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8일 난 평생 잊을 수 없다. 이유는 40년간 몸담아 온 직장을 하루 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잃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교육계에 퍼진 정년 단축이 내게 먼저 닥친 것이다. 그렇다고 난 미리 준비한 계획은 전연 없었다. 만 61살 일손을 놓기에는 빠른 나이다. 당장 내일부터 할일이 없다. 가진 기능이나 특기도 없고 남과 같이 기운이 세거나 막노동을 할 정도의 힘도 없다. 또 바둑이나 장기, 화투 등 오락도 취미도 없고 내놀만한 운동기능도 전연 없다. 오직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샛님같은 아주 여린 봄꽃같은 난 모든 일에 쓸모가 없었다.
퇴직 후 생활은 기상하여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전철을 타고 종점에 도착해 값싼 점심과 목욕이 전부며 할 일이 없이 멍하니 약장사 구경만 종일토록 관람하며 흘러간 유행가에 젖어 마실 줄 모르는 막걸리 한 두잔에 취하거나 해져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길 몇달째 참다참다 폭발한 아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살바에는 다 죽자고” 짜증을 낸다. 이러길 수차례 어느날 울분과 흥분을 참지 못한채 길거리를 방황하는 난 가슴이 답답하여 길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지나가는 고등학생의 신고로 119가 몇분만에 도착하여 난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평생 처음타본 응급 앰뷸런스에 계속 말을 시키는 간호원 구급대원의 봉사에 처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수분 후에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기본 검사와 링겔 등 응급처치를 받고 병실 구석 후미진 코너 침대에 눕혀졌다. 사방을 살펴보니 별별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방 목숨을 거둘 것 같은 나이든 할머니, 뼈만 앙상하여 마치 해골같은 머리가 흰 할아버지, 한쪽 발이 없는 중년의 남자, 울다지쳐 버린 갖난애, 거기다가 지독한 소독약 냄새.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온전한 것이 없었다. 아비규환 속 분위기에 젖기도 전에 난 담당 간호원에게 이제 멀쩡하니 퇴원하겠다고 말하니 반기는 기색을 하며 뒤늦게 찾아온 아내가 퇴원 수속을 해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내방에 누워 명상에 잠겼다. 병원에서 본 환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내 나이 61세,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기는 너무 젊은 나이임을 실감했다. 뭔가 해봐야하고 한번 죽이되든 밥이되든 시도해 보고 후회해도 늦지않을 것 같아, 난 큰 결심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벼룩시장’, ‘교차로’ 등 길가에 비치된 정보지를 봤다. 내게 맞는 일감은 없었다. 4호선 전철을 타고 오늘은 머리도 식힐 겸 친구와 만나 울분을 풀 셈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친구와 어울려 동물원을 걷는데 눈에 뜨인 광고판에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동물해설사’ 양성기사가 확 눈에 들어왔다. 난 친구에게 컨디션이 안좋아 먼저 간다는 핑계로 일찍 돌아와 동물원에 확인 전화를 했다.
나는 동물해설사이자 한 마리의 영리한 원숭이
“여보셔요. 거기 서울동물원 기획과죠. 동물해설사를 뽑는다는데, 나이 제한은 없나요?”
“어떤 서류를 갖추어야 하나요?”
난 급한 마음에 여러 가지 궁금한 문제를 애원하다시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다양한 서류를 갖추어 인터넷 접수를 했다. 다행히 서류전형엔 합격했다. 그뒤는 몇 주간 강습이었다. 강의 내용은 수많은 동물과 멸종위기의 동물 종보전, 자연생태계 복원, 인간의 탐욕으로 남획을 막고 인간과 공존하는 법 등 다양한 전문적인 교육이었다. 교육이 끝나면 필기시험과 면접 실연을 통해 실제 동물 앞에서 뭇관중이 보는 가운데 동물해설을 하며 최종선발을 거쳐 43명을 뽑는데 난 당당히 합격했다. 난 기뻐 날뛰면서 방안을 빙돌며 괴성을 질렀다. 아내가 놀라 날 쳐다보았다.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 같았다.
이렇게 환희의 순간을 만끽한채 동물원의 출근은 계속되었다. 동물원의 일과는 날 새로운 변신을 꾀하게 했다. 이유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그날 체험학습을 올 아동 수 대로 당근, 배추잎(케일), 사료 등을 손질하는 것인데 당근은 하나하나 씻어 크기가 알맞게 자른 뒤 바구니에 준비하며 물기를 닦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별로 해설을 하며 체험교육을 시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최고의 광대처럼 재미있고 교육적인 산 교육이어야 인기가 있어 환영받는다. 즉 해설 방법 및 내용은 이러하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셔요. 저는 동물해설사 xxx입니다. 제 별명은 영리한 원숭이구요. 오늘은 여러분을 남미 페루에서 많이 사는 기니피그 먹이주기, 다음엔 말, 나귀 다른 점 관찰, 다음에 사막에 사는 미어캣은 무엇을 즐겨먹나요? 여러분이 만약 이 침에 쏘인다면 생명이 위험하지만 이 동물은 즐겨먹는 전갈을 맛있게 먹지요. 다음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 먹이주기, 꼭 장갑을 끼고 먹이를 줘야해요 하며, 케일잎과 배추잎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다음엔 원숭이, 그리고 염소, 양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먹이를 주면 돼요. 먹이를 던지거나 동물을 귀찮게 하면 안돼요.”
머리를 흔들며 재롱을 떨고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귀여운 표정, 손짓으로 윙크를 날리며 분위기를 잡고 해설이 끝나면 지도일지를 깨알만한 글씨로 가득 채운 뒤 일과를 반성하고 정리한 뒤 귀가하는 것인데 이 생활이 어찌나 즐거운지 나의 즐거운 변신은 대만족이며 거기다가 듬직한 해설사 월급을 받는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하듯이 건강챙기고 시간보내고 급료 받는 나이든 늙은이로는 최대한 대우며, 피복, 모자, 소지품, 간행물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정말 교직에 버금가는 변신이다. 나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변신을 준비하고 실천했다.
실패의 나날에서 난 성공의 열쇠를 찾았다
-모형항공(글라이더, 고무동력 입상 및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동물원 해설이 없는 쉬는 날의 무료함을 달래고 내 취미생활 건강을 위해 고심하던 어느날 난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 블랙이글 축하비행과 공군참모총장배 스페이스 첼린져 모형항공기 대회를 참관했다. 아주 멋진 행사며 이 늙은 나이에도 나도 참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다. 내 자신도 할 것 같아서 서울과학사를 찾아가 모형항공기 셋트를 구입했다. 설명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만들었다. 밤을 새우면서 거의 완벽하게 조립하여 인근학교 운동장에서 시험 비행을 해봤다. 처음 만든 모형비행기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날고 체공 시간은 1분대였다. 몇 번을 날려봐도 아주 잘 날라서 기분이 아주 좋았고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몇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예선대회 즉 경기, 인천 예선대회가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에서 있었는데 그 대회에 참가했다. 내 차례가 되어 공군 보조원이 50m 후방에서 글라이더를 날려 주는데 왠지 몹시 서툴러서 믿음이 가지 않아 몇 번을 뒤돌아 보면서 뛰는데 글라이더가 영 상승을 하지 않고 왼쪽으로 “휙” 곤두박질하며 앞날개가 활주로 바닥에 부딪쳐 두동강이로 갈라져 1차 비행은 0점이었다. 난 당황해서 날개 조각을 회수하고 2차 비행 순서만 기다리고 있는데 남은 한 대 글라이더도 날개가 튼튼하지 못해 날개 중앙에 금이 가있었다. 급히 강력 접착제를 바르고 순서를 기다렸다.
두 번째 마지막 시합에서는 옛학교 과학주임이 와서 보조역할로 글라이더를 뒤에서 잡아주어 사수, 조수, 보조가 맞아 멋지게 바람을 가르며 높은 창공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앞날개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망가진 채 공중에서 빠른 속력으로 활주로에 꼴아 박았다. 더 이상 기회도 없고 글라이더도 없어 퍽 아쉬웠지만 난 대강 비행기 잔해를 끈으로 묶어 보루지 박스에 쳐넣고 승용차편으로 귀가했다. 1년간 공들인 노력이 허사였고 그 공역과 재료비 등이 너무 아까워 눈엔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무참하게 실패한 나는 집에 돌아와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실패의 원인분석
◎ 모형 항공기가 튼튼하지 못해 쉽게 부서졌다.
→ 다른 참가자들은 낚싯대 카본으로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 재료 문제
◎ 견인자(사수)와 보조자(조수)의 싸인이 전연 안 맞음
→ 혼자만의 힘으로는 글라이더를 띄울 수 없음. 보조자 대동해야 함. : 보조자 양성
◎ 바람의 강약에 맞는 견인 연구
→ 견인 기술 부족. 연습이 필요함.
또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또 재료 및 여러 가지 계측장비 등을 준비해야 함을 알았다. 또 기록이 좋은 모형항공기는 스마트폰에 사진을 찍어 살펴봤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한국 최고의 장인에게 사사 받았다. 그러니까 한국 모형항공의 대부 격인 경복궁 옆 동학과학 심xx 사장의 50년 이상의 노하우를 하나씩 익혀가며 모형항공기 킷트 공장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수제품을 하나씩 만들었다. 즉 앞날개, 동체 수평, 수직꼬리날개 종이는 외제를 사서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음해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진행했다. 제작 기술도 늘고 요령이 생겨 견인방법도 바람의 세기를 큰 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익혔고 이탈 및 체공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두 번 다시 실패는 없다는 나의 각오는 연습으로 더욱 자신을 얻어갔다.
실패 후 1년이 지나 난 또 제 10 전투비행단 활주로에 시합을 위해 섰다. 조수는 우리집 차남이다. 평소에 같이 호흡하며 연습을 한 터라 손발이 “착착” 맞았다. 내 차례가 되어 계측하는 심사위원 대위의 신호가 떨어졌다. 난 무수히 연습을 한 터라 자신있게 센바람을 줄의 길이와 느슷함과 당김의 조화를 섞어 요리조리 걷다 뛰다하며 글라이더를 마치 살아있는 황새처럼 어루고 달래며 하늘 높이 띄우며, 그러니까 상승기류를 찾아 마치 강태공의 잉어낚시인양 뛰면서 글라이더 상태를 보며 살펴시 이탈시켰다. 많은 참가자와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무한대∞”를 연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 일반부에서 3분(1차), 2차 3분 도합 6분으로 1위, 금상을 받았다. 60이 훨씬 넘은 노인이 상을 받는다고 축하박수가 유난히 컸다. 이렇게 예선은 작년의 패배를 설욕하고 회심의 미소를 먹음은 채 기쁜 마음으로 본선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는 9월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지만 난 마음을 다시 잡고 제작 및 견인을 더욱 열심히 했다. 글라이더는 완전히 터득했다.
