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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지앵 농부 충주의 땅을 와인에 담다
- “그렇다면 인생을 바꿔야지!” 새벽 2시, 야근 후 돌아와 죽어도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어제까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남편은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땅에 심은 건 포도나무였지만, 부부는 꿈을 심었노라 말한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이뤄진다 하고, 아내는 뭐든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꿈은 자연히, 그리고 자연이 이뤄가리라는 것이다. 테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한다. 충주의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 레돔 테루아’(이하 작은 알자스)는 소설가 아내 신이현(57)과 농부 남편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53)의 꿈을 심은 땅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직접 과일을 농사지어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작은 알자스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웰컴 드링크’처럼 내추럴 와인을 내왔다. 풋사과 시드르였다. ‘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더니, ‘꼬르르르’ 미세한 탄산이 잔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맛은 어떤가 하니, 마치 와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할까? 깔끔하면서도 은은하게 산뜻함이 감돌았다. 단순히 ‘맛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걸맞은 단어를 고르던 차, 아내 신이현이 제대로 설명에 나섰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과일을 수확해 착즙한 뒤 필터링이나 살균 등을 거치지 않고 만든 와인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이 준 그대로 발효해서 만든 거예요. 즉 그 과일이 자란 땅이나 한 해의 기후 등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같죠. 가령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나온 와인은 심플한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보는 거예요. 고로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습니다. 과일이 자라던 땅과 나무,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즐기면 그뿐이죠.” 열매가 좋아하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술, 내추럴 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땅마다 스며 있는 농부의 땀방울이 다름일 테다. 더군다나 오롯이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엔 가히 그 땅에 농부의 철학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미니크는 어떤 농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키우는 농부”라 일컬었다.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워야 해요. 일반적으로 포도밭을 한다고 하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고, 그것을 수확해 큰돈을 얻는 게 목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다릅니다. 나무와 땅이 있다면, 우린 땅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 땅을 살리는 기쁨이 더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농사짓는 방법도 다른 거죠.”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으로 도미니크는 ‘생명역동농법’을 택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기운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적극 반영한다. 꽃식물이나 잎식물, 열매식물 등 각기 다른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단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미니크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옮길 때 항상 별자리 달력을 펼쳐놓고 식물에게 좋은 날을 찾는다. 와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가령 포도를 따거나 착즙할 때는 열매에게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한다. 씨를 뿌려 열매를 수확하고 내추럴 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인간은 ‘돕는 자’의 역할을 할 뿐 그밖의 모든 것은 자연의 힘에 맡긴다. 그 이름처럼 ‘내추럴’(Natural)하게 말이다. 애당초 땅에 그러한 철학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의 삶에도 그러한 양식이 깃들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이런 부부를 보고 마치 물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산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아내 신이현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농사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수확을 위해 인간의 손이 가장 덜 가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로는 초반에 아주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농부의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만 결국 자연스럽게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찾아오죠. 물론 몸은 고단하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자연에 맞춰 산다는 게 엄청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그게 좋더라고요.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니 소소하지만 매 순간 성공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농업의 꽃 술, 농부의 손으로부터 부부는 매 순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타자로서 일련의 과정을 듣노라면 매 순간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위대한(?) 서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오고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듯 포도농사와 와인 양조라면 프랑스의 여건이 더 나았을 테다. 농사에 관해선 고집스런 도미니크지만,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아내의 의견이 컸다. 사실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느 땅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남편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밭을 보러 다녔어요. 피레네산맥 근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환경도 괜찮았죠.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 낯설었어요.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포도 따는 외로운 동양 할머니로 늙어갈 걸 상상하니 그건 싫더라고요. 마침 한국에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는 없길래, 도미니크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권했죠. 그렇게 파리의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남편은 농사를 짓고 싶고, 아내는 한국에 살고 싶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바꿨다. 한국의 땅값이 얼마인지, 양조장을 짓는 데 얼마가 들지,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등등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원대한 꿈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 망해도 좋다.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새 터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기도 했고, 공공기관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사과연구소도 가보고 포도작목반에도 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과일을 직접 농사지어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돈과 수고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훈수가 더해질수록 도미니크의 철학은 되레 견고해졌다. “농업의 꽃은 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라고 봐요. 농부가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 즉 생존을 위한 것이죠. 그러나 농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니까요. 우리가 먹는 쌀, 밀 같은 농산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그 농산물로 만든 술은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술을 만드는 일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처롭고도 숭고한 농부의 삶 아쉽지만 첫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농사도 망했다. 그 후로도 장마, 가뭄, 병충해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연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농부들은 관수를 대고,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기도 했지만,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 도미니크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일궈온 것처럼, 야속할지언정 편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경험은 고스란히 초보 농부에게 귀한 밑거름이 됐다. “점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흉년이든 풍년이든 자연이 주는 것을 우리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럴수록 나무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좋고 뿌리가 깊이 나면 나무들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거든요.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먼 훗날을 위해 그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온종일 땅과 씨름하는 도미니크를 보고 있노라면 아내는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이야 꿈을 이루느라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 신이현의 꿈이 ‘농부의 아내’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한국 생활이 서툰 남편의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됐다. 생명역동농법을 위해 소똥이며 꿀벌이며 안 구해본 것이 없고, 갖가지 서류 준비며 비즈니스며 고객 응대며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기꺼이 꿈의 조력자가 된다. “도미니크가 만약 다른 일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돕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뜻깊다는 걸 느꼈고, 때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해요. 남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죠.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저도 바가지를 긁곤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미안하고, 힘들어도 도와주게 되고. 사실 이 나이에 제게 새로운 꿈이랄 건 없지만, 차차 땅과 일이 안정되면 양조장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판타지 소설이나 써볼까 상상해봅니다.(웃음)” 포도밭에서 피어나는 예술 부부가 그리는 ‘작은 알자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이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 정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힘들게 어떻게 사느냐’며 촌이 가진 소외감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전원주택 짓고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골이 주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생각은 달라요. 가령 문화, 예술 이런 걸 왜 도시에서, 갤러리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양조장에서 ‘농부 요리사 예술가’라는 작은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예술가를 비롯해 마을분들도 오시고 함께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활기가 넘쳤죠. 그렇게 밭은 수확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장으로도 쓰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렇게 자연을 향유할 때 땅도 더 즐겁지 않을까요?” 작은 알자스의 첫 와인이 출시된 지 이제 5년 차. 아직 농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와인 사업이 대박 나서 돈방석에 앉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렇다. 그저 현재처럼 원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 수익은 나중 몫이다. 그런데도 주변 이들은 흔히 “대박 나시라! 성공하시라”는 말로 그들을 재촉한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응원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사는걸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금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니 제발 그런 걱정은 넣어두셨으면 해요.(웃음) 적어도 우리는 지금 후회 없이 꿈꾸고 있다 말할 수 있으니까요.”
