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먹기 싫은 것이 있다면 바로 나이가 아닐까? 시니어기에 접어들고 나이 앞자리가 무거워지면 모든 것이 억울하고 슬퍼지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먹을 나이 좀 맛있고 멋지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세상 모든 이가 맞이하는 그 나이 듦에 당당해져보자.
도움말 전수경 남서울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생애주기에 있어서 50대 이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요소는 다양하다. 갱년기 우울증을 비롯해 자식들의 독립으로 인한 빈 둥지 증후군, 이혼, 사별, 부모의 죽음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부적 요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전수경 남서울대학교 교수는 “에이징, 즉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허무함 등을 시니어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년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건강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웰에이징’이란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신체적 건강만큼 정신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의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표현을 빌리면, 성인후기(노년기) 마음의 근육은 ‘자아통합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대로 수용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조화롭고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는 성숙한 인격을 의미합니다.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eing)와 심리적 안녕(psychological wellbeing)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인 것이죠. 이를 갖지 못하면 우울감과 타인에 대한 원망, 인생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찰 수 있습니다.”
동화작가 겸 극작가인 설용수 씨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각종 불안감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환갑을 넘기고 나니 새로운 삶이 열린 것처럼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의 결혼으로 인한 빈 둥지 증후군은 자전거 타기와 독서로 조금씩 이겨내기 시작했다. 집은 작은 평수로 줄여서 이사했다. 2년 전부터는 사교댄스를 배워 한 달에 한 번은 춤을 추기 위한 모임에도 간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아무런 부담이 없어요.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내가 직장을 다니고 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습니다. 남자 여자라는 성(性) 구분이 없는 것도 해방에 가깝습니다. 다들 나이가 있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사람 그 자체로 만날 수 있어요. 시간도 돈도 마음도 뭐든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사는 것에 적응하니 지금 정말 행복해요.”
빈 둥지의 허탈감과 늙어간다는 부적정인 생각을 밟고 더욱더 성숙하고 완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설용수 씨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깊은 우울감 대신 좀 더 나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누구든지 신나고 당당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옵션 B’라는 공동 저서를 통해 ‘상실과 역경으로 마주하게 된 삶을 ‘옵션 B’라는 말로 설명했다. ‘옵션 B’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이 요구되는데, 이는 “절망감 속에서 빠져나오는 심리적 근육”을 말한다. 자아통합감과 회복탄력을 지니려면 마음을 단단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전 교수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인정하고, 긍정적이며, 과도하게 의존적이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레이스 리보와 바버라 케인이 쓴 ‘나이 든 부모와는 왜 사사건건 부딪힐까?’라는 책을 보면 시니어기에 접어들어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부터 그러한 인자(요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니어가 되어 갑자기 고집스러워진다거나, 독단적이고 의존적인 성향으로 변한 게 아니라는 것. 전 생애에 걸쳐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니어기에 부각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물론 나이 들면서 더욱 문제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레이스 리보와 바버라 케인은 나이 듦으로 해서 겪는 6가지 문제 성향을 책을 통해 열거해놓았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돌아보고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면 나이 먹는 스트레스 없이 긍정적이고 멋진 시니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전 교수는 조언했다.
시니어의 문제적 성향
❶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유형이다.
❷ 흑백의 세계에 있으며 나쁜 면만 보는
유형이다.
❸ 자기밖에 모르는 유형이다.
❹ 만사를 자기 뜻대로만 하는 유형이다.
❺ 자기학대를 하는 유형이다.
❻ 두려움에 빠진 유형이다.
전수경 교수의 어드바이스
❶ 홀로서기를 연습해야 한다.
남에게 과도한 의존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❷ 좋은 면을 보는, 긍정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관점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❸ 자기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❹ 자기 뜻대로 사람이나 상황을 조정하려고 하는 통제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❺ 자기를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
❻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방송 중 진행자가 갑자기 8층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지막지한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러한 사건의 근저에는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우울증이란 질환이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항우울제 소비량은 꼴찌 수준일 만큼 우울증 치료에 인색하다. 2015년에 28개국 중 27위였다. 이런 상황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중병만큼이나 무섭다. 한양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노성원(盧聖元·46) 교수를 통해 우울증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여성이 주의해야 할 질환 중 우울증이 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다. 남성의 2배 정도 된다. 노성원 교수는 남녀 간 우울증 발생의 차이가 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은 월경을 통해 매달 호르몬의 변화를 큰 폭으로 겪게 되니까요. 또 출산 역시 엄청난 호르몬 변화를 가져오고, 폐경 전후에도 마찬가지죠.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생리전 증후군이나 산후우울증, 갱년기우울증 모두 호르몬의 변화가 원인인 우울증 일종이라 보면 됩니다.”
