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통해 수많은 딸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한성희(韓星姬) 이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딸의 결혼을 앞둔 한 엄마이자, 정신과 전문의로서 건넨 진정 어린 조언이 큰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잠시 절판됐던 도서가 최근 다시 출간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의 흐름 때문일까? 표지에 그려진 딸의 모습은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당시 50대였던 한 원장 또한 어느덧 60대에 이르렀다. 딸 못지않은 인생의 전환점을 지났을 터. 그녀는 “잘 성장하고 있다”며 담담히 안부를 들려줬다.
하나뿐인 딸아이의 결혼, 그것은 한 원장이 책을 펴낸 계기이자 크나큰 성장통을 앓게 한 사건이었다. 자녀의 독립이 시원섭섭한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녀의 상황은 좀 달랐다.
“딸이 미국 유학을 갔는데, 당연히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여겼죠. 그런데 어느 날 결혼 얘기를 꺼내더니 아예 미국에서 살 거라더군요. 제 나이와 여건을 감안할 때, 앞으로 20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본다 해도, 평생 딸을 볼 기회가 20번 남짓인 거예요. 너무나 기가 찬 노릇이었죠. 영원한 이별은 아니더라도, 그 못지않은 심정이었어요. 공항에서 서로 엉엉 울며 헤어졌지만, 즐거운 신혼을 앞둔 젊은 딸과 점점 늙어만 가는 엄마가 느끼는 아픔은 천지차이죠. 그 옛날 우리 친정엄마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냈을 텐데, 이 정도로 상실과 아픔이 크리라고는 그땐 상상도 못했어요.”
아직 어린 딸을 이것저것 챙겨주고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도 달랠 겸 그동안 딸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가 완성됐고, 덕분에 그녀는 엄마로서의 삶 1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도 어렵지만, 부모가 자녀로부터 독립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가 말로는 ‘독립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죠.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는데 내가 외롭고 힘들다고 계속 붙잡아두는 거예요. 겉으로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럴싸한 이유를 대겠지만, 사실상 소유욕에서 비롯된 착취나 다름없죠. 물론 저도 아주 쿨하게 딸을 보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만큼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건 누구에게나 참 힘든 일이죠.”
입체적 삶을 위한 경험 투자
그토록 힘든 일임에도 해내야 하는 까닭은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있었다. 딸의 성장은 물론 엄마의 성장까지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것, 그리고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것. 한 원장은 이러한 성장을 통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과정 같지만, 역할 변화에 따른 전환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시기가 고통스러워서 어떤 이들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죠. 자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의 고리들을 과감히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해요. 물론 그것이 더러 외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라면 다 겪어야 할 일들이죠. 흔들리다가도 중심을 찾는 오뚝이처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하는 과정이고, 그렇게 성숙해야 왜곡과 갈등 없이 자녀와 잘 분리될 수 있습니다.”
삶의 키워드를 ‘성장’이라고 언급한 한 원장은 몇 해 전 과감히 유학을 결정했다. 딸도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차였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선택을 의아해했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냐는 반응이었다. 단순히 커리어만을 위했다면 단행하지 못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성장을 바랐기에 가능했다.
“커리어는 성장을 통해 얻는 일종의 부산물이죠. 애당초 그걸 목적에 둔 건 아니었어요. 물론 현실적인 면에서 내가 잃는 것과 얻는 것을 두고 저울질을 많이 했었죠. 금전적인 리스크도 있었지만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거예요. 그러나 돈이란 것은 결국 나의 잠재성을 실현하고 내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쓰이는 거잖아요. 나중에 죽음에 이르렀을 때 돈이나 나이 등등 때문에 성장의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갑자기 남자가 된다거나, 공학자가 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바람도 아닌데 말이죠. 그저 내가 해오던 것을 더 심화하려는 욕구였기에 조금만 발돋움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돈을 경험에 투자하자’고 마음먹었죠.”