새파란 멍이 온 몸에 퍼져 기력이 쇠약해도 고무동력기는 내려야 했다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본선, 공군참모총장대회, 고무동력기 이야기. 더 강하게 변신한 나의 모습
글라이더는 전국을 제패하고 몇 년간 노력 끝에 제 1인자로 자리메김 다. 이제는 고무동력부문이다. 처음부터 이 영역에는 값비싼 외국제품 및 부속으로 무장한 전국의 과학사의 문하생들이 주름잡고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거기다가 최신장비, 풍향풍속 계측기, 강력한 드릴로 신축성이 뛰어난 고무줄을 사용하는 그들을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끈기와 변신의 귀재인 나는 하나씩 착착 계획을 진행했다. 그러니까 외제 고무동력기의 설계도를 수소문 끝에 구입하여 하나하나씩 내 기술로 개조했다. 고무동력기 동체, 외제는 값비싼 두랄루민·티타늄 등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난 이점을 가벼운 플라스틱을 말아 가늘게 쪼갠 대나무 껍질을 이용하여 트러스 공법으로 동체를 만들었는데 단단함은 물론 가볍기가 기본동체의 1/3 무게도 안되었다. 대성공이었다. 또 프로펠라의 크기가 기성품은 작기에 대추나무로 세밀하게 깎았고 고무줄은 미제를 구입했다. 또 프로펠라를 돌려 고무줄을 감는데 조수가 꼭 있어야 하는 번거러움을 덜기위해 혼자서도 고무줄을 감을 수 있는 장치를 발명했다. 즉 강력드릴에 강철고리를 부착시킨 뒤 프로펠라 걸이를 세워있는 기둥이나 나무에 감고 프로펠라를 회전시켜 감는 방법인데 어른이 잡아주는 힘보다 서너배 많이 감고 아주 편했다. 이렇게 만전을 기한 나의 변신 기술은 공군참모총장배 본선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가슴쓰린 추억이었다. 그러니까 본선대회 1차 시기에서 연병장의 축구 꼴대에 고무줄 감기와 드릴을 이용해 두서너배 많이 감은 고무동력기를 날렸는데 연병장 주위 아주 높은 반절쯤 죽어가는 소나무에 걸려 프로펠라는 허공을 향해 “빙빙”돌면서 ‘퍼덕’ 거렸다. 급히 달려가 행사 보조위원에게 내려 줄 것을 이야기했다. 보조요원은 철제 사다리를 펴서 준비한 장대로 내리려고 애썼지만 고무동력기에 닿지 않고 위험하다는 핑계로 포기하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보조원의 만류도 뿌리치고 사다리를 올라 소나무에 다람쥐처럼 올라가 장대에 갈쿠리를 달아서 힘껏 끌어당겼다.
하지만 고무줄이 가지에 감겨 풀리지 않아 한참만에 겨우 비행기를 내려서 떨어트리고 사다리가 걸쳐진 나무둥지를 디디는 순간 사다리가 넘어가 함께 떨어져 풀숲에 내동댕이쳐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회수한 비행기를 손보고 날개를 바로잡고 고무줄을 바꿔 꿰어 다시 드릴로 감아 마지막 2차시기에 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차시기 비행 체공 기록은 만점 3분 무한대였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1등인데 다른 조의 기록이 궁금해서 각조의 기록을 조마다 쫓아 다니며 살펴봤다. 만점은 없는 것 같았다. 이윽고 전체 시합이 끝나고 시상식만 남았는데 난 기록이 좋아 늦게까지 대기했다. 몇 시간 뒤 시상식이 열렸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는 마지막이었다. “일반부 고무동력 금상, xxx” 내 이름이 호명됐다. 별이 4개이신 공군참모총장님이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 주시며 빙그레 웃으시며 “노익장을 과시하니 보기 좋습니다”하시며 부상과 상장을 주셨다. 그리고 기념촬영. 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국을 제패한 벅찬 변신이었다.
영광뒤에 따른 무서운 변화에 난 몇 달을 고생하며 치료에 온 정신을 쏟았다
-고무동력기를 내릴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아픈 이야기 (낙상사고 후유증에 헤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승용차 안에서 엉덩이와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엉치뼈 그 다음엔 허리, 다음엔 목 등 차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했다. 난 천안 휴게소에서 내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팬티를 내리고 아랫도리를 살펴봤다. 멍 비슷하게 푸르슴한 색이 하체에 내려앉았다. 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차를 타고 귀가했다. 금메달을 딴 기분이 가시지 않았기에 약간의 통증은 견딜만했다.
하루가 지났다. 통증은 온몸에 퍼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온몸을 살핀 뒤, 멍을 보고 주사와 처방전을 간호원에게 시키며 한달 가량 쉬면, 멍이 가실거니 걱정 말라며 진료를 마쳤다. 약국에서 복용약을 받아서 복용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온몸에 번진 시퍼런 멍, 거기다가 성기며 고환까지 자주빛 멍이 소변을 볼 때마다 공포가 더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난 아내 몰래 한방병원을 방문했다. 한의사가 내 온몸을 보는 순간 혀를 차며 “빨리 왔어야지요. 이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있어요. 피가 굳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데”하며 날 나무랬다. 그리고 온몸에 수없이 많은 침과 뜸을 뜨고 1시간 쯤 후엔 부항을 뜬다며 엉덩이 부분을 내리고 부항을 수십차례 색이 진한 부분마다 검붉은 피를 뽑았다. 참 신기하고 시원했다. 이러길 하루 건너 두달 치료 끝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난 처음으로 한의학에 경이를 표했다.
멍이 가시자 마자 나의 변신은 계속되었다. 각종 모형항공대회와 더 나아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대표자격을 땄다. 그러니까 모형항공의 귀재로 변신한 나는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는 경기도 과학연구원 위촉 강사로 뽑혀 모형항공 지도를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드론이 대세라 막이 내렸지만 퍽 아쉽다. 그렇지만 난 드론에 도전하기엔 너무 손놀림이 늦어 포기했다. 내가 할 일이 아니기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다져지는 나의 글쓰기 실력은 마침내 빛을 보았다
-백일장에 도전한 나의 이야기
나는 모형항공기 기능 섭렵을 끝내고 또 다른 변신을 꾀하던 어느 날 문득 백일장대회 현수막을 지나가던 길에서 눈여겨봤다. 또 변신의 기회를 잡으려고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먼저 서울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백일장 입상문집을 사서 탐독했다. 그리고 입상작품의 특징과 글의 짜임, 쓰는 요령을 습득 뒤 나도 백일장대회에 참가했다. 내 딴에는 정성껏 바른 글씨와 내용을 그럴싸하게 써서 제출했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상자 발표가 있는데 내 이름은 없고 정성을 쏟은 보람도 없이 낙방이었다. 영문을 몰랐다. 떨어진 이유를.
돌아오는 전철에서 난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반문해봤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그 뒤 계속 백일장대회에서 낙방을 연거푸 서너차례한 뒤 난 그 어떤 1% 부족한 내 자신을 찾았다. 그러니까 난 겉만 번지르한 실속 없고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감동이 없는 허황된 글을 쓴 것이다.
내 결점을 찾은 뒤 백일장 대회를 기다린 어느 날 대전 동구에서 ‘우암송시열’ 백일장이 있었다. KTX를 타고 원거리 대회를 참가했다. 전국에서 수많은 문사가 참여한 전통 있는 대회라 난 기가 팍 죽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글제가 발표됐다. 주제는 ‘어머니’였다. 난 어머니와 같이 산 50년을 눈물을 흘리면서 회상하는 글을 써내려갔다. 내 어머니는 70여리가 넘는 먼길을 걸어서 쌀을 머리에 이고 자취하는 전주의 언덕빼기 집까지 부식을 마련하여 난 배고픔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어려운 시절에. 그리고 내가 교사로 발령을 받아 전등불도 안 들어오는 산간 벽지 오지 학교에 부임했을 때 삼시세끼를 따뜻한 밥을 해주시며 허름한 관사에서 동고동락하시며 내 뒷배를 후원하셨는데 끝내는 영화를 못 누리신 채 돌아가셨는데 눈물겨운 사연을 하나하나씩 깨알같은 글씨로 써냈다.
그뒤 서너 시간 뒤에 입상자 명단이 벽에 붙고 호명이 되었다. “수필부 금상, xxx 나오셔요” 처음으로 받은 상 그것도 장원이었다. 돌아오는 KTX열차가 왜 그리 느린지 난 처음으로 느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영광은 서울 한강 ‘구상백일장’, 고양 ‘어르신 백일장’, 수원 ‘정조대왕승모백일장’, 평택 ‘사랑사랑백일장’ 등 무수한 영광을 안은 채 난 제 2의 변신을 계속했다. 늙은 나이에 그 기쁨은 날 흥분케 했고 생에 대한 그 어떤 자신이 생기는 나날이었다. 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변신을 꾀하고 싶어 도전을 계속했다.
젊은이와 경쟁에서 스피드를 요하는 시합은 무리인가
-KBS1 ‘우리말 겨루기’에서 변신은 요원한 길인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TV의 ‘우리말 겨루기’는 날 들뜨게 한다. 그러니까 방영되는 월요일에는 모든 약속과 내 생활은 비상이다. 몇 년째 노트와 동영상을 캠코더를 찍어보고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집, 국어사전, 속담, 사자성어, 크로스워드 책. 필요한 서적은 모두 구입해서 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도 모두 구입하여 보고 준비는 매일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달인을 향한 내 꿈은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다. 석두일까? 자책도 해봤다. 치매증상이 있나? 치매 검사도 했지만 치매는 아니었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인터넷에 뜨면 내 마음은 왠지 급해진다. 그러니까 예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KBS홀에서 수많은 경쟁자와 한판 겨루기를 한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지필고사 20문제를 크로스워드, 십자말 칸을 인쇄한 용지와 대형 스크린을 비추면서 두 번 읽어주고 단 20분만에 답안지를 회수하여 30분쯤 채점이 완료되면 참가자의 10% 정도 합격자를 불러 2차 면접 및 실기 그리고 방송에 하자가 없고 유모어, 또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재미있고 재치있는 참가자를 선별하는 테스트 과정이다. 난 예심에는 언제나 수월하게 통과하며 본방에 출연까지는 항상 무난하게 뽑힌다.
그 이유는 다 까닭이 있다. 40년간 교직에서 다져진 말솜씨, 동물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익힌 유모어, 평소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가곡 레파토리가 있다. 예전 유럽 현지 이탈리아에서 외국 여행객 이탈리아 가곡 부르기에서 상을 탄 저력이 있기에 말이다. 예심을 합격한 나는 마지막 단계 면접에서 뜻밖에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는 면접심사위원의 청에 망설이다 정색을 하며 무대에서 그 당시 뜨는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했다. 면접대기자와 심사위원 전원이 앵콜을 연호했다. 난 주저하지 않고 ‘슈벨트의 세레나데’를 더 열정적으로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들 “늙은이가 웬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르지”하며 혀를 찼다.
며칠 후 인터넷에 합격자의 이름이 떴다. xxx 상위에 랭크된 내 이름 석자. 본방송 출연을 연락받고 밤새워 깨알같은 국어사전 글자를 돋보기도 쓰지않고 보던 어느 날 더 이상 눈이 침침하고 흐려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했다. 보름 후엔 글씨가 똑똑하게 보였다. 그런 어느 날 ‘우리말 겨루기’ 녹화가 있으니 10시까지 KBS 녹화장이 있는 본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담당 PD에게 받고 새옷을 입고 이발을 하고 달려갔다. 내가 제일 먼저 온 것이다. 이윽고 출연자 전원이 당도하여 분장실에서 마치 장가가는 새신랑마냥 아주 정성이 담긴 분장을 받았다. 기분이 황홀했다.
한 시간 뒤 녹화방송으로 ‘우리말 겨루기’가 엄지인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첫 단계부터 중간까지는 최상위 점수로 정상이었다. 우승이 눈앞에 보이며 젊은이들도 별것 아니구나 하며 자신이 생겼다. 마악 누름단추 벨을 누르며 우승을 확정짓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지나친 과욕이었다. 기다리면 결승단계에 진출하는데 감점이 시작됐다. 오답이 연속된 나의 경거망동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끝났다. 멋진 변신, 변태는 지나친 욕심과 만용 때문에 끝났다.
하지만 한 번 출연한 사람은 2년을 기다리기에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을 기다리는데 난 다시 변신의 칼을 간다. 2년간 그리고 화려한 날개를 펴며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그날의 변신을 꿈꾸며 오늘도 내 길을 간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나의 변신은 계속될 것이며, 이 길을 기꺼이 간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높게 보인다. 이제 내 나이 80.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가며 끝없는 변신을 꾀하며 더 행복한 나날을 영위해야 하지 않을까? 무한한 변신. 이제 무엇을 찾아 또 화려한 변신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변신은 날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나의 변신은 오늘도 계속된다.
•수상소감 - 우수상 미니자서전 은정남
“죽는 순간 숨이 멎는 순간까지 도전하고파”
응모하신 사람 중에서 나이가 좀 많습니다. 팔순이니까요. 그래서 저의 하찮은 글을 건져 올려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용기를 주신 선생님들과 캐나다에 이민을 간 아들한테 축하 인사 받았는데 정말 뿌듯합니다.