노 교수는 여성이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 역시 우울증이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목한다. 출산과 육아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맞벌이 등으로 사회참여 폭까지 넓어지면서 스트레스의 종류와 양이 모두 늘었다는 것이다.
중년의 우울증에는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또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상실이다. 상실로 인한 대표적인 우울증으로는 빈둥지증후군이 있다. 자녀가 모두 독립하고 집이 텅 비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또 친구나 친지들이 아프거나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무릎이나 허리 등 활동에 제약을 받는 질환에 걸려도 상실감은 찾아온다. 은퇴로 인한 사회적 지위나 직장의 상실도 마찬가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영향이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갑상선암 수술 후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거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이 뇌에 영향을 주면서 우울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만큼 우울증은 원인이 다양한 병이다.
치매와 우울증 구분 방법은?
전문의들은 우울증에 맞닥뜨릴 때 나타나는 증상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가장 큰 증상은 기분의 변화다. 의욕이 사라지고 축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생리적으로도 변화가 나타난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식욕도 사라진다. 그러다 사고의 변화까지 일으킨다. 모든 사안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이 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할 경우 허무망상이 심해지면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인지능력 저하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총기’가 사라진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흔히 치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를 잘하면 명의로 평가받기도 하죠. 치매가 치료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치매로 인한 인지능력 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은 다소 다릅니다. 치매의 경우는 본인이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떠올리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귀찮아하고 포기해버려요.”
우울증으로 인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몸의 통증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내는 데 적극적인 서구권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울증 증상도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노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현에 서툴잖아요. 특히 남성들은 더하죠. 가면성 우울증은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우울증 환자인 경우를 말해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이상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픈데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봐도 도통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우울증일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할 때는 언제일까. 노 교수는 평소에 비해 모든 것이 귀찮고, 우울하고, 입맛도 떨어진 것 같으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재미있게 보던 TV 드라마가 재미가 없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봐도 웃기지 않고,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주제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은 외형적인 변화도 일으킨다. 즉 행동이 느려지고, 외출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정되어 있던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두문불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며칠 그러다 말지만, 2주 이상 이와 같은 증상이 지속되면 발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치료는 인내심을 갖고 임해야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할까.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다.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주면 우울증 증상이 개선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약물을 통해 보충해준다. 약물 치료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물 성분도 아니고 복용 방법도 아니다. 바로 끈기와 인내다.
“우울증 치료제는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려면 2~3주 정도 지나야 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복용해야 해요. 또 치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드셔야 합니다. 치료 중간에 약을 끊어도 변화가 아주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 전에 이런 부분을 반드시 강조합니다.”
약물 치료 외에 전기나 자기로 뇌를 자극해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우울증이 심해 당장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가 있는 환자, 약물 치료가 어려운 임산부 혹은 고령의 환자들에게 사용한다. 일주일에 2~3회씩 2~3개월 동안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치료 효과는 높은 편이다. 마취 후 시술하기 때문에 통증 염려도 없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자주 걸어라”
우울증처럼 환자들이 의학적인 치료 외의 방법에 매달리는 병은 많지 않다. 그만큼 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크고, 주변에 알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교수는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이 도움될 것 같지만 우울증 환자에겐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나만 비참하다 생각되면 증세만 심해질 뿐이니까요. 술과 담배 역시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만 나타날 뿐입니다. 치료 없는 상담도 큰 도움이 안 돼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주변의 조언이다. 의지가 문제라거나 정신 차리라는 등의 충고는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섣부른 위로도 마찬가지. 우울증 환자가 주변에 있다면 그저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노 교수는 조언한다.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걷기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걷기는 가벼운 우울증에 좋다. 의료계에서 인정한 거의 유일한 자가치료 방법이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우울증 관련 서적을 읽어본다면 스스로의 증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도움이 된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 와 가 한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은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 중·장년이 겪는 사회적, 심리적 증상들에 대해 다룬다. 다른 해에 발표됐던 작품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은 점에 착안해, 하나의 무대에서 주중에는 번갈아가며 공연하고 주말에는 연이어 상연한다. 독특한 점은 는 박정희, 는 이병훈이 연출을 맡아 여자가 바라본 아버지, 남자가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두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하며 아버지/어머니가 가장 생각났을 때
[이병훈] 어렸을 때 효자상도 받고 해서 그런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를 연출하면서 그동안 내가 과연 어머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동물적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자식을 향한 집착이나 다 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비극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서운 박탈감, 집착 그리고 사랑의 한계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정희] 작품 후반부에 아버지 앙드레와 안느가 얘기하면서 간병인 로라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앙드레는 로라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즐거워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던 내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이면 큰 기대감으로 즐거워하셨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과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곤 했는데, 그러한 아버지와 앙드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많이 겹쳐졌다.
