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인간이 언어를 시작했을 때 해, 달, 별, 풀, 불, 숲, 너, 나처럼 한 음절의 말을 툭툭 뱉으며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한 음절로 된 말들에는 대개 인간이 우주와 사물을 처음 대하던 때의 낯섬과 놀라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가장 긴급한 것부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저게 뭐지? 그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
그런데 결이란 말은 즉흥적으로 생각해내고 단호하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인간의 시선이 정교해지고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힘이 갖춰지기 시작했을 때 생겼음직한 명사다. 그런데 왜 한 음절일까. 그것도 약간 혀를 굴려 음을 흐르게 하는 듯한 소릿값을 지닌 한 음절. 아마도 이 말은 ‘두 음절 명사 시대’(지금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로 진입한 이후에 무엇인가를 빠뜨린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다 문득 찾아낸 개념이 아닐까. 찾아낸 뒤 그 본능적이고 본질적이며 생의 원천을 이루는 느낌 때문에 애써 한 음절 시대로 돌아가 딱 한 글자로 언어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말이다.
원시의 일상 속에서 만난 첫 결은 나무와 파도가 아닐까 싶다. 나무 속에는 무엇인가가 마치 흘러간 듯한 자국들이 켜를 이루며 짜여 있다. 가로로 자르면 나이테가 결을 이루고 세로로 자르면 그 나이테의 원무를 그리며 나아간 무수한 줄들이 결을 이룬다. 나무껍질도 결을 이루며 나무뿌리와 잎들도 스스로의 결을 지니고 있다. 물은 흘러가는 지형이나 출렁이는 양상에 따라 결을 만들어낸다. 물결은 부드럽고 순하고 감미로운 것도 있지만, 때로 성난 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섭게 흔들리며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것도 있다.
돌도 결이 있다. 돌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무늬와 금은 단단히 박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때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출렁거렸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돌은 단단하지만 결은 그 속에서도 부드러운 활성(活性)을 드러낸다. 조개 무늬도 결이며 그 결이 옮겨온 자개 무늬도 결이다. 결은 인간이 짓는 공예(工藝)에도 스며들었다. 찰랑이며 흩어지는 비단결이 그것이다. 실오라기가 가지런히 눕는 것도 결이다.
그런데 결은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면서 스스로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말이 되었다. 숨결은 숨이 물결치고 무늬지듯 흐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시도 멈출 수 없는 생명의 오롯한 펌프질인 숨은 그 결이 곧 생명이다. 숨결이 부드럽고 고르고 온기가 있으면 잘 살아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위험한 것이다. 죽음을 숨이 졌다고 하는데, 지는 것은 숨결이 꺼지는 것이다.
또 인간은 스스로의 몸을 이루는 살의 결들을 가끔 애틋한 기분으로 내려다본다. 살결은 마치 물결처럼 흘러간다. 언제나 어리고 젊은 살결 그대로 있지 않고, 늘어나고 처지고 물컹해지는 살결로 흘러간다. 생체시계는 이 결 속에도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의 얼굴과 늙어가는 얼굴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며 비교해본 사람이라면, 늙은 얼굴이 들어와 앉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 얼굴의 살결이 흘러내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살결은 수많은 감정을 실어내면서 조금씩 흘러온 것이다.
숨과 몸을 이루는 결에 마음을 두었던 인간은, 마침내 마음에도 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이 고운 경우가 있고, 그 결이 부드럽게 흐르고 따뜻하게 물결치는 경우가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눈으로 뚜렷이 볼 수 있던 결과는 달리, 마음결은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파도치는 결인지라 훨씬 높은 수준의 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린 심청이나 흥부의 착한 마음결을 들어서 알고 있고, 스스로도 가능한 한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결이 고우면 마음도 고와진다고 믿는 ‘결의 신앙’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은 ‘결’이 다르더라. 이 말보다 더 확실하게 그 사람의 삶과 내면을 규정하는 말이 또 있을까.
결은 묘하게도 ‘겨를’이란 말과 닮아서 가끔 넘나들기도 한다. 겨를은 무엇인가를 하다가 잠시 생각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말한다. 틈과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무심결에’나 ‘얼떨결에’ 같은 말에 쓰이는 결은 겨를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고, 파도나 흐름의 결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다. 무심과 같은 결을 타고 가는 것이나 얼떨떨함의 결을 타고 가는 것이나, 모두 그런 묘한 결의 맛이 끼어든다. 바람결이란 말도 바람이 불 때를 가리키는 맛도 있고, 바람의 흐름 자체를 가리키는 느낌도 있다. 또 꿈결도 그런데, 이것은 꿈의 흐름이란 뜻보다 꿈을 꾸던 겨를의 뉘앙스가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결에는 운동성(運動性)이 있고, 그 운동이 기입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시간성(時間性)이 있다. 결은 생동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내면의 잘 제어된 흐름을 말하기도 한다. 결에서 느끼는 의식과 무의식은, 생명을 유지하라는 명령을 타고난 존재들이 공유하는 깊은 공감일지 모른다. 지속적인 움직임은 삶의 낌새이며 자국이다. 결은 그 꿈틀거림을 직조(織造)해나간 물성(物性)의 긴박하고 또렷한 자취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 김덕용 선생의 ‘결’로 이룬 작품들을 보면서 몹시 매료되었다. 그 이미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이미지에 흐르고 있는 익숙하고도 정겨운 결에 매료되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늘 보고 자랐던 장농이나 화장대의 무늬들, 대청의 천장과 벽에 드러나 있던 무늬들. 그 결의 흐름을 한동안 잊어버린 듯했는데, 그림들이 마치 무의식처럼 형상의 안으로 흐르게 해놓았다.
그 결이 형상을 이룬 것도 아니다. 형상이 마치 스스로 결을 지닌 것처럼 얼비칠 뿐이다. 나무의 질감이 형상을 품고 있는 서늘하고 우묵한 기분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결이 왜 이토록 마음을 상기시키며 안정시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결들과 우리의 목숨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왜 우리는 결에서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알 수 없음이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 내 안에 흐르는 결, 내 눈앞에 늘 흐르던 결을 복원시켜주고 복각시켜준 어느 예술의 원형적 통찰. 신비란 신의 비밀이라고 한 사람은 다석 류영모였다. 신비는 도처에, 아니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이미 저절로 다 들어 있다.
6000년 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삶, 바쁜 세상에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시간 여행은 이럴 때 재미를 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한 곳, 서울이나 수도권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게다가 놀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맛도 쏠쏠하다.
지하철 4호선이 닿는 곳, 오이도역.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좋다. 소박한 바다마을 오이도의 다채로운 스폿들 중에 선사유적공원은 나지막한 능선 아래 편안히 자리 잡았다.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느껴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의 자연을 산책하듯 색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 해볼 만하다.
한적한 구릉 선사유적공원
선사유적공원은 뜨겁던 햇살도 적당히 누그러진 아침나절, 혼자도 좋고 친구나 부부, 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 편한 공원이다.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공원과 비슷한 면적인 33만5859m²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서 띄엄띄엄 거리두기를 하며 느긋함과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해본다.
여기저기에 선사시대 마을을 구현한 움집들은 규모와 마을 크기가 작지 않다. 이곳은 우리나라 중부 서해안 최대의 패총 유적지이면서 다양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그래서 선사시대 서해안 생활문화유산의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문화적 가치를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2018년에 공원으로 조성해 국가 사적 제441호로도 등재됐다.
선사 마당에서는 한반도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적당한 곡선의 구릉 위에 드문드문 만들어진 움집 마을 마당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옛사람들이 오갔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TV예능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 족장처럼 불씨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통나무를 굴려서 목재이동 방법도 체험해 볼 수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 심심하지 않다.
야영 마을과 발굴터를 비롯해서 움집 생활과 수렵 모습, 둘러앉아 조개를 구워 먹는 모습은 조개구이로 유명한 요즘의 오이도 맛집 거리를 연상시킨다. 그 옛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피며 선사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보는 색다른 시간이다.
놀이 참여도 여행의 맛
움집 건물마다 주제가 달라서 한군데씩 구경하다가 문이 열린 곳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이때 안에서 누군가가 “들어오세요”하며 상냥하게도 맞아준다. 무심결에 들어가 보니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교실이었다. 선사인들의 생활도구나 의류 같은 걸 진열한 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진행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계획에 없던 조가비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나니, 체험 프로그램의 맛이 요런 것이구나 싶게 즐겁다.
