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옥 수필가의 호는 효재(效在)다. 효재란 ‘누군가 본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라는 뜻이다. 자신은 아직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해서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녀는 교사였다. 그러나 마흔여덟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교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 그 아픔을 딛고 수필가로 새로운 인생을 연 그녀의 삶을 한 편의 담담한 수필을 읽듯 들어보았다.
문장옥 수필가가 마흔여덟 살에 교직을 내려놓게 된 것은 그즈음 두 아들이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탓이 아닐까 싶어 지난 삶이 후회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독립해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상 그만두고 나니 교직에 대한 아쉬움이 컸고, 내 인생의 후반기를 어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엄습했습니다.”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수필 쓰기였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작가라는 호칭을 갖고 보니, 독자에게 감동을 줄 만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내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자신을 설득한 다음부터는 수필가로서의 생활에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제2의 인생이 마침내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몸짓으로 써내려가는 새로운 인생
수필가로서 문장옥은 두 권의 수필집을 냈다. 첫 번째가 ‘행복정원에 들다’, 두 번째가 ‘내 안에 불꽃’이다. 그녀는 지난 8월에 낸 ‘내 안에 불꽃’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진심 어리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세이란 문학의 특징은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작가의 진솔한 삶이 그대로 녹아내려 인품의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저의 아픔과 회한, 그리고 부끄러운 모습까지 솔직히 드러내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자 했고, 작은 위안과 교훈이라도 함께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독자에게 죽음과 맞닿게 되더라도 삶의 열정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의 이유도 보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잘것없는 작품일지 모르지만 제가 작가로 살아가도록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열정을 잃지 않고 온몸으로 쓰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문 작가의 말처럼 ‘내 안에 불꽃’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본인의 암 수술 경험까지, 그녀의 삶에서 죽음은 잔인하게 왔다 사라졌다 다시금 나타나는 실제적 위협이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죽음 자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을 보내면서, 저 자신이 네 번의 큰 수술을 하면서 삶의 옆에는 죽음이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웰다잉이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을 때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에 가까운 체험은 자연스레 인생에 대한 담담한 관조를 갖게 했다. 그럼에도 인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나이가 칠십이나 되었는데도 인생이란 단어를 논하는 것은 자신이 없어요. 아직도 어린애 같은 천진함과 호기심이 남아 있어, 남편에게 가끔 핀잔을 듣곤 합니다. 저는 ‘이 나이에 뭘 한다고?’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열정을 잃지 않고 무엇이든 도전해보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신세는 면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참다운 나
자신의 말처럼 문 작가는 지금의 삶을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담담한 수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전으로서의 작가 인생은 생활적인 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자신의 서재에 이름을 붙였다. ‘진아당’으로 ‘참 내가 있는 집’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참다운 나’란 어떤 사람일까.
“자신에게 정직하고 거짓이 없으며, 진실하고 참되며,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삶의 근원이자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요?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인생관을 보여준 ‘서시’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처럼 저 역시 그런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녀는 삶이 좋은 수필의 재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날이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도움이 되고, 작으나마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소박하지만 감동 있는 삶이 될 때, 그것이 글이 되었을 때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삶은 어떤 사람들의 삶에 남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녀가 교사 생활을 하던 시절의 두 제자가 바로 그들이다.
“한 사람은 제가 초등학교 교사 시절 1학년 학생으로 만난 제자인데, 지금은 서울의 모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있습니다. 제가 은퇴한 후 20년 넘도록 스승의 날은 물론 가끔씩 저를 찾아와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떠는 친구 같은 제자예요. 또 한 사람은 제가 중등교사 시절에 만난 문제 학생이었는데, 이젠 어엿하고 반듯한 건축회사 중견 간부가 되었습니다. 헤어진 후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렵게 나를 찾아내 보은하는 고맙고도 잊을 수 없는 제자들이랍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알게 해준 귀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남편은 행복을 공유하는 소중한 존재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것으로 ‘자유로운 삶’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 엄격한 법칙에 속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속박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주부로서 가족에게 봉사해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사랑을 품은 가운데 능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는 오래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누구보다 잉꼬부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해요. 가급적 서로 간섭을 줄이고, 한밤중 잠이 깨면 언제든지 일어나 독서와 글쓰기, 사색을 즐기며 살아가니,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처럼 그녀에게 남편은 행복을 공유하는 소중한 상대다. 노후의 행복을 꼽을 때 그녀는 무엇보다 먼저 남편을 떠올릴 정도였다.
“자녀들이 독립해 집을 떠난 지금은 남편과 한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동네 공원을 매일 저녁 한두 시간씩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매월 한 번씩 함께 여행을 갑니다. 젊은 시절에 누렸던 낭만적인 느낌은 약해지긴 했지만, 이젠 서로가 익숙한 처지라 같이하는 시간이 편안해요.”
남은 여생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베풀 것
문 작가는 회갑이 된 기념으로 첫 번째 수필집 ‘행복정원에 들다’를 냈고, 칠순 기념으로 두 번째 수필집 ‘내 안에 불꽃’을 냈다.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쓰면 쓸수록 걷고 있는 이 길이 결코 쉽지 않은 여로임을 절감한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다.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아쉬움이며 동시에 다시 펜을 잡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만약 세 번째 책을 낸다면, 남은 여생 동안 더 많이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도전하고, 독서와 글쓰기에도 게으르지 않음으로써 푸근한 감동으로 다가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문장옥이라는 수필가 안에 숨길 수 없는 벅찬 감흥이 밀려 왔다. 그녀의 진솔한 민낯이 사랑스럽다.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무겁게 다가온다. 특히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는 유가족에게도 더욱 고통스러움을 남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바이러스만큼 긴급하게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로 ‘노인 자살’을 꼽는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 자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6.6명으로 OECD 37개국 중 1위다.
노인 자살, 원인은?
노인은 질병 만성화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우울감과 무력감을 겪는다. 이러다 보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찰청 변사자료 자살 통계에 따르면 61세 이상의 자살 동기는 육체적 질병 문제가 41.6%로 가장 높았다. 정신과 문제가 29.4%로 뒤를 이었다. 생활고는 11.9%, 가정 문제는 6.9%였다.
육체적 질병 문제로 인한 자살 비율은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수치를 나타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셈이다.
노인들이 보내는 경고 신호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자살 사망자 566명의 유족 683명을 심층 면담한 ‘심리 부검’을 진행했다.