큰 용기와 힘을 얻었어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이제 세상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쓰고 또 갈고 닦아야겠죠. 죽는 순간까지 숨이 멎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해보고 싶어 공모전에 출품하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노인들이 많잖아요. 노인들은 지하철 공짜로 타며 놀러 다니고 또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이제 그런 걸 탈피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 해봤는데 이번에 글을 한 번 써봤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 신석정 시인이 저희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글을 좀 잘 쓰려고 나름대로 좋은 책 많이 읽고 또 문학 활동을 꾸준히 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항상 친구들이나 동호회 회원들에게 카톡으로 공유했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모니터링해 주면 수정하며 첨삭하면서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 백일장에 장원은 떼놓은 당상일 정도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신감 가지고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동물해설사, 모형항공기, 우리말 나들이 도전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나 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어 행복합니다. 일감이 있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번에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준비한 주최 측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쓸 만한 어른들과 아까운 시니어들이 많거든요. 사실 어르신들은 좋은 자원과 자산을 갖고 있고 재능과 경험이 다양한데 쓸모없이 이렇게 소멸해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번 공모전이 뜻 깊은 일을 하고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시니어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보다 더 저를 믿어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인간은 꽤 많은 것을 두고 떠난다. 이를 ‘유품’이라 부른다.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은 고인을 애도하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주인 없이 어질러진 집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 고인이 생전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제 손으로 처분해야 할 때 남겨진 가족의 회한은 더욱 커진다. 사랑하는 이들이 먼 훗날에도 자신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를 바란다면 삶의 끝뿐 아니라 그다음 페이지도 아름다워야 한다. 장래 유품이 될 물건을 직접 정리하는 ‘생전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옷이었어요. 빈집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부모님과 언니의 옷을 손에 쥐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북받쳐 올랐어요. 여러 가지 추억도 떠오르고요. 그 많은 옷을 제가 가질 수도 없고, 결국 조금만 남기고 과감히 처분했어요.”
14년 전 어머니와 언니를 잃고, 4년 전 아버지를 여읜 히라쓰카 요우코(59) 씨는 2년 전 아무도 살지 않는 친정집을 홀로 정리했다. 분주히 식기와 주방용품, 옷가지를 처분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옆에서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 한편으론 속이 편했지만 넘쳐나는 물건을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혼자 결정하려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며 “세상을 떠난 가족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라 더 그랬다”고 말했다.
가와무라 노조미(67) 씨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적 함께 정리를 시도했지만,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의 완고한 태도에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머니를 떠나보낸 노조미 씨는 모든 것이 그대로인 공간을 5년간 정리하며 외로운 작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건강할 때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홀가분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책 ‘부모님의 집 정리’는 일본 중장년 세대가 고령으로 접어든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의 집을 정리하며 느낀 경험담을 담고 있다. 이들의 진솔한 고백은 국경을 초월해 생의 마무리를 앞둔 시니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령화 사회에 ‘생전 정리’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남겨진 자식이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다. 대부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분류하고 버리다 원망 섞인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리를 끝낸 이들은 마침내 한 가지 공통된 깨달음을 얻는다. 아름답게 이별하려면 정리는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자식이기 전에 부모이기도 한 이들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생전 정리를 결심한다.
◇ ‘데스클리닝’과 ‘가타미와케’
웰다잉 산업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에서 생전 정리는 아직 낯선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유품 정리를 삶과 동떨어진 문제로 보고, 가족의 몫으로 여기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품 정리를 스스로 실천하고, 생활 속 문화로 발전시킨 국가도 있다.
스웨덴은 죽음에 대비해 주변을 정돈하는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이 일종의 미니멀 라이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표 주자가 데스클리닝 전문가 마르가레타 망누손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다 놀라운 광경을 발견한다. 물건 곳곳마다 어머니의 글씨로 처리 방법과 기증처가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저서 ‘내일 내가 죽는다면’에서 “꼭 내게 하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이 작은 지시 사항들에 위안을 얻었다”며 “어머니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일로 생전 정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녀는 이후 데스클리닝 노하우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장례가 끝난 후 고인의 유품을 주변에 전달하는 ‘가타미와케’(形見分け)라는 문화가 있다.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가족, 친구 등 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유산을 분배하는 경제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물건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에 더 가깝다. 홍수, 지진 등 대규모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바다에 떠다니는 고인의 물건을 주고받으며 유래했다. 이후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종활’(終活·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면서 본인이 생전에 미리 물건을 나누는 경우도 늘었다. ‘부모님의 집 정리’ 마지막 장에서는 80대 중반의 나이에 60년 동안 거주한 집을 직접 정리하고 가족과 이웃에게 물건을 나눈 쇼코 씨의 사례를 소개한다.
◇ 무엇을 남기고 정리할 것인가
이처럼 유품 정리는 단순히 공간을 정돈하는 차원을 넘어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를 파생시킨다. 특히 생전 정리는 가족이 짊어질 부담을 덜어주고, 다 함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유품 정리 서비스 키퍼스코리아 김석중 대표는 “유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상속인과 공유하는 추억”이라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족과 죽음에 대해 논의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를 대비해 소화기를 준비하듯 생전 정리를 하면 재산, 상속 문제 등 사후 자신으로 인해 벌어질 불씨를 막을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생전 유품 정리는 후회의 대물림을 막는 일”이라고 했다.
자식에게 각별한 기억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도 생전 정리의 장점이다. 김 대표는 “물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 자식도 부모의 몰랐던 점을 알게 되고,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며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더욱 의미 있는 정리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김 대표가 제안하는 몇 가지 팁을 참고해 아름다운 ‘인생 졸업식’을 준비해보자.
◇ 웰엔딩을 위한 생전 정리 노하우 6가지
① 가족 간 비밀을 최소화한다
가까운 듯 보이면서도 알고 보면 먼 사이가 바로 가족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잘 나누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묵언하는 이들이 많다. 금전이 얽힌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생전에 보유하던 상가나 주택의 임대 정보에 대해 끝끝내 알리지 않아 유족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족 간 비밀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직접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엔딩노트’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작성해둔 다음, 유사시 가족 구성원에게 노트의 존재를 알려도 된다.
② 재산과 승계 목록을 작성한다
정리는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유품 정리도 마찬가지다. 종이나 컴퓨터에 집 안에 있는 각종 물건과 보유 중인 자산 현황을 적고, 이를 종류별로 묶어서 분류해본다. 그다음 각 물건과 관계된 사람을 떠올리고 승계 목록을 적는다. 가족에게 ‘올인’하기보다는 물건별 얽힌 사연이나 추억이 있는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좋다. 가령 함께 골프를 즐긴 친구에게는 골프용품을, 음악 동호회 회원에게는 오래된 LP 박스를 선물하는 식이다. 한평생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 쓰레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필요한 사람이 물려받아야 한다. 나눔이 끝나고 남은 물건은 간직할 것인지, 기억 속에 남겨둘 것인지 고민하고 처분을 결정한다.
[PLUS+] 내 물건 체크해보기
. 예금통장·인감·보험증서·카드
. 연금수첩 등 연금 관련 서류
. 약·보험증·진찰권·병원 연락처
. 부동산 권리증·등기부등본
. 귀금속
. 현금
. 편지 및 일기장
. 사진
. 추억의 물건
. 취미용품
. 대여 중인 물건
. 가스·수도·전기·전화 등 청구서
. 가계도·친척 연락처 등 가족 관련 물품
③ 유산의 가치가 있는 물건은 기증한다
개인의 소장품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더욱 의미 있게 공유하고 싶다면 각 물건과 관련된 기관에 기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그 시절에 입었던 교복이나 모아두었던 상패는 출신 학교에, 오래된 승마복은 역사박물관에 전달한다. 전달된 물건은 기관별로 50년사, 100년사 등 사사(社史)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서재에 쌓여 있는 책을 아동보육시설이나 지역 도서관 등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다.
④ 골동품과 고물을 구분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낡을수록 빛을 발하는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작은 박물관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고장 난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은 함께한 세월에 관계없이 고물에 불과하다. 즉 골동품과 고물을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유산의 성격을 띠는 풍금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그랜드 피아노는 소장 가치가 있지만, 젊은 시절에 가져다놓고 쓰지 않는 가정용 피아노는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 쓰임새를 다해 창고 신세를 지거나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이 있다면 과감히 버린다.
⑤ 명예롭지 못한 흑역사는 정리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누구에게나 알려져서는 곤란한 흑역사가 하나쯤은 있다. 생전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비밀을 묻어둘 수 있지만,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각되는 경우가 있다. 은밀한 취향을 기록해둔 사진이나 영상, 주고받지 못한 금단의 편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집 살림을 위해 사용했던 휴대폰이 나온 사례도 있다. 이를 발견한 가족은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에 휩싸인다. 기왕이면 흑역사를 만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그간 쌓아온 명예가 실추될 만한 일련의 기록이 있다면 스스로 정리한다. 정리의 기준은 가족과 제자가 보았을 때 부끄러울 만한 일이다.
⑥ 디지털 정보도 꼼꼼히 관리한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사회에서는 인터넷에 올린 기록물도 모두 자산이다. 특히 남겨진 이들에게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선물이 되므로,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도록 수첩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이트별로 적어둔다. USB, 외장하드 등 별도의 장치에 모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면 인터넷 세계는 너무도 방대해 ⑤와 같은 부끄러운 기록이 자신도 모르는 새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들은 휴대폰과 동기화된 경우가 많아 함께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PLUS+] 엔딩노트 작성하기
일본 영화 ‘엔딩노트’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다가온 죽음에 좌절하지 않고 엔딩노트를 작성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 가기’ 등 노트에 적은 리스트를 성실히 실천해나가며 삶의 엔딩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하루하루를 조명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체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엔딩노트는 말 그대로 행복한 엔딩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기록해두는 노트다. 정해진 규범이나 양식은 없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생전에 하고픈 일을 버킷리스트 형식으로 쓰거나, 장례 절차나 유품 처리 방식,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해도 된다. 차마 얼굴 보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적는 방법도 있다. 유언장과 다른 개념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된다.
경북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참외 농장. 푸릇푸릇한 잎사귀 사이엔 샛노란 참외가 가득 숨어 있다. 참외 농사는 한 번 심어 늦겨울부터 늦여름까지 연속 수확이 가능해 어떤 작물보다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성주로 내려왔다는 50대 부부. 수확한 참외를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4월에 부부를 만났다.
30년을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남자, 서울 여자인 곽창신, 박미영 부부는 귀농을 결심한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전국 곳곳을 찾아 헤맸다. 남편 곽창신 씨는 ‘6시 내 고향’, ‘나는 자연인이다’, ‘인간극장’ 등을 시청하며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해왔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약 6개월의 준비 기간에 이들 부부는 곽창신 씨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충청도, 경상도까지 귀농할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귀농지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한겨울에도 수확되는 딸기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충청도 제천에서 얼음딸기를 생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제천을 몇 번이나 방문해 그 지역 농부들을 만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쟁자가 오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며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농부들에게 결국 두 손 들고 좌절하기도 했다.
귀농귀촌지원센터를 통해 몇 군데 문을 두드린 끝에 마침내 2017년 1월 성주참외로 유명한 경상북도 성주로 귀농, 참외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됐다. 귀농은 2017년이었지만 참외를 첫 수확한 것은 2018년 3월. 첫 실습치고는 큰 착오 없이 성주참외를 수확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직거래를 시작했다.
남편 곽창신 씨가 주로 참외 농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면 아내 박미영 씨는 농사를 거드는 것은 물론, 직판매를 위한 사이트 및 블로그 운영으로 판매 채널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서울에서 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해왔던 만큼, ‘호호네성주참외’는 참외 농사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귀농 생활 체험 정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소개된 알짜배기 귀농 블로그로 손꼽히고 있다.
올해 귀농 생활 5년 차. 지난 4년간 겪은 고생을 말로 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라는 부부는 귀농을 결심했던 그 즈음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직 귀농인의 성공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도시에서의 삶을 시골로 모종한 후 조심스럽게 뿌리 내리고 있는 곽창신, 박미영 부부의 귀농 체험을 브라보가 귀알못(귀농귀촌에 관심은 많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주제별로 묶어본다.
