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비정규직 근로자는 약 816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50~6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1년 전보다 15만 명 이상 늘었다.
25일 통계청의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는 2172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73만 2000명 증가했다.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인한 회복세로 풀이된다.
정규직 근로자는 1356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64만 1000명 증가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815만 6000명으로 같은 기간 9만 명 늘었다. 지난해 전년 대비 64만 명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32~33%대를 기록했다. 2019년부터는 2년 연속 36%대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38.4%까지 상승했다가 올해 37.5%로 소폭 하락했다.
비정규직 증가 폭은 60세 이상, 숙박 및 음식점업, 제조업 종사자에서 컸다. 연령 계층별로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0세 이상(15만 1000명), 50대(5만 8000명), 15~19세(1만 1000명)에서 증가했다. 반면 40대(-9만 6000명), 30대(-3만 3000명)는 감소했다. 20대는 비정규직 변동이 없었다.
산업별로는 숙박 및 음식점업이 7만 7000명이 늘어나 가장 많이 증가했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3만 1000명 늘었다, 제조업과 교육서비스업은 각각 2만 9000명 증가했다. 건설업은 4만 5000명,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은 1만 8000명 각각 감소했다.
근로 형태별(중복 집계)로 보면 한시적 근로자는 17만 7000명 늘어 534만 8000명을 기록했다. 시간제 근로자는 368만 7000명으로 17만 5000명이 늘었다. 파견·용역·특수형태 근로 등 비전형 근로자(213만 1000명)는 14만 7000명 감소했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최근 3개월 월평균 임금은 288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4만 6000원 올랐다. 정규직은 월 348만원이었고 비정규직은 188만 1000원으로 나타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159만 9000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김경희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비정규직 통계를 2003년부터 작성했는데 그때는 시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6.5%였으나 올해는 거의 3배인 17%로 뛰었다”며 “시간제는 근로 시간이 적다 보니 임금도 적어서 시간제를 포함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시간제 근로자를 제외한다면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은 261만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여건을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근로 형태를 자발적 사유로 선택한 비율은 62.8%로 2.9%p 상승했다. 현 직장(일)에서의 평균 근속 기간은 2년 6개월(30개월)로 1개월 늘었다.
교육 정도별 비정규직 규모는 고졸이 348만 2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졸 이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만 1000명 증가했다. 중졸 이하는 5만 명, 고졸은 1000명 각각 감소했다.
최근 일본에서 고령자 프리터(フリーター)가 증가하는 추세다. 34세 이하의 비정규직 근로자만을 지칭했던 말인 ‘프리터’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터는 Free(프리) + Arbeit(아르바이트)를 줄인 말이다. 정규직 이외의 계약 사원, 파견 사원,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 등의 고용 형태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 15~34세에서 비정규 고용 형태로 일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프리터의 고령화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고령 프리터’를 별도로 집계하기 시작했다. 35~54세의 비정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55세가 넘어가면 퇴직자도 있으므로 ‘프리터’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과 은퇴자가 섞여 있어 54세까지만 조사하고 있다.
총무성이 2020년 2월 발표한 ‘2019년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고령 프리터(35~55세)는 매년 늘고 있다.
2002년 50만 명이었던 고령 프리터는 2016년 101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2019년 99만 명 수준으로 약 2배가 증가했다.
나이별로 보면 35~44세 프리터가 2002년 25만 명에서 2019년 53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12년 이후에는 45~54세의 프리터 증가도 시작됐다. 이 시기부터는 35~44세의 증가 폭보다 45~54세의 증가 폭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전년 대비 3만 명이 늘어 역대 최고 증가세를 보였다.
이렇게 고령 프리터가 늘어나는 이유는 과거 프리터라고 불렸던 25~34세의 연령층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35~44세의 프리터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생각해 정규 직업을 구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젊었을 때 프리터로 일했기 때문에 중장년이 되어서 정규직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워 프리터 생활방식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는 점도 고령 프리터 증가세의 원인이다.
프리터는 왜 부담이 되었나?
처음 프리터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간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프리터는 ‘불안정한 고용’을 상징하는 표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이 오면서 취업 시장이 얼어붙자 원하지 않았음에도 프리터족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1991년 프리터 인구는 약 62만 명이었다가 이후 급증하여 2003년 217만 명에 달했으며 2019년 기준으로는 약 138만 명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02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프리터인 남성 90.9%와 여성 74.1%가 정규 직장에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2004년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고용관리조사’에 따르면 ‘프리터를 경험해본 적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업은 3.6%에 불과했다. 반면 이점을 부정적인 요소로 보는 기업은 30.3%였다.
결국 원치 않았던 경기 불황으로 프리터족이 되었다가 다시 정규 고용 시장으로 뛰어들려 해도 기업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취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이는 프리터 시기를 연장하는 일종의 순환 고리가 됐다.
따라서 한 번 프리터로 살게 되면 정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들은 주로 졸업 예정자를 선호하고 프리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전히 가지고있다. ‘이직을 자주 할 것’이라든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등의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 또한 연공서열 임금체계에서 프리터의 대우를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일본 경제학자 히구치 요시오(樋口美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프리터인 사람이 5년 후에도 프리터일 확률은 10~20대에서는 50%지만, 30대를 넘으면 70%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구치는 “프리터의 증가가 결혼율과 출산율을 낮추고 사회 활력을 잃게 하는 사태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게 되어 사회 분위기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또한 프리터는 정규직보다 소득이 낮아 납세액이 적어 세수도 줄어들게 된다.
이에 일본 정부는 프리터가 단순히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추구형이라고 보기에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인식했고, 실태조사를 하면서 문제 해결에 힘쓰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인력이 부족한 간호나 농업에서도 프리터 인력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실효성은 아직 물음표다.