아이들처럼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어? 이렇게 구워 먹었구나, 이런 데서 잤나 보다’ 하며, 그저 눈으로만 느끼다가 이렇게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며 만들어 보니 한층 이채롭고 뜻 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비상 사태에 빠뜨린 이즈음 ‘코시국’ 모습이 훗날 시간을 거슬러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될는지….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변동으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해설사 안내는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선사 마을 뒤편에 펼쳐진 억새가 꾸며놓은 예쁜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차분한 자연 속에서 제 빛을 내는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몇 년 되지 않은 신상 공원이다 보니 아주아주 오래된 신석기시대를 보여줌에도 대부분이 산뜻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꼭 새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한쪽에는 고사를 지내고 도당굿을 했다는 불타버린 당산나무가 있고, 그 옆에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세상은 또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니 공원 전체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이럴 땐 걷다가 벤치나 풀숲에 털썩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맛도 세상 행복하다. 잔디 능선길 옆으로 한적하게 앉혀진 패총전시관이 보인다. 조개무덤인 패총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각종 전시물과 영상이 오이도 지역에 있었던 신석기시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패총이 만들어진 과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다시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이도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송도 국제도시가 보이고, 더 멀리에는 서해바다까지 내다보인다. 군데군데 몇 척의 갯배가 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도시생활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호젓한 기분에 잠긴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펼쳐지는 멋진 해넘이가 장관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도 사랑의 열쇠 꾸러미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체험을 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면서 단순한 공원을 넘어 역사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10분 거리에 있는 시흥 오이도 박물관에 들러 선사인들의 삶과 역사를 더 알아볼 만하다. ♧경기 시흥시 서해안로 113-27
바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바다의 맛
오이도에는 선사유적공원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많다. 이 중에서도 섬이 아니면서 섬인 듯 빨간색 등대의 강렬함이 먼저 떠오르는 곳, 도심 가까이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오이도 거리를 꼽는다. 선사유적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는 어딘가로 훌쩍 나서고 싶었던 마음들이 모여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눈앞에 우뚝 선 빨간 등대와 비릿한 바닷바람이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설렘을 부추긴다.
등대전망대는 코로나19 여파로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무수한 갈매기 떼가 시시때때로 날고 있어서 바다여행을 실감할 수 있다. 제방 둑으로 새하얀 생명의 나무가 한낮의 햇볕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생명의 나무는 오이도가 가진 역사와 생명, 사람의 흔적을 되살리고 후대에 길이 알리고자 제작됐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를 지나면 함상 전망대가 바다를 앞에 두고 나타난다. 쭉 걷다 보면 바닷길을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무리 지어 씽씽 지나간다. ♧경기 시흥시 오이도로 175
부둣가 쪽으로는 작은 수산시장이 난전을 이루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도로 아래로 건너가면 오이도 전통수산 시장이 있어 꽃게와 소라, 조개류 같은 싱싱한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천천히 다녔음에도 한나절이 지나 점심 무렵에 이른다. 오이도 제방을 따라 쭈욱 늘어선 음식문화거리엔 각종 활어회와 조개구이 같은 이곳만의 향토음식이 넘쳐난다. 맛집 밀집 지역으로 오이도가 패총 유적지답게 지금도 각종 어패류 요리가 지천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무한리필 되는 쫄깃한 모둠 조개구이 한판? 콜~! 가리비와 대합, 백합, 키조개 등 푸짐한 구성에 풍미를 더하는 모차렐라 치즈를 포함해 모두 무한리필로 실컷 먹을 수 있다. 치즈 조개구이가 대표 메뉴인데 알밥과 라면까지 추가된다.
슬기롭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
음식문화거리에서 유혹을 즐기고 나면 어느덧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 이른다. 이럴 때 시원한 실내에서 창의적인 놀이로 차분하게 보낼만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오이도와 인접한 섬이었던 옥구공원에 가면 재밌는 목공체험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요즘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공원에서는 이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산림 부산물을 적극 활용하는 실습으로 숲의 자원화를 실현하고 목재문화 활성화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온라인과 현장 접수를 선택해서 이용하면 된다. 두 시간 정도면 손잡이 달린 멋스런 트레이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트레이 체험비는 1만4000원이었다.)
준비된 나무 재료에 자연색감의 칠을 하고 → 사포로 문지르고 → 모양대로 짜 맞추기 → 스텐실 무늬 넣기 → 손잡이 달고 → 다시 한번 유약 칠하면 → 완성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목공 작품 하나, 볼 때마다 뿌듯하다.
시흥의 옥구공원은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워낙 넓어서 자연 생태계를 살피며 공원을 산책하기에도 좋다. 축구장에서는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군데군데 조각 작품들이 품격을 더한다. 숲 속 도서관과 장미원, 옥구 숲과 곰솔 누리 숲을 이용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으로 차분한 힐링 공간에서 심신을 안정화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 2138
축복처럼 번지는 노을 풍경, 미생의 다리
시흥에 가면 저녁 무렵에 또 한 군데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시흥 늠내길 들판에 펼쳐진 생태 교량인 자전거 다리다. 일명 '미생의 다리'로 부른다. 시흥시 월곳의 갯골과 소래포구 사이에 새롭게 만든 다리로, 일출과 일몰 시점에 다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연말이나 연초엔 해넘이와 해돋이 풍경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이 일대가 대규모 염전 지역이어서, 이 다리의 모양을 염전에 물을 대는 수차 바퀴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 제목과 같은 동음인 '미생'이긴 하지만 바둑의 미생(未生)과는 뜻이 조금 다르다.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의 다리'라는 의미다. 짭짜름한 생명력 가득한 갯골 앞에 미려한 곡선으로 놓인 미생의 다리. 이곳엔 짜릿한 노을 풍경이 여러분을 맞이한다. ♧경기 시흥시 방산동 779-43
남원 하면 추어탕부터 떠오르나? 그럴 사람이 많겠다. 널리 이름난 향토음식이니까. 소리의 본향으로도 유명한 게 남원이다. 동편제 판소리 가왕 송흥록과 명창 박초월을 길러낸 민속국악의 옥토이자 산실이다. 광한루와 지리산도 남원의 얼굴이다. 이래저래 여간한 고장이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길 게 많다. 여행자들의 기쁜 순례지다. 최근 새로운 명소로 떠올라 사람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는 똘똘한 공간이 하나 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하 ‘김병종미술관’)이 바로 그렇다. 요천강변 춘향테마파크 안에 있다.
8월의 땡볕이 가혹하다. 게다가 마스크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돌아다녀야 하니 이거 참 ‘병맛’이다. 세상은 알고 보면 아름다워 희망과 긍정을 노래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요즘은 뭐 좀 그렇다. 물심양면의 불황으로 모두 시난고난, 실의에 빠진 도스토옙스키의 표정처럼 우울하다. 의연한 건 자연이다. 사위로 펼쳐지는 자연 풍광이 싱그러운 김병종미술관으로 들어서자 생기가 돋는다. 야산 언덕배기에 있는 미술관 저 멀리로 지리산 연봉이 보인다. 천하제일 방랑 나그네인 구름이 살랑살랑 산을 넘는다. 흰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새파란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순수하다. 미술관 인근에서도 푸른 숲이 술렁거린다. 자리 한번 옳게 잡았다. 이 미술관은 전원형 미술관이다.
김병종미술관은 2018년 3월에 개관했다. 한국화가 김병종이 기증한 작품 400여 점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이후 길차게 자라는 대나무처럼 성장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해 서러운 게 소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다. 김병종미술관은? 다르다. 개관 이래 다녀간 관람객이 17만여 명에 이른다. 유별나게 화려하거나 거대한 미술관이 아님을 감안하면 이변에 가깝다. 내실과 매력을 갖추면 지방 미술관에도 근사한 피드백이 돌아온다는 걸 입증했다. 작가의 예술과 대중의 일상이 겉도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명소로 떠오른 까닭이 이렇게 완연하다. 미술관을 통해 남원을 홍보하고, 지역 발전의 동력 하나를 보태고자 한 설립 주체 남원시의 의도가 빗나가지 않은 셈이다.
올봄 이 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2021~2022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명소들의 탐방객 숫자 등 빅데이터를 근거로 고른 이 ‘100선’에 든 미술관은 세 개다. 김병종미술관 외에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원주의 뮤지엄 산이 뽑혔다. 한국의 열악한 문화적 풍토를 병증으로 진단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미술관에도 관광지처럼 일쑤 인파가 몰려드는 게 아닌가. 억눌린 일상의 출구를 예술작품에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아무려나 김병종미술관은 탕탕 기세 좋게 행진한다.
그렇다면 이 미술관은 무엇을 연료로 항진하나? 우선 김병종의 작가적 무게가 헤비급이다. 그는 자기만의 날개를 휘저어 미술의 창공을 비상하는 화가다. 재미와 재치로 터진 실밥 없이 잘 바느질한 스테디셀러 ‘화첩기행’으로도 지명도가 높다. 호젓하고 청명한 분위기에 감싸인 미술관의 입지와 미니멀한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의 미감도 감성을 자극해 호감을 산다.
