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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순 조향사 “늙어 맡지 못해도 향기 만들 것”
- ‘대한민국 1인자’로 꼽히는 정미순 조향사(57).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향수를 만드는 그녀에게서는 어떤 향이 날지 궁금했다. 인터뷰 당일 뿌린 향수를 묻자 “저는 사실 향수를 잘 안 뿌린다”는 반전의 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향을 테스트하고 향수를 개발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 그래서일까. 그녀에게서는 인간 본연에서 나오는 향이 더 짙게 느껴졌다. 데이트 장소를 향해 두근거리며 걸어가는 여대생이 떠오르는 향, 숲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향, 중세 유럽의 쓸쓸한 느낌이 드는 향…. 정미순 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향수에서는 다양한 향이 났다. 그리고 그 향수들의 어머니답게 그녀는 모든 향을 품었다. 향수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처음 느껴지는 향을 톱 노트, 그 다음에 느껴지는 향을 미들 노트, 마지막으로 보통 잔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라스트 노트(베이스 노트)라고 한다.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자신의 향을 내뿜었다. 그녀의 톱 노트는 수수했고,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해지자 밝고 열정적인 미들 노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라스트 노트는 향기를 만드는 예술가답게 통통 튀며 사랑스러웠다. “향기란 저의 삶, 일생의 동반자 같아요.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향기 덕분이고, 향기를 지금까지 놓지 않고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친구, 연인, 가족… 저에게 향기란 그런 존재 아닐까요?” 척박한 불모지 개척 향수뿐만 아니라 화장품, 디퓨저, 향초 등, ‘향’은 우리의 삶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 향을 업으로 삼는 조향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전문적인 조향사가 아니더라도 공방을 차릴 수 있고, 취미로 향수 만들기도 가능하다. 조향사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조향사는 여러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제품에 향을 덧입히는 등의 일을 하는 향료 전문가 또는 향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직종을 일컫는다. 화장품 향료나 향수를 다루는 향장품연구자 퍼퓨머(Perfumer), 식품 향료를 다루는 플레이버리스트(Flavorist)로 세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해도 향 산업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2002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정미순 조향사가 1세대라니 말 다하지 않았나. 그전에는 더욱 척박했다. 그녀 또한 조향사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포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녀는 중학생 때 에스티 로더 여사의 전기를 읽고 조향사의 꿈을 갖게 됐다. 에스티 로더가 조향사로 화장품 업계에 입문했던 것.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전공도 에스티 로더를 따랐고,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공부 잘하는 딸이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를 마주하는 것은 당연했다. “에스티 로더 여사가 화학 공부를 했다는 것이 책에 한 줄 써 있었나 그랬어요. 화학을 전공해야 조향사가 될 것 같았어요. 당시 부모님은 약대를 가라고 하셨죠.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좀 컸어요. 부모님은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신 거죠. 조향사는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었기에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걱정하셨어요. 저는 밥 먹고 살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대를 가고 약사를 했어도 결국에는 향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일을 했어도 저는 결국 향으로 넘어왔을 것 같아요. 시기만 늦어졌겠죠.”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졸업 후 일반 기업체에 입사했다. 회사 생활을 3년 정도 한 그녀는 잊고 있던 조향사라는 꿈을 떠올리고는, 회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향수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 가는 대신 가까운 일본으로 떠났고, 도쿄 미아조향학원을 다녔다. 3년 동안 공부에 매진해 교육을 수료했다. 그러나 조향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정미순 조향사는 다시 수입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2년 출장으로 프랑스의 향수 도시 그라스에 가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그라스는 인구 60% 이상이 향수 관련 산업에 종사하며, 프랑스에서도 향수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 회사 갈리마드(Galimard)의 대표를 만났다. 갈리마드는 약 27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프랑스 왕실 향수로 유명하다. 갈리마드에는 조향 체험을 할 수 있는 퍼퓸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녀는 직접 예약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갈리마드 대표는 향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알아봤는지 한국에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열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귀국 후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외국에나 있던 퍼퓸 스튜디오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녀는 조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으로 발전시켰다. 