심리 부검은 유족의 진술이나 관련 기록을 분석해 자살 사망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패턴을 보였는지 살펴보고 자살 원인을 추정하는 과정이다.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경찰 등을 통해 심리 부검 의뢰를 접수했거나 면담을 신청한 유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결과를 살펴보면 자살자 566명 중 529명인 93.5%는 사망 전 주변에 언어·행동·정서적 경고 신호를 보냈다. 죄책감이나 무력감 같은 감정 변화와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많이 자는 식의 변화를 보였다.
노인들은 연령에 따라 조금씩 경고 신호가 달랐다. 50~64세는 갑자기 식사량 변화로 급격한 체중 변화가 나타났고, 65세 이상은 아끼던 물건을 주변에 나눠줬다.
사망 3개월 이내 더 심해지는 경고 신호, 주변의 관심이 중요
이러한 경고 신호는 대부분 사망 3개월 이내, 사망 시점에 가까워졌을 때 빈도가 잦아졌다. 자살 사망자 10명 중 9명인 91.2%는 사망 3개월 전에 주변을 정리했다. 사망 1주 전에 이러한 경고 신호를 보낸 경우도 절반에 가까운 47.8%였다. 하지만 이런 경고 신호가 나타났는데도 119명인 22.5%만이 주변에서 인지했다. 또 35.2%는 사망 전 이미 한 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이르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들은 한 번의 자살 시도로도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많아 더 주의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당 노인과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같은 주변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
삶이 고독했다고 그 죽음마저 고독해서는 안 된다. 생의 마지막인 죽음이 외롭거나 고통스럽기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잘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인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와 나라, 이런 기본을 탄탄하게 갖추는 것이 경제력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지 않을까.
삶과 죽음이 한끝 차이이듯 ‘웰다잉’을 위해서는 ‘웰빙’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니어의 웰빙은 대부분 거처가 좌우한다. 노후에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고, 어디에 머무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 또는 병원, 두 가지 선택지가 전부였지만,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는 ‘웰엔딩’에 관심이 늘면서 ‘실버타운’이 제3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실버타운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시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엔 10여 년, 길어야 20년 정도로 여겨지던 노후의 정의가 30~40년 가까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몸담은 시간보다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질 좋은 서비스와 시설로 눈을 돌리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30여 년간 ‘열일’ 한 대가로 얻은 경제력이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심리다.
실버타운은 이 같은 액티브 시니어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며 최근 몇 년간 노후의 또 다른 보금자리로 각광받고 있다. 실버산업 전문가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은 “20여 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다르다. 옛날에는 60대만 돼도 ‘인생 다 살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노후를 편안하고 활기차게 보내려는 시니어가 많다. 또 과거에는 실버타운 입주 보증금이 강남 아파트 한 채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년 사이 보증금은 크게 오르지 않은 반면 집값은 10배 가까이 오르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 실버타운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마디로 오늘날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이들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경제력을 갖췄으며, 노후를 즐길 시간도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 어떤 실버타운에 들어가느냐다. 포털 사이트에서 ‘실버타운’을 검색하면 각종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쏟아져 나와 정확한 정보를 추리기 어렵다. 또 노후가 길어진 만큼 어느 연령대에 입주해야 하는지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적절한 시기에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인주거복지시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노인복지법 제32조에 따르면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을 말하며, 성격에 따라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한다. 양로시설은 크게 무료 및 실비, 유료로 나눌 수 있는데,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서비스 외에 기타 부대시설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유료 양로시설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대개 경제력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운영해 입소자로부터 비용을 전부 수납하며, 그 특성상 여가 시설, 취미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비유하자면 유료 양로시설은 시설이 뛰어난 5성급 호텔,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비용이 합리적인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 가운데 고급형 노인복지주택과 소수의 유료 양로시설을 합한 개념을 통상적으로 실버타운이라 부른다. 즉 실버타운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후 어느 시기에 입주하는 것이 일반적일까. 서울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실버타운 초창기에는 60~65세에 입주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70대 중반에서 80대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가사노동을 할 체력이 되지 않거나 크고 작은 돌봄을 받고 싶을 때 이곳을 찾으신다”라며 “그러나 열에 아홉은 ‘더 일찍 들어올걸’ 하며 후회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동호회나 취미 프로그램, 행사 등을 즐기기에 육체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의 각종 시설을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에 부합하는 연령이 되었을 때 바로 입주하는 것을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TIP] 실버타운 입주 시 고려해야 할 4가지
비용 ▶ 가장 먼저 자신이 충당할 수 있는 입주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고려해야 한다. 입주 보증금은 대개 2억~9억 원, 월 생활비는 100만~200만 원 선이다. 같은 실버타운도 평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니, 싱글이라면 가장 많은 세대를 차지하는 평수를 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위치 ▶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도시형, 근교형, 전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치는 개인의 선호도나 자녀의 거주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만 수도권 내에 있는 실버타운은 땅값에 따라 입주 보증금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병원 ▶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시니어는 대형병원이 가까운 실버타운이 좋다. 또 ‘너싱홈’(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이나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시설)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각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좋다.
여가 ▶노후의 질은 여가가 좌우한다. 후보별로 각 절기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취미 활동, 커뮤니티 센터 등을 알아본 다음 알맞은 곳을 택한다. 단 해당 서비스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관은 있지만 트레이너의 관리가 허술하고, 동호회가 존재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으면 ‘보여주기 식’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의 활성화 정도를 함께 고려한다.