기품 있는 중년의 아름다움
그러나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자녀 세대의 경우 개인의 성장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한 원장은 자신을 찾아오는 워킹맘들의 우울한 심정을 절절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워킹맘으로 고단한 현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단, 허덕이며 사는 삶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땐 당연히 먹고살려고 일하지 자기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생계를 위한 일이 꿈을 이루는 일이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죠. 그러나 그런 중에도 자기 꿈을 위한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실현되지 않을 것 같아도 조각을 쌓다 보면 언젠가 실체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애 키우고 일하느라 아직은 버겁더라도 가슴 한편에 꿈을 품고 살아야 언젠가 이모작, 삼모작의 기회도 잡을 수 있습니다. 짬짬이 단 15분이라도 취미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한 원장 역시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조금씩 즐겨온 취미가 있다. 바로 ‘첼로’다. 딸이 세 살 무렵 첼로를 샀는데, 이제 중급 정도의 실력은 된단다. 자신의 여든 살 생일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하리라는 야무진 꿈도 생겼다. “인생 별것 없다. 재미있게 살아라”라며 힘든 시절 그녀를 위로했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처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다짐도 해본다. 그런 한 원장 역시 딸아이가 늘 즐겁게 또 아름답게 중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언젠가 제인 구달이 한국에 왔을 때 백발을 늘어뜨린 수수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여든이 넘은 나이에 민낯이었는데도, 메이크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더군요. 코코 샤넬은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고 했는데, 자기 삶을 잘 다져온 이가 뿜어내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는 거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만의 향기를 품는, 아름다운 중년의 딸을 보고 싶습니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하면 그녀의 연인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떠올린다. 그녀를 비롯한 당대 여성 예술가들은 사랑하는 연인의 빛에 가려 탁월한 예술성이 평가절하되곤 했다.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 프리다 칼로 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녀들의 작품도 속속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독자적인 아티스트로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로랑생의 작품에는 기욤 아폴리네르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특유의 그루미한 무드로 녹아 있다. 특히 그와 이별한 후의 작품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한층 두드러진다. 주로 핑크, 블루, 그레이 등 파스텔 톤을 사용해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미묘한 나른함에 취하고, 때론 쿨한 색조 안에 스며든 사랑스러운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지난해 코코 샤넬(Coco Chanel, Gabrielle Chanel, 1883~1971)의 일생을 다룬 영화 코코 샤넬(Coco Before Chanel, 2009)을 봤다. 패션의 아방가르드이며 모더니스트인 샤넬의 삶이 어쩐지 로랑생과 퍽 닮아 보였다. 짧지만 연인과 열렬히 사랑했고 온 열정을 쏟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해낸 강인함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들. 사실 두 여인에겐 한 가지 사연이 있다. 로랑생이 무대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즈음, 샤넬이 로랑생에게 직접 초상화를 의뢰했던 것. 그런데 완성된 초상화를 본 샤넬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쓸쓸하면서도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 속 자신이 실제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에도 로랑생은 그림을 수정하지 않았다. 두 여인의 팽팽한 신경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결국 샤넬의 초상화(Portrait of Mademoiselle Chanel, 1923)는 로랑생이 평생 소장하고 있다가 사후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로랑생의 그림을 내키지 않아 했던 샤넬의 심정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명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녀원의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샤넬은 그곳에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패션업에 뛰어든 그녀는, 모진 세파와 우여곡절 속에서도 가장 독립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삶을 일궈나간 당찬 여인이었다. 모던하면서도 우아한 샤넬의 디자인은 화려한 오브제를 포인트로 단조로움을 없애며 절제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생전 그녀가 구축한 샤넬 디자인은 현재 ‘샤넬’ 브랜드 패션쇼에서도 명맥을 잇는 고유의 콘셉트가 됐다.
“심플함은 우아함의 열쇠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성공은 종종 실패를 모르는 사람에 의해 달성된다”, “나는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도 당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 등 샤넬이 남긴 수많은 명언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Style, that’s what I am)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여성성 안에서 여성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하면서도, 자존심과 당당함을 패션으로 승화하며 현대 여성을 대변했다.