정부는 프리터의 고령화로 35~40세의 프리터까지 ‘젊은이’로 보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40세 이상의 고령 프리터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겠지만 우선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직업 능력 개발 제도 확충을 통한 취업 지원, 인턴십, 3개월간 고용 후 정사원 전환하는 평가판 고용, 청소년 대상 직업 카페, 고용 시 연령제한 금지 등을 실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소상공인 1·2차 방역지원금 및 손실보전금 이의신청 인용률이 노령층으로 갈수록 줄어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대면으로 이의신청을 받아 고령층이 이를 활용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소진공)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분석에 따르면 60대 이상 소상공인 이의신청 인용률은 18.67%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및 손실보전금 1차 지급률에서는 28.1%를 차지했지만, 이의신청 인용률에서 9.43%나 감소한 것.
반면 20대와 30대는 1차 지급률에서 2.8%, 13%를 차지했지만, 이의신청 인용률이 각각 7.39%, 20.27%를 나타내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2차 지급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재난지원금 이의신청은 재난지원금 확인 지급 신청 후에 지원 대상자가 아님을 통보받은 사업체가 별도로 이의신청해 피해를 증빙할 수 있도록 한 절차다.
김성환 의원은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이 이의신청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소진공은 온라인 신청이 어려운 소상공인 등을 위해 현장 방문 신청 접수를 병행했다. 그런데 현장 방문 신청을 누리집 홈페이지나 전용 콜센터로 사전에 예약해야 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콜센터 응대율은 17.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방문 신청의 경우 전국 70곳에 있는 소진공 지역센터에서만 가능해 신청자의 편의보다 행정 편의를 우선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의원은 “고령층의 소상공인이 이의신청 단계에서 상당수가 제도 진입에 실패한 것”이라면서 “영세사업장 특성상 국세청 자료로는 정확한 매출 확인이 되지 않아 사실상 소상공인 대다수에게 이의신청은 간절한 절차였음에도 고령층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능력을 거래하는 ‘재능마켓’은 은퇴 후 구직난 속 시니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기회의 장이 되는 것. 또 나이가 들면서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시니어에게도 좋은 대안이 된다. 취미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 중장년 인재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 전문가 서비스 매칭 플랫폼 ‘숨고’ 등이 대표적인 재능마켓이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에게 재능마켓은 도전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왠지 2030을 위한 장일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단 하나씩 시작해본다면 시니어에게도 재능마켓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좋은 기회가 된다. 재능마켓에 도전해보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먼저 그 시장에 뛰어든 시니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60대 후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다. 2007년 12월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제주를 자주 오고 갔다. 그러면서도 도시를 벗어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닷없이 서귀포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알레올레 차방’을 운영하는 배정자(81세) 씨는 제주로의 귀촌이 “운명적이었다”고 말했다.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배 씨가 프립을 통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만 원을 내면 그녀의 집 거실에서 그녀가 가꾼 차밭을 감상하며 그녀가 키운 꽃을 말린 꽃차를 내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차와 함께 곁들이는 색색의 구절판 다식은 눈도 마음도 즐겁게 해준다. 이곳에 다녀간 이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Q 2009년 2월 서귀포로 귀촌하고 에어비앤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서귀포로 내려오면서 무엇을 할지 정하고 온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제주 올레길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숙소가 많이 없었거든요. 지인이 올레길을 가려 하는데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죠.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하게 됐어요. 잠자리뿐만 아니라 아침도 만들어 제공했어요.
Q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뜰을 가꾸는데, 꽃이 많아요. 2013년인지 2014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때 우연히 꽃차 교육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배웠거든요. 그러면서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어요. 이후에 꽃차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 강사로 조금씩 활동을 하게 됐지요. 또 뜰에 있는 꽃으로 차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프립에서 꽃차 호스트로 활동하게 되었죠.
Q ‘알레올레’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알레는 불어에요. 영어로 말하자면 'go!'의 의미죠. 어딜 가라는 뜻은 아니고요. 유럽의 축구 경기를 보면 응원할 때 ‘알레! 알레!’ 하고 외치는 걸 볼 수 있어요. “자자, 열심히 해! 뛰어! 힘내!”라는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에요.
올레는 제주 올레길의 올레입니다. 이전에 에어비앤비할 때 알레올레라는 이름을 썼는데요.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알레올레 차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Q 차방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해에 80세가 됐어요. 나이가 드니 제일 걱정되는 게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나를 알고 제대로 살다 가야 할 텐데 싶더라고요. 아마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치매를 두려워할 거예요.
그래서 운동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사실 나이 들어가며 가장 부족해지는 게 사람들과의 소통이에요. 만나는 사람들도 제한적이죠. 온종일 서너 마디 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정말 치매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무의미한 일상을 좀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내가 좋아하는 찻자리를 열어 젊은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시작했죠.