Q 왜 귀농을 결심했을까요?
A 다니던 직장이 발전소였어요. 하루 24시간 운행되는 곳이라 3교대로 근무하는데 밤 근무가 되면 꼴딱 밤을 새서 일해야 했어요.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같은 공간에서 살고만 있을 뿐이지 아이들과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도 없고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어요.
불현듯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던 참에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가 떴어요. 오랜 고민 끝에 아내에게 귀농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죠. 흔히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귀농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란 말이 있어요. 행복하게도 아내의 동의를 얻게 됐고, 이런 점에서 정말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죠.
Q 내려오길 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지점은 뭘까요?
A 저희 부부가 자주 이야기하는데… 매일 아침 우리 가족 4명이 같이 밥을 먹어요. 저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참 우습죠? 쉬운 일처럼 보이는 이걸 직장생활 할 때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저녁에는 같이 텔레비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이 너무 행복해요. 귀농하면서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을 보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요.(웃음)
Q 경북 성주로 꼭 집어서 귀농한 이유는?
A 제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귀농을 결심한 후 준비하면서 귀농한 선배들의 조언도 듣고 인터넷 강의도 듣고 귀농귀촌지원센터에 등록해 교육도 듣고 상담도 받았죠. 전 전원생활을 즐기며 부업으로 농사를 짓는 귀촌이 아니라, 아직 한참 키워야 하는 어린 두 아들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 생활이 가능한 특화작물 쪽으로 열심히 알아봤어요.
이때 참외가 눈에 띄더라고요. 비닐하우스 생산을 하면서 일 년에 수확을 몇 차례 한다고 하니 수익성도 높을 것 같았고요. 참외 하면 성주참외가 특화돼 있는 상태라 경북 성주에 관심을 갖고 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했죠. 그렇게 성주를 여러 번 방문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간 다른 지역에서 폐쇄적으로 이야기도 잘 안 해줬던 것과 달리 개방적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시더라고요. 최종적으로 성주로 귀농을 결심하기 전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4~5번은 왔던 것 같아요. 농장에서 참외 체험도 해보고요.
Q 귀농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뭘까요?
A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리려면 제가 먼저 도움이 많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하면서 용접도 배우고 기계 수리도 배우고. 그런데 제가 내려와서 정착한 마을이 집성촌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거의 친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 불쑥 이방인이 참외 농사 짓겠다고 내려온 것이니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죠. 그나마 두 아들이 마을에서 뛰놀고 그러는 게 좋아 보였던 마을 주민들도 계셔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만.
저희는 시골 생활이라고 강아지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그렇게 시작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워낙 그런 생활이 일상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런 생활이 지겨워서 닭도 안 키우시고 그러세요. 근데 갑자기 마을에서 새벽에 닭이 울어대니까 좀 뭐라고 하셨죠. 웃픈 이야기죠?
정말 어려웠던 건 참외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한데 땅을 구매하기가 어려웠죠. 현재까지 저희는 땅을 구입하지 못했어요. 이제야 농지 구매를 위해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농업인에 선정돼 3억 원을 대출받게 됐어요. 이 자금으로 참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을 알아볼 예정이에요.
물론 밭을 구매하는 게 또 어려움이 있죠. 이런 시골에서의 논이나 밭 거래는 주위의 아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귀농한 지 이제 5년 차지만 아직도 주민분들에게 이런 거래를 귀동냥 듣기에는 친밀도가 아무래도 떨어지니까…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또 이렇게 조금 비싼 금액으로 거래하면 그 땅에 관심을 갖고 있던 마을 주민이 뭐라 하세요.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거죠.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열심히 농사지으며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죠. 결국 진심을 다해서 대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Q 거주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였나요?
A 저는 4인 가족이 당장 생활을 해야 하는 상태라 농지보다 거주지를 먼저 장만했어요. 답답한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게 하고 싶었죠. 옆에 밭을 포함해 411평에 건평은 29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을 직접 지었습니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 가면 농가주택 전용으로 지을 수 있는 기본 평면도까지 업로드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농지 확보부터 한 후 주거지를 해결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주거 공간에 관해서 각 지방자치 정부마다 빈집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시골의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1년간 살아보고 귀농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집주인은 돈을 들이지 않고 집을 리모델링해서 좋고,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은 첫 1년을 테스트 기간으로 삼아 적은 월 임대료로 살아볼 수 있어서 좋고, 일석이조죠.
Q 농사일이힘들지는 않았나요?
A 모든 농사는 힘들죠. 농사가 처음이니까 교육이란 교육은 다 참가했어요. 강소농 교육, 농민사관학교, 현장실습, 심화교육… 다 쫓아다녔죠. 아내는 사이버농업인 e비즈니스 교육까지, 2017년과 2018년은 교육의 해였습니다. 그러면서 2018년 3월에 참외 첫 수확을 하게 된 겁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어서 공판장에는 출하를 못 했고, 밭에서 키우던 소소한 채소들과 참외까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직판매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공판장에 첫 출하한 게 2018년 4월이었어요.
참외 농사짓는 걸 처음 해본 거잖아요. 모종판에 참외씨 넣고 또 모판에 호박씨 넣고 접목하고 수정시키고, 참외순이 자라면 순 자르기, 참외순과 호박줄기 접붙이기, 자꾸 성장해서 참외 성장을 가로막는 호박잎 떼어주기 등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참외는 열대작물이라 겨울에는 보온성 좋은 부직포로 이불도 덮어줘야 해요. 또 물을 대는 방법이나 비료 쓰는 법 같은 것도 터득해야 해요.
매일 마을 어른들에게 혼도 나면서 배웠어요. 모종을 키워서 본밭에 심어 3개월 정도 되면 수확하는 거죠. 그리고 농부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정말 맞아요. 특히 참외는 새벽에 따야 해요. 새벽 시간에 못 따서 기온이 올라갈 때 따면 참외의 아삭한 맛이 덜하고 물러져요. 아침 11시면 경매가 시작되거든요. 그때까지 오늘 출하량을 맞춰야 하니까 성주 분들은 새벽부터 참외 따느라 부지런하게 움직이죠. 저희 같은 경우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야 해서 이게 참 힘들었어요. 참외 따랴, 아이들 학교 보내랴.
Q 참외 농사로 매출액이 얼마나 되나요?
A 비닐하우스 1동당 연간 매출액이 1000만 원 정도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농사짓는 사람의 노하우에 따라서 위아래로 20% 정도는 왔다 갔다 하죠. 비닐하우스 10동이 있다면 연간 매출액 1억 정도죠. 그래서 성주에는 억대 농부들이 많아요. 물론 자신 소유의 밭에 비닐하우스 시설을 갖췄을 때 이야기고… 이 시설을 임대해서 하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비용이 더 들어가겠죠. 자가 소유라고 하면 기본 경비를 매출액의 30~40% 잡으면 될 것 같아요.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비료입니다. 땅의 토양을 좋게 해야 상품 가치도 높아지고 당도도 높아지죠. 성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미생물을 배양해 토양을 좋게 하는 것들도 지원하고, 토양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무엇보다 성주의 토양이 다른 곳보다 미네랄 함유치가 높다고 해요. 그리고 가야산이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고 눈이 잘 안 오고, 다른 곳보다 일조량이 많다는 점 등이 참외 재배에 장점이라고 들었습니다.
Q 성주를 대표하는 귀농인에 선정됐던데 어떤 점이 어필됐을까요?
A (취재에 동행한 성주군 귀농귀촌지원센터의 담당 이태일 계장이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박미영 씨의 꾸준한 SNS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농사짓는 것만 올리시는 게 아니라 농촌 생활을 꾸준히 업로드하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계셨는데, 이게 저희 센터가 할 일을 직접 해주신 거죠.
경험자로서 생생하고 유익하게 말이죠. 어린 자녀와 함께 귀농하셔서 자녀들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요. 성주를 대표하는 귀농인에 선정되셔서 저금리로 융자를 받게 됐으니 앞으로 참외 농사를 더 늘리실 수 있을 겁니다.
Q 가장 큰 문제는 농지 확보겠네요?
A 그렇죠. 현지 분들이 귀농인 때문에 땅값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근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귀촌을 통해 현지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인맥을 쌓고 직거래 등의 포장 판매 부분에서 뭔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어요. 꼭 농사짓는 것만이 농촌에서의 경제적 활동은 아니라고 봐요.
농사 힘들어요. 어느 정도 연세 들어서 오시는 분은 차라리 현지에서 생산된 참외를 직접 구매해 소포장 판매를 통해 수익 창출을 하는 부분도 고려했으면 해요. 특히 온라인 판매 등 관련 기능이 뛰어나다거나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던 분이라면 판매 채널 다양화에 훨씬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Q 귀농 혹은 귀촌을 원하는 분들은 어떻게 도움을 받으면 될까요?
A 일단 귀농귀촌지원센터를 방문해 귀농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하면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주세요. 그리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시죠. 요즘은 1년짜리 현장실습 교육도 받을 수 있는데, 센터에서 농사 잘 짓는 멘토를 연결해 멘토멘티 프로젝트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멘토에게 월 30만~40만 원, 멘티에게는 월 80만 원의 훈련 참가비를 줘요. 하루 8시간 농사를 배우는 거죠. 5개월 정도 배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지원센터에 상담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Q 귀농귀촌을 원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뭘까요?
A 어렵네요, 하나만 꼽기가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서울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농촌 마을도 사람이 모여 사는 거잖아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저희 집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됐어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죠. 아니, 저 높은 가야산 꼭대기에서도 인터넷이 되는데 제가 이사한 성주의 읍내 권역에 인터넷을 설치할 수 없다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죠.
그래서 도시에 살 때처럼 군에 민원 넣고, 심지어 청와대에도 민원 넣었어요. 그런데 공무원은 원칙만 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저희 옆집에 이사 왔는데 이 사람은 그 지역에 인맥이 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 집에는 그 다음 날 인터넷을 바로 설치해주더라고요.
또 한 가지 꼽자면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정말 귀농은 소확행을 실천하는 거예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냥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자.’
정신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에서 ‘느리지만 차근차근’ 그렇게 인생을 음미하며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귀농해서 비로소 우리 가족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성주군 귀농인들 연간 수입과 비용
귀농 A 사례(농지 임대의 경우)
선택 작목: 참외, 평균 투자비: 2억 원(주택 구입 포함), 연간 운영비: 3000만 원(1년), 평균 수입: 8000만 원(1년)
귀농 B 사례(농지 구입의 경우)
선택 작목: 참외, 평균 투자비: 5억 원 (농지·주택 구입 포함), 연간 운영비: 1억 원(1년), 평균 수입: 3억 원(1년)
귀농 C 사례(농지 구입의 경우)
선택 작목: 상추, 평균 투자비: 1억 5000만 원, 연간 운영비: 400만 원(1년), 평균 수입: 4500만 원(1년)
2019년 감정평가사 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가 탄생했다. 최기성 감정평가사(67)로, 합격 당시 나이는 65세였다. 그는 그해 11월 삼일감정평가법인에 입사했다. 실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으로 오래 일했던 그. 직무상 대통령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미소조차 잘 짓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감정평가사로서 현장에 나가 감정평가를 하고, 영업을 하고, 연신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인다. 2년 차에 접어든 새내기 감정평가사를 만났다.
최기성 감정평가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7시였다. 그때도 삼일감정평가법인 사무실에는 여전히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여러 감정평가사들의 책상 사이로 그의 자리와 뒷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한창 업무 중이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기자를 만나러 오는 와중에도 동료 평가사와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바빠 보였다. 주변의 다른 직원들은 언뜻 보아도 그보다 한참은 어린 듯했다. 그 속에서도 그는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에게서 나이에 따른 이질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새내기가 되다
그는 감정평가사 실무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수습 생활을 갓 마치고 인터뷰 날부터 사인 권한이 생겼다. 그날 처음으로 평가서에 자신의 사인을 했다. 보람이 남다른 하루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 일을 마저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자정께에 퇴근했단다. 요즘 일이 많아졌다고. 의뢰받은 일을 기한에 맞추어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많을 때는 이처럼 야근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시에 퇴근한다. 한 달에 야근하는 횟수는 절반 정도. 인터뷰 날에는 강북구 우이동과 수유동에 있는 현장 두 곳에 다녀왔단다. 그야말로 한창 현역이자 전성기를 살고 있는 이의 모습, 갓 수습 딱지를 뗀 새내기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희를 목전에 둔 터라 체력에 무리는 없을까 싶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받쳐주는 편이라,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부진 그의 체격을 보니 마음은 물론 몸에도 견고하게 쌓인 내공이 보였다.
