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귀농·귀촌 생활, "남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기사입력 2022-02-24 09:51 기사수정 2022-02-24 09:51

패션업계 임원 출신의 똑 소리 나는 귀농 개척기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은퇴 후의 전원생활을 떠올려 보는 막연했던 꿈, 퇴직을 앞두었거나 이미 직장생활을 끝낸 은퇴자들이 시골살이를 꿈꾸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아이니 새싹삼 이선호 대표(57)는 고민 없이 시작된 귀농이었다. 그렇다고 꾸준한 준비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귀농귀촌의 마음가짐이라면 그저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남 담양에서 귀농생활을 벌이고 있는 이선호 대표의 즐거운 모습을 보았다.

"귀농 5년째 들어갑니다. 패션 유통업 쪽에서 30년 일했죠. 그중에 15년 넘게 해외 주재 근무를 했고요. 사실은 어머니가 홀로 계셔서 내려왔어요. 편찮으신 어머니 모시고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을까 하다가 이걸 만났죠. 새싹삼. 처음엔 진짜 소일거리였어요. 엄마와 재미있게 살려고 했지 이걸 목표 삼지 않았어요. 하다 보니 직장생활 임원 때보다 수입이 더 낫군요. 귀농 품목으로 소개할만한 아이템이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면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묻지 않았는데도 상대편에서 무엇이 궁금할지 먼저 파악하고 대뜸 속 시원히 술술 풀어놓는다. 알고자 하는 것을 모두 알려주고 싶어 하는 열린 마음이 시원시원하다. 전직 유통업계 출신의 노하우가 이런 데서도 발휘된다고나 할까. 애초 별생각 없었다고는 말하나 농업도 비즈니스라고 하면서 그동안의 치열했던 이야기를 뜸 들이지 않고 꺼내어 놓는다.

“지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귀농을 한 사람들이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듣고 싶어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불안하고 걱정도 되니까 별걸 다 알고 싶어 하죠. 또한 배우고 싶어 하고요. 거리가 멀면 제가 수시로 찾아가보기가 어렵지만 근방으로 귀농하시면 모든 노하우를 일일이 다 가르쳐 줍니다."

섣부른 시작을 경계한다. 선(先)경험, 후(後)결정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죽하면 “일단 내 작업장 한 귀퉁이를 내어줄테니 일정 기간 연습해 보라고까지 합니다”라고 말할까. 아무리 면밀히 준비했다 해도 무수한 시행착오에 맞닥뜨리고 귀농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알아간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선 경험자의 노하우가 막막한 이들에게 용기가 된다는 걸 그는 안다. “목숨 걸고 가르쳐 준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새싹삼은 아주 어린 인삼이다. 생소한듯하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건강채소로 요즘에 식당에 가면 애피타이저처럼 몇 뿌리씩 서비스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 년씩 재배하는 인삼과는 달리 단 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인삼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서 가정에서도 건강식으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웰빙채소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귀농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면요?

“물론 있죠. 우선 자본이 얼마였는지 묻습니다. 1억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 스타트한다면 1억 5천 정도는 들것입니다. 물가랑 인건비가 겁나 올랐잖아요. 모종 가격은 제외하고요. 모종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면되고요. 먼저 군(郡)에서 도와주는 귀농센터에 꼭 들러보는 게 필요합니다.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당연히 매출도 물어보죠. 작년 매출 4억이고 올해는 6억 하려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쩔지 모르겠지만 안 되면 내년에 더하면 되지요 뭐. 어떤 상황 변수가 있을지 늘 생각해 둡니다." 

시종일관 유쾌하다. 툭툭 던지는 구수한 전라도 말투가 친근함을 만들고 지금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전달한다. 그렇다 해도 하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되었을 리가. 끝없이 연구하고 잠도 못 자며 밤새워 돌보고  고민하던 시간도 말속에 간간히 들어있다.

"초반 2년간은 안 팔려서 머리 싸매고 겁나 고생했죠. 자리 잡는 동안 잠도 못 잤어요. 특히 내가 애써서 키운 어린 싹들이 죽어갈 때는 밖에 나오기도 싫었어요. 술도 마시고 많이 슬퍼한 적이 있었죠.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어요. 어느 순간 매출이 확 올라가더군요. 쇼핑몰이나 외식업체 쪽으로 판매하는데 오늘도 밀리는 주문량 소화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야기 하는 그를 보니 앞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입었다. “하루 종일 이 복장인데 흙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흙이 튀어서 주머니에 고여 들곤 해서요. "농사?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풀 겁나 많아요." 말하는 도중에도 시종일관 상자도 옮기고 흙을 토닥이며 풀도 뽑고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이 품종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40년간 딸기 농사를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지고 돕곤 했죠. 딸기와 벼농사를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 너무 힘든 걸 알았어요. 일하는 여건이 그것보다 더 나은걸 찾다가 서울 귀농 박람회에 갔을 때 새싹삼하는 분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전 준비를 꼼꼼히 했죠. 재배 농가를 수시로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유년 시절의 농사 경험이 자연스럽게 마음먹기에 이른 점도 있었을 겁니다.”

“이건 부부가 함께 해야 합니다. 새싹삼은 일정 기간 이상 키우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예민한 품종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자라서 판매해야 하는 작물이다 보니 늘 누군가가 지켜보아야 합니다. 시설원예를 하는 동안엔 부부 중 한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해요. 저도 서울에 문상 갈 일이 있으면 밤차 타고 갔다가 새벽에 내려옵니다. 그래야만 성공합니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 하듯 일단은 잘 보살펴 키워서 정직하게 팔면 모든 사업은 성공합니다. 유통의 기본이죠.”

그러면서 철저한 준비만이 안정적 정착을 보장한다는 걸 힘주어 말한다. 준비도 안 하고 덤비는 열 명 중 여섯 명은 빚쟁이가 되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선(先)경험을 강조한다. 먼저 재배할 작목파악을 확실하게 하고 시장조사나 전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요즘 트랜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한두 달 실습도 해보고 실제로 파는 연습과 공판장 연구, 본인이 판매할 루트도 알아보고 미리 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 인터넷 쇼핑몰을 위한 매체활용 능력도 귀촌 전략의 필수임을 덧붙인다.

-판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요.

“유통 회사 출신이다 보니 고객님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전화 통화 한 번이면 그 고객은 끝까지 갑니다. 쌀은 공판장에서 가져가지만 새싹삼은 공판하는 순간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팔아야 합니다. 공판장을 통하지 않고 내가 가격 조절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어요, 장점으로 만들어야죠. 무엇보다도 정성으로 고객을 대합니다. 고객이 억울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외식업체면 그 업체가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하고 상대가 이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입니다.”

-하루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건가요.

“14시간 일합니다. 이곳 150평 농장의 작물들을 관리하고 오후엔 택배포장하고 바쁩니다.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어머니랑 재미있으려고 했는데 많이 못 놀아드리고 여기에 매달려 있어서 죄송스럽죠. 동네 주민 세 분과 또 아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하루쯤은 쉽니다. 어머니랑도 놀고 나도 사람 만나는 거 즐깁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골프도 칩니다.”

-귀농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첫째, 반드시 철저히 준비하고 시작할 것. 두 번째, 내가 덜 벌어도 상대를 만족시킬 것. 이 두 가지만 하면 자동적으로 돈이 따라와요. 잘하면 명예도 따라옵니다. 또 하나 보탠다면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업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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