피해 줄었지만 상담 꼼꼼해야
알맞은 실버타운을 골랐다면 다음은 입주 상담이다. 실버타운 입주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충분한 상담으로 머물 곳을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 특히 입주 보증금 반환 방식을 세밀하게 살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입주 보증금 관련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수년 전 일부 실버타운이 분양 저조, 사업비 부족 등의 이유로 입주민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몇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A실버타운은 서비스 불이행, 일방적인 관리비 인상, 보증금 미지급 등 사업자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2017년 시설폐쇄명령을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B실버타운은 2016년 무리하게 사업 분야를 키워나가면서 부도가 발생해 입주민들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사업자가 입주 보증금의 50% 이상을 돌려주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권이나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하는 경우 예외 조항이 적용돼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세권 및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받을 경우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에도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제도에 다각적인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요즘은 시공자나 금융권에서도 사업성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큰 피해 이슈는 없지만, 운영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차원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입주하려는 실버타운이 운영상 문제가 없고 건실한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전문성과 사회적 신용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파악하기 어려울 땐 식사 체험을 하며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종 계약을 할 때는 보증금 반환 보장 방안과 지급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는지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이 위원장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만 강조하는 곳보다 시니어에 대한 직원들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곳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보너스 같아”…공동체서 찾는 활력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입주자들의 실제 후기는 어떨까. 대부분 비용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여성 입주자들은 식사 준비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50여 년 운영하던 약국을 닫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나란히 입주한 조명자(77)·조미자(73)·조경희(65) 자매는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세 자매에게 꿈만 같은 일”이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웃음꽃을 피우다 보면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에 입주한 정태분(78) 씨도 “정성과 영양 가득한 식사와 청소 서비스는 그동안 고생한 인생의 보너스 같아 매일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내 각종 취미 프로그램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3년 간 거주한 배순애(72) 씨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한다. 코스도 다양하고 산책로도 여러 개다. 10년째 취미로 하는 색소폰을 무대에서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이뤄져 심심할 틈이 없다”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임이 잠정 중단됐지만 남편과 주변 관광지를 돌며 나들이 다니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도 공동체 생활에서만 겪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특히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는 시니어에게 실버타운은 또 다른 만남의 장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이성 간 건강한 교류를 맺는 이들도 있고, 사회복지사 직원과 입주자가 서로 엄마, 아들이라 부르며 모자지간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주임교수는 “같은 실버타운에 입주한 시니어는 서로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고 빈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공감대로 친밀도를 쌓기 쉽다”며 “동호회,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관계는 노후의 또 다른 활력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실버타운은 어디?
전국 40여 곳의 실버타운을 직접 방문해본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이 추천한 실버타운을 세 곳을 소개한다. ✽비용은 1인 기준
TYPE A | 액티브한 도시형 ▶ 서울 ‘더클래식500’
‘소셜 리더를 위한 실버 하우스’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최상급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우스 키핑, 퍼스널 컨시어즈, 발레파킹 등 호텔식 서비스와 건국대학교병원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의 및 전담 관리팀이 개인별 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파, 피트니스, 골프연습장, 수영장 등 여가 시설과 각종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입주자 중 은퇴 후에도 강연, 컨설팅 등 도시 내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입주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213만 원(식비 26만 원) 문의 02-2218-6000
TYPE B | 편리한 근교형 ▶ 인천 ‘마리스텔라’
성모요양병원, 인천국제성모병원을 가까이에 끼고 있어 응급 시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단지 내 일반 상가와 푸드 코트 등이 있어 식사의 선택지가 다양하고, 젊은 사람과 어린이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 고립감이 덜하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1층 성당에서 매일 미사가 진행되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근교의 호젓함을 모두 느끼고 싶은 시니어에게 알맞다.
입주 보증금 2억4000만~4억 원 월 생활비 142만~196만 원 문의 032-280-1500
TYPE C | 정다운 전원형 ▶ 김제 ‘부영실버아파트’
전국 실버타운 가운데 보증금이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중가 실버타운 수준의 합리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노인대학과 게이트볼장, 요양병원, 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 있어 주변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식사는 복지관 식당에서 저렴하게 해결 가능하다. 여름에 다 같이 모여 문 열어놓고 비빔밥을 해 먹고,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 등 입주민 간 교류가 잦으며 정겨운 분위기다.
입주 보증금 2000만~4000만 원 월 생활비 없음 문의 063-545-0343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처럼 삶의 마무리가 인생에서 중요하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웰다잉, 즉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71)를 만나 현시대 웰다잉의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실천 방법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원혜영 대표는 은퇴 전 풀무원 창업주, 부천시장, 5선 국회의원 등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그와 관련한 얘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웰다잉’이다. 실제로 마지막 의정 활동을 펼친 20대 국회의원 시절, ‘웰다잉 기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계기로 웰다잉에 관심을 두게 되었을까?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이 굉장히 유명했다. 인공호흡기를 찬 채로 소생이 어려운 고령의 환자를 두고 가족과 의료진 간에 이견이 발생했다. 가족은 사전 할머니의 뜻대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원했고, 의료진은 이를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대법원 재판까지 갔는데, 대법원은 행복추구권과 자기 결정권을 토대로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당시 연명의료 중단은 이렇게 특수한 경우에만 허락됐다.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19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조직해서 관련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2016년에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통과됐다.”
사실 웰다잉은 그가 국회의원 시절에 했던 수많은 의정 활동 중 하나에 불과한데, 인생 2막의 주제를 웰다잉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 터.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물어봤다.
“직접 법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삶에서 무수한 선택이 있듯이 하나의 죽음에도 여러 가지 절차와 수많은 선택이 있다. 장례식장 선정, 화장과 매장 같은 장묘법, 재산 분배, 장기 기증 등과 같이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사전에 잘 결정하면 남은 가족 간의 분쟁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결국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은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로 이어진다. 초고령화로 인한 장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회문화가 바로 웰다잉이라고 생각해, 은퇴 후 봉사활동 차원으로 열심히 웰다잉 문화운동을 하고 있다.”
웰다잉의 본질은 자기 결정권
‘웰빙’은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만큼 건강한 삶에 대한 요구가 큰 터. 반면 ‘웰다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전통적인 문화의 영향이 크다. 다른 나라는 도심에서도 종종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산속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의학에 대한 의존이 커서, 의학이 모든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망자의 약 70%는 병원에서 죽는다. 예전에는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병원에서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지만, 이제는 많이 감소했다. 대신 집에서 죽는 비율이 증가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회 내에서 죽음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경향이 있고, 현대의학으로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죽음을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소생 가능성이 없더라도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런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는 인원이 증가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남기는 고통이 크다. 개인이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주변인의 임종 과정을 지켜보면서 학습이 된 것 같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가족의 고통이 합당한가?’ 의문이 든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 증가한 것도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다만 무조건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뜻은 아니다. 소생 가능성이 있다면 치료하는 게 맞다. 하지만 회복이 힘들다면 중단하는 것도 지혜로운 결정이다. 이제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자동차에 계속 기름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따라서 ‘우리 사회가 현대의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 죽음을 택할 권리를 사회에서 용인하고 보장하는 문화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러한 자기 결정권이 웰다잉의 본질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다만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한 후 등록해야 한다. 이러한 연명의료 중단이 가동하기 위해서는 사망 당시 입원한 병원에 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큰 병원을 제외하고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통계를 보면 요양병원이나 규모가 작은 병원의 경우는 상급병원과 비교해 윤리위원회를 갖춘 곳이 아직 많지 않다. 위원회를 구성하려면 비용도 들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회의할 수 있는 구조도 갖춰야 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현 상황에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것이다.”