Q 온라인 플랫폼으로 차방을 시작하신 건데,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잖아요. 제가 인스타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또래와 비교하면 많이 하는 편이지만, 디지털 시스템이 노인이 하기에 그렇게 편하지가 않아요. 그래도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조금씩 해나가고 있어요. 적극적인 마음으로 배우려고 하면 누구든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플랫폼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약속하고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Q 많은 분들이 수익을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모든 시간에 모든 사람을 꽉 채워 운영하고 있지는 않아요.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 그래요. 하루에 평균 두 팀 정도 하는데 가장 적을 때는 두 사람이 왔다 가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충분히 넉넉한 용돈 정도를 얻고 있습니다. 아, ‘노인’에게 넉넉한 용돈이에요.(웃음)
Q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20대 중후반부터 70대까지가 저희 차방을 찾는 고객들인데요. 자제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찾아오니 매일이 다르잖아요.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Q 운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전체 손님 중에 한 40% 정도가 혼자 오세요. 제 프로그램은 원래 한 타임당 4명 정도를 받게 설계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예약은 거의 안 받아요. 만약 혼자 오신다면 한 분만 받아요. 이곳에 와서 이야기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으시거든요. 요즘 젊은 분들이 고민도 많고 아픔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과 섞이면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저는 차방을 비즈니스로 생각해서 수입을 내려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찾아온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할머니가 손주 이야기를 듣고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할머니 생각은 이래.”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제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볼 때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Q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어떤 세대와 이야기를 해도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고, 찾아온 손님들도 만족해하시고요. 어느 연령대가 오더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에게도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기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는 손님들에게 방명록을 받아요. 우리는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싶은 건 방명록에 안 쓰는데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니면 아니라고 한다면서요?(웃음) 고맙게도 차방을 운영하는 10개월 동안 많은 분들이 방명록에도, 프립에도 좋은 리뷰를 많이 적어주셨어요.
차방을 찾아주는 분들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알레올레 차방에 오시는 모든 분들은 저에게 ‘귀한 선물’이에요.
배우 이원종(56)과의 인터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기분이었다. 그와 나눈 이야기에는 희로애락이 녹아 있었으며, 그의 다양한 모습도 깃들어 있었다. 이원종은 연기에 관해 얘기할 때는 한없이 진지했고, 재밌거나 행복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세상 깊은 보조개 미소를 지었다. 특히 그 미소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았다.
사실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이원종은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처럼 편안하다. 지난 8월 연극 ‘더 테이블’로 2017년 이후 5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원종. 한껏 고무된 그는 10월에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저는 연극무대에 계속 서고 싶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집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죠. 하지만 10년간 쌓은 연극 경력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까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배우로서 누린 혜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은 제게 보약이고, 링거예요. 드라마나 영화로 열심히 달렸으니 연극으로 열심히 잘 쉬기도 해야죠.”
타고난 배우의 우연한 탄생
지금은 천명과도 같은 배우의 길. 역사의 서막은 우연히 시작됐다. 경기대학교 재학 당시 이원종은 예쁜 여학생을 보고 따라서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도 배우에 큰 뜻은 없었다고. 그러다 강원도 최전방으로 입대한 후 신의 계시 비슷한 것을 느꼈다.
“군대에 있다 보니 1, 2학년 때 연극했던 것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휴가 나오면 도서관에 가서 연극에 관한 책을 무작위로 골라 읽었어요. 연극의 ‘연’ 자도 몰랐는데 책을 읽다 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복학한 후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공부도 열심히 했죠.”
배우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원종은 무작정 대학로로 향했다. 여러 극단을 전전하던 끝에 마침내 그는 극단 ‘미추’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추는 과거 MBC와 마당놀이를 공동 주최하던 유명한 극단이다.
“실전 무대 연기에 대해 극단에서 많이 가르쳐줬어요. 연극배우는 많은 탤런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탈춤이나 한국무용, 발레 같은 현대무용도 해야 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것이 좋죠. 그런 것들을 배우고 자신을 채우면서 배우들은 ‘연극뽕 맞았다’는 표현을 썼어요. 저는 연극뽕을 아주 제대로 맞았죠. 하하.”
이원종은 미추에 들어가고 이듬해인 1992년 ‘오장군의 발톱’ 주연을 맡았다. 그 작품으로 러시아에 공연도 하러 가고, 연극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연극배우의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1990년대는 이원종에게 가난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원종은 1994년, 6세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연기 선생님으로 두 사람은 가진 것 없이 사랑으로 가정을 이뤘다. 그는 “마당놀이 한 번 하면 50만 원 번다. 공연을 3개월 동안 하는데, 연습은 또 석 달 한다. 그러면 1년이 거의 다 지난다”라며 1년 연봉이 50만 원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기 때문에 그는 젓갈 장사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명세 감독이 이원종에게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출연 제의를 해왔다. 그러나 이원종은 ‘연극은 순수예술, 영화는 대중예술로서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이명세 감독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러브콜을 보냈고, 마침내 이원종은 마음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끝내 출연을 거절했으면 그는 평생 후회할 뻔했다.
“감독님이 저의 거절에도 대본을 주시고, 배역도 저한테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형사 역할과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짱구 역할이 있었는데, 결국 형사 역할을 했어요. 장장 7개월 동안 촬영했죠. 그때는 필름으로 촬영해서 한 신 한 신이 무척 소중했고, 연기 연습을 더 철저히 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 거의 다 배웠죠.”
이후 이원종은 2001년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현각 스님, ‘신라의 달밤’에서 조폭 마천수로 등장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 SBS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종로 두목 구마적을 연기해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극 중 구마적과 김두한(안재모 역)의 대결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 64%까지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원종은 “ 20년이 지났는데 저는 아직도 구마적”이라면서 “구마적은 내게 행운이자 숙제”라고 표현했다. “가수도 평생 히트곡 하나 남기기 어렵다고 하는데, 배우로서 닉네임 하나를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죠. 반면 역할이 제한된다는 단점도 있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어요.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코믹한 연기도 많이 했죠.”
OTT의 유행, 또 다른 전성기로
올해 이원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먼저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이하 ‘종이의 집’)에 모스크바 역으로 출연했다. ‘종이의 집’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동명의 스페인 드라마가 원작이다. 이원종은 원작의 모스크바와 싱크로율이 높아 제작진이 캐스팅 1순위로 점찍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종이의 집’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그린다. 원작의 성공으로 기대감이 매우 높았으나,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후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원작을 따라 하려는 것이 느껴져 이질감이 강하게 들었다는 반응이다. 이원종은 이에 대해 안타까운 탄식을 했다.