오히려 그는 감정평가사로 일하며 ‘워라밸’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말도 없이 일했다.
“대통령이 오더를 내리면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서 원장님한테 보고하고, 원장님은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일했죠. 남북 행사 있으면 통일부랑 같이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유일한 틈이 토요일 오전 일찍 골프 한 번 치는 거예요.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들어와서 일하고, 일요일도 일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고 휴가나 여가는 생각도 못 했죠. 지금은 일이 있으면 며칠 밤을 새서라도 기한에 맞춰 납품해야 하지만, 일 없으면 정시에 퇴근하고 굉장히 자유로워요. 주말에도 쉬고.”
그는 성공적인 공직 생활을 했다. 198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가정보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1급 관리관에 해당하는 실장까지 오르고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표로 참여하는 등 요직을 거쳤다. 퇴직 후에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주식회사, 국가 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원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전 직장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된 그에게 고충을 물으니, 첫째로 꼽은 게 오피스 프로그램이었다.
“엑셀이나 워드를 전에는 다루지 않았어요. 여기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평가서를 만드는 게 기본이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고유 프로그램들이 있으니까 익히는 데 되게 힘들었어요. 공직 시절에는 만들어진 보고서를 검토하고 사인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제가 직접 다 작성하죠. 모르면 선배들한테 물어가며 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워드 엄청 잘해요. 회사 결정되고 나서 유튜브 보면서 연습하긴 했는데, 실무는 또 다르더라고요. 직접 부딪히고 시행착오 거치면서 하나씩 발전해나갔죠. 거기서 오는 성취욕도 있었고요. 지금은 웬만한 건 다 합니다.”
오랜 공직 경험이 주는 장점도 있다. 온갖 일을 다 겪었으니 웬만한 일엔 떨지도 않고 담담하다. 사회 초년생보다는 사람 대하는 기술도 노련하고, 평생 일하면서 보고서와 씨름했기 때문에 평가서를 보는 눈도 깊다. 단지 워드 프로그램 같은 고유한 틀에 익숙해지기까지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사람 관계다. 젊은 직원들과는 다르게 탄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회사에서도 그런 인맥을 활용하길 기대한다. 그렇기에 그의 경력을 감안해 고문 직함을 주었다.
“우리처럼 나이 들어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인맥이 제일 큰 장점이에요. 회사에서 장년층 직원을 뽑는 것은 일도 일이지만 영업적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일을 따오기도 하면서 제 역할을 해내는 거죠. 그래도 쉽지는 않습니다. 옛날하고 다른 측면이 있어요. 부탁하기도 쉽지 않고요. 불공평한 레이스라고 할까, 그런 걸 요즘은 다들 싫어하니까요. 저 자신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죠. 사회 친구들이 은행 같은 곳들 소개해줘서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상태예요.”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오직 국가를 위해서 일했다. 국가 안보와 국익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지금 있는 곳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그는 두 조직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에 대해 평가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해요.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준 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국가 경제하고도 연관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담보 평가만 해도 이해관계인이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과 금융기관이죠. 우리가 평가를 잘못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으면 그 영향이 개인뿐 아니라 은행에도 미치고, 그게 국가 경제에까지 영향을 줘요. 과대평가를 하면 경제 질서를 흔들 수 있거든요. 그만큼 공공성이 가미된 일이에요.”
그가 몸담고 있는 삼일감정평가법인 역시 공정성을 지키며 신뢰받는 곳이다. 철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부실한 감정평가를 미연에 방지한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15개 공시전문평가법인 중 하나로, 부동산 감정평가뿐만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기업 가치평가, 무형자산 평가, 공적 평가 등에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다.
나를 바꾸는 시간
그는 ‘슈퍼 갑’으로 수십 년을 살다 이제는 ‘슈퍼 을’이 되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머리 숙여본 적 없어요. 대통령이 와도 고개만 까딱하는 문화였어요. 아쉬운 게 없었어요. 남한테 부탁할 이유도 없었고요. 그런데 여기는 수주를 해야 되잖아요. 젊은 사람들한테 고개 숙이고 들어가서 영업도 해야 하고. 완전히 을이에요.”
어깨 힘을 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내도 항상 “당신은 슈퍼 을이니 그런 자세로 대처해라”고 조언한단다.
“그 물을 빼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상처받기도 하고. 저도 나이가 있는데, 제가 존대를 했는데 상대가 얕보면 기분이 나빴죠. 마음 삭여가면서 일해서 지금은 많이 순화됐어요.”
체질과 습관을 바꾸고, 냉대에 마음 아프던 시간을 감내하면서 사는 그를 보며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는 지난 공직 생활만으로도 경제적인 노후 대책은 이미 완비했다. 이 일을 생계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충까지 참아가면서 하는 이유는 뭘까?
“제가 퇴직할 땐 골프 치고, 등산 가고, 그런 생활을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그런데 아내가 이 일에 도전해보라고 권했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남은 인생이 수십 년인데 아무 일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게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옛날보다 평균 수명이 늘었잖아요.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80~90세는 거뜬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단언한다. 일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사회생활인데 내 위치에 맞게 스스로 행동을 조절해야죠. 제가 고위직 출신이라고 어깨에 힘주면 밖에서 누가 알아주나요? 내가 숙여줘야 저쪽도 마음을 열죠. 그래서 지금은 아내 말 잘 들었다 싶어요. 아침에 가방 들고 출근하는 행복이 말도 못 해요. 남들은 다 오늘 뭐하지 하는데, 저는 맡겨진 일 하면서 활기차게 살잖아요. 사회적인 고충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기까지의 과정 중 하나니까 전혀 개의치 않아요. 감정평가사는 변호사나 변리사와 맞먹는 전문직이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내 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어요. 최고의 직업이죠.”
그는 인생을 통틀어 고시에 두 번 합격했다. 행정고시와 감정평가사 시험. 두 시험 공부할 때를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가 기억력이다.
“행시 준비할 때는 젊은 시절이라 머리가 좋았죠. 한데 지금은 기억력이 안 따라줘요. 공부하고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서 답을 못 쓰겠더라고요. 애 많이 먹었죠.”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고시촌에서 명운을 건 심정으로 전력투구하며 공부했다. 반면 감정평가사 준비는 달랐다.
“친구들과의 골프, 자전거 라이딩, 저녁 약속을 다 마다하기엔 삶이 너무 황폐해지는 듯했어요. 먹고살 게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틈틈이 공부하다 보니 준비 시간이 길어졌죠.”
6년이라는 긴 수험 생활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패혈증에 걸려 8개월을 투병하기도 했다.
“아내가 후회를 많이 하더라고요. 가만있던 사람 괜히 들쑤셔서 고생시켰다고요. 공부 좀 잘할 줄 알고 해보라 그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던 거죠. 게다가 패혈증까지 걸렸으니까요. 치사율이 50%인 질병이에요. 낫고 나니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기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생각은 한 적 없었다.
“만약 내가 죽거든 공부하던 책 같이 넣어서 태워달라고 했어요. 중간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한이 돼요. 또 포기한다고 달리 할 것도 없었고요. 끝까지 가기로 맘먹었지요. 그러니까 결국 결실을 맺었죠. 포기를 안 하면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
함께 일하는 평가사들은 모두 그보다 한참 연배가 낮다. 나이가 많아도 40~50대. 함께 입사한 동기는 36세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노하우가 있을까?
“마음을 열어놓아야 돼요. 나이 들수록 아집이 생겨요. 몸에 밴 습관이 있어서요. 항상 오픈 마인드로, 낮은 자세로.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다가와요. 내가 나이 들었다고, 왕년에 어땠다고 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있으면 아무도 접근 안 하죠. 그럼 저만 손해예요. 외롭고. 그래서 항상 젊은 사람들 말을 많이 경청해요. 또 저는 말 안 놓고 깍듯이 대해요. 그리고 선배들한테 많이 의존해요.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면 다들 친절하게 잘 알려주세요. 이따금 실수하면 대신 잡아내서 고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항상 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러죠.”
그는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은 20대, 아들은 30대로 한창 직장 생활 중이다. 자신들과 다름없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보며 무척 좋아한단다.
“공부할 땐 둘이 의견이 달랐어요. 아들은 제가 혹시 공부하다 잘못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만하길 바랐고요, 딸은 ‘아빠, 공부 안 하면 뭐하실 거예요. 계속하세요’ 했어요. 요즘은 둘 다 너무 좋아해요. 대화도 잘 통하고요. 저도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사니까 딸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딸이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 얘기해주니까 도움 많이 받죠.”
그에게 자극받아 함께 도전한 친구도 있다. 그보다 여덟 살 어린 행시 동기가 자신도 도전해도 되겠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흔쾌히 하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저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어요. 이 친구한테는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도와줬죠. 친구는 작년에 합격해서 지금 법인에 다니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찾아 나선 이가 많다. 그에게 도전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더 길어질 거예요.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는데, 퇴직하고 나면 앞으로 그만큼이 또 남는 거예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거죠.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든, 취미를 발전시키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죠.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해야 해요. 그래서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기자를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는 매너가 좋았다. 연신 미소를 띠며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칭찬을 건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노고가 있었을지 가늠되어 새삼 특별하게 와 닿았다. 우여곡절도 겪었고 고충도 있지만 새 직업을 갖게 된 기쁨, 아침에 출근해 일할 곳이 있다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그. 2년 차 새내기 최기성 감정평가사의 앞날을 응원한다.
서류전형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면접이다. 면접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단 몇 마디로 자신의 강점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돌발 질문에 능숙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트렌드에 발맞춰 ‘줌’(ZOOM) 등을 활용한 비대면 면접 방식도 알아둬야 한다. 재취업의 길로 향하는 최종 관문, 면접관의 시선을 끄는 면접 노하우를 소개한다.
도움 중장년 재취업 전문기업 상상우리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일이다. 말 몇 마디로 합격·불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면접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어느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처럼 면접관 앞에서는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변하고, 동공이 흔들리며, 잘만 나오던 목소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하지만 고생 끝에 면접장에 들어선 이상 허무하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중장년 일자리 시장은 모집 경력이 10년 이상만 넘어가도 30대 후반~40대 초반 지원자들까지 몰리기 때문에 면접보다 서류전형이 더욱 치열하다. 그 말은 서류만 통과해도 합격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중장년은 면접관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나이에 따른 편견을 해소하고, 지혜가 돋보이는 발언으로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의 입장에서 지원자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질문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만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고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재취업 전문가가 알려준 면접 팁을 알아두었다가 실전에서 멋지게 활용해보자.
[1] 1분 자기소개는 두괄식으로 명료하게
모든 지원자가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단연 1분 자기소개다. 1분 자기소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의 강점을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는 초고난도 미션이다. 첫 질문이라는 점에서 부담감도 크다. 하지만 다른 질문과 달리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 또한 흥미를 유발할 경우 추가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꼼꼼하게 연습하면 꽤 유리한 무기가 된다.
일부 중장년은 ‘자기소개’라는 단어 때문에 말 그대로 인생관이나 취미, 생활 방식 등을 소개하는 질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1분 자기소개는 지원자가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므로 직무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지양해야 한다. 대신 자신이 지원한 직무에 적합한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고, 두괄식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 좋다.
▶ 기출 질문 자신을 1분 동안 소개해보세요.
▶ 합격 노트 실제 재취업 성공 사례 (공공시장 영업 관리직)
저는 누군가를 제 편으로 만드는 남다른 재주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공공시장 영업에 특화된 사람입니다. 최근 2년간 공공시장 영업 관리와 마케팅으로 연 ○○억의 매출을 올린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중장년이기 때문에 매년 늘고 있는 노령 인구와 장애인 이동권 확보에 관심이 많은데요. 보장구 충전기 분야는 아직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법제화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자체 및 관련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년간의 공공시장 영업 경험을 보장구 분야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 한 줄 정리 강점, 지원 동기, 직무 경험(1~2가지), 입사 후 포부를 매끄럽게 연관 짓는 것이 핵심!
