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지역의 관계안내소 만들기를 지원하고 있다. 관계안내소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곳이다. 행정 관계나 조직 관계가 아닌 ‘사람’ 관계를 만드는 것에 주력한다. 관계안내소는 지역 명소와 지역 특산품 판매에 주력하는 (그러나 대부분 문이 닫혀 있곤 하는) 관광안내소와는 다르다. 지역의 삶, 사람, 산업 등을 소개하여 지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장소나 공간만을 특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기왕에 이동하는 인구를 좀 더 지역에 잘 연결되게 하려는 기발한 프로그램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체어링
‘체어링’(Chairing)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흔히 말하는 아웃도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고 좋은 장비도 있어야 하는데, 체어링 프로그램은 의자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일본에서는 체어링하기 좋은 가볍고 편한 의자만 파는 업체도 수십 개다.
지역 관계안내소에서는 멍때리거나 쉬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며 체어링을 통해 지역에서 쉬면서 지역의 매력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요즘 한달살기나 워케이션 같은 프로그램이 많은데 체어링은 그런 체류 프로그램보다 덜 부담스럽다. 뭔가 의지할 곳 없는 헛헛함을 의자 하나가 꽉 채워줄 것 같은 신박한 매력이 있다. 히가시가와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처럼 누군가에게 ‘자리’는 특별한 의미와 위로가 된다.
한편 체어링을 더 확장해 ‘어디든 앉을 권리가 있다’며 공공(장소) 해킹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까지 있다. ‘휴가 다녀오면 책상(내 자리)이 없어졌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말하는 직장인들이 종종 있는데, 지역에서는 이런 ‘자리’ 마련을 통해 관계인구를 유인한다.
가출 티켓
일본 나가노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가출 티켓으로 관계인구를 만들고자 한다. 원래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취약계층 지원의 의미가 더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부담 없는 돈을 받고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행할 돈조차 없는 취약계층의 여행을 독려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이 취약계층이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뿐이겠는가. 우리는 가끔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저 단출한 짐 하나로 부담 없이 지역에 체류하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이 좋아질 수 있다. 지역의 관계안내소는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영리한 선택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관계안내소 프로그램이 있다. 빡빡하고 엄숙한 종친회가 아니라 밀양 박씨, 김해 김씨 등 ‘전국의 ○○씨 모여라’ 하는 성씨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있다. 이들은 성씨가 등장한 최초의 지역에 모여 자신들의 시조와 역사에 대해 유쾌하게 이야기하며 친해진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줄임말) 종친회의 진화 버전 같기도 하다.
운전면허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기왕이면 지역에서 쓰라며 한 달 동안 지역에 체류하면서 면허도 따고 지역살이도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스테이(License Stay) 프로그램도 있다. 운전면허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이나 학위 등 종류를 확장하여 전문화해보면 좋을 프로그램이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건 더할 나위 없다.
가상의 지역 유적지를 돌며 미션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포인트를 얻어 현실에서 사용하는 RPG 게임도 있다. 지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게임의 장으로서 매력을 발신하는 것이다. 게임에 열광하는 계층에겐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한 번씩 4회 정도 대도시에서 출향민이나 지역에 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역의 상황을 오리엔테이션 교육하고, 지역에 직접 탐방 가서 주민들이나 사업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지역에서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일본 어디에서나 확산되고 있는 전형적인 관계안내소 프로그램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일본의 관계안내소 프로그램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관계인구를 만들기 위해 그 지역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은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강조하거나, 관계인구가 많이 오지 않으면 지역이 망한다는 반협박성 호소도 하는 상황이다. 거대한 랜드마크나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계의 축적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호소하고 짝사랑 메시지를 보낸다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좀 더 섬세하게 관계인구가 되고 싶은 사람과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은 지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쉽게 맺어진 관계는 쉽게 끝나는 법이다.
‘이게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몸 안에 심각한 병이 들이닥쳐 횡포를 부리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정규원(54, 백민구절초연구소 대표)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갖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조만간 죽음이 방문할 듯 몸의 통증이 자심했는데도 말이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과 궁리를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이라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로 한 거다. 시골의 자연환경이 괴로운 육체는 물론 덩달아 저하된 정신까지 끌어올려 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규원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한 건 2010년, 41세의 한창 나이 때였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시즌이었으니 정리가 쉬웠으랴. 만족스럽던 직업(의류 관련 액세서리 사업)을 일거에 접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게다가 그의 곁엔 살뜰한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자식 둘이 있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었다. 과연 아내가 귀농에 동의할지,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하고 귀농할 경우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다. 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혼자 외진 산속에 들어가 쑥이나 고사리처럼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며 병부터 다스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만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귀농을 선창할 경우 일단 반기를 든다. 매우 영민한 종족인 아내들은 날이면 날마다 풀을 뽑다가 뱀을 만나 까무러칠 가능성이 농후한 귀농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원의 아내는 시골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마도 아내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민만큼이나 어려운 역경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귀농이다. 하물며 남편만의 단독 귀농이라면? 이는 가정의 불안정을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경우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정규원의 아내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해 전향적인 판단을 했을 테다. 아내의 대범한 태도에 힘을 얻은 정규원은 마침내 귀농 거사를 착수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를 대동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귀농한 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이다. 이왕이면 아주 낯선 객지보다 연고가 좀 있는 곳이 정착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점찍은 곳이다. 거처는 농촌 마을이 아닌 면 소재지에 마련했다. 초등생 아이들의 등하교 편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귀농 초기엔 건강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텃밭 농사를 통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었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명상센터에 나가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농사에 대한 구상도 많이 했다. 논을 사 벼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쌀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먹자는 아내의 의견에 공감해서였다.”
귀농 전에 미리 받아둔 귀농교육이나 농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나?
“서울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한 귀농교육에 관심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 의왕에 텃밭을 마련해 작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경험치에 불과했다. 사실 계획 없이 막연한 귀농을 한 셈이었다. 건강 문제가 화급해 사전 준비를 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농업만큼 만만치 않은 직업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섣불리 농사에 뛰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농사로 가족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농업에 매력을 느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줄기 동경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농부로서 긍정적인 풍모를 지녔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귀농교육은 귀농 이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를테면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친환경 농업을 기본 방향으로 정한 바 있어 관련 공부를 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등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를 느껴 E-비즈니스 교육도 받아두었다.”
일련의 농업교육을 이수한 뒤 비로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나? 아니면 몸 치유에 치중한 시간이 더 많았나?