“우리가 조폐국을 털었잖아요. 우리나라 돈은 유럽 전역에서 쓰이는 유로화와 달리 남북한에서만 쓰이는 돈이에요. 그리고 원작에서는 조폐국에서 10억 유로, 한화로 1조 3700억 원 정도를 털었지만, 우리는 4조 원을 털었어요. 그것을 어떻게 운반할지도 재미가 될 수 있죠. 겨울에 후반부인 7~12부가 공개될 예정인데, 한국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본격적으로 재밌어질 예정입니다.”
또한 ‘종이의 집’을 통해 젊은 배우들과 호흡한 이원종은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종서의 연기에 대해 “날것의 매력이 있다”면서 칭찬한 바 있다. 이원종은 전종서를 비롯한 젊은 세대의 연기를 칭찬한 것이라고 짚었다.
“전종서는 제가 지금까지 봐온 것과 다른 연기를 하는 거예요.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사물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거죠. 참 신선했고 같이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저는 현재 50세가 넘었고, 그 친구는 20대잖아요. 지금 20대는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느꼈고, 30대, 40대가 되면 어떤 연기를 할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또 이원종은 쿠팡플레이 드라마 ‘범죄의 연대기’에 출연한다. 범죄물에 유독 많이 출연하면서 형사와 범죄자를 오간 이원종. 이번에는 피해자 대표 역을 맡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원종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예로 그는 OCN ‘손 the guest’에서 박수무당 역을 연기했는데, 무당을 직접 여러 명 만나보고 탐구했다. 덕분에 실감 나는 연기가 가능했다.
“‘범죄의 연대기’에서 맡은 역할은 대학교 강사인데 사기를 당한 사람이에요. 아는 변호사한테 부탁해서 기록물도 확인해봤는데, 실제로 교수들이 사기를 많이 당하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이 어떤 과 교수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도록 열어두셨어요. 제가 관심이 많은 철학과 교수로 설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원종은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무대에 오른다. 10월 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공연이 열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원작으로, 외딴 산장에 모인 남녀 8명과 한밤중에 침입한 은행 강도범의 인질극을 그린다. 이원종은 극 중 도모미의 아버지 노부히코 역을 연기한다.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배우 13명이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쳐요. 요즘 이런 연극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어두운 이야기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엉뚱하고 독특해요. 거기서 나오는 재미를 자신합니다.”
실제 이원종은 어떤 아빠일지 궁금했다. 슬하에 두 딸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이원종은 “아버지가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자상하고 친근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애들이 제가 자상하다고 느낄지 아닐지는 또 모르는 일이죠. 큰딸은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고, 둘째 딸은 외국 대학교에 다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저는 큰딸한테 한 달에 월세 개념으로 30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립심을 길러주고 싶어서죠.”
‘기회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원종은 어떤 작품이든 어떤 역할이든 노력을 쏟는다. 그래서 매 작품 다른 모습이 나오고, 새로운 연기가 보인다. 외국 작품처럼 우리나라 작품의 주인공도 나이가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원종이 주인공 그 자체인 작품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떤 배역을 맡아 연기하든지 ‘이원종이라는 배우, 참 재미있더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는 물리적인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아 잘 소화해내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1965년생인데 내년에는 제게 맞는 작품이 뭐가 될지 아직 모르죠. 그런데 50세든 60세든 마음은 똑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나이는 먹었지만 저도 청춘이에요. 늘 사랑하는 것을 느끼죠. 그러니까 60대도 60대에 맞는 사랑과 이별이 있는데, 그게 제게 연기로 주어진다면 잘 소화해내고 싶다는 거예요.”
2021년 80세 이상 자살률이 61.3명으로 연령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 및 자살생각률의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보고, 노인 등 정신건강 취약계층 및 자살 고위험군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1년 자살사망자는 1만 3352명으로 2020년보다 157명으로 증가했다. 자살사망률(자살률)은 26.0명으로 2020년 25.7명에 비해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은 40대, 50대에서는 사망원인 2위, 10대부터 30대에서는 사망원인 1위를 기록했다.
자살률은 80세 이상이 61.3명으로 가장 높았다. 70대 41.8명, 50대 30.1명, 60대 28.4명 순으로 나타나 중장년층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로는 40대 28.2명, 30대 27.3명, 20대 23.5명, 10대 7.1명 순으로 이어졌다.
성별로 보면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이 모두 증가했다. 남성의 2020년 자살사망자는 9093명, 자살률은 35.5명인데 반해, 2021년 자살사망자는 9193명, 자살률 35.9명으로 늘었다. 여성은 자살사망자 4102명, 자살률 15.9명에서 각각 4159명, 16.2명으로 역시 그 수치가 증가했다.
복지부 측은 “자살은 사회 구조적, 개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어느 하나로 설명하긴 어렵다”라면서도 “지난해 자살률 증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 및 자살생각률 증가, 청소년‧청년층 자살률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6월 복지부가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위험군은 2019년 3.2%에서 올해 16.9%로 5배 증가했다. 자살생각률 역시 같은 기간 4.6%에서 12.7%로 3배 증가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우울증 진료환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우울증 진료환자는 93만 3481명으로 지난해(84만 8430명) 대비 10.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제‧사회적 영향이 본격화되는 향후 2~3년간 급격히 자살이 증가할 수 있어 우려를 표하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종교계 등 민간과 함께 생명존중캠페인을 열고 자살 예방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을 79개로,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 지원 사업 운영 지역을 9개 시도로 늘리는 등 자살시도자‧유족 등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복지부는 지난 8월 자살예방법 개정 및 시행으로, 경찰‧소방이 당사자 동의 이전에 자살예방센터로 자살시도자와 유족 등의 정보를 연계할 수 있게 했다. 일반인보다 20~30배 자살위험이 높은 자살시도자, 우울장애 발병위험이 일반인보다 18배 이상 높은 자살 유족 등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복지부는 향후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 수립을 통해 5년간 추진할 자살 예방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며 범국민 생명존중문화 확산, 자살 고위험군 선제적 발굴‧개입 및 자살 예방 전달 체계를 확대하고 개편해나갈 계획이다.
