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신아연(57) 소설가는 옷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나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국에 돌아왔을 땐 그야말로 맨몸뚱이뿐이었다. 월세 36만 원짜리 고시촌에서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때우며, 그녀가 허비 없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글쓰기였다. 수행처럼 글을 닦자 이윽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무의식이 샘솟았고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의 질곡에서 붙잡았던 글들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내놓았다.
신아연은 스스로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사람이라 말한다. 마치 젓갈이 절여지듯 독서에 푹 잠긴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고. 그런 그녀가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려는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따금 내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부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 길, 그러한 운명을 가는 자신을 보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이고,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약점이나 모자람 등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한다는 걸 깨달을 때 지금의 처지도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제목처럼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아버리자는 거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 그녀가 삶에서 나아지지 않지만 껴안아야 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시국사건에 연루된 무기수였기에 가족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억눌려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불현듯 한국으로 돌아온 까닭도 그러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 가, 20여 년을 매 맞는 아내로 살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 좁은 교민사회에서 위로는커녕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 급급해 스스로 고립된 채 자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다시 자기 인생을 찾기 위해 택한 이혼, 그 후 수순처럼 따라온 건 절박한 가난이었다.
“아픈 가족관계가 제겐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인정하고 살아갈 수밖에요. 그런데 그 아픔은 깨진 항아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길을 촉촉이 적시며 오종종히 꽃을 피우듯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한국에 돌아와 겪은 가난 역시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고 현실을 직시하게끔 도왔습니다. 방세를 내면 식비가 없어 굶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벼랑 끝 순간들 덕분에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요.”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인정하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고, 차츰차츰 일어설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났다. 그녀는 그렇게 꿋꿋이 홀로 견뎌낸 세월이 자신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라는 걸 명확히 인식해야 해요.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해보세요.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부러워하며 내 모습이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웅녀가 된 것처럼, 저는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어요. 그 지난한 시간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제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유함을 키우기 위해 신아연은 3년 전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자처했다. 자칫 고독한 행보로 여겨질 수 있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녀에겐 오히려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작용했다. 수행의 산물과 같은 이번 책은 ‘영혼의 혼밥’이라는 주제로 자생한방병원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나눈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제게 글은 숨쉬기와 같습니다. 살아 있는 한 써야 하고, 써야만 살아지니까요. 또한 혼자 살아가는 자신을 다잡는 수행의 방편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야 합니다. 가령 한 편의 글에서 글쓴이는 80%의 수고를 하고, 나머지 20%는 독자들이 채웁니다. 소통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지요. 고맙게도 이메일, 문자, 댓글 등으로 피드백을 자주 보내주셔요. 저 또한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게 참 많습니다.”
중년, 인생의 목차를 정리할 때
독자와 함께 일군 300편의 글 가운데 100편의 글이 책 속에 담겼다. 자신의 지난 글을 다시 읽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을 터, 어떤 기준으로 글을 갈무리했는지 궁금했다.
“‘인생은 목차’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나누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내용은 저절로 정리돼요. 삶도 마찬가지죠. 뒤섞이고 흩어져 있을 때는 길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럴 때 인생을 목차로 나눠 보면 삶은 더욱 명료해집니다. 또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중년이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오죠. 저는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현실인 것을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 다른 여정으로 가야겠죠. 이번 책은 제게 혼자 가야 하는 후반생의 새로운 목차와 같습니다. 스스로 정리한 목차이기에 여생의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그녀의 2020년 목차는 무엇으로 채워졌을지, 또 2021년을 채우게 될 목차는 무엇일지 물었다.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 ‘코로나19’죠. 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요. 어차피 글을 쓰고 책 읽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으니까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면서 코로나19와의 거리두기가 저절로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의 목차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두 축으로 한 고독과 가난, 치유와 인내가 되겠네요. 남은 12월은 마무리와 시작이 맞물리니 잘 해냈고,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생채기 난 것들의 회복이라 하겠어요. 2021년엔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존중, 인간 간의 연민과 연대가 중요하리라 봐요. 개인적으로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독자들과의 우정, 두 아들과의 이해 어린 사랑, 저 자신에 대한 용서, 창의, 자유 등을 새해 목차로 삼고 싶습니다.”
2020년 한 해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 - by 유성호
단순한 진심 (조해진 저)
프랑스로 입양된 주인공이 임신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으며 벌어지는 일화를 그린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몰두하며 차츰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이은규 저)
2012년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이은규 시인이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 담긴 49편의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시선과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저)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30여 년 학문의 길을 걷는 동안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수한 시절이 빚어낸 삶의 단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필자 특유의 필치가 녹아든 산문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윤동주 평전 (송우혜 저)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를 되새길 수 있다.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 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예리한 분석이 숭고한 시인의 삶을 재조명한다.
