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 법)은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왕창 망했다는 상인들의 아우성이 있는가하면, 특수를 노리는 ‘란파라치’ 양성학원 이야기도 추석 밥상머리의 인기 메뉴였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이야기였다.
◇본말이 전도된 김영란법 논쟁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하여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정된 지 상당한 세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시행을 코앞에 둔 추석 전에야 ‘접대’문제로 논쟁에 불이 붙었다.
3.5.10제에 이르러서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한도액이 낮으니 올려야 한다.”고 당연히 접대 받아야 되는 것처럼 주장하였다. 몇 천 원짜리 대중음식점을 이용하는 서민이나 대다수 선량한 공직자도 주위에 많다. 청렴사회를 구현하는 방안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는 이런 논쟁에 가슴이 아프다. 접대를 하여야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
누구는 투덜대며 몸조심을 다짐할 테고, 대박의 꿈에 부푼 누군가는 법 시행을 고대할 것이다. 올 추석 백화점 매출은 “건강식품·생활필수품 등 실속형 중저가 상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5만 원 이하 선물 주기 예행연습을 하는 셈이다. 그간 외쳐대던 사법·검찰개혁·특권 내려놓기 이야기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먹이 사슬의 구조
모피아로부터 시작한 관피아·해피아 등은 모두를 옥죄고 있는 먹이사슬의 전형이다. 전·현직이 뒤엉켜있고 혈연·지연·학연 사슬은 우리사회의 가장 큰 폐해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3.5.10제를 국민 앞에 제시하면서 고위 공직자, 사회지도층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수십·수백억 먹이사슬에 묶이고 있다.
국가자격증 자동부여제도를 개선할 때가 되었다. 공무원으로 일정기간 근무 후 퇴직하면 법무사, 세무사, 관세사 등 국가자격증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퇴직 후 취업을 일부 제한하고 있으나 ‘자격사 개업’은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50초반에 은퇴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그럼에도 고위공무원은 정년퇴직 후에도 공기업으로, 다시 사기업으로 자리가 이어진다. 공공기관 임원은 자회사로, 다시 협력업체로 생명을 이어간다. 토박이도 퇴직하는 그 나이에 ‘물 위의 기름’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낙하산 타고 무엇을 하겠는가?
◇먹이 사슬부터 끊어라
퇴직 즉시 공무원에 대한 국가자격사 자동부여제도를 시정하여야 한다. 쟈격을 부여하더라도 퇴직 후 상당기간 경과 후에 하여야 한다. 대신 공무원선발을 암기식 시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일정한 경력소유 자격사 중에서 다수를 채용할 필요가 있다.
공직재직기간에는 당연히 자격이 정지되고, 퇴직 후 상당기간이 지나야 자격을 회복하도록 하여야 한다. 퇴직 후 일정기간 취업·개업제한은 근무처, 담당업무를 구별할 필요 없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김영란법이 공직자 등의 의식을 개혁하고 국가를 한 단계 도약시킬 좋은 기회라고 흔히 말한다. 이 법이 국가를 확 개조하는데 일익을 다하기 바란다.
1분을 웃으면 10분간 에어로빅한 효과가 있고, 심폐기능이 활발해지며, 엔도르핀이 팍팍 돌아 면역력이 증가한다. 한 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는 일소일소(一笑一少)란 말은 나온 지 오래됐고, 아토피 피부병을 웃음으로 치료한 사례가 TV 프로그램인 '생로병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웃음치료(Laugh Therapy)란 말이 생겨나며 학문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뇌는 바보여서 가짜웃음도 진짜웃음으로 착각한다거나 기분이 좋아서 웃기보다 웃어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도 있다.
나는 평소 유머에 관심이 많았고 같은 말이라도 당신이 하면 맛깔나게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수명 100세 시대에 노노케어(老老Care)를 위해 노인운동, 노인건강마사지 등을 배우고 정신적으로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웃음치료를 공부하고 웃음치료사 1급 자격을 취득했다. 웃음치료사는 아직 국가자격증이 아닌 민간자격증으로 단기간 교육과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발급되므로 자격증 취득이 곧 능력이라 볼 수 없다. 모든 강사의 과정이 다 그렇지만 특히 웃음치료사는 선천적인 끼에다 스스로 연습을 통해 계속 연마해야 한다. 나는 인생은 연습이라 생각한다.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은 적은 연습으로도 발전 속도가 빠르지만, 둔재도 연습을 계속하면 향상된다고 믿고 있다. 웃음의 기본은 유머니까 평소 유머 감각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유머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1. 재미나는 일을 상상하고 말로서 표현해본다. 웃어 보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2.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 처음엔 어색한 웃음도 차차 자연스러워진다. 3. 어린아이 눈으로 세상을 본다. 유머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4. 유머 노트를 만든다. 몸에 밴 자연스러운 복습을 위해서다. 5. 개그프로를 즐겨 본다. 개그프로는 젊은이 프로다. 시니어가 이를 보고 따라 웃으면 수준급이다. 6. 타인의 유머에 적극 반응을 보인다. 실없는 소리로 치부하면 나는 더 늙어질 뿐이다. 7.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마라. 남의 유머에 빠른 반응을 보이려면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 8. 유머적인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9.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웃다 보면 좋은 생각도 떠오른다. 10. 유머 소재도 분위기와 상대의 수준에 따라 달라야 한다.
부부간 모임에서 "00 아빠는 집에서 언제 큰소리치십니까?" "예? 요즘 남자가 큰소리칠 때가 있습니까? 그냥 죽어지냅니다." "아~그냥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군요. 알겠습니다. 00아빠는 언제 큰소리칩니까?" "돈 갖다 줄 때요. 남편보다 돈이 더 좋다 하네요. 그럼 당신은 언제 큰소리칩니까?"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500원 흐흐. 사실 전 작은 소리를 못 들을 때 큰소리칩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재미있는 유머 소재는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점점 눈을 돌려 찾아보면 기발한 소재는 충분하다. 세계적인 천재 아인슈타인도 자기 뇌의 20%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 뇌는 사용할 공간이 너무 많다. 언제나 즐거운 상상으로 오늘도 웃으며 사는 것, 가족 모두의 바람입니다.