샤넬의 근거 있는 자신감에 반해버린 까닭일까? 개인적으로 로랑생이 그린 샤넬 초상화도 좋아하지만, 샤넬이 그토록 거부했던 마음도 절절히 이해가 간다. 아마도 그녀는 백년전쟁의 선두에서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처럼 자신감이 충만한 진취적 신여성의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모시카
유명 셀럽 패리스 힐튼의 럭셔리한 일상이 인터넷을 달궜다.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시닷컴이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포착된 패리스 힐튼의 사진을 공개한 것. 이 사진에는 패리스 힐튼이 고급 액세서리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명품백을 든 채 거리를 걷고 있다.
특히 패리스 힐튼이 어깨에 메고 있는 핑크색 애견 가방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상품은 반려동물 패션 브랜드 ‘모시카’의 애견 가방으로 현재 1650달러(약 200만 원)에 판매 중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된 모시카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현재 25개국에 매장을 보유하고 수천 명의 직원을 둔, 반려동물 글로벌 패션 기업이다.
패리스 힐튼은 전 세계에 체인을 둔 힐튼 호텔의 창립자인 콘래드 힐튼의 증손녀. 배우 및 가수로도 활동하고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는 등 셀럽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에어리넘
지난 2월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팰트로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녀는 “나는 영화 속에서 겪어봤어요. 안전하게 지내세요. 악수는 하지 마세요. 손을 자주 씻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와 함께 공개된 사진 속에서 그녀가 쓴 검은색 마스크가 눈길을 끌었다. 기네스 팰트로가 착용한 마스크는 스웨덴 업체 ‘에어리넘’의 제품으로, 가격은 69~99달러(8만6000~12만3000원)다. 이 마스크는 5겹의 필터와 밀착감을 높인 소재에, 북유럽 감성의 디자인이 더해져 패션 피플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구하기 어렵다. 에어리넘 마스크는 한국에서 판매 중인 공적 마스크 가격(1500원)의 57배가 넘는데도 동이 났기 때문이다. 에어리넘은 재고 부족으로 4월까지 판매를 중단하고, 현재 선주문을 받고 있다.
한편 유기농 재료와 미용을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구프’를 설립해 운영 중인 기네스 팰트로는 2016년 기준 6000만 달러(약 730억 원) 규모의 순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
영화배우 고소영이 지난 3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가족의 근황을 알렸다. 남편인 영화배우 장동건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윤설 양의 뒷모습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별다른 멘트 없이 올린 인스타그램에서 대중은 윤설 양의 긴 머리카락에 꽂힌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검정색 리본 머리핀에 주목했다.
1910년 여성용 모자 가게로 시작해 스포츠웨어, 향수, 숙녀복,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분야를 넓힌 샤넬은 현재 에르메스, 루이비통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한다. 샤넬은 3대 명품 중에서도 여성적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로 꼽힌다.
윤설 양이 꽂은 사넬 머리핀은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 64만 원에 판매 중이다. 한편 장동건, 고소영 부부는 2010년 결혼 당시 200억 원 이상의 광고 드라마 수입을 올린 바 있다. 또 2018년 기준 보유한 건물 3채의 가격이 총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꼼데가르송
지난 2월 9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날 대중은 투자·배급사인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입은 의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바로 ‘꼼데가르송 빈티지 재킷’이었다.
이 의상에 부착된 밴드 위에는 ‘PARASITE is Cool’(기생충은 쿨하다), ‘I’m Deadly Serious’(나 정말 진지해요), ‘RESPECT’(존경해요) 등 영화 속 명대사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넣은 문구들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꼼데가르송은 1969년 출시된 일본의 아방가르드 고급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에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1981년 파리 컬렉션에서다. 블랙을 기초로 한 비대칭 재단과 미완성인 듯 보이는 바느질, 풀어헤쳐진 원단을 사용한 의상들은 당시 충격을 안겨줬다.