“치유와 농사를 병행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도 서서히 좋아졌고, 좋아지는 건강 상태에 따라 농사에 대한 의욕도 상승했으니까. 2013년엔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멧돼지들이 농장을 초토화하기도
정규원이 선택한 주 작목은 구절초다. 구절초를 재배,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그는 산속에 있는 4000평 규모의 구절초 농장을 운영한다. 바야흐로 유능한 구절초 농부로 부상하고 있다. 출발은 미미하고 미묘했다. 할머니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구절초 꽃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200평 남짓한 작은 땅에 구절초를 심은 게 구절초와 인연을 맺은 계기라는 게 아닌가. 일종의 감성적 충동으로 시험 재배 삼아 구절초를 심어봤을 뿐인데 이게 향후의 길을 환하게 열어줬다.
“남에게 빌린 200평짜리 작은 밭에서 거둔 구절초로 조청을 만들어봤는데 50인분 밥솥 하나 분량의 조청이 나왔다. 판매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조청 품질이 좋다며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홍보도 해주었고.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판매 효과까지 거둔 뒤엔 서서히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자연스럽게 구절초 농사에 본격 입문한 셈이다.”
조청만 생산하는 건 아니겠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구절초꽃차, 모종, 체험 상품인 에코화분, 그리고 구절초블랙이라 이름 붙인 농축액 등을 생산한다. 주력 상품은 구절초블랙이다. 이건 유기농 구절초 함량 97%에 달하는 제품으로 나름 야심을 가지고 개발했다. 현재 상표출원 절차를 밟고 있다. 소비자의 80% 이상은 구절초 제품을 약용 목적으로 구입한다. 구절초블랙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구절초 농사 전체 과정 가운데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구절초 역시 제초 작업부터 뭐 하나 손쉬운 게 없다. 재배 기술 습득은 비교적 용이하다. 문제는 날씨 변동이다. 예상하지 못한 폭우와 긴 장마엔 구절초가 맥을 못 춘다. 과도한 습기에 약한 작물이니까. 배수시설을 완비하고 밭에 경사도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도 필요하다.”
흔히 병충해 방제는 농약에 의존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유기농업은 농약 없는 농사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생태환경 유지에 공을 들인다. 난 구절초 농장 복판에 억새섬이라 부르는 작은 숲을 조성해 자연생태와 평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 작은 숲은 병충해의 기습을 완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마귀 알집도 활용한다. 미리 채집한 사마귀 알집을 봄철에 방사하는 것인데, 부화된 사마귀들이 해충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사마귀들이 농장을 지켜준다. 그런데 난해한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멧돼지가 구절초도 먹나?
“구절초를 먹는 건 아니고 땅속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먹기 위해 밭을 아예 농부처럼 갈아엎는다. 한번은 멧돼지 군단이 몰려와 농장을 투철하게 초토화했다. 징을 쳐대고, 포수를 불렀지만 아무 소용없더라. 포수들이 야간 매복을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공격은 한 달간 이어졌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구절초 향수를 개발하고 싶어
농사로 긍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안락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죽하면 귀농을 고행에 견주랴. 정규원은 비지땀 이상의 피땀을 쏟았다. 덕분에 순항을 거듭했다.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알려진 판로 문제도 길을 잘 찾아 해결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관계를 맺어 상품을 납품, 꾸준히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 세상에서 익힌 처신과 경험을 슬기롭게 제련해 귀농 생활의 재료로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 안정적인 행보의 거름이 됐다. 그의 언사는 나직하고 다소 어눌하다. 반면 내부엔 뭔가 강철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기심은 줄이고 이타적 선의를 키워 나아가는 게 삶의 정수를 맛보는 길이라는 신념을 육화한 인간 유형이랄까. 그는 사실상 신념을 밀어붙이며 당찬 귀농 생활을 해왔다. 2013년에 결성한 문화적 농업 공동체인 유기농협동조합에 이어, 2017년엔 경제 공동체인 마을기업 ‘백민구절초연구소’를 만들어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문제는? 여전히 아픈 몸을 고독하게 끌어안고 농장에서 뛰나?
“실로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몸 하나 살려보자고 귀농을 했겠는가? 몸이 추락하자 온갖 회의가 몰려들기도 했다. 이 지경으로 몸을 망쳐놓다니, 난 패배자야! 그런 넋두리가 잦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2017년에 이르러선 병의 늪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된 걸 알았다. 따라서 마을기업 결성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랐다지? 뒷바라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계 형편은 어떤가?
“서울에 있던 집을 판 자금의 절반쯤은 귀농 초기에 다 까먹었다.(웃음) 농업으로 소득을 거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꾸준히 소득이 늘고 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인은 당신의 농사에 어떤 식으로 조력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일이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내이고.”
만약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귀농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잠깐 생각하다가) 일을 좀 줄여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농 방식을 모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내겐 아직 꿈이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과욕과 과속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농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확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구절초 가공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싶고, 구절초의 아찔한 향을 재료로 한 향수 개발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 매너리즘 없는 정신이 그의 돛을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정규원이 주는 귀농 Tip
•집과 농지를 서둘러 구입할 것 없다. 평생의 삶터로 삼을 경우엔 더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남의 농지를 빌려 활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를 크게 설정하는 건 금물이다. 내 농사는 작게, 그리고 남의 일도 도와주면서 농사 물정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농업 교육기관에서 만난 귀농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결국은 귀농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농사만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을 살린 일거리를 만들어 수입을 보완하자.
•구절초 농사에 뜻이 있을 경우 5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판로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필수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로를 모색하자.
인구구조에 관한 한 낙관론은 없다. 무너지고 있고, 앞으로도 무너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붕괴’ 할 것이라고.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챌린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의 투자법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가장 확실한 투자법, 1인 1기
영화 ‘첨밀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틋한 감성 로맨스물이지만 김경록 고문에겐 호러물에 가깝다. 주인공 장만옥이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는 장면을 김 고문은 공포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생애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힘들게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다 날렸으니 얼마나 안됐어요?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김 고문이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은 전 재산을 잃은 장만옥이 안마시술소에 취업하는 신이다. “본인에게 투자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기술이나 전문성을 길렀더라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 돈은 잃을 수도 있고, 누가 훔쳐 갈 수도 있지만 전문성이나 기술은 그럴 수 없어요.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입니다.”