의 윤소정/의 박근형 두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는지
[이병훈] 연습 초반에는 윤소정 선생님과 서로 스타일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을 하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윤소정 선생님은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약점을 듣고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소위 ‘쿨’하게 받아들인다. 뿜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보다는 본능적인 감각과 즉흥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그런 선생님의 연기술을 이해하며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
[박정희] 박근형 선생님과의 호흡은 좋았다. 코멘트를 받으면 꼭 실행하고 더 발전하기도 했다. 앙드레라는 역할에 대해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원로배우이시지만 영리한 배우라고 느꼈다.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만한 부분
[이병훈] 중년에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의 삶의 비극성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어머니 자신들의 사랑과 좌절을 통해 의타적 삶에서 주체적 삶으로 바뀌어 가기를 희망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족들에서 발견하는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떠나보내고 삶의 허망함에 맞닥뜨렸을 때 보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우리는 살면서 ‘나’를 주장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인들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적으로 맺는다. 하지만 ‘나’라는 정체성은 ‘기억’이라는 모래 기둥처럼 부실한 발판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다. 기억은 뇌가 노화되거나 병들면 점차 사라지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한 사람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허상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이 치매를 다루긴 하지만, 공연의 메시지는 충분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일정 8월 14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박정희, 이병훈 출연 박근형, 윤소정 등
‘예술가란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자다. 예술을 나타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의 아름다운 구절은 꼭 인용하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글을 쓰기 전 그 빛바랜 책을 들고 있으면 정말 빛이 난다고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창조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이루어졌다.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행복한 예술가’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상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현대문학의 어머니 故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작가. , 등 따스한 작품들로 사랑받아온 그녀도 작가이기 전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박완서와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이가 있으니, 그녀의 맏딸 호원숙(扈源淑·61)씨다. 호씨가 말하는 어머니 박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다.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신 나의 어머니
1970년 마흔 살의 나이에 소설 으로 등단한 박완서 작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호씨는 어머니가 세상에 알려진 그날이 ‘혁명’과도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화려한 혁명이 휩쓸고 간 다음 날의 허전함처럼, 그녀도 남모를 상실감에 마음을 앓아야 했다.
“예전부터 ‘나는 박수근에 대한 글을 쓸 거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아 올 것이 왔다’ 생각했죠. 이미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어머니였지만, 어쩌면 그 이상일 거란 막연한 예감이 들었어요. 을 읽고 ‘이건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소설일 뿐’이라는 건 알았지만, 도리어 그것이 ‘이제는 어머니가 우리만의 어머니가 아닌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셨다’는 깨달음을 줬죠. 그 깨달음이 저에겐 상실감을 안겨줬고, 어머니가 전과 다르게 행동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식구들의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언덕을 오르내리셨죠.”
가장 평범하고도 가장 비범했던 어머니
박 작가는 한 강연에서 “마흔 살까지의 보통 여자의 삶의 경험을 지금도 파먹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쓰지 않고 보통으로 산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평범한 엄마로 살아온 넉넉한 경험들이 녹아나 그녀의 작품에 온기와 생명력을 더한 것이다.
“어머니는 40세에 글을 쓰셨고, 이미 다섯 아이의 엄마였어요.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 시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갑자기 그런 생각들을 하신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쓰려고 했던 인물이나 소재, 모티브 등을 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해 두셨어요. 어머니는 어쩌면 태생적인 작가였을지도 몰라요. 만나는 이웃이나 집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층을 두지 않고 모두 인격적으로 대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따뜻한 만남을 가졌던 인물들의 캐릭터가 모티브가 돼 문학 속에서는 특별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 거죠.”
엄마의 말뚝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작품은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을 일깨워주는 보드라운 각성제와도 같았다. 호씨는 문학에 대한 어머니의 강한 소명의식이 일궈낸 산물이라 말했다.
“어머니는 40년 동안 단편, 장편, 수필 등을 끊임없이 글을 내시면서 당시의 화제작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요. 항상 시대상을 읽으면서 쓰셨기 때문이죠. 그 시대의 아픔이나 갈등, 문제점, 인간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나치지 않고 어떠한 형태로든 글을 쓰셨어요. 신문 연재소설도 쓰셨는데 산업화 과정에서 피폐해지고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하신 분이셨죠.”