- 2022-07-2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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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귀촌 가구 역대 최대... 중장년, 여유로운 농촌생활 원해
- 해마다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지만, 연령에 따라 그 이유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51만 5434명으로 전년도보다 4.2% 늘었다. 귀농귀촌 인구는 2020년(+7.4%)에 이어 2년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귀농귀촌 가구(37만 7744)도 귀농귀촌 통계 조사 이래 최대였다. 귀농귀촌이 전 연령대에서 고루 늘고 있는 가운데 특히 30대 이하와 60대 가구가 전년보다 각각 5.0%, 16.4% 늘어나며 증가세를 견인했다. 귀촌 사유로는 직업(34.3%), 주택(27.1%), 가족(22.2%), 자연환경(4.9%) 등의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귀촌 사유가 조금씩 상이했는데, 2030 세대는 ‘직업’을 1순위로 꼽았다. 청년들은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취업난이 심화된 탓에 일자리를 얻고자 귀농을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농촌에 대한 인식 변화도 달라졌다. 올해 2월 농식품부가 발표한 2020년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귀농을 한 이유로 ‘자연환경’을 응답한 비중이 30.5%로 가장 많았고 ‘농업의 비전·발전 가능성’을 꼽은 비중이 23.0%로 두 번째로 많았다. 반면 40대 이상부터는 ‘주택’을 가장 많이 고려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촌 준비기간 동안 가장 신경 쓴 것 중 1위도 ‘주거지 확보’(41.1%)였다. 농식품부는 이를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제적 여파, 도시 주택 가격 폭등의 영향으로 해석했다. 더불어 도시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귀어인도 늘고 있다. 지난해 귀어인은 모두 1216명으로 지난해보다 25.7% 증가했다. 귀어인 평균 연령은 52.7세로 전년(52.9세)보다 0.2세 낮아졌다, 40대 이하 청년층은 34.2%(416명)로 0.5%포인트(90명) 증가했다. 눈에 띄는 점은 연령대별 귀어인 업종 차다. 50~60대 귀어인은 맨손어업 비율이 높았지만, 40대 이하는 주로 연안·양식어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이하는 생계를 위해 기대소득이 높은 업종을 택한 반면 50~60대는 단순 업종에 종사하면서 여유로운 어촌 생활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2022-06-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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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꾸리가 가져온 성공 귀촌 "늘 웃고 살아"
- 삶을 괴롭히는 요인이 한둘일까. 분명한 건 무슨 마귀가 우리를 함정에 밀어 넣는 건 아닐 거라는 점이다. 알고 보면 다 ‘내 탓’이지 않던가. 나를 밝은 쪽으로 데려가면 밝은 길이 열린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농부인 임채성(53, ‘순정씨네농장’ 대표)의 행장을 보면 ‘밝은 마음’이야말로 예찬할 만한 기풍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다소 기이한 종족이다. 농사로는 죽을 쑨 경험이 즐비하지만, 그의 영혼은 말짱해 방금 전 엄청 좋은 일이 생긴 사람처럼 웃고 사는 게 아닌가. 농사 실적으로 보자면 고뇌로 찌든 표정이 고여야 마땅할 안면에 재미있어 견딜 수 없다는 투의 웃음기가 정착해 차라리 신비할 지경이다. 임채성은 서울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하다 남원시 보절면 시골로 내려갔다. 귀농 제안에 반기를 든 동갑내기 아내 경순정을 어렵사리 회유해 대동하고서였다. 귀농 이유는 서울 생활에 진절머리가 나서였다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봉제공장을 다니며 밥벌이를 시작한 이래 갖가지 애환을 섭렵했던 게 아닌가. ‘아이고, 더 늦기 전에 서울을 떠나자! 한적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겨보자!’ 시골살이에 대한 오랜 동경을 더는 억누를 수 없어 서울 생활을 청산했던 거다. 여기 남원의 농촌을 귀농지로 선택한 건 일찍 작고한 형의 유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즉 귀농의 꿈도 이루고, 아울러 형수와 어린 조카들을 돌보는 일에서도 성과를 거두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 그는 후자의 목적만큼은 마침내 달성했다. 하지만 농사는 애석하게도 갈팡질팡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농사라는 게 실로 어렵더라. 뭐 하나 똑떨어지게 되는 게 없었다. 지난 7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꼴이다.(웃음)” 농사처럼 힘겨운 직업이 드물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7년이 통째 허송세월이었다? 아예 손을 놓고 지냈다는 얘기인가? “해볼 건 다 해봤다. 7년간 매달렸던 작물의 종류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거든. 오디 농사를 필두로 상추, 양파, 감자, 참깨, 포도 등등 갖가지 작물들을 차례로 편력했지만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귀농 첫해에 매입한 600평 규모의 하우스 오디농장에서 나온 연매출 1200만 원이 그간의 유일한 수입다운 수입이었다.(웃음) 그 오디 농사마저 바로 접은 건 연중 생산이 가능한 작목으로 활로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그마저 여의치 않더라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했으나 기술력, 마케팅 능력, 판로 등에 한계가 있어 자립하기 힘들더라. 나는 귀농 전에 별다른 준비나 구체적인 구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시골에 뛰어들었다. 이런 내게 돌아오는 건 매번 형태가 다른 난관이었을 뿐이다.” 준비 없는 귀농은 필패의 필살기가 아닌가? 농사 준비는 없었을망정 뭔가 믿었던 건 있었겠지? “시골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자신감. 내겐 그런 게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건 일단 내려가서 생각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귀농이었다. 물론 귀농 이후엔 최선을 다했다. 귀농기관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농가들 견학을 했으며, 내 농사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농사 또는 귀농 생활을 환상적으로 판단하진 않았을 테지만, 농업을 만만하게 봤던 건 아닌지? “뭘 모르면 더 용감하다지 않던가?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농사 물정에 어두운 채 무작정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대차게 덤벼들었으니까. 고백하자면 난 꽤나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 산에도 놀러 가고, 호박전을 부쳐 이웃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술을 즐기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농사를 짓는 나날을 머리에 밑그림으로 그려뒀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특히 내가 아무리 땀을 쏟아도 마땅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게 농사더라.” 텃세에 마을을 떠날 생각도 했지만 임채성은 농사와 더불어 인생의 오후를 유쾌하게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예단했던 셈이다. 하지만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은 없다. 농업은 더구나 용을 쓰고 진을 빼야만 지속이 가능한 직종이다. 그는 귀농 이후 상당한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농업의 실상을 인식하고 정신을 번쩍 차렸던 것 같다. 그러나 성과가 돌아오지 않기는 매한가지. 뭐랄까, 터무니없을 지경의 근면과 노동을 퍼부어도 농사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기차게 뚫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자 생계 문제가 화급해졌다. 이쯤에서 그는 농외소득 획득을 위해 뭐든 돈 될 만한 일을 찾아 밖으로 내달렸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노가다’를 뛰어 일당을 받았고, 양계장 일용직이나 산불감시원, 환경미화작업원 등으로 참여해 수입을 얻었다. 이런 생활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농사와 부업을 병행하는 거다. 사실상 농사보다 부업으로 올리는 수입이 더 많다. 아내는 요양보호사 일로 힘을 보태고 있고.”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무난한가? 흔히 텃세에 고심하던데. “농촌의 보수성은 보편적인 것이겠지만 이 지역은 좀 유난한 편이다.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더라. 이 마을엔 젊은이는 물론 귀농인도 드물다. 때문에 어르신들 중심의 폐쇄적 풍토가 한결 단단하게 고착, 유지되고 있다. 텃세를 일부러 부릴 리야 없겠지. 다만 일부 노인들께선 외지인에게 본능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느끼는 것 같더군. 나에게 대놓고 ‘당신은 아직 동네 사람이 아니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웃음)” 원주민의 불합리한 태도를 일단 너그럽게 포용하는 게 소통의 지름길이려나? 마을에 귀농인 하나가 등장하면 원주민들은 무대에 오른 배우를 주시하듯 은근히 면밀하게 지켜보게 마련이다. 저 외지인이 혹시 마을에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닐까 염려하며. 실제로 귀농인의 모난 처신이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난 서울에서 수십 년간 자영업을 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엔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지. 그러나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일부 주민들 앞에선 대책이 안 서더라. 오죽하면 동네를 떠날 생각까지 했겠나?” 결과적으로 그냥 눌러앉은 이유는 무엇인가? “마을 이장님이 극구 붙잡아서였다. 사실 일부 주민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한 사이로 지낸다. 여하튼 텃세 문제는 만만한 게 아니다. 충분히 마음을 다해도, 충분히 베풀어도 냉대를 당할 수 있으니까. 귀농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이 대목을 가장 심각하게 고려하라 말하고 싶다. 덜커덕 경솔하게 귀농 지역을 정하는 건 위험하다. 사전에 마을의 풍토를 제대로 파악해두는 게 좋겠다.” 미꾸리 양식으로 마침내 활로를 찾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꾸리 사업 역시 만만치 않아 홍역을 치렀다. 양식 개시 후 2년간은 매출이 거의 없었으니까.” 저런! 어쩌다 그런 일이? “대부분 폐사하고 말았다. 전문 농가에 문의했더니 미꾸리들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결국 양식 기술이 미숙했던 셈이지. 수질과 수온을 노련하게 관리하며 미꾸리들의 건강을 보살펴야 하는데 그게 부실했다.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결국 귀농 7년간 제대로 풀려나간 농사가 하나도 없었구나. 그럼에도 당신의 분위기는 밝고 의기양양하다. 수심이 깊어야 정상 아닌가?(웃음) “하하하! 이거 아시나? 농사 성적은 초라해 7년을 허송세월한 꼴이지만 나에게 농사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걸. 작물을 심어 성장하고 결실 맺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참으로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 농사라는 생각을 할 때에도 만족을 느낀다. 서울에서 장사할 때는 못 느꼈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기도 한다. 허리병도 생기고, 돈에 쩔쩔맬망정 농사가 재미있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낙천성이라는 정신적 체력 임채성의 농사 실적은 시원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암담할 지경으로 바닥에서 맴돌고 있다. 농땡이를 부리는 법 없이 노동력을 쏟고 공을 들였으나 현실이 그렇다. 그러나 그는 주눅 들기는커녕 그늘 없이 밝고 어디까지나 유유하다. 농사일이 노는 일보다 재미가 있다 하니 진정한 농사의 달인? 예사롭지 않은 개성의 소유자다. 농사 대신 일용직 근로로 생활비를 벌어 가족을 먹여살려 왔다는 점에서는 투철한 책임감을 장착한 인물이다. 단연 특별한 그의 미덕은 가혹한 세속 사회에서 보기 드문 도도한 낙천성에 있다. “‘당신은 도대체 왜 맨날 웃으며 살지? 그토록 밝은 에너지를 가졌으면서 농사는 왜 이렇게 부진하지?’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그렇다. 아내의 불안감을 이해하지만 난처한 상황에 처해도 내겐 별 괴로움이 없다. 긍정과 낙관으로 넘어서면 그만이라 생각하거든. 인생사 뭐든 이왕이면 즐기는 쪽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나?(웃음)” 지나친 낙관이 오히려 더 큰 난관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데? “준비가 없었던 데다 즉흥적으로 작목을 선정해 고난이 많았다. 그 모든 과정이 비싼 수업료를 치른 공부였다. 최근 나는 미꾸리를 비로소 본격 출하하기 시작했다. 곤달비를 넣은 미꾸리 추어탕 팩도 곧 시장에 나갈 것이고. 방향성이 잡힌 셈이다. 드디어 서광이 비친다는 거!” 아내 경순정에 따르면, 임채성의 낙천성과 긍정의 기질은 귀농 이후 한결 성장해 요즘은 무한긍정으로 치닫는단다. 그건 농사의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 희망을 발견한 조짐으로 보인다는 것이고. 임채성이 믿는 건 시퍼런 결기 같은 게 아니다. 낙천성이라는 정신적 체력이다. 이제 그는 마침내 어두운 터널의 끝에 이르렀다 자평하고 있다. 헛바퀴 돌던 날들과는 드디어 작별인가? 임채성 씨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자. 무작정 뛰어드는 건 그지없이 위험하다. 무엇보다 작물들에 관한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작목 선정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 수익은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라. 귀농인의 몸이 농사 체질로 바뀌는 데에만 2, 3년이 걸린다. •귀농 지역을 신중을 기해 선정하자. 마을의 인심과 문화, 농업의 현황 등을 미리 파악하라. 가급적 잠시 살아보고 결정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농토를 매입할 때 토질과 지가 외에 주a변 변수까지 고려하라. 인근에 태양광단지 같은 게 조성될 수도 있으니까.