김 고문은 1인 1기(1人1技)를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이던 2014년, ‘1인 1기’라는 책을 출간하며 “쓸모 있는 기술 하나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9년여가 지났다.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에 들어선 한국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전히 그는 기술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고령화는 사회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잘못 대응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질 겁니다. 단, 잘 대비해두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답을 기술, 즉 전문성으로 봅니다.”
김 고문이 제시하는 전문성 기르는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자격증 취득이다. 자격증 중에서도 ‘좁은 문’을 통과하라고 조언한다. 손해사정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 취득하기 어려운 국가공인 자격증이 그 예다. 또 다른 방법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실제 그는 후자를 택해 지금도 열심이다. 노후 문제 전문가로 일하며 일본어 능력의 필요성을 느껴 지난해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김 고문은 기술이 스스로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노후 인생을 바꿀 기회에 다시 한번 고3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라고 말이다. “승부를 해야 할 때는 자기를 던질 정도로 해야 합니다. 한 단계 올라서겠다? 그럴 때는 사투리로 말하자면 ‘오지게’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데모테크’ 투자 3법칙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치즈가 사라지자 한 쥐는 ‘어? 내 치즈, 어디 갔지?’ 하고만 있었고, 한 쥐는 쫄래쫄래 치즈를 찾아갔습니다. 치즈를 찾아간 쥐처럼 하면 됩니다.” 고령화 시대 자산 투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대한 김 고문의 답이다.
그는 투자에 앞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적 정년 60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맞추고 있는 고정관념부터 통화나 자산을 국내 기준으로 보는 관점까지 완전히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근거는 인구구조의 붕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독일은 30년 이상, 일본은 15년이 걸렸다. 2018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은 7년 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인구구조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 큰일 났다. 붕괴되겠다… 어, 어, 붕괴된다’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심하게 말하면 자폭하는 셈입니다. 우리 인구구조가 붕괴되면 인구구조가 튼튼한 다른 나라의 자본을 가지면 됩니다.”
김 고문이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자산의 서식지를 옮기라”는 말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어디에 많은지, 위험이 닥쳤을 때 어디가 충격을 적게 받을지, 충격을 받고서 어디가 회복탄력성이 좋을지 살펴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글로벌 분산투자하라는 뜻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기술 혁신이 만나는, 이른바 ‘데모테크’(DemoTech)라는 흐름에 올라타야 합니다. 이 위기 속에서 왜 한 곳에 올인을 합니까?”
1. 한국 혁신 기업에 투자하라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을 기업이나 섹터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직 국내엔 자본 차익에 대한 과세가 없습니다. 그 점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종합지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2. 미국 지수에 투자하라
“미국은 경쟁력 있는 기업도 많고, 위험에 충격도 덜 받고, 회복탄력성도 좋습니다. 개인이 개별 종목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S&P500, 나스닥 등 지수에 투자하는 게 좋습니다.”
3. 인컴형 자산에 투자하라
“특히 배당주는 앞으로 중요해질 겁니다. 국내는 배당을 1년에 한 번 하는 연 배당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1년 내내 들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미국은 75% 이상 분기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배당 주기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가릅니다. 인컴형 자산에 주목하고, 이런 점들을 비교해보기 바랍니다.”
재무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보유한 자산? 투자수익률? 앞으로 벌어들일 수입?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는 ‘삶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돈 관리 방법을 물었더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최문희 대표가 금융권에 발을 들인 건 보험이었다. 당시에는 법인보험대리점(GA)이 없었는데, 여러 회사의 보험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재무 설계에서 사람의 심리가 중요하다는 걸 이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생애 전반을 다루는 재무 설계를 하게 된 건, 보험업을 시작한 게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태어나서부터 사망하는 순간까지 모두 다루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터부시합니다. 종신보험이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인데요. 종신보험은 평생 보장을 해야 하고 원금도 거의 보장이 안 되는데, 죽은 다음에 보험금이 나온다고 하니 사람들이 기존에 생각하던 보험과는 아주 다른 개념이었어요. 고객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죠.”
최 대표는 금융권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자산관리 시장이 만들어지는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IMF가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손실과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기업들이 도산했고, 기업 고객만을 생각했던 은행들도 파산했다. 금융 시장에 ‘자산관리’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러면서 금융 관련 자격증이 우후죽순 도입됐다. 당시 윤병철 초대 하나은행장이 미국에서 CFP(국제공인 재무설계사)라는 자격증을 들여왔다. 앞으로 종합 자산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최문희 대표는 2002년에 실시된 1회 CFP 시험에 합격하고, 2003년 IFPK라는 회사에서 재무 설계를 위한 발을 내디뎠다.
IMF 이후 일부 기업들이 직원의 자산관리와 재테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KT 리더십센터와 삼양사 직원 대상 자산관리 교육·상담을 하면서 앞으로 재무 설계가 더 중요해지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증권사나 은행 직원이 아니어도 고객에게 투자상품을 권유할 수 있는 법이 통과돼 재무 설계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도 확장됐다. 최 대표는 CFP 시험 교재를 집필하고 재무 설계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며 꾸준히 이론을 다졌다.
“재무 설계 경험이 쌓일수록 삶을 더 깊이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리상담을 전공하게 됐어요. 돈을 대하는 태도나 그런 태도가 만들어진 심리적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일종의 재무 심리 치료인데요. 돈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습관과 태도가 돈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데, 재무 설계에서 이 부분이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자산관리 트렌트, 적립에서 인출로
최문희 대표는 심리상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2011년 FLP컨설팅을 설립해 온전하게 독립했다. 재무 설계에서 사람의 마음이 중요할 거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100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럽게 자산을 적립하는 것에서 생애주기에 맞춰 인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자산의 개념에 금전이나 부동산 같은 물적 자산뿐 아니라 삶의 가치나 일자리 같은 인적 자산도 포함하게 됐어요. 특히 노후나 은퇴 설계에서 중요하죠. 과거에는 노후 보장을 위해 3층 연금을 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이죠. 이제는 5층이 됐어요. 4층에는 주택연금, 5층에는 일이 자리하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적 재산을 통해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인출이 중요하다는 자산관리 트렌드에 맞춰 인식이 크게 달라진 대표적인 자산이 주택이다. 그동안 ‘집’은 살면서 꼭 한 채는 마련해야 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자녀와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주택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동화해야 하는 자산이 됐다.
