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국에서 사는 친구가 와서 내장산에 갔다 왔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인데 필자와 치킨집 하는 친구가 동참했다. 또 한 명 뺀질이라는 별명의 친구가 있는데 마침 해외출장 중이라 동참하지 못했다. 3명이 일사불란하게 일박 코스를 재미있게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친구가 또 와 일박 여행을 짜봤다. 이번에는 지난해 동참하지 못했던 친구까지 4명이 동참했다. 그동안 치킨집 하던 친구는 은퇴 후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며 용문으로 이사 갔다. 그래서 용문산 등산을 중심으로 계획을 잡았다.
오전 10시에 상봉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뺀질이가 분당에서 출발하면 아침 출근시간이라 너무 붐비니 한 시간 늦게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 친구와 둘이서 출발했다. 상봉역에서 만나 용문역에 도착하니 11시였다. 마침 장날이라 용문에 사는 친구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고생했다고 했다. 3명이 한 사람을 기다리느라 한 시간 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용문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한 시간쯤 모자랄 것 같았다. 시간 맞춰 오라고 했으나 나이 들어 굳이 정상까지 갈 필요 있냐며 산 밑에서 있다가 오자며 뺀질거렸다. 미국 친구는 다리 성할 때 정상 등정을 해야 나중에 나이 들어 못 걸을 때 후회 안 한다며 산행을 고집했다. 12시에 뺀질이가 도착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로 와야 하는데 용문역 태극기 밑에 있다며 찾으러 오라고 해서 더 화가 났다. 태극기 있는 곳을 또 찾아야 했다. 겨우 뺀질이를 만났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해도 충분할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산행 준비를 하긴 한 모양이었다.
닭백숙으로 점심을 맞춰놓았다고 했다. 가서 보니 근사한 개울가 펜션이었다. 용문에 사는 친구가 숙소 준비는 자기네 집에서 해놨다고 했다. 하지만 뺀질이는 친구 와이프 고생하니 펜션에서 자자고 우기며 펜션 숙박 회비를 걷었다. 용문에 사는 친구는 이미 며칠 전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를 해두었는데 이제 와서 펜션에서 자고 가면 섭섭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숙소는 용문에 사는 친구 집으로 정했다.
다음 코스는 용문산이었다. 뺀질이는 용문사까지만 갔다가 내려오자며 뺀질거렸다. 친구들은 일단 올라가자고 하고 용문사에 가서는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뺀질이는 계속 투덜댔다. 해가 일찍 떨어지니 그만 내려가자는 것이었다. 결국 정상까지 가지도 못하고 필자만 마당바위까지 갔다 내려왔다. 그때까지 나머지 친구들은 뺀질이의 자기중심적 행동들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용문산 관광단지에서 저녁식사 겸 술 한잔을 해야 하는데 승용차 처리가 문제였다. 용문에 사는 친구가 술을 마시면 대리운전을 시켜야 하는데 워낙 한적한 동네라 대리운전이 힘든 동네였다. 그렇다고 용문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니 친구 와이프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음식점에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고민하고 있던 터에 뺀질이가 자기는 원래 술을 안 마시니 대신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단번에 해결책이 나온 셈이다. 뺀질이도 쓸 데가 있었던 것이다.
친구 3명이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작년에는 그랬다. 그러나 4명이 되면 한 명은 왕따가 되기 쉽다. 작년보다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분분했다. 뺀질이가 집중 난타 대상이 되었다. 나중에 뺀질이는 심장이 좋지 못해 힘든 운동을 자제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제야 뺀질이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녀들은 신인 걸그룹 같았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기 장기를 펼쳐 보인다. 뭘 그리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기 바쁘다. 만화 그리기에 푹 빠져 결국 그룹을 결성해버렸다는 시니어 만화 창작단 ‘누나쓰’. 잠깐 동안의 취미거리로 잊혔을지 모를 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으로 알게 됐다는 만화. 이제는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으로 만화가 자리 잡았단다. 당돌, 저돌, 돌격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니어 걸크러시와 한바탕 떠들었다.
요즘 내가 제일 잘나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카툰캠퍼스 사무실. 만화를 매개로 한 교육 사업을 하는 이곳은 ‘누나쓰’가 만화를 배우고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최근 ‘누나쓰’ 멤버의 활동상이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디어와의 접촉도 많아졌다. 취재가 있었던 8월 중순에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팀이 다녀갔다. 카메라 앞이 낯설 법도 한데 곧바로 이어지는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이 전문 만화작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나쓰’는 그럼 어떤 시니어가 모여 탄생했을까?