무엇보다 물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무와 잔디로 채운 정원의 일부는 평범하지만 조경의 축을 이룬 물 정원은 기발하다. 사각형 수조 형태의 얕은 못 다수를 계단식으로 배열해 만들었다. 그 절묘한 물 공간 복판으로 난 동선을 따라 건물로 진입하게 돼 있는데, 관람객들은 이 대목에서 가벼운 설렘 이상의 매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잔잔한 수면엔 햇살이 아롱지며 연신 신비한 무늬를 그린다. 물에 드리워진 나무와 구름과 하늘의 그림자는 유령처럼 미묘해서 아름답다. 굴레가 없어 자유롭고 무방비 상태로 완전한 게 물이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다. 목줄 매단 강아지처럼 끌려다니는 삶일지라도 내면에 물의 정신을 담고 살면 견딜 수 있다. 이렇게 물의 정원은 물을 명상하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낭만과 추억을 길어 올리게 한다. 그러라고 만든 공간이겠지.
동화책처럼 쉽게 읽히는 작품들
2층으로 지은 건물 안에는 전시장 세 개가 있다. 당연하게도 김병종미술관에서는 김병종 외에 다른 작가들의 기획전도 빈번하게 열린다. 지금은 김병종의 기증 작품 특별전 3차 시리즈 ‘생명의 숲과 바다’전(10월 17일까지)이 펼쳐진다. 기증 작품 중 90여 점이 나왔다. 대다수가 미공개작이라 애호가들의 구미에 맞을 전시회다.
화가란 다르게 보는 눈과 다르게 생각하는 머리를 장착한 존재다. 현상의 외피를 걷어내고 본질을 발굴해 캔버스에 옮긴다. 자신만의 인생관과 심미안으로 세상의 행간을 읽는 것인데, 김병종의 초기 작품 ‘바보 예수’ 시리즈는 흑인 예수를 그리는 등 사회의식을 드러냈다. 사뭇 독자적인 수묵 기법을 구사해 국내 화단은 물론 유럽 일각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생명’을 화두 삼아 자연을 그리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던 경험이 야기한 전환이었다. 이번 특별전에 걸린 작품 대부분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생명 작가’라 불리기 시작한 시절의 그림들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김병종의 그림을 보자면 그건 환희이자 순수이며, 존엄이자 행복이다. 신이 고안해 삼라만상에 고루 주입한 사랑의 발현이며, 비루하거나 고통스러울 일이 없는 화평의 지속 상태다. 흥미로운 건 술술 읽히는 동화책처럼 쉽게 다가오는 그림이라 감정이입이 쉽다는 사실. 아이들, 꽃, 학, 토끼, 닭, 물고기, 산, 물, 구름 등이 등장하는 화폭마다 소박하고 밝고 따뜻하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휘갈긴 그림처럼 천진하다.
딱한 건 그림을 보는 사람 쪽이다. 그림은 생명의생명다운 힘으로 저토록 아름다운데 나의 삶은 왜 피폐하지? 그런 상념, 문득 들솟기 십상이다. 우리는 모두 오욕칠정의 탁류를 헤엄치는 가여운 존재이지 않던가. 그러나 그쯤에서 멈추면 멍청이의 잡념일 뿐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성격이 좋아진다. 김병종의 그림을 바라보면 막힌 가슴이 어느덧 열린다. 잃어버린 동심과 행복을 돌아보는 사이에 삶의 쇠사슬 같은 게 풀려나가는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김병종의 환한 그림이 주는 자극과 감흥의 약발이 이렇게 세다. 가슴속에 고인 불만과 불안을 털고 돌아가게 한다.
아주 특별한 외손자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날 때 정상적인 분만으로 고통을 느낀 딸이 이번에는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하기를 원했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직역한 말이다. 즉 ’황제‘의 의미를 갖는 ’카이저‘와 ’자르다‘의 뜻을 지닌 ’슈니트‘가 합해진 합성어라고 한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수술로 태어난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외손자가 이런 수술로 태어나다니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때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호기심을 느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의 네 간지(干支), 곧 사주(四柱)에 근거해 그 사람 인생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전래됐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주학의 깊이는 전문가들이 보면 아주 보잘것없어도 가족들은 내 실력을 어느 정도는 믿어준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제왕절개로 생년, 생월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생일, 생시는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달렸다. 딸은 유명하다는 명리학(命理學) 전문가로부터 태어날 손자의 좋은 사주를 받고서 의사와 제왕절개 시간을 상의했다. 의사는 그 시간에는 긴급한 용무가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다른 시간대를 제안했고 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눈치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 출생한 시간이 오히려 좋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나무는 강한 바람을 홀로 이겨내다가 죽기도 한다. 운명적으로 가장 좋은 시간대에 태어나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만큼 세상 사람의 질투도 받아야 한다. 한 단계 낮은 시간대에 태어나 겸손하게 살면서 운이 아닌 본인이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차근차근 성공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요지로 딸을 설득했다. 예쁘게 보면 다 예쁘다. 세상사를 좋게 보고 그렇게 믿으면 결과도 좋은 법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신비가 밝혀지고 있다. 수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어 난자와 결합해 생명이 탄생되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수만 배로 자라면서 사람의 형태로 점차 발전되는 모습은 신의 영역이라 볼 만큼 경이롭기까지 하다. 식구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생명의 소중함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나 기뻐하고 있다.
나는 시골의 농사짓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혼자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아들과 딸을 얻었다. 식구가 네 명으로 불어났다. 아들을 품에 안고 산부인과 병원을 나설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다. 둘째인 딸을 안고 나올 때는 아빠에게 재잘거리며 앙증맞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냥 행복했다.
이렇게 키운 자식들이 부모 품을 떠나 제 짝을 찾아가더니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친손자 하나에 친손녀가 둘, 그리고 외손자도 둘이나 태어났다. 손주들만 다섯이다. 명절날 집에 다 모이면 나를 정점으로 식구가 열한 명이다. 축구 한 팀의 숫자와 같다. 하나에서 출발해 세월이 열한 명을 만들어주었다. 성이 다른 친손주, 외손주 구분 없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이번에 태어난 외손자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눈매는 아빠 닮고 입꼬리는 엄마 닮았다고 하다가 나를 슬쩍 보고는 외할아버지인 나를 꼭 빼닮았다고 수다를 떤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 싫지가 않다.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기가 힘들다고 푸념하는 며느리에게도 딸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해줬다. “그래도 인생에서 품 안에 자식을 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가며 뭘 먹일까 생각하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보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해줬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를 향해 방긋 웃어주고 예쁜 짓 하는 것만으로도 효도의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손녀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돕겠다고 어설픈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아! 우리 딸이 제법 컸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며느리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아이들은 가정을 건강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아이들 잘 키워라.”
자식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 해줄 자식이 있다는 것, 또 그 자식의 자식이 있어서 대물림의 정점에 내가 있는 오늘이 행복하다.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
‘푸른 아시아’ 오기출 사무총장이 펴낸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라는 책을 얼마 전 읽었다. 저자는 기후 위기 대응 NGO 활동으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에서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을 받았다.
2017년 5월에 출간됐으니 이미 한참 구간이 된 책이다. 물론 화제의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다. 이 책은 몽고에서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유목민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초원이 사막으로 변해 황폐화된 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초원이 사막으로 황폐화되면서, 몽고 유목민들이 초원 대신 대도시 쓰레기장 근처의 난민촌으로 몰려들며 어떻게 환경 난민이 됐는지, 또한 어떻게 ‘푸른 아시아’와 함께 극복하고 있는지, 생태 회복에 관한 NGO 활동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발간된 지 3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읽었고, 그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동안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며 살았구나 하는 질책도 스스로에게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구 온난화와 미세먼지, 황사를 짜증스러워하고 불평만 해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는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목적지를 향해 돌아가는 사람은 바보취급 당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지름길과 사잇길로 남보다 더 먼저 도착하고 남보다 더 멀리 도달하려고 안달했다. 늘 바쁘고 분주한 삶이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지구 환경을 염려하고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건 사치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물 절약을 위한 나만의 생활 철칙, 소소한 방법 두 가지
이제 비로소 눈을 위로 치켜뜨지 않고 내 발밑까지 두루두루 훑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작은 힘을 보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내가 보태는 작은 힘을 꼽아보라고 묻는다면 정말 소소하지만 그래도 답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이틀에 한번 머리 감기(?)’, 또 하나는 ‘양치질하면서 세면대 물 안틀어놓기’다. 이런 생활 습관을 갖게 된 것도 불과 5년 전부터다.
물과 기름을 가진 자, 미래 사회 지배자 되리
2015년에 영화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를 보고 난 후, 며칠을 당혹감에 시달렸다. 영화를 보면서 손과 다리가 덜덜 떨릴 만큼 공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사막으로 변한 미래의 지구에서 물과 기름을 독점한 권력자 임모탄은 그 일가와 자신을 지키는 병사들만 견고하게 구축된 절벽 위 동굴에서 지내게 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 세상을 지배한다.