“상담할 때 집이 너무 중요하다고 하는 고객에게는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물어봅니다. 들어보면 각자의 이유가 달라요. 나의 성취감을 보여주는 게 집일 수도 있고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인 사람도 있습니다. 나 고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나만의 공간이나 가족과 보내는 공간이 중요한 사람은 꼭 도심에 집이 있을 필요가 없겠죠. 사람들과의 교류가 중요한 사람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집이 있어야 할 테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과 가치에 따라 노후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죠. 나에게 자산이 왜 중요한가, 돈이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재무 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녀, 부모님, 직장이 기준이 되었다면 은퇴 후에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노후 준비, ‘목표’를 ‘숫자’로
삶의 가치를 고민했다면 다음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최문희 대표는 재무 설계에서 목표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목표를 시간과 금액이라는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은퇴 시점을 60세로 가정했다면, 나의 자산을 살핍니다. 현재 내가 가진 자산으로 몇 세까지 얼마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해보는 거예요. 은퇴 후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자산이 부족하다면 계획을 세워야겠죠. 삶의 방향성을 정하고 자산을 점검하다 보면 내 현실을 자각하게 되죠. 이 순간이 무척 중요합니다. 현실을 알면 퇴직금이 얼만지, 국민연금을 몇 세부터 얼마를 받는지, 월급을 좀 더 올릴 방법은 없는지 등을 고민하게 되거든요. 은퇴 시점을 늦추는 방법을 고민하거나, 가진 자산을 유동화하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내가 가진 자원과 삶의 목표 사이에 생기는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전략을 세우는 게 곧 재무 설계의 시작이다. 자산을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관리할지, 지출을 어떻게 줄일지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최문희 대표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제도를 200%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지금까지는 국민연금이 세금이라고 생각해서 다들 기본형으로만 활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추가납입제도, 임의가입제도 등을 풀옵션으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임의가입제도를 활용해서 보험료 산정 기준인 기준소득월액 상한액(2022년 기준 553만 원)에 맞춰 보험료를 내는 분들이 늘었어요.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퇴직금도 DC형인지 DB형인지 보고, DC형이라면 추가 납입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퇴직금을 운용할 때도 절세 혜택들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개인연금의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요. 비과세 상품들을 잘 살펴야 하죠.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후에 받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관리 전략을 세웠다면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지출을 줄일지, 목표를 낮출지, 투자를 더 할지 등을 조정하는 것. 자산관리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든 빚을 내서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하나의 자산에 전 재산을 두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노후 중심 자산관리는 ‘인출이 쉬운 자산’ 비중이 가장 높아야 한다. 연금이 중요한 이유다. 최문희 대표는 마지막으로 “시간은 돈이다. 돈도 시간이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조급함과 나태함을 가장 경계하라고 합니다.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기대수명이 얼마나 될지, 언제 돈을 쓸지, 투자수익률을 올리는 복리이자가 얼마인지 등의 개념도 모두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도 양적 시간, 질적 시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 말고,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가치를 분명히 세우면 시간의 질이 높아질 겁니다.”
배우 조은숙(53)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어느 순간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배우가 된 그는 데뷔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들 다 겪는다는 무명 시절도 없었다. 그러나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도 늘 가슴속에 자리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진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를 지녀 동네에서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소녀 조은숙. 연예인을 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정작 그는 네모 상자 텔레비전 속에 출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막 흔든 적이 있어요. 그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 사람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싫었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는데, 다 재미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연기는 정말 할수록 재밌어요. 결국에는 배우가 될 운명이었을까요? 신기한 일이죠.”
텔레비전 일화만 봐도 조은숙은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다. 그 감수성을 글로 풀었고, 미모 칭찬만큼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어느 날 지인이 연출한 연극을 보러 갔다가 극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다. 그게 이어져 몇 번 무대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었다. 그 계기로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출연한 조은숙은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 1997년 ‘제20회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배우를 꿈꾼 적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된 거죠. 무명 시절도 없었고요. 갑자기 얼굴이 알려진 셈인데,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어요.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죠. 연기라는 게 얼마나 치열해요. 너무 긴박하게 촬영이 진행될 때는 덩달아 쫓기면서 연기하게 되는데, 집에 돌아가면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스스로한테 너무 화가 나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구나,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진심이구나를 느꼈습니다.”
‘하늘의 인연’으로 고민 해소
“지금까지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령 불편한 옷을 입고 있으면 아무리 예뻐 보이려고 해도 어색하잖아요. 그렇다고 하면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거죠.”
조은숙이 최근까지 품고 있던 고민이다. 연기 활동은 오래 했지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KBS 2TV ‘야망의 전설’을 포함해 다수의 작품에서 비련의 여인 역할을 소화했고, KBS 2TV ‘내 딸 서영이’, ‘별이 되어 빛나리’ 등에서는 사연 있는 악녀로 분했다. MBC ‘세 친구’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맡은 것이 그나마 자신의 실제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까칠하다거나 말수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의외로 털털하다며 놀라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허당기가 많고 소녀 같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새우깡이랍니다. 계속 챙겨줘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예요.(웃음)”
이러한 고민에 한창 빠져 있을 때 MBC 일일 드라마 ‘하늘의 인연’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조은숙이 맡은 나정임은 모든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캐릭터인데, 산장 화재 사고로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처럼 된 상태다. 가끔씩 기억이 돌아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복수의 핵심 열쇠로 활약할 것을 기대케 한다.
“제가 성격이 어리바리하다 보니 실제 나와 비슷하면서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죠. 어딘가 모자란 바보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나정임을 연기하면서 제가 갖고 있던 고민이 조금은 해소됐죠. 그동안 KBS 드라마 위주로 출연해서 MBC 드라마 출연은 오랜만이었어요. 처음에는 낯을 가렸는데, 금세 제 실제 성격이 나오더라고요. 스태프분들이 ‘그냥 평상시대로 연기하면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가 자연스럽게 잘 나오고, 재밌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모성애 넘치는 엄마
‘하늘의 인연’의 나정임이 이전 캐릭터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또 있다. 바로 가슴으로 낳은 딸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조은숙은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누군가의 고모나 이모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기혼 캐릭터라고 해도 남편은 있어도 자녀는 없었다. 실제 세 딸의 엄마이기도 한 조은숙은 나정임의 모성애에 매우 공감하며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하늘의 인연’을 찍으면서 SNS로 좋은 반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고아로 자란 분인데 저의 SNS에 ‘상처를 치유받았습니다’라고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거죠. 지금도 그분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또 결혼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고아나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당시 만났던 한 친구가 SNS로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감동적이고 감사했어요.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은숙이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은 또 있다. 아니, 매우 많다. 바로 그동안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이다. 조은숙은 “내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는 내가 낳은 또 다른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끝나면 나는 떨어져 나가지만, 그 캐릭터는 살아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전했다.