노영자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서 ‘시니어 만화창작교실’이라는 수업을 받았어요. 기초반 3개월을 거쳐서 심화반 3개월, 총 6개월이요. 처음에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선생님들 열의가 대단하셨어요. 수업에 빠진 적도 없어요. 수업이 다 끝나고 나니까 너무 아쉬웠어요. 그림 좀 그릴 만하고 관심이 좀 싹트려 할 때쯤 과정이 끝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와서 사정을 했어요. 우리 버리시지 말라고요. 옷자락 붙잡고 사무실까지 쫓아갈 거라고 했어요(웃음). 만화는 아직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뭐든지 상상만 하면 꿈도 그릴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2014년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카툰캠퍼스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했던 만화 자서전 교육이 ‘누나쓰’가 생겨난 배경이 됐다.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눠 체계적인 만화 그리기 작업을 2년간 진행했다. 만화자서전을 넘어 창작 영역에도 재능을 보이는 시니어를 발굴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후원으로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 교육의 장을 옮겨와 6개월 과정의 교육을 이어갔다. 만화 교육을 다 마치고 못내 아쉬웠던 열혈 시니어가 카툰캠퍼스 사무실로 찾아와 만화를 배우고 싶다며 애원을 했다. 새로운 세상에 눈뜬 시니어를 외면할 수 없어 카툰캠퍼스는 자체적으로 만화에 관심 있는 시니어 7명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왁자지껄 개성 강한 시니어 카툰 걸크러시 ‘누나쓰’가 지난해 7월 15일 결성! 카툰캠퍼스도 ‘누나쓰’를 만나면서 시니어 교육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 있단다.
김경자 작년 10월에는 빼꼼공원(경기 부천시 역곡동)에서 ‘누나쓰가 간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 캐리커처를 그려드리기도 했어요. 12월에는 작품집 을 냈고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전시회도 했어요. 아동센터, 복지관, 노동복지관 등에서도 캐리커처 봉사를 했어요. 다문화 가정 엄마들 얼굴을 그려줬는데 제 생각에는 타국에 와서 가족들이랑 떨어져 사니까 외롭잖아요. 일부러 입술도 빨갛게 그려주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려줬어요. 얼굴을 더 화사하고 밝게요.
‘누나쓰’ 인생에 색깔을 입히다
‘누나쓰’는 7명으로 구성됐다. 7명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과 꿈을 담아 만화 작업을 한다. 퇴직 교사인 김옥순 작가는 만화를 통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오래오래 보면서 자식으로서 보답을 했지만 아버지께는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한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취재 날 개인 사정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춘자 작가는 천재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만화작가로 성장했고 한 은행 사외보에 인터뷰도 실렸다. 서영희 작가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병을 알리고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나가고 있다.
서영희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요. 2010년도에 발병했는데 육십이 좀 넘어서 발견했어요.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떨리기 시작했어요. 이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요. 고치지 못하는 병이구나 했어요. 제가 처음 파킨슨병 약을 먹으면서 겪었던 얘기를 만화로 그렸어요. 약을 3개월 먹으니까 얼굴이 커지더라고요. 너무 독해서요. 잠만 자고요. 그 이후 약을 또 먹어야 하는데 약만 받아놓고 먹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다리도 떨리고 가족들이 속상해 난리가 났어요. 우울증도 생겼고요. 그러다 큰 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하고 약을 바꿨더니 괜찮은 거예요. 어차피 치료받을 생각이면 마음을 바꾸자! 치료를 받으면서 감사의 씨앗을 찾고, 울고불고하면서 짜증내고 화내는 대신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했어요.물론 재활을 염두에 두고 하는 활동은 만화 외에도 많아요. 합창, 핸드벨, 우쿨렐레, 난타 등이요.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만화를 그리는 동안 제 손이 떨리지 않아요. 밤 9시면 자던 사람이 새벽 2시고 3시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해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평온이 찾아오는 느낌이거든요. 요즘에는 음식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 레시피를 모아서 만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누나쓰’ 멤버에 들어온 이영희 작가와 차영순 작가 또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영순 작가의 경우 5년간 다져온 사진 촬영 실력으로 멤버들의 사진을 도맡고 있다. 누나쓰 멤버들은 처음 시작할 때의 작품과 지금 작품을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한 모습에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만화 박람회에도 나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또 박람회에 온 관객들 얼굴도 그려주고 봉사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누나쓰’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하고 있다. ‘누나들의 밥상’이라는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 인터넷에 연재 중이다. 시니어가 살아온 옛 추억이 담긴 이야기도 실리고 있다. 격주로 누나쓰 멤버가 한 작품씩 쓰고 있고 10월에는 이 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아직은 그저 색을 칠하고 자신의 얘기를 하는 정도라 말하지만 시니어 세대가 관심 가져볼 만한 무한의 장이 만화가 아닐까. 아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는 시니어의 입을 통해야만 그 맛이 나고 한결 담백하다.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만화 영역에는 늘 시니어의 따뜻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누나쓰’라는 이름을 걸고 시니어 프로만화가로 제대로 거듭날 그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꽃손, 주먹손, 칼손, 재즈손.”
