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 프리랜서 작가
중년의 일탈, 제2의 사춘기처럼 새로움을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앞만 보고 산 세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잊은 채 가족들을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문득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 것인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화된 생활에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그 끝에서 일탈의 유혹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일탈(逸脫). 국어사전에 따르면 이 쉽지 않은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정해진 영역 또는 본디 목적이나 길, 사상,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나는 것’이 그중 하나. 나머지 하나는 ‘사회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첫 번째 의미를 좀 더 좁게 해석한다면 일탈은 바람직하다. 정형화된 삶의 틀을 슬쩍 비트는 단순하고도 소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도 좋겠고 젊은이들의 낯선 문화에 다가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자우림이 노래한 ‘일탈’의 노랫말처럼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도 (물론 위험하지만) 짜릿할 수 있겠고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것도 (물론 위법이면서 몹시 부끄럽겠지만) 일상이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하는 흥분을 느끼게 할 만하다.
때로는 궤도에서 벗어난 유인구가 상대 타자를 헛스윙하게 만드는 것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행위는 우리 삶에 종종 활력의 기폭제가 된다. 최민자가 쓴 수필 한 대목을 감상해보자.
‘낯선 바람, 낯선 언어, 낯선 음식 속에 서 있을 때, 나는 언제나 싱싱하게 살아난다. 금잔은대(金盞銀臺)의 수선화 한 포기에서 고향집 앞마당을 떠올려 보고, 물속에 거꾸로 선 나무들 사이로 초라한 내 그림자를 비추어 보는 게 즐겁다. 낯선 것들 속에서 익숙한 것 찾아내기. 여행이란 그런 것 아닐까.’
수필가가 제목으로 쓰고 있는 일탈이란 단어는 물론 첫 번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정갈한 글에서 수필가가 제시한 일탈의 예라고는 기껏해야 여행 정도이다.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의 조그만 빗겨남. 이런 일탈에 대한 유혹이라면 ‘유혹(誘惑)’이라는 다소 불건전한 단어 대신 좀 더 긍정적인 낱말을 선택해도 무방할 것이다.
두 번째 의미라면 상황은 사뭇 달라진다. 인간의 도덕관념과 관계된 터라 좀 더 살벌해지고 좀 더 구차해진다.
그런 일탈이라면 꽤나 경험해본 축이다. 술을 잔뜩 마시고 평소 어려워하던 선배에게 대들어보기도 했고, 으슥한 골목길에서 소변을 본다거나 하는 아주 자잘한 위법 행위를 저질러도 봤다. 쉽지 않은 고백이지만 이성을 대하면서도 실수를 가장한 남자답지 못한 짓거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 결과, 나는 현재 매일매일 시달린다.
일탈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일탈이 규범과 관계된 의미라면 그것은 언제나 후회와 속죄를 요구한다. 당신이 소시오패스가 아닌 평범한 일상인이라면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내가 살면서 그럴 수도 있지’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나 통할 뿐.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지약차(早知若此), 그리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느낌이 때마다 몸부림친다. 미련과 죄책감에 문득문득 진저리가 쳐지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언젠가 대한민국 법조계의 엘리트 부장검사 한 명이 제주도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탈 행위를 저질렀다가 지금껏 다져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법의 심판까지 받은 사건이 있었다. 심리학 교수인 친구는 그의 그런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두고 이렇게 해석했다.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아마도 남들은 다 겪는 일탈행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겠지. 그와 관련된 극심한 스트레스가 저런 이상행동을 불렀을 가능성이 커.”
첫 번째 의미에서의 일탈이 지나치게 부족한 탓에 중년 들어 갑작스럽게 두 번째 의미에서의 일탈에 취하고 말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지금 그 부장검사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지난날의 행위를 후회하고 또 후회할 것이다.
인간이 윤리관을 어떻게 지니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태어나면서 천성적으로 몸 안에 간직하게 된다는 설에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 주장을 일단 신뢰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고 간주할 수 있다. 실제 삶이 어떠한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두 번째 의미의 일탈은 그 윤리관과 도덕관념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긴다. 일정 기간 사회와 격리시키거나 벌금을 물리는 법의 심판은 둘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인디언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모난 쇳조각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쇳조각이 마음속을 휘저으면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생각했다. 인디언들은 쇳조각이 가슴을 찔러대는 그 아픔을 죄책감이라고 불렀다.
맨 처음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에는 죄책감이 매우 크다.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쌓여갈수록 고통은 시나브로 덜해진다. 마음속 쇳조각의 날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밤마다 아픈 것을 보면 내 마음속 쇳조각의 날은 아직 무뎌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유혹을 통제하는 것은
살면서 누구나 일탈의 유혹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정해진 일을 한 뒤 다시 귀가해 잠자리에 드는 삶은, 세 끼 먹는 밥처럼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지만 그만큼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에 대한 심적 저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정교한 삶의 톱니바퀴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누구든 느끼게 된다. 불현듯 번지점프와 스트립쇼가 당기고, 지나가는 행인한테 욕을 통쾌하게 질러보고 싶고, 나아가 사회규범을 어기고 싶은 욕망까지 일곤 한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지혜는 일갈한다. 당신 마음속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쇳조각이 아직 날이 살아 있다면 그런 욕망들을 지혜롭게 제어해야 한다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라고. 쇳조각이 가슴을 찌르는 고통에 밤잠을 설치지 않으려면 현자들의 충고를 잠자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평온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의 지속은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는 중년이기 때문이다.
>> 김유준 프리랜서 작가
1966년생. 20여 년 동안 영화전문지 , 남성교양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도서출판 현재) 등을 번역했다.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스포츠 중계도 많고, 야외 나들이도 늘어나는 요즘 같은 계절에 증가하는 질환은 뭘까? 당연히 골절 등 외상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뜻밖에 6월과 7월에 조심해야 하는 질병 중 하나는 통풍이다. 한국인이 즐기는 ‘치맥’의 소비가 가장 왕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통풍에 대한 위험은 커진다. 통풍의 위험성과 예방에 대해 대한류마티스학회 산하 통풍연구회의 송정수(宋禎秀) 회장을 통해 들어보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대한류마티스학회 통풍연구회 송정수 회장
흔히 통풍은 이름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통증이 느껴진다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런가 물어본 질문에 송정수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심지어는 고양이가 걸어가는 진동에도 통증이 생긴다고 하고, 방문을 여닫는 진동에 의해서도 통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통풍으로 인한 고통은 여자들의 산고(産苦)보다 더 심하다고 하죠. 통풍 발작은 주로 밤이나 새벽에 오는데 관절에 생긴 통증에 의해 잠을 깨서 그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닐 정도로 아프고, 쉬는 시간이 없이 뼈를 부수는 듯한 통증이 며칠간 계속돼 참기 힘들고 통풍이 생긴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이렇듯 무시무시한 병 통풍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요산 때문이다. 요산은 음식을 통해 섭취되는 퓨린(purine)이라는 물질을 인체가 대사하는 과정에서 몸속에 남게 되는데, 이 요산의 혈액 내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들러붙는 질병이 통풍이다. 통풍은 관절의 염증을 유발하여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재발성 발작을 일으키며, 요산염 결정에 의한 통풍결절은 관절의 변형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환자를 불구로 만든다.