베이비시터는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고 민간자격증도 있는 전문직dl다. 요즘 맞벌이가 대세다보니 아이를 내 친자식처럼 돌봐줄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쪽지가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있다. 구인광고를 보고 정확히 어떤 베이비시터를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 돌봐줄 이모 구함’ 이라는 뉘앙스로 보아 40대나 50대 초반의 아줌마를 지칭하는 것 같다. 남자고 게다가 할아버지는 꽝이다.
베이비시터가 되려는 사람은 아이엄마와 면담을 거쳐 고용이 되겠지만 돌도 안 지난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직장에 가야 하는 아이엄마들은 불안할 것이다. 처음 약속 대로 아이를 제대로 돌봐 주어야 하는데 때리거나 먹을 것을 제시간에 맞춰 제대로 줄지에 대해 불안해한다.
급기야 CCTV를 거실에 달고 베이비시터의 동작을 살핀다. CCTV가 거실에 설치 된지를 모르고 옷을 갈아입다가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지 마세요.’ ‘아이에게 집중해 주세요.’라고는 문자 통보를 받으면 감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억울해하기도 하고 결국 그만두기도 한다.
베이비시터는 여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건강한 할아버지에게 적합한 일거리이다. 필자가 며느리를 도와서 손자, 손녀를 돌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물론 모든 할아버지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평소 아이를 사랑하는 따뜻한 심성에 신체 건강한 할아버지여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할아버지 베이비시터 장점은 이렇다. 첫째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힘이 있어서 덜 지친다. 아이를 좀 더 오랜 시간 안아줄 수 있다. 서너 살 먹은 아이가 갑자기 뛰어와서 ‘할머니!’하고 덤벼들 듯 안기면 할머니가 벌러덩 나자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버티는 힘이 할머니 보다는 강해 넘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둘째로 할아버지는 대부분 운전을 하므로 아이가 아플 때 병원 투어에 제격입니다. 동네병원은 주차시설이 좁고 열악하여 숙달된 운전자가 필요하다. 셋째로 직장에서 조직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하다. 시간 맞춰 분유를 타주거나 간식을 주는데도 할아버지가 더 잘 할 수가 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들보다 위생관념이 덜하고 아이를 건성건성 볼 것이라는 생각도 선입견이다. 요즘 할아버지들은 외출해서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손을 씻고 아이를 안아준다. 보건, 위생관념이 예전의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아이의 정서적인 면에서도 베이비시터가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 젊은 여성베이비시터는 할아버지에 비해 자주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일다. 할아버지 베이비시터는 큰돈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경제적이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힘에 부치지도 않는 아이 돌봄을 하면서 신체와 머리를 쓰므로 건강해지고 일을 한다는 자존감으로 행복해진다. 국가적으로도 노인의 의료비가 높은데 노인이 일을 함으로써 건강해지면 의료보험재정이 튼튼해진다.
한번 고착된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이돌보는 것은 여성이 제격이라고 믿고 있고 일부 타당성의 근거도 있지만 절대적은 아니다. 평소 아이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고 베이비시터 전문적인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할아버지도 훌륭한 베이비시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 가더라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계곡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은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 같은 계곡 정신을 그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했다. 진정한 승자는 세월이 지나봐야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필자가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면서 괴롭고 힘들 때 되뇌이는 생활신조다.
필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미 암소 1마리를 키우면서 새끼를 낳으면 가축시장에 팔아서 생활비와 교육비를 충당하고, 논과 밭을 소작해 먹을 것은 해결하며, 산 비탈길에서 잡목을 베서 집까지 지게지고 와서 말린 후 땔감으로 사용하는 그런 집이었다. 필자 집에선 여름철 더위는 볏짚으로 만든 멍석을 마당에 깔아 놓아 이기고, 모기와 벌레는 잡풀로 연기를 만들어서 퇴치했다. 또 부러진 소나무 옹이를 태워서 저녁 밤을 밝혔다.
이렇듯 옹색했으나 낭만도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저녁 밤하늘의 반짝이는 유난히도 많고 별들을 누나와 동생들이랑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면서 별의 개수를 셌다.
부모님은 무척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귀뚜라미와 여치, 소쩍새와 부엉이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으면 당시에는 시계도 없는데도 달그림자가 기울어진 정도와 대기 온도 차이로 시간을 말씀하시곤 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때나 어린이날, 각종 행사 때는 부유한 집안의 친구 부모들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돈 들여 파마까지 하고 온다. 특히 생전 처음 보고, 먹어보는 음식과 다과를 가지고 온다. 이런 음식을 필자는 내내 계속 얻어먹기만 했다. 필자는 이들의 이런 생활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목표로 삼았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부자 친구와 부모들에 감사한다.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으나 돌이켜보면 너무 짧은 추억의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흘러간 세월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시내 아이들은 학원 다니고 공부하는 동안 소 풀 먹이고, 소 풀 베면서 잠깐의 틈바구니 시간을 활용해 공부했다. 그래서 항상 손에 책을 들고 다녔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먹고 살기 힘든 집안에서 대학은 꿈도 꿀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 동화에 나오는 ‘상상의 우주선’이었다.