- 2022-05-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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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원과 양로원, 실버타운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 나이가 들수록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때문에 노년층에게 주거 공간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즐거운 노후를 위해서는 어떤 주거 형태를 선택해야 할까? 노년층이 이용할 수 있는 주요 시설들의 특징과 차이점을 소개한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노인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주변의 도움 없이도 여생을 잘 보낼 주거 공간이다. 나이가 들어 점차 기력이 약해지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분가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집으로 다시 모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 이유다. 보통 노년층이 이용할 수 있는 맞춤 주거 시설은 요양원, 요양병원, 실버타운, 양로원 등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차이가 있으므로 노인의 몸 상태에 맞춰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별다른 지병은 없지만 스스로 식사나 거동이 불편하다면, 요양원이 적합하다. 요양원은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보조하지만 주사를 놓거나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의사는 상주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방문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정도로 관리가 이루어진다. 요양원은 입소를 원하는 사람의 거주지 관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만 입소가 가능하다. 등급은 총 5개로 분류된다. 입소비와 요양보호사의 간병비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므로 대상자가 20%를 부담하면 된다. 그 외 약물 처방이나 기타 진료가 필요할 경우는 외부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고, 이 비용은 모두 본인 부담이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했지만 노인성 질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요양원 대신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빠른 치료와 퇴원이 목적인 대학병원·종합병원 등 급성기 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만성기 환자를 위한 병원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며 집중 치료를 한다. 대신 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가 상주하지 않아 필요 시 개인이 고용해야 하므로 요양원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 간병비는 개인 간병이냐 공동 간병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공동 간병은 한 명의 간병인이 몇 명의 환자를 돌보는지 알아봐야 한다. 양로원과 실버타운 양로원은 의료나 요양이 아닌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다. 몸이 불편할 경우 도움을 구할 의사나 요양보호사 등이 상주하지 않는다. 종류로는 무료, 실비, 유료 세 가지가 있다. 무료와 실비 양로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노인장기요양등급과 상관없이 입소 가능하고, 한 숙소를 여러 명이 사용한다. 무료 양로원은 무연고자 혹은 기초생활수급권자 노인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100% 비용을 지원한다. 실비 양로원은 노인복지법시행규칙 제14조 1항의 2에 따른 실비보호 대상자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비용을 뺀 일정 생활비를 부담하고 입소할 수 있다. 비용은 월 48만 원 정도다. 유료 양로원은 실버타운을 말한다. 건강하고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는 만 60세 이상이 입주한다. 건강진단서와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가사 서비스와 식사가 제공되고, 수영장·헬스장·도서관·당구장 등 편의 시설에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크게 도심형, 근교형, 전원형(휴양형)으로 나뉜다. 흔히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전원형 실버타운을 고르는 것은 금물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자주 찾아온다면 도심·근교에 있는 시설이 적합하다. 반대로 평생을 전원에서 살아왔거나 전원생활에서 위안과 안정을 찾는다면 전원형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이 맞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시설 수준과 서비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보증금을 포함해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계약 전 충분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이외에도 정부에서 저소득층 노인을 지원하는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이 있다. 주택과 사회복지 시설이 복합 설치된 주거 시설이다. 입주 조건은 ‘공공주택이 만들어진 지역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다. 해당자 중 우선순위를 정해 입주자를 선발한다. △1순위는 국가유공자 또는 그 유족, 광주 5·18민주유공자 또는 그 유족, 특수임무유공자 또는 그 유족, 참전유공자 △2순위는 생계급여 수급자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 △3순위는 해당 세대의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 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이다. 다만 지자체별로 선정 기준이 상이할 수 있으니 주민센터에 문의해 시설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 2022-05-2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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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위한다면 실버타운이 정답"
- 호기심이 많다. 원체 돌아다니길 좋아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 흥미가 생긴 분야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공부하는 아빠’, 한의사 문성택 씨는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을 만날수록 아쉬웠다. 식사만 잘 챙겨도 훨씬 나아질 텐데. 나이 들어서도 내 집, 집밥을 고집하는 부모님을 향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버타운을 발견하자마자 생각했다. 이거다! 남편 문 씨가 아내 유영란 씨를 설득했다. 전국 실버타운 중 스무 군데를 추려낸 목록과 함께. 남편의 끈질김에 두손 두발 다 든 아내도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견학을 다녔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직접 다녀보니 ‘노인들 가둬두고 막 대하는 요양 시설’, ‘현대판 고려장’ 정도의 취급이 말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실버타운이야말로 나이 들어 고생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편견 때문에 노후 거주지로 고려조차 않는 게 안타까워 동영상을 제작해 올린 것이 공빠TV의 시작이다. 처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때만 해도 입주자 정원을 채운 실버타운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실버타운마다 대기자가 수두룩하다. 입주하려면 최소 몇 달, 몇 해는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견학을 위해 방문한 실버타운에서 ‘공빠TV’를 보고 입주를 결심했다며 반가워하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실버타운의 이미지 제고를 이끈 주인공, 공부하는 아빠 문 씨와 공부하는 엄마 유 씨에게 실버타운에 대해 물었다. 실버타운을 고를 때 무얼 체크해야 하나? 먼저 ‘일반 아파트형’이 아닌 ‘업체 관리형’인지 확인한다. 직접 분류하고 정의 내린 개념 중 하나인데, 업체 관리형은 운영사 측에서 고용한 직원들이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실버타운이다. 반면 아파트형 실버타운은 아파트와 똑같은 형태에 60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으나,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이 없다. 시설만 존재할 뿐 정작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일반 아파트형은 거르는 게 좋다. 다음은 보증금을 잃을 위험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화로 전세등기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혹은 보증보험을 들 수 있는지 꼭 물어보도록 하자. 직접 방문 시엔 직원들 수가 충분히 많은지, 태도는 어떠한지도 눈여겨본다. 그 다음으로 식사가 건강식으로 운영되는지,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 현황이 어떤지 체크한다. 시설만 있을 뿐 관리가 안 되거나, 막상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버타운 과대광고에 속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운영자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 운영자가 누구인지, 경영 마인드가 어떠한지, 그동안 어떻게 운영해왔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경매’, ‘부도’, ‘파산’과 관련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역시 직접 방문하기다. 직원들과 입주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실버타운 내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안 되는 유형도 있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자신의 집과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다. 고집 센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실버타운에 일찍 들어갈수록 더 오래 살 수 있다. 자가를 갖고 매일 직접 요리하며 밥 차려먹는 게 은근 고생스러운 일이라 늙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경제력이 약한 분들. 부부 기준 실버타운 생활비는 월 200만~300만 원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버타운에 입주할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달 지불해야 하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알뜰실버타운, 즉 고령자 복지주택을 추천한다. 세 번째로는 공동생활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다. 실버타운에는 공동생활 공간이 무조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느낀 실버타운의 단점은 무엇이었나? 우선 좁다. 보통의 실버타운 전용률은 공동생활 공간을 제외하면 50% 내외다. 높아봐야 70%인데, 이마저도 많지 않으니 입주 초반에는 생활 공간이 좁게 느껴질 수 있겠다. 나이 제한도 아쉽다. 현재 실버타운 입주가 가능한 나이는 만 60세 이상이다. 또한 보통 80~85세가 넘어가면 암묵적으로 입주가 제한된다. 실버타운은 일찍 들어갈수록 건강과 비용 모든 면에서 이득이기 때문에, 노인을 위한다면 미국처럼 만 55세로 제한 연령을 낮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비싸게 ‘느껴진다’는 점. 월 300만 원을 생활비로 한 번에 지출하려니 비싸게 느껴지지만, 자가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관리비, 식비, 운동 등의 취미 활동에 쓰이는 지출을 모두 합치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버타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만 60세 이상 인구는 약 1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고작 1만 세대에 불과하다. 