‘인류 원리’에 접목해 읽어볼 추천 도서 - By 김한승 교수
◇ 초협력자 (마틴 노왁 외 공저)
이기심과 이타심, 배신과 협력 등이 난무한 세상에서, 이기심을 벗어나 협력할 수 있는 삶을 탐구한다. 저자는 지구상 그 어떤 종보다도 협력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존재로 인간을 꼽으며, 초협력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펼친다.
◇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랜즈 저)
SF영화 12편을 가지고 철학적 주제와 쟁점을 다룬다. 저자는 역대 철학자들의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옹호하는 이들이 바로 SF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라 주장하며,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냈다.
◇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최무영 저)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과학입문서다. 더불어 고전역학, 양자역학, 상대성이론뿐만 아니라 21세기 최신 주제인 엔트로피, 우주 탄생과 진화 등 물리학의 전반을 폭넓게 다뤘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저)
20년 가까이 예일대학교의 최고 명강의로 알려졌던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death)’을 책으로 엮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난해한 철학 용어를 거의 배제해 ‘대중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빅토르 위고 하면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 하면 ‘장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나란히 할 만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소설가에게 크나큰 로망이라 하겠다.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 등 다작의 장편소설을 통해 실존 인물의 삶을 재조명해온 소설가 김탁환(金琸桓·50). 그는 최근 집필한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달문’이야말로 20여 년 소설가로 살며 만난 ‘인생 캐릭터’라 말한다.
김탁환의 인생 캐릭터 달문을 묘사하자면 이러하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짓뭉개져 입보다 더 낮은 콧등, 날 때부터 털 하나 없는 눈썹, 쏟아질 듯 흔들리는 커다란 눈망울, 시궁창 냄새처럼 풍기는 체취. 완벽한 추남(?) 설정이지만, 소설을 읽고 난 독자라면 그의 아름다운 성정에 매료되고 만다. 세상일에 초연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기희생을 마다치 않는 착하디착한 사내 달문.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뛰어난 춤사위로 여러 사료에 기록된 이른바 ‘조선시대 연예인’이었던 것. 실제 인물이면서 연암 박지원의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과도 같은 달문의 존재를 김탁환이 알게 된 것은 스무 살 무렵.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라 여겼고, 달문에 대한 글을 써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쉽사리 글로 옮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엔 달문의 1%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소설가가 되고 나서 10%쯤 알았을까? 달문을 처음 만나고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겪고 나서야 그의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죠. 좋은 인물을 잘 이해해서 독자들에게 글로 보여줘야 하는데, 나는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7년은 못 쓰겠다고 미뤄온 것 같아요.”
그러던 중 2014년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이에 김탁환은 한동안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등 세월호 관련 소설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거리로 나가 희생자들의 슬픔에 귀 기울였고, 자기 아픔처럼 촛불을 밝혔던 수많은 ‘달문’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평생 자기희생을 자처하며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한 달문이라는 인물이 이해됐고,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달문을 알아가다 보니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세월호 소설을 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내게 수고한다든지 고맙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작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몰랐거든요. 달문의 삶을 잘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 규정짓지 못했던 내 행동까지 이해되더군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거리로 나가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내 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고작 3~4년 했는데, 달문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구나. 그런 점에서 달문이 인생 대선배처럼 느껴졌죠.”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자의 고고한 인생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작품 제목을 통해 달문을 ‘고고하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주인공의 외롭고 가난한 생애와 세상일에 고상하고 초연한 태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설명을 더하자면, 달문은 외롭고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았고, 고상하고 초연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캐릭터다. 달문이 그러듯 고고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달문의 특징은 남들이 하는 건 안 하고, 남들이 안 하는 건 한다는 거예요. 가령 사람들은 돈을 벌면 저축하는데, 달문은 돈을 모을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돈도 모두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줘 버리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기네가 하는 걸 하지 않으니,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인간의 본성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경쟁’이라는 건데, 달문은 경쟁하지 않죠. 자발적으로 경쟁에 끼지 않음으로써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무력화해버려요. 그러니 세상일에 초연할 수밖에요.”
물론 달문의 고고한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살아봄직하다고 느끼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원할 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이에 그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달문은 뭔가를 갖고 있어서 그런 인생을 사는 게 아니에요. 무소유의 삶이죠. 오히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달문은 다 내려놓고 살면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 딱 하나만을 취하죠. 그게 바로 춤이고, 아름다운 춤을 갈고닦는 일에는 치열한 모습을 보여요. 제 경우엔, 장편소설 쓰는 게 그 하나입니다. 전에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고 귀가 얇아 기웃기웃했는데 나이 들수록 그런 부분이 많이 정리됐어요.”