고령일수록 더욱 위험한 병
나이가 들수록 통풍이 위험해지는 이유는 요산이 몸에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40세가 넘으면 통풍 발생 위험이 크다고 판단한다. 청소년기 이후부터 요산이 몸에 쌓이기 시작하여 20~40년 동안 요산은 높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무증상 고요산혈증) 시기를 거쳐 몸에 축적된 후에 발생하기 때문. 물론 유전적인 요소나 음주, 비만과 같은 요산이 증가하는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은 20대나 30대에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통풍은 남성에게 위험한 병으로 불린다.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에스트로젠이라는 여성 호르몬이 폐경 전까지 몸에서 나오는데, 이 에스트로젠은 몸에서 요산 배출을 강력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폐경기 이전의 여성에게서는 거의 통풍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폐경기 이후에는 통풍의 발생률이 남성과 같은 비율로 증가해 폐경기가 지난 이후의 60~70대 여성들도 주의해야 한다고 송 회장은 조언했다.
술 줄이고 물 많이 마셔야
나이가 많은 시니어들의 경우 생활환경이 좁아지고, 체력이나 관절 등의 문제로 운동이 어려워진다. 이럴 경우 예방할 방법에 대해 송 회장이 내놓은 답은 음식에 있었다.
“고령으로 인해 운동량이 줄어든다면 몸에서 생산되는 요산의 양을 줄이면 됩니다. 그러려면 우선은 혈중의 요산농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술을 절대적으로 줄이거나 중단해야 합니다. 또 퓨린이 많이 들어있는 고기나 생선을 너무 많이 섭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물을 하루에 2ℓ이상 마셔서 요산을 소변으로 배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식 중에서 한식은 탄수화물과 섬유소, 단백질, 무기질 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 과식만 하지 않는다면 통풍에 걸릴 위험이 많지 않다. 다만 기름진 튀김 요리나 퓨린 함량이 높은 소나 돼지의 내장, 생선은 통풍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조절 가능하나 완치되지 않는 병
통풍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 고요산혈증이 20~40년간 지속된 후 급성 통풍성 관절염이 생기고, 간헐기 통풍, 만성 결절성 통풍, 4단계로 진행된다.
무증상 고요산혈증 기간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피검사를 해서 요산이 7.0 mg/dL 이상 나오면 무증상 고요산혈증이라고 판단한다. 급성 통풍 관절염은 엄지발가락이나 발등처럼 침범된 관절이 심하게 붓고 아파서 걷지를 못할 정도가 되는데 7~10일 후 통증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리고 6개월에서 2년 후 다시 통증이 찾아온다. 이렇게 10년 정도 지나면 만성 결절성 통풍으로 진행한다. 이 상태가 되면 통풍 발작이 여러 관절에서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고 중풍이나 심장병, 만성 신부전 등과 같은 합병증도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통풍에 대해 송 회장은 완치는 어렵고 약물로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요산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평생 복용해야 합니다. 통풍은 완치의 개념으로 치료하지는 않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이 조절하는 개념으로 치료합니다. 복약지침을 잘 따르고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요산 수치를 5mg/dL 정도로 잘 유지를 하면 관절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는 것도 거의 완벽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안 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
통풍은 합병증도 만만치 않은 질환이다. 통풍을 10년 이상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때에는 만성 결절성 통풍으로 진행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관절이 망가져서 불구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요산으로 이루어진 통풍결절이 장기적으로 몸에 쌓이면 통풍 발작뿐만 아니라 퇴행성관절염도 발생한다. 요산이 관절에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혈관과 콩팥에도 쌓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 중풍, 심장병, 만성 신부전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흔히 통풍은 관절이 아픈 병으로 치부하고 생명과는 무관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다. 통풍 환자의 주된 사망 원인은 관절염이 아니라 만성 신부전이나, 심장병, 중풍 등의 만성 성인병이므로 이런 합병증을 막기 위해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하면서 통풍 치료를 제대로,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한다. 특히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송 회장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환자들은 통풍치료 순응도가 외국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급성기 통풍발작 때에는 약을 잘 먹다가도 증상이 없어지면 약을 중단하는 비율이 외국에 비해 높아 안타깝습니다”라고 설명하고, “통풍은 발, 특히 엄지발가락에 많이 발생하므로 발에 심한 염증을 동반한 통증이 생긴다면 통풍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으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세계적 장수지역인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세계에서 콩을 가장 많이 먹는다. 장수에 좋다는 ‘슈퍼푸드(Super Food)’라는 용어를 세상에 퍼뜨린 미국의 영양학 박사 스티븐 프랫(Steven G. Pratt)이 선정한 14가지 음식에도 콩이 들어간다.
서양은 밀 위주의 문화이고, 동양은 쌀 위주의 문화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독특하게 적용되는 음식 문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콩 문화이다. 콩의 원산지가 만주와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콩 음식이 발달했다. 콩을 발효시킨 메주, 간장, 된장, 청국장 등과 콩을 가공한 두부, 순두부, 콩비지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콩은 질소 고정 박테리아를 통해 단백질을 합성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콩들이 몸에 좋다고 알려져 유행하고 있다. 쥐눈이콩, 녹두, 완두, 렌틸콩, 병아리콩, 여우콩, 동부콩, 팥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이 콩은 어디에 좋고, 저 콩은 어떤 병에 좋다는 말이 많다. 그런데 음식의 효능을 찾을 때는 큰 부류의 공통점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녹두, 완두의 차이보다는 녹두, 사과의 차이가 더 크다. 즉 콩류는 공통점이 훨씬 많으며, 이들의 공통점을 알고 나서, 콩 각각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콩과 식물은 대표적인 덩굴 식물로 뿌리가 깊고 덩굴이 질기며 생명력이 강하다. 칡, 아까시나무, 족제비싸리, 감초, 황기, 콩, 팥 등이 있다. 칡 ‘갈(葛)’은 막을 ‘알(遏)’에서 나왔는데, 도로를 뒤덮어 길을 막아 버릴 정도로 잘 자라며 질기다는 뜻이다. 19세기 말엽 미국에 도입된 칡은 현재 미국 남부를 점령하고 북부로 진격 중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생태교란 식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1분에 1마일씩 자란다는 속설이 있는 아까시나무는 제초제를 쳐도 안 죽어 아까시나무만 죽이는 제초제가 따로 있을 정도다. 족제비싸리는 대한제국 무렵 민둥산이 많아 홍수가 나자, 이를 막는다고 북미에서 수입했을 정도로 번식력이 좋고 질기다. 회초리, 빗자루로 쓰던 싸리나무 역시 콩과 식물이다.