그럼에도 친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2005년 광고기획사 대표인 박덕균 씨와 결혼한 조은숙은 슬하에 세 딸을 두고 있다. “가족은 산소 같은 존재다. 산소의 소중함을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산소가 없으면 죽지 않나”라고 표현한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세 딸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자랑은 물론 교육, 가치관 등에 대해 얘기했는데, 천생 엄마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원래 아이를 셋 낳고 싶었는데, 신기하게 그렇게 됐죠. 아이들이 다 다르게 생겼고, 매력도 다 달라요. 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줄 거예요. 엄마를 따라 연예인을 하는 것도 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이타적인 사람이에요. 아이들한테도 항상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죠.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고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꽃길만 걸어요’라는 표현을 지양해요. 그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 돌을 치워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그 돌을 치워주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꿈 찾는 중년
조은숙은 2012년 ‘초콜릿 복근’을 공개해 ‘몸짱 스타’로 화제를 모았다. 셋째를 출산하고 3개월 만에 20kg을 감량하고 얻은 식스팩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넘었는데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매일 근력 위주 운동을 즐기면서 한 덕분이다.
“몸매 관리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정도의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점도 없어요. 그냥 운동을 좋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젊은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촬영할 때 주얼리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담을 곳이 없었는데 마침 한 번도 안 쓴 쓰레기통이 있어서 거기에 주얼리를 담았죠. 그랬더니 그 쓰레기통이 보석함이 된 거에요. 반대로 보석함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통이 되겠죠. 그때부터 살면서 나에게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예체능에 능통한 조은숙은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배우는 늘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미국 액팅 스쿨에서 공부하기’라고 밝혔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고 남들한테 밀린다는 생각에 갈급했다. 연기에 관한 책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연기가 그 안에 갇혀버린 때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극복 중인 단계에 있는데, 미국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연기하던 때가 그립다”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제 꿈이 배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배우가 인생의 끝일지, 또 다른 뭐가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저는 여전히 꿈이 뭔지 찾고 싶고, 그래서 계속 뭔가를 배우려는 것 같아요. 저의 또 다른 버킷리스트는 대형 오토바이 타기예요. 자격증은 취득했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타고 싶어요. 연기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은숙은 주어진 삶을, 찰나의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시간 아까운 일이다. “지난 과거를 후회할 때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게 최선이고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차피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배우는 최상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우연히 하게 된 일이지만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조은숙은 배우가 되어 지금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 같다.
“중년의 시기에 힘들고 외롭고 헛헛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벌써 이렇게 살아왔나 싶고, 지나간 세월이 너무 아쉬울 테니까요. 후회되는 순간도 많겠죠.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최선이고 최상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나간 날은 돌아오지 않아요.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꼭 도전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중년 여러분, 늘 응원합니다!”
바야흐로 ‘밀키트 전성시대’다. 지난 4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비자 1000명 중 89.5%는 밀키트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었다. 대한민국 10명 중 9명이 밀키트를 사 먹었다는 의미다. 특히 50대에서 구매 경향이 가장 높았는데, 그 이유는 ‘식사 준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63%)로 나타났다. 정말 대중의 인식대로 밀키트는 간편하고 요리하기 쉬울까. 요리에 일가견 있는 독자들과 밀키트 요리를 함께 해보고, 장단점과 주의점 등을 짚어봤다. 다만 여기서 나온 의견이 정답은 아니기에 참고 정도만 하길 바란다.
밀키트 요리 비교 체험은 7월 14일, 인천 부평구 ‘조리기능장 요리조리 쿠킹클래스’에서 진행됐다. 손미자 원장과 함께 전현진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한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박선의·강경희 씨가 중년을 대표해 요리에 나섰다. 메뉴는 총 4종으로 밀키트 대표 브랜드 제품으로 선정했으며, 한식, 중식, 양식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참가자 4명의 밀키트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다. ‘밀키트를 만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4명 모두 ‘있다’고 답했다. 손미자 원장과 전현진 교수는 요리 연구 목적으로 밀키트를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년 여성인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자녀 양육과 살림을 맡아 밀키트를 사 먹는다고 밝혔다. 주기는 박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강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이었다.
박선의 씨는 재료가 많이 필요한 짬뽕을 구입해 먹어봤을 때 만족감이 높았다고 말했다. 강경희 씨 역시 재료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월남쌈과 밀푀유나베를 주로 구입해 먹는 편으로, 밀키트에 대한 만족도가 4명 중에서 가장 높았다. 강 씨는 “전처리(요리하기 전 채소를 다듬고 자르는 일)가 되어 있어 조리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가 적어서 좋다”고 밀키트의 장점을 얘기했다.
또한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주변 지인들을 생각해 보면, 바쁜 워킹맘이 밀키트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요리하기 피곤하고 번거로운 상황에서 밀키트가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손미자 원장은 “지금은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씩 밀키트 이용에 도전해보는 것 같다. 식재료비가 너무 많이 오른 상황에서 비용도 절감되고, 시간도 절약되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따른다. 다만 밀키트를 고를 때 젊은 층은 끼니 해결이 주목적이고, 중년층은 맛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추잡채와 꽃빵’부터 ‘소고기두부전골’까지
이날 요리해본 밀키트 4종은 마이셰프의 ‘고추잡채와 꽃빵’, 프레시지의 ‘바질크림 빠네파스타’, 피코크의 ‘감바스 알 아히요’, CJ 쿡킷의 ‘소고기두부전골’이다. 각각의 레시피대로 조리한 후 시식하면서 그 과정에서 느낀 점, 밀키트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식인 ‘고추잡채와 꽃빵’을 조리한 강경희 씨는 “재료 손질을 하나하나 다 해야 해서 번거로울 수 있지만, 직접 요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뿌듯했다”며 소감을 얘기했다. 손미자 원장은 “소스를 한 번에 넣지 말고 나눠서 넣으면 간이 더 잘 배고 향미가 풍부해진다”고 팁을 전했다. 맛은 식당에서 먹는 것과 비슷했는데, 전현진 교수는 “일반 소비자는 기억 속 맛과 비슷하면 맛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지의 ‘바질크림 빠네파스타’(양식)는 ‘귀찮아서 대충 해 먹었다’는 온라인 후기가 입증하듯 재료 손질부터 마지막 플레이팅 작업까지 손이 많이 갔다. 더불어 조리를 담당한 박선의 씨는 ‘짠맛’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파스타 양이 많은 것은 좋았지만, 동봉된 허브솔트를 2/3 정도밖에 안 썼는데도 짭짤하다. 보통은 허브솔트를 다 쓸 텐데, 그러면 너무 짤 것 같다”면서 좀 더 자세한 레시피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피코크의 ‘감바스 알 아히요’(양식)는 탱글탱글하고 신선한 새우가 많이 들어 있어 좋은 평을 받았다. 박선의 씨는 “처음에 새우 손질할 때 물총 제거를 해야 하는데, 요리에 관심이 없거나 레시피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것 같다”며 느낀 점을 말했다. 그 외의 조리 과정은 양식답게 쉬운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식인 CJ 쿡킷의 ‘소고기두부전골’은 두부를 제외한 재료가 모두 잘라져 있다. 즉 두부만 자르면 재료 준비가 끝난다. 조리 과정 자체는 재료를 넣고 끓이면 되니까 어렵지 않았지만, 정성이 요구되는 음식이었다.
