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나 어느새 이렇게 나이 들었어? 이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도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영탄한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 흩어진 세월을 아쉬워한다. 그러고서도 정작 무한정한 시간을 움켜쥔 것처럼 하루하루를 허비한다. 시간이야말로 고귀한 재산이라는 걸 까먹는다. 이 양반을 보시라. 시간 누수 없이 은퇴 이후를 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간을 야무지게 쓴다. 귀촌이 그걸 가능케 했다. 삼십육계 뺑소니를 치는 시간에 아랑곳없이, 한결 만족할 만한 시골살이를 누리고 있으니.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69) 관장. 그는 사진기자 출신이다. 이곳 영월의 시골로 귀촌한 건 8년 전. 애초엔 단양에 발을 들였었다. 농사를 짓고 자연사진이나 찍으며 한가하게 살자는 생각이었다지. 그러나 여의치 않아 길을 바꿨다. 스치듯 잠깐 단양에 머물다 영월로 이주, 계획에 없었던 미디어기자박물관이라는 색다른 박물관을 만들었다.
귀촌은 왜 했을까? 이보다 더 좋은 건 다시없다고 널리 소문난 ‘지존’, 바로 돈 때문이었단다. 서울에서 잘나가던 사진기자였던 그는 60줄에 접어든 자신의 정경을 바라보며 윽! 하고 놀랐던 것 같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정신만 빼고는 없는 게 없는 서울, 재화를 중심에 두고 강호의 협객들이 밤낮없이 각축하는 서울. 이 격렬하고도 머리 아픈 도시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재산이나 노후자금이라는 게 필요하다. 그에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은퇴한 그가 굴릴 수 있는 자금이라야 연금으로 나오는 월 108만 원이 전부였다지.
“제가 재혼으로 맞이한 아내와 함께 귀촌을 했어요. 전처와는 사별을 했는데, 암 투병을 오래하다 떠났지요. 긴 투병 와중에 전 재산이 날아갑디다. 남은 건 연금뿐. 그 소소한 돈, 월 108만 원으로 서울에서 버틸 자신이 도대체 서질 않더라고. 그럼 어쩌나? 고민 좀 하다가 돈 덜 드는 시골로 내려가자, 귀촌해서 그저 밥 먹는 정도에 만족하며 자연사진이나 찍자, 그런 결론을 내렸어요.”
가진 것 없이도 깡이나 무욕으로 버티며 사는 귀재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네 필부에겐 어림없다. 쥔 게 없는 사람에게 서울은 무정하고 비정하고 매정하다. 삶도 사회도 역사도 일쑤 진흙탕처럼 뒤엉킨 모순과 부조리를 축으로 윤회한다는 걸 고 관장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게다. 한평생 사진기자로 살며 이 요상한 세상의 명암과 요철을 깊숙이 들여다봤을 테니까. 남모를 소명감도 가슴에 품었을 테지. 정세의 격랑 속에서 그가 포착했던 ‘기록사진’들은 시대의 증빙으로 남아 있다. 6·10민주항쟁 때 한국일보 기자였던 그가 찍은 ‘최루탄을 쏘지 마라!’라는 타이틀의 사진은 사람들의 심장을 흔들었다. 미국 AP통신사는 이 통절한 컷을 ‘20세기 최고 사진 100선’에 선정했고.
돈 한 푼 안 들인 ‘사진박물관’
나는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 아마도 고 관장의 슬로건은 그런 것이었을 터. 결국 천분이자 천직이었던 사진과의 인연은 은퇴 뒤에도 이어져 사진박물관을 꾸리게 되었다. 박물관엔 그가 현역 때 썼거나 기증받은 온갖 사진 장비와 희귀한 자료가 잔뜩 전시돼 있다. 원래 사진박물관을 차릴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지. 귀촌을 했으니 뭔가 사진과 관련한 일로 여생을 보내야겠는데 그게 뭐지? 그렇게 다분히 막연한 궁리를 하던 차에 그의 명민한 아내가 쓰윽 귀띔을 하더란다. 오우, 저 빈 건물에 사진박물관을 만들어보소서!
“영월엔 다양한 사립 박물관들이 있어요. 근데 말이죠, 동네 구경삼아 돌아다니다 우연히 빈 박물관 하나를 보게 됐어요. 원래 폐교였던 건물에 설립한 책박물관이 있었는데 그게 폐관됐던 거라. 그걸 본 집식구가 대뜸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 즉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 거예요?”
“아내의 반짝이는 권유를 듣고 바로 착수했어요.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군청으로 달려가 기자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제안서를 제출하라 합디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고, 결국엔 성사가 됐어요. 순항을 거듭했다 할까, 매우 좋은 조건으로 협약한 뒤 무난한 운영을 해왔어요.”
“매우 좋은 조건이란?”