가끔 절벽 아래 사막을 떠도는 이들을 모아놓고 하사하듯 물을 절벽 밑으로 방류하면서 마치 조물주가 된 듯 세상을 주무른다.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아래 세상은 지옥이 된다. 임모탄의 지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물도 없고 기름도 없는 사막을 떠돌다 말라 타들어 죽거나 광폭한 지배자 휘하의 무장병사들에게 사냥감처럼 잡혀와 온갖 인체 실험 대상이 되어 서서히 죽어간다.
황폐한 미래 사회를 그린 너무나 리얼한 영상들에 손과 다리가 떨리고 공포감이 엄습했다. 미래에 내 딸의 아들 혹은 딸(그러니까 내 손자 손녀)이 저런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극도의 불안감이 몰려왔다. 물론 27세가 된 나의 딸은 결혼 생각도 없고 언제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버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 서부지역, 물 부족 심각
미국 캘리포니아도 가뭄으로 사막화가 진행되는 곳 중 하나다. 사막에 자리 잡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주택 정원을 선인장으로 꾸며놓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엔 거주 구역별로 정해진 시간에 물을 줘야 한다. 집주인 맘대로 정원에 물을 주면 어김없이 벌금 고지서가 날아온다. 인근 주민이 몰래 지켜보다가 신고를 하는 것이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캘리포니아는 부족한 물을 콜로라도 주로부터 구매해 끌어 쓰고 있다. 과거에 미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초록색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스위트 드림은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가뭄이 심해지자 주 정부는 각 주택이 정원의 잔디를 걷어내고 돌과 선인장, 물이 많이 필요 없는 플랜트로 디자인해 새롭게 정원 공사를 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 밖에 물 절약을 위한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도 실시하고 있다. 이때 나온 슬로건이 바로 ‘Brown is New Green!’이다. 사막화를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서부지역의 현실이다.
내가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몽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고비사막으로 여행이나 가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지냈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책,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 20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유목민들이 늘고 있고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무 심는 일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이 NGO 단체를 한국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니 자랑스럽기만 하다.
기후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갖게 해줄 한 권의 책,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와 한 편의 영화 ‘분노의 도로’. 깊어져 가는 가을날, 미래 세계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도 결국 인간의 난개발과 이로 인한 기후 변화, 생태계 변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속에서 발생한 게 아닐까? 코로나19로 전 세계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모래폭풍 속으로 우리 모두 들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이젠 초록이 완연하다. 탁 트인 세상을 보러 가볍게 훌쩍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어진다. 시골 마을에 스며들듯 이루어진 '이원 아트빌리지'는 반짝이는 초여름빛을 받으며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위치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 이원 아트빌리지의 하루는 충분한 여유와 쉼을 주는 시간이다.
미잠리(美蠶里). 이곳 지형이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막 시작된 초여름이 싱그럽다. 방문을 허락하면서 하신 말씀이 '요즘 볕이 좋고 온 천지에 피어난 꽃들이 너무 예뻐 혼자 보기 죄스럽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애초부터 '함께 하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건축가 원대연 교수와 사진작가 이숙경 부부가 이원 아트빌리지를 만들어낸 것은 2003년이었다. 한때 롯데호텔, 롯데월드, 압구정 현대백화점, 여의도 63 빌딩 등의 국내의 굵직한 건축 작품의 설계와 공사를 진행했던 건축가 원대연. 그리고 '(주)플러스 건축'을 설립, 건축전문지 '월간 플러스' 창간, 후학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더없이 왕성한 시절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문화와 일상을 엮어서 '여행 넘어서기'라는 책 1,2,3권, 건축 가이드북 ‘살수록 고마운 집 - 자연에, 좋은 집에, 멋진 나날들’을 출간하기도 한 작가다.
“생명의 집을 지을 수 있으면 다 버려도 좋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바삐 돌아가는 세상일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삶의 리듬을 원했다.
그 무렵을 이용재 건축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국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투시도의 달인 원대연은 만날 반복되는 일에 치이고 지금 내가 왜 살고 있는 거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고민했다. 전국의 땅을 보러 다닌다.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가 맘에 든다. 아예 이월면으로 보따리 싸서 내려간다. 생태마을 건립에 나선다. 왜 만날 남의 것만 만들어 주냐. 외부 간섭 없이 나만의 자유로운 건축을 실현하겠다. 이제부터 넘어야 할 가장 큰 상대는 나 자신이다.'
마침내 6년 만에 이원 아트빌리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5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자연에서 싹이 돋아 자연의 숲이 이루어진 건축의 숲을 본 것이다. 인공조미료가 배제된 건강 자연식품의 건축을 만난 것이다. 옥내 공간에 집중된 기존 건축과는 달리 옥내 공간과 옥외 공간이 등가로 다루어지면서 풍부한 공간 연출을 하고 있는 Vernacular 한 건축이다." - 건축가협회상 수상 수상에 대한 심사평에서
입구의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마을 사람이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 논과 밭과 마을길이 아트빌리지와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함께 자연스럽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일이 기다린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상촌 미술관 제1관, 2관, 3관. 이숙경 사진작가의 작품과 건축가의 그림,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문화공간을 찾아 걷는 맛이 시작된다. 전시관이나 세미나실뿐 아니라 자연 경사를 그대로 살린 골목길을 따라 발견되는 건축 예술이 흥미롭다.
어디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예쁜 골목과 샛길이 이어지는 열린 공간이다. 목련 갤러리 뒤편으로 목련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너른 다목적 행사장과 공연장, 갤러리와 소소한 아트공방들, 색색의 담장을 지나 작은 숲 쉼터를 만나면 누구라도 거기 그냥 한 번 앉아서 쉬고 싶어 진다. 토기인형과 담 아래 꽃들이 편안히 피어난 조붓한 길을 걷다 보면 샛길과 계단을 통해 숨겨진 듯한 공간이 나타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에선 모든 게 나지막하다. '사람 눈에 허술해 뵈고 만만해 뵈고 편안한 게 좋은 집'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나지막한 집이 쑥쑥 자라나는 나무에 뒤덮여서 안 보이기를 바란다'는 원대연 건축가.
전망대로 올라가면 나무판자를 겹겹이 얹어 만든 너와지붕이 눈 앞에 펼쳐진다. 너와지붕 너머로 이어지는 이월면 미잠리 농촌 마을이 자연스럽다. 어울림이다. 이렇게 한 바퀴 돌다 보면 이상한 '균형'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어느 것 한 가지만 유난하지 않고 돌 하나 소나무 한 그루도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 역할의 의미를 있다는 것.
결국은 마당과 골목길, 그 모든 건축물과 뒷동산이 어디든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길을 찾는 요즘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의미 없음을 알려준다. 아트빌리지의 길을 따라서 걸으며 상상력을 만끽하고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그런 건축의 힘을 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트빌리지 옆으로 난 오솔길을 잠깐 걸어가면 광장처럼 널따랗고 멋진 공간이 기다린다. 신록의 계절이다. 산 아래 울창한 숲과 잔디밭이 어우러진 그곳에 부드러운 바람이 가득 차 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 내림이 눈부시다. 중앙엔 넓은 원형으로 울퉁불퉁한 돌의자가 던져진 듯 놓여있다. 거기 앉아 회의도 하고 여유롭게 수다와 휴식이 즐거울 수 있는 숲 마당, 자연 속에서 놀아볼 수 있다.
"야생화를 300~400개쯤 심었지요. 잘 피어나서 계절별로 책 찾아가며 사진을 찍어놨는데 그러나 어느 정도 살다가 반 이상은 죽더라고요. 이곳이 아무리 자연이라고 해도 야생화는 야생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심지 마라, 옮기지 마라, 살아있는 건 그 자리에 두어라 해요."
건축 예술가의 열정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마을이 이 땅에 만들어졌고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건축가가 제시한 공간을 통해서 다수의 누군가는 공감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관계성이 수용되고 그 꿈이 지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운영의 부침을 맞으면서 2012년 개방을 멈추었고 나름대로 대비를 한다.
"이 곳을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그럴 경우 그동안 내가 지켜왔고 생각해온 마을이 유지될지 걱정됩니다. 아마 이 나무들이 온전히 있기 어려울 듯해요. 요즘은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어요. 눈이 올 때 이 숲의 풍경이 다양합니다. 또 사계절 따라 늘 다르죠. 지금도 깜깜한 밤에 사진을 찍으면 칼라가 정말 이뻐요. 어제도 영산홍을 찍었는데 빨간색이 낮과 밤이 달라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또는 달밤에도 찍어요.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색감이 대단합니다."
푸릇푸릇한 식물들의 향이 뿜어 나오는 선큰 가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정원 계단에 둘러앉아 멋지게 세월을 사는 이의 건축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특별하다.