초등학교를 6살에 조기 입학해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는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는 최소 연령에 미달해 응시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직업 전선에도 뛰어들 수 있는 실력도 없어 공학도가 되기로 했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대학 전기과에 입학했다. 남들은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여행가는 사이 자격증 취득 공부와 취업준비에 매달린 결과 졸업반 여름에는 최연소 기사자격증 3개를 취득하고 국가공무원 및 한전 입사 시험까지 동시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필자는 두 가지 직장 가운데 국가공무원을 선택했다. 공무원으로서 첫 발령지는 연고도 없는 서울이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던가. 기대에 부풀어 첫 월급을 받았는데 숙박비와 식비도 충당도 못 하는 수준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계속 통장 잔액가 마이너스 되는데 이걸 누구에게 손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고민만 쌓이는 사이 한국전력공사 신입사원 연수원 입교통지서가 날아왔고 미련 없이 공무원은 사직서를 내고 한전에 입사했다. 한전은 월급이 공무원의 3배가 넘었다. 그 당시엔 후회 없이 잘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전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화력발전소에 처음 부임해 교대근무 37개월 후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으로 보직을 변경됐다. 그런데 우선 용어와 도면, 시방서, 서류가 모두 영어로 돼 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건설 기술이 없어 외국인들이 같이 투입됐는데 이들과도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영어와 사투하느라 힘들었으나 그래도 신기술 분야여서 정말 흥미로웠다. 하루 종일 보고, 배우고, 현장 쫓아다니고, 온통 정신없이 업무에 몰두하다 보면 하루해가 언제 가고 오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는 외국인은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5시 퇴근하게 돼 있었지만 한전 직원은 오전 8시 출근에 오후 퇴근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한마디로 일에 미친 미치광이처럼 업무에 몰두했다.
필자의 원자력 건설 처음 10년은 외국인들에게 배우는 시기였고, 그다음 10년은 국산원자력발전소 1호의 건설에 참여하는 성장기의 단계였으며, 이어 10년은 선행호기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립기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기술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바지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이런 공로로 국가품질명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품질상은 말보르상이지만 국내에서는 품질경영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품질상은 국가품질명장이다. 제안 실적, 설비개선 건수 및 개선 실적, 꾸준한 품질 개선 활동 실적, 자격증 취득 건수, 품질교육 실적, 사회봉사활동 시간, 현장 경력, 품질경진대회 포상실적 등으로 1차 서류심사를 한 뒤 2차 필기시험, 3차 현장실사, 4차 면접시험을 거쳐서 최종합격자를 가린다. 선출된 품질명장은 매년 10월 정부주관 품질명장 및 뺏지 시상식이 부부 동반으로 거창하게 치러지고 있다. 국가품질명장이 되면 사내에서는 사장상 공로 1등급과 해외교육, 사내외 품질개선활동 심사위원, 품질교육 등 다양하게 후진을 양성하도록 기회가 주어진다.
나이 들수록 지식을 뽐내기보다는 지혜(智慧)를 나누고 덕(德)을 베풀었을 때 자연스레 교양이 묻어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지혜와 덕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교과서나 시험도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큰 숙제와 같다. 해결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동안의 소양과 더불어 끊임없이 공부하며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체력(體力)이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오랫동안 인생 공부를 해나갈 수 있겠다. 교양 있는 중·장년의 삶을 위해 ‘지덕체(智德體)’를 향상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을 살펴봤다.
◇ Chapter 1. 평생교육원에서 智 학점 올리기
학점은행제, 총장 명의, 교육부 장관 명의 등의 방법으로 학점을 이수하는 학사학위과정을 비롯해 국가공인 자격증 과정, 비학위 교양 강좌 등을 등록할 수 있다. 1984년 이화여자대학교 봄 학기 개강을 시작으로 현재는 대부분의 대학이 각 학교의 특성에 맞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유익할 만한 수업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이화여대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 '시니어 컨설턴트'
100세 시대의 사회 상황과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생 후반기 생활 설계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제공한다. 자신을 위한 행복 노후 설계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의 삶을 지도할 수 있는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한다.
강의 정보 주 1회 15주 과정, 수강료 40만원
세부 커리큘럼 매력 있는 시니어 이미지 메이킹/ 행복의 느낌 찾기/ 인간관계 명품의 법칙/ 음식을 통한 건강관리 웰빙 장수 웃음법 등
△ 서울대 평생교육원 '고령사회의 웰다잉 전문가'
웰다잉(죽음 준비) 교육을 통해 죽음을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대면할 수 있는 지적, 정서적, 영적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죽음이 가깝고, 노년 세대에 비해 더 긴 시간 동안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중·장년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강의 정보 주 1회 15주 과정, 수강료 50만원
세부 커리큘럼 교양 강의 3주 + 성찰 강의 3주 + 결정 강의 8주 + 마무리 1주
△ 고려대 평생교육원 '품위 있는 글로벌 매너와 이미지 메이킹'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아야 할 기본 생활 예절과 비즈니스 매너, 우아한 식사를 위한 테이블 매너, 상황별 표현법과 호칭, 해외 여행 예절 등을 학습한다.
강의 정보 주 1회 15주 과정, 수강료 30만원
세부 커리큘럼 동·서양 식사, 음주 예절, 다도(茶道)와 이미지 컨설팅/ 글로벌 여행 예절(비행기, 호텔, 팁 등)/공연장 등 공공장소 예절/ 젊은 뇌 유지 비결과 스피치 훈련 등
△ 아주대 평생교육원 '부동산경매투자비법'
노후 대비를 위해 부동산 투자에 대한 확실한 학습을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부동산경매투자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론과 그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임장활동을 중심으로 입지와 공법상의 제한내용, 시가 등을 분석한다.
강의 정보 주 1회 15주 과정, 수강료 40만원
세부 커리큘럼 매수인이 꼭 알아야 할 경매절차/ 주택 임대차보호법 해설/ 좋은 물건의 선정과 임장활동방법/ 낙찰 후 사후 관리 등
△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 작가'
사진작가 신미식, 시인 이문재, 출판인 김산환, 음악평론가 임진모, 여행작가 유연태, 변종모, 우지경, 세계일주 여행가 안병일 등이 여행기 쓰기, 여행사진 촬영, 여행서 출간하기 등에 대해 강의한다. 수료 후에는 동기끼리 공동 사진전을 갖고 문집도 펴낼 기회가 주어진다.
강의 정보 주 1회 15주 과정, 수강료 58만원
세부 커리큘럼 사진 장비의 선택과 활용/ 나는 이렇게 취재를 한다/ 도전! 여행 파워블로거/ 내 글을 어떻게 퇴고할까?/ 길 위의 인문학 등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역사문화’반 44학기 개근생 홍인숙(84)씨
“머리가 아닌 마음에 남아야 진짜 인생 공부”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홍인숙씨는 무려 44학기를 이수하고도, 45학기째 수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일반 4년제 대학을 졸업하려면 총 8학기를 이수해야 하는데, 그것의 5배가 훌쩍 넘는 시간을 ‘역사문화’ 공부를 해온 것. 20년 넘게 한국사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서양 역사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수업이 흥미롭다는 그녀다.