이 부회장이 시상식에서 입은 재킷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만 원대로 추정된다. 꼼데가르송의 재킷과 코트는 100만~30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하트 로고의 플레이 라인 티셔츠는 10만 원대, 카디건은 30만 원대다.
◇에르메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총회장이 명품 넥타이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2일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 국민에게 사죄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에르메스’의 노란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해당 제품은 약 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다.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대가 상당한 프리미엄 라인은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버킨백’과 ‘켈리백’이 초고가 제품이다. 버킨백 가격은 2011년 기준으로 1240만 원 정도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다녀서 유명해진 켈리백은 35㎝급 제품이 930만 원 선이다.
이 제품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예약을 한 뒤 오랜 대기기간을 거쳐야 살 수 있어서다. 버킨백은 현재 2000여 명의 대기자가 있어 3년 후에나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백은 현재 국내 VIP의 예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롤렉스
지난해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찾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가 화제였다. 영국 언론 데일리미러의 보도에 따르면,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롤렉스’의 ‘GMT-마스터 아이스 워치’다.
이 시계의 가격은 38만 파운드(약 5억74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한정판 제품이다. 데일리미러는 이날 호날두가 차고 나온 시계도 희귀하지만, 그의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아니라고 전했다.
롤렉스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과 유명인의 총애를 받는 대표적인 명품 시계 브랜드로 정확성과 내구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엄격한 자체 검증과정을 통해 하루 오차 2초 내외로 정밀 조정된 시계만 출고한다.
롤렉스는 매우 일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를 갖고 있어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모델 분류가 철저하다. 다른 브랜드들도 용도에 따른 분류를 하지만 롤렉스에 미치지 못한다. 롤렉스 시계가 필드 쓰임새를 극대화한 ‘고급 툴워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건 이 때문이다.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마놀로블라닉
대이란 제재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지난 1월 캐나다 밴쿠버 소재 브리티시컬럼비아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병 인도 재판을 받기 위해서였다. 멍 부회장은 왼쪽 발목에 위치추적기가 달린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대중은 전자발찌뿐만 아니라 그의 발목 아래에도 주목했다. 영국 하이엔드 슈즈 브랜드인 ‘마놀로블라닉’ 구두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실루엣을 뽐내는 마놀로블라닉은 170만 원이 넘는 고가에도 많은 여성이 선망하는 브랜드다.
마놀로블라닉은 2000년대 초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마놀로블라닉 한기시(Hangisi) 블루를 선물하며 청혼해 승낙을 받았고, 이 구두는 ‘꿈의 웨딩슈즈’라는 별칭을 얻었다.
통굽이 유행하던 1970년대에 킬힐을 부활시켰고 1974년에는 보그 잡지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굽이 높지만 편안한 착용감으로 많은 할리우드 배우가 마놀로블라닉 구두를 애용하고 있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도 생전에 마놀로블라닉 팬이었다고 알려졌다.
◇보테가베네타
‘재벌계의 완판녀’ 임세령 대상 전무가 지난해 11월 연인인 배우 이정재와 동반 출국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대중의 관심이 그녀의 패션으로 향했다. 임 전무는 트렌치코트를 걸친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유독 레몬색 미니백이 눈에 띄었다.
당시 임 전무가 멘 가방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인 ‘보테가베네타’의 230만 원대 ‘카세트백’이었다. 이 제품은 프리미엄 나파 가죽 조각을 정교하게 엮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드는데, 최근까지 상품이 없어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테가베네타는 ‘로고 없는 명품’, ‘은밀한 명품’, ‘명품계의 반항아’라는 별칭이 따른다. 로고나 브랜드명을 과시하기보다 흔하지 않은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위해 오로지 품질만을 내세운다.