“군에서 건물을 통째로 무상임대해줬거든요. 살림할 사택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학예사도 배치해줬고. 아무튼, 자리 잡기까지 부지런히 공을 들였어요. 명심한 게 뭐냐면, 박물관이되 원래 이 터가 학교자리였다는 걸 잊지 말자는 거였어요. 시골에서 학교란 마을 문화공동체의 중심이니까. 해서, 박물관을 거점으로 많은 마을 사업을 전개했어요.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도 적극 유치해 주민들과 함께 즐겼고.”
“관의 지원 승인 자체가 쉽지도 않지만, 사업 진행 과정에도 괴로운 일들이 많다고들 해요. 오라 가라, 이래라저래라, 요구가 많아서.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절대 관공서와 손잡지 말고 독립적으로 일을 추진하라 합니다.”
“우여곡절을 피할 길은 없죠. 그러나 저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건 절호의 기회이지 않겠어요?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문화사업이나 마을사업을 열렬히 하되 절대 돈벌이 목적으로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건 실패의 첩경이니까. 반드시 욕먹고 망가지니까. 나랏돈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무슨 예산 집행의 결재 라인엔 아예 서질 않는 게 좋아요. 그저 밥 먹을 정도의 형편만 만들어지면 이게 복이거니, 하고 만족해야 하는 겁니다.”
흔히들 관청을 공감의 파트너라기보다 요령으로 구워삶을 대상으로 여긴다. 슬기와 소신에 찬 처세가 아니고선 기분 좋게 넘기 어려운 철벽일 수 있다. 고 관장은 아마도 민첩한 머리와 저돌적인 근성의 소유자. 설령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돈 1원도 부당하게 취하지 않겠다는 결기 역시 그의 것. 진정 그렇다면, 이 난잡한 세속에서 사례가 드물 이 인물은 이미 청정(淸正)거사.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긍정적인 자질과 양심과 패기를 전량 두레박으로 퍼 올려 귀촌의 나날들에다 쏟아 붓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생판 모를 타관에 내려왔으나, 고 관장은 내 집 마당인 양 양양히 활개 쳤던 것 같다. 많은 일들을 펼치거나 만들거나 띄워 올려 흐뭇한 성과를 거두었다. 어떤 일들? 그는 영월에 오자마자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주민들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결혼식이나 고희연을 찾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마을 농산물 마케팅 사진도 척척 찍었다. 물론 무료봉사로. 사회적 협동조합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만들었다. 요즘은 귀농·귀촌 교육장에 가서 강의도 한다. 은퇴 귀촌을 바라는 이들에게 득이 될 얘길 들어볼까?
“요즘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듭디다. 특히 우리 또래들, 너무 일찍 퇴사하고서 삶의 낙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오늘은 지하철 몇 호선을 탈까, 겨우 그런 생각이나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그래요.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처갓집 돈까지 까먹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그러지들 말고 귀촌이건 귀어이건 귀산을 하시라 권하고 싶어요. 잴 것 없이, 따질 것 없이 과감하게.”
“흔히들 도시 탈출을 꿈꾸지만 도시생활의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죠. 게다가 실패하거나 괴로워질 가능성이 있는 게 귀촌·귀농이라는 소식도 자주 들려오니 두려워질 수밖에.”
“시골에서 불편한 건 딱 한 가지예요. 의료시설이 열악하다는 거. 그 외엔 도시보다 나쁠 게 없다는 거. 뭐가 문제될꼬. 게다가 시골엔 할 일이 참 많아요. 캐리어와 재능을 가진 도시인들이 시골에 내려와 피폐해진 시골문화를 북돋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원주민들과의 융화 문제도 난제라고들 하죠. 뭐 도시에서라고 심통 사나운 삐딱이들이 없으랴마는.”
“아, 텃세 문제엔 귀촌자의 잘못이 더 많아요. 시골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재까닥 인정해버리지 못한 잘못!”
“숲속의 자연 생태에도 폭력이 있고 상극이 있죠.”
“단적으로 말해볼까요? 마을에 정말 고약한 사람이 하나 있다 가정합시다. 그럼 그 인간이 죽으면 조용할까? 아니죠. 비슷한 사람이 또 나타납니다. 그게 시골문화예요. 제가 이곳에서 근본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 다들 저를 좋아하는 건 아녜요. 열 중 셋은 딴죽을 걸어요. 그게 이상할 게 없는 현상이라 보면 끝! 귀촌자들이 몰려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선의가 시골문화를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부디 좋아하는 일을 즐기시라
시골에도 우뚝한 철부(哲夫)가 있다. 보수적이고 토속적인 마을의 불문율을 존중하며 맘 통하는 토박이들과 어울리는 건 쓸쓸한 일상을 보완해준다. 귀촌인들과의 친선도모도 촌 생활의 불편과 권태를 면제해준다. 고 관장은 귀촌 직후 영월군 농업기술센터 희망농업대학에 입학함으로써 유치원 과정에 입문했다. 이게 무슨 얘기? 귀촌·귀농 초기엔 유치원생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후 초등 6년까지를 마쳐야만 비로소 시골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 관장의 논평이 그렇다. 귀촌 8년째인 이즈음에서야 그는 비로소 안전한 정착에 이르렀다는 거다.