순리대로 정리하는 삶
그는 삶 속에서 웰다잉이 필요한 이유를 “일종의 순리다”라고 말하며, 첫 번째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소개했다.
“봄에는 새싹이 나고, 가을에는 맺은 열매를 수확한다. 무릇 인생도 같다. 은퇴한 시니어에게 새로운 도전도 좋지만, 이제는 삶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마무리를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 웰다잉의 구체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 단추를 유언장으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유언장은 내 삶을 정리하며 쓰는 일종의 종합기록부다. 생전에 고마웠던 이들에 대한 마음이나 남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재산이나 장례 방식 같은 문제를 글로 써보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본인만 할 수 있기에 더 값지다.”
덧붙여 웰다잉을 준비하는 시니어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웰다잉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과 일상에서 웰다잉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진석 추기경이 장기 기증을 하고 돌아가셨다는데 나도 해볼까?’ 또는 ‘유언장을 쓰는 게 좋다는데 어때?’ 이런 식으로 가볍게 얘기하면서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식이 먼저 꺼내는 것보다 당사자가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다. 이런 과정을 통해 웰다잉을 공통의 관심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웰다잉, 즉 좋은 죽음은 어떤 것일까?
“톨스토이는 ‘인간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죽음을 회피하고 외면하려고 하지만, 죽음은 필연적이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 준비하는 게 지혜로운 인생의 마무리다. 유언장 쓰기, 장기 기증 서약과 같은 과정을 통해 내 삶을 정리하면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웰다잉은 잘 죽는 일과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삶을 한번 정리하고 새로운 자세로 인생을 살게 하는 중요한 중간 점검과 같다. 이는 곧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길이다.”
끝으로 그는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에 대해 말했다.
“천만 노인 시대가 멀지 않았다. 이분들이 삶의 주인으로서, 삶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웰다잉 문화의 지속적인 확산이 필요하다.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죽는 노인이 많을수록 사회가 건강해지고 품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외면하는 경향이 만연하지만, 죽음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싶다. 병원에서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싶다. 비대면 상황으로 인해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인 웰다잉 문화 확산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노인들의 건강상태가 크게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절반에 이르고,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노인들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후 생활을 좋은 죽음을 위한 과정으로 보고 장례 위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경향도 보였다.
보건복지부가 7일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노인은 49.3%로 절반에 가까웠다. 2008년 24.4%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또 우울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2008년 30.8%에서 2020년 13.5%로 절반이 넘게 줄어들었다. 우울증상 보이는 여성이 15.5%로 남성 10.9%보다 많았다.
1개 이상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은 노인실태조사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계속 증가했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 2017년 89.5%보다 5.5%포인트 준 84%를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2020년 노인들은 평균 1.9개 만성질병을 앓고 있다. 종류별 유병률을 보면 고혈압이 56.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당뇨병 24.1%, 고지혈증 17.1%, 골관절염 또는 류머티즘관절염 16.5%, 요통과 좌골신경통 10.0%으로 뒤따랐다.
과음주율과 영양 개선이 필요한 노인 비율도 줄었다. 과음주율은 2017년 10.6%에서 지난해 6.3%로 낮아졌다. 영양 개선 필요 비율은 2017년 19.5%에서 2020년 8.8%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흡연율도 2008년과 비교하면 소폭 줄었다. 흡연율은 2008년 13.6%에서 2020년 11.9%로 1.7%포인트 감소했다. 운동실천율은 2008년 50.3%에서 2017년 68%까지 늘었다가, 2020년 53.7%로 크게 떨어졌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상황이 발생하면서 활동에 제한된 탓으로 분석된다.
2020년 노인들의 건강검진 수진율은 다소 낮아졌으나 치매검진 수진율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검진율은 2014년 조사까지 계속해서 상승하다가 2017년 조사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건강검진 수진율은 77.7%로 2017년 82.9%보다 5.2%포인트 줄었다. 2017년부터 조사가 시행된 치매검사 수진율은 2017년 39.6%에서 2020년 42.7%로 소폭 증가했다.
노인 74.1%는 노인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노인 20.8%는 대중교통 이용시 차별을 경험했으며,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는 16.1%, 의료시설을 이용하면서는 12.7%가 연령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좋은 죽음(웰다잉)을 희망하지만 아직은 장례식 외 준비사항은 초보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애말기 좋은 죽음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 90.6%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 90.5%,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 89.0%,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임종 86.9% 등이 높은 응답을 얻었다.
죽음에 대한 준비로 장례를 준비(수의, 묘지, 상조회 등)하고 있다는 응답이 79.6%로 가장 높았다. 이 외에 유서작성, 상속처리 논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서약 등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답변이 24.7%를 차지해 전체적으로 장례 관련 비율이 3배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
노인 85.6%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했다.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조치들을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의사를 사전에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같은 실천율은 4.7%에 불과했다. 실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캠페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노인 절반은 노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반에 가까운 49.6%가 삶의 전반에 걸쳐서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역별 만족도를 살펴보면 건강상태 50.5%, 경제상태 37.4%, 사회·여가·문화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42.6%였다. 배우자 관계는 70.9%, 자녀관계는 73.3%, 친구·지역사회와 관계는 58.9%에 달하는 노인들이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상태와 경제상태에 대한 만족도도 2014년도 조사 이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상태 만족도는 2017년 37.1%에서 2020년 50.5%로 13.4%포인트, 경제상태 만족도는 28.8%에서 37.4%로 8.6%포인트 높아졌다. 배우자와 자녀, 지역사회의 관계만족도는 이전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2020년 노인들은 소득이 2008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면서 경제적 자립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도 2배 이상 늘었으며, 만족스럽게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 비율도 오르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정보화 기기 이용률 격차도 커 문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건복지부가 노인 가족과 사회적 관계, 건강과 경제 상태, 여가와 사회활동 등을 조사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3년마다 실시하는 이 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전국 969개 조사 지역에서 만 65세 이상인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근로소득 4배, 사업소득 2배 늘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2020년 노인들의 연간 개인 소득은 1158만 원으로 2008년 700만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올랐다. 소득원을 살펴보면 근로소득이 2008년 6.5%에서 2020년 24.1%로 4배 정도로, 사업소득은 6.9%에서 11.0%로 2배 가깝게 늘었다. 반면 사적이전소득이 46.5%에서 13.9%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공적이전소득은 28.4%에서 27.5%로 소폭 감소했다.