[2] 개방적인 태도로 유연성 어필하기
직무 역량이나 경험 못지않게 중장년에게는 ‘소통 능력’에 대한 질문이 단골로 등장한다. 업무 도중 나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의견 차를 우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질문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관계 개선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이는 실제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혼자 결론짓지 않고 다 같이 문제를 살펴보며 장단점을 분석하는 수평적인 의사결정에 익숙해져야 하고, ‘내가 옛날에 해봐서 안다’는 뉘앙스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보다 다양한 시각을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적절한 답변으로 유연성을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위 말해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면접 태도 또한 신경 써야 한다. 자세와 표정 등 비언어적 표현은 언어적 표현만큼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면접관의 말을 가로채며 답변을 하거나 팔짱을 끼고 상체를 뒤로 젖혀 앉는 등 ‘언행불일치’의 태도를 보인다면 답변에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면접도 기업과 개인 간 소통의 일부라는 점을 기억하며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 기출 질문 젊은 동료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습니까?
▶ 합격 노트 실제 재취업 성공 사례 (서울50+ 인턴십)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자기 말만 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저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청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치며 대화에 활기를 더하려 노력합니다. 다만 친밀감을 표현할 목적으로 사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또 상대방이 했던 말을 요약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내는 것도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3] 회사의 지향점을 개인의 목표와 연관 짓기
면접이 끝날 무렵에는 입사 후 목표나 계획, 포부 등을 묻는 경우가 많다. 이는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지원자의 목표와 일치하는지, 혹은 구체적인 업무 추진 계획이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즉 ‘조직에서’ 이루고 싶은 포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장대한 노후 계획이 있더라도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지원 직무와 연관 지어 대답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직무 관련 최신 동향이나 트렌드를 언급하며 향후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해낼 역할을 구체적으로 짚는다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직무 관련 자기계발 계획을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속적인 발전을 원하는 기업은 주어진 일만 하려는 사람보다 성장을 도모하는 사람과 일하길 희망한다.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용을 고려하게 된다. 관리직을 지원하는 경우 기업의 비전을 역으로 질문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는 시간에 기업의 5년 후 비전을 물어보는 것이다. 중장년의 관록과 경험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기업은 지원자의 진취적인 태도를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다.
▶ 기출 질문 입사 후 (조직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습니까?
▶ 합격 노트
· 모아둔 돈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아내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X)
· 최근 ‘라이브 커머스’ 등 비대면 유통 채널이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0년 경력을 보유한 유통 전문가로서 해당 채널의 판로를 뚫고 실질적인 매출 상승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O)
· 그동안 마케팅을 진행했던 사례를 책으로 만들어 젊은 마케터들에게 지식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O)
◇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면접 TIP
장비 점검 후 접속 환경 확인하기 ▶ 화상회의 시스템에 참여하려면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데스크톱 중 하나가 필요하다. 이 중 노트북이 제일 이상적이다. 노트북은 대부분 화상캠과 마이크가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는 반면, 데스크톱은 별도의 설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도 접속이 가능하지만, 연결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좋다. 준비가 끝났다면 끊김을 방지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접속한다.
배경은 깔끔하게, 조명은 밝게 ▶ 비대면 면접은 주변 배경도 인상에 큰 영향을 준다. 단정하게 차려 입어도 주변이 산만하면 효과가 없다. 가급적 흰 벽 등 깔끔한 배경 앞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 좋다. 스터디룸이나 세미나룸을 빌려도 된다. 주변을 미처 정리하지 못했어도 가상 배경은 넣지 않는다. 진지해 보이지 못할뿐더러 인물이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집 안이 어두울 경우 LED 스탠드나 화상회의용 조명을 활용해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것도 좋다.
카메라 렌즈 보고 말하기 ▶ 간혹 화면 속 면접관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노트북은 화면 위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화면을 보고 말할 경우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내려다보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노트북에 받침을 대서 높이를 올리고 렌즈를 응시하며 말해야 한다. 또 노트북과 50cm 내외의 거리를 유지해 화면에 상반신 3분의 2 정도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이어폰으로 음질 보완하기 ▶ 음질은 비대면 면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면접 중에는 목소리가 울리거나 끊기는 등 음질로 인한 다양한 애로 사항이 생긴다. 청력이 좋지 않아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듣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음이 없는 공간을 찾고, 노트북 내장 마이크 대신 무·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어폰 착용 후 사전 테스트는 필수!
음소거 기능 활용하기 ▶ 1:1 면접이 아닌 그룹 면접의 경우 대면 면접과 마찬가지로 다른 지원자의 답변에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비대면 면접은 그 특성상 주변의 잡음이 섞일 수 있어 면접관이나 다른 지원자가 말할 때 ‘음소거’ 기능을 눌러놓는 것이 좋다. 단, 자신의 차례가 오면 해제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성공적인 재취업을 위한 마음가짐
모든 도전이 언제나 달콤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 있고,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장년 일자리 공급 과잉 현상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와 맞물린 사회적 과제이므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일자리 시장에 뛰어들려는 이유와 목적을 진단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가령 생계를 위한 소득이 필요한지, 사회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자 하는지, 혹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길 원하는지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면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진로 적성검사 등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다음 이에 걸맞은 자기계발을 꾸준히 하다 보면 기회는 자연스레 다가오고, 인생 후반전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PLUS+] 다시 출발점에 서 있는 중장년을 위한 TO-DO LIST
· 희망 기업 목록 작성 후 관련 정보 업데이트하기
·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경력 상담 및 자가진단 하기
· 국민내일배움카드 등 정부 지원 서비스로 취업 연계 자격증 준비하기
· 서울시50플러스재단 등 또래 집단 커뮤니티 활동으로 인맥 넓히기
· 희망 직무 및 관심 분야 관련 자원봉사 프로그램 참여하기
퇴직한 중장년이 재취업 과정에서 처음 마주하는 난관은 바로 이력서다. 강산이 변하는 사이 채용 트렌드도 바뀌었고, 이력서 형식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이제는 경력을 단순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인사 담당자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또 사회 초년생이 아닌 만큼 패기 넘치는 열정 대신 긴 세월 쌓아온 내공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낯선 재취업의 시작,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 위해 알아야 할 이력서 노하우를 소개한다.
도움 중장년 재취업 전문기업 상상우리
재취업을 준비하는 중장년은 일반적으로 생소한 분야보다는 동종 업계로의 경력 이직을 선호한다. 고령에 새로운 업무를 익히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전직할 경우 임금을 큰 폭으로 낮춰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방법은 헤드헌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 2019년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헤드헌팅 공고 17만3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러브콜이 집중되는 연차는 3년~5년 차 미만으로 전체의 29.6%를 차지한 반면 △10년~15년 차 미만(10.3%) △15년~20년 차 미만(2.5%) △20년 차 이상(0.7%) 등 연차가 높아질수록 헤드헌팅 기회가 줄었다.
성공적인 재취업을 위해서는 헤드헌터의 메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원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내밀고 일자리를 탐색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중장년 재취업 전문기업 상상우리 신철호 대표는 “나이에 대한 편견으로 중장년 채용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기업도 있지만,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편견을 역전시킬 수 있다”며 “서류 탈락의 원인을 나이에서 찾기보다는 이력서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년은 서류만 합격해도 취업에 70% 정도 가까워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업 입장에서 궁금해할 만한 이력서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이력서를 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STEP 1. 이력서 작성 전 준비 사항
◇ ‘실무자’라는 마음가짐
경력이 20~30년가량 되는 중장년은 임원 등 관리직 신분으로 있다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무자를 채용하는 기업은 임원 경력이 많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3~6개월의 짤막한 실무 경험이 더 유리하다. 재취업을 한다면 과거와 달리 실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이에 따른 괴리감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 직무 역량 분석 후 목표 정하기
이력서를 작성하기 전, 먼저 자신의 역량을 파악해 취업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중장년은 최소 2가지 이상의 직무 역량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 중 실무에 투입되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경력을 분야와 직무별로 적고, 정량·정성적 성과를 정리하면 자신의 핵심 역량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다음 직무와 관련한 기업을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기술영업 분야의 30년 경력을 보유한 A씨는 유사 제품군을 취급하는 기업 목록을 만들고, 해당 기업의 공고만 집중 공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처럼 문어발식 지원보다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유리하다.
◇ 채용 공고 뜯어보기
대부분의 채용 공고는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공개한다. 채용 공고를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이력서 작성의 출발점이다. 가령 모집하는 직책이 팀장·실장·관장 등 ‘담당자’나 ‘책임자’로 적혀 있다면 실무 능력을 눈여겨본다는 의미이므로 학벌 등 단순 고(高)스펙 정보보다는 직무 경력을 강조해야 한다. 또 나이 제한을 두는 기업이 많지 않지만, 경력 기간에 ‘2년 이상’이라고 명시된 경우는 대부분 사원·대리 등 주니어 직급을 뽑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하다면 전화로 물어봐도 된다. 기업 또한 채용으로 인해 빚어지는 위험 부담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인재상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STEP 2. 뽑히는 이력서 쓰기
◇ 직무와 무관한 정보는 과감하게 OUT!
경력 많은 중장년은 채울 내용이 없어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과 달리 이력서의 분량을 쉽게 채운다. 경력기술서를 포함해 5~6장이 넘는 이력서를 쓰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많으면 인사 담당자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먼저 불필요한 경력을 제거하는 것이 유리하다. 분량은 최대 3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회계 담당자를 뽑는데 요가나 필라테스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다. 열정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전문성을 떨어트리므로 직무 관련 자격증만 기술한다.
Tip 중장년 취업포털 서비스 ‘워크위즈’(workwiz.co.kr)에서 중장년 맞춤형 이력서 양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 핵심 역량은 앞으로, 약점은 뒤로
중장년은 대부분 전통적인 이력서 양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채용 공고에 ‘자유 양식’이라고 명시돼 있다면 보편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중장년 이력서는 인적 정보 대신 직무 관련 역량을 맨 앞으로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사 담당자가 지원자의 나이만 보고 넘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무 관련 역량을 상단에 작성하고, 이와 관련해 정량적 성과를 냈던 최신 경험을 2~3개 정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이후 나머지 경력은 간단히 쓴다. 최근 1~2년간 경력 단절이 있었다면 직무 관련 자격증이나 프로젝트, 재능기부 활동 등을 기재해도 된다. 나이나 학력이 약점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면 해당 내용을 맨 뒤에 배치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다.
Tip 이력서에 텍스트만 쓰라는 법은 없다. 업무 역량을 도표나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전략 중 하나다.
◇ 매력적인 헤드라인을 만들자
지원자에 대한 인사 담당자의 첫인상은 대략 15초 안에 결정된다. 넘쳐나는 경쟁자들 속 인사 담당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입사지원서’ 같은 평범한 제목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헤드라인을 상단에 써주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자신을 표현하는 슬로건 같은 것이다. 단,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내용은 매력을 떨어트린다.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IR 전문가’와 같이 직무가 분명히 나타나면서 역량이 돋보이는 헤드라인을 써야 한다.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등 수평적인 기업이라면 ‘마케팅 전문가 제임스 김’ 등 기업의 특징을 활용한 헤드라인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여줘도 좋다.
Tip 헤드라인에 ‘배달의민족체’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폰트로 포인트를 주면 트렌디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단, 모든 텍스트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전체 폰트는 ‘맑은고딕’이나 ‘나눔바른고딕’ 등 가독성 높은 고딕체가 무난하다.
STEP 3. 최종 제출까지 꼼꼼하게
◇ 맞춤법 검사로 오탈자 점검
아무리 좋은 내용을 써도 오탈자가 눈에 띄면 허술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서류를 모두 작성하고 난 뒤에는 맞춤법 검사를 통해 오탈자를 점검해야 한다.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나 ‘부산대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면 된다.
