뒤따라야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스마트폰으로 내 해설을 확인하는 짓궂은 친구들도 있고,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전문가들도 만나는데, 해설을 듣고 나서 칭찬을 많이 해주십니다.” 그가 문화관광해설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두 가지다. 역사적 근거를 통해 주류 사학(史學)과 향토사학(鄕土史學)의 올바른 접점을 찾는 것과 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 중 대표적인 게 조선 최고의 어사로 손꼽히는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이야기다. “칠장사에는 박문수가 세 번째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다가 이곳에 들러 나한전에 기도를 드린 덕분에 장원급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설화로 전해 내려와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산에서부터 안성까지 자료가 될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고, 결국 천안 입장면에서 생가로 추정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수사를 하듯 박문수의 호 기은(耆隱)이 그의 고향인 천안시 북구 입장면 기로리(耆老里)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하고, 여러 사료 확인을 통해 그의 몽중등과시 중 마지막 구절에 있는 (대나무)피리 적(笛)으로 알려져 있던 글자가 풀피리 적(笛)이라는 사실을 밝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렇게 2년간 시간의 파편을 수집하고 확인하기를 거듭했고, 결국 어사 박문수의 장원급제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고령 박(朴)씨 대종회로부터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안성시에서는 이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그가 완성한 박문수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는 어머니의 간청을 흘려듣기 힘들었다. 선비로서 절에 기도를 올리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세 번째 과거시험 도전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면목도 없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 도착한 칠장사 나한전에서 그는 유과를 공양하며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이날 밤 박문수는 꿈속에서 부처님을 만난다. 부처님은 시험에 나올 시제 7행을 알려주면서 나머지 행은 스스로 완성해야 하며 신중하지 못하면 시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성균관 과장(科場)에서 박문수가 완성한 시가 몽중등과시다. 그는 이 시로 병과 진사과에 장원급제했다. 최근에 이 시구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칠장사로 복사본을 얻으러 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를 만난 당일은 2016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고시가 있던 날이었는데, 나한전은 기도를 올리는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시의 효험 덕분인지 윤민용씨의 손주는 캐나다왕립사관학교에, 외손주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중년의 꿈을 완성하기 위한 또 다른 꿈은 그간 조사하고 연구한 자료와 그의 이야기를 엮어 도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주변에 무료로 나눠주고 싶습니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높여 역사를 소중히 하는 마음을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 브라보 커버스토리 Q&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그러다 새 꿈이 현실이 되고, 천직이 되면서 어릴 적 꿈은 꿈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중년이 되고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고향을 자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고향의 많은 문화재들을 다시 보게 됐고, 문화재들을 통해 다시 꿈꿀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어릴 적 꿈이 막연한 희망이었다면, 중년 이후 새롭게 품은 꿈은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꿈이 호기심에서 비롯됐다면, 중년의 꿈은 베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기 위해 향토 사학을 공부하는 과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료를 뒤지고 현장을 오가는 것이 즐거웠지만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슨 색? 구체적인 색보다는 밝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굳이 색을 고르라면 태양빛과 같은 주황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은 인생에 희망을 주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늘 긍정적인 태도와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잔병치레도 사라졌습니다.
- 2016-01-21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