비밀의 문을 연 듯한 그 옆의 오디오실은 신세계다. 가치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오디오와 스피커, 그리고 재킷 포장이 그대로인 희귀 소장품 레코드판이 잘 정돈되어 있다. 70대 은발의 곱슬머리 건축 예술가는 음악 한 곡을 걸었다. 그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던 '매기의 추억'이 감동적이었던 건 단지 오디오의 성능 때문이었을까. 그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생생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원 아트빌리지, 이곳에서는 한두 시간 또는 한나절이면 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 마을의 따뜻한 고요함에 푹 빠져봐야 한다. 숲에 들어 자연의 빛과 바람과 하늘을 마주는 순간 자연 속에 그만 묻혀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름다움은 천천히 느리게 즐겨야 제 맛이다. 청정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는 건축 마을에 푹 잠겨 보냈던 하루. 생거진천(生居鎭川), 충북 진천 이월면 미잠리의 이원 아트빌리지에 가면 느리고 무심히 자연 속에 스며드는 온전한 날이 된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길 306-1 / 이원아트빌리지에 가고 싶다면 미리 연락을 해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지금도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일반 단체 방문객이 예약을 통해서 방문한다.
주변 볼거리와 맛집
△이월성당 (梨月聖堂)
그곳에 가면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이 있다. 원대연 건축가가 설계를 봉헌하여 지어진 '이월 성당'. 이원 아트빌리지를 나와 밭둑 옆으로 잠깐 달리다 보니 멀리 성당 뾰족탑의 십자가가 보인다. 자연의 흐름의 바라보듯 시골 들판을 내려다보는 듯한 위치에서 저녁노을을 받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 292-5번지
△ 진천막국수
진천에는 건강한 맛집이 여럿 있다. 그중에 메밀로 만든 시원한 막국수가 인기다. 메밀 새싹이 수북이 얹혀 나오는 메밀 새싹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는 따뜻한 육수도 함께 나온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국수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다. 무채와 열무김치도 심심하고 맛있다. 속이 실하고 큼직한 메밀만두도 빠뜨리지 말고 맛볼 것. // 진천 막국수 / 충북 진천군 이월면 진광로 725 / 막국수 7000원, 메밀 왕만두 5000원
△ 미잠米과
생거진천 쌀로 만든 건강한 빵. 진천에서 농사짓고 정미소도 직접 운영, 도정, 제분하여 쌀빵을 굽는다. 쌀눈이 살아있는 빵으로 특허출원, 쌀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건강기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밀가루 알레르기 환자 등의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SNS 등의 입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 요청이 많다고 한다. 방문 고객에게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식빵은 물론이고 쌀 인절미 크림빵, 현미깜바뉴 등 미잠미과 만의 쌀빵 종류가 다양하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 403 /10:00~19:00
모든 것이 코로나19로 멈춰진 세상. 그러나 4월 초 예술의전당에서는 반짝이는 보석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감탄이 배어나왔다. 코로나19를 막으려는 개개인의 긴장감 속에서도 전시품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던 이 자리는 바로 보석 디자이너 김정희의 개인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에 유일한 한국인 심사위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를 위한 브로치를 만들며 국내 최고의 보석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그녀를 만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정희 보석 디자이너는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전시기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직접 사진 촬영과 편집까지 하며 준비한 전시회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본 그녀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전시를 치른 소감을 묻자 감동받았다고 대답했다.
“악조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관심을 보여주시더군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희망을 얻었어요. 두 개의 나뭇가지가 결국 한몸이 된 ‘연리지’ 작품을 보면서 상처 입은 나뭇가지가 상처 안은 나뭇가지를 밀어내지 않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감상평을 해주셨어요. 저, 너무 행복했어요.”
그녀는 시간을 품은 듯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연과 사람을 끊임없이 고찰한다. 재료도 일반적인 귀금속에 얽매이지 않고 디자인에 맞춰 자유롭게 선택한다. 18K 핑크골드 가지를 힘차게 뻗게 하니 다이아몬드와 투어멀린 그리고 해수진주로 꽃을 피워 핑크와 블루 사파이어로 물결치듯 열매를 맺게 한다. 여인의 꿈이 진주가 되어 귀걸이로 피어나게 하고, 그리움을 별로 승화해 목걸이를 걸치게 하고, 소나무의 절개를 브로치로 반짝이게 하고, 천년의 사랑은 다이아몬드 오로라를 만나 링이 되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예술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함께 아우르며 영혼까지 투영해야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를 위해 브로치를 만들다
이번 개인전에 나온 170여 점 중 20여 점은 개인 소장품이다. 보석의 오너들은 김정희의 전시 제안에 기꺼이 함께했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스토리를 넣으려 노력해요 보석이 아름다운 건 화려함 속에 개인의 추억과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죠.”
그녀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인 멜라니아 여사도 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으로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방한을 준비하던 시기에,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그녀에게 연락해 작업 의뢰를 했다. 아직 방한 관련 소식은 언론에 보도되기 전이었기에 그녀는 아무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누구냐고 물었다. 주한미군 쪽에서 온 대답은 ‘말할 수 없다’였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의뢰하신 분이 붉은색(red)을 선호한다는 것이 전부였어요. 받는 분에 대한 정보 없이는 도저히 작업이 안 된다고 하니 며칠이 지난 후 사진을 한 장 보내왔어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찍힌 사진이더군요. ‘그녀는 붉은색을 좋아한다’라고 딱 한마디 적혀 있더군요.”
그녀의 모든 작업은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되는 만큼 용도에 맞게 매듭 형태 하나하나와 실크 컬러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노리개 겸 브로치는 나비매듭을 모티프로 디자인에 착수했고 마침내 주얼리로 탄생했다. 여덟 개의 매듭으로 되어 있는 나비매듭은 장수와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또한 나비는 희망을 상징한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정상회담인 만큼 화합과 희망을 중요한 메시지로 담았다. 물론, 색은 붉은색이었다. 작품을 전달한 후 그녀는 멜라니아 여사가 굉장히 만족해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비 모양의 주얼리 장신구와 탈부착이 가능한 나비 브로치를 멜라니아 여사에게 선물로 전하면서 대한민국 주얼리 문화외교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도 마련했다.
세계 디자인 어워드의 유일한 한국 심사위원
김정희는 사실 국내 보석 디자인 분야의 1세대라고 해도 될 인물이다. 그녀가 처음 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보석 디자인과 관련한 학술적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할 때도 보석 감정사는 있었지만 보석 디자이너는 없었다.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한다 해도 장식 오브제나 목공예 정도나 배우던 시절이었다.
“일은 1993년부터 시작했죠. 방학 때 신세계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얼리를 접했어요. 혼자 나름대로 보석에 대해 공부한 게 있어서 그걸 적용해봤죠. 당시 일당이 보통 만팔천 원이었는데 저는 삼만팔천 원을 받을 정도로 매출을 높였죠. 그게 인연이 돼서 주얼리 업체에 스카우트돼 졸업하기 전에 취업했어요.”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IMF 외환위기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출 파트를 맡아 1위로 올려놓았다. 대단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보석시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주얼리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더하고 싶었어요.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같은 학과를 전공한 후 보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을 위한 보석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9년에 퇴사하면서 보석디자인연구소를 열었고 2001년에 첫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2001년은 아직 30대이던 시절이었다. 생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던 그 시절의 작품들은 추상적으로 자연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비로소 자연을 제대로 형상화해 풀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주얼리 디자인의 세계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워낙 값비싼 재료를 취급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철학이 있는 차별화된 보석 디자인을 추구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3대 디자인 어워드 ‘K-DESIGN AWARD’ Winner로 선정된 그녀는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 'Italy A'Design Award'에 도전했다. 세계 180개국, 110개의 디자인 카테고리에 6만 5000점이 출품되었다. 이중에서 선택된 1780점의 입상자 작품 중 그녀는 안경·시계·주얼리 카테고리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 당시 175명 전 세계 심사위원 명단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두 번째도 다시 도전해 은상을 받으며 세계 랭킹 4위에 레전드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게 됐죠. 다음 목표는 심사위원이 되어야겠다고. 제가 그 길을 개척해보겠다고 소신을 가지고 도전했어요.”
그 다짐은 결국 이루어졌다. 그녀는 올해부터 ‘Italy A'Design Award’ 심사위원이 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이고 현재 단 한 명인 쾌거다.
작품의 영감이 된 ‘어머니’
김정희 디자이너의 인생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의 삶 전반뿐만 아니라 작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영향력은 곳곳에 숨어 있다.