더불어 손미자 원장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냄비에 재료를 예쁘게 담는 방법을 알려줬다. 중심부에 고기를 담고 두부를 감싸듯 놓아 꽃을 만들고, 테두리에는 흰색과 초록색 채소를 번갈아 놓는 것이다. 손 원장은 “요즘은 SNS를 활용하는 분이 많아 음식 데커레이션이 중요해졌다. 귀찮아하지 않고 많이 따라 하신다”고 말했다.
표준 레시피 마련, 염분 주의해야
“‘기호에 따라’는 어느 정도인가요? 요리할 때 가장 어렵게 느껴졌어요!”
‘일일 밀키트 요리사’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전반적인 조리 과정은 쉬웠으나 ‘기호에 따라’라는 표현은 난해했다고 토로했다. 꼭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밀키트는 레시피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기호에 따라’는 정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다는 의견이었다.
전현진 교수는 “초보자일수록 정확한 레시피가 없으면 어려워한다. 각 밀키트에 ‘표준 레시피’를 기재해줬으면 좋겠다. 표준 레시피란 이대로 요리하면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소금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표준 레시피’, ‘짜게 먹고 싶은 경우’, ‘담백하게 먹고 싶은 경우’ 등이 적혀 있으면 소비자가 느끼기에 밀키트의 장점이 보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미자 원장은 밀키트에 염분 함량이 높은 것을 우려하며, ‘저염식’ 식사가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손 원장은 “밀키트의 소스나 양념에는 조미료 MSG(글루탐산나트륨)가 많은 편이다. 밀키트를 자주 먹어서 짜고 단 음식에 중독되면 살도 찌고 고혈압·당뇨병 등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밀키트의 염분 성분 문제는 공론화되어 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4개 제품군(감바스 알 아히요 제품군 22개, 부대찌개 33개, 불고기전골 23개, 짬뽕 22개)의 총 100개 제품의 영양성분을 분석한 결과, 51개 제품에서 1인분 나트륨 함량이 세계보건기구(WTO) 1일 나트륨 섭취 기준치(2000㎎)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1일 기준치를 두 배 이상 초과했다. 소비자단체는 밀키트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체험을 통해 밀키트에서 소스 또는 양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맛을 좌우하기도 하고, 염분이 많아 우리 몸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밀키트를 조리할 때 자신의 입맛이나 건강을 생각하며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 결국 기호에 따르라는 말인데, 그 기준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사회 전반의 흐름도 엿볼 수 있다. 밀키트 업체는 이러한 분위기를 고려해 친환경적인 밀키트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0세 시대 시니어에게도 생애주기에 따른 예방, 인지교육,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10년 전부터 인지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온 대교가 시니어 케어서비스 ‘대교 뉴이프’를 통해 어르신을 위한 세계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니어 뉴 라이프 솔루션 대교 뉴이프는 ‘눈높이’ 학습지로 잘 알려진 대교의 자회사다. 지난해 1월 대교의 사업부서에서 시작해 올해 7월 독립법인으로 출범했으며, 고령화 시대에 달라진 시니어의 생애주기에 맞춘 서비스들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주요 서비스는 노인 장기요양사업, 시니어 전문인력 양성, 시니어 라이프 토털 케어서비스, 대교 뉴이프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크게 네 가지다.
대교 뉴이프의 시니어 라이프 토털 케어서비스의 강점은 ‘인지 케어’다.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콘텐츠가 많아지는 시점에, 여전히 지류형 교재와 방문케어를 고집하는 것에도 대교의 철학이 녹아 있다. 한지훈 라이프솔루션사업부 부장은 “인지 관련 교육이 필요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베이비붐 세대로 종이가 더 익숙하다. 지역에 따라 인터넷이 없는 가정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디지털 콘텐츠도 개발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더 많은 어르신을 만나기에 지류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대교의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기존 학습지 교사와 서비스 인력의 시니어 전문성 강화를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원과 민간자격증(시니어 인지놀이 지도사, 시니어 브레인 트레이닝 지도사, 신체활동 지도사) 과정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어르신의 학교, 데이케어센터
대교 뉴이프의 데이케어센터는 어르신의 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선택권 존중 운영 체계’다. 데이케어센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꿈의 호수촌’ 모델을 유심히 살폈다. 일본의 요양 시설은 대부분 ‘자립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교 뉴이프 데이케어센터는 인지케어에 더 중점을 두었다. 배정혁 장기요양사업부 부장은 “대부분의 요양시설에서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해 어르신들이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면, 대교 뉴이프 데이케어센터는 대학교 수강 신청하듯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같은 시간을 있더라도 어르신들이 더 즐겁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케어센터는 서울시 공식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에 맞춰 설계됐다. 광명, 분당, 목동, 울산, 해운대점이 있으며, 최근 가맹점으로 분당에 1개소가 추가로 개원했다. 분당 1호점의 경우 오픈 4개월 만에 정원이 다 찼으며 대기자가 50명가량 된다.
방문요양센터도 대교 뉴이프의 인지케어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방문요양 서비스는 어르신의 건강을 확인하고 가사를 돕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데, 대교 뉴이프는 직접 개발한 콘텐츠를 활용해 신체·인지 등을 강화해주는 데 집중한다.