2000년대 초 브랜드의 비약적 성장을 이끈 토트백 ‘카바백’은 장인 2명이 이틀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배우와 셀럽에게 사랑을 받는 보테가베네타는 현재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피아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지난 1월 검찰의 서면조사를 받으면서 ‘논두렁 시계’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됐다. 그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한 인물로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당시 한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스위스 명품 손목시계 ‘피아제’를 받았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고 노 전 대통령은 열흘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논두렁 시계 사건이 다시 주목받자 세간의 또 다른 관심은 명품 피아제 손목시계로 향했다. 피아제 시계는 보석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으로유명한데 단순한 디자인이어도 상당히 고가인 경우가 많다.
또 폴로 시리즈 등은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디자인만큼이나 기술력도 뛰어난 피아제는 지금까지도 핵심 동력 장치인 무브먼트를 자체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2.3㎜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국민 엄마’ 김혜자를 비롯해 정영숙, 장미자, 정진각, 전무송 등 대한민국 대표 시니어 배우의 활약이 돋보이는 월화극 ‘눈이 부시게’가 종영 3회를 앞두고 전국 기준 7.7%의 높은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을 기록했다. 11일 방영된 9회에서 사채 빚에 시달리던 김희원이 샤넬 할머니의 보험금 수혜자인 이준하를 폭행하고 위기에 빠뜨리는 장면이 공개돼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좋은 형으로만 알았던 김희원의 본색과 함께 ‘효자홍보관’의 실체 또한 드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드라마 초반부터 중요한 무대였던 효자홍보관은 지금까지 있었던 시니어 대상 사기 피해를 떠오르게 했다. 극 중 효자홍보관은 종이접기도 하고 노래와 율동을 하는 ‘노치원(노인들의 유치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건강식품을 비싸게 파는가 하면,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한 뒤 중간에 돈을 가로채는 등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
이런 사건은 드라마 밖 현실에서 시니어들 대상으로 자주 발생한다. 의료상품 사기뿐만 아니라 금융사기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회장 윤덕홍)가 금융사기 피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피해 사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 교육을 대신 하기도 한다. 금융사기 예방 교육연극 '네놈 목소리'의 첫 장면이 바로 홍보관. 주름을 없앤다는 '다리미 크림'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입했다가 사기당하는 시니어의 모습이 그려진다. 홍보관이 극 중에서 전반적인 금융사기 피해 현장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시니어들이 사기피해를 입는 곳이기에 작품 속에 녹여냈다. 작년 3월 금융위원회의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은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는 작년 한 해 약 7000여 명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금융사기 피해 교육을 해왔다. 오영환 사무총장은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교육을 이어나갈 예정”이라면서 “금융사기 예방교육 2만5000명, 디지털 금융교육 6000명, 은퇴자산 관리와 생애설계 교육 2500명 등 약 3만 명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신이 조깅 바지를 입는다면, 삶의 통제를 완전히 잃은 것과 다름없다.”
올백 포니테일, 진한 선글라스 그리고 거침없는 발언까지. 존재만으로 브랜드가 되었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2010년 문화적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겐 ‘패션계의 거장’, ‘패션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랐다.
그가 패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International Wool Association) 콘테스트에 출전해 코트 부문 1등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피에르 발망, 장 바투를 거쳐 1964년 끌로에의 수석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무엇보다 ‘칼 라거펠트’ 하면 샤넬을 빼놓을 수 없다. 1982년 샤넬에 공식 영입된 그는 1983년 샤넬 오뜨꾸띄르(고급 맞춤옷)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독일인, 기성복 디자이너라는 그의 경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편견을 뒤집는 계기로 만들었다. 그는 한물간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샤넬의 기존 아이템에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결합해 젊은 층의 팬을 확보하며 다시 한번 샤넬의 부흥을 이끌었다.