홍씨는 “내가 젊었을 때는 평생교육원이니 문화센터니 하는 배움터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참 많잖아요.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찾아서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괜히 노인정에 들락거리는 것보다 무엇이든 배우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평생교육원을 다니게 됐어요”라며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녀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홍씨는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거창한 의미는 없어요. 그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내가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거죠”라며 “무엇보다 이 나이에 학교에 간다고 하면 마음부터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44학기를 이수하며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풍부한 역사적 지식도 쌓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마음에 남은 것이 더 많다는 홍씨. “나이를 많이 먹으니까 내용은 많이 잊어버려요.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지식보다는 내가 느끼는 행복, 즐거움이 더 크게 남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공부해온 것 같아요. 지금도 문화센터에서 수필 강의를 듣는데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글을 쓰지는 않아요. 수업 듣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니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강의를 듣는 시간만큼은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철학적인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죠.”
홍씨는 지난해 ‘민화 그리기’ 수업을 신청했다가 몸이 아픈 바람에 참여하지 못했다. 올해는 평생교육원 ‘역사문화’ 45학기를 다니며, ‘민화 그리기’에 다시 도전하고 ‘라틴 음악’에 대한 강좌도 찾아볼 예정이다. “몇 학기까지 다닐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답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귀촌 생활이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가치의 수단
농협대학에서 귀농·귀촌의 풍요로운 삶을 가꾸다
시니어들이 귀농·귀촌 대학을 찾는 이유는 농촌에 가면 웰빙을 추구하는 삶의 질 향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귀농·귀촌인의 정착 실태 장기추적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이유로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서’가 31.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가 24.8%, ‘은퇴후 여가생활을 위해서’가 24.3%, ‘새 일자리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을 위해’가 22.2% 등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농사일이 좋아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 때문’, ‘생태·공동체 등의 가치 추구’가 각각 18.4%를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강, 은퇴 후 여가,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을 찾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학력일수록 은퇴 후 여가나 전원생활을 위해 귀농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귀농·귀촌자가 농촌 정착과정 상에서 자금 문제, 영농기술문제, 농지구입의 문제, 생활여건의 불편, 토착주민과 갈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자가 다시 도시로의 재이주 의향을 보이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이론 및 실습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적인 농촌 정착에 도움을 주고자 2009년에 개설하여 2015년까지 총 3000여명을 교육했다.
특히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위탁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농협대학의 귀농·귀촌 대학은 지난해 까지 7기 회원을 모집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120명에서 140명 정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7개월 동안 성공적인 귀농·귀촌 정착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생산·가공·유통·마케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교육으로 본인에게 적합한 귀농 형태를 결정짓는 역량을 강화했다.
교육비는 200만원이 넘는 전체 교육비에서 자부담 일부(50만원)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지원했다. 오전에는 귀농 설계교육과 영농기술 기초학습이, 오후에는 농협대학 교내, 귀농·귀촌 대학 실습장에서 실습 및 현장 견학이 이어진다.
1인당 약 20여 평의 땅이 주어지는데 기초 교육이 끝나는 즉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농계획을 세우는 등 농촌 투어 등 다양한 경험과 실습이 이뤄진다.
경기농림진흥재단 귀농·귀촌 대학을 수료한 이석현(61)씨는 “농촌은 부부가 보다 심신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고 며느리, 아들 눈치 보지않고 좀 더 여유롭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영농 계획을 세웠고, 귀촌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큰 공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참교육場 '사이버대학'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 세대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교육 차원에서 사이버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30대 학생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과 비교해 40대와 50대의 진학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사이버대의 나이별 대학생 추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30대의 입학이 매년 2.5% 정도씩 줄어드는 반면, 40대와 50대 이상 등록은 1%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50대 이상 입학은 전체 학생의 10.59%로 두 자릿수 평균율을 보였다.
사이버대학이란 정보통신기술, 멀티미디어 기술 및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여 형성된 가상의 공간(Cyber-Space) 안에서 교수자가 제공한 교육서비스를 학습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학습하는 가상 학습 공간이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경우 학사학위 또는 전문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제2조 제5호에 규정된 교육부 인가 대학이다. 사이버대학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고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이버대학은 매년 6월과 12월, 2차례에 걸쳐 신·편입생을 모집한다. 수능 입학을 거치지 않고 입학지원서와 함께 학업계획서와 인성검사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다.
학비는 학점당 6만~8만원 선이며 18학점 신청 시 학기당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소득분위 기준으로 지급되는 한국장학재단(www.kosaf.go.kr)의 국가장학금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버대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사이버대 종합정보사이트 CUinfo(www.cuinfo.net)를 참조하면 된다.
사이버대학은 2001년도에 총 9개 대학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총 21개가 운영되고 있다. 10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시니어가 몰리는 사이버대학 인기학과 F4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한국어문화학과는 학생의 1/4 정도가 50대 이상이다. 특히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이 대한 60대 이상 시니어의 관심이 두드러진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문예창작이론에 영상미디어를 접목한 학과다. 문학예술과 뉴-미디어에 대한 기본 소양을 배우고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사유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에 실천적 문학인을 양성하는 것이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목표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는 60대 이상 시니어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희사이버대학교에만 개설된 학과다.