즉 0.1%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실버타운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할수록 이 점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실버타운을 택해야 할 이유는? 독신과 부부 등 가구 형태와 무관하게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예 모르고 있거나,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로 좋은 실버타운을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알리고, 입주율을 높여서 실버타운이라는 사업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실버타운을 포함한 실버 사업은 사실 돈이 안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잘 운영되는 모범 사례가 생긴다면 실버타운 공급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버타운을 이용할 예비 입주자 입장에서도 실버타운 증가는 좋은 일이다. 양질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건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니까.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다면 어느 실버타운을 선택하겠는가. 현재 분양 중인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택하겠다. 고급형인 데다 막 지어진 신축 건물이고,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용률도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보증금으로 자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가평의 청심빌리지, 강남에 있고 최신축 건물을 자랑하는 더시그넘하우스도 좋다. 언급한 곳들 말고도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아 고민이다. 빨리 60세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최대한 다양한 실버타운에서 직접 살아보며 이점을 누리고 싶다. [TIP] 공빠TV가 추천하는 시니어 유형별 실버타운 부부 동반 입주형 부부가 입지와 주변 시설, 가성비, 전용률 등 다양한 요소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성비와 전용률 면에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를, 입지나 대형 병원 접근성 면에서는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를 추천한다. 각종 인프라가 구축된 도심에 살고 싶거나 신축 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면 서울의 더시그넘하우스가 좋겠다. 무조건 럭셔리형 90식으로 환산한 의무식과 2인 가구 부부 기준으로 생활비를 따졌을 때 1위는 더클래식500, 2위가 삼성노블카운티다. 서울 2호선 건대입구역에 있는 더클래식500은 건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건너편에 건국대병원이 있고, 주변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실버타운으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삼성노블카운티 역시 최고급 실버타운으로, 행정구역은 용인이지만 수원 영통역과 가까우며 청명산과 기흥호수를 조망할 수 있어 전원형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1인 입주형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 가구에게는 입지와 가성비를 기준으로 용산 하이원빌리지, 서울시니어스 가양타워, 서울시니어스 강남타워를 추천한다. 문화 시설이나 쇼핑 시설 유무,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여성 가구에게는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 성북 노블레스타워, 가평 청심빌리지가 안성맞춤이다. 가성비 추구형 보증금이나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전원형 실버타운이 좋다. 보증금이 저렴한 곳을 원한다면가평 청심빌리지(보증금 2000만 원), 미리내실버타운(보증금 5000만 원)이 좋다. 생활비가 저렴한 곳으로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월 80만 원), 김천 월명성모의 집(월 90만 원)을 추천한다. 반려동물 동반형 현재 반려동물 동반 입주가 허용된 곳은 없다. 그러나 부산 오시리아의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시작으로 신축 실버타운에서는 가능해질 것이다.
- 2022-05-0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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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엄 시니어타운 인기에 대기업도 출사표
- 2030년이면 7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65세를 넘는다. 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액티브시니어들이 노인 인구로 본격 편입된다는 뜻이다. 액티브시니어는 활기차면서 생산적인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 생의 대부분을 도심에서 보낸 데다 내 집에서 나이 들고자 하는 욕구도 크다. 전원생활을 즐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던 시니어타운은 이제 도심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니어타운(실버타운)은 60세 이상 시니어가 거주하며 생활, 교육, 여가,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단지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료 양로 시설과 노인복지주택 형태의 주거단지를 통칭하는 말이다. 과거의 시니어타운이 도시 외곽에서 자연을 벗 삼아 노후를 보내는 삶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도심에서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프리미엄 ‘도심형’ 시니어타운 인기 2020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자 단독가구(1인 가구+부부 가구)는 78.2%에 이르는데, 자녀로부터 독립해 생활하고자 하는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고령자 단독가구는 노후 주거 환경에서 케어 서비스와 의료 안정성을 중요 요소로 꼽는다. 도심형 시니어타운이 전원형이나 도시근교형에 비해 입주 보증금이나 생활비가 비싼 편인데도 인기를 끄는 것은 대학병원 같은 의료 시설에의 높은 접근성과 24시간 간호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액티브시니어들은 시니어타운에 들어가더라도 경제 활동, 취미·스포츠를 통한 커뮤니티, 교육·자기계발, 재능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추구한다. 식사와 생활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높다. 건강을 위한 저염·저당 식단 음식부터 하우스키핑 및 컨시어지 서비스까지, 가사 노동을 하지 않고 생활과 여가를 즐기며 교육도 받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 도심형 시니어타운은 이런 액티브시니어의 수요를 반영해 저마다 특색을 선보이고 있다. 송도병원이 설립한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의료 전문 시니어타운으로 24시간 방문간호, 맞춤형 운동 처방, 저렴한 진료비 등을 제공한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하는 삼성노블카운티는 단지 내에 어린이집과 스포츠·문화센터를 마련해 지역 주민들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더클래식500은 대학과의 교류가 특징이다. 건국대 학생들이 입주민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하기도 하고, 경험이 풍부한 입주민에게는 건국대 강단에 설 기회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롯데그룹이 대기업의 본격 실버 산업 진출 신호탄을 쐈다. 액티브시니어 중에서도 탄탄한 경제력으로 능동적 소비를 하는 베이비붐 세대인 ‘욜드’(Young Old)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시니어타운을 제시했다. 트렌디한 ‘욜드’ 겨냥, 시니어타운 ‘VL’ 롯데호텔은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 브랜드 ‘VL’(Vitality & Liberty)을 론칭하고, 시니어 맞춤형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주거단지에 접목하겠다고 발표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고, 나아가 생동감 넘치는 매일을 약속한다”는 가치 아래 롯데호텔만의 서비스 노하우를 집약, 새로운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겠다는 것. 특히 최근 ‘욜드’라고 불리는 시니어의 성향에 맞춰 ‘에이지 프렌들리’(Age Friendly)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니어타운 VL에서는 24시간 컨시어지 서비스, 주 2회 하우스키핑 서비스, 기사 동행 렌터카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자녀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시니어의 생활 편의에 맞춘 것. 인근 대형 의료기관과의 연계로 전문 의료진의 개인 맞춤형 헬스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호텔 셰프가 관리하는 맞춤형 건강 식단도 제공한다. 입주민과의 교류를 위한 문화·여가 서비스도 있다. 단지 내에 도서관, 사우나, GX 등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인문학, 미술, 운동 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열 예정이다. 롯데JTB가 제공하는 프리미엄 요트 투어 같은 여행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또한 시니어타운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반려견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펫 프렌들리’(Pet Friendly) 정책을 시작, 반려견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2024년 입주 예정인 첫 번째 레지던스 ‘VL 오시리아’는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한화건설이 조성하는 메디타운에 위치한다. VL은 574세대이며, 썬시티에서 관리하는 헬스케어하우스 408세대가 함께 구성된다. 롯데호텔은 향후 역세권을 중심으로 복합단지 중심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를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안세진 롯데호텔 대표이사는 국내 실버 산업이 2030년 168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인 만큼, 롯데호텔의 여가 산업 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VL을 통해 에이지 프렌들리 시대의 성장을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2022-05-0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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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해 시골서 서점 운영, "생각보다 잘나가"