에서 어머니는 딸에게 ‘신여성’이 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를 말하는데, 그녀 역시 교육을 통한 자존감 확립에 가치를 두었다.
“공부를 해서 자존감을 찾고 자유로운 여성이 되는 것이 곧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그렇다 해서 ‘공부해라’라고 말씀은 안 하셨어요. 늘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셨죠. 저에겐 공부하라는 말 대신 을 읽으라 하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저는 그 장면을 상상하다가 그것을 보기 위해 두껍고 글씨가 촘촘히 박힌 책을 읽어냈어요. 그렇게 책을 읽고 나면 ‘아 해냈다’는 승리감이 들기도 했고, 어머니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죠.”
웃음 뒤에 가려진 어머니의 쓸쓸함
유난히 밝게 웃는 사진이 많은 박완서 작가. 푸근한 미소로 기억되는 그녀지만, 호씨는 시간이 흐른 뒤 읽는 어머니의 글에 숨어 있는 슬픔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했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가슴 아픈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의 외로운 감성은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언젠가 을 보는데, ‘아 어머니께서 그때부터 벌써 외로움을 예견하셨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때는 우리 에게 슬픈 일이 생기기 전이었는데도 그런 외로운 글을 쓰셨더라고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이미 70대 노인의 쓸쓸함이라든가, ‘빈 둥지 증후군(자녀 독립 후 부모가 경험하는 슬픔)’ 같은 걸 먼저 느끼신 것 같아요. , 등을 봐도 노년, 중년 이후의 외로움에 대해 많이 쓰셨어요. 근데 그때는 어머니가 외로움에 대해 글을 써도 어머니는 외롭지 않다 생각했었어요. 글은 글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버지와 남동생이 떠난 뒤 찾아온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 작가의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 사람이 슬픔을 극복하고 글로 승화시켰다’는 반응을 보였다. 야속하기만 했다.
슬픔이 가시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호씨는 뼈마디가 녹는 듯한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신의 아픔을 쓴 글이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가 밥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셨어요. 요즘 어머니 작품을 볼때 그 시점을 먼저 봐요. 이 글을 언제 쓰셨는가 보면 그땐 무슨 일이 있을 때였다는 걸 알게 되죠.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그때는 몰랐던 어머니의 감정을 많이 느껴요.”
어머니는 평등주의자
사소한 것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박완서 작가의 통찰력. 세상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봤던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에서 태어난 문학은 삐뚤어지고 모난 우리의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주었다.
“하찮은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대단함, 대단한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하찮음을 단순하게 쓰진 않았어요. 그런면에서 보면 어머니는 평등주의자예요. 잘난 사람도 약한 구석이 있고, 약한 사람도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고, 실제로 발견해내는 분이셨죠. 그 발견이 곧 어머니의 문학이에요.”
‘박완서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지만 늘 겸손을 잊지 않았던 그녀다. 젊은 작가들과 소통하면서도 그들을 거느리려 하지 않았고, 상석보다는 함께 둘러앉아 대등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혼자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으셨어요. 그 겸손함이 과장된 낮춤이 아니라 진실된 느낌이었어요. 자존심을 세울 때는 당당하게 행동하시면서도 항상 다른 이를 존중 하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태도가 제 인생에 가장 큰 교훈이 됐어요.”
문학과 일치했던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생활과 떨어진 문학을 하신 분이 아니셨어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고, 그걸 가장 중요시하셨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셨고, 겪지 않았더라도 작가의 모습과 생각을 바탕으로 상상하셨어요. 그래서일까 어떤 인물도 악인도 아니고 완전한 선인도 아니게 쓰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 작품을 봄으로써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어머니의 작품이 주는 큰 가르침이죠.”
호씨는 “나는 박완서 작품을 읽으며 성장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머니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거고, 같이 느끼고 고민 한 모든 것들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 주셨던 거죠. 어머니의 작품은 그대로 어머니의 역사가 되었고 우리의 역사가 된 거예요.”
어머니와 함께한 행복의 나날들
박완서 작가가 평생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이는 그녀의 맏딸인 호씨였다. 호씨는 그런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담아 책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전에 나왔던 호씨의 책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이야기와 개인적인 글들이 많았던 반면 이번 책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느낀 그리움이 주를 이룬다.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 마당을 같이 가꾸고, 피어나는 꽃을 보며 즐거워했던 거예요. 제가 꽃을 사오면 함께 심고, 그 꽃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그런 날들이 가장 행복했어요. 또, 어머니께서 제가 해드린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해주셨을 때도 참 행복했고요.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거. 그랬던 나날들이 당시에도 굉장히 소중하고 행복해서 깨질까 봐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항상 같이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