이렇게 빨리 자라고 질길 수 있는 것은 수액을 공급하고 순환시키는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칡은 수십 미터 떨어진 말단까지 수액을 공급해 준다. 덩굴식물인 콩과는 체액을 순환시켜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단맛이 있기 때문에 해독하는 힘이 강하다. 그리고 콩과는 모두 서늘하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콩가루를 많이 쓰며, 술독을 푸는 데 칡뿌리, 녹두전 등 콩류가 꼭 들어간다. 황달, 부종, 배가 더부룩한 경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길 수 있는 심혈관질환, 뱃살에도 콩류가 좋다. 공해독, 약독을 풀어주는 데도 콩류가 좋기 때문에, 양약을 장기 복용할 때 콩류를 약간씩 먹어 주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콩류 전체를 살펴보면 콩깍지가 길면 길수록 체액을 순환시켜 몸 밖으로 빼내는 효능이 강한데, 녹두, 팥 등이 그렇다. 심혈관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위장의 찌꺼기, 군살, 독소 등을 제거하는 힘이 강하다. 콩깍지가 짧을수록, 즉 1개의 콩깍지에 들어 있는 콩이 적으면 적을수록 기운을 보충하고 생식기와 뼈를 튼튼하게 하는 효능이 강한데, 약콩, 쥐눈이콩, 여우콩, 렌틸콩, 병아리콩 등이 그렇다. 생식기를 튼튼하게 한다는 것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에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부전 등 신장 질환이 심한 경우에는 단백질이 많은 콩류는 오히려 부담이 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날콩에는 단백질 분해를 방해하는 트립신(trypsin) 저해제가 많기 때문에, 그냥 먹을 경우 소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콩을 쪄서 가루내면 트립신 저해제가 없어지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된다. 그리고 콩에는 질소와 황이 있어 배에 가스가 차게 하고 방귀를 잦게 만드는 단점도 있다.
녹두는 콩 중에서 해독력이 가장 강하고 차가운데, 해독하는 힘은 녹색 껍질에 있다. 두통, 편도선염, 가슴 답답, 당뇨, 고열, 양약 중독, 중금속 중독, 술독 등의 해소에 좋다. 녹두베개를 만들어 베고 잠자면 머리를 시원하게 해서 열 많은 사람의 두통에 좋다. 그런데 원기가 쇠약해진 노인이나, 기운이 약한 사람, 속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한약 먹을 때 녹두, 녹두 나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한약마저 해독해 버리기 때문이다.
붉은 팥은 뚫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각기, 부종, 창만에 좋으며, 산모의 젖 분비도 촉진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할 수 있는데, 팥은 이런 밀가루 음식의 부작용을 가장 잘 풀어준다.
따라서 팥빵, 찐빵, 붕어빵, 팥칼국수, 타이야끼 등 밀가루 음식에 팥이 자주 들어간다. 동지팥죽, 찹쌀떡에 팥이 들어간 것도 새알, 찹쌀떡을 먹고 잘 체하는 부작용을 팥이 없애주기 때문이다. 뚫는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에서는 “오래 복용하면 피부가 검어지고 마르며 야위게 된다”고 주의시키고 있다. 1개의 팥 깍지에 4~15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백편두는 까치콩, 제비콩이라고도 부르는데, 남미 열대가 원산이며, 여름철에 기운이 떨어져 구토, 설사하고 땀이 쉽게 나며 몸이 무겁고 부을 때, 더위 먹었을 때, 아주 좋은 여름철 곡식이다. 소화력이 약할 때는 그냥 볶거나 생강즙 치료에 볶아서 쓰면 소화력도 높여 준다. 또한 콩의 일종이기에 해독하는 힘도 있는데, 여름철 식중독과 비상독, 복어독 등을 풀어준다.
그리스가 원산지인 렌틸콩은 자생지, 모양, 생태환경, 효능이 백편두와 거의 유사하다.
약용으로 많이 쓰이는 쥐눈이콩(서목태)은 검고 작으며 속이 파란 것이 특징이다.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쥐눈이콩은 상당히 강력한 해독제이다. 당뇨를 치료하고, 피를 맑게 하며, 중풍 치료와 예방에 좋고, 뼈를 튼튼하게 하며, 여성 갱년기 증상 치료에 좋다. 쥐눈이콩은 콩깍지에 1~3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중동이 원산지이며 지중해, 인도, 중앙아시아 등에서 주로 생산되는 병아리콩은 땅콩처럼 고소한 맛, 밤처럼 구수한 맛이 특징으로 콩 비린내가 없고 포만감이 높다. 콩깍지에 2~3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이 콩 역시 뼈를 튼튼하게 하고, 갱년기증상 완화에 좋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동네의원에서 수액 주사를 맞았던 환자들에게 C형 간염이 집단 발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67명입니다. 주사기를 돌려쓴 것이 결정적 원인입니다. 원장과 원장부인도 감염됐고, 원장은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이란 소식도 들려옵니다. 면허갱신 등 의사 재교육 필요성이 대두되고 미필적 고의에 대한 형사처벌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장에 대한 정신감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혹은 인격장애 수준의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비상식적인 의료행위를 수년 동안 버젓이 자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이 다수의 선량한 동네의원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당한 환자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입니다. 알다시피 C형 간염은 죽을 수 있는 병입니다. 치료제가 있다 하나 완치가 쉽지 않고 만성 간염과 간 병변, 간암으로 악화합니다.
불행한 소식은 갈수록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C형 간염 신규환자가 2002년 1927명에서 2010년 5630명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B형 간염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12년을 기점으로 C형 간염이 앞지르고 있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지역적 편차입니다. 2015년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기모란 교수팀이 건강보험공단 유병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광역단체로는 부산, 기초단체로는 전남 진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전국 평균보다 부산은 2배, 진도는 5배나 높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해마다 수천 명씩 누군가 몹시 황당하고 억울한 과정을 통해 C형 간염에 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고리는 단연 혈액입니다. C형 간염은 술잔이나 키스, 가벼운 성생활 등 일상적 접촉으론 거의 옮기지 않습니다. 타액이나 정액보다 혈액을 통해 주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로든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나의 혈액과 섞이는 상황이 가장 위험합니다. 이것은 에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사례별로 알아봅니다.
주사기 주사기는 그냥 한 번 찔리기만 해도 걸릴 수 있습니다. 감염자를 찌른 주사기에 의료인이 사고로 찔린 경우 대략 1~3%에서 감염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양입니다. 감염자의 혈액이 많이 들어갈수록 확률이 증가합니다. 단순히 바늘에 찔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처럼 수액을 통해 역류한 피가 섞여 들어갈 경우 확률이 수십 배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는 예외지만 주사기는 대부분 병원 밖에서의 사용이 문제입니다. 마약 등 약물 중독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부산에서 C형 간염 환자가 많은 것도 국제 항구란 지역의 특성상 마약 사용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사기는 일회용을 써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B형 간염 환자가 국민병이라 불릴 정도로 창궐했던 이유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대상으로 전염병 단체 접종을 하던 과정에서 지금처럼 일회용이 아닌 주사기로 수백 명을 찔렀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침과 문신 침을 맞거나 피어싱 혹은 문신을 새길 때 반드시 바늘 등 시술 도구가 제대로 소독된 것이지 확인해야 합니다.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은 환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부분 일회용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다른 사람을 찔렀던 도구를 나에게 찌르려 하는 경우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전남 진도에서 C형 간염이 전국 평균 5배나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허술하게 침과 문신 시술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문신의 경우 도구만 소독해선 안 됩니다. 바르는 문신용 염색약에 바이러스가 묻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바늘이나 침 등 도구를 일회용이나 소독된 것으로 사용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염색약도 일회용으로 조금씩 덜어서 사용하는 게 옳습니다. 이 부분은 보건당국이 좀 더 철저하게 감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면도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부분 안전합니다. 그런데 간혹 실수로 피부에 생채기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가 아주 위험합니다. 피부에 스며든 혈액이 면도날에 묻게 되는데 만일 이를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다음 손님에게 면도하다 또 생채기가 나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달아 실수로 생채기를 낸다는 게 확률적으로 드물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느 경우든 이발소의 면도기도 다른 손님에게 사용하기 전 철저하게 소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접촉 일상적 성접촉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배우자 중 한 명이 C형 간염이라도 다른 배우자가 콘돔을 써야 한다고 권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접촉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얌전한 성접촉은 괜찮습니다. 에이즈와 달리 정액이나 질액으로 옮길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그리고 다소 격렬한 성접촉 시 성기 점막의 상처를 통해 혈액이 묻어나올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실제 캐나다 보건성의 조사결과 20년 이상 부부생활을 할 경우 2.5%의 확률로 배우자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가능하면 콘돔을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섹스 파트너가 많다거나 항문성교 등 비전형적 성행위를 즐기는 경우 감염 확률이 급증합니다. 이 경우 콘돔 착용은 필수입니다. 특히 여성이 생리 중인 경우 성접촉은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 안전합니다.