또 동일한 이력서로 여러 기업에 지원할 경우 A사의 기업명이 적힌 이력서를 B사에 그대로 제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노력이 물거품되지 않도록 기업명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 메일 제목과 파일명은 깔끔하게
마지막으로 메일을 보낼 때는 이력서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도록 제목에 지원 부문과 이름을 명시한다. 첨부파일 제목은 ‘기업명_지원 부문_성명_이력서’ 등과 같은 형식으로 한 줄로 정돈해서 보낸다.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성의를 보이는 것도 합격률을 높이는 전략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디지털 뉴딜’ 시행으로 IT, 인공지능, IoT 등을 접목한 다양한 신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친환경 이슈가 떠오르며 ‘그린 뉴딜’ 관련 일자리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중장년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숙련된 경험을 살린다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 시장 대전망’을 주제로 펼친 ‘50+일자리 특별포럼’의 두 번째 세션 토론 내용을 Q&A로 정리해봤다.
토론자
김태은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서기관(이하 ‘김’)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이하 ‘남’)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부연구위원(이하 ‘박’)
Q1. 디지털·탈탄소 사회, 중장년 일자리의 미래는?
(남) 디지털 뉴딜 분야에서도 틈새나 사각지대를 찾으면 중장년의 일자리는 충분하다. 지난 10년은 노동절약형을 강조한 기술혁신하에 일자리를 줄여왔다. 그러나 대전환 시대에는 그 반대여야 한다. 더 노동집약적이고 자원이 절감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국판 뉴딜의 핵심은 주민의 삶이 중심이 되는 ‘로컬 뉴딜’과 병행돼야 한다. 최근 로컬 모빌리티의 한 사례로 전국 지자체의 공유 자전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령 서울시의 ‘따릉이’ 누적 회원은 171만 명이 넘고, 대여도 300만 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공유 자전거 수리공이나 거치대 설치·관리자, 마을 단위 자전거 교육 강사나 수송 인력도 확대될 것이다. 이렇듯 공공의료 분야나 마을 돌봄, 그린 리모델링, 재생에너지 설치·관리, 건강한 먹거리 산업 등의 영역에서 50+세대의 일자리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박) 디지털 시대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사라진다. 일찍이 육체노동은 자동화 로봇이 대체했고, 최근에는 인지 업무도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이를 일자리의 위협으로 볼 필요는 없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큰 오해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에 일하려면 데이터 분석가나 코딩 전문가 등이 돼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해오던 일을 어떻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MIT에서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우리가 꺼리고 불편했던 일들을 신기술이 대체하고, 인간은 그 기술을 활용해 더 창의적이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자리로 확대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 있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는 자신의 현업에서 출발하되, 그에 대해 중장년이 창의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주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Q2. 한국판 뉴딜, 정부 및 기관의 50+ 일자리 계획은?
(김) 고용 관련 한국판 뉴딜의 주요 안은 ‘고용안전망의 확대’와 ‘사람 투자’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인구구조 변화 등에 대응해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지원대상 확대 및 미래적응형 직업훈련 개편, 재취업지원서비스 내실화, 전국민고용보험·국민취업제도 시행 등 고용안전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50+세대 지원을 위해 디지털 리터러시 해소, 돌봄 능력 강화, 기본 소득 도입 및 중장년 연금 확대, 공동체 일자리 제안 등을 계획 중이다. 사람 투자 측면에서는 자신의 분야에 숙련된 신중년이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동시에 디지털 역량을 학습해 이를 활용하도록 교육과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남)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도 그린 뉴딜이 본격화되면 도시재생이나 그린스마트 분야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 예견하고, 이에 발맞춰나갈 계획이다. 2020년에는 스마트시티와 관련해 파일럿 사업을 진행했다. 40명의 참여자를 17개의 스마트시티 관련 기업에 파견했고, 공공 스마트시티의 기획과 운영, 에너지 절감 컨설팅 영역 등에 50+세대의 경험과 역량을 투입했다. 2021년에는 그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다. 또 플랫폼 일자리와 관련해 ‘중소기업 공유고용 모델’을 실험했는데, 성과가 좋았다. 중소기업은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막상 채용하려면 인건비 부담이 크다. 이에 같은 고민을 가진 중소기업이 모여 전문가 1인의 인건비를 나누는 방식을 시도해봤다. 50+세대 20명과 협력 기업 5곳이 참여했고, 이후 약 70%가 실제 고용으로 연결됐다. 이를 체계적으로 보완해 질 높은 새로운 노동 모델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전국 지자체와 협력해 유휴지를 활용하는 ‘세대 융합 귀촌 모델’이나, 산업안전·돌봄 분야의 ‘50+건설안전감시단’, 취약계층 노인 대상의 ‘HF행복돌보미’ 등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Q3. 50+의 활약이 기대되는 일자리 분야는?
(남) 최근 지표들을 보면, 50+세대는 디지털 시대 전환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 중이다. 지난해 시니어 1인 미디어 생태계 창출을 위해 ‘50+ 유튜버 스쿨’을 열었다. 10팀을 선발해 집중적인 실습과 교육을 해보니 그중 40%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두 달간 구독자가 4배 증가했고, 수익은 10배를 창출했다. 이는 관련 전문가들도 놀라움을 표할 만큼, 50+세대의 디지털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다. 아울러 청년과 노년을 잇는 세대로서 노노케어, 멘토링 등의 분야에도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퇴직 후 5~10년 정도 지역에 내려가 ‘세대융합 귀촌모델’을 만들거나 지방 정부와 연계한 ‘귀촌 인턴십’ 참여도 가능하다. 나아가 국제무대에도 중장년이 활동할 기회는 충분하다. 가령 코이카(KOICA)가 가진 개도국 경제성장을 위한 조달기금은 연간 약 1조8000억 원이다. 이러한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누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50+세대가 진입할 통로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박) 디지털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생태 환경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색해볼 수 있다. 먼저 저출산·고령사회로의 인구구조 변화와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로 질 높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확대될 전망이다. 디지털 기술을 업종별 비즈니스 요구에 맞춰 개발하는 과정에서 경력을 겸비한 50+세대의 조율자 역할에 대한 기대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세대 간 융합을 도모하는 사회·문화적 포용력이 요구된다. 더불어 저탄소·친환경 사회로의 변화 속 도시재생 사업, 스마트팜 구축, 신재생 관련 제품 서비스 개발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된 바처럼 1980~90년대의 경제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과 상호 호혜적으로 발전 가능한 국제무대에서의 일자리 창출도 꾀할 수 있다.
2020년 정부는 대규모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마련된 국가 프로젝트로, 크게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고용안전망 강화’로 나뉘어 주요 과제들이 추진된다. 아울러 기획재정부는 2021년 중장년 일자리 지원과 관련해 3602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지난해 대비 38.8% 증가). 이에 따라 지난 연말에는 ‘대전환 시대를 건너다’를 주제로 ‘50+일자리 특별포럼’(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열렸다. 세 섹션으로 나눠 열린 이날 포럼의 내용을 토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장년의 일자리 전망과 대응책 등을 3파트로 나눠 짚어봤다.
PART 1 포스트 코로나 시대, 50+의 역할과 방향
‘50+일자리 특별포럼’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대전환 시대, 한국사회 50+세대 역할과 방향’을 주제로 김영대 서울시50플러스재단 대표와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대담이 이뤄졌다. 두 사람은 “한국판 뉴딜 정책 시행에 따라 청년층과 노년층을 잇는 50+세대의 가교역할이 절실해질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한국판 뉴딜, 50+가 선봉에 서야
김영대 대표는 “현재 5060세대는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치며 변화에 빠른 적응력을 보여왔다. 최근 4차산업 시대에 ‘디지털 뉴딜’이나 ‘그린 뉴딜’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역량도 충분하다. 즉 사회적 짐이 되느냐, 기여자가 되느냐는 그들의 손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린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신재생에너지 확산기반 구축이 이뤄질 계획이다. 특히 태양광 분야의 경우 주민참여형 이익공유사업이 도입된다. 사업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 중장년 자산가 중에서 사업에 관심을 두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50+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배근 교수 역시 “1980~90년대 산업계의 지각변동을 겪었던 청년들이 지금의 50+세대다. 이제는 그들의 자녀가 청년기에 진입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고,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50+세대가 하드웨어 역할을 하는 등 두 세대의 연대와 융합이 주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더불어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세대를 살펴보면 30대 중반 이하의 청년층과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주를 이룬다. 즉 퇴직연령은 갈수록 낮춰지는 상황에서 40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타격을 입고 있다. 이들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건 역시 50+세대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시작 단계에 현재의 50+세대가 선봉에 서서 토대를 잘 마련해야만 다가올 50+세대(현재의 40대)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며 후배 세대를 위해 새로운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당부했다.
확대와 지원 속 구심점 필요해
한국판 뉴딜정책 ‘고용안전망 강화’의 과제로 ‘청년·신중년의 고용시장 진입·전환 촉진’이 있다. 특히 신중년의 새 일자리로의 전환 지원을 위해 재취업지원서비스를 내실화하고, 디지털·그린 관련 직무로의 진입을 촉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월 최대 80만 원×12개월) 지원 대상에서 디지털·그린 관련 직무와 인원이 확대된다. 더불어 디지털·그린 뉴딜 등 경제구조 변화에 대한 적응력 향상을 위해 중장년을 대상으로 폴리텍 등 공공 훈련기관을 활용해 디지털 융합 훈련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앙코르전직지원 프로그램’, ‘서울50+뉴딜인턴십’, ‘신중년 도시재생 창업지원 프로젝트-점프업 5060’ 등 50+를 위한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추진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서울50+뉴딜인턴십’의 경우 지난해 신기술,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활용해 도시문제(환경, 에너지, 디지털 소외 등)를 해결하는 ‘스마트시티 전문인력’을 지원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한 도시재생이나 그린스마트 분야의 일자리도 한국판 뉴딜 정책에 기반해 확대·개선될 전망이다.
김 대표는 “2017년 정부에서 ‘신중년 인생3모작 기반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50+ 관련 다양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보건기구(WHO) 등 해외에서도 집중하는 혁신 사례로 손꼽힌다. 물론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전국 지자체만 50여 곳인데, 기관마다 지원하는 연령대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다.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획일화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판 뉴딜 역시 이러한 점에 착안해 50+ 관련 과제들을 진행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출산·고령화 해결 위한 모두의 ‘쉼표’
지난 12월 정부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 사회’를 구현한다는 비전하에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조성’, ‘건강하고 능동적인 고령사회 구축’ 등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웠다. 앞서 김 대표와 최 교수가 제시한 ‘세대 간 융합’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서도 ‘모든 세대가 함께’라는 취지하에 일맥상통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두 사람은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위한 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젊은 세대 중에는 결혼이나 출산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보다도 사회적 책임이 크다. 사회 혁신을 하려면 청년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좋은 아이디어를 쏟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 50+세대의 경험이 요구된다”며 “현대인은 아이디어를 내고 경험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경쟁사회 속 여유와 공백을 갖는 건 자칫 무모하게 여겨진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소득과 일자리 보존이 가능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 한다. 가령 퇴직 전 50대에게도 1년 정도 안식년을 갖게 하고, 그동안 정부와 기업이 분담해 월급의 80% 정도를 보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한국판 뉴딜 정책의 추진 과제인 ‘사람 투자’처럼, 낭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쉼을 통해 중장년은 경력을 재정비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강화해 새로운 일자리로의 도약을 안정적으로 이뤄낼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 역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며 “개인을 위해 경쟁하던 사회를 지나 이제는 다른 세대와 공존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더불어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과거 바삐 살아온 50+세대가 이제는 더디 살아가며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꿈꿨으면 한다”며 “그 어렵던 시절 대한민국을 일으킨 분들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 코로나, 고령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으로 2021년은 함께 배우고, 일하며 상상력을 펼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50+세대를 격려했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이번 호에서는 노년기 인간관계 재정비 노하우를 알아본다.