방배동의 한 무용 연습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음색의 목소리들이 구령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도 난다. 여학생들일까?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마주하고 나니 맞는 것 같다. 표정과 마음, 몸짓까지 생기 넘치는 치어리더팀. 우리는 그들을 낭랑 18세라 부른다!
평균 나이 74세, 색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다
치어리더. 스포츠 경기장에서 운동선수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이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야구장 또는 농구장에서 만날 수 있다. 멋진 포즈와 율동으로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경기장의 꽃’ 치어리더. 젊고 화려한 여성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이 무대에 평균 나이 74세 ‘낭랑 18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소녀처럼 웃고 떠들다가도 치어리더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영락없는 치어리더 아가씨로 변신한다. 본격적인 치어리딩 연습에 앞서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하늘 위로 뻗고 허리를 제법 유연하게 돌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놀랍다. ‘나이 들어도 저렇게 섹시(?)할 수 있구나’란 생각마저 들 정도. 진짜 낭랑 18세의 모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고나 할까. 작년에는 기아 타이거즈 홈 경기장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니어 치어리더팀이 세상 빛을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낭랑 18세 시니어는 전국에 50여 명이 있다. 그중 서울에 있는 20여 명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치매예방체조 배우다 치어리더가 되다
낭랑 18세는 (사)세계전통문화놀이협회(이하 협회·대표 조혜란)의 치매예방체조 프로그램 ‘낭랑스쿨’로 출발했다. 조혜란 대표는 8년 전, 처음 이 협회를 만들면서 시니어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많아졌다.
“협회 초기부터 쭉 전통놀이를 바탕으로 한 치매예방체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협회 대표를 하면서 동시에 대한치어리딩협회 실버분과를 맡은 적이 있었어요. 시니어들도 치어리더 옷을 입고 뛰어보니 생각보다 잘하시더라고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낭랑 18세로 활동하는 시니어들 대부분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몸이 아파 오랫동안 심신이 약해진 시니어들에게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생각운동이 치어리딩을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했다.
“전통놀이로 치매 예방도 하고 무엇보다 일어서서 나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어요.”
치어리딩 연습을 하기 전 낭랑 18세들은 빙 둘러앉아 손뼉을 치고 손가락을 접으면서 큰 소리로 셈을 한다. 이 모든 활동이 치매예방운동이자 전통놀이를 통한 생각운동이라는 것. 무엇보다 이곳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시니어들 대부분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할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보건소에 가서 체력 측정을 할 때마다 근력도 늘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치어리딩 지도자로 제2인생을 열다
현재 낭랑 18세 회원 중 12명은 실버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곳에서 치어리딩을 배운 시니어가 동년배를 가르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지도자 실습을 두 차례 정도 다녀온 회원도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시니어다. 낭랑 18세를 향한 각종 매체의 취재 경쟁(?) 또한 부쩍 늘었다. 치어리딩 연습에 방송에도 얼굴을 비춰야 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낭랑 18세는 오늘도 초록색 치맛바람 휘날리며 목청껏 응원의 함성을 외치고 있다. 낭랑 18세 파이팅!