- 한결 가치 있는 생활에 대한 열망이 그의 귀촌을 부추겼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인생을 한번 획기적으로 바꿔보자는 욕심으로 부푼 건 아니었다. ‘느림의 미학’ 같은 걸 추구하며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즐기자는 쪽에 무게를 두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귀촌을 통해 가급적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똑떨어지게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다. 그 용무란 서점 일이었다. 시골에서 서점을?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새들이야 지천이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야 마을 원주민 몇몇에 불과한 후미진 산골에서? 이건 무인도에서 혼자 ‘전국노래자랑’을 공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기획일 수 있다. 거북이를 끌고 산책하는 일처럼 요상한 이벤트이기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고서야 생존이 가능한 게 서점 사업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김미자(59, ‘그림책 꽃밭’ 사장)에겐 남다른 속대중이 있었다. 믿는 구석이 다 있었던 거다. 그 믿음이란 오직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온 것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내공까지는 아닐망정, 적어도 서점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바탕 제대로 붙어볼만한 게임으로 여겼던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그의 산골 서점은 놀랍게도 탕탕 잘나간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아동 그림책 관련 직업 활동을 했었다.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했으니까. 그림책 커뮤니티를 만들어 동네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했으며, 그림책 카페를 7년간 운영한 경험도 있다. 머릿속에는 항상 시골 생각이 들어 있었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그림책과 시골살이를 아우를 수 있는 삶을 늘 꿈꾸었던 것이지.” 김미자가 남편과 함께 이 시골로 내려온 건 2017년.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편의 퇴직금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서였다. 흔히들 귀촌지를 결정하느라 진을 뺀다. 첫 단추부터 똘똘하게 끼우기 위해 해부학 교실의 연구원처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장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루한 물색의 과정을 싹둑 잘라냈다. 숲이 있는 시골이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 여겼다. 경륜과 자신감을 완비했으니 어디에 갖다놓아도 승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리서치를 통해 몇 군데 시골 서점의 순항 분위기를 미리 눈치채기도 했다. 그는 지인이 소개한 경매 토지를 덜커덕 사들여 집을 지었다. 서점과 살림채, 그리고 북스테이 공간을 마련해 영업을 개시한 게 만 3년 전. “처음 한동안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날마다 매상과 마진을 계산하며 고민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덩달아 매출이 늘더라. 수익의 절반은 책 판매에서, 나머지 절반은 북스테이에서 발생한다. 이젠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는 날은 없다. 덕분에 부부 둘이 먹고사는 데엔 아무런 불편이 없지. 이쯤이면 노후 생계 대책으로 충분하기에 안도감과 만족을 느낀다.” 단기간에 자리 잡다니. 이 서점은 어떤 힘과 매력을 지녔기에? “가급적 질적 수준을 높게! 풍경은 예쁘게! 그런 모토를 정하고 충실하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예전에 일본의 숲속 도서관들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감흥이 컸다. 모델로 삼을 만했지. 아무리 외진 시골이라도 구색과 내용이 충실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 확인했던 셈이다.” 도시에도 특별히 공들인 서점들이 있지만 흔히 불황을 면제받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자연경관이 유력한 재료라 봐야 할까? “아동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시골 서점은 그 자연과 생명에 관한 아이들의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환경 여건으로 한몫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자연을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펄펄 뛰노는 아이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숙박을 하거나 책을 구입하는 고객층은 어떤 이들인가? “주 고객은 30~40대 부모와 아이들이다. 그림책 관련 각종 자격증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학습 차원에서 찾아오고, 시골 서점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방문한다.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당진시 일대의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아동들이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다락을 구비한 책방 공간은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되 품격을 돋워 꾸몄다. 아이들의 구미에 어울리게. 엄마들의 호감을 살 수 있게. 그림책 일색의 도서들은 모두 5000여 권.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2000여 권과 새로 구입한 3000여 권을 합쳐 공간을 채웠다. 그림책을 좋아하던가? 게임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아닌가? “아동들은 순식간에 알아차린다. 엄마가 왜 나를 책방에 데려왔나를. 그러고서 하는 말이 이렇다. 나, 책 안 봐! 오나가나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에 몰입하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떤 처방을 사용하지? “책이 싫으면 고양이하고 놀아! 마당에 나가 뛰어놀아! 그렇게 말해준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 엄마들은 책이 싫다는 아이들을 왜 굳이 이곳에 데려올까? 책을 강요하면 자칫 책을 더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든 책을 접하게 하려는 선한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겠나? 그러나 엄마들의 방법엔 문제가 있다. 책을 학습이나 훈육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는 늘 한다. 연령에 맞는 책을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나직이 읽어주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겐 가르침보다 위로가 필요하니까.” 마을 풍경을 볼까? 딱히 빼어나거나 미묘한 설렘을 자아내는 풍치는 아니다. 변방의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농촌 마을이다. 야트막한 야산들이 강강술래를 하듯이 1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빙빙 감싸고돌아 푸근하다. 김미자는 이 평온한 풍경에 안심을 느끼는 것 같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산과 숲이 있으니 불만이 있을 때면 애먼 남편에게 툴툴거리기보다 나무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해소하겠지. 그에겐 자연과 사계의 순환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자연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실 김미자의 귀촌은 자연에 가까이 가자는 목적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그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연이 좋다지만 날마다 산을 바라보다 보면 권태감이 밀려들기 십상이다. 거칠지만 생동하는 도시의 풍속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권태를 느낄 겨를 없이 분주한 게 시골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적 충격과 자극이 하나도 없다는 건 큰 단점이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도 아쉽다. 주변에 예술가라도 하나 산다면 해갈이 될 테지만.” 마을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시골에도 지혜로운 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시골 할머니들의 평온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에 느끼는 게 많다. 대체로 할머니들은 인간관계에서보다 땅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생을 사는 것 같더라. 그들은 아무리 노쇠했더라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 호미로 땅을 긁는다.” 도시의 노인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야생의 에너지. 시골 노인들에겐 그런 육화된 근성이 있다. “맞다. 처신에 깨끗하고 이치에 밝은 할머니들과 사귈 수 있다는 건 시골 생활이 주는 값진 행복의 하나다.”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은 놀이로 시골이라고 눈 밝고 경우에 환한 이들이 흔할 리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삐딱이’ 그룹이 있어 활약을 하는 게 아닌가. 김미자도 초기 한동안 유별난 이웃에게 좀 시달렸지만 적절히 타협하며 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포용했다. 보다 덜 소중한 것에 보다 더 소중한 걸 훼손하고 싶진 않았던 것일 텐데, 그에게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소박한 삶의 지속이다. 물구나무 선 세상을 뒤집을 힘이야 없지만, 최소한 자신만큼은 악다구니와 돈과 허영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것이다. 귀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는 예상은 딱 적중하진 않았다. 그러나 거둔 성과와 만족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뭐냐면,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 그리고 헨리 니어링 부부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우선은 돈벌이를 하는 내가 돈에서 해방되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생활과 자본에 길들여진 남편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귀촌으로 부부가 함께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만도 어디인가? “나는 오늘도 들에서 냉이를 캐왔다. 시골에 살며 산나물 채취로 식사를 한다는 것, 육식을 덜 하고, 덜 소비하고, 덜 욕심부린다는 것, 이건 뿌듯한 일이다.” 한때 암과 싸웠다지? 고통이 극심할 때면 어떤 생각을 하나? “암! 무서웠다. 자주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지극히 병약했지만 엄격한 절제로 삶을 완성한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 성찰의 습관도 그에게서 얻어왔다.” 심지어 가뭄에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면서도 가여워 눈물을 흘렸던 권정생. 그는 성자가 아니었을까. “평생 병고에 시달렸지만 강하고 꼿꼿한 분이었다. 한번은 외투를 사다드렸더니 고사하더라. 이미 있는 외투 하나로 충분하다며. 스콧 니어링도 소유에 무심해 옷 한 벌로 살았다. 그러니 어떻게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무욕으로 살았던 고수들을 무슨 수로 따를까.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돈은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을 놀이로 즐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르다. 일에 치여 산다. 속엔 답답한 게 많지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겉으로는 웃는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갖고 산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고 있으니 크게 어긋난 건 아니다.” 인생을 깊이 읽고 있다는 안도감. ‘나’를 진정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속에 산다는 확신. 귀촌의 나날을 선용하고 있다는 자부심. 속세에서 흔히 맛보기 어려운 감흥들로 김미자는 기쁜 것이다. 표정은 근엄하지만, 내부는 햇살로 밝아 바야흐로 인생의 봄날을 다시 만난 셈? 김미자 씨가 주는 귀농 Tip 시골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함부로 덤벼들 일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 하나만 믿고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 인문학적 소양과 실력, 그리고 예술적 눈썰미를 미리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기 전에 까먹어도 무방할 정도의 소자본으로 도시에 작은 북카페를 차려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 장소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가급적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찾자.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나 명소 인근도 잘만 하면 유망하다.