사적이전소득은 가족이나 친인척 등으로부터 받는 생계비 보조금을, 공적이전소득은 노령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말한다. 2008년에는 절반 정도의 노인들이 자녀나 친인척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2020년에는 10명 중 1명 정도로 줄어든 대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4명 중 1으로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2008년 30%에서 2020년 36.9%로 증가했다. 65세에서 69세까지는 절반 이상인 55.1%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73.9%의 노인들이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로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라고 대답해 10명 중 7명이 생계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직업은 단순노무직이 48.7%로 가장 많았고, 농어업 13.5%, 서비스근로자 12.2%, 고위임원직관리자 8.8%, 판매종사자 4.7% 순이었다. 특히 10명 중 1명 정도가 기업에서 대표나 고위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노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국민들의 자신 비율에서 부동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노인들은 특히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가구 대부분인 96.6%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금액 기준으로는 가구 평균 2억6182만 원이었다. 또 금융자산을 보유한 비율은 77.8%로 평균 3212만 원을, 기타 자산으로 1120만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동산이 자산에서 86.8%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성이 심했다. 반면 노인 4명 중 1명꼴로 빚을 지고 있었는데, 평균 금액은 1892만 원이었다.
노인들의 주택 소유 현황은 자가 비율이 79.8%로 10명 중 8명이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48.4%, 단독주택 35.3%, 연립과 다세대주택 15.1%, 기타 1.2% 순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처음으로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노인들의 아파트 거주 비율도 젊은 사람들과 비슷한 것으로 분석된다.
간강한 노인 늘고, 우울한 노인 줄고
노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노인은 2008년 24.4%에서 2020년 49.3%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건강이 좋지 않다고 응답한 19.9%보다도 2배가 넘는 비율을 나타냈다.
또 우울 증상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꾸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우울감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13.5%로, 2008년 30.8%, 2017년 21.1%보다 크게 줄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노인 74.1%는 노인에 대한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또 노후와 생애 말기에 찾아올 좋은 죽음(웰다잉)에 대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0.6%로 가장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임종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에 대해 85.6%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은 2008년 81.3%에서 2020년 84.0%로 소폭 증가했으며, 노인 1인당 1.9개의 만성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중 고혈압이 56.8%로 가장 높았고, 당뇨병 24.2%, 고지혈증 17.1%, 골관절염 또는 류머티즘관절염 16.5%, 요통과 좌골신경통 10.0%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취미나 여가 활동을 꼽는 노인 비율이 37.7%로, 경제활동 25.4%, 친목 활동 19.3%보다 높았다. 노인 단독가구는 2008년 66.8%에서 2020년 78.2%로 증가한 반면,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가구는 2008년 27.6%에서 2020년 20.1%로 계속 줄고 있다. 자녀와 함께 사는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도 2008년 32.5%에서 2020년 12.8%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한편 65~69세 노인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등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도 높아지고 있었다. 비교적 연령대가 낮은 65~69세 노인들은 문자 주고 받기 외에도 40.8%가 SNS, 25.2%가 금융기능을 이용하며 비교적 높은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을 보였다.
하지만 70세 이상부터는 SNS 이용률과 금융거래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전히 노인들은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정보화 기기 이용에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인간은 꽤 많은 것을 두고 떠난다. 이를 ‘유품’이라 부른다.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은 고인을 애도하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주인 없이 어질러진 집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 고인이 생전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제 손으로 처분해야 할 때 남겨진 가족의 회한은 더욱 커진다. 사랑하는 이들이 먼 훗날에도 자신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를 바란다면 삶의 끝뿐 아니라 그다음 페이지도 아름다워야 한다. 장래 유품이 될 물건을 직접 정리하는 ‘생전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옷이었어요. 빈집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부모님과 언니의 옷을 손에 쥐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북받쳐 올랐어요. 여러 가지 추억도 떠오르고요. 그 많은 옷을 제가 가질 수도 없고, 결국 조금만 남기고 과감히 처분했어요.”
14년 전 어머니와 언니를 잃고, 4년 전 아버지를 여읜 히라쓰카 요우코(59) 씨는 2년 전 아무도 살지 않는 친정집을 홀로 정리했다. 분주히 식기와 주방용품, 옷가지를 처분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옆에서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 한편으론 속이 편했지만 넘쳐나는 물건을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혼자 결정하려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며 “세상을 떠난 가족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라 더 그랬다”고 말했다.
가와무라 노조미(67) 씨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적 함께 정리를 시도했지만,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의 완고한 태도에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머니를 떠나보낸 노조미 씨는 모든 것이 그대로인 공간을 5년간 정리하며 외로운 작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건강할 때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홀가분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책 ‘부모님의 집 정리’는 일본 중장년 세대가 고령으로 접어든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의 집을 정리하며 느낀 경험담을 담고 있다. 이들의 진솔한 고백은 국경을 초월해 생의 마무리를 앞둔 시니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령화 사회에 ‘생전 정리’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남겨진 자식이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다. 대부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분류하고 버리다 원망 섞인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리를 끝낸 이들은 마침내 한 가지 공통된 깨달음을 얻는다. 아름답게 이별하려면 정리는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자식이기 전에 부모이기도 한 이들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생전 정리를 결심한다.
◇ ‘데스클리닝’과 ‘가타미와케’
웰다잉 산업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에서 생전 정리는 아직 낯선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유품 정리를 삶과 동떨어진 문제로 보고, 가족의 몫으로 여기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품 정리를 스스로 실천하고, 생활 속 문화로 발전시킨 국가도 있다.
스웨덴은 죽음에 대비해 주변을 정돈하는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이 일종의 미니멀 라이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표 주자가 데스클리닝 전문가 마르가레타 망누손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다 놀라운 광경을 발견한다. 물건 곳곳마다 어머니의 글씨로 처리 방법과 기증처가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저서 ‘내일 내가 죽는다면’에서 “꼭 내게 하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이 작은 지시 사항들에 위안을 얻었다”며 “어머니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일로 생전 정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녀는 이후 데스클리닝 노하우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장례가 끝난 후 고인의 유품을 주변에 전달하는 ‘가타미와케’(形見分け)라는 문화가 있다.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가족, 친구 등 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유산을 분배하는 경제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물건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에 더 가깝다. 홍수, 지진 등 대규모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바다에 떠다니는 고인의 물건을 주고받으며 유래했다. 이후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종활’(終活·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면서 본인이 생전에 미리 물건을 나누는 경우도 늘었다. ‘부모님의 집 정리’ 마지막 장에서는 80대 중반의 나이에 60년 동안 거주한 집을 직접 정리하고 가족과 이웃에게 물건을 나눈 쇼코 씨의 사례를 소개한다.
