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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①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기행- 이기섭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먼 해외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90세가 넘으면서 모든 것이 약간씩 귀찮아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나 열심히 다녔던 등산도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아들이 오스트리아 여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딸이 살고 있다. 사위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본부가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년에 귀국예정이다. 사위는 전부터 계속 나를 초청했었으나, 나이 탓인지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계속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2명이 사위와 같이 여행경비를 부담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다녀오게 되었다. 2014년 5월 1일 출국해, 5월 10일 귀국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해 기간을 좀 짧게 잡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행기 실컷 타 보았다. 갈 때는 인천공항 출발, 이스탄불 경유, 비엔나까지 약 14시간, 돌아 올 때도 같은 노선인데 약 13시간 걸린 것 같다. 갈 때 비행기에서 제공된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갈 때 올 때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는데, 나처럼 백발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젊어서 다니는 거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비행 내내 영화나 음악 감상으로 바쁜 모습인데, 난 기기 조작도 귀찮고 해서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비엔나 도착 후엔 딸집에 편안히 머물면서 이곳저곳 다녀보았다.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은 한마디로 음악과 함께 낭만을 마음속에 가득 품었던 여행이었다. 5월은 역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아주 딱 맞는 온난한 기후라 쾌적하게 지내다 왔다. ◇ 오스트리아 개관 오스트리아하면 수많은 음악가와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떠오른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해 낸 국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8백 만명 정도로, 절대 다수가 카톨릭 교도라고 한다. 모든 면에서 넉넉하고 느긋하다는 인상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었다. 위 말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법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버스가 2시간 이상 운행하는 경우는 운전자가 2명 탑승, 교대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 운전을 위한 조치라 하겠다.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사는 우리와 달리 ‘안전 안전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동쪽 비엔나에서 서쪽 찰츠부르크행 고속도로로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오스트리아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산맥의 눈덮힌 산악지대도 많이 보였다. 동북쪽으로 평지와 완만한 경사 지대인데, 농지의 잘 정리 정돈된 모습과 곳곳에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 단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부분의 인구는 동쪽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서쪽 지역은 골짜기가 깊고 높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기저기 스키장도 많이 보였다. 서쪽으로 가면서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추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2014-06-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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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보다 형제간에 화합하라
- 흔히 사람들은 어려울 때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한다. 어려울 때 위기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며 극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의 ‘삶의 철학’이다. 회사의 경우 회사의 철학, 즉 핵심가치다.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존슨앤드존슨(J&J) 사례를 통해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존슨앤드존슨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기업 이익’보다 우선 가치로 삼았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에 근거해서 해결했다. 기업이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철학이 있느냐, 그 철학이 무엇이냐에 따라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도 달라진다. 기업에는 핵심가치가 있어야 하듯이 개인에게는 좌우명이, 가정에는 가훈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해 위기를 극복해내는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는 1750년부터 사채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8대, 250여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금융제국을 유지해오고 있는 신화적인 가문이다.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1812)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리대금업을 시작해 1800년 은행을 만들고 이어 다섯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나폴리에 지점을 세웠다. 각 지점은 형제애로 서로 돕는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했다. 다섯 아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9세기에 이미 4억 파운드 재산(60억 달러)을 보유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가족 간의 화합과 결속’이다. 가족 간 화합은 250여 년 동안 로스차일드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것이다. 죽음을 앞둔 창업자 마이어는 다섯 아들을 앞에 두고 유언 대신 평소 즐겨 들려주었던 ‘다섯 개 화살’의 일화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들려주었다. 그 일화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카스피해 일대에서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의 왕이 임종 직전 다섯 왕자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왕은 한 묶음의 화살 다발을 내밀며 한 사람씩 그것을 꺾어 보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것을 꺾지 못하자 왕은 화살 다발을 풀어 하나씩 주고 꺾어 보게 했다. 이번에는 누구나 쉽게 부러뜨렸다. 왕은 말했다. “너희들이 결속해 있는 한 스키타이의 힘은 강력할 것이다. 그러나 흩어지면 스키타이의 번영은 끝날 것이다. 형제간에 화합하라.” 형제간에 화합하라는 이 유언은 로스차일드 집안이 이후 200년 동안 세계의 금융황제로 번영한 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즉 로스차일드의 핵심가치가 된 것이다. 아버지 마이어는 스키타이 왕의 이야기를 빗대 5형제가 우애 있게 결속하면 대대로 가문이 번성할 것이지만, 돈에 눈이 멀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면 돈도 가문도 구름처럼 사라지게 됨을 암시한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는 현재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와인, 문화, 영화, 의학, 국제금융, 철도 등 전 분야에 걸쳐 다국적 조직을 갖고 있다.(계속)
- 2014-01-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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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 나서지 않는 형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200여년 동안 ‘금융황제’로 불리며 세계적 성공신화를 만든 로스차일드가 5형제들의 부침을 추적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여행을 즐기거나 자녀들에게 여행을 장려한 형제는 흥했고 여행에 나서지 않는 형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로스차일드 형제들은 다음 세대를 담당할 ‘젊은 로스차일드’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고 한다. 자녀들은 여행이 주는 흥분, 부모 눈길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낯선 장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일도 배우고, 외국어에도 능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국제인’이 되어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었다. 그들의 형제가 있는 파리, 나폴리, 비엔나, 런던 어디나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국에 진출한 네이선의 아이들 모두에게 여행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네이선의 아이들은 괴팅겐과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하고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그러나 본가인 프랑크푸르트만은 예외였다. 엄격하고 신앙심(유대교) 깊은 장남 암셸과 자식이 없는 부인은 결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했던 암셸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대 공동체 안에서만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여행을 떠나면 종교의식과 정해진 식사를 엄격하게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신의 야심을 늘 자제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다른 네 형제의 자녀들도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꺼렸다. 아이가 없던 장남 암셸은 자기에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며 기부에 나서는 등 ‘하늘을 설득하는’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었던 로스차일드 본가는 ‘아들’만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좀 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금융황제로 불리는 로스차일드가의 산실이던 프랑크푸르트 은행은 20세기 초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여행을 싫어한 장남과 차남, 사남 일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을 즐긴 런던의 삼남 일가와 파리의 막내 일가가 로스차일드 그룹을 계승해오고 있다. 로스차일드 형제들의 부침을 보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성공의 DNA가 숨어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따라서 사업가라면 자녀들에게 필수적으로 여행을 장려해야 할 것 같다. “로스차일드 남작에게는 두 가족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아들)과 예술이다. 만약 그가 첫 번째에서 완전한 만족을 찾지 못했다면 두 번째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다.” 위안이 되는 게 가족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돈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그에 따라 새해의 계획과 우선순위가 매겨지지 않을까. 그리고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자녀에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장려하자. 여행의 산경험만큼 소중한 인생의 보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 2014-01-29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