한국어문화학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어느 정도 배움이 있는 시니어들이 ‘교사’에 관심이 있고 또 외국인을 대상으로 봉사 차원에서도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려, 영남사이버대학교 등 9개 사이버대학에 개설돼 있다. 국어기본법에서 정한 한국어 교원 자격 요건에 맞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환경,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현장의 요구에 부합되는 인재를 양성한다. 영역별 필수 과목을 이수하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준다.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학은 현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 사회변화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전문적 해결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족과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대상들과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회복지적인 개입 방안을 학습하고 이를 현실 사회 속에 실천하는 것에 주력한다. 사회복지전공은 전반적인 사회복지이론 및 기술의 습득, 각 전문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을 갖춘 복지전문가를 배양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호하는 시니어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봉사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상담심리학과
최근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행복한 삶과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심리학과의 경우 4년제 학위가 있는 시니어들이 선호한다. 이론과 실제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정신건강과 상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통합적·전문적인 지식과 상담기술 등을 훈련하고 있다. 상담심리학과는 관련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교과목 운영은 물론, 기초단계의 상담심리 교육과정과 영역별 심화 및 응용 단계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다양한 휴먼서비스 영역에서 전문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은 인생 2막 설계에 관한 관심이 높다. 그런 요구에 맞춰 각 대학은 발 빠르게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신중년세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전 국민의 고등교육화를 꿈꿨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프라임칼리지를 개설해 신중년들의 미래 인생설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젊은 은퇴로 고민에 빠진 신중년들에게 한국폴리텍대학은 펜 대신 드라이버와 망치를 손에 쥐어 주며 실전 학습을 가르치기에 나섰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방송대 대항마로 떠오른 사이버대학교는 이상 실현과 재교육을 토대로 시니어들의 배움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이다. 미래 설계가 아직 좀 미흡한 신중년들이 있다면 주목하라. 더욱 나은 제2의 인생으로 인도할지니.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40·50세대를 위한 제2 인생설계·준비과정
원격대학의 원조,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안에는 또 하나의 대학이 있다. 바로 프라임칼리지다. 1997년부터 운영돼 온 방송대의 평생교육원이 2012년 프라임칼리지로 개명한 것.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기존 평생교육원의 틀을 깨고 전 세대를 아우를 만한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습 프로그램으로 무장했다.
프라임 칼리지는 평생학습시대, 국민의 생애주기와 학습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다.
특히 40·50대 신중년들을 위한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 등을 시행하고 있다.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은 중·장년층의 자립 의지에 힘을 실어주고, 더 나아가 사회공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2012년 제2 인생설계과정 32개 신규 교과목으로 총 2660명 수강에 이어, 2014년에는 총 1만284명이 프라임칼리지를 이용할 정도 관심이 뜨겁다.
프라임칼리지 교육과정은 제2 인생대학, 인문교양·시민문해, 귀농·귀촌, 창업, 사회적 경제, 국제개발협력 사회봉사, 전문자격, 명장교수, 평생교육 등 10가지 대분류 아래 각각에 부합한 과목을 배치했다. 영미영작 단편선, 문해 교육 이론 등은 물론, 집짓기, 창업, 다양한 국가의 어학학습 등 프라임칼리지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과목들을 개설해 놓았다. 방송대 학생은 프라임칼리지에서 강의를 들으면 졸업학점으로 최대 12학점까지 인정받을 수 있어 굳이 다른 곳에서 배울 강좌가 아니라면 꼭 한번쯤 프라임칼리지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외에 20·30세대를 위한 선취업·후진학 학위과정과 재직자 기초과정도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Ⅰ 박찬영 블루베리-연금나무, 게으름의 농장 수강 (서울, 방송대 농학과 15학번, 54)
귀농·귀촌을 꿈꾸는 신중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강좌를 기웃거리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작년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전공 교수이신 문원 교수님이 블루베리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셔서 조금 더 알려 달라고 했더니 프라임칼리지 강좌를 한번 들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사실 귀농·귀촌할 생각만 있었지 어디로 갈지 또 어떤 작물을 키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블루베리에 관한 관심이 한창일 때 들었던 프라임칼리지 강좌는 꽤 도움이 되더군요. 적어도 블루베리가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접근하기 쉽고 수익성 좋은 작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농업에 관련한 일을 알아 가는 데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라임칼리지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가 귀농·귀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도 없어요. 귀농·귀촌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방송대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프라임칼리지를 먼저 알았더라면 이쪽 강의를 먼저 들었겠죠. 프라임칼리지에 귀농·귀촌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학교 입학하고 난 후에 알았거든요(웃음). 프라임칼리지도 새로운 인생 2막의 길을 찾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우선 농학과 공부에 집중한 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프라임칼리지를 좀 더 이용할 계획입니다.
인터뷰Ⅱ 양봉선 제2 인생대학 마스터클래스- 마음 외 5과목 수강 (전주, 방송대 국문학과, 58)
프라임칼리지는 마력이다
동화를 쓰고 창작을 하면서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 방송대에 편입학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에 고장이 단단히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동화 작가. 직장인, 주부, 엄마, 방송대 학생으로 숨 쉴 틈 없이 살아온 탓일까요. 1~2년 전 9개월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지냈어요. 그런데 병원을 오가다 우연히 프라임칼리지의 제2 인생설계 광고를 보게 됐어요.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클릭해 보았는데 평소 관심 있던 과목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삶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과목도 있고요. 두 과목만 수강할까 하다 프라임칼리지에서 수업을 들으면 방송대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기에 욕심을 좀 더 냈죠(웃음). 강좌를 선택하다 보니 6개가 되더라고요. 제2 인생 설계과정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중년의 삶,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삶 등을 공부했습니다.
내 이름을 단 아동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 ‘작은집-싸게 짓고 행복하게 살기’를 즐겁게 들었습니다. ‘안전, 웰빙, 스마트 여행을 위한 건강관리’ 강의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다른 나라 예절, 선물로 현지인들에게 주면 좋을 것 등을 배웠습니다. 듣다 보니 3개월 단위로 끊어지는 강좌를 6개월이나 들었더라고요. 지금도 듣고 싶은 과목은 한없이 많아요. 프라임칼리지 너무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부족했던 것들, 살면서 배우지 못한 처세술도 배울 수 있었어요. 고령화시대에 남다른 감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행복했어요.
펜 놓고 손에 기름 묻히길 원하는 자
한국폴리텍대학으로 가라!