인지 강화 콘텐츠로 신뢰성 높여
대교 뉴이프가 직접 개발한 ‘브레인 트레이닝 키트’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 활동 교육 서비스다. 키트 하나가 한 달 과정으로 교구 1개와 교재 4권으로 이뤄져 있다. 1, 3호는 인지 위주, 2, 4호는 정서 위주로 되어 있다. 인지 콘텐츠는 김기웅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자기 주도형 기억증진학습법(MESL-E)’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정서 콘텐츠는 작업치료사협회의 감수를 받아 콘텐츠 신뢰성을 높였다. 교구의 경우 소근육 자극을 통해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키트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인 난이도다. 그 외에도 경증 치매 어르신에게 적합한 난이도의 ‘브레인 트레이닝 워크북’을 개발했으며, 경도인지장애 이전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마이 시니어 다이어리’ 교재도 만들었다. 액티브 시니어가 두뇌 강화 활동을 할 수 있는 ‘30일 30종 두뇌트레이닝700’도 있다. 기업에서 실시하는 인·적성 검사와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 높은 교재로 기존에 보지 못했던 문제 유형들이 수록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매일 뇌활’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것을 대교에서 독점으로 1권을 들여와 선보인 것이다.
콘텐츠는 30일을 기준으로 하루에 두 페이지씩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다연 라이프솔루션사업부 대리는 “30일이라는 숫자와 하루에 정해진 분량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을 준다”면서 “오늘 하루 두 페이지를 완성했다거나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는 데서 오는 정서적 성취감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오는 8월부터는 브레인 트레이닝 키트를 사용한 방문 인지케어 서비스를 론칭한다. 정식 서비스 출시 전 광명시와 MOU를 맺고 치매안심센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먼저 시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전화보다 방문 서비스를 더 선호해 40~50명의 대기자가 서비스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방문 인지케어 서비스는 대교 뉴이프 홈페이지에서 월 8만 원으로 신청 가능하다.
한지훈 부장은 “아직 시니어 라이프 관련 시장은 시작 단계”라면서 “더 많은 기업이 뛰어들어 인지케어 시장이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 서울, 부산 순이다. 경기도 중장년에겐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서울 중장년에겐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가 있다면, 부산 중장년에겐 ‘부산광역시 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이하 부산장노년센터)가 있다. 그 이름처럼 일자리 관련 사업에 주력해왔지만, 중장년의 다채로운 삶을 응원하기 위해 커뮤니티 지원 및 교육, 사회참여 활동 등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중이다.
부산장노년센터는 2016년 10월 부산광역시에서 지정하여 운영하는 장노년 지원 전문기관으로, 부산에 거주하는 만 50세 이상 중장년 세대의 사회참여를 이끌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 및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지원한다. 그중에서도 신중년 인생학교 ‘하랑’과 생애설계 커뮤니티 지원사업인 ‘아리’는 부산 액티브 시니어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센터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또래와 배우고 성장하는 인생 캠퍼스
‘신중년 놀이터’로도 불리는 인생학교 ‘하랑’은 중장년 개인의 역량 및 경험을 활용한 교육을 개설해, 지역민들의 사회참여를 도모하는 사업이다. 자신의 재능을 동년배와 나누고 싶은 부산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참여자는 재능기부 형태로 중장년 대상의 교육 강좌를 열어 또래와 소통하고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동시에 개인의 역량도 향상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연간 상·하반기로 나눠 4개월씩 진행되며, 한 과정당 1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 동화구연지도사, 로봇강사 양성과정, 드론 기초과정 등 취미·여가 및 자격증 교육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총 13팀이 참여 중이다.
하랑과 함께 주목받는 센터 사업으로 ‘아리’가 있다. 아리는 사회공헌, 일자리, 학습, 문화 활동 등과 관련된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형태다. 생애설계·신문화 확산 관련 활동 또는 지역사회·취약계층 지원 등 공익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커뮤니티가 대상이 된다. 또는 센터 내 프로그램 참여 후 동기들과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결성한 모임도 지원받을 수 있다. 세대 통합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50+세대가 구성원의 50% 이상인 경우도 지원 범위에 속한다(단 5인 이상 참여). 하랑과 마찬가지로 연 2회 4개월 단위로 모집하며, 80만 원의 활동지원금이 나온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지원금을 비롯한 센터의 조력을 통해 모임 안정화를 넘어 협동조합 설립도 꿈꾼단다. 현재 온라인 판매 및 협동조합 개설 동아리, 아동학대 인형극 동아리, 드론 동아리 등 총 10개 팀이 지원받고 있다.
"함께 가는 길은 멀리 갈 수 있다" -‘하랑’ 책놀이지도사 이옥경 강사
“노인복지 현장과 교육기관에서 치매 예방 및 인지력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의 강사로 활동했어요. 지난해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50+생애재설계대학을 다녔는데, 당시 방문한 부산장노년센터 직원을 통해 ‘하랑’에 대해 알게 됐죠. 내가 활동하는 분야의 역량이 강화됨은 물론이고, 시민들에게 유익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제 삶의 만족도도 향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노인 인지활동 책놀이지도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랑을 통해 제 강의를 듣는 분들은 노인 책놀이지도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계시는데요. 이를 발판으로 노인 시설이나 치매안심센터 등에 취직해 지역 어르신의 건강 지킴이로 거듭나길 희망합니다. 일자리 연계가 아니더라도, 일차적으로는 개인에게도 유익한 강좌이기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혼자보다는 길동무가 있어야 더 멀리, 오래 갈 수 있다고 하죠. 센터와 커뮤니티 회원들이 제가 가는 길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막연한 노후에 소속감을 심어주다" -‘아리’ 펀북놀이터 구민서 대표
“제가 대표로 있는 펀북놀이터 동아리는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사업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수업하는 과정이었는데, 당시 지원사업은 6개월로 끝났죠. 이후 회원들이 각자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속감이 결여된 점이 고충이었죠. 마침 부산장노년센터 ‘아리’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지금은 ‘아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펀북놀이터 동아리’라고 소속을 밝혀 소개하고 있어요. 말뿐인 게 아니라 심적으로도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에요. 센터에서 동아리를 널리 알려주신 덕분에 회원들의 활동도 늘어났고, 저 또한 북콘서트 진행 기회도 얻게 됐죠. 혹시 주변 중장년 중에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공신력 있는 센터의 지원을 받아보고 싶다면 부산장노년센터를 찾으시라 권해드립니다. 나이 들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닌,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인생, 한 권의 책이 됩니다
부산장노년센터는 ‘신중년 생애전환지원팀’을 두고 이들 세대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책 및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한다. 팀에서 진행하는 대표적인 사업으로 ‘부산광역시 휴먼북도서관’이 있다. 사업명 속 휴먼북(Human-Book)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곧 하나의 책과 같다는 교훈에서 착안한 단어다. 부산시 휴먼북도서관은 ‘인생의 경험을 나누는 도서관’으로도 불린다. 독자들은 읽고 싶은 휴먼북에 열람 신청을 하고, 이후 대상과 마주 앉아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생생한 경험을 전해들을 수 있다. 종이 책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메시지를 체득한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자신의 인생 경험과 경륜, 전문지식에 대해 재능기부를 원하는 신중년(만 50~69세)이라면 휴먼북 대상자로 신청 가능하다.