mini interview
내 인생 다하는 날까지 파이팅~ (김순덕·80)
치어리딩을 시작한건 1년 됐어요. 원래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처음 제가 여기 왔을 때 조혜란 대표님이 걷는 모습을 보더니 “뛸 수 있을까요?” 하면서 걱정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남에게 지지 않을 만큼 잘 뛰고 있어요(웃음). 제가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아 다들 왕언니라고 불러요. 규칙적인 운동을 하니까 다리가 정말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치어리딩을 하면 아무래도 즐겁죠. 병원에서는 제가 나이도 있으니까 평소에 살살 걷고 약으로 달래가면서 생활하라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수영이랑 걷기를 했어요. 그러다 우리 딸이 여기 팀장인데 한번 와보라고 해서 왔다가 완전 재미를 붙였습니다. 좋은 친구 만나 대화도 하고 도시락 서로 싸와서 뷔페식으로 나눠 먹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도 치어리딩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요.
치어리딩 새내기입니다! (임창애·67)
동네에 형님 한 분이 계신데 나를 보더니 운동하러 가자면서 난타를 배우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뭔 난타냐고 그랬어요. 쫓아와보라고 해서 ‘그래 한번 가보자’ 하고 왔지요. 안 그래도 운동은 하려고 했어요. 무릎이 아파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운동은 저같이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만 맞춰진 것들이 많잖아요. 그건 또 따라 못할 것 같고. 와서 여러 형님들 하는 거 보니까 나도 조금만 하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3월에 들어왔으니까 몇 번 안 했죠. 이번에 새로운 유니폼으로 바꾼다는데 기대가 돼요.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일들이 올해는 꼭 정리되고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렇다면 우리 시니어 세대의 마음은 어떨까? 새해를 여는 시니어들의 마음도 한번 열어보았다.
취재협조 강남시니어플라자
은막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서임철(서대문구 홍은동·76)
저는 시니어 배우입니다. 서울노인영화제에 제가 출연한 작품이 출품된 적도 있어요. 연극부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데 활동이 좀 더 활기찼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단원이 열일곱 명인데 올해는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각 지역 노인대학이나 단체를 방문해 공연 봉사를 하고 싶어요. 노인 연기자를 위해 정부 차원의 문화 관련 분야 지원이 늘었으면 해요. 제가 노후에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봐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연기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인 소망은 영화 주인공을 꼭 한번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난타 여왕을 꿈꾼다! 윤상민(강남구 개포동·66)
작년 8월부터 난타를 시작했어요. 10월에는 재능기부 공연도 했고요. 아직 미흡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전문 공연자만큼 난타를 잘하고 싶어요. 왕성하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일어 공부도 시작했어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올해는 더 열중해서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2017년 나는 댄싱퀸 문혜경(강남구 청담동·69)
젊을 때는 운동도 많이 했는데 10년 정도 안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 4~5년 전부터 많이 아팠어요. 혈압, 신장, 부정맥 이런 걸로요. 아프면서 버킷리스트를 한번 써야겠다 생각했죠. 그중에 무용을 좀 배우고 싶었습니다. 우선 라인댄스를 배웠어요.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너무 좋아요. 올해는 차밍댄스도 하고 고전무용에도 도전할 겁니다. 줌바댄스도 할 거예요. 신나는 음악에 다양한 스텝과 세련된 춤 동작이 멋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춤을 추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시니어 모델 콘테스트 대상에 도전한다! 남궁유선 (강남구 방배동·69)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것이 소망 아닐까요? 더 늙기 전에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시니어 워킹을 배우고 있어요. 어렸을 때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어요. 사는 것에 급급했고 아이들 키우느라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다 끝났으니까 이제 열심히 나를 위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요. 제 꿈은 시니어 모델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입상하면 좋겠어요. 올해 도전하려고 합니다.