칫솔과 손톱깎이 감염자가 사용하는 칫솔과 손톱깎이를 같이 사용하면 안됩니다. 특히 잇몸 질환으로 구강 출혈이 있는 경우라면 칫솔로 인한 감염 확률이 급증합니다. 손톱깎이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톱을 깎는 과정에서 생긴 피부의 상처를 통해 소량의 혈액이 묻어날 수 있습니다. C형 간염의 잠복기는 6주에서 9주로 보고 있습니다. 대개 C형 간염은 초기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에게 피로와 입맛 떨어짐, 구역과 구토, 근육통과 미열, 소변 색깔이 진해지거나 피부와 눈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생긴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C형 간염 진단이 내려지면 나에게 6주에서 9주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져보기 바랍니다.
증세가 늦게 나타나 진단이 뒤늦게 내려질 수도 있으므로 수개월 전까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주사기가 되었건 침이나 문신이 되었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에게 다른 사람의 혈액이 섞여 들어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절한 배상 등 개인적 억울함을 풀 수 있고 무자격이든 비양심이든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C형 간염을 확산시키는 주범들을 색출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현장에서 암 예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인자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가족력이다. 가족 중 암을 앓았던 환자가 있었는지에 따라 발병 가능성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만난 임군식(林君植·56)씨는 전립선암(前立腺癌)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본인은 그렇게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PSA(전립선특이항원) 수치를 매년 체크하며 살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고, 울산대학교병원 전상현(全相炫·52) 교수를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됐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한평생을 한회사를 위해 일 해왔던 그다. 공업도시에서 살고 있는 여느 근로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30년 근속을 기념해 금붙이를 한 냥(兩)이나 받았다. 근무하는 KCC 울산공장은 그의 입사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내 손으로 일궜다는 자부심도 컸다. 오랜 세월 성실하게 회사 일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였기 때문에 갑작스레 전해진 비보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임군식씨가 건강의 이상을 발견한 것은 지난해 4월. 매년 해오던 혈액검사 수치가 평소보다 매우 높았다. 검진을 했던 병원에서도 의심스럽단 이야기를 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았거든요. 평소에는 PSA 수치가 1.8 수준이었는데, 3.8이 넘게 나오더라고요. 많이 놀랐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다른 동네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았는데 수치가 비슷했어요. 의사선생님도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울산대학교병원을 찾았죠.”
그리고 진행된 조직검사에서 그는 전립선암 확진판정을 받게 된다. 다행히 초기단계인 1기 상태였다.
“저의 아버님이 전립선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8년 전 돌아가시고 나서는 저도 매년 검사를 받게 됐고요. 아버님이 7년 정도 투병을 하신 탓에 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몇 개월 동안은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탓에 많이 힘들어 하셨고, 그걸 지켜보는 저 역시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전립선암 환자의 가족으로서의 생활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본인이 전립선암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구하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 충격도 굉장히 컸다고 임군식씨는 회상했다.
“깜짝 놀랐죠. 그렇게 염려하고 조심했는데 암이라니. 그것도 전립선암이라니 눈앞이 깜깜해졌죠. 수술할 때까지 두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입맛도 싹 사라지더라고요. 아내는 그럴 리 없다면서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대학생인 아들, 딸 두 자녀에게 숨기려고 했었다. 아직 학생인 아이들에게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을 앞두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녀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때였어요. 아들 녀석이 인터넷 등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더니 전상현 교수님께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우기더라고요. 이미 수술날짜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난감하긴 했지만, 전 교수님이 이 방면에 소문난 명의(名醫)라는 아들 고집에 질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해서 운 좋게도 교수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상현 교수는 비뇨기과 전문의로 국내에 로봇수술이 도입되던 초창기인 2008년 미국 뉴저지 주립암센터에서 관련 연수를 마치고, 울산대학교병원에 로봇수술 도입을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울산지역암센터 센터장과 로봇수술센터 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전 교수는 임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제게 찾아와 먼저 로봇수술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족력도 갖고 계셨구요. 환자 스스로가 정기점진을 성실하게 해온 덕분에 초기에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수술도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빠르게 평소생활로 복귀하실 수 있었습니다.”
전 교수가 임씨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전립선과 관련한 신체의 기능적인 면을 고려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전립선은 좁은 골반뼈 사이, 방광 밑에 숨어있기 때문에 수술이 가장 어려운 부위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전립선 수술이 어려운 것은 골반 깊숙이 위치한 해부학적 구조에 전립선에 가깝게 혈관과 신경 괄약근 등이 몰려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수술 후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구요. 소변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요실금이나 신경 손상으로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특히 환자의 경우 아직 젊기 때문에 암세포의 확실한 제거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 신경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전립선 수술에 로봇수술을 많이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변 조직을 다치지 않고 좁은 부위에서 수술을 해내기에 로봇수술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로봇수술도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면 전립선암 수술이 첫 번째 수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의료계에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수술비가 800만~1000만원 정도로 부담되는 수준이다.
로봇수술은 의사의 손이 들어가기 어려운 부위에 얇은 막대와 같은 로봇팔을 넣어 수술하는 장비다. 로봇수술 장비의 원형은 1980년대 말, 미 육군과의 계약 하에 前스탠포드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원래는 전쟁터에서 원격으로 부상병의 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로봇수술 기술은 이제 대중화 돼 한국에서도 40곳이 넘는 병원이 사용 중에 있다.
로봇수술 장비는 미국의 인튜이티브서지컬(Intuitive Surgical Ltd,.)이라는 회사가 특허를 가지고 전 세계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제품명인 다빈치(da Vinci System)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수술은 환자가 수술대에 누워있으면 입체 조직을 잡거나 자를 수 있는 로봇팔(엔도리스트) 3개와 조명과 촬영을 담당하는 로봇팔 1개가 필요한 최소한의 절개를 거쳐 환자 몸에 들어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집도의는 좀 떨어진 공간에 마련된 조종석(콘솔)에 앉아 카메라가 전해주는 고화질의 입체영상을 보며 로봇을 조종해 수술을 집도한다. 전 교수는 로봇수술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존의 복강경수술에 비해 시야나 기구의 자유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영상의 시야가 확대되어서 환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로봇팔의 움직임이 사람의 손과 같이 움직여 미세 수술에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로봇수술이 만능은 아닙니다만 특히 전립선암 수술에 있어서는 장점이 있습니다.”