국내에 마땅한 교육 기관이 없었고,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1세대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사실 저는 1세대 조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처음 하셨던 분도 있고, 저의 스승님도 계세요. 섬유 회사를 운영하시던 박재덕 선생님인데 제가 학원을 차린 후 먼저 연락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저희 학원에서 플레이버 수업을 하셨고, 제가 첫 제자가 됐죠. 그래서 대한민국 1호 조향사라고 하면 부담스러워요. 제가 조향사로서 처음 한 것은 조향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한 거죠. 또 프리랜서로서 독립 조향사는 처음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던 홀로서기 갈리마드는 조향사로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해줬지만, 현재는 ‘애증’의 존재다. 고마운 은인이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와 퍼퓸 스튜디오 계약을 맺고 활동해왔다. 향수 수입 판매는 안 했다. 그런데 갈리마드가 국내의 다른 회사와 향수 수입과 관련해 이중 계약을 맺었고, 정미순 조향사와는 결별을 원했다. 이에 2013년 갈리마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지엔(GN) 퍼퓸&플레이버 스쿨’(이하 ‘지엔 퍼퓸’)로 이름을 변경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그녀에게 갈리마드는 소송을 걸었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으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미순 조향사는 “좋은 관계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소송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저도 그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는데, 그 업체(다른 파트너사)가 저를 매도한 거예요. 계약 종료 후 저는 바꾼다고 다 바꿨는데, 기존의 기사를 내릴 수는 없잖아요.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걸 영업 방해 명목으로 세 개 정도 소송을 건 거예요. 그때 만약 합의를 했으면 영업을 방해하고 갈리마드 이름을 고의적으로 도용했다는 불명예스런 결과가 남는 거였죠. 제 명예도 있고 제자들의 명예도 있어서 소송을 했어요. 1년 넘게 소송을 했는데, 저는 정당하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세 개 다 승소했죠.” 힘들었던 시간은 다행히 전화위복이 됐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당시를 회상하며 정미순 조향사는 “소송을 당한 자체로 제가 잘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지인들이나 제자들이 진정성을 알아주고 힘을 실어줘서 잘 극복했다”면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갈리마드라는 이름을 보고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정미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지엔 퍼퓸은 현재 아카데미, 공방, 향수 회사, 향료 회사까지, 크게 네 가지 사업을 한다. 조향사 자격증 취득도 가능하다. 정미순 조향사는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해내면서 점점 발전하는 향수 산업에 큰 기여를 했다. “조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조향사라는 일을 관심 있어 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공방이나 아카데미를 찾아와 배웠으니까요. 이제는 향에 대한 수요가 많이 생겼죠. 브랜드에서도 향수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셀럽 향수 제의도 들어오죠. 셀럽 향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향수를 출시하는 거예요. 그룹 신화와 비가 생각나는데, 비는 공연이 무산돼서 출시는 못 했어요. 언젠가는 가수 박효신 씨의 향수를 만들고 싶어요!” 조향사로 저명해진 그녀는 2021년 2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인기 프로답게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방송을 보면 정미순 조향사는 유재석, 조세호에게 즉석에서 향수를 만들어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유재석 씨는 시원하고 깔끔한 향을 좋아하고, 조세호 씨는 파워가 있는 향을 좋아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고를 것 같은 향을 예측해서 갔는데 그대로 고르더라”고 설명했다. 또한 배려심 넘치는 유재석을 보면서 ‘괜히 톱 MC가 아니구나’를 느꼈다고 후기를 전했다. 자연과 예술에서 조향의 영감 받아 정미순 조향사는 현재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한 달에 2주는 서울에, 2주는 제주도에 있는 격이다. 서울 방배동에 있던 국내 유일의 향수 박물관 ‘뮤제 드 파팡’이 제주도로 이전했고,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곳에서는 원데이 클래스로 자신만의 향수도 만들 수 있다. “프랑스 그라스에 향수 국제 박물관이 있는데, 뮤제 드 파팡은 그것의 작은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향료를 추출하는 원재료가 심겨 있고, 향도 맡아볼 수 있고, 향을 추출하는 과정, 조향 과정도 볼 수 있어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데, ‘자연 속에 향수 박물관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향수의 히스토리도 듣고 소재가 되는 식물들도 보고 하니 재밌고 신기하죠. 정원도 더 가꾸고, 점점 더 확장시킬 계획이에요.” 정미순 조향사는 어릴 때부터 자연의 향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앞집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꽃 향이 좋아서 매일 저녁마다 향을 맡았다고. 자연의 향기들로 이어진 조향사의 삶. 그녀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새로운 한국적인 향을 만들 계획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싶어서 제주도에 내려간 것도 있어요. 