곽숙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그간 감소 추세였던 자살률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부는 국민의 정신 건강을 보다 면밀히 살펴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적극적인 개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살 예방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더하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문적 치료 또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게 국민 모두가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웰다잉은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한다. 넓게는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준비하는 동시에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과정 전반을 말한다. 이번 ‘시니어 잡’에서는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슬픈 유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주는 직업, 장례지도사를 추천한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의식, 즉 죽은 자를 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한 의식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장례 상담, 시신 관리, 의례 지도, 빈소 설치, 각종 장례 행정 업무 등 장례 관련 업무를 절차에 따라 수행한다.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운반되면,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사망진단서를 확인한 후 절차에 따라 시신의 옷을 벗기고 알코올이나 소독약품을 사용해 몸을 깨끗이 닦는다. 그 다음 준비된 수의를 입히고 시신의 몸과 다리 등을 묶어 관에 모신다. 상주의 종교에 따라 제사 의식을 거행하며, 제사 의식이 끝나면 관을 장지나 화장터까지 운반하고 관을 묻거나 화장을 한다.
현재 고령화 사회인 만큼 매년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장례지도사의 역할과 수요 역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례지도사는 과거에는 중장년층이 주로 하는 전문직으로 취급됐지만, 현재는 20·30대 젊은 장례지도사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0대 여성 장례지도사가 급증하고 있는데, 직업 인식이 좋아진 동시에 여성의 시신은 가급적 여성이 맡아주기를 바라는 유족의 요구가 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장례지도사 자격증 취득 방법
장례지도사 자격증은 2012년부터 국가자격제도로 시행되고 있다. 이는 장례지도사가 전문 직업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자격증 취득은 무시험 과정 이수형으로 진행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①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졸업, ②평생교육원 졸업, ③직업훈련소 교육과정 수료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장례지도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을지대학교,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창원문성대학교, 대전보건대학교까지 총 5군데다.
장례지도사 교육기관에서는 3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중 250시간은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기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50시간은 장례식장에 파견되어 실습한다. 장례 상담, 장사 시설 관리, 위생 관리, 염습 및 장법 실습, 공중보건, 장례학 개론, 장사 법규, 장사 행정 등에 대해 배운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 취업한다. 장례 관련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설공단 등 공기업에서 장례지도사를 별도로 채용하는 경우가 있고, 서울·대전 현충원 등 국가 봉안 시설에서 채용이 진행되기도 한다. 자신이 직접 장의업체를 운영할 수도 있다.
중장년 취업의 허와 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경력을 쌓으면 연봉을 높일 수 있다. 장례지도사 연봉의 하위 25%는 약 3000만 원이고, 중위는 3200만 원, 상위 25%는 3500만 원이다. 월급은 보통 250만~300만 원으로 일반 직장에 다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월급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는 일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 아니다. 장례지도사는 근무시간이 길고 불규칙하다. 또한 누군가의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큰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장례지도사. 실제로 요구되는 조건이 많다. 먼저 장례지도사는 장례 절차, 장례 및 묘지에 대한 각종 행정 절차, 수시·염습을 비롯한 시신 위생처리 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죽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을 하므로 담력과 침착함이 요구된다. 매일 누군가의 시체와 죽음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또한 불행한 일을 당한 유족에 대한 서비스 정신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장의 업무를 수행해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도 요구된다.
현재 장례지도사의 고용 시장은 포화 상태다. 앞서 말한 대로 20·30대 젊은 장례지도사가 늘어나고 있는데,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전망이 뚜렷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년이 없는 평생 직업이라 40~60대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이처럼 전 연령이 장례지도사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장례지도사로 취업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중장년층은 자격증 취득 후 대부분 장례지도사가 아닌 상조회사 영업직으로 취업이 이루어진다. 상조회사나 대형병원에서는 장례지도사로 젊은 층을 선호하다 보니 중장년층은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서울 서초장례지도사교육원의 김종호 원장은 “20·30대가 워낙 많아져서 중장년층이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수도권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 어르신들은 지방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경력을 쌓은 후 수도권으로 옮겨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도 여주에 사셨던 분이 50대에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6개월만 일하라고 태백으로 근무를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예 태백으로 이사하셔서 5년째 잘 지내고 계신다. 공기도 좋고, 낚시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시간을 보내신다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김종호 원장은 또한 중장년층은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추천했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반려인을 대신해 장례 절차, 상담, 납골, 펫로스 상담 등 장례 전반에 대해 설계하고 도와주는 전문가를 말한다. 연령과 경력에 제한이 없고,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전망이 밝은 직업이다.
벽돌 같은 무선 전화기부터 화면이 반으로 접히는 스마트폰까지, 검은 배경화면에 암호 같은 글자를 입력하던 286 컴퓨터부터 맥북까지, 손으로 감아 돌리던 카세트테이프부터 MP3를 지나 스트리밍까지. 이 모든 디지털 변화를 경험한 세대가 있다. X세대다. 요즘 애들이었던 이들이 요즘 부모인 ‘엑스틴 세대’로 돌아왔다.