로봇수술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절개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회복이 빠르다는 점이다. 이런 혜택은 임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작년 6월 4일 수술을 받고,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직장에 복귀한 것이 6월 22일이었으니, 보름 만에 일을 시작한 셈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프진 않았어요. 흉터도 구멍 몇 개가 있었던 흔적 정도였고요. 직장에 빨리 복귀하니 동료들이 놀라더라고요. 수술 전 몸 상태로 돌아가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8월에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임군식씨는 조기에 발견한 덕분에 방사선 치료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말끔히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전립선암은 마음 놓을 수 없는 위험한 병이라고 전 교수는 경고한다.
“전립선암은 비교적 암세포의 성장이 느린 편입니다만, 미국의 경우 유병률 1위 암으로 꼽히고 있고, 한국에서도 남성의 5대 암에 포함될 정도로 발병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전립선암의 원인으로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하는 것이 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립선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 혈액검사를 통한 PSA 수치 측정이 꼽힌다. 혈액 채취만으로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내시경이나 CT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다른 암종에 비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전립선 비대증이나 염증으로도 이 수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확진은 조직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간혹 조직검사 과정에서 암세포를 발견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발견된 임군식씨는 운이 좋은 사례라고 전 교수는 설명했다.
전 교수는 “전립선암은 전이가 된 경우 다른 암처럼 화학적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고환 절제까지 했어야 했으나 현재는 화학적 거세를 많이 시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기부전, 성욕감퇴, 골밀도 저하로 인한 골절, 근육량 감소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남성으로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죠. 때문에 꼭 정기적인 검사를 받으시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 군 시절부터한의사 생활을 했으니 어느덧 30년을 바라본다. 이재동(李栽東·54)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인체의 생체리듬과 자연치유력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헛발질을 줄일 수 있는 한방의 철학은 음양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한다. 새해의 시작,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한방의학의 비결을 알아보자.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시니어들의 새해 건강을 위한 한방학적 고찰에 관해 물었더니 의 기본 정신에 대한 설명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한의학 서적이란 게 수천 권이 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한의학 하는 사람이나 대체의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에 열광합니다. 에는 몸이 건강하면 병은 스스로 치유된다는 정신이 있어요. 그래서 몸이 건강해지기 위한 양생법을 추구하죠. 양생이라면 도 닦는 사람이나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 저는 이걸 임상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 기본 정신은 사람의 몸이 하나의 소우주라는 것에 기초한다. 따라서 자연의 이치에 잘 따르고 순응하면 몸이 건강해진다고 설명한다.
“만물이 소생하고 형성되는 이치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예를 들어 하늘의 태양이 지구를 비추잖아요. 햇빛은 양기죠. 그렇게 양기가 비추면 지구의 음기인 물이 위로 올라가서 비가 되어 내려오잖아요. 태양의 불과 지구의 물의 조화인 겁니다. 이 순환 속에서 생물들이 자라나는 거예요. 그것을 음양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은 우주, 음양의 조화가 중요
이 교수는 우리 몸을 잘 들여다보면 바로 심장이 태양의 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반면 비뇨생식기는 물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 원리를 알고서 자기 몸이 조화를 이루게끔 노력해야 건강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수승(水昇), 물은 올라가고 화강(火降), 화는 내려가는 수승화강(水昇火降)만 잘되면 우리 몸이 스스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데, 현대인들은 삶 자체가 수승화강을 깨뜨리게 되어 있어요.”
이 교수는 어두워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게 자연에 순응하는 법인데 현대인들은 밤낮이 바뀌어 있다는 걸 지적했다. 현대의학적으로도 호르몬 생성에 중요한 시간이 밤 10시부터 아침 5시라고 한다. 건강하고 싶다면 그 시간을 필수 수면시간으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밤 10시에 맞춰서 잠을 자는 현대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호르몬은 물입니다. 밤에 잠을 자야 음의 기운을 몸에 저장할 수가 있어요. 밤에 잠을 안 자면 그 음의 기운을 소모하게 되고 물이 말라서 음양의 균형이 깨져요. 물이 올라와서 불을 꺼줘야 하는데, 불을 못 꺼주니 기운이 위로 뜹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머리에서 생기게 돼요. 현대인들은 분노조절장애가 많이 있죠. 몸이 안정되고 불을 꺼주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밤에 잠을 못 자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TV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우리 몸의 진액을 말리는 거예요. 충혈도 그렇고 뒷골이 당기고 얼굴에 상열감이 있고 고혈압이 발생하는 등의 현상들이 다 거기서부터 오는 겁니다.”
점차 말라가는 우리 몸의 음기를 유지해야
이 교수는 나이가 들어서 만들어지는 체형을 보면 대부분이 가분수라는 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체는 가늘고 위는 비대한 체형이 된다. 이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몸에 물이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자꾸 진액을 말렸기 때문에,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팔은 굵어지고 어깨는 두꺼워지고. 살면서 그런 원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지혜가 있으니 원리를 알면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이 교수는 생활과 노력으로 음양의 균형이 깨지는 걸 보완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키와 체중에 대해 얘기를 하지, 체지방을 구분해서 얘기를 안 해요. 우리 몸의 지방이라는 것은 일종의 독소죠. 독소가 꽉 차 있으면 기가 위로 올라가지 못해요. 에너지가 올라오는 길이 경락입니다. 지방이 몸에 쌓이게 되면 그 길에 문제가 생겨요. 그러니 음양의 조화를 위해 지방을 빼야 합니다.”
탄수화물 대신 단백질
이 교수는 지방을 돈으로 비유한다. 예를 들어 키와 근육의 양을 봤을 때 필요한 지방을 남겨놓고 넘치는 분량이 12㎏이라면 그 사람은 은행에 12억 원을 넣어놓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평소에 ‘현금’을 많이 보충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산이 쌓였다고 표현하는 이 교수는 그 ‘현금’의 정체가 바로 ‘탄수화물’이라고 밝혔다.
“현금인 탄수화물을 줄여야 합니다. 그럼 탄수화물 대신에 뭘 먹어야 할까요. 노후에 하는 대표적인 경제적 대비로 건물을 만드는 게 있죠? 그러한 부동산이 바로 단백질입니다. 나이가 들면 단백질을 주로 먹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나이 쉰 살만 넘어가면 무조건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먹으라고 해요. 왜냐하면 쉰 살까지는 현금, 그러니까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공급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은행에 매월 500만 원씩 넣다가 차단하면, 금융적으로 대처하는 데 혼선이 생길 수 있다. 이걸 몸의 관점으로 봤을 때, 탄수화물을 끊고 단백질 섭취에 전념하면 당장은 현기증, 어지럼증 등의 신호가 올 수 있다. 이 교수는 그러니 우선은 급하지 않게 조금씩 탄수화물을 끊고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단백질에도 일정 분량의 탄수화물이 있기 때문에 단백질만 먹어도 몸에 쟁여둔 탄수화물에 비춰보면 필요한 탄수화물의 유지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지방 분해를 위해 활용하는 약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그는 약을 심부름꾼이라고 불렀다. 심부름꾼은 은행에서 돈을 효율적으로 찾아오는 역할, 즉 지방대사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끔 설계된 것이다.