“바람직한 건 농업대학에 들어가는 겁니다. 시골을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촌인 그룹을 형성할 수 있으니까. 저의 농업대학 동기 34명 중에 90%가 귀촌·귀농을 한 사람들이에요. 이들이 현재 영월군의 문화를 이끌고 있어요. 다들 한가락씩 했던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도시에서 사업하다 망해 시골로 내려들 왔어요. 실패 경험, 그 자체가 큰 배움이겠지. 인생을 크게 배운 사람은 좋은 노후를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눈은 영리한 노루처럼 반짝인다. 목청은 탕탕 우렁차 시원한 맛을 준다. 그의 뇌에 세팅된 최상의 가치는 ‘생동하는 노년’에 있지 않나 싶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으니 이제 성난 수말처럼 내달리자는 것. 그런 그가 늘 홍보하는 소리가 있다.
“사람이여, 부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죽는 날까지 즐기시라!”
그거야말로 신바람 나는 인생이며, 그렇게 사는 표본이 바로 자신이라는 투로 의기양양하다. 그렇다고 고난이 없었으랴. 황소의 뿔을 잡아 패대기치는 것과 같은 분투가 없었으랴. 비바람이야 피할 길 없더라도 내 방향대로, 내 지향대로 살고 있다는 긍지의 표명. 그의 언동엔 그런 게 비친다.
“6학년 5반쯤 되면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에요. 과욕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거. 생활비 크게 들 것 없는 시골에 내려와, 그저 먹고 잘 수 있는 여건 정도만 만들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보다 나은 삶이 다시 있을까? 돈벌이는 아예 남의 일로 치부해버리고, 돈을 벌 경우엔 번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을 당당하게 해내고, 일로써 마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그렇게 일과 놀이가 함께 붙은 삶이라면, 늘 타인을 고려하는 인생이라면 아무런 결함이 없을 거 아니겠어요?”
나만 좋으면 무슨 소용? 그는 그리 외치고 싶은 게다. 이웃에게 귀 기울이기, 선의의 관심 갖기, 그런 걸 박애(博愛)라 하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부처님도 예수님도 공자 할배님도 뜻이 같을 게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그가 한마디한다.
“인생관을 들어보려오? ‘오늘 이 순간을 재미있게 살자!’ 그런데 요샌 바뀌었구만. ‘마누라를 위해 살자!’로. 하하핫!”
고명진 관장이 들려주는 귀촌준비 Tip
•귀촌해서 돈 벌 생각하지 말자. 도시의 비즈니스 마인드와 시골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특히 돈벌이를 위한 시니어 귀농은 100% 실패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시골생활을 모색하자.
•자신이 평생 해왔던 일과 기능을 썩히지 말자. 일테면, 전기기술자였다면 마을을 돌며 고장 난 가전제품을 수리해주면 된다. 봉사란 행복의 원천이지 않던가.
•마을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자. 비판을 하더라도 참여하고서 비판하자. 그런 태도가 마을의 건강한 토양을 만든다.
•인터넷은 시골생활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무한한 정보를 제공한다. 인터넷을 모르면 귀촌하지 말라. 페이스북으로 온 세계와 소통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글 김대중 본부장(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듯 연초가 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 기관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말에 퇴직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거나 취업을 위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근로가 끝났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취업을 해야 할지, 창업 또는 귀농·귀촌·귀어를 해야 할지, 봉사활동을 하며 살 것인지, 취미생활이나 하며 쉴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9년은 창업보다는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있다. 창업은 ‘운7 기3’이라고 말하곤 한다. 즉 창업의 성공은 기술이나 능력, 아이템보다 운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창업을 시작하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대박의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1년도 채 안 되어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준비도 오래했고 도와주겠다는 지인도 많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외의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출을 줄인다. 소비나 구매에 대한 사고도 ‘있으면 좋겠네, 하면 좋겠네’에서 ‘없어도 되겠네, 안 해도 되겠네’로 180도 바뀐다. 개인들이 하는 사업 중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가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육체적 문제나 고령자 일자리 한계 등의 이유로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필요하다면 창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면서 무모한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대의 재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준비하고 도전해야 성공한다.