지난 1월 22일 파리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 피날레에 그가 나타나지 않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건강 악화설, 은퇴설 등 그가 샤넬을 맡은 35년 동안 피날레에 서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이슈가 됐다. 그로부터 4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췌장암. 샤넬은 SNS를 통해 “1983년 이후 샤넬 패션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커펠트의 서거를 발표하게 된 것은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며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유명 패션계 인사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왜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어차피 내가 죽을 때 모두 끝날 것을.”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샤넬(Chanel), 펜디(Fendi), 칼 라거펠트 등 유명 브랜드를 지휘했다. 건강이 악화된 최근까지도 오는 3월에 열릴 여성복 패션쇼를 준비할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많았다. 한평생 패션에 몸 받치며 트렌디한 패션을 보여준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피카소를 그린 화가, 샤넬을 그린 여자’. 얼마나 대단하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그려냈을까?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 여성 작가의 전시회는 이렇듯 가벼운 궁금증으로 문을 두드리게 한다. 전시장에서 첫 인사를 나누듯 초기작을 접하고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감상하니 점점 그 이름이 각인된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화가, 사랑에 기뻐하고 아파한 여인의 대서사시가 ‘마리 로랑생-색채의 황홀 展’을 통해 펼쳐진다.
마리 로랑생에 대해…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마리 로랑생-색채의 황홀 展’. 우선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보기에 앞서 그의 인생 이야기와 연애담을 조금이라도 알면 좋겠다.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서이자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시대 상황과 맞물린 마리 로랑생 감정 변화는 깊이가 더해지며 다양한 색채로 화폭에 담겨갔다. 1·2차 세계대전 시대를 산 인물로서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예술가,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여성 화가가 드물던 100여 년 전, 마리 로랑생은 미술교육기관인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교육받았다. 입체파 창시자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화가가 된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작업실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세탁선(洗濯船, Bateau-Lavoir)에 다니며 활동했고 ‘입체파의 소녀’, ‘몽마르트의 뮤즈’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이곳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5년 여 뜨거운 열애를 나눴던 이들은 기욤 아폴리네르가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연루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독일인 남작과 결혼했지만 순탄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다 이혼한다. 이후 마리 로랑생은 색채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독특한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나갔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간 그는 예술 활동에 집중했다. 명사들의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의상과 무대디자인은 물론 도서와 잡지 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1956년 6월 8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을 거둔 마리 로랑생은 오스카 와일드와 쇼팽 등이 잠든 페르 라셰즈 묘지(Pere Lachaise Cemetery)에 안장됐다.
파리지엥 작가의 인생 궤적을 쫓다
‘마리 로랑생-색채의 황홀 展’은 마리 로랑생의 20대 무명 시절부터 73세 대가로 죽기 직전까지 작품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다섯 개의 섹션이 친절하다고 생각될 만큼 깔끔하게 구성돼 작품을 이해하기 쉽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리 로랑생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옛 추억을 엿볼 수 있는 사진 19점이 전시 돼 있다. 1부 ‘청춘시대’ 섹션에서는 마리 로랑생이 파리의 아카데미 앙베르에 다니던 시절 그렸던 풍경화와 정물화, 자화상과 피카소의 초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열애시대’로 구별한 2부. 입체파와 야수파의 흔적을 보이면서도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마리 로랑생의 고유한 스타일이 드러난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3부 ‘망명시대’는 마리 로랑생 인생 중 역경의 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랑했던 기욤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뒤 급하게 독일인 남작과 결혼, 신혼생활을 하기도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스페인으로 망명을 떠난 시기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있을 수 없어 택한 망명길이었다. 이 시기 작가가 느낀 고통과 비애, 외로움을 자신만의 색깔로 더욱 강하게 작품 안에 표현했다.
4부 ‘열정시대’에서는 이혼한 뒤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친 시기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까지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유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24년 마리 로랑생이 의상과 무대디자인을 담당해 성공을 거둔 발레 ‘암사슴들’의 공연 영상과 의상 도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5부 ‘콜라보레이션’에는 작가 앙드레 지드의 ‘사랑의 시도’, 오페라 ‘춘희’,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잡지 ‘보그’ 등 마리 로랑생이 북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할 때 발표된 작품 38점이 전시돼 있다. 이밖에 마리 로랑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과 마리 로랑생의 시집 겸 수필집 ‘밤의 수첩’ 등이 있고, 그의 시를 직접 필사해보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전시 정보
일정 3월 11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관람시간 2월 오전 11시~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 6시) /
3월 오전 11시~오후 8시 (입장 마감: 오후 7시)
입장권 성인 1만 3000원 / 청소년 1만 원 / 어린이 8000원
새해가 되면 나이 드는 걸 무턱대고 슬퍼하기만 해야 할까. 무조건 서러워하고 쓸쓸해하기보다는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을 노련한 서퍼처럼 즐길 수는 없을까. 당당하고 지혜롭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바로 웰에이징(Wellaging)이다.