- 2022-04-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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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귀촌 부부의 감탄,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 적막한 산촌이다. 길섶은 잔설로 하얗다. 해발 500m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토박이들은 이곳을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친다. 좀 전에 빠져나온 문경의 도심이 현세의 바깥처럼 멀어진다. 세사의 아귀다툼도, 부질없는 불화도 틈입할 수 없는 오지이니 소란과 소동을 싫어하는 이에겐 낙원? 이창순(67, 흙집펜션 산모롱이 대표)에겐 그랬다. 조여진 마음의 현(絃)을 탁 풀어놓고 느린 선율처럼 여생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적지라 봤다. “귀촌지를 물색하다가 이 마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야, 여기다! 더 볼 것도 없다! 내심 환호성을 질렀지.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셈이다.(웃음)” 건설회사 토목 담당 직원이었던 남편 이경구(69)를 따라 도시를 전전하며 살았던 이창순에게 귀촌은 오래 묵은 숙원이었단다. 나, 언젠가 시골에서 살리라. 새들이 지저귀는 뒷산을 산책하고,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을 즐기고, 밤엔 별처럼 떠오르는 상념을 건져 올려 새끼줄을 꼬듯 긴 글을 쓰며, 나 마침내 산골 자연의 일원으로 돌아가리라. 그런 염원이 샘물처럼 퐁퐁 솟았던 모양이다. 진심으로 간절하면 뛰어들게 마련이다. 그는 상주시에 있었던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과녁을 향해 직진하는 화살과도 같은 쾌속질주로 귀촌을 결행했다. 이창순이 이 산촌에 옴짝달싹 못 하게 꽂힌 건 수려한 산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착한 가격으로 나온 너와 지붕 황토집이 그를 행운처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준공검사도 마치지 않은 신축 흙집의 평화롭고 참신한 자태에 억누르기 어려운 감흥을 받았던 것. 결함이나 난관이 없는 귀촌이었던 셈이다. 매사 꼼꼼하면서 과묵한 성정의 소유자라는 남편 역시 아내의 주동에 선선히 따랐단다. 결국 이창순은 이상적인 귀촌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며, 이제 낭만과 만족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때로 따분하면 변덕을 부리는 법. 인간의 반응이 어떠한지 조사하기 위해 심술쟁이가 된다. 뜻하지 않게 남편이 너무 이른 실직을 했다는 게 아닌가. 어휴, 이제 뭘 먹고 살지? “우리가 귀촌한 게 15년 전이다. 당시 남편은 겨우 50대 초반이었다. 한창 일할 때라 상주시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주말부부로 살기로 하고 귀촌을 했던 거다. 그런데 귀촌 1년 만에 남편이 실직했다. 좋았던 시절이 단 1년 만에 끝날 줄을 어떻게 알았겠나? 어휴, 이제 뭘 먹고 살지? 생계가 순식간에 막막해지더라고.(웃음)” 미리 모아둔 생활자금이 없었나? “가진 재산 전부를 긁어모아 540평 대지에 지은 황토집을 샀다. 남편의 수입으로 살면서 은퇴 이후를 대비할 경제활동을 천천히 모색하면 된다고 구상했었는데, 돌연한 실직으로 비상 상황을 맞이했다. 그렇다고 기죽어 지낼 일도 아니지. 뭔가 돈벌이를 찾아내면 된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외떨어진 적막강산 시골에서 호구책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결혼 이후 난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식 농사가 최고려니 하고 집 안에서만 살았으니까. 이런 내가 시골에서 가능한 돈벌이가 무엇일까? 궁리 끝에 답을 찾았다. 전에 곶감 명산지인 상주시에 살며 감 깎기 알바를 했던 경험을 살려 곶감을 만들어 팔면 되겠다는 착상이었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론이었나? “아니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김에 역할 바꾸기를 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기대나 원망을 가질 거 없다, 이제부터 돈은 내가 벌겠다! 이런 결심을 한 뒤 내가 찾아낸 아이디어였다.” 수고한 당신, 이제는 쉬라? 그 진취적인 발상에 부군의 반응은 어땠나?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부러워할 제안인데.(웃음) “별 뚜렷한 반응이 없었다.(웃음) 우리 세대 남성들이 흔히 그렇듯, 남편 역시 지독한 가부장적 위신을 중심에 놓고 살았다. 그게 하루아침에 변하겠나? 그러나 시골에서 15년을 살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더라. 이건 귀촌으로 얻은 소중한 선물의 하나다.” 과거에 견줄 바 없이 원만한 부부 관계를 누린다는 얘기다. 도시에서와 달리 부부가 하루 24시간을 거의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게 시골 생활이다. 이는 금슬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정반대로 상대의 단점을 새삼 적나라하게 감상하고 괴로워 악몽을 꾼 사람처럼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이창순은 후자의 늪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거다. 스스로 먼저 변함으로써 남편의 변화까지 유도하고자 했다. 이 웅장한 의도가 귀촌의 한 가지 목표였는데 결국 성과를 거두었다는 얘기다. ‘발효곶감’을 개발해 곶감 사업은 어땠을까? 우아한 전원생활을 밑그림으로 삼은 그의 귀촌은 곶감 생산에 뛰어들면서 돌연 귀농으로 선회했다. 감나무 과수원에서 붉게 영근 감을 사들여 곶감으로 가공 판매해 수익을 거두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농사치고 만만한 게 있던가. 시행착오가 많았다. 강인한 체질과 바지런한 기질로 안팎을 이룬 그였지만 힘에 부쳐 고꾸라질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 “허! 그거 집어치우라니까!” 듣느니 매양 남편의 퉁바리였다. 그러나 그는 귀를 틀어막고 탕탕 행진했다. 남편의 핀잔을 차라리 응원의 함성으로 받아넘겼다. “나에겐 장점이 하나 있다. 뭐 하나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른다. 일단 곶감 농사에 뛰어들었으면 10년은 맞붙어봐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덕분에 이젠 알아주는 이가 많은 곶감 생산 농가로 도약했다. 그러기까지 시련이 숱했지만.” 어떤 시련이었나?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첫해엔 초보자로서는 과도한 물량인 감 4만 개를 사다가 곶감을 만들었다. 근데 별로 판 게 없었다. 초기 한동안의 연매출이 불과 기백만 원에 불과했다. 판로를 찾기 어려워서였다. 이상 기온으로 5만 개의 곶감이 상해 모조리 폐기한 해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침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SNS 마케팅을 적극 구사했다. 그보다 유력한 건 재래식 발효곶감을 개발한 데에 있다. 곶감 농가들이 다들 유황 훈증을 해 상품을 만든다. 유황을 써 주황빛을 내고 곰팡이도 잡는 것인데, 자칫 과도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유황 훈증이 위험하다 판단한 나는 자연 건조 방식을 활용했다. 유해균 제거를 위해 오미자액과 식초를 감 표면에 도포했고.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내놓은 게 ‘이창순 발효곶감’이다. 이건 차별화된 고품질 곶감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소비자들의 호감을 사게 됐다.” 곶감을 전공으로 삼아 오랫동안 허우적거렸지만 결국 좋은 학점을 받았다. 이창순의 종목은 곶감에 그치지 않는다. 투 트랙 전략으로 귀농 열차를 가동해 달린다. 민박을 병행하고 있으니까. 민박 영업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손님이 넘쳐 방이 부족했던 이웃의 민박집에서 이창순의 방 하나를 빌려 쓴 게 동기였다. 옳다구나, 이제 민박이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황토집은 물론 주변의 순수한 자연환경이 민박의 최적 조건에 해당한다는 걸 비로소 깨닫고 민박 사업에 시동을 걸었던 거다. “남편을 설득해 집을 증축했다. 토목 전문가인 남편이 직접 황토방 세 칸을 지었다. 이름을 지어 붙이고 블로그에 스토리를 올리는 것으로 민박을 시작했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고 땀을 쏟았다. 당장의 성과가 어떻게 나오든 10년은 밀고 가야겠다는 각오로.” 펜션이나 민박집의 경쟁이 치열하다. 업체들의 운영 실정은 어떻다고 보나? “내가 한때 문경시 민박협회 대표를 맡았는데, 다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잘되는 곳은 대략 10%에 불과할 정도지. 우리 집처럼 잘되는 곳은 드물고.” 인터뷰 중에도 예약 전화가 걸려오고, 투숙객들이 들이닥친다. 겨울철 비수기임에도 씽씽하게 돌아가는 것. 이 민박집은 어떤 매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일까? “‘조용하게 제대로 쉬어가는 민박집’이라는 테마를 정해 퀄리티를 높였다. 가령 방에 TV를 들여놓지 않았는데, 고요한 산골에서 가족들이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즐기길 바라서다. 원하는 이들에겐 산나물 일색의 자연 밥상을 조식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요소들에 만족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자리가 잡혔다.” 성장 과정은 순조로웠나? “곶감 사업과 마찬가지로 초기엔 어려웠다. 집어치우라는 남편의 볼멘소리를 번번이 들었거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블로그 마케팅이다. 블로그 관리에 잠시만 소홀해도 손님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고서 운영에 충실을 기했다. 그게 성장의 토대였다.” 성공한 귀농 사례로 이름났더라. 소득은 얼마나 올리지? “곶감과 민박을 합친 작년 매출이 1억 1000만 원이다. 강소농 대열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연매출 목표치 3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달려가야 한다. 요즘 내가 생각한다. 아하,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웃음) 얼마든지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사는 거다. 귀농으로 나를 재발견한 셈이지. 사업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새롭게 변모시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는 자신에게 찬사를 바친다. 어라, 내 안에 사업 기질이 있었네? 긴 잠에서 퍼뜩 깨어난 사람처럼 놀란 눈으로 자신이 거둔 성과를 돌아보며 남모를 도도한 성취감을 느낀다. 밝은 미래에 관한 비전으로 설렌다. 한없이 수동적으로 소심하게 살았던 과거의 이창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없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장부 이창순이 등장한 것이다. 과거의 삶은 상처의 전시장에 가까웠던가? 그는 여성이자 아내로서 괴롭게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일상의 구속과 아픔을 이 산촌에서 글로 써 청산한 걸 귀농이 준 최상의 선물로 여긴다. 그가 쓴 글 더미들은 책으로 출간됐다. 이창순 씨가 주는 귀농 Tip •반드시 부부가 함께 귀농하자. 