이밖에도 부산장노년센터는 고령화 대비 노후 진단 및 생애설계 상담, 종합재무설계 서비스, 신중년 적합직종 양성교육, 50+생애재설계대학 네트워크, 부산50+인턴십, 장노년 전직지원 및 사회공헌 프로그램 등의 사업을 통해 부산 중장년들의 노후를 응원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사업들을 잘 유지하면서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부산장노년센터가 진행하는 사업 정보 및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면, 센터에서 운영 중인 ‘50+부산포털’을 통해 확인해보자.
부산장노년센터는 부산시 중장년들에게 노후의 이정표를 제시하며 든든한 동행자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부산 중장년들에게 양질의 환경과 교육, 커뮤니티, 일자리 등을 제공할 계획이라는 변재우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부산시 중장년 인구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습니다. 시니어의 어떤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 센터를 운영하고 계신가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경기도나 서울시와 비교해 부산시 중장년들의 인생 후반전 준비는 미흡한 편입니다. 그에 반해 노후 준비나 생계를 위한 일자리 욕구는 높은 편이죠. 모든 분을 만족시키긴 어렵겠지만, 가능한 한 많은 중장년이 후반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보조금 사업인 ‘60+일자리 사업’, ‘시니어 인턴십’, ‘고용노동부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을 비롯해 민간 일자리 사업인 ‘부산형 50+인턴십’, ‘해양쓰레기 정화사업’ 등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최근에는 사회공헌 일자리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늘어나 관련 분야로 매칭해드리고 있습니다.
Q. 센터를 방문하는 시민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찾아오나요?
우선 퇴직 후 일자리 고민이나 인생 이모작 설계를 위해 방문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밖에도 다양한 고민과 기대를 품고 이곳을 찾아오시지요. 개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생애 재설계 컨설턴트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노후 준비 진단을 통해 다양한 정보 제공은 물론 센터나 부산시 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까지 통합적으로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저마다 인생 후반전에 필요한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적절한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Q. 상반기 동안 중장년이 가장 만족한 사업은 무엇인가요?
주택보증공사(HUG)와 함께 진행한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입니다. 해양쓰레기에 대한 문제를 신중년 일자리와 매칭해 진행했는데,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사회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반응이 긍정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은퇴 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풀타임 근무보다는 적은 시간을 할애하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선호하는데, 그 점이 충족되어 만족도와 참여도 또한 높았지요. 기분 좋은 성과를 낸 덕분에 함께한 주택보증공사가 올해 계속 지원을 약속해 하반기에도 동일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Q. 센터를 방문할 부산 중장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만 해도 지역마다 캠퍼스나 센터가 있지만, 부산에는 우리 센터 하나뿐이죠. 모든 부분을 충족하긴 어렵겠지만, 중장년의 의견을 하나하나 수렴해가며 우리만의 지원책과 문화를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다들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노후 준비에서 최근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득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다. 과거에는 ‘노후에 모아둔 자산이 얼마여야 하는가’가 노후 대비 자산 준비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사망 전까지 끊기지 않고 현금 창출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50대 이상 퇴직자들이 퇴직 전 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재정관리’다. 또한 120세 시대에 중요한 자산으로 떠오르는 것은 ‘인적 자산’이다. 전문가들은 연금으로 최소생활을 준비하고,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나의 가치를 올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인적 자산 관리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퇴직자들이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의 노후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보자.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50대 이상 퇴직한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퇴직 전 미리 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가 되는 것’에 대해 조사했다. 응답자 중 37.5%가 미리 준비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으로 ‘재정관리’를 꼽았다. 특히 연금 준비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보였다. 응답자의 약 70%는 연금저축, 연금보험 등 개인연금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국민연금을 더 받을 수 있게 신경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연금 외에 ‘주식이나 펀드 투자’(27%)와 ‘의료비 관련 괜찮은 보장 보험’(21%)을 준비해뒀으면 좋았겠다고 후회했다.
이동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개인연금으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모습”이라면서 “투자를 통해 노후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은퇴 이후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재정관리 다음으로 준비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은 ‘퇴직 후 일자리 계획 및 준비’다. 응답자의 약 67%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부업을 준비하거나, 자격증 등을 미리 공부하거나, 재취업·창업 준비를 미리 시작할 걸 후회했다.
이어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묻자 ‘일자리로 소득 마련’을 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퇴직금·저축자금·투자자금 활용’이 뒤를 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소득 공백기를 대비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자 ‘재취업·창업 등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답변이 많았으며, ‘퇴직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고도 했다.
이동근 연구원은 “일의 목적에는 자아실현과 같은 가치 실현도 있겠지만, 이번 설문 조사는 다른 결과를 종합해볼 때 은퇴 직후 소득 공백기에 생활비를 마련할 소득원으로서 일자리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퇴직 후 소득 공백기에 일하거나 근로기간을 늘리겠다는 답변을 통해 노후 생활비에 일이 가지는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결국 퇴직 후에 중요한 것은 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후 연금으로 수입이 없을 때를 대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노후에 모아둔 자산이 얼마여야 하는가’가 노후 대비 자산 준비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사망 전까지 끊기지 않고 현금 창출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더불어 소득이 꾸준히 발생할 수 있도록 ‘일’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노후 대비 자산 준비’란 ‘얼마나 풍족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미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퇴직했더라도, 지금부터 나의 자산을 점검하고 현실에 맞는 자산 관리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