몇 해 전 영국의 한 TV 채널에서 ‘멋진 패셔니스타(Fabulous Fashionistas)’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6명의 80대 여성이 등장하는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확고한 패션 취향을 드러내며 스타일 배틀을 펼쳤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말미에 한 출연자는 이렇게 외쳤다.
“나이 든다는 것이 이토록 흥미로운 일이라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
과연 나이 든다는 것이 큰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두려운 일일까? 그 먹구름을 피해 무조건 도망쳐야만 할까? 새해에는 제대로 나이 드는 일, 즉 웰에이징 계획을 세워보자.
장수 과학자라 불리는 박상철 교수는 자신의 책 ‘웰에이징’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웰빙(Wellbeing, 참살이)이라고 한다면 사람답게 늙는 것은 웰에이징(Wellaging, 참늙기)이고, 사람답게 죽는 것은 바로 웰다잉(Welldying, 참죽음)이다. 생명의 노정을 억지로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거스르는 행위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웰에이징이란 결국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가치를 극대화시켜가는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수십 년 전 패션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했던 말, 즉 “여성을 늙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젊어지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내용과도 통한다. 어떻게 하면 젊어 보일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다워 보일까를 고민하라는 것이 웰에이징의 핵심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패션은 빠트릴 수 없는 영역이다. 앞서 소개한 ‘멋진 패셔니스타’처럼 패션은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또 질리지 않는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다. 그건 교복을 고쳐 입던 10대에도, 노년기로 접어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패션 안에서 어떻게 ‘웰에이징’을 실천할 수 있을까.
우선 자신만의 패션 기준을 만들자. 일상을 ‘루틴’하게 만들수록 머릿속은 가벼워진다.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가령 스커트는 미디 길이의 A라인 스커트, 니트는 굵은 짜임보다는 코가 조밀한 것, 구두는 굽이 5cm 이하 등 자신의 특징을 고려해 일정한 기준들을 만든다. 이런 식으로 쇼핑을 하면 거울 앞에서 후회하는 일도(주로 늙어 보인다는 푸념과 함께)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두 번째로는 트렌드보다는 클래식에 집중하자. 오늘날의 패션 앞에는 ‘패스트’라는 단어가 붙는다.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금세 먹고 치워버리는 것, 그것이 요즘 패션의 특징이다. 그 속도에 헐떡이며 맞춰갈 필요는 없다. 클래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는 아이템들(예컨대, 캐시미어 카디건이나 캐멀 컬러의 코트, 진주목걸이 등)은 당신의 부모 세대에도, 그리고 당신의 자식 세대에도 여전히 옷장에 걸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젊음이 아닌, 영원을 선물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옷을 사는 것만큼 관리하는 일에도 신경을 쓰자. 나이는 우리만 드는 것이 아니다. 옷장 속 코트 소매에서도 나이는 느껴진다. 옷 역시 사람처럼 관리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겨울 소재는 솔을 이용해 먼지를 털어주고, 신발 역시 슈트리를 안에 넣어 보관하자. 화분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옷에도 신경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애착이 생긴다. 그게 오래 가는 ‘멋’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소홀하지 말자. 일본에서는 노인들에게 립스틱 바르기를 권장했더니 기저귀 사용률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동양 의학의 근본정신 중 하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해 객체가 되어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주체가 되어 그 속도를 조정해갈 것인가. 립스틱을 바르는 것은 자신에게 관심을 놓지 않겠다는 아주 작은 표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파도는 작은 물결로부터 시작된다.