어긋나는 관계가 우울증을 부른다
은퇴 후 노년기는 활동 반경이 직장에서 가정으로 전환되어 인간관계가 줄어들고, 사회 참여도가 낮아지는 시기다. 또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자녀가 결혼해 출가하는 등 가족관계의 지형이 급변하는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 세라 요게브는 저서 ‘행복한 은퇴’에서 이런 노년기 관계의 변화를 준비 없이 맞이할 경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웩슬러 역시 저서 ‘관계의 심리학‘에서 중년 이후 최악의 인간관계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보고서 ‘중·고령층 근로활동이 인지기능 및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은퇴자는 일하는 중·고령층에 비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제한된 사회활동과 대인관계의 축소가 우울함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큰 역할을 하는데, 은퇴 후에는 이 연결망이 단절되어 자아정체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공적 관계망의 축소뿐 아니라 은퇴 후 사적 관계망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도 은퇴 후 삶의 질을 낮추고 외로움을 증폭시킨다. 특히 살아온 세월 속 쌓인 갈등이 폭발하면서 관계가 망가질 때가 많다. 배우자 및 자녀와의 갈등이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의 불협화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2016년 발표한 ‘4대 관계망을 통해 본 은퇴 후 인간관계의 특징’에 따르면,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늘리고 싶다’고 한 은퇴자보다 6배나 많았다.
이 같은 문제들을 비추어볼 때, 은퇴 후에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삐걱대는 관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 간 어긋난 부분을 개선하고, 줄어든 인맥을 새롭게 채워나가야 사람 냄새 풍기는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다.
배우자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하라
시니어가 은퇴 후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배우자와의 불화다. 부부 갈등은 시기별로 언제나 존재하지만, 은퇴 후에는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잦은 다툼이 일어난다. 또 부부관계를 지탱해주던 자녀가 결혼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독립할 경우 별것 아닌 일로도 큰 싸움을 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었던 올해처럼 외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기면 부부간 마찰을 빚을 확률이 높다.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따로 또 같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부 여행을 갈 때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반나절 정도만 함께하고, 나머지 시간을 각자 원하는 곳에서 보낸다면 다투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부부간의 대화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견 차가 생기더라도 생활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고 조율해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중 언쟁이 벌어질 때는 ‘싸움 규칙’을 세우는 것이 좋다. ‘집 나가지 말기’, ‘문제가 되는 것만 얘기하기’, ‘이혼 들먹거리지 말기’ 등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행동을 금지하고, ‘먼저 사과하기’, ‘화가 풀리지 않았더라도 손 잡아주기’ 등을 규칙으로 정하면 잦은 싸움을 줄일 수 있다.
스포츠부터 종교, 봉사, 명상, 요리, 예술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도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취미활동을 같이 하다 보면 자연스레 화젯거리는 늘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때 자신의 취미를 배우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배우자의 취향에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배워보려는 포용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배우자를 향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줄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자식 간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가족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라며 “배우자가 자신을 위해 희생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비우고, 서로의 노고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력적인 벗이 되어라
가족을 제외하면, 은퇴한 시니어의 인간관계는 학창 시절 동창 등 친밀한 관계 위주로 재편된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고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를 쓴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는 은퇴자를 많이 만나봤다”며 “인맥의 많고 적음보다는 마음 맞는 관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봐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말끝마다 불평불만을 쏟아낸다거나 걸핏하면 화를 내는 등 만났을 때 기분 좋은 에너지보다 불편함을 주는 사람은 알고 지낸 세월에 관계없이 자연스레 꺼려지게 마련이다. ‘앵그리 올드’(Angry old, 성난 노인)가 판치는 세상에 ‘앵그리 프렌드’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은지, 또는 만나고 싶지 않은지 생각해보면서 자신 역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매력적인 친구가 되려면,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태도 도 중요하다. 가령 독서모임에 가입하자고 제안하는 친구에게 “이 나이에 눈도 피곤한데 무슨 책을 읽느냐”며 재를 뿌리는 대신, “용기가 부럽다”고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면전에 대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적을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결국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 바로잡아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좋은 벗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만남으로 삶을 물들여라
하지만 같이 있으면 편하다는 이유로 친구관계에 ‘올인’해서도 안 된다. 가장 최근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은퇴 직전까지 함께한 공적 관계망의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친구와는 또 다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에서도 소중한 인연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맺음에 도전해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예컨대 영화나 악기, 특정 스포츠 등 관심사나 흥미를 공유하는 모임에 가입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나 조건에 따라 관계를 구분 짓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과 공감 능력을 갖추고, 나이 차이가 나도 절친이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젊은 세대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신선한 자극도 받고, 배울 건 받아들이다 보면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60~70세였다. 이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100세 시대인 오늘날은 자녀와의 관계만큼이나 부부, 친구, 사회적 관계가 중요해졌다. 노후에는 특히 열정을 나눌 관계에 투자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은퇴 후에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인생을 풍부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
도움말 강학중 가족경영연구소 소장,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우리가 사는 집, 주거 공간이다.
추억의 물건에 집착하지 말자
나이가 들면 지나간 세월만큼 추억도 많아진다. 하지만 그 추억들은 흘러가버리기 마련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으로 그 시절을 기억한다. 간만에 대청소를 하기 위해 집을 한바탕 뒤집었다가도 결혼할 때 입었던 예복, 10년 전에 사용한 휴대폰, 연애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 등 빛바랜 물건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고 찬란했던 그날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보관함으로 집어넣는다. 자녀들을 위해 사둔 이런저런 철지난 혼수품도 아까워서 끼고 사는 중장년층 부모도 많다.
소중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이해도 되지만, 사소한 추억까지 다 안고 살면 오히려 현재의 삶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청소할 때마다 일일이 쓸고 닦을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물론이고, 체력적으로도 모든 물건을 관리하는 건 무리다. 무엇보다 오래되고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이 공간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으면 그 집은 현재의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과거를 사는 곳이 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원한다면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다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물건만 남기라는 얘기다. 당장 필요한 물건을 정하고, 그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해 통제할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해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 안의 물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체력을 고려해 가벼운 물건 위주로 써야 한다. 그릇이나 컵 하나를 고를 때도 예전과는 다른 기준과 시선으로 봐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거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큰 변화가 있을 때 물건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리는 언제든 해도 된다. 특히 요즘같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을 땐 집 안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보는 게 좋다. 기분이 산뜻해지면서 답답함도 해소된다. 큰맘 먹고 대청소 한번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면, 정희숙 정리컨설턴트가 제안하는 공간별 정리 팁을 참고하자.
아늑한 침실의 비결은 ‘옷장 정리’
침실을 정리할 때 가장 처리하기 힘든 ‘빌런’(악당)은 다름 아닌 옷장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구매하는 옷들이 생기지만, 옷장 공간이 한정돼 있어 걸어둘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는 침대나 의자 위에 어수선하게 옷과 물건을 쌓아두게 되고, 침실은 자연스레 난장판이 된다. 따라서 아늑한 침실을 만들려면 옷장 정리부터 해야 한다. 정리 방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 침실의 구조부터 살핀다. 별도의 드레스룸이 있는지, 옷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그다음 어디에 무엇을 넣을지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본다. 평소 입을 일이 없는 한복이나 민방위복 같은 옷들의 자리도 정해두면 좋다.
그다음 옷장에서 옷을 전부 꺼내 입을 옷과 입지 않을 옷을 가려낸다. 10년 전에 유행하던 원피스, 사이즈가 맞지 않는 바지 등 자주 입지 않는 옷들은 모두 버린다. 아깝더라도 오늘의 나를 돋보이게 해줄 옷으로 옷장을 채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남겨진 옷들은 종류별로 나눈다. 우선 상의, 하의, 세트복(등산복·운동복 등), 원피스로 분류하고 계절별로 나눈다. 그리고 현재 입는 옷 위주로 옷장에 건다. 지금은 겨울철이므로 두툼한 옷을 앞에 배치한다. 옷을 걸 때는 두꺼운 옷걸이를 피하는게 좋다. 옷장의 공간이 금세 줄어들기 때문이다. 니트는 세로로 반을 접어 겨드랑이 부분에 옷걸이를 놓고 양팔 및 몸통 부분을 옷걸이 안쪽에 넣어 고정하면 늘어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얇은 옷걸이를 사용하자.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거실은 가족의 소통 공간으로
이상적인 거실의 기능은 가족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일을 공유하는 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거나 말없이 TV를 보는 공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저런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아 마치 창고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떤 공간이든 잡동사니로 어수선해지면 본래의 기능을 잃는다. 거실을 소통의 장으로 되돌려놓으려면 먼저 잡다하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도 품목에 따라 분류해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어린 손주와 함께 사는 집이라면 거실이 매일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럴 땐 TV 서랍장 한 칸을 손주 장난감 등을 넣어두는 수납장으로 쓰면 좋다. 평소 아이가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과 적정량의 책만 두고 나머지 물건은 손주 방에 보관한다. 손주 방이 없다면 학습 관련 물품이나 장난감을 수납하는 장소를 따로 지정해두고 쓴다.
책이 많은 집은 거실 여기저기에 읽다 만 책을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 책 놓을 공간이 부족하면 책장을 가로로 눕힌 뒤 책을 꽂고 그 위에 수납함을 올려보자. 공간 분할 효과가 생긴다. 이런 방법들로 비좁은 거실을 정리해 사용 범위를 넓혀나가면 가족들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주방은 청결이 핵심
주방은 식생활을 하는 공간이므로 어떤 곳보다 청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주방 정리의 핵심은 청소인데, 요리 도구와 주방 물건들이 잘 정리돼 있어야 청소가 쉽다. 주방은 크게 싱크대, 조리대, 가스대로 구성돼 있다. 요리가 펼쳐지는 이 세 곳을 중심에 두고 정리를 하면 깨끗하면서도 효율적인 주방을 만들 수 있다.
우선 싱크대 옆 조리대에 펼쳐져 있는 잡다한 물건부터 정리한다. 주방 가전 필수품인 밥통과 전자레인지 정도만 놔두고 조리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한다. 비타민 같은 건강보조식품은 정수기 가까운 곳에 두면 매일 잊지 않고 챙겨 먹을 수 있다.
상부장과 하부장으로 나눠져 있는 수납부도 정리할 물건이 꽤 많다. 개수대 바로 위 상부장은 설거지한 그릇이 물기가 마르면 넣고 다시 꺼내 쓸 수 있도록 가급적 비워둔다. 상부장에 그릇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와이어 랙(철사 선반)에 그릇이 가득 쌓여 싱크대 주변이 혼잡해진다. 따라서 이곳엔 식사를 할 때 사용하는 그릇들만 놔두고 나머지는 상부장에 올린다.
하부장은 미어터지는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다. 개수대 아래 파이프가 지나가는 경우는 선반을 만들기 어렵지만, 파이프가 없다면 선반을 설치해 냄비, 프라이팬 등을 보관하면 좋다. 단, 개수대 쪽은 물을 많이 사용해 습하므로 양념 종류는 놓지 않는다.
신발은 구성원별로, 눈높이에 맞춰
현관은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곳이다. 또 풍수지리학적으로 외부와 내부의 기운이 만나는 곳이므로 가급적 깔끔한 게 좋다. 현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발장만 잘 정리해도 넓고 쾌적한 현관을 조성할 수 있다.
신발도 옷과 마찬가지로 계절에 따라 분류한 뒤 가족 구성원별로 나누고, 종류별로 정리한다. 크게 운동화, 단화, 하이힐, 등산화로 구분하면 된다. 이때 치수가 맞지 않거나 잘 신지 않는 신발들은 버린다. 이렇게 과감하게 정리해야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신지 않는 신발은 따로 보관하거나 세트로 정리해둔다.
관리가 가장 까다로운 신발은 부츠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모양도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지 않을 때는 작은 생수통이나 신문지를 넣어둔다. 투명 케이스 등 사이즈가 맞는 수납공간이 있으면 그곳에 보관한다.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부츠 살 때 받은 박스에 보관해도 된다. 신발장은 가득 채우기보다 손님이 방문할 때를 대비해 한 칸 정도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게 좋다. 쇼핑백이나 상자, 우유팩, 커피 캐리어 등 소품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도움말 정희숙 정리컨설턴트
자료 및 정보 제공 가나출판사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