한국폴리텍대학(이하 폴리텍대학)은 말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을 추구한다. 이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실질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고 학습한다. 1968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시작해 2006년 24개의 기능대학과 19개의 직업전문학교가 합쳐져 지금의 폴리텍대학이 됐다. 폴리텍대학은 해마다 80% 이상의 높은 취업률을 보인다. 땀의 결실을 보게 해주는 알찬 대학으로 세대와 학벌 위주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국민 누구나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다. 학비 걱정 없이 기술을 배우고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평생직업교육대학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이 시니어들의 재취업과 제2 인생 설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학사과정 외 시니어들을 위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2012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은 3개월 단기과정으로 만 45세 이상 만 62세 이하의 실업자, 전직 예정자,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기업 맞춤형 과정으로 진행된다. 장년층의 재취업을 돕는 이 과정은 올해 전국 31개 캠퍼스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2012년 333명의 수료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1868명이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수료했다. 놀라운 사실! 3개월 교육과정이 전액 무료로 이뤄지며 수료생에게는 별도의 지원금도 지급된다.
인터뷰 송재구 (청주,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 2015년 8월 수료, 59)
노래하는 만학도에게 새 삶을 준 베이비부머 훈련과정
지난해 8월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을 수료했습니다. 30년 이상 의류업과 요식업을 하면서 살았 습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성장했을 무렵 늦바람이 불었는지 48세에 대학수학시험을 봐서 2013년 새내기 대학생이 됐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2014년 말에 음식점 문을 닫았어요. 예전부터 전기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충주지역 폴리텍대학 광고를 보고 베이비부머 훈련과정을 알게 돼 훈련과정에 들어왔습니다. 기초부터 전기 에너지, 설비, 이론 등 다 가르쳐주더라고요. 일단 배우고 있었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을 배워서 자신감도 생기고 삶에 활력이 됐습니다. 과정 수료하고 바로 아파트의 시설관리기사로 취업했습니다. 아무래도 폴리텍대학에서 훈련과정을 수료한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됐습니다. 내 나이에도 그런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이력서를 내니 업체에서도 좋아하더군요. 전기 설비에 관한 한 내 손으로 다 고치고 만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 나이에 기술 없으면 딱히 취업할 곳이 없어요.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회를 저는 얻은 거죠.
지금 학교를 나온 이후에도 전기기능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은 꼭 하나 더 따고 싶어요. 앞으로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목표지만 나보다 힘들고 직업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노하우로 그분들을 도와가면서 사는 게 목표 중 하나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 그 이후까지도 사회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김영희(金英姬) 前 대사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방앗간 집과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다. 1949년 한글날 태어난 나는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집 우물에 던져져 죽을 뻔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집에다 큰아들이 국군 장교로 참전 중이어서, 인민군이 우리 가족을 몰살하기 위해 우물의 깊이를 재고 전 가족 이름을 적어갔단다. 옆 동네에서는 이미 우물 속 가족 몰살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인민군이 우리 식구 명단을 작성해간 이틀 후에 미군이 우리 동네에 들어왔단다.
훗날 내 어릴 적 얘기를 전해들은 미국인 내 남편은 한국전쟁에 자기 외삼촌 두 명이 참전했는데, 아마도 우리 동네를 탈환한 미군 중에 자기 삼촌이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형제는 아들 여섯, 딸 셋 9남매다. 그중 나는 여덟 번째로 막내딸이다. 나보다 20세 많은 큰오빠는 6·25전쟁에서 생사를 넘으며 수많은 공훈을 세웠고 충무, 화랑 등 많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특히 전쟁 막바지에 남한의 전력 공급원인 화천댐에 대한 대규모 중공군의 끈질긴 공격을 중대 병력으로 격퇴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지도를 바꾼 사나이’로 알려진 우리 오빠 김한준 대위가 2012년 사망했을 때, 장군 출신이 아님에도 육군장(陸軍葬)으로 국립현충원에서 장례식이 개최되었다.
세계지도를 보며 넓은 세상을 동경하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선 책이 몹시 귀했다. 그러나 나는 오빠, 언니가 많은 덕택에 여러 가지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손에 잡히는 책은 무엇이든 읽었다. 책에는 모르는 세계, 모르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그중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책은 세계지도였다. 나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수없이 많은 나라들을 보면서 넓은 세계에 대해 꿈꾸고 상상했다.
넓은 세계에 대한 나의 동경은 장래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당시 나는 외교관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외교관이 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외교관은 해외에 나가 넓은 세상에서 일하는 직업이라는 것은 막연히 알았다.
내가 전주여고를 졸업할 즈음에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교육열이 높으셨던 부모님은 9남매 뒷바라지에 매우 헌신적이셨고, 그동안 오빠, 언니들의 중, 고, 대학 입학으로 논밭은 거의 다 팔려나갔다. 나는 대학 대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마음속에서도 포기한 건 아니었고, 일단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고 야간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68년 2월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5급을(현 9급) 국가공무원 시험과 서울시 지방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1960년대의 실업률은 하늘을 찔러 매년 공무원 시험 응시율은 상상을 초월했고, 나아가 군대 가산점제도가 있어 여성의 공무원 시험 합격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다행히도 나는 두 곳 모두 합격했는데, 서울시 공무원을 택해 1969년 3월 서울시 중구청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0년 국제대학 야간학부에 입학했지만, 직장과 대학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구청의 민원실에서 호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되는 시기였다.
구청의 민원실에서는 일일이 호적을 보면서 손으로 주민등록 카드를 밤늦게까지 작성하고 있었다. 오후 6시에 시작되는 야간대학 수업에 맞춰 퇴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동료들의 격려와 눈총 속에서 겨우 1학년은 마쳤으나, 출석 미달로 학점은 엉망이었다.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1970년 12월 어느 날, 명동의 백화점에 선물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을 만났다. 그 친구는 독일에 가려고 준비 중이라는 말을 했다. 내 귀와 눈이 번쩍 떴다. ‘해외개발공사’에서 간호보조원(지금은 간호조무사)을 양성하여 독일로 파견하는데, 자신도 그 파견단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해외개발공사 간호보조원 양성소에서 차기 입학원서를 받고 있는 중이란 말을 듣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독일 행을 결심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내 결정에 모두가 반대했다. 독일에 가서 병원근무 마치고 독일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내 말에 모두가 황당해 했다. 안정된 공무원 직장을 버리고 막연한 해외 파견 꿈을 꾸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했다. 독일에 정말 갈 수 있을지, 또 내가 희망하는 대로 병원 근무 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후회하게 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겠다고 했다.