지방이 만병의 근원이 되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배에 지방이 쌓인다는 것은 종합적인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척추를 받쳐주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지방이 빠져야 근육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데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가 탁해지고 녹슬어 중풍, 심장병 등의 위험도 높아진다.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은 깨끗한 피가 혈관을 돌면서 영양을 공급해주고 더러운 요소들은 운반해 소변으로 걸러준다. 그런데 지방이 있으면 그 피가 탁해진다. 그렇게 되면 면역 기제들이 자기 피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고 여겨 공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건강해지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 변화를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릎이 아프다고 무조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연골을 제거하는 그런 식의 해결은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치료라고 봐요.”
과거엔 발암의 첫 번째 원인이 흡연이었다. 최근 그걸 뒤집은 게 비만이라고 한다. 지방이 껴 있으면 순환이 안 되고 순환이 안 되면 혈액이 탁해지는데, 혈액이 탁해지면 의혈이라는 암세포의 식량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음양의 조화를 통한 건강, 생활속에서 만들어야
이 교수는 음양의 기운을 다스려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다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충분한 잠이다.
“현대인들은 밤 10시가 어렵다면 최소한 11시에는 자야 합니다. 그렇게 습관을 바꿔 문제를 예방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커피와 녹차를 자제해야 합니다. 잠을 심하게 못 자는 사람은 아침 10시 이후에는 아예 커피와 녹차를 마시지 말아야 해요.”
두 번째는 되도록 많은 물을 섭취하는 것이다.
“물은 사라진 음기를 보완할 수 있는 음의 에너지입니다. 물은 하루에 2ℓ를 마시는 게 좋습니다. 물을 마실 때는 입을 적시듯 마셔야 해요. 사람들이 물을 못 먹는 이유가 대부분 흡수가 안 돼서입니다. 입에 적시듯 먹으면 괜찮아요. 우리 몸은 70%가 수분으로 이뤄진 일종의 물통입니다. 물통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깨끗한 물을 넣어주는 것이죠.”
세 번째는 음식을 구분해 먹는 것이다.
“예순 살이 넘어가면 탄수화물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과일도 간식으로라도 먹는 게 아닙니다. 과일도 탄수화물 덩어리거든요. 절제해야 해요.”
네 번째는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가면 상체 운동은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안 하는 게 좋아요. 대신 무조건 하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계단 오르기 같은 생활 속의 운동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걷기는 하체 운동이 아니라 유산소 운동이에요. 하체 근력 운동을 하면 유산소 운동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저는 계단을 만나면 정말 반갑고 고마워요.”
이 교수는 얼핏 보기에는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이는 질환들이 실은 하나의 원인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병에 맞춰 각각 해당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반복적인 시술만 받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치유하자는 이 교수의 제안이 살갑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같이 뜨거웠던 여름이 휙 지나가 버렸다. 눈 한 번 껌뻑하니 벌써 한 해를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광속으로 지나간다는 ‘나이와 시간의 상대성 이론’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
비뇨기과는 계절적으로 약간의 흐름을 타는 질병들이 있다. 낙엽이 떨어지고 날씨가 스산해지면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소변이 자주 마렵고 급해진다고 한다. A여사처럼. 그녀는 자제들을 모두 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내고 1년에 한두 번 자녀들을 만나러 오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찾았다.
“교수님, 말하기 창피한데, 얼마 전에 갑자기 소변이 참을 수 없이 마렵더니 화장실을 가는 길에 벌써 쪼금 나와 버렸어요. 검은 바지에 외투를 입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런데 너무 당황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제가 일 년에 몇 개월을 외국에 있거든요. 최근에 폐경하면서 몸도 여기저기 안 좋아지더니 이젠 방광도 말썽이네요. 밤에도 소변 때문에 몇 번을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제가 좀 예민한 편이긴 한데,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교수님, 저는 방광염이죠? 다음 달에 미국에 또 나가야 하는데, 약을 미리 타서 갈 수 있을까요?”
A여사의 문제를 정리해보면, ‘소변을 자주 본다. 소변이 갑자기 급해지면서 참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엔 소변을 지리기도 한다. 밤에도 소변을 자주 본다. 폐경하면서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런데 부인의 소변 검사는 아주 정상이었고, 3일 동안 소변을 보는 시간과 양을 적어서 가져오게 했더니 1시간마다 한 번, 소량의 소변만 보는데, 매번 소변이 아주 급하게 마려워서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A여사는 아주 전형적인 ‘과민성방광’이라고 할 수 있다.
과민성방광이란 아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방광이 너무 예민해져서 방광에서 소변을 저장하는 동안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방광 근육이 수축하여 급하게 요의를 느끼게 하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을 말한다. 과민성방광은 소변을 하루 8회 이상 자주 보는 ‘빈뇨’, 밤에 소변을 보기 위해 2회 이상 일어나는 ‘야간 빈뇨’, 소변이 마려우면 참지 못하는 ‘절박뇨’,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끼면서 소변이 새는 ‘절박성 요실금’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흔히 의학적 지식이 없으면 방광염과 과민성방광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데, 제일 큰 차이는 방광염은 소변이 ‘세균에 감염된 것’이고, 항생제로 치료해야 하지만, 과민성방광은 ‘소변은 깨끗하지만 방광의 조절 기능이 문제가 생긴 것’이라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이 고장 나 당뇨가 생기면 당뇨 약을 먹어 조절해야 하는 것처럼, 과민성방광은 스스로 조절되지 않는 방광을 약을 먹어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 기복이 있는 경우에는 방광에 직접 작용하는 약물 치료를 하기보다 우선 부담이 덜한 치료를 시작해 볼 수도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우선 생활 습관을 바꾸어 본다.
하루에 2리터, 3리터씩 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는 경우에는 우선 물 섭취량을 줄인다. 들어가는 게 많으면 나오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너무 물을 적게 마시면 오히려 방광염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적당량을 섭취하는 게 좋다.
변비가 있다면 변비도 치료하여야 한다. 대변이 차 있다가 나오게 되는 통로인 대장과 방광은 서로 같은 신경 줄기에서 가지가 분포되어 조절을 받기 때문에 변으로 대장이 늘어나 있으면 방광에도 자극을 준다. 또한 변이 차 있는 대장의 부피 때문에도 방광이 자꾸 눌리니까 소변이 더 자주 마렵고 시원하지가 않다.
그리고 방광 훈련을 한다. 방광 훈련은 일정한 간격으로 소변을 보도록 스스로 배뇨 패턴을 기록하면서 조금씩 참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2 시간마다 자꾸 소변을 본다면 소변이 마려울 때 바로 가지 말고 15분을 참아 보고, 그게 성공하면 30분, 1시간 하는 식으로 수일~1주일 정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방광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보통 병원에 오게 되면 이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일상생활에 상당히 지장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과민성방광의 가장 흔한 치료는 약을 먹는 것이다. 방광의 수축력을 조절하고 소변을 잘 참을 수 있도록 고안된 다양한 종류의 약이 있고, 약효는 2~4주 이내에 나타나지만 최소 3~6개월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과민성방광은 나이가 들면 더 잘 생기기 때문에 소변을 자주 본다고 그저 나이 들면서 생기는 변화라고 넘겨 버리면 곤란하다. 소변을 정상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자주 볼수록 방광은 오히려 세균감염이 되기 더 쉬워지고 몸은 더 피곤해지기 때문에 건강 상태에도 영향을 준다. 더욱이, 요즘 연구 결과로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복부비만 등이 복합되어 있는 대사 증후군 환자들은 방광에 문제가 생길 위험도가 더 높기 때문에 평소 자신의 방광 건강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럼 소변은 얼마나 봐야 정상인 걸까?