부부 협업이 아니고선 난관을 헤쳐나가기 어렵다. •귀농엔 강인한 체력도 필수다. 나만의 건강법을 고안해 일상적으로 실천하자. •정책자금에 의존하는 귀농은 위험하다. 자칫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어서다. •민박을 할 경우 무엇보다 입지 여건부터 따져야 한다. 맑은 계곡을 낀 곳이라면 최적지다. 청결한 침구, 따뜻한 사교, 고객 불편 사항의 신속한 처리 등도 관건이다. •SNS 마케팅을 구사하라. 판로 확보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 2022-03-1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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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귀농·귀촌 생활, "남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 은퇴 후의 전원생활을 떠올려 보는 막연했던 꿈, 퇴직을 앞두었거나 이미 직장생활을 끝낸 은퇴자들이 시골살이를 꿈꾸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아이니 새싹삼 이선호 대표(57)는 고민 없이 시작된 귀농이었다. 그렇다고 꾸준한 준비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귀농귀촌의 마음가짐이라면 그저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남 담양에서 귀농생활을 벌이고 있는 이선호 대표의 즐거운 모습을 보았다. "귀농 5년째 들어갑니다. 패션 유통업 쪽에서 30년 일했죠. 그중에 15년 넘게 해외 주재 근무를 했고요. 사실은 어머니가 홀로 계셔서 내려왔어요. 편찮으신 어머니 모시고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을까 하다가 이걸 만났죠. 새싹삼. 처음엔 진짜 소일거리였어요. 엄마와 재미있게 살려고 했지 이걸 목표 삼지 않았어요. 하다 보니 직장생활 임원 때보다 수입이 더 낫군요. 귀농 품목으로 소개할만한 아이템이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면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묻지 않았는데도 상대편에서 무엇이 궁금할지 먼저 파악하고 대뜸 속 시원히 술술 풀어놓는다. 알고자 하는 것을 모두 알려주고 싶어 하는 열린 마음이 시원시원하다. 전직 유통업계 출신의 노하우가 이런 데서도 발휘된다고나 할까. 애초 별생각 없었다고는 말하나 농업도 비즈니스라고 하면서 그동안의 치열했던 이야기를 뜸 들이지 않고 꺼내어 놓는다. “지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귀농을 한 사람들이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듣고 싶어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불안하고 걱정도 되니까 별걸 다 알고 싶어 하죠. 또한 배우고 싶어 하고요. 거리가 멀면 제가 수시로 찾아가보기가 어렵지만 근방으로 귀농하시면 모든 노하우를 일일이 다 가르쳐 줍니다." 섣부른 시작을 경계한다. 선(先)경험, 후(後)결정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죽하면 “일단 내 작업장 한 귀퉁이를 내어줄테니 일정 기간 연습해 보라고까지 합니다”라고 말할까. 아무리 면밀히 준비했다 해도 무수한 시행착오에 맞닥뜨리고 귀농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알아간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선 경험자의 노하우가 막막한 이들에게 용기가 된다는 걸 그는 안다. “목숨 걸고 가르쳐 준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새싹삼은 아주 어린 인삼이다. 생소한듯하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건강채소로 요즘에 식당에 가면 애피타이저처럼 몇 뿌리씩 서비스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 년씩 재배하는 인삼과는 달리 단 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인삼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서 가정에서도 건강식으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웰빙채소다. -귀농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면요? “물론 있죠. 우선 자본이 얼마였는지 묻습니다. 1억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 스타트한다면 1억 5천 정도는 들것입니다. 물가랑 인건비가 겁나 올랐잖아요. 모종 가격은 제외하고요. 모종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면되고요. 먼저 군(郡)에서 도와주는 귀농센터에 꼭 들러보는 게 필요합니다.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당연히 매출도 물어보죠. 작년 매출 4억이고 올해는 6억 하려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쩔지 모르겠지만 안 되면 내년에 더하면 되지요 뭐. 어떤 상황 변수가 있을지 늘 생각해 둡니다." 시종일관 유쾌하다. 툭툭 던지는 구수한 전라도 말투가 친근함을 만들고 지금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전달한다. 그렇다 해도 하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되었을 리가. 끝없이 연구하고 잠도 못 자며 밤새워 돌보고 고민하던 시간도 말속에 간간히 들어있다. "초반 2년간은 안 팔려서 머리 싸매고 겁나 고생했죠. 자리 잡는 동안 잠도 못 잤어요. 특히 내가 애써서 키운 어린 싹들이 죽어갈 때는 밖에 나오기도 싫었어요. 술도 마시고 많이 슬퍼한 적이 있었죠.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어요. 어느 순간 매출이 확 올라가더군요. 쇼핑몰이나 외식업체 쪽으로 판매하는데 오늘도 밀리는 주문량 소화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야기 하는 그를 보니 앞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입었다. “하루 종일 이 복장인데 흙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흙이 튀어서 주머니에 고여 들곤 해서요. "농사?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풀 겁나 많아요." 말하는 도중에도 시종일관 상자도 옮기고 흙을 토닥이며 풀도 뽑고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다. -이 품종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40년간 딸기 농사를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지고 돕곤 했죠. 딸기와 벼농사를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 너무 힘든 걸 알았어요. 일하는 여건이 그것보다 더 나은걸 찾다가 서울 귀농 박람회에 갔을 때 새싹삼하는 분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전 준비를 꼼꼼히 했죠. 재배 농가를 수시로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유년 시절의 농사 경험이 자연스럽게 마음먹기에 이른 점도 있었을 겁니다.” “이건 부부가 함께 해야 합니다. 새싹삼은 일정 기간 이상 키우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예민한 품종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자라서 판매해야 하는 작물이다 보니 늘 누군가가 지켜보아야 합니다. 시설원예를 하는 동안엔 부부 중 한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해요. 저도 서울에 문상 갈 일이 있으면 밤차 타고 갔다가 새벽에 내려옵니다. 그래야만 성공합니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 하듯 일단은 잘 보살펴 키워서 정직하게 팔면 모든 사업은 성공합니다. 유통의 기본이죠.” 그러면서 철저한 준비만이 안정적 정착을 보장한다는 걸 힘주어 말한다. 준비도 안 하고 덤비는 열 명 중 여섯 명은 빚쟁이가 되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선(先)경험을 강조한다. 먼저 재배할 작목파악을 확실하게 하고 시장조사나 전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요즘 트랜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한두 달 실습도 해보고 실제로 파는 연습과 공판장 연구, 본인이 판매할 루트도 알아보고 미리 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 인터넷 쇼핑몰을 위한 매체활용 능력도 귀촌 전략의 필수임을 덧붙인다. -판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요. “유통 회사 출신이다 보니 고객님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전화 통화 한 번이면 그 고객은 끝까지 갑니다. 쌀은 공판장에서 가져가지만 새싹삼은 공판하는 순간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팔아야 합니다. 공판장을 통하지 않고 내가 가격 조절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어요, 장점으로 만들어야죠. 무엇보다도 정성으로 고객을 대합니다. 고객이 억울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외식업체면 그 업체가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하고 상대가 이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입니다.” -하루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건가요. “14시간 일합니다. 이곳 150평 농장의 작물들을 관리하고 오후엔 택배포장하고 바쁩니다.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어머니랑 재미있으려고 했는데 많이 못 놀아드리고 여기에 매달려 있어서 죄송스럽죠. 동네 주민 세 분과 또 아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하루쯤은 쉽니다. 어머니랑도 놀고 나도 사람 만나는 거 즐깁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골프도 칩니다.” -귀농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첫째, 반드시 철저히 준비하고 시작할 것. 두 번째, 내가 덜 벌어도 상대를 만족시킬 것. 이 두 가지만 하면 자동적으로 돈이 따라와요. 잘하면 명예도 따라옵니다. 또 하나 보탠다면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업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2022-02-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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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선호 1위 자격증, 지게차운전기능사