간호보조원 양성소 입학 자격은 ‘중학교 졸업 이상’이었으나, 들어온 여성들의 배경은 천차만별이었다. 고등학교 독일어 교사, 공무원, 은행원, 대학생 등 해외로 나갈 길을 찾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유학생 외에 여성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양성소에서 9개월간 이론을 배우고 병원과 보건소에서 3개월의 실습을 거친 후 간호보조원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면 독일로 파견되는 과정이었다.
1972년 8월 27일 초조하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나는 독일에 도착했다. 새벽의 쾰른 공항은 안개가 자욱하고 추웠다. 공항에는 독일 전 지역의 병원에서 한국 간호요원들을 데리러 온 사람들이 푯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 4명과 간호보조원 6명이 북독일의 작은 도시 웰첸 시립병원에 배치되었다. 내가 3년간 일해야 할 곳이었다.
나는 남자 정형외과 병동에서 일했는데,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하고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구의 환자들로 병원일은 중노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야간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힘든 근무시간인 오전 근무를 자원했다. 외진 곳에 있는 병원에서 학교에 다니기 위해 자전거를 사서 타는 법을 배우고 밤길을 다녔다. 병원에서 일하는 3년 동안 나는 야간학교에서 독일어, 영어, 불어를 배우며 대학입학 준비를 했다. 한국에도 라디오가 있느냐고 묻는 환자도 있었지만, 우리는 환자들에게 인기 있는 동양에서 온 ‘천사’였다.
30년 만에 이룬 외교관의 꿈
우여곡절 끝에, 1975년 9월 나는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쾰른대학교의 예비과정에 입학했다. 드디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과, 힘든 육체노동 없이 공부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쾰른대학교에서 예비과정을 거쳐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10년 동안 나는 죽을 각오로 정말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교육학 전공에, 부전공으로 철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을 공부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1986년 초 나는 박사 학위를 들고 가슴에 큰 희망을 품은 채 한국에 왔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최루탄 가스에 찌들어 있는 여러 대학을 찾아갔지만, 학연 지연이 없는 내게 한국사회는 냉정했다. 그러나 절망은 없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다. 한국에서 실망하고 다시 독일로 간 내게 쾰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겼다. 보수적인 쾰른대학교에서 외국인이 전공과목을 강의한 첫 사례가 되며, 1990년 7월까지 나는 4년 동안 독일 학생들에게 교육철학을 강의했다.
그사이 유럽에는 지각변동이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 5월 한국 외교부는 독일전문가 특별채용 공고를 냈다. 그 공고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에 화살이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잊고 있던 내 어릴 적 ‘외교관 꿈’이 떠올랐다. 특별채용시험 면접 때 “한국은 나를 낳아 키워주었고, 독일은 내 정신을 살찌게 해준 나라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먼 길을 돌아 30년 만에 꿈을 이루었다.
1991년 2월 말 폰 바이체커(R. von Weizsacker) 독일 대통령 국빈 방한 시 통역으로 나는 외교관 업무를 시작했다. 독일 담당관으로 본부와 독일을 오가며 통역한 정상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과 독일의 라우(J. Rau), 헤어촉(R. Herzog) 대통령이다. 독일 통일 직후 우리나라의 통일 열기는 대단하여 매년 수많은 고위인사들의 독일 방문이 있었고, 자료 작성과 브리핑, 통역은 정무담당인 내 업무였다. 나는 주 독일 대사관에서 1등서기관부터 공사까지 역임한 후, 2005년 9월 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로 임명되어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대사가 되었다.
선진국과 분단 극복의 꿈
현재 내 책상 위엔 커다란 세계지도 책이 놓여 있다. 뉴스에 주요 해외사건이 보도되면 지도를 펴 보고 그 주변 국가들을 살펴보며 머릿속에선 습관처럼 보고서를 쓰고 있다. 매년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도는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해외를 방문할 때는 항상 그 나라의 지도가 내 가방 속에 들어 있다. 화성에 착륙한 인간의 모습과 지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나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살았다. 지금도 매년 여름 3개월은 남편과 함께 베를린에 체류하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개최되는 철학, 인문학 학회에 참석한다. 겨울 3개월은 보스턴에서 지낸다. 쾰른대학 학생 때 만난 남편은 현재 보스턴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세계 여러 곳을 방문하며 변화된 한국의 위상을 실감하지만, 삶의 여유가 있는 사회가 부럽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우리 세대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산업화, 민주화도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국내적인 시각에 머문 편협한 사회현상은 안타깝다. 세상은 넓고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분단을 극복하는 꿈을 꾼다. 평생 분단과 함께 살아온 우리 세대와는 달리 다음 세대는 진정한 선진국의 시민이 되어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김영희(金英姬) 외교관
퇴임 후 세계무대에서 얻은 경험을 젊은 세대와 공유하고자 '20대, 세계무대에 너를 세워라'(2010.3.)를 펴냈다. 우석대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 특강했다. 언론의 독일통일전문가 토론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현재 '여성평화외교포럼'(사) 이사.
“상조업의 근본적인 취지는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데 드러나는 모습이 신뢰를 못 얻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필도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는 장례 문화와 상업적 지점들이 겹쳐지는 게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장례용품을 중심으로 발전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장례 관련 업체들이 서비스는 최소한으로 하고 주로 용품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특성이 장례회사들과 상조회사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장의사는 죽음과 관련된 의사입니다. 의사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사회적 자부심을 부여해 줘야 하는데 지금껏 민간자격증만 줘왔어요. 그러다 결국 국가자격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민간자격증보다 더 못합니다. 시험도 없고 학원에서 300시간만 배우면 돼요. 국가 입장에서는 염습과 입관만 하면 장례지도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과거 대가족 체제에서는 체계화된 장례를 제대로 수행하는 장년의 전문가가 가족 안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게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라는 문화 자체는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전문가가 사라져버린 상황이지만 문화적 욕구와 필요는 존재한다. 당연히 가짜와 부실의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상조업체들 모두 자기네 상조가 값이 싸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땐 싼 게 비지떡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별로 싸지도 않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장례용품들의 경우 값을 속이려고 마음 먹으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안동 삼베로 만든 명품 수의라고 해도 진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확인이 안된다는 것.