그의 삶이 간결해졌다는 건 책의 작가 소개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 책들만 하더라도 대표 작품과 이력들로 빼곡했던 글귀들이 ‘소설가 김탁환’ 단 여섯 자로 단출해진 것. 그의 이름 앞 ‘소설가’라는 단어가 마치 달문의 생애처럼 고고하게 느껴진 순간이다.
오르막을 향했던 삶, 내리막을 고민할 때
소설 속 달문은 “나의 미래를 만나러 간다”며 명창, 고수, 광대 등 여섯 명의 선배 재인(才人)을 찾아 나선다. 달문은 “선배들이 재인으로 산 걸 온통 후회하며 쓸쓸히 떠나게 하긴 싫었다”며 그들에게 자신이 산대놀이로 번 돈을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세상만사에 초연하리라 여긴 달문 역시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은 있던 터였다.
“달문은 춤꾼인데, 나이 들어 몸이 성치 않으면 춤을 출 수 없잖아요. 선배들처럼 비참하게 늙어갈 수 있으니, 더 예민할 수밖에요. 당시 이름 날리던 재인이라 그 분야에서는 정상에 있었지만, 어떻게 내려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점에서 나이 든 작가들의 작품을 읽곤 해요. 그들의 글을 보면 말년에 구력이 더해져 빛나는 통찰의 문장이 있는가 하면, 이전만 못 한 부분도 있거든요. 서글프더라도 늙어서 내가 못하는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삶의 지혜라고 봐요.”
소설가로서의 오르내림을 고민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그이지만, 20대 후반까지 자신이 소설가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10년 가까이 문학을 해오면서도 소설만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분야라 단정 지었었다.
“결국 비평가로 등단했는데, 지나 보니 스스로 알겠더라고요.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은 되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는 걸요. 그러다 사관학교 가서 교관으로 지내며 소설 한 편을 썼는데, 그 작품을 읽고 누가 편지를 보냈더군요. 소설에 재능이 있으니 꼭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그분이 바로 황현산 선생님이에요. 사실 그러고 기회가 없어 잘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죠. ‘김탁환 너를 발견한 사람은 바로 나다’라고요. 그래서인지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처음 소설가가 됐을 때가 생각나요. 제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인데, 지금 많이 아프셔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틀 뒤인 8월 8일 우리 시대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부고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득 언젠가 ‘왜 소설을 쓰느냐’라는 질문에 “작은 기적을 믿기 때문”이라던 김탁환의 대답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는 작은 기적이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독자가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그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게 됐다는 엽서를 받는 일이다. 그의 바람처럼, 거리로 나온 수많은 아픔을 다독이며 작은 기적을 이뤄갈 김탁환의 소설들을 기대해본다.
2011년, 신현림(申鉉林·57) 시인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 2편을 엮었다. 저마다 인생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이 세상 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녀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앞날이 캄캄하게 여겨졌던 어린 시절, 지혜를 갈망하며 시를 읽었다. 삶의 경구로 삼을 시구를 모으며 나약한 정신을 탄탄히 다졌고, 긍정적인 시의 리듬은 자연스레 그녀의 몸과 마음에 깃들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어도 늙지 않고, 절망스러울 때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신현림 시인. 그녀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3년 전,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들려줬던 신현림 시인. 이번에는 자녀 세대를 위해 새롭게 엮은 시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개정판, 이하 ‘딸아’)과 ‘아들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이하 ‘아들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베스트셀러인 ‘딸아’를 읽은 독자들이 종종 아들을 위한 시집도 엮어 달라고 했는데, 그 바람이 ‘아들아’로 이뤄진 셈.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전과 같은 인터뷰 장소에서 신 시인을 만났다. 변함없이 호쾌한 특유의 미소에는 그녀의 파란 카디건처럼 청아하고도 따스한 기운이 번졌다. 한쪽 손의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띄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느냐 물으니 기부할 새 시집들을 배송하고 오는 길이라고. 미혼모의 집, 소년원, 해바라기 센터 등 기부처를 직접 찾아 정리했는데, 40곳이나 된단다.
“요즘 애들이 입시에 관한 것 외에는 책을 잘 안 읽는대요. 물론 이 책들도 곧바로 읽히고 위안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짜로 온 책이니 어디 한구석에 처박아두겠죠. 언젠가 비 오고, 쓸쓸하고, 잠이 안 올 때 불현듯 들춰볼 거예요.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어? 괜찮네?’ 하고 시가 와 닿으면 그때부터 읽는 거죠. 그러다 ‘시가 좋은 거구나’ 알게 되면, 뭔가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어져요. 그렇게 한두 줄 일기라도 쓰게 되고요. 글을 쓰는 여유를 찾았다면, 그 자체로도 인생의 중심을 잡는 데 효과가 있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괴롭고 슬플 때마다 시를 읽으며 자신을 위로한 신 시인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시는 정신의 양식이며 구원의 등불이었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절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느끼게 마련. 그녀는 특히 인생의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이 장차 살아가며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는 시 한 편을 간직하길 바랐다.