X세대는 1970년대생(45~54세)을 말한다. 1990년대에 20대 청년 시절을 보낸 이들로 지금은 10대 자녀를 둔 기성세대가 됐다. X세대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자녀를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인 이들을 ‘엑스틴 세대’라고 부른다.
‘요즘 애들’의 시초, X세대
압구정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X세대. 서태지와 아이들과 마왕 신해철에 열광하며 멀쩡한 청바지를 일부러 찢어 입고 다닌 세대다. 시쳇말로 ‘요즘 애들’의 시초다.
NHN 데이터는 ‘다이티 데이터 마켓’ 트렌드 리포트에서 X세대에 대해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고, 자녀보다 돈이 더 많은 첫 세대’라고 말했다. ‘트렌드코리아 2022’는 X세대 중 자녀를 가진 40대를 ‘X-TEEN’(엑스틴)이라고 정의했다. 10대인 자녀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부모 세대라는 의미다. 경제·문화적으로 풍요를 누린 세대이기에 자신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고, 자녀들을 위한 소비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엑스틴 세대는 자녀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도 있겠지만, X세대는 Z세대만큼 자유와 풍요의 시대를 경험했다. 이들은 1990년대 문화를 이끌며 ‘대중문화’를 만들어낸 세대라고 평가받는다. 1990년대를 휩쓸었던 통 넓은 바지의 힙합 패션, 지금은 ‘디스트로이드 진’이라는 장르가 된 찢어진 청바지, 록 스피릿이 담긴 ‘스키니 진’ 등은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를 타고 돌아와 이제는 Z세대가 즐기는 스타일이 됐다. 또한 엑스틴은 아날로그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디지털 전환의 격변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디지털 사용에 익숙하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큰 인기를 얻은 ‘싹쓰리’의 음악을 자녀와 함께 즐기고, 광클릭(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한다는 뜻)을 마다치 않으며 BTS 굿즈나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를 자녀에게 선물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사회를 경험한 Z세대 자녀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비시장 주도하는 ‘엑스틴’
‘트렌드코리아 2022’는 (엑스틴 세대는) “탈권위와 탈관념을 외친 세대답게 과거의 40대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고정관념을 깨는 소비에 도전하는 세대”라며 “Z세대 자녀와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인싸력(잘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는 ‘인사이더’와 ‘힘 력’의 합성어)을 몸소 체득한다”고 말했다. 유통가에서 Z세대 구매자를 잡으려면 X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9~2020년 2년간 40~60대의 온라인 카드 결제 규모는 49% 증가했다. 특히 쿠팡, G마켓, 11번가, 옥션 등 종합 쇼핑몰에서의 40대 이상 결제 규모 증가율이 30대보다 1.8배 높았다. 청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배달 앱이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도 엑스틴 세대의 소비가 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쉽게 받아들이면서 모바일 사용에 익숙하고 실질 구매력이 높은 엑스틴 세대는 당분간 소비시장을 이끌어갈 큰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10·20세대가 주도하던 소비 트렌드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 엑스틴이 소비시장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만큼, 40대 모바일 앱 사용 순위를 통해 그들의 소비 패턴을 읽어보자.
40대 남녀가 주로 사용하는 앱 1, 2, 3, 4위는 카카오톡, 네이버, 네이버 밴드, 쿠팡이다. 여성의 경우 인스타그램 활용도도 높았다. 40대 남녀의 엔터테인먼트 앱 1, 2위는 넷플릭스와 웨이브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자녀들에게 휴대폰을 넘겨주는 일이 많아 틱톡, 로블록스 같은 10대 인기 앱 설치율도 높다는 점이다. 패션 앱은 남성의 경우 무신사, 하이버를, 여성은 에이블리, 지그재그를 많이 사용했다. 종합쇼핑 앱은 쿠팡, 11번가, 당근마켓을 주로 이용했다. 또한 남성은 옥션, 인터파크 같은 오픈마켓 앱을, 여성은 GS SHOP, 홈앤쇼핑, CJ온스타일 같은 홈쇼핑 앱을 주로 사용했다.
40대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한편, 60대는 PC로 시청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공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스마트폰·PC 이용행태 6월 보고서'에는 이 같은 결과가 실렸다. 6월 스마트폰을 이용해 28개 채널 방송 프로그램을 1회 이상 시청한 순 이용자는 1190만 6000명으로 조사 모집단의 36.57%에 달했다.
연령별 스마트폰 방송 프로그램 순 이용자 비율은 40대가 42.96%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37.96%로 뒤를 이었다. 60대는 34.98%, 20대 33.77%, 30대 33.12%, 10대 28.78% 순이었다.
순 이용자 비율은 3월 이후로는 40대가 1위를 유지했다. 10대는 1월 79.97%, 2월 77.42%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3월 64.67%, 4월 44.67%, 5월 38.43%로 하락세를 기록하더니 6월에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20%대로 떨어졌다. 개학과 단계적 일상 회복 등의 영향으로 10대의 외부 활동이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PC를 통한 23개 채널 방송프로그램 순 이용자 비율은 25.33%로 493만 100명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28.34%)와 40대(28.13%), 60대(27.71%)가 비슷했다. 50대는 26.49%였고 30대와 10대는 각각 20.8%, 20.67%에 그쳤다.
4월과 5월 PC 방송프로그램 순 이용자 비율은 60대가 각각 34.50%와 35.84%로 1위였다. 6월 실시간 서비스 순 이용자 비율도 60대가 28.38%로 가장 높았다. 비실시간은 20대에서 27.0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60대는 PC를 통해 본방송을 보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20대는 주로 지난 방송을 다시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방통위는 모집단 약 3256만 명과 연령별, 성별 대표성을 가진 패널 2601명을 구성해 스마트폰 이용행태를 조사했다. PC 이용행태는 모집단 1946만 명, 패널 1002명이 조사를 시행했다.