딸? 결혼하면 안 되겠니? 구신자(관악구 삼성동·70)
제가 허리가 많이 아픈데 치료 꾸준히 받고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딸이 올드미스예요. 마흔셋인데 시집을 안 가요. 시집 좀 갔으면 해요. 그런데 딸은 이대로가 좋다고 하네요. 굳이 등 떠밀고 싶지는 않아요.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면 말입니다. 제가 강남 시니어 모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014년부터 TV, 신문, 잡지에 많이 나왔어요.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데 욕심이라면 일인자는 아니더라도 내 이름 석 자가 알려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글 쓰는 남자 기대해요! 송영섭 (경기도 용인시 영덕동·72)
우선 풍전등화 같은 우리나라가 빨리 안정을 되찾고 바람직한 지도자도 뽑고 평화통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평화통일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외교통일 분야에서 공직생활을 30여 년 했어요. 국제정치나 남북통일에 관한 책도 내고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올해는 수필 같은 부드러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동안 유머와 관련한 책을 두어 번 낸 적은 있어요. 또 제가 한국검도협회 고문으로 있는데, 기 수련에 관련한 책도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거 다 떠나서 순수한 삶의 철학이 담긴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화려한 외출은 이제부터다! 한명희(강남구 역삼동·62)
연극을 시작한 지는 몇 개월 안 됐어요. 그래도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전에는 주부였어요. 그러다가 환갑이 지나 나를 위해 산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울해하고 있을 때 친구가 연극을 권하더군요. 연극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완전 초보자인데 주연이셨던 분이 안 나오시면서 얼떨결에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금 연기에 푹 빠져 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시인으로 등단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비전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제가 하는 활동을 인정해줬으면 해요. 우선 가족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요. 제2인생에서 다시 청춘인데 제가 집에만 있으면 되겠어요?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보니 화려한 외출이었어요.첫 공연 때 가족을 초대할 겁니다. 장한 나를 보여주고 잘했다는 소리를 꼭 들을 거예요.
발길 닫는 대로 떠나는 해가 됐으면… 이주현(중랑구 중화동·72)
남편 병간호를 14년 동안 하면서 저도 허리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의사 선생님이 소리 지르고 두들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춤이랑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어요. 힐링도 되고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실 제가 자세가 좀 엉거주춤하거든요.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도 무용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면 자세를 다시 잡아요. 올해는 혼자 여행을 가고 싶어요. 남편을 챙겨야 했고 저도 아팠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못 다녔어요. 국내 여행도 많이 못해봤는데, 더 늦기 전에 제주 올레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혹시 여유가 생기면 유럽 여행도 꿈꿔 보려고요. 그러나 꿈으로 끝날 거 같아요. 허리가 아파서 비행기를 오래 못 타거든요.
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
탄탄한 연기력과 강렬한 개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두 배우, 류승룡과 이성민을 한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김광태 감독의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은 마을의 권력자 ‘촌장’ 역을 맡은 이성민과 마을에 찾아온 ‘손님’ 역의 류승룡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을 선보인다. 단순한 대립이 아닌 공존과 배척, 신뢰와 배신을 입체적으로 오가는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액션과 연기는 작품의 공포와 재미를 배가시킬 예정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MOVIE interview>>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손님’이라는 단어를 ‘두려움’이라는 뉘앙스로 전환시켜 영화로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즈음, 사회적으로 ‘고용’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인턴제도, 청소년 아르바이트 등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관심 있던 동화·전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약속’과 ‘고용’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릇에 담아 앞으로 더 심각해질 이 문제를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제목인 ‘손님’은 중의적인 의미로 이방인, 타자, 약자, 소수자들을 의미하는데 ‘고용’과 ‘약속’의 피해자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숨겨진 의미는 영화에서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얻어갈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는 ‘집단’을 유독 강조, 강요한다고 느꼈습니다. 수많은 종친회(혈연), 동창회(학연)와 향우회(지연) 같은 모임들은 구분과 구별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앞만 보고 가야 한다’만을 생각하며 뛰어 왔는데, 그 과정에서 테두리 밖의 타인을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개발과 발전 그것이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주인공을 맡은 두 중년배우 류승룡과 이성민의 활약이 영화에는 어떤 시너지로 표출됐나요?
류승룡씨는 익살스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떠돌이 악사, 이성민씨는 마을의 권력자지만 그 역할에 피로감을 느끼는 촌장 역할입니다. 류승룡씨는 ‘난타’ 경험이 있어 음악적 감각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래서 3곡의 주요 피리 연주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습니다. 이성민씨는 처음 하는 악역임에도 지켜보는 스태프들까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무시무시하면서 멋진 악당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관객들은 부드러움과 딱딱함, 따뜻함과 차가움의 충돌을 몸으로 느낄 것이며,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두 배우의 최고 연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영화 ‘손님’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이준 등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가장 클 것이라고, 감독 이전에 관객으로서 장담합니다. 그리고 시·청각적으로 중년 관객들의 기억 속에도 있을, 그 시대가 잘 재현된 배경에 낯선 판타지와 아름다운 음악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