정상 성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소변을 보고자 느끼는 방광의 용적은 300cc 내외이다. 한 번에 이 정도의 양을 하루 4~6번 정도 본다. 즉, 3~4시간마다 한 번 보는 정도가 정상이다. 자기 전에 소변을 보면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안 보는 것이 정상이다. 이 범위를 심하게 벗어나고 있다면 비뇨기과를 찾아가 봐야 한다.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 사실, 이젠 곧 겨울이라고 봐야 할 테지만.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보통은 ‘아, 천고마비의 계절이구나. 가을이 되었으니 책 좀 읽어 볼까’ 하는데, 비뇨기과에선 가을을 맞는 기분이 좀 더 다르다. 환절기에 감기에 걸려 복용한 항히스타민제 부작용으로 갑자기 소변을 못 봐 응급실로 오시는 전립선 비대 어르신들도 늘어날 테고, 날이 추워지니 소변을 더 자주 봐서 곤란하다는 환자들도 많아질 테다.
각설하고, 인생을 사계절로 놓고 보았을 때, 5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가을로 접어들어 서서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기 아닐까. 인생의 가을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인간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징 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반대의 예로 여성이 이 시기에 들어서면 갱년기에 접어들어 점차 떨어지는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신체 여기저기 갖은 변화가 생긴다. 피부의 탄력도 떨어지고, 우울하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잠도 잘 못 자기도 한다. 더욱이 갑자기 확 덥고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 홍조, 열감뿐만 아니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까지 한다. 여자 입장에선 이런 변화들이 당황스러울 뿐 아니라 귀찮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 시기의 사모님들은 여러 면에서 살기가 버겁다. 그럼 남자는 어떠한가?
남자 역시 갱년기가 있다. 여성의 갱년기는 난소에서 여성호르몬의 생성이 줄어들면서 생기지만, 남성은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의 생성이 감소하면서 생긴다. 남성의 몸에서 남성호르몬의 분비는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사춘기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대부터는 감퇴가 시작되어 40대 후반~50대에 갱년기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남성이 이 시기에 갱년기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의 생활습관, 기초적인 신체 상태,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대응 상태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남성 갱년기를 빨리 오게 하기도 하고, 더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아무 변화 없이 지내게 하기도 한다. 그럼 남자는 여자들처럼 달마다 생리를 하는 것도 없는데, 남성 호르몬이 감퇴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병원에서 호르몬 수치를 검사해서 정상 범위보다 낮아져 있다면 당연히 진단할 수 있겠지만, 평상시의 증상으로도 충분히 대략적인 진단은 할 수 있다.
남성갱년기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설문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10개의 문항 중 세 개 이상 해당된다면 남성갱년기를 의심해야 하는데, 특징적으로 다른 문항과는 상관없이 ‘성적 흥미가 감소했다’ 또는 ‘발기의 강도가 떨어졌다’ 이 두 가지 문항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남성갱년기라고 본다. 남성의 성적인 능력이 바로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열 개의 증상 외에도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불면증이 생기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것, 또는 우울한 심리 상태 등도 남성 갱년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여자는 나이가 들면 점점 남성스러워지고 남자는 나이가 들면 점점 여성스러워져서 소심하고 잘 삐치는 남편이 괄괄하고 목소리 큰 부인을 모시고 산다는 얘기들이 나오나 보다.
그럼, 과연 남성갱년기는 치료를 해야 하는 걸까?
대답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치료해야 한다. 남성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가 단순히 발기부전, 성욕 감퇴 같은 비뇨기과적인 문제뿐 아니라 뇌기능, 인지기능, 운동능력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부족한 남성 호르몬은 남성의 골다공증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보충 치료는 전립선암, 전립선 비대증의 위험도는 더 높아질 수 있고, 혈전 생성 같은 혈관계 질환의 위험도 높아질 수 있으므로 사전에 면밀한 혈액 검사, 전립선 검사 등을 통해 위험도를 확인한 후 안전한 범위 안에서 진행하며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남성 발기부전 환자들은 발기능력의 회복에만 관심을 가질 뿐 남성호르몬이 낮아진 것에는 무관심한데, 사실 남성호르몬이 정상보다 떨어져 있는 경우 비아그라 같은 먹는 발기유발제는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상적으로는 남성호르몬 보충치료도 하면서 발기부전치료제를 같이 복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요즘에는 먹는 약, 바르는 약, 붙이는 약, 주사 등 다양한 남성호르몬 제제가 나와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남성 갱년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고 치료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인생의 계절에서 더욱 멋진 가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음악 중에는 미국 팝송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그리고 라틴음악도 있었다. 필자가 샹송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9월쯤이었나,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로 근무하시던 선친과 명동 국립극장(현 예술극장)에서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의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혼’, ‘미라보 다리’ 등을 불렀다. 특히 ‘포르투갈의 빨래하는 여인’이라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노래가 상당히 감미로웠다는 느낌 외에 샹송에 대한 별다른 매력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전에 이미 샹송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6·25 전에 집에 있던 유성기 판 중 일본 여가수가 일본말로 불렀던 노래가 사실은 다미아라는 샹송가수가 부른 ‘그렇게 남의 속도 모르고(Tu Ne Sais Pas Aimer)’라는 샹송이었던 것이다. 다미아는 ‘우울한 일요일(Sombre Dimanche)’로도 유명한데, 10여 년 전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노래는 본래 헝가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 노래 때문에 자살자가 많아 헝가리에서는 금지한 것을 다미아가 프랑스어로 부른 것이다. 그 후 미국의 재즈가수 빌리 할리데이가 영어로도 불러,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노래를 듣고 도쿄에서만 20만 명 이상이 자살했다고 한다.
1963년, 해외에 다녀오신 선친이 LP를 몇 장 사오셨다. 당시는 외화가 무척 귀할 때라 한번에 10장 이상은 반입이 불가능했고, 그것도 시중에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표지에 일일이 서명을 하도록 했었다. 그 대부분은 클래식이었으나 그중 한 장이 Holiday in France라는 판이었다. 이 판에 있는 파리의 하늘밑, 고엽, 파리의 아가씨, 아이 러브 파리, 파리의 다리 밑, 매혹의 왈츠, 바다 등은 나중에는 자주 듣다보니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황홀하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샹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당시 국내에는 샹송 판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이것이 샹송이다’라는 판을 구했고, 거기서 앞에 소개한 이베트 지로, 질베르 베코 등의 노래와 특히 이브 몽땅의 고엽(Les Feuilles Mortes/Autumn Leaves)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판은 고교 동창인 박명도 군이 특히 좋아해서 그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거의 이 판을 들었다. 그리고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이진섭씨가 쓴 샹송을 주제로 한 라디오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통해서 당대 최고의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일생, 비참했던 어린 시절과 6년 연하의 이브 몽땅을 발굴해서 일류가수, 배우로 성장시켰으나 시몬 시뇨레에게 빼앗긴 사연, 그녀의 노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과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의상은 물론,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스카프와 스타킹조차 살 수 없었고 세탁도 자주 할 형편이 못 되어 목이 긴 검정 스웨터와 검정 바지를 입고,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했던 줄리엣 그레꼬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가수로 크게 성공하자 그녀의 의상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는 이야기와 그녀의 노래, 고엽과 빨간 풍차(Moulin Rouge)도 이 드라마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샹송과 친해지면서 파리를 여행할 때면 어떻게 하든 틈을 내어 몽마르뜨르 언덕에 올라가 거리 화가들을 한 번 둘러본 후 집사람이 기념품가게를 구경 다니는 동안 그 옆에 있는 카페에서 옛 샹송들을 들으며 생맥주를 몇 잔 마신다. 그 후 날이 어둑해지면 언덕 아래에 있는 물랭 루즈에 입장하여 아직도 복도에 걸려 있는 로트렉의 포스터들을 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식전(食前) 연주를 들으며 기분이 나면 춤도 몇 곡 춘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프렌치 캉캉으로 끝나는 유명한 물랭 루즈쇼를 보면서 저녁을 먹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절차가 되었다.