귀농 11년 차 김명옥(60, ‘영동구구농원’ 대표). 그는 잠자는 시간 외엔 일에 폭 파묻혀 산다. 마르크스가 말했다. ‘일에 매몰된 인생은 노예와 다름없다.’ 김명옥에게 이건 썰렁한 농담일 뿐이다. 그에게 일은 몸에 붙은 피부와 마찬가지다. 날이면 날마다 농사라는 레일 위를 열차처럼 질주한다. 그래 현재 도착한 역은 어디인가? 목적한 종착역은 여전히 멀다. 뒤로 달리거나 멈춘 적은 없다. 하지만 사고가 잦았다.
귀농 초기의 양상은 한마디로 실패의 전시장이었다. 실패라는 건 묘하다. 삶을 숙성시키는 효모니까. 김명옥은 실패 경험을 연료로 삼아 질주에 가속을 붙인 게 아닌가. 말하자면 그의 귀농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로까지 추락할 수 있는 인생사의 위험 요소를 어떻게 비켜나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처세서이기도 하다.
김명옥은 나무를 가꾸는 취미를 한껏 살려 조경용 나무를 심기로 하고 귀농했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후미진 산골의 싼 땅을 사들여 주목을 잔뜩 심으며 나무농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전에 살았던 곳은 대전. 거기에서 호프집이나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속세의 희로애락을 충분히 경험한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도시 생활 졸업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나무와 새, 구름을 동급생으로 삼아 산골에 입학했던 것이다.
“자연 속에서 쉬고 싶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질리고 지쳐서. 농원에 심은 나무들이 자라나는 걸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즐기며 우아하게 살고 싶어 산골에 들어온 것이다. 시간에 얽매이고 사람 관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을 실현할 기회를 마련했던 셈이다.”
자연과 음악을 즐기는 산골 생활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시골이 적성에 맞기도 해 만족감이 컸다. 나무농원으로 당장 소득을 거둘 순 없었지만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철도공사 직원인 남편의 월급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딱 반년쯤 지나자 슬슬 지루해지더라.(웃음) 나에겐 역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농사를 시작했다. 산야에 흔한 냉이를 캐 농산물 시장에 팔았던 게 출발점이었지. 그러나 대가가 보잘것없어 포기하고, 하우스 두 동을 지어 상추농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실패한 이유가 있겠지?
“농산물경매장에 가져갔는데 사정없이 가격을 후려쳤다. 죄목은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상추라는 데 있었다. 상추의 외모마저 농약으로 조절해 키운 농약농법 상추보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였지. 예쁘게, 너무 크지 않게, 입에 넣기 좋도록 손바닥만 하게 만들기 위해 성장억제제를 사용한다는 걸 알고선 기가 막혔다. 허탈해 의욕을 잃을 지경이었지. 게다가 폭우가 하우스를 쓰러뜨려 깨끗이 접었다.”
이후 어떤 작물을 재배했나?
“복숭아와 자두로 수익을 거두는 농가들이 있는 걸 보고 이번엔 그 둘을 심었다.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어떤 자두 농가는 1000평 과수원에서 수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는데, 내가 기른 자두들은 대부분 벌레 먹어 팔 수 없는 식의 난항이 거듭되었다. 결국 자두나무를 모두 캐낼 수밖에 없었다.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땀 흘렸지만 결과가 그렇게 허무했다.”
최선을 다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농사란 왜 그리 어려울까. 그런데 귀농 초기의 실패는 공부이지 않나? 시행착오라는 통과의례를 심하게 겪지 않은 귀농인을 보기 힘들다.
“귀농 11년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건 농사로 돈을 벌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농산물 생산만을 전적으로 하는 귀농은 반대한다. 가공과 관광,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게 그나마 가망성 있다. 복숭아와 자두에 실패한 뒤 새로운 타자로 복숭아 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내세웠다.
복숭아로 통쾌한 홈런을 쳤나?
“어림없더라. 또다시 실패했다. 애로점이 한둘에 그치지 않았다. 가령 체험자들이 복숭아를 따서 집으로 가져가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따도 되는 복숭아들을 지정해줘도 통하지 않았다. 무작정 따놓고선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땅바닥에 버리거나, 덜 익은 걸 따 팽개치기도 했다. 아이고, 체험 프로그램도 소용없었던 거다.(웃음) 이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덤벼든 게 산골오징어 사업이었다. 물오징어를 사다가 산골의 청정한 햇살과 바람에 건조시키는 오징어 사업으로 판세를 역전하려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신통치 않아 몇 해 만에 접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던 셈이다. 당연하게도 김명옥의 농사를 훼방한 어떤 세력의 음모나 간계가 작동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동쪽을 향해 뛰었으나 서쪽에 닿는 식의 요상한 결과가 웬일인지 그냥 반복됐을 뿐이다. 이렇게 매사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게 농사다. 그걸 깨닫는 데 수년이 걸렸다. 비싼 수업료를 치렀던 거다. 덕분에 그는 비로소 농사의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농산물 가공과 위탁판매에도 나섰으며, SNS 마케팅으로 직거래 고객을 확보했다.