최근 통계상으로 봐도 구직단념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개인 상황이 안 좋다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 시니어 계층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경제적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이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IMF 외환위기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세대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재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유도한다고 해서 욜로(YOLO)족을 꿈꾸는 세대에게 통할 리 없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는 부모 세대인 중장년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재취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퇴직자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적 기업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민간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도 있다. 이외 민간 지원 내실화를 통한 시니어 인턴십 사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 신설되는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참여 방법이 궁금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중장년 일자리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세까지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년퇴직 후 무려 20여 년을 더 노동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인식 틀을 깨야 한다. 정년퇴직 연령과 기대수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50대는 30대, 60대는 40대, 70대는 50대로 봐야 한다. 신체나이와 사회적 나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년퇴직이나 일반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졸업과 함께 첫 번째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했듯이, 이제는 퇴직 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재취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 시장형 일자리, 시간제, 인턴제 가릴 것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시니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대중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
고려대 및 동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중앙대 HRD정책학 박사(수료). 노사공동 전직지원센터 본부장,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본부장,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센터장, NCS 및 일자리위원회 전문가 활동 중. 저서로는 춘추전직시대(春秋轉職時代), 전직으로 당신의 인생을 환승하라가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요즘 ‘청산별곡’을 부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해 귀농·귀촌한 사람도 50만 명에 달한다. 자연과 농촌, 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TV 화면 속으로 옮겨졌다. 자연·자연인 열풍이 TV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연과 농촌·어촌·산촌·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담은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들이 급증하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도 높아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으로는 오지, 산골 등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사연과 일상, 자연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는 MBN의 , 전국 방방곡곡 산간 오지를 찾아 그곳의 생활을 경험하는 TV조선의 , 오지를 찾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꾸미지 않은 삶과 생활을 보여주는 SBS의 등이 있다. 또한 도시생활에 지친 연예인들이 자연으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젊은 자연인(30~40대)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O tvN의 , 강호동·김희선·정용화 등 도시에서 사는 연예인들이 섬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섬사람들의 생활과 일상을 경험하고 도시인이 생각하는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올리브TV의 , 농촌이나 어촌에서 생활하며 먹거리를 직접 구해 식사를 해결하는 tvN의 등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주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여행이나 체험 등 다양한 소재·형식과 결합해 만든 프로그램들도 양산되고 있다.
외국의 오지 사람들을 만나 용기, 지혜, 위로를 얻는 MBC의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생활하는 이효리·이상순 부부 집에 일정 기간 민박을 하며 바다와 자연을 접해보는 JTBC의 , 김병만·이상민 등 연예인들이 어촌과 바다를 찾아 혹독한 미션을 수행하며 어촌 생활과 먹거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SBS의 등도 자연·자연인의 모습과 의미를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귀농·귀촌인이 많기로 소문난 충남 홍성군 홍동면 사람들의 일상을 방송한 KBS의 (6월 25일 방송분)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도 최근 들어 자연인과 귀농·귀어·귀촌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농촌·어촌·산촌의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전달해주는 KBS의 은 근래 들어 코너도 다양해졌고 시청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왜 이처럼 자연과 자연인, 귀농과 귀촌 등을 다룬 TV 프로그램들이 급증하는 것일까. 의 박상혁 PD는 “많은 사람, 특히 도시 주민이 일, 건강(힐링), 가치관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산·숲·바다·섬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이 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욕구와 관심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증가 원인이 됐다”라고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하고 돈과 물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끼거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꿈꾸며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 것도 자연과 자연인 관련 프로그램의 증가를 초래했다. 또 환경 변화와 의학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지만, 은퇴시기가 빨라져 인생 2막을 열어야 하는 장·노년과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 등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 중 여생을 농촌이나 어촌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자연·자연인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에 비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주거비와 생활비도 저렴해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된 농어촌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현상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부부가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은 따로 하는 졸혼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가족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던 자연인의 삶을 사는 사람도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프로그램에 수용하는 방송 제작진의 움직임이 자연과 자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양산으로 연결된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귀농어·귀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을 선택한 사람은 49만 6100명에 달했다. 도시에서 읍·면으로 이주한 사람 중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귀농인은 2만 600명, 읍·면으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귀촌인은 47만 5500명이었다. 자연과 자연인을 다룬 프로그램은 대중,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힐링과 위로의 시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귀농과 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는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박문수(57)씨는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시의 피곤한 일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노년에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내려가 생활하고 싶은데 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과 자연인, 농어촌과 농어민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의 폐해도 적지 않다. 이들 내용이 농어촌, 농어민의 현실과 실상이 거세된 것들이 주류여서 시청자에게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에서 미디어가 농촌 현실과 농민의 노동을 도외시한 채 농촌을 목가적 이상향으로 그리거나 촌스러운 곳으로 취급한다고 비판했듯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이상적인 삶의 전형으로만 현시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TV 프로그램에서의 농어촌과 자연은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 무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TV 속 농어촌에는 심화하고 있는 도시와 농어촌의 양극화 문제, 1년 365일 일해도 빚만 느는 현실, 악화하는 가족 해체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사랑받는 안면도. 그곳의 국도를 따라 들어가다 꽃지해수욕장을 지나면 대야도마을이라는 작은 어촌마을이 나온다. 30가구 안팎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도시생활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고향에 정착한 문영석(文榮錫·61)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웃마을 처녀와 결혼한 토박이 중 토박이었다. 당연히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고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변수를 가져온 것은 엉뚱하게도 서해안 일대의 지형을 바꾼 간척사업이었다.
“1980년대 초 천수만 간척사업이 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양식한 김을 일본으로 수출해 풍요로웠는데, 간척으로 한순간에 터전이 날아가버렸어요. 그래서 가족을 데리고 무작정 상경했죠.”