-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유망 직업을 소개한다. 취업 시장에서 기업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기술자격증은 지게차운전기능사로 나타났다. 이에 많은 시니어들이 은퇴 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50세 이상 남성들이 가장 많이 딴 국가기술자격증은 지게차운전기능사였다. 1만 616명이 취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게차는 다른 중장비에 비해 장비 조작이 비교적 쉽고,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취업이 용이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더욱이 올해부터 지게차운전기능사는 과정 평가형으로도 자격을 취득할 수 있어 관심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원래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은 시험으로 취득하는 검정형이었다. 과정 평가형 국가기술자격은 실무 중심 교육·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 평가를 거쳐 합격 기준을 충족한 사람에게 국가기술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산업현장에서 지게차운전기능사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실무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같이 자격 취득 방법도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지게차는 소형 지게차와 일반 지게차로 구분할 수 있고 취득 과정도 다르다. 3톤 미만 소형 지게차는 별도 시험 없이 이론 6시간, 실기 6시간 등 총 12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국토교통부에서 발행하는 소형 지게차 면허 취득이 가능하고, 조종이 가능하다. 반면에 일반 지게차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소형 지게차뿐 아니라 3톤 이상 지게차도 운전할 수 있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취득 방법 기존의 검정형 자격증 시험은 필기·실기시험으로 구성돼 있다. 필기와 실기 모두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만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 필기시험 난이도는 일반적인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치기 쉽다. 필기시험 합격률이 50% 정도밖에 안 되므로 공부는 필수다. 특히 신중년들은 공부를 오랜만에 하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기에 학습이 어렵다는 호소가 줄을 잇는다. 때문에 젊은 층보다 공부를 배로 열심히 해야 한다. 다행히 2020년 1월부로 출제 문제가 이론 중심에서 실무 중심으로 개편됐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지게차 주행, 화물 적재, 운반, 하역, 안전 관리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다. 실기시험은 4분 이내에 정해진 코스를 주행하며 화물 적재, 운반, 하차 등을 해야 한다. 실기시험의 포인트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짧은 시간 안에 정해진 작업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지게차를 여러 번 운전해보며 잔 실수와 긴장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시험은 상시 검정 시행 종목으로 상세한 시험 일정 정보는 큐넷(Q-net)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큐넷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며, 국가 자격시험 원서 접수, 합격자 발표, 시험 일정 등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다. 다양하게 취업 가능해 지게차운전기능사를 요구하는 기업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주로 각종 건설업체 및 제조업체에서 수요가 높다. 그뿐 아니라 물품을 상하차해야 하는 배송 및 운송, 항만업체에서도 지게차 운전면허를 소지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알아야 할 것은 기업은 지게차 운전뿐 아니라 다른 업무도 병행 가능한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목표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개발할 것을 추천한다. 현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입의 나이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20~30대 젊은 층도,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50대도 많아지고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고 배척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다만 3년 정도 일을 해야 업계에서 경력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70대 고령자도 일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게차운전기능사로 경력을 쌓으면 개인 사업자로 전환해 일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비 지원 중장년 교육 활짝 사회적으로 퇴직 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정부도 40~60대를 위한 지게차 운전 양성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항만공사(IPA)와 한국폴리텍대학, 경기도 생활기술학교가 인기 있다. 이들 세 곳에서는 전액 국비로 전문 교육이 이뤄지며, 자격증 취득에 이어 취업이 이뤄지도록 지원해준다. 단점은 1년에 한 번 교육을 실시하며, 보통 15~20명으로 교육생을 소규모로 모집한다는 점이다.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고 빠른 취득을 원한다면 중장비 전문 교육 학원을 찾아 교육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민내일배움카드가 있으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이밖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자리지원센터에서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으니 거주지를 고려해 자신에게 꼭 맞는 방법을 찾아보자. 지게차 운전 교육기관 인천항만공사(IPA) 인천항만공사(IPA)와 노사발전재단이 공동으로 ‘중장년 생애경력설계 및 지게차 운전원 인력 양성과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1기, 2021년 2기 교육이 진행됐다. 중장년층의 항만 물류 기능인력 양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교육은 2주간 지게차 이론 및 70시간 실습, 생애 설계 교육 6시간 등 자격증 취득과 중장년의 새로운 경력 설계에 특화된 내용으로 구성됐다. 실제 제1기 교육생 13명은 전원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그중 6명은 일자리 연계를 통해 물류업체 취업에 성공했다 한국폴리텍대학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에서는 제2의 직업으로 새 출발을 원하는 40~60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 및 취업 지원을 4개월 과정으로 해준다. 자동차과 안에 지게차 운전 교육 과정이 있고, 지난해 18명이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캠퍼스에서는 연령에 상관없이 실업자를 대상으로 전기지게차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경기도 생활기술학교는 경기도 지원으로 경기과학기술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다. 경기도 생활기술학교는 5060세대를 위해 자동차진단평가 전문가 과정과 지게차운전기능사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은 주말에 진행돼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은퇴 후를 준비하는 이들도 자격 취득 및 취업 연계가 가능하다. 지게차운전기능사 과정은 2021년 개설됐는데 20명 정원 모집에 43명이 접수해 2.2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게차운전기능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새삼 입증됐다. ◇“지게차 운전 자격증, 활용도 높아”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지게차 교육 과정 1기 수료생 최명종(53) 씨 최명종 씨는 앞서 얘기한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지게차운전기능사 교육 과정 1기 수료생이다. 그는 무역 회사에서 15년 동안 근무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실업자가 됐다. 회사의 총책임자였던 그는 현장 근무도 했기 때문에 지게차 자격증 취득이 이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예전 직장에서 지게차 운전을 했었어요. 그때는 자격증이 없어도 운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전사고 때문에 자격증이 필수가 됐잖아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공부를 하는 와중에 아내가 이런 교육도 있다고 알려줘서 관심이 많았던 터라 수업을 듣게 됐어요.” 교육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주말 동안 이뤄졌다. 그사이 최명종 씨는 7월에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고,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취득 공부를 계속해 약 한 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최 씨는 “필기시험은 교육을 들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됐고, 실기시험은 과거에 지게차를 탔던 경험 덕분인지 어렵지 않았다”고 후기를 전했다. 그는 현재도 일을 할 때 지게차를 타면서 자격증을 잘 활용하고 있다. 또한 최명종 씨는 하반기 실시된 2기 교육에는 보조 강사로 함께했다. 뿌듯함을 느끼는 한편, 교육생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기 실습을 할 때 보니깐 여성분들도 계셨는데 긴장하고 겁을 먹는 분이 많았어요. 시험 시간이 4분으로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잘 지켜야 하고 선도 밟으면 안 되잖아요. 운전면허시험과 같다고 보면 되는데 지게차 운전사로 활동하는 분들도 면허 코스를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이와 함께 최 씨는 많이 개선됐지만, 교육 장소가 협소하고 지게차가 2대밖에 없어 연습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최명종 씨는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은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취득할 것을 추천했다. 그는 장점으로 “재취업이 쉽지 않은데, 자격증이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특히 3톤 이상 중장비 운전은 필수인 시대가 됐다”고 꼽았다. 반면 단점으로는 “꼬집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지게차라는 한 카테고리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중장비 자체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신중년에게 자격증이 좋은 이유에 대해 “일에도 활용되고,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귀농·귀촌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저는 자격증을 꼭 활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과정이 좋았고, 자기 성취감이 컸다”고 강조했다.
- 2022-02-04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