◇ 무엇을 남기고 정리할 것인가
이처럼 유품 정리는 단순히 공간을 정돈하는 차원을 넘어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를 파생시킨다. 특히 생전 정리는 가족이 짊어질 부담을 덜어주고, 다 함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유품 정리 서비스 키퍼스코리아 김석중 대표는 “유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상속인과 공유하는 추억”이라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족과 죽음에 대해 논의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를 대비해 소화기를 준비하듯 생전 정리를 하면 재산, 상속 문제 등 사후 자신으로 인해 벌어질 불씨를 막을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생전 유품 정리는 후회의 대물림을 막는 일”이라고 했다.
자식에게 각별한 기억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도 생전 정리의 장점이다. 김 대표는 “물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 자식도 부모의 몰랐던 점을 알게 되고,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며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더욱 의미 있는 정리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김 대표가 제안하는 몇 가지 팁을 참고해 아름다운 ‘인생 졸업식’을 준비해보자.
◇ 웰엔딩을 위한 생전 정리 노하우 6가지
① 가족 간 비밀을 최소화한다
가까운 듯 보이면서도 알고 보면 먼 사이가 바로 가족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잘 나누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묵언하는 이들이 많다. 금전이 얽힌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생전에 보유하던 상가나 주택의 임대 정보에 대해 끝끝내 알리지 않아 유족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족 간 비밀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직접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엔딩노트’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작성해둔 다음, 유사시 가족 구성원에게 노트의 존재를 알려도 된다.
② 재산과 승계 목록을 작성한다
정리는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유품 정리도 마찬가지다. 종이나 컴퓨터에 집 안에 있는 각종 물건과 보유 중인 자산 현황을 적고, 이를 종류별로 묶어서 분류해본다. 그다음 각 물건과 관계된 사람을 떠올리고 승계 목록을 적는다. 가족에게 ‘올인’하기보다는 물건별 얽힌 사연이나 추억이 있는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좋다. 가령 함께 골프를 즐긴 친구에게는 골프용품을, 음악 동호회 회원에게는 오래된 LP 박스를 선물하는 식이다. 한평생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 쓰레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필요한 사람이 물려받아야 한다. 나눔이 끝나고 남은 물건은 간직할 것인지, 기억 속에 남겨둘 것인지 고민하고 처분을 결정한다.
[PLUS+] 내 물건 체크해보기
. 예금통장·인감·보험증서·카드
. 연금수첩 등 연금 관련 서류
. 약·보험증·진찰권·병원 연락처
. 부동산 권리증·등기부등본
. 귀금속
. 현금
. 편지 및 일기장
. 사진
. 추억의 물건
. 취미용품
. 대여 중인 물건
. 가스·수도·전기·전화 등 청구서
. 가계도·친척 연락처 등 가족 관련 물품
③ 유산의 가치가 있는 물건은 기증한다
개인의 소장품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더욱 의미 있게 공유하고 싶다면 각 물건과 관련된 기관에 기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그 시절에 입었던 교복이나 모아두었던 상패는 출신 학교에, 오래된 승마복은 역사박물관에 전달한다. 전달된 물건은 기관별로 50년사, 100년사 등 사사(社史)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서재에 쌓여 있는 책을 아동보육시설이나 지역 도서관 등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다.
④ 골동품과 고물을 구분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낡을수록 빛을 발하는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작은 박물관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고장 난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은 함께한 세월에 관계없이 고물에 불과하다. 즉 골동품과 고물을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유산의 성격을 띠는 풍금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그랜드 피아노는 소장 가치가 있지만, 젊은 시절에 가져다놓고 쓰지 않는 가정용 피아노는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 쓰임새를 다해 창고 신세를 지거나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이 있다면 과감히 버린다.
⑤ 명예롭지 못한 흑역사는 정리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누구에게나 알려져서는 곤란한 흑역사가 하나쯤은 있다. 생전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비밀을 묻어둘 수 있지만,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각되는 경우가 있다. 은밀한 취향을 기록해둔 사진이나 영상, 주고받지 못한 금단의 편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집 살림을 위해 사용했던 휴대폰이 나온 사례도 있다. 이를 발견한 가족은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에 휩싸인다. 기왕이면 흑역사를 만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그간 쌓아온 명예가 실추될 만한 일련의 기록이 있다면 스스로 정리한다. 정리의 기준은 가족과 제자가 보았을 때 부끄러울 만한 일이다.
⑥ 디지털 정보도 꼼꼼히 관리한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사회에서는 인터넷에 올린 기록물도 모두 자산이다. 특히 남겨진 이들에게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선물이 되므로,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도록 수첩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이트별로 적어둔다. USB, 외장하드 등 별도의 장치에 모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면 인터넷 세계는 너무도 방대해 ⑤와 같은 부끄러운 기록이 자신도 모르는 새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들은 휴대폰과 동기화된 경우가 많아 함께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PLUS+] 엔딩노트 작성하기
일본 영화 ‘엔딩노트’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다가온 죽음에 좌절하지 않고 엔딩노트를 작성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 가기’ 등 노트에 적은 리스트를 성실히 실천해나가며 삶의 엔딩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하루하루를 조명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체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엔딩노트는 말 그대로 행복한 엔딩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기록해두는 노트다. 정해진 규범이나 양식은 없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생전에 하고픈 일을 버킷리스트 형식으로 쓰거나, 장례 절차나 유품 처리 방식,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해도 된다. 차마 얼굴 보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적는 방법도 있다. 유언장과 다른 개념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된다.
‘삶의 내용에는 건강과 즐거움, 질병과 슬픔, 늙음과 죽음이 있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아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정현채 교수의 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결국 죽음을 잘 준비할수록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변화하는 장례 문화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살펴보자.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고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故 정기용 건축가의 삶과 마지막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나오는 대사다. 죽음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곧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최철주 웰다잉문화운동 고문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지 미리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든 과정이 웰엔딩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하는 웰엔딩이 필요하다.