서울에선 택시를 몰았다. 워낙 친절하고 싹싹한 천성 덕분에 금세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가 있었다. 연로한 어머니도 눈에 밟혔다. 결국 귀향을 결정한 것도 어머니의 병환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귀어촌을 결정하고 나서는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했어요. 평소에 낚시도 좋아하고 고향에서 경험도 있어 낚시어선을 운영해보자고 생각했죠. 손님 입장에서 느낀 점을 토대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기 시작했어요. 해기사 자격증도 취득했고, 아내는 요리사 자격증도 땄죠.”
어머니가 사시던 고향이고, 옛 동무들도 있었지만, 처음에 내려왔을 땐 그 역시 주민들 입장에선 도시민이고 타인이었다.
“첨엔 서먹서먹했죠. 아무리 제 생각이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해도, 살아온 사람들의 습관이나 정서를 바꾸긴 어려웠어요. 같이 살아가려면 제가 적응해야 했죠. 주민들에겐 삶의 터전인데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진 않았겠죠.”
문씨는 귀어·귀촌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자신의 장점을 마을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지인들이 갖는 장점이 있잖아요. 상대적으로 젊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행정적 업무에 강점을 보인다든가, 정부 사업 도입에 힘이 될 수도 있고요. 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요즘에는 저희를 거쳐 간 관광객들에게 대야도마을의 싱싱한 수산물을 파는 일을 하고 있어요. 택배를 통해 소량으로 판매되는 것이지만 작은 힘이라도 마을을 위해 쓸 수 있고, 또 손님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그가 스스로 평가하는 귀어·귀촌 성공 비결은 틈새 공략과 철저한 사전준비다.
“바다낚시체험과 숙박, 식사를 모두 해결해주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요. SNS를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은 주민들과의 경쟁이 아닌 상생의 구조죠.”
그는 귀어·귀촌을 준비하는 이들은 자신의 재력과 체력에 맞는 적정 규모의 사업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본적인 체력의 뒷받침이 없는 너무 큰 규모의 사업은 지치게 만들어요. 또 수익이 작으면 재미가 없죠.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이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힘들어하고, 하루하루가 도시생활보다 더 고될 수 있어요. 자신의 소질에 맞게 업종을 잘 선택해서 수입도 올리면, 부부간 대화도 많아지고 행복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 갈매기 울음소리에 눈이 떠진다. 찬거리가 부족하다 싶으면 낚싯대를 들고 방파제로 나서면 그만이고, 수평선을 장식하는 저녁놀은 훌륭한 안줏거리가 된다.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만큼이나 누구나 꿈꾸는 노후생활 중 하나는 어촌에서의 삶이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이 간간이 보여주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어촌생활에 대한 동경을 더욱 증폭시킨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전문가들은 무작정 어촌으로 떠난다고 해서 즐거운 인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잘만 준비하면 평범한 귀농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귀어·귀촌이다.
우리가 귀어·귀촌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귀어·귀촌에 대한 명확한 정의다. 귀어 혹은 귀어업은 어업활동을 하기 위해 타지에서 어촌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귀촌 혹은 귀어촌은 어업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타지에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촌에서 ‘어업활동’을 하는가가 핵심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관계부처에서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등을 근거로 이주자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귀어·귀촌이 뜨는 이유
최근 사회적으로 귀어·귀촌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다. 먼저 활발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다. 고령화로 몸살을 앓는 어촌 지역에 젊은 도시민을 유치해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채집이나 양식 중심의 어업에서 가공이나 관광 등 2·3차 산업과의 접목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창업자금을 1인당 최대 3억원, 주택마련 지원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연리 2%, 5년 거치 10년 분활상환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산업 경영인 육성사업 등을 통해 별도의 사업자금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취업시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는 조선업 퇴직자의 구제 방안 중 하나로 귀어·귀촌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증가하고 있는 어가 소득도 귀어·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어가경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어가 평균소득은 가구당 4708만원으로 2015년(4389만원)에 비해 7% 증가했다. 이는 2013년 이후 4년 연속 증가한 수치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40대 이하 경영주 어가의 선전과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효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수산물 소비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수산물 식자재는 1인당 58kg 정도로 일본(45kg)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급에 비해 소비가 늘면서 단가와 수익도 자연스레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무작정 바닷가 마을로 떠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귀어·귀촌은 정서나 생활방식, 소득 마련 등 모든 면에서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막막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귀어·귀촌을 희망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도움이 절실한 희망자들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 있다. 귀어귀촌종합센터다.
바다에서 무엇으로 먹고살까
귀어귀촌종합센터는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설립하고 해양수산부가 지원하고 있는 기관으로, 귀어·귀촌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각종 지원제도 안내에서부터 업종 및 품목별 전문적인 기술상담, 창업계획서 작성 자문까지 돕는다.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담당하는 홍순택 전문위원은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한 사전준비라고 조언한다.
“보통 특정 지역에 연고가 있고, 집안에서 하던 어업 업종이 있으면 비교적 귀어·귀촌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에게 맞는 정착 지역과 먹고살 업종부터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아요. 또 지원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정착에 성공합니다.”
일반적으로 귀어·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경쟁력 차이가 크다고 전문위원은 설명했다.