일제 때 선친은 제1고보, 이진섭씨는 제2고보로 학교는 달랐으나 같은 학년으로서 고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 댁에서 5년간 같은 방에서 하숙을 해, 친형제 이상 친했다고 한다. 그리고 옆방에는 얼마간인지 모르지만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하숙을 했다고 한다. 이진섭씨는 작가이자 기자, 아나운서, PD를 겸직하셨고 샹송에도 정통하셨다.
필자가 학교 다닐 때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이진섭씨의 번역으로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였다. 그분은 술에 취해서 명동파출소 앞을 지나갈 때면 순경을 향해 소변을 보셨다고 한다. 순경이 미워서가 아니라 자유당 독재정권에 대한 힘없는 문화인의 상징적인 항거였던 것이다.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술을 드셨고 필자도 혜화동인가에 있던 그분 댁에 심부름을 자주 가서 친아저씨처럼 지냈다. 선친은 워낙 예술과 친구, 그리고 술을 좋아해 환도 후 명동에서 조그만 무역상을 할 때 돈이 좀 생기면 집보다는 친구들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다. 당시 어울리던 분들로는 이진섭씨 외에 박용구씨, 박인환씨, 송지영씨, 심연섭씨, 이봉구씨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 가운데 올해 101세인 박용구씨 외에는 이미 모두 고인이 되셨다.
1956년 3월, 선친은 당신의 중학교 후배가 되어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는 장남이 자랑스러워 명동에 있던 은성주점에 필자를 데리고 가셔서 친구들에게 마냥 자랑을 하셨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던 박인환씨가 냅킨에 시를 쓰셨고 그 옆에 계시던 이진섭씨가 역시 냅킨에 작곡을 하셨는데 그 노래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다. 그 자리에 나애심씨가 있어 노래를 불렀다고 하지만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박인희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어떤 병에 대해서 민간 속설이 많기도 하다. 비뇨기과에서 대표적인 예는 소변발(소변 줄기의 세기)과 정력에 관한 속설인데, ‘뭐, 나는 젊었을 땐 저기 5미터 앞에 있는 자갈돌도 맞혀서 튕겨냈지…. 그러니 밤일은 말할 것도 없지 뭐야. 허허.’ ‘술이 좀 취하면 친구들이랑 전봇대 맞히기 놀이를 했는데, 내가 쏴댔더니 거기 금이 가더라고.’ 등등. 소변 줄기가 센 것이 마치 정력이 좋은 것인 양 은근히 자랑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이런 말들이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 일단,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뭐 그런 답이 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남성은 남성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할 성호르몬인 남성 호르몬 때문에 일생에 걸쳐 다양한 건강상의 변화를 겪는다. 특히 이 남성 호르몬은 성적인 기능도 조절하고, 전립선이라고 하는 정액의 성분 일부를 만들어 내 정액에 포함된 면역 성분, 항염 성분의 중요한 소스가 될 뿐 아니라, 성적 흥분 상태에서 사정이 되기 전에 나오는 소량의 분비물의 형성에도 관련 있는 중요한 기관이다. 사실 남성호르몬-전립선-고환은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중 남성호르몬은 안타깝게도 평생 쭉 적당한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남성들이 온몸으로 경험했듯) 사춘기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감소하게 된다.
신기한 것이 같은 나이의 모든 남성들이 같은 수치의 남성 호르몬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요즘 유행하는 키 크고 야리야리하며 예쁘장하게 생긴 유형의 남성들은 정상치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남성 호르몬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삼국지의 장비 같은 유형의 덩치가 크고, 키는 크지 않지만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들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을 가능성이 높다. 남성호르몬이 높으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지만, 40대 넘어서 생기는 제일 번거로운 문제인 전립선 비대증의 발생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전립선 비대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전립선 비대에 걸리면 소변 줄기도 약해지고 시원하게 볼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생기는 문제가 성생활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립선의 위치가 소변을 담고 있는 방광과 소변이 나가는 통로인 요도 사이에, 마치 우리 목구멍에서 아래로 식도와 기도로 연결되는 곳에 편도선이 생기는 것처럼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립선 비대가 생기면 통로가 일부 좁아져 소변을 보거나 참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사정을 할 때 정액이 분출되는 상황도 많은 저항을 받아 전처럼 시원하게 사정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엎친 데 덮친다고 소변도 잘 나오지 않고, 사정할 때도 시원하지 않은 증상에다 아이러니하게도 40대부터는 급격한 남성호르몬의 감소로 성욕도 떨어지고 발기도 잘 안 되는 다양한 성적 문제가 나타나니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상황이 돼 버린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전립선비대증 환자들의 성생활을 조사해본 연구에서는 소변을 보는 문제도 괴롭지만, 성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더불어 파트너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보고됐는데,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소변 줄기 = 정력’ 이라고 직접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소변의 문제가 생김 = 성생활에도 영향을 줌’의 관계는 성립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잘 알려진 발기부전 치료제인 PDE5 억제제(상품명으로는 비아그라, 시알리스, 88정, 해피그라, 엠빅스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국내에서 처방되고 있다)가 전립선부 요도의 긴장을 풀어주고, 저용량 매일 요법이 발기부전의 예방, 치료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의 치료 경향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 저용량의 발기부전 치료제’를 매일 복용하는 식으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차츰 많아지고 있다.
남성호르몬 보충 치료는 어떨까? 전립선 비대 치료를 위해서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해야 하고, 발기부전이나 조루 같은 성기능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남성호르몬을 올려줘야 한다. 따라서 전립선비대와 발기부전 예방 혹은 치료를 위해서 남성호르몬을 억제하거나 보충하는 것은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 도대체 ‘나는 전립선 문제로 치료받아야 할 상황인지, 지금 내 남성호르몬은 정상적인 수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아래의 사항이 자신에게 해당되는지 찾아보자. 한 개 이상에 해당되면 비뇨기과 상담을 한번 받아볼 것을 권한다.
특히,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복부비만(허리둘레 90cm 이상), 의학적 비만 (체질량지수 25kg/m2 이상) 중 세 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하는데, 대사중후군이 있을 경우 전립선이나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문제는 더 잘 생기고 향후 악화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해야 하므로 전문의의 상담을 반드시 받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