“어머니는 누굴 따라가기보다는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죠. 제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어요. 어머니가 없었으면 영감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2남 2녀의 장녀인 그녀는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제 작품 ‘그리움이 향기로 피어나다’의 나무(미선나무 꽃)들은 어머니의 향기를 품고 있고 함께했던 정서가 담겨 있어요. 어머니는 2018년 2월 5일 의료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제 곁을 떠나시기 전날 목욕을 시켜드렸죠. 그때 어머니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나무’ 연작은 어머니를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로 만든 작품이다. ‘생명의 나무’의 마지막 작품 ‘하늘에 뿌리를 두다’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지만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사를 형상화했다. ‘나비 되어 날다’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49일 동안 산소를 찾았다. 어머니는 매일 꿈에 나왔다. “네가 계속 우니까 내가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49일째 되는 날 산소에 갔는데 햇살도 따뜻하고 아지랑이도 피어올랐고 꽃도 피었더라고요, 그날 진짜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정원에 앉아 있는데 노랑나비가 와서 제 옆에 앉더군요. 제가 움직이니까 나비가 정원을 날아다녔어요. 저는 나비를 따라다녔죠. 그러다 나비가 사라졌어요. 그러고 나선 꿈에 안 나오시더라고요. 제 ‘나비’ 작품들은 그때 영감을 받고 만들어졌죠.”
장롱 속 잠자는 주얼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보석 대물림. 그녀가 그 보석들을 새롭게 리폼해 재창조한 ‘Reborn’ 작품들은 시간을 거스르는 특별한 예술품으로 빛나고 있다.
김정희 디자이너는 ‘Reborn’ 작품 의뢰를 받으면 의뢰자의 삶의 철학, 나이, 생활 패턴, 물려받은 동기, 왜 의뢰를 하게 됐는지 등등 희로애락의 모든 걸 듣고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주얼리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위로와 행복, 감동을 줄 수 있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삶의 깊이가 묻어나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할 때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해요. 영감을 받아야 하니까요.”
장롱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귀한 패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주얼리’로 재탄생시키는 일. 혼을 담은 그녀의 손끝으로 빚어낸 주얼리들은 자손들에게 마음의 보물로 간직할 가보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다. 보석 자체의 화려함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창조해내려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보석 디자인은 디자인이 주연이며 보석은 디자인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이 다른 보석 디자인과 그녀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보석이 시선을 압도하는 디자인보다는 디자인이 더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을 만들 때 그 사람을 담아야 한다는 기준을 지키려면, 그 작업시간이 보통 걸리는 일이 아닐 터. 그러나 그녀는 일만 하며 사는 삶이지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작품을 떠나보낼 때는 와인을 한 잔 한다. 허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가장 작품을 많이 만들었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이었어요.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어머니의 그리움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작품을 만들었죠.”
보석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조형예술 세계
그러나 주변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케치만 해놓고 작품을 못 만든 게 많아요.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봉황이죠.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가 열린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그녀가 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생활에 밀착한 조형 예술로서의 보석 디자인이다.
“생활 속 예술로서 감동과 위로, 소통할 수 있는 보석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이미 보석 디자인은 작은 조형예술이에요. 그렇다면 큰 조형예술로도 가능하겠죠. 그래서 완전한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제 삶이 멈추지 않는 한 항상 꿈을 꾸며 도전할 거예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는 삶은 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녀에게 보석은 희망, 지속되는 꿈이다. 그래서 보석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석을 통해 만들 더 넓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기대해본다.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봄은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유리병 안에 갇힌 거처럼 봄의 향기를 못 맡고 있지만 자연이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어김없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봄꽃의 꽃망울이 터질 때 두근거리는 울림을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설렘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싱그러운 자극으로 나에게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린다.
올해는 직접 봄을 찾아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대로 지난 시간 교감했던 봄을 기억과 되새김질을 통해 복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곳 중 유독 한 곳에 여러 차례 발길이 갔던 흔적이 눈에 띠었다. 경상남도 하동이다.
내 추억 속의 하동은 봄을 찾다 돌아오니 마당 건너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봄이 보였던 곳이다. 그때부터 거의 해마다 봄이 올 즈음이면 그곳에 갔었다.
부담 없이 살짝 눈이 부시게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깊고 높은 어둠의 고요 속에 수줍은 듯 빛나는 별천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살살 간지럽히는 자연의 향기들이 봄을 말했다. 그렇게 따스하게 토닥여주는 자연이 좋았다.
더군다나 하동에는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가 있다. 그곳은 나에게 사유와 성찰을 위한 최고의 보약이 되는 공간이다. 평사리 땅에 서면 인간의 삶과 인간의 삶이 엮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마음을 챙길 수 있었다.
이미 드라마로도 여러 번 방송되어 잘 알려졌다시피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까지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를 최씨 일가 중심으로 이야기한 박경리의 장편대하소설이다. 무려 25년 동안의 집필 과정을 거쳐 전체 20권으로 완간됐다.
소설이 특히 나에게 줬던 커다란 울림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에는 700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에 관한 보편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상처, 아픔에 대해 상상해 보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졌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 삶의 온도와 빛깔과 향기도 바뀌었다. 내가 아닌 관점에서 현상과 감정을 보는 훈련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부터 봄철의 평사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선물 받았다. 소설 ‘토지’는 봄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을 적시며 내 안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 작품이다.
평사리에는 2001년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한 최참판댁과 초가집들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봄 그곳에 갔을 때 최 참판 댁 앞마당에 서서 멀리 보이는 섬진강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한 굽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을 보니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봉순이의 일생이 떠올랐다. 장터를 가기 위해 강둑을 걸어가는 이용의 모습을, 해방 소식을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강둑을 걸어오는 장연학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 집 뒤편으로 가면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조병수의 아픔이 담겨 있는 대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서 그의 인생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토지’는 사람들의 인생 모습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역경을 극복한 사실로만 국한 시키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극한의 고통과 고독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서까지 확장시켜 말하고 있다.
그 양의 방대함만큼이나 인간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인생이야기가 담겨 있는 심연이다. 양에 눈길을 주지 말고, 용기 내어 읽어보길 권한다.
이제 봄이 살살 수를 놓고 있다. 이 봄기운으로 유리벽을 허물어 내고, 내 인생의 소중한 보물인 인연들과 함께 봄날의 설렘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추운 날씨에도 바깥 활동을 참 많이도 했다. 팽이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얼음땡 등 겨울 놀이가 풍성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따뜻한 실내에서도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다. 손주 손 잡고 가족과 함께 즐길 만한 핫 플레이스를 찾아봤다.
1. 힐링과 웰빙을 담는 곳 ‘미리내 힐빙클럽’
이 겨울 따뜻한 곳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리내 힐빙클럽’(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몸과 마음을 함께 보해주는 예방 의학과 ‘마음 챙김’ 철학이 만난 공간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심신을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피곤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곳이다.
스트레스 체크를 시작으로 유산균이 배합된 팩을 얼굴에 바르고 누워서 하는 ‘바디스캔 명상과 디토피팩’은 미리내 힐빙클럽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깊은 휴식을 통한 이완과 재충전도 하고 피부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다.
‘실내 체험존’에는 ‘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이름의 ‘가든푸실’이 있다. 100여 종에 이르는 초록 식물과 반신욕, 족욕 등 물을 테마로 한 공간으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말초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테마별 족욕탕도 곳곳에 있다. 잇꽃 입욕탕, 겨우살이덩굴 입욕탕, 쑥탕 등 생약초 족욕탕, 오감 족욕탕, 게르마늄 족욕탕 등으로 나뉘어 있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바이오 세라믹볼 찜질도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인체에 유익한 다섯 가지의 광석 물질이 몸속 깊숙이 열을 전달해주는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옛날 아랫목이 있던 구들방을 연상케 하는 ‘구들잠休’는 평소 숙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힐빙체험존에는 간, 비위, 콩팥, 폐, 심장을 중심으로 한 오행 테라피와 향기, 명상, 소리, 색깔을 이용한 오감 테라피 등이 있다.
2. 도시 속 예뻐지는 정원 ‘아모레 성수’
이곳에 가면 예뻐질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정원도 감상하고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들을 직접 써볼 수 있는 공간, 바로 ‘아모레 성수’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관대한 이곳은 지난 10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30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들어진 뷰티 라운지다. 1층에서 3층 옥상까지 총면적은 300평 규모. 어린 시절 엄마의 콜드크림을 얼굴에 조금씩 발라보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마치 그때 그 시절 화장대를 넓은 공간에 예술적으로 표현해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모레 성수 건물 안 중앙에는 ‘성수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정원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간을 배치해 건물 어디에서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정원수로 쓰인 꽃들은 비비추, 앵초 같은 우리 강산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매장 입구에서 간단한 웹 체크인을 하고 나면 아모레 성수에서 체험할 수 있는 미니어처 교환권과 오설록 할인권 등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해 쓸 수 있다.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 세안을 할 수 있는 클렌징 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뷰티 라이브러리’. 아모레퍼시픽 30여 개 브랜드의 2000여 개 제품을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빼서 보듯 꺼내 쓸 수 있다. 뷰티 라이브러리 맞은편에 있는 가든라운지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치된 의자에 앉아 성수가든을 바라보며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2층에는 오설록 아모레 성수점이 입점했다. 3층은 옥상으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성수동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3. 기차 안에서 놀자! 크루즈 열차 ‘해랑’
크루즈 여행은 한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목적지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탑승과 함께 진행되는 유람선 안 프로그램이 낭만적이다. 아주 멀리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기차 안에서 놀고 즐길 수 있는 해랑을 타고 달려보자. 일명 레일크루즈라 불리는 ‘해랑’은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운영한 지 11년째 된 관광열차다. 상시 여행 코스는 2박 3일 전국일주(서울-순천-경주-동해-태백), 1박 2일 동부권(서울-단양-경주-서울),
1박 2일 서부권(서울-고창-보성-순천-서울) 3가지가 있다. 오는 12월 30일과 31일에는 해맞이 특별 열차가 운영될 예정이다.