“새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보려는 20~30대와 은퇴 후 제2인생을 준비하려는 50~60대, 그리고 도시생활에서 도태돼 갈 곳을 찾는 40대로 나눌 수 있어요. 물론 정착을 가장 잘하는 부류는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준비가 잘된 20~30대예요. 반면에 도피처를 찾는 40대들은 쉽게 정착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이니까요.”
귀어·귀촌을 통해 할 수 있는 업종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배를 사서 고기를 잡는 어선어업이다. 귀어업의 약 65% 정도가 배를 탄다. 이 중 3톤 미만의 작은 배를 사서 연안에서 조업하는 형태가 70%가 넘는다. 정부지원자금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고 일을 배우기도 쉽다. 실패했을 때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3~5시간, 조업 일수도 연간 동해안은 150일, 남·서해안은 200~250일 정도로 다른 직종에 비해 짧다. 금어기가 존재하고 기상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업종 중 하나는 양식어업이다. 사전 지식과 자금 확보가 필수이지만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김, 굴, 전복 등의 해수면 양식 외에 육지에서 할 수 있는 내수면 양식도 있다. 뱀장어나 미꾸라지, 아열대성 민물새우인 큰징거미새우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수산물 유통업, 가공업이나 소금산업 등도 선택되고, 최근에는 어촌관광이나 해양수산레저 사업을 포함한 어촌 비즈니스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고령 은퇴자의 경우 해안가에서 조개나 낙지 등의 수산물을 채취하는 ‘맨손 어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촌에 정착만 잘 하면 맨손 어업만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는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필수 요소
전문가들은 귀어·귀촌을 위한 정보와 기초준비 단계로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후, 각 기관에서 마련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볼 것을 권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귀어가, 귀어촌 정착교육 과정과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개최하는 귀어귀촌아카데미와 코칭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또 어선어업, 양식업, 해양레저 등 업종에 따른 전문 교육기관도 있다.
귀어·귀촌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귀어촌 홈스테이 지원사업도 있다. 귀어·귀촌 희망자가 어촌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착 여부나 업종 선택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숙박비와 컨설팅 비용의 80%까지 지원한다.
귀어·귀촌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각 지자체의 도시민유치희망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시민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의 경우 어촌계 가입비 면제, 어업권 매입 안내, 주거용 사택 실비 제공, 일자리 알선 등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 여건상 이런 지원책들은 지속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귀어귀촌종합센터의 SNS를 팔로우해두면 편하다.
또 귀어·귀촌 경험자들은 원하는 지역에서 미리 살아보고 마을 주민들과 사전에 의사소통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지역에 따라 어촌계 가입이 까다롭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배타적, 폐쇄적 성향을 띠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연안어업이 가능한 어장이나 양식을 위한 해수면, 해산물 채취가 가능한 해안 등 대부분의 지역 해양자원은 어촌계의 공동소유로 관리된다. 이는 어업권이자 자산의 개념이므로 어촌계의 일원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 큰 비용이 들기도 한다. 한 지역 어촌계장은 “도시민들은 어촌을 생활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제로는 생활공간이자 생업의 현장입니다. 따라서 마을의 예법이나 상호간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이투데이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미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www.bravo-mylife.co.kr)는 회원수 16만명인 귀농사모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오는 7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강원도 고성군 삼포2리 해변에서 열리는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 행사를 공식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귀농사모 회원들의 유기농산물 직거래사업도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행사 개요
1. 개최일시 : 2014년 07월 18일(토) ∼ 08월 17(일)
2. 장 소 : 삼포2리해변
3. 주 최 : 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조직위원회
4. 후 원 : 강원도/고성군/속초경실연/양양귀농지원센터/고성군번영회/삼포2리해변어촌계/설악헬스케어귀농귀어타운/영농법인한백/국립한경대학교 평생교육원/강원관광대학/강원귀농인협회
5. 주 제 :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삼포2리해변 오토캠핑 귀농귀촌창업학교
6. 강 사 : 첨부서류 참조
7. 참가 예상 인원 : 연 6만명
◇ 행사 소개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운영 계획
1. 목 적
◦ 귀농사모회원 16만명에게 귀농귀어체험 기회 제공.
◦ 강원출신 출향인인 지역 공동체로서의 연착륙 할 수 있게 일체감과 자긍심을 고취.
◦ 강원도와 고성의 문화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귀농 귀어 창업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귀농인구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
2. 방 침
◦ 전국 및 도내 예비 귀농 귀촌 귀어인 및 도민을 대상으로 16만 회원의 Daum우수카페 귀농사모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아 선정.
◦ 30일간의 가족이 동행하는 귀농 귀촌 귀어 체험 워크숍활동 중심 프로그램 운영.
◦ 건강하고 화목한 귀농과 지역민과 융화하는 행복한 귀농 만들기 프로그램 운영.
3. 세부 운영계획
◦ 일시 : 2014. 7. 19.(토) ∼ 8. 17.(일) 30일간.