힘들수록 밀어붙인다, 끝을 보려고
김명옥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농사 종목은 자그마치 40여 종. 숲속에 묻힌 농원은 은둔처럼 잠잠해 보이지만 너른 터 도처가 생산 현장이다. 농원 뒤편 둔덕은 후덕하게 펑퍼짐한 장독들로 빼곡하다. 그가 만든 된장은 구수한 맛으로 인기가 있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귀농 초기의 시련은 가혹했으나 이젠 기틀이 잡혔다. 궤도에 올라섰다. 작물들의 비위를 능숙하게 맞춰줄 수 있게 됐으며, 그토록 힘겨웠던 판로 확보 문제에서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농사에 번번이 타격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더 세차게 밀어붙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더 크게 일을 벌였다. 대전에 살 때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11번이나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목발을 짚고 장사를 했다. 나 자신도 통제하지 못할 뭔가 끈질긴 게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뭐든 좋은 뜻으로 시작한 거라면 난관을 넘어 끝을 볼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 하나는 놓지 않고 살아왔다.”
남다른 뚝심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한계마저 도전해온 셈인가? 귀농 후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나무농원을 조성하던 초기에 나를 땅 투기꾼으로 여긴 일부 원주민들의 색안경에 씁쓸했다. 그들은 심지어 길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른바 텃세를 맛봤던 셈이다. 외지인이 들어오면 일단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게 시골이다.”
도시든 시골이든 인간관계에 충돌과 불합리가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길까지 끊는 건 너무했다.
“이곳에 내려와 큰 배신을 당한 일도 두 번 있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상처도 깊었지. 아예 떠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떠나는 건 지는 거라서 주저앉았다.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좋은 인연, 나쁜 인연 고루 있는 법인데, 사실 이곳에서 맺은 좋은 인연이 더 많다. 도시의 각박함에 비하면 한결 나은 곳이 시골이고. 처음에만 문을 닫을 뿐 알고 보면 정겨운 게 시골 사람들이다.”
농원의 크기는 광활하고, 일은 숱하게 많다. 이를 혼자 감당하다니.
“내가 걷는 모양새를 보라. 보행이 자유롭지 않은 걸 알 만하지 않나? 연일 계속되는 노동으로 관절 곳곳에 무리가 간 탓이다. 몸을 상해가면서도 일을 줄이기는커녕 갈수록 늘리는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남편이다. 우리 부부는 사실 이상적인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농원의 모든 실무를 맡았고, 남편은 직장에서 받아온 월급을 농장 조성과 유지에 털어 넣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남편은 이상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가 자주 내뱉는 푸념이 있다. ‘아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툭하면 일을 벌이는 나를 못마땅해한다.”
부군이 뭐라 하든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응수할 뿐인가?
“그냥 밀고 나간다. 끝까지 가볼 참이다. 이런 나를 남편은 이제 포기했다.(웃음)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둘의 성향엔 차이가 있다. 난 긍정을 중심에 둔 반면 남편은 신중하다. 그런 남편과 마주 앉아 커피 마시는 시간은 가장 행복한 때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연극 단체 창단하기도
현존하는 조류 가운데 가장 작은 새인 벌새는 1초에 80번의 날갯짓을 한다던가? 김명옥은 벌새를 닮았다. 부지런한 노동력을 발휘해 성취를 향한 날갯짓을 하니까. 그는 몸이 닳을 때까지 일하고 또 일을 하는 게 요번 세상의 역할이라는 양 연일 농원의 사방팔방을 누빈다. 그는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최초의 인간이거나 마지막 인간일지도.
농원 일만이 다가 아니다. 낮이면 면 소재지로 조르륵 달려가 가게를 연다. ‘구구사랑방’이라는 간판을 단 이 가게에서 그는 양푼이비빔밥과 옛날식 토스트를 만들어 점심 영업을 한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는 사랑방이기도 하고, 농산물 직거래 마켓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이곳이 아마추어 연극 단체의 아지트라는 점이다. 극단 이름은 ‘구구극단’이다. 김명옥은 이 극단의 창단 주역이자 연출을 맡고 있다. 올가을엔 ‘콩나물연가’라는 제목의 연극을 올릴 참이다. 참여 연기자들은 모두 지역민이다. 얼마 전 김명옥과의 인연에 이끌려 이 동네로 귀촌한 배우 주부진이 조력자로 나서 공연 준비에 탄력이 붙었다.
“심천면 소재지는 고풍스레 아름답다. 그러나 쥐죽은 듯 고즈넉하다. 뭔가 생기를 부여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극단을 만들게 됐다. 난 20대 때 대전에서 극단 활동을 했는데, 30여 년 만에 다시 연극을 즐기게 된 거다. 이건 귀농으로 얻은 보너스다. 그런데 귀농으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내 안에 있는 성취욕을 분출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지난 11년간의 농업 소득은 열악해 오히려 까먹은 게 더 많지만, 뭐 그런들 어떤가? 목표는 높게 잡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산다. 향후 목표는 농원에 예술촌을 접목해 성장시키는 데 두고 있다.”
그는 물심양면의 불황으로 괴로웠던 귀농 전반전의 애환을 거름 삼아 정신적 체력을 단련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질주한다. 예술이 실린 농원을 향해. 하지만 설령 어긋나도 무방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담대하다.
김명옥이 주는 귀농 Tip
•귀농으로 수입을 창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귀농 3년 차쯤에 철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최소 3년은 버틸 수 있는 자금력과 정신력을 미리 다지자.
•농토 구입과 집짓기를 서두르지 마라. 일단 시골집을 임대해 살며 농사 수련을 하자.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미리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즐길 수 있는 귀농’을 구상하자. 그러자면 농사 규모를 작게 잡고, 집도 작게 짓는 게 필요하다. 농막식 소형 주택을 짓고 실속 있게 사는 게 좋겠다. 대신 조경엔 신경 쓰자.
•농기계 장만 목적의 자금 투자를 자제하라. 귀농인 상당수가 고가의 농업 장비 구입 때 받은 대출 이자 상환 부담에 허덕인다. 임대 장비를 빌려 쓰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