‘해랑’으로 운영되는 열차는 총 2대로, 1대당 8량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차량인 4호와 5호는 레스토랑 카페와 이벤트 라운지이고, 나머지 6량은 객실이다. 2인실(스위트·디럭스룸)과 3~4인실(2층 침대) 패밀리 룸과 스탠다드룸 등 4개 타입이 있다. 호텔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시설 또한 고급스럽다. 관광 전용 열차에 걸맞게 침대, 소파, 화장실, 헤어드라이기 등 여행과 휴식에 필요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여행이 시작되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이벤트 라운지에 모여 여행 시작을 알리는 작은 파티를 연다. 다양한 이벤트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준비하는데 승무원들의 장기자랑도 이때 볼 수 있다. 승객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새로운 여행 친구들과 인사한다. 보다 친근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해랑 승무원들은 맡은 소임은 물론 각 여행지에서 관광객 인솔과 이벤트 공연, 식음료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랑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쇼핑을 강요받는다거나, 추가 요금을 내는 일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시니어들에게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발하는 전국일주 2박3일 코스가,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1박 2일 코스가 인기 있다.
4. 손주들과 함께 가는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
주렁주렁은 도심 속에서도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동물원 나들이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은 동물들과 함께하는 테마파크로 하남, 일산, 경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들어서 있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타임스퀘어), 잃어버린 기억(하남), 여행자의 추억(일산), 숨겨진 비밀(경주) 등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운영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라 실내 평균온도와 내부 환경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실내는 23℃에 맞춰져 있어 외부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다.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아도, 눈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다.
운영 프로그램도 각 동물원마다 색다른 특색이 있다 ‘하남 주렁주렁’에서는 전 연령 대상으로 앵무새 ‘민트’와 함께하는 토크쇼 ‘모퉁이 상담소’, ‘주렁숲 요정의 산책’이라는 환영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7월에 문을 연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1000평 규모의 실내 동물테마공원으로 대중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안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 콘셉트에 맞춰 게임을 하듯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미션을 마친 뒤에는 영상 불빛 쇼도 볼 수 있다 하니 이번 겨울에 꼭 한 번 가보시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일산 주렁주렁’은 파충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생생 도슨트 체험 파충류 대사전’과 ‘걱정인형 만들어주기’, 동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생태체험 주렁쿠키’, 앵무새 비밀 친구(마니토)를 뽑아 특별 간식을 선물하는 ‘생태체험 나의 마니또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경주에서는 동물먹이주기 체험이 주를 이룬다. 상어, 사바나캣, 카피바라에게 먹이를 주고 싶으면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방문 전 주렁주렁 사이트에서 가고 싶은 곳 정보를 확인하면 보다 알차게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
5. 숲속 맑은 공기와 찜질 스파 ‘테르메덴 풀앤스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이천. 복합휴양 공간인 ‘테르메덴 풀앤스파’가 있다. 추운 날씨에도 실내외 온천 사우나와 수영장은 물론 카라반 캠핑 시설과 한옥을 갖추고 있어 유럽에 온 듯한 숲속 정취와 우리 전통의 향취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에 마련된 풀앤스파는 각종 질병 예방과 요양,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개발된 건강보양온천 시설이다. 이를 바데풀(Bade Pool)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바데하우스(Bade Haus)를 모델로 했다. 유수풀, 유아풀, 테마 이벤트탕, 아로마 사우나 닥터 피시 등이 마련돼 있다.
실내 시설 중 하나인 찜질 스파는 전형적인 온천에 찜질을 더한 것. 온천욕을 즐긴 후 편백나무방, 황토방, 소금방, 맥반석방 등에서 찜질을 할 수 있다. 일본의 편백나무와 히말라야의 암염, 전북 고창의 최고급 황도, 경북 예천의 맥반석을 사용해 최고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찜질방과 함께 패밀리룸, 가든 커뮤니티, 안마의자룸, 키즈라이브러리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밖에 건·습식 사우나, 온천탕, 노천 이벤트탕은 일상의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춥다고 해서 꼭 실내 시설만 이용할 필요는 없다. 노천 이벤트탕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겨울에는 바닥에 살얼음이 낄 수 있어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추위가 걱정된다면 긴팔로 된 래시 가드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테르메덴 풀앤스파에서는 수영복 대여가 안 되므로 꼭 챙겨가야 한다.
‘차품(茶品)은 인품(人品)’이라 했다. 그만큼 재료도 중요하지만 차를 우려내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맛과 향, 효능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즉, 같은 차라도 어떤 방법으로 즐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셈이다. 이제 막 차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들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줄 쏠쏠한 정보들을 모아봤다.
감수 한국티협회
STEP 1. 알아두:다[茶]
녹차와 보이차의 원료는 같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등은 맛과 향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라는 나무의 잎으로 만든다. 흔히 ‘차나무’라고 부르는데, 똑같은 잎이라도 차를 만드는 방식과 산화·발효 정도에 따라 풍미가 다르게 나타난다. 산화를 억제하는 녹차는 폴리페놀, 카테킨을 비롯한 항산화 성분이 가장 많고, 보이차는 후발효 과정에서 유익한 미생물을 포함해 소화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티 카페인’과 ‘커피 카페인’의 차이는?
차에 함유된 카페인을 일컬어 테인(theine)이라 부른다. 말린 찻잎의 무게를 기준으로 따지면 카페인 함량은 커피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 그러나 차는 본래 지닌 카페인의 60~70%만이 우러난다. 두 카페인은 화학 구조나 성질 면에서 동일하지만, 작용 면에서는 다르다. 차 속에 들어 있는 테아닌(theanine)은 카페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이를 길항작용(拮抗作用)이라 한다. 상반되는 두 성분이 동시에 작용해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테아닌은 카페인에 의한 중추신경 자극을 약화해 흡수를 서서히 일어나게 하고, 카페인으로 인한 불안, 불쾌감 등의 부작용을 억제해준다.
티젠을 아시나요?
엄밀히 말하면, 차나무 잎과 싹을 달이거나 우린 물을 ‘차(tea)’라 하지만, 통념상 다른 식물의 잎, 가지, 뿌리, 꽃, 열매 등을 가공해 마시는 것을 모두 ‘차’라 일컫는다. 꽃차나 허브차, 한방차 등은 ‘티젠(tisanes)’ 또는 ‘대용차’라 부른다. 티젠은 한 종류만 마시기도 하지만, 성분의 궁합이나 맛을 고려해 여러 종류를 혼합해 ‘블렌딩 티’로도 만든다. ‘마테차’를 제외하곤 카페인이 없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다.
‘티백’은 ‘잎차’보다 맛이 떨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티백은 ‘편리성’ 면에서는 좋지만 향미 측면에서는 잎차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찻잎을 직접 우려 마시려면 다소 번거로우니 개인 상황에 맞춰 차를 즐기면 된다. 간혹 티백이나 티백 속 찻잎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해다. 과거에 비해 티백 재료도 좋아졌고 가공 기술도 발달해 안심하고 우려 마실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잎차와 마찬가지로 물에 너무 오래 담가두면 향미가 떨어진다. 뜨거운 물에 2~3분 정도 우린 뒤 건져냈다가 재탕해 마셔도 괜찮다.
어떤 티백을 고를까?
찻잎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성분이 충분히 우러날 수 있도록 티백 주머니가 넉넉한 것이 좋다. 직사각형보다는 피라미드형 티백이 물이 쉽게 드나들어 찻잎이 더 잘 우러난다. 피라미드형 티백에는 나일론, 실크, 그리고 친환경 소재로 만든 것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고급일수록 그에 걸맞은 좋은 재료를 넣게 된다. 종이 티백에 들어 있는 차는 향이 많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구입 후 바로 마실 것을 권한다.
STEP 2. 우리:다[茶]
차, 겉만 보고 사지 마세요!
차는 종류와 품종에 따라 외형, 색, 향 등이 다양하지만 전문가도 건차(乾茶)의 상태만으로는 품질을 판단하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마셔보고 구입하는 것. 그러나 차는 온도, 습도, 물, 다구, 그리고 우려내는 사람의 손맛 등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직접 마셔보고 샀더라도 집에서 우리면 그 맛이 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하게 우린 차는 더욱 그 맛과 품질을 구분하기 어려우니, 기왕이면 조금 진하게 우려 달라고 요청해 테스트해본다.