최근 웰엔딩을 위해 생전 장례식을 하는 곳도 생겼다. 라온 피플은 ‘내가 준비하는 나의 마지막-웰엔딩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삶에 대한 회고와 죽음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웰다잉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됐다. 생전 장례식 체험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줬는데, 유언장을 쓰고 입관 체험을 하는 생전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가 많았다. 생전 장례식을 마친 참가자 A씨는 “생전 장례식 이후 선물과 같은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기분이다”라고 밝혔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을 불러서 생전 장례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은 보통 사후에 진행하다 보니 고인의 뜻과 마음을 미처 전하지 못하고 떠나기 때문에, 생전에 관계를 맺었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는 것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문상 절차’만 있지 정작 ‘장례식’은 없다. 장례식에서 문상객끼리 잡담하다 오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생전에 자신이 직접 장례식을 디자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혼식처럼 장례식 식순도 짜보고, 초청할 사람도 미리 정해보고, 신세 진 분에게는 살아 있을 때 만나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례의 새로운 대안들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으로 화장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는데, 그 결과 현재는 ‘화장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장이 늘어났다. 실제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화장률은 90%에 육박한다. 묘지 면적을 줄인 점은 좋았지만, 화장도 역시나 문제가 있다. 증가한 화장률에 비해 화장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례업계 관계자는 “화장률은 높지만 화장 시설 설치 반대로 인해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후화된 화장 시설을 개선하고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달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대안으로 ‘수목장’이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수목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응답자의 65.4%가 수목장을 장례 방식으로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 관계자는 “현재 수목장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이 크게 높아지면서 자연 친화적인 장례 문화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함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디지털로 소통하는 장례
코로나19는 장례식의 풍경을 언택트로 바꾸고 있다. 장례식과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조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직장인들의 경조사 참석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남녀 직장인이 참석한 경조사는 평균 3회 정도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직장인도 10명 중 4명에 달했다.
더불어 조의금 문화도 달라졌다. 최근 장례식을 치르는 유족들은 조문객 사절과 함께 계좌번호가 적힌 부고장을 보내기도 한다. 상주 측은 조문을 받지 않으며 계좌번호를 적은 문자를 통해 조의금을 받고, 조문객도 조문 대신 계좌이체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간편 전송을 통해 부의금을 많이 전달했다.
언택트 기술은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고 있다. 모바일 앱 ‘다큐다’는 유족과 조문객에게 새로운 IT 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및 영상을 통해 유족과 조문객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다큐다 관계자는 “회고 영상과 더불어 장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어 해외 거주로 인해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조문객은 해당 앱을 통해 추모 메시지와 영상을 유족에게 보내며 위로를 전한다. 유족은 사진만으로 쉽고 빠르게 회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앱을 통해 부고 알림, 장례 일정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어서 편하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등과 같은 조문 기록은 모두 저장되며, 실물 앨범으로도 제작하여 유족에게 제공된다. 다큐다 관계자는 “고인과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앨범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삶과 함께하는 죽음
한편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장례식은 간소하게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3일장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1·2일장이나 무빈소 장례와 같이 규모와 기간이 줄어든 장례를 선호한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뷰’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변한 장례 문화에 대해 10명 중 6명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 계층에서 모두 긍정적 평가가 높은 가운데 전통장례 문화에 익숙한 50대(68.1%)와 60대(73.4%)에서 특히 높았다.
장례 문화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가족장 등 새로운 장례 문화 확산’(37.9%), ‘식사 등 불필요한 문상 문화 축소’(27.1%), ‘검소한 장례 문화 확산’(18.3%), ‘문상객 감소에 따른 상주의 피로감 감소’(13.8%) 등을 이유로 꼽았다. 장례 문화 스타트업 ‘꽃잠’ 유종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작은 장례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작은 장례식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식이 확산될 전망이다. 실제로 위의 조사에서 장례 문화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1·2일장, 무빈소 장례 문화 확산(29.8%) ▲장례식 중 화장 문화 인식 확산(20.7%) ▲밝고 긍정적인 죽음맞이 문화로의 변화(16.3%)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장례 문화 확산(14.5%) 순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천편일률적인 장례가 아니라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로 변하면서, 유족 중심의 장례 문화에서 고인을 중심으로 한 깊은 추모로 장례가 변할 가능성이 크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유족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겉치레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결혼식처럼 특정한 날과 장소에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행하는 의례가 없다. 일본이나 미국의 장례식은 어느 한 날을 정해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의례를 치르며,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한다”라고 말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장묘 문화도 바뀌고, 장례의 규모나 일정, 조문 방식 등 여러 가지가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장례의 본질은 변함없다. 또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고 외면할 이유도 없다. 죽음은 삶의 피할 수 없는 단계이므로. 당사자는 죽음을 잘 준비하고, 이들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주변인들이 도와주는 것. 그것이 서로에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최 교수는 “죽음은 지상의 삶을 마치고 가는 인생의 졸업식과 같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죽음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일과 같으므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하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죽음을 삶의 적으로 두기보다는 ‘삶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일수록 웰다잉, 웰엔딩을 철저히 준비한다. 여생의 마무리와 졸업식을 아름답고 멋지게 맞이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어르신들은 마음처럼 준비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잘 준비할수록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6월호에서는 커버스토리로 건강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아름다운 인생 졸업식인 웰엔딩에 필요한 장례 문화부터 ‘생전 정리’를 통해 남겨진 가족의 회한을 줄이는 방법,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등에 대해서 살펴봤다. 또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로부터 현 시점에서 웰다잉의 의미와 필요성, 실천 방법도 들을 수 있다.
42년 동안 푹 익힌 진심을 말하는 방송인이자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인 시니어 임백천을 표지와 기사로 만날 수 있다. 장수 MC로 유명하지만 그 비결을 ‘살아남으려는 노력’ 덕분이라고 말하는 그는 편안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치열함을 내면에 담고 있었다.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에서는 ‘살아보니 더 좋은 곳이자 내 마음의 고향인 고창’을 이야기한다. 조상의 얼이 담긴 성곽과 고즈넉한 멋이 흐르는 선운사 등 문화유적과 수박, 풍천장어, 복분자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넘친다. 고창은 대한민국 최초로 2013년 5월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청정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생활 속 법률 상식에서는 ‘안전한 상속 솔루션, 신탁’을 소개한다. 전통적으로 유언을 통해 상속이 이뤄지는데, 유언은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같은 분쟁을 없앨 수 있는 금융회사가 재산을 관리하는 신탁이 최근 새로운 상속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6월의 단상에서는 산처럼 물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떠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 사대부들이 산행 뒤에 남긴 560편에 달하는 ‘유산기’(遊山記)를 통해 조선의 산행 방법을 담았다. 산행으로 풍류를 즐기고, 됨됨이도 길렀던 조선 선비들의 모습, 특히 퇴계 이황이 산을 사랑한 방식도 만날 수 있다.