나이라는 감옥에 갇혀 다가온 새해를 두려워하지 말자.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이보다 중요한 삶의 목표는 없을 테니.
가을이 오면 우울증은 언제, 어디서든 뜬금없이 시작된다. 가령 오늘 입은 옷이 정말, 정말 마음에 안들 때, 혹은 마치 어제 막 맨몸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때 스카프를 떠올리는 건 ‘슈퍼 그레잇’한 일이다. 밋밋한 까만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만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즉흥적으로 자신의 집 커튼을 쭉 찢어 스카프처럼 목에 감아 스타일을 ‘업’시켜줬다는 일화도 있지 않은가. 이번 가을 잘 고른 스카프 하나가 자식보다 더 큰 효도를 할지도 모른다.
패션에서 대부분의 아이템은 기능적인 목적에서 고안된다. 추위를 막거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이 스카프만큼은 태생적으로 장식적인 멋을 강조한 아이템이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멋을 내기 위해서는 최고의 아이템이란 얘기다. 그만큼 스카프를 고르고 연출할 때는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요즘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차림이 화제다.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년) 여성으로 뜨겁지도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다양한 스카프 스타일링은 패션에 대한 그녀의 높은 감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령 독일 순방 중에는 평범한 회색 투피스에 핑크 스카프를 둘러 품위 있는 룩을 완성하기도 하고, (정신없던) 대선기간 중에도 편안한 옷차림에 감각적인 스카프 스타일링으로 우아함을 놓치지 않았다. 스카프를 얘기하며 배우 김용건을 빠트릴 순 없다. 소문난 멋쟁이인 김용건은 슈트를 입을 때도, 가볍게 봄버 점퍼를 입을 때도 스카프를 빼놓지 않는다. 그를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스카프의 풍성한 주름으로 옮겨간다. 고수의 향기가 툭툭 둘러맨 스카프에서 느껴진다.
스카프는 군인의 예복 차림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정장 차림에 기품을 더하기에 그만이다. 남자의 경우 실크 소재의 유연한 광택을 지닌 스카프를 셔츠 안에 풍성하게 매면 타이와는 또 다른 뉘앙스의 정장을 완성할 수 있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밋밋한 원피스 위에 스카프만 잘 둘러주면 새 옷 못지않은 신선함을 줄 수 있다. 옷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토트백의 손잡이 부분에 얇은 스카프를 둘러 장식할 수도 있고, 1950년대 여배우처럼 머리에 두를 수도 있다. 휴양지에서는 멋진 선드레스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스카프 스타일링법이 궁금하다면 핸드폰을 켜고 에르메스의 ‘Silk Knots’ 앱을 다운받자. 상상 그 이상의 스카프 스타일링법을 친절하게 동영상으로 소개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시연이 스카프 스타일링에서는 중요하다!
스카프를 한 번도 안 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매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매력 넘치는 스카프는 구입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스카프가 처음인 사람은 무늬가 없거나 스트라이프, 페이즐릿 같은 고전적인 무늬를 고른다. 이후 스카프 스타일링에 익숙해지면 점차적으로 과감한 프린트의 스카프에 도전한다.
요즘은 유명 작가의 일러스트를 담은 스카프나 타이포그래프가 그려진 스카프가 유행이다. 컬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외투나 재킷 컬러와 톤온톤으로 시작해 이후 보색이나 시즌 컬러의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면 옷 입는 재미를 배가할 수 있다.
스카프를 고를 때는 예산을 넉넉히 하자. 피부에 직접 닿는 아이템이자 볼륨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이므로 고급 소재를 고르는 것이 좋다. 한 번 사면 오래 두고 사용하는 것이니 목걸이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고르듯 공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스카프는 마치 매력적인 친구 같다. 가까이 하면 할수록 빠져든다. 우울할 틈을 주지 않는 스카프, 이 가을에 스카프가 필요한 이유는 끝도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