“장례는 믿음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그러한 요소들에 대해 진짜라고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문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표준이 필요합니다. 용품까지 어렵다고 한다면 서비스만이라도 표준화를 하자는 게 제 의견입니다.”
이 교수는 그래서 장례 서비스 표준화를 위해 기본용어 연구를 했고 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에서도 관련 사항을 현장에서 받아들이도록 추천 작업도 해줬다. 덕분에 100% 공설로 만들어지는 화장장에서는 표준장례서비스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서비스 수준도 개선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 상조 서비스에 표준 등급을 매겨 신뢰 회복하자
상조업이 시작된 일본에서는 이미 40~50년 전에 만들어진 상조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상조법이 없다. 일본의 사례를 받아들이면서 문화에 대한 검토 없이 돈 버는 부분만 받아들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아직도 상조법을 우리가 왜 만들어야 하느냐고 하는 중입니다. 왜 돈 거래하는 것까지 관여해야 하느냐는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의 정립이 많이 늦습니다. 장례식장도 최근에야 보건복지부 소관이 됐어요. 그 전까지는 묘지, 화장, 납골당만이 보건복지부 소관이었죠. 사실 상조업에 관한 법이 순수하게 산업하고만 연관돼 있으면 다른 부서에서 만들어도 됩니다. 그런데 상조업은 ‘장례’로써, ‘예’로서의 문화적 요소가 들어가 있어요.”
산업에 대한 무게중심이 있어야 불신이 사라진다, 이 부분을 국가에서 조절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국가는 관리-감독만 잘하면 됩니다. 제가 예전부터 꾸준히 주장하는 게, 장례식장이나 상조 서비스도 무궁화 갯수별 차등을 두는 호텔식 등급을 매기게 되면 문제가 상당수 해결될 거라는 말입니다. 무궁화와 별을 국화로 대체해 표기하면 상징성도 가질 수 있죠. 이를 심사할 수 있는 표준과 전문가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상조 가입전 계약서 쓸 때 꼼꼼히 체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부산 지역 중견 상조회사가 회원들의 선수금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이 회사는 할부거래법 상 선수금의 40%를 공제조합에 예치해야 하지만 160억 원을 조합에 맡기지 않았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제조합이 예수금 액수 산정을 상조회사 측의 신고에만 의존하는 허점이 있어서다.
일부 상조회사 영업사원들의 개념 없는 행동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상조회사 영업사원 입장에서 가장 큰 영업처는 장례식장이다. 하지만 장례식이라는 엄숙한 자리에서 도를 넘는 영업 행위를 하는 상조회사 영업사원들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얼마 전에는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공무원을 사칭하며 접근해 특정 상조회사를 이용하게끔 유도한 사례가 보고돼 공분을 샀다. 영업사원을 소모품으로만 여기는 풍조와 돈만 밝히지 사원, 이들에 대한 교육부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성수동에서 만난 상조 회사 영업사원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상조서비스의 표준약관이 있는데 이를 확실하게 알아둬야 혹시 모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업사원들의 지인이어서 상조가입 전 계약서 쓸 때 약관을 잘 읽어보지 않는다”며 “공정위가 정한 표준약관이 있는데 일부 상조회사는 이 약관을 지키지 않고 회사 자체적인 개인약관을 적용하는 업체도 있다”고 밝혔다.
표준약관을 읽어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간에 해약하면 얼마를 돌려 받는지, 상을 당하면 무엇을 어떤 서비스를 주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법적 보호가 미흡하기 때문에 수고스럽지만 상조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반드시 계약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상조업계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프리드라이프 박헌준 회장은 “지금 소비자들의 관심은 싼 가격에 집중되고 있지만 상조 서비스는 가격 이외의 품질을 뒷받침하는 부가가치와 신뢰성이 중요하다”며 “가격을 떠나 좋은 상조회사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라이프는 타 업체가 시도하지 않았던 홈쇼핑 광고를 과감하게 추진해 현재 상조업계 1위로 올라섰다.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된 박 회장은 현대장례지도사 교육원을 세워 3개월 간의 체계적 교육과 테스트로 전문가들을 양성해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현대장례지도사 교육원은 2012년 국가자격증 교육기관으로 인가를 받기도 했다.
# 상조업계 문제, 지금 치료해야 할 때다
상조 서비스에 가입해 장례를 치러 본 사람들은 상조가 얼마나 편리한지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핵가족 사회가 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장례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선 부족한 인력을 채워 줄 시스템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해마다 늘고 있는 상조회사 가입회원 수는 그러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상조는 대표적인 서민 상품이기도 하다. 서민이 가장 힘들고 슬플 때 이용하기에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하는 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몇몇 상조회사들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기는 커녕 눈물을 쥐어 짜내는 데 바빴다.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은 “상조란 말 그대로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계, 두레 등 상부상조의 문화를 통해 유구한 역사를 이어 왔다. 하지만 최근엔 상조라는 말이 사기, 횡령, 바가지 등 온통 부정적 이미지로 얼룩졌다. 이는 상조회사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결국 해결책은 상조회사들 스스로가 뼈를 깎는 자구-자정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상조회사들을 먹여 살리는 돈은 언젠가 회원들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다. 상조회사들이 공제조합에 예치하는 대부분의 선수금마저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한푼 두푼 모아서 자식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돈이다. 그러나 상조회사로부터 피해를 받은 소비자는 공제조합에 상담이나 민원을 넣어도 명확한 해결책이나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힘들 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한 번 더 뒤통수를 치는 셈이다.
더구나 잘못된 할부거래법의 제도적 모순은 시정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공제조합이라는 관리 시스템마저도 의지할 데 없는 소비자를 외면하는 상조업계의 민낯. 업계 전반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