“부모와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들 만큼 절망스러울 때, 자기 마음을 다스릴 시가 있으면 좋아요. 누군가에게 듣는 잔소리가 아닌 글로 보는 시구는 오롯이 나와의 침묵 속에서 읽힙니다. 내 안에서 진정 위로받는 시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죠.”
신현림 시인의 인생에 버팀목이 돼준 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위로받은 여러 작품 중에서 그녀는 시의 경이로움을 처음 느끼게 해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꼽았다.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하나/ 거짓 많던 내 젊음의 나날/ 햇빛 속에서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이제 나는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리’라는 단 네 줄의 시가 소녀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늙음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나중에 나이를 먹겠지만, 그래도 지혜를 얻을 수 있겠구나. 늙는다는 건 뭔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구나. 아주 짧은 시인데도, 긴 여운이 남았었죠. 또 그때부터 시를 사랑하게 됐고요.”
열일곱 소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쉰일곱이 됐다. 40년 전 읽었던 시 덕분에, 나이 듦이 꼭 두렵지만은 않았다. 시의 제목처럼, 그녀가 나이 듦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는 무엇일까?
“아픔까지 놓아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젊을 땐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한 일주일을 끙끙 앓잖아요. 나중에 보면 별거 아닌데도 당시엔 너무나 크게 와 닿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잖아요. 괴로운 건 툭툭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으려 하죠.”
그녀는 평소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얼마나 줬는가’를 자문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더불어 “이제는 주는 나이”라고 강조하는 신 시인. ‘주는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으니 숫자보다 명쾌한 대답을 들려줬다.
“‘선생님’ 소리 듣기 시작할 때부터죠.(웃음) 내게도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돈도 쓰고, 밥도 사고, 그렇게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온 거죠.”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시인을 만나보면 그녀가 시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고 말하자 “아름다우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눈을 반짝인다.
“시를 사랑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거죠. 아름다움은 규정된 게 아니에요. 또 계산 없이 순전한 마음에서 오는 사랑이 아름답듯, 순전한 영혼의 상태에서 써지는 게 바로 시가 아닐까요? 사랑, 아름다움, 시, 이 모든 게 다 같은 거라고 봐요.”
신 시인의 눈에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는 아마 하나뿐인 딸일 것이다. ‘딸아’의 초판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엄마와 입시제도에 관해 논담할 만큼 성숙해졌단다. ‘딸아’ 개정판에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추가됐다. 물론 시집은 세상의 수많은 딸을 위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진짜(?) 딸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엄마가 엮은 시집을 읽고 딸이 가장 위안을 얻은 시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맨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는 어린 나이라서 읽기 어려웠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새로 나온 책도 어제야 줬어요. 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든요. 아직은 시집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못해봤네요. 그런데 나도 참 궁금해요. 우리 딸이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할까? 꼭 물어봐서 알려줄게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그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시 중에서 딸이 꼽은 최고의 작품은 바로 엄마 신현림의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였다. ‘매일매일 축제이니/ 우울해하지 마/ (중략)/어디에 있든 태양 장미를 잃지 마/ 너를 응원하는 나를 잊지 마’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속 ‘너’라는 주체에 대해 딸은 이 세상 어느 독자보다도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딸을 위해 시를 쓰는 엄마, 엄마의 시를 읽는 딸, 이 뜨겁고 오묘한 감정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엄마가 시인처럼 자녀를 위해 시를 쓸 수는 없다. 그녀는 좋은 시집을 읽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아들딸에게 시집을 한 권 선물해보세요.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면 그것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시집을 읽고 좋은 시를 공유하며 서로 인생의 덕담을 나눠봤으면 해요. 부모와 아이 모두 영혼이 유익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되도록 많은 이가 시를 가까이하길, 또 시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 짧고 명쾌한 깨달음을 주는 장점도 있지만, 시의 연과 연 사이 공간처럼 이따금 쉬어가는 쉼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몰되기 쉬운 일상에 시로 브레이크를 걸면 잠시나마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스스로 묻거나, 잠깐 멈춰 서서 피부에 닿는 바람도 느껴보기도 하고요. 군더더기가 없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에서 쓸데없는 걱정과 부정적인 것은 모두 덜어내고 군더더기 없는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