찻잎 우릴 때 어떤 물이 좋을까?
중국 속담에 ‘물은 차의 어머니’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의 향미는 달라진다. 가장 좋은 물은 연수 또는 단물이라 하는 깨끗한 샘물(용천수)이다. 무기질이 다량 함유된 광천수는 차의 향미가 무거워져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돗물도 나쁘지 않지만, 하루 정도 그릇에 받아놨다가 윗물만 사용하는 게 좋다. 또는 시판되는 샘물이나 정수된 물을 쓰면 된다. 단, 물을 너무 오래 끓이거나, 식은 물을 재탕해 사용하면 미네랄, 산소, 이산화탄소량에 변화가 생겨 차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좋은 차 구매 요령
• 찻잎을 만졌을 때 까칠하고, 가늘게 잘 말라 있으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 찻잎은 개봉 후엔 향미가 점점 떨어지니, 소량 포장된 것을 고른다.
• 티 케이스에 차를 우리는 시간과 물의 온도가 표시된 것을 구입한다.
• 커피나 다른 향신료와 함께 판매하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 차 전문점을 이용한다.
• 시음이 가능하고, 직원이 차에 대한 질문에 잘 응대해주는 곳을 찾는다.
• 차 산지나 다원, 차 관련 박람회 등을 통해 차를 경험하고 비교 시음해본 뒤 선택한다.
차의 맛을 좌우하는 최적의 온도와 시간
차의 맛은 물의 알맞은 온도에 달려 있다. 가령 녹차에 팔팔 끓는 물을 부으면 신선한 찻잎이 푹 익어버리고, 너무 오래 우리면 맛이 떫어져 불쾌한 쓴맛이 강해진다. 찻잎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향미를 좋게 하는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다음과 같다.
물 온도를 맞춰주는 티포트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을 끓인 뒤 뚜껑을 잠시 열어 식힌 뒤 사용한다. 녹차는 5분, 우롱차는 3분, 홍차나 보이차는 2분 정도 온도를 내린 후 우리면 알맞다. 또 찻잎을 살 때 포장지나 설명서 등에 표기된 온도나 시간 등을 참고한 뒤 물과 찻잎의 양을 조절해가며 차의 맛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물과 재료의 분량은 물 200㎖에 재료 1.5~2g이 적당하다.
차를 시원하게 우릴 수는 없을까?
• 생수 냉침법: 물 500㎖당 찻잎 3~5g 또는 티백 1~2개 정도의 분량을 넣고, 냉장실에서 8~10시간 동안 천천히 우린다.
• 우유 냉침법: 우유에 우릴 때는 진하게 잘 우러나는 찻잎을 선택한다. 뜨거운 물 100㎖에 찻잎 10g 정도를 넣고 3분 정도 우린 뒤, 우유 400㎖를 부어 냉장실에서 하루 정도 냉침한다.
습기, 햇빛, 향기 No! 예민한 차 보관법
말린 차는 빛과 공기, 습기에 취약해 잘못 보관하면 향미 성분이 빨리 날아가 버린다. 또 커피나 향수, 비누 등을 주변에 두면 찻잎이 향을 빨아들여 본연의 맛이 변질된다. 다양한 차를 보관할 때는 향이 강한 차(국화차, 진피차 등)는 따로 구분하는 게 좋고, 조금씩 소분해 밀폐된 용기에 넣어둔다. 고온 다습한 환경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냉장고 안이나 가스레인지 주변엔 두지 않는다. 꽃차나 허브차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유리병에 넣기도 하는데, 가급적 햇볕이 들지 않는 장소에 보관하고 최대한 빨리 사용한다.
STEP 3. 즐기:다[茶]
차와 요리의 마리아주
마리아주(mariage)는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을 뜻한다. 그렇다면 차와 궁합이 좋은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차와 곁들이는 음식은 차 맛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향과 맛이 너무 강하거나, 기름지면서 끈끈한 것, 씹을 때 소리가 나고 부스러지는 것은 피한다. 달달하고 기름진 케이크나 쿠키, 타르트 등에 차를 곁들이면 지방을 분해해주고 입안을 깔끔하게 해줘 잘 어울린다.
차와 페어링하면 잘 어울리는 먹거리
• 녹차: 송화 또는 흑임자 다식
• 홍차: 달콤한 쿠키나 케이크, 아이스크림
• 우롱차: 콩가루 다식과 양갱, 연어
• 보이차: 육포나 과일 등으로 만든 정과류와 떡
다구도 차 맛에 영향을 끼칠까?
차 애호가들은 차마다 선호하는 다구를 따로 마련한다. 물론 비싼 고급 다구를 써야 차 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구의 재질과 모양 등을 바꿔가며 최선의 향미를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차를 우리는 사람의 손길이 어떠하냐에 따라 차의 품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단, 좋은 차일수록 큰 주전자보다는 작은 티포트로 여러 번 우려 마실 것을 권한다. 차를 큰 주전자에 넣고 우리면 향이 쉽게 날아가 풍미와 품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대개 은은한 차의 향미를 살리고자 할 때는 자기 재질이 적합하고, 꽃차나 허브차처럼 우러나는 색감을 만끽하려면 유리 재질이 알맞다. 또 가향차나 훈연차의 경우는 향이 오래 남아 주전자를 별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편리한 현대식 실속 다구
• 인퓨저(infuser): 모양과 크기가 다양해 취향에 맞는 인퓨저를 골라 쉽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주전자, 텀블러, 머그 등에 내장된 제품도 판매한다.
• 버튼식 차 여과기: ‘표일배(飄逸盃)’로도 알려진 제품으로, 찻잎을 담는 인퓨저와 티포트, 머그가 일체된 형태다. 인퓨저에 찻잎을 넣고 우리다가 뚜껑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침출된 차와 찻잎이 간단히 분리된다.
• 프렌치프레스(french press): 커피를 내리는 도구이지만 차를 우릴 때도 유용하다. 찻잎을 넣고 물을 부은 뒤, 적당히 우러나면 플런저를 내린다. 너무 세게 내리면 찻잎이 짓이겨져 재탕해서 마시기 어려우니 힘을 적당히 줘야 한다.
오감으로 즐기는 차 한 잔
차를 시음할 때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집중하며 맛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우러난 찻잎, 색깔, 향, 맛,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 등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나아가 찻물이 끓는 소리, 마른 찻잎의 촉감과 촉촉이 젖어드는 모습, 입술에 닿았을 때의 온도 등 오감을 활용해 차를 즐긴다.
문향(聞香), 차의 향에 귀 기울이기
주로 대만 우롱차 등을 시음할 때 차의 향을 더 깊게 느끼기 위해 ‘문향배’를 준비한다. 향이 오래 머물도록 길쭉한 모양이며, 마시는 찻잔과 별개로 향을 맡는 용도로 사용한다. 문향에는 열후(뜨거울 때 맡는 향), 온후(절반쯤 식었을 때 맡는 향), 냉후(다 식은 후 맡는 향)가 있는데, 열후는 향의 유형과 강약, 온후는 향의 농담과 장단을 구별한다. 냉후는 차향의 순수함과 혼탁함을 살피기 좋다.
‘마시는 때’를 알면 금상첨화
잠들기 전이나 늦은 시간에는 카페인이 함유된 차보다는 라벤더나 캐모마일 등의 허브차가 적합하다. 반대로 아침에 잠을 깰 때나 집중력이 필요할 때는 홍차나 마테차 등 카페인 티가 도움이 된다. 계절과 어울리는 차도 따로 있다. 봄에는 생명의 기운을 오롯이 담은 신선한 우전이나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 등이 좋고, 차가운 날씨에는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홍차나 보이차 등이 잘 맞는다.
계절별 궁합이 맞는 차
• 봄 : 우전, 감국차, 캐모마일,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
• 여름 : 백차, 오미자차, 황기차, 다르질링 세컨드 플러시
• 가을 : 우롱차, 황차, 재스민차, 다르질링 오텀널 플러시
• 겨울 : 홍차, 보이차, 어성초차, 겨우살이차
*플러시(flush): 언제 찻잎을 수확하느냐에 따라 3~4월은 ‘퍼스트 플러시’, 5~6월은 ‘세컨드 플러시’, 10~11월은 ‘오텀널 플러시’라 부른다. 퍼스트 플러시가 가장 상큼하고, 수확 시기가 늦을수록 맛이 깊어지고 몰트향은 강해진다.
[참고 및 발췌] ‘THE TEA BOOK’(시그마북스), ‘구구절절 차 이야기’(이른아침), ‘하오명의 차 이야기’(씨마스), ‘티는 어렵지 않아’(그린쿡), ‘티 아틀라스’(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차 茶 TEA’(시그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