◦ 장소 : 삼포2리해변
◦ 대상 : 귀농사모 회원 및 전국민
◦ 인원 : 30일간 연 6만명
◦ 숙식 : 오토캠핑 및 삼포2리해변 주변 팬션/민박/식당
◦ 프로그램 : 속초고성양양지역귀농체험워크숍/수산물 이용 치유식품개발 워크숍/힐링쿠킹쉐프전문과정/어린이귀농학교/애견해수욕리조트/소상공인해수욕장/여성귀농인워크숍/싱글귀농인워크숍/귀농귀촌아이디어클럽워크숍/귀농복덕방워크숍/지붕개량워크숍/DIY CCTV/귀농인의3D프린터워크숍/경원대학교총동문회워크숍/한경대학교귀농귀촌특화과정동문회워크숍/귀농귀촌인무료오토캠핑장/황토건축워크숍/목조주택워크숍/조입식주택워크숍/농막워크숍/원두막워크숍/원목구워크숍/용접워크숍/비닐하우스워크숍/칡소사육자워크숍/MBC예비귀농인워크숍/한국일보귀농동호회워크숍/KBS귀농동호회워크숍/한국노총귀농동호회워크숍/국방부귀농동호회워크숍/농협중앙회귀농동호회워크숍
◦ 숙박은 자부담 입장료 및 사용료는 유료
4. 운영 일정표
운영 일정표는 참가농가들 일정 조율 중으로 6월 30일 확정.
*프로그램은 기상변화 또는 일정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음
5. 준비사항
가. 행사장확보(삼포2리해변 일대)
나. 행사 사무국: 강원귀농귀촌학교내
사무총장 : 조재근(박사)
고문 : 최진규(약초전문가)
자문 : 정성근(한경대학교 교수)
다. 착안사항
• 안전중심의 안락 한 캠프
• 귀농사모+고성군민+전국민+지역경제 상생 프로그램
• 이 문건과 관련 문의사항은 010-7345-3344(정성근교수)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되찾고 자연에 빠져 사는 경북 영덕의 박혜균씨
귀촌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다가 건강 이상으로 이른 귀촌을 했다. 남들과 달리 선택한 귀어(歸魚). 처음엔 힘들었지만 초보어부 남편은 이제 어촌계 대의원 등으로 자리를 잡았고 4시간씩 고생하던 혈액투석도 미뤄지고 있다. 맑은 환경이 주는 귀촌의 혜택을 누리면서 오늘도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말기신부전으로 계획보다 10년 앞당겨 귀농 = 우리 부부는 둘 다 시골 태생이다. 그랬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귀촌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딸의 반대로 계속 도시에 살았다. 그러다가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서 귀촌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의 귀촌 계획은 환갑쯤이었다. 그래서 시골에 헌집도 미리 사서 대충 수리를 해놓고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지냈다. 마을 분들과의 유대관계도 맺고, 달라진 시골 생활에 미리 적응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서였다.
물론 주말마다 시골집에 갈 때면 마을 분들께 드릴 작은 음료수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고, 그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통하게 되니 우리가 없는 주중에는 이웃집에서 우리 집을 가끔 들여다 봐주셨다.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에 벌레가 생기면 방제도 해주셨고, 겨울이면 수도의 동파도 예방해주셨다.
그렇게 주말마다 시골에서 생활한 덕분에 우리는 마을 분들과 친해질 수도 있었고, 그분들도 우리가 하루빨리 마을에 들어오길 원하셨다. 공기가 좋지 않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내가 병에 걸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 건강한 몸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늘 과로를 한다 싶을 정도의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말기신부전’이었다. 혈액투석을 받기 위해 손목에 동정맥루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틀마다 병원에 가서 4시간씩이나 피를 걸러낼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면서 ‘왜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는 결국 배수진을 치기로 하고 우리가 사놓은 시골집을 수리만 한 다음에 이사를 해버렸다. 시골에는 혈액투석병원이 없어 기를 쓰고 투석을 미룰 만큼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이사와 동시에 식이요법과 간단한 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아파 이른 귀촌을 하게 된 탓에 마을 분들은 ‘우짜노?’를 연발하며 걱정 해주셨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 자금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기에 둘이서 직접 집을 수리하느라 한 달 동안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지정해주신 나의 첫 투석일이 다가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검사결과에 따라 선생님께서 투석을 할 것인지를 판단한다고 하셔서 선생님을 뵙는 시간까지 줄곧 긴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거기에다가 한 달 동안 시골의 맑은 공기 속에 살다가 도시의 병원에 가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수치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오늘은 투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보름 후에 봅시다.”
그 말은 ‘다 나았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려, 지난 한 달간 힘들었던 것을 싹 잊게 해주며 ‘역시 시골의 맑은 환경이 보탬이 되는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새로운 인생 3막의 시나리오를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인생은 절대로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것이 시골생활에서 내가 터득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로움이었다.