1980~90년대 포크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겸 정신의학과 의사인 김창기가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송어게인에서는 최고의 듀오 ‘사이먼과 가펑클’의 ‘So Long, Frank Lloyd Wright’ 노래를 통해 슬픔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감정을 재발견할 수 있다.
이달의 구독에서는 ‘터치’ 한 번으로 받아보는 맞춤형 화장품을 만날 수 있다. 각종 기능을 보완하는 화장품을 써봐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피부. 이런 시니어의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나온 것이 ‘비싸고 좋은 화장품’이 아닌 ‘맞춤형 화장품’이다.
이 외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 6월호는 트로트 가수 이금수의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연세대 농구 감독으로 1990년대 농구 붐의 주역이었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고려용접봉 부회장 최희암, 시인 안도현의 고백을 담은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떠오르는 부동산 투자 방법인 리츠를 다룬 은퇴 후 리츠 해볼까?, 숟가락만 들 힘만 있어도 그렇구나라고 하는 재미있는 性인문학, 3대 어깨 질환의 증상과 치료법을 제대로 소개한 시니어 헬스+ 같이 시니어들을 위한 재밌고 알찬 내용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6월호는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비움 라이프’의 마지막 글에서는 죽음을 성찰하고 삶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다. 8세기 인도의 고승 파트마삼바바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죽음을 준비 한다”고 말했고, 19세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풍조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모양이다.
‘액티브’한 죽음을 위해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양준석 연구원은 인간이 죽음을 기피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세상과의 단절로 사람들에게 잊힐 것이라는 불안,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 등이다. 양 연구원은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때로는 한계를 직면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며 “죽음을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해 계획을 세울 때도 당장 3일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상상해보면 허황된 다짐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며 “같은 이유로 새해에 유언장을 쓰고 한 해의 마지막에 다시 읽어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와 같은 주장은 ‘웰다잉’(Well-Dying)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맞이하고, 인식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웰다잉 관련 시장 규모가 해외에 비해 크지 않다. 그러나 2020년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 고령 인구로 진입하면서 관련 담론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여생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살고 싶다면, 죽음마저도 ‘액티브’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새해를 맞아 지나온 삶을 톺아보고, 생의 마지막 서류들을 준비해보는 것이 ‘좋은 죽음’의 출발점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서명하기
웰다잉은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됐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연명 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에서 거부해 소송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김 할머니의 존엄사를 허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19세 성인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두는 서류다. 작성을 하려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 방문해 본인 확인을 받아야 한다. 등록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서 찾으면 된다. 비용은 무료다. 만일 기관에서 비용을 요구한다면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작성된 서류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며, 작성자는 언제나 이를 열람할 수 있다. 이미 작성한 경우라도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활용 방법은 환자의 의사 능력에 따라 나뉜다. 의사 능력이 있다면 담당 의사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서 서류를 조회하고, 환자에게 서류상의 내용이 현시점에도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라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하고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자는 8만 명 남짓이었지만, 2020년 11월 기준 총 74만 명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그중 80% 이상이 고령층이다. 아직 전체 인구 대비 등록률은 미미한 편이지만, 초고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만큼 앞으로 더욱 대중화할 것으로 보인다.
내 손으로 준비하는 작은 장례식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면서 장례식을 자발적으로 준비해 간소화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망자를 기리고 애도하는 자리가 유족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장례식장 문화를 보면 상을 당해도 슬퍼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다. 식장을 알아보고, 부고(訃告) 소식을 알리고, 조문객을 맞이하다 보면 식이 끝난다. 실제로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장례 평균 비용은 1300만 원 정도이며, 이 중 식장과 음식 접대비에 드는 비용이 80%에 달했다. 이와 같은 ‘보여주기식 의례’는 부모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면 불효라고 여긴 조선시대 유교적 풍토의 영향이 크다.
이에 소박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장례를 원하는 이들은 ‘사전장례의향서’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란 원하는 장례 의식과 절차를 미리 적어놓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부고 범위, 장례 형식, 부의금 및 조화, 음식 대접, 염습·수의·관 선택 여부, 시신 처리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임종 직전 생명 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전장례의향서는 죽은 뒤 떠나는 방식을 정해놓는 서류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의 사전장례의향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장수행복노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캠페인을 처음으로 시작한 이광영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 대표는 “과거에는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혔지만, 요즘에는 영안실에서 시신을 안치하고 화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가의 관이나 수의는 큰 의미가 없다”며 “장례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 역시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 절차를 최대한 생략하고 산에다 뿌린 다음 내 생일에 식사나 한 끼 하라고 일러두었다”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고장이 나면 버리듯 때가 되면 육체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감는 순간까지 유언과 같은 삶을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이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언장을 써두는 것이 좋다. 유언장은 가족 간의 ‘상속 분쟁’을 방지함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법 제1060조에 따르면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양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유언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신이 남긴 유언장으로 가족 간 잡음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써야 한다.
유언은 크게 자필증서, 녹음, 공증증서, 비밀증서 등 5가지로 나뉜다. 그중 가장 많이 쓰이는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다. 자필증서는 말 그대로 본인이 직접 종이에 작성하는 유언이다. 본인의 의지가 담겨 있더라도 타인이 대신 썼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은 인정받지 못한다.
유언장에는 이름, 날짜, 주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강원남 소장은 “어르신들이 유언장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주소를 적지 않는 것”이라며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유언장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유언의 법적 효력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쓴 유언장이라도, 자신의 삶이 유언과 닮아 있지 않다면 가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들이 유언의 내용을 지키길 원한다면 타인의 모범이 되고, 유언의 내용에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강 소장은 “본인이 베풀지 않고 살았는데, ‘나누며 살라’는 말을 남기면 자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생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설령 유언장이 없어도 자식들은 그 모습을 본받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언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유언장과 일치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