◇좋은 집보다 좋은 이웃이 더 소중하다 = 며칠 전에는 우리보다 1년 늦게 귀촌을 했던 남편의 지인이 결국 도시로 돌아간
다면서 전화를 했다. 마을 사람들의 텃세와 도시에는 없는 해충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시골 사람들이 그렇게 텃세를 하는가? 시골 사람들이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했는가? 꽤 괜찮은 귀촌을 했다고 자부하는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텃세나 이기적이었다기보다는 소통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귀촌하기 3년 전까지 주말마다 마을에 와서 귀촌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고, 아픈 몸을 끌고 귀촌을 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내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셨다. 또한 우리가 살 집을 새로 짓지 않은 것도 마을 사람들과의 융화에 많은 보탬이 됐다. 만약 우리 부부가 애초의 계획대로 거창한 목조 주택을 지어 귀촌을 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보이지 않은 괴리감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급작스런 귀촌을 하느라 집을 새로 지을 시간도 돈도 없어 기존의 농가주택을 수리만 한 것도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는데 보탬이 됐다. 그래서 ‘좋은 집보다는 좋은 이웃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가 내 귀촌 제1항이 됐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돈만 많으면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귀촌을 할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골생활은 돈보다는 배려, 협동, 자조, 성실의 생활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우리는 무조건 먼저 다가갔고, 지나가다가 일을 하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면서 인사를 빠트리지 않고 했다. 마당에 출몰하는 뱀과 쥐 때문에 몇 번의 곤욕을 치르다가 백구 세 마리를 키우면서 이런 고통에서는 해방이 될 수 있었다. 시골에 살려면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하여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건강한 몸이 더 중요 = 남편은 시골로 들어와서 통발 허가가 딸린 어선 한 척을 구입해 초보어부로 첫발을 디뎠고, 그것이 우리의 생계수단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나의 병원비까지 해결할 만큼의 어획고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은 틈틈이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다.
시골로 귀촌을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돈이 많아야 시골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만 연연해 돈을 모으는 일에 올인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막상 귀촌을 해보니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시골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건강한 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물론 시골생활인만큼 소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 우리는 집만 구입하고 토지를 구입하지 못한 탓에 농사를 짓는 일은 포기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마을의 한 어른이 묵히는 밭이라며 농토를 주셔서 밭농사를 조금 짓고 있다.
우리는 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조금이나마 드리기로 하고 그 밭을 받았는데 작년 농사는 대실패라 수확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마을 분들의 조언에 도움을 받아 도시에 있는 지인들과 채소를 나눠먹을 정도의 수확을 거둘 수 있어 재미있
는 농사를 지은 셈이다. 텃밭에서 물과 퇴비만으로 길러진 채소들이 밥상에 오르는 기쁨은, 어린 시절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먹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화생활도 우리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시골에서도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도 누릴 수가 있고, 군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해주기에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그리 큰 불편함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집 앞의 하천둑을 매일 걷고 작으나마 밭을 경작하면서 혈액 투석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갑작스럽고 이른 귀촌을 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지금 어촌계의 대의원과 청년회의 임원에 선주협회의 회장까지 맡아 마을 일에 아주 열심이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이런 남편에게 ‘마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활기차고 깨끗하고. 차기에 군 의원을 시켜야겠다!’고 하실 정도로 신뢰를 보내주고 계신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과시보다 화합, 이기기보다 지는 연습 필요 = 우리의 귀촌은 이제 2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도 방학이나 휴가 때면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데, 이 아이들은 우리 집이 ‘천국 같다’는 말을 곧잘 한다.
마당에는 유실수가 있고,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커다란 백구 삼형제도 마당에서 뛰어노는 곳. 현관만 벗어나면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한 끼 식사가 차려지는 집.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으로 싱싱한 물회를 맛볼 수 있는 집. 저녁이면 온 가족이 평상위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집. 집을 둘러싼 산에서 내려오는 솔바람을 여한 없이 만끽할 수 있는 집.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가끔 초치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가끔 마당에 출몰하는 징그러운 뱀 이야기, 여름이면 파리와 모기가 유난히 많다는 이야기, 한 시간에 한대만 다니는 불편한 버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손사래를 친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는 이곳이 천국 같아요. 우리도 늙으면 꼭 귀촌할 거라고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하나요?”
그렇다. 행복한 귀촌은 준비하는 자에게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행복한 귀촌은 있을 수가 없다. 그대! 행복한 귀촌을 꿈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이렇게 준비하면 될 것이다. 돈보다는 건강을, 과시보다는 화합을, 이기기보다는 지는 연습을, 말보다는 기술을 익히는 것을. 이렇게만 한다면 그대가 꿈꾸는 귀촌은 현실이 될 것이다.
· 귀농 전 거주 지역: 경기도 성남
·귀농 전 직업: SK네트웍스 스마트학생복 지점장
·귀농 결심동기: 원래 시골출신, 환갑 전에 돌아가고 싶었다
·귀농 선택작목: 옥수수, 어업(문어, 소라, 붕장어)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 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47세
·귀농지 선택사유: 남편 고향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땅 구입비용 1억원, 집수리비용 1000만원, 선박 구입비 5000만원
·연간 수익: 순수익 월 300만 원(어업), 농업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