자연이 저한테 영감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제주도의 산이나 바다, 바람 부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 이런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향을 만들지 정한 것은 없어요. 지금은 동백꽃이 많이 피어 있으니 동백꽃을 향으로 표현해볼 생각이에요. 그 계절, 일상이 반영되는 거죠.” 조향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역시 자신이 만든 향수가 대중한테 사랑받을 때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것을 제외하고 지엔 퍼퓸에서 만든 향수는 15개, 제자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향수는 10개라고 한다. 그중 정미순 조향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향수는 무엇일까. “제가 처음 만든 향수가 맥앤로건 화이트예요. 지금은 라이선스가 끝나서 ‘지엔 화이트’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베스트 셀링된 향수예요. 그리고 최근에 마지막으로 만든 향수는 ‘디야’라고 하는데, 류시화 시인님이 지어주셨어요. 인도 관련 시집의 북 퍼퓸이었고, 샌들우드 향수로 만들었죠. 또 하나는 ‘웜홀’이라는 향수가 있어요.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먹 향’을 썼어요. 개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던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생소했죠. 그런데 그 향을 꾸준히 찾는 마니아층이 생겨서 뿌듯하더라고요.” 이처럼 정미순 조향사는 자연이든 어떠한 이야기든 영감을 받아 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향을 표현의 예술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만든 향수가 있다. 수녀의 이야기인데 오래된 성당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줬다. 향을 맡은 분들이 공감해줘서 보람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스토리가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향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감 중 후각으로 일하는 조향사에게 코 관리는 생명이다. 그녀는 조향사가 된 이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코와 건강관리를 하는 것. 조향사로서 향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20년 동안 향을 맡았고 약 2000개의 향을 구별할 경지에 올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향이 지겹지 않고 좋다. 척박한 불모지에 향을 퍼뜨린 정미순 조향사는 앞으로도 향과 함께하는 삶을 걸을 예정이다. “저는 향을 계속 만들어나갈 거예요. 대중한테 좋은 향을 만들어서 선보여야죠. 또 개인적으로는 제주에서 뮤제 드 파팡을 좀 더 생각하는 그림으로 키우고, 제자들이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후각은 사실 신체의 노화와 관련 있어서 60대 중반이 최대인 거 같아요.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경험치로 향을 만들 거예요. 내 머릿속의 냄새를 맡아야죠. 조향사로서의 삶이 언젠가 끝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 2022-02-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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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선호 1위 자격증, 지게차운전기능사
-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유망 직업을 소개한다. 취업 시장에서 기업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기술자격증은 지게차운전기능사로 나타났다. 이에 많은 시니어들이 은퇴 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50세 이상 남성들이 가장 많이 딴 국가기술자격증은 지게차운전기능사였다. 1만 616명이 취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게차는 다른 중장비에 비해 장비 조작이 비교적 쉽고,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취업이 용이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더욱이 올해부터 지게차운전기능사는 과정 평가형으로도 자격을 취득할 수 있어 관심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원래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은 시험으로 취득하는 검정형이었다. 과정 평가형 국가기술자격은 실무 중심 교육·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 평가를 거쳐 합격 기준을 충족한 사람에게 국가기술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산업현장에서 지게차운전기능사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실무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같이 자격 취득 방법도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지게차는 소형 지게차와 일반 지게차로 구분할 수 있고 취득 과정도 다르다. 3톤 미만 소형 지게차는 별도 시험 없이 이론 6시간, 실기 6시간 등 총 12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국토교통부에서 발행하는 소형 지게차 면허 취득이 가능하고, 조종이 가능하다. 반면에 일반 지게차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소형 지게차뿐 아니라 3톤 이상 지게차도 운전할 수 있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취득 방법 기존의 검정형 자격증 시험은 필기·실기시험으로 구성돼 있다. 필기와 실기 모두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만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 필기시험 난이도는 일반적인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치기 쉽다. 필기시험 합격률이 50% 정도밖에 안 되므로 공부는 필수다. 특히 신중년들은 공부를 오랜만에 하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기에 학습이 어렵다는 호소가 줄을 잇는다. 때문에 젊은 층보다 공부를 배로 열심히 해야 한다. 다행히 2020년 1월부로 출제 문제가 이론 중심에서 실무 중심으로 개편됐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지게차 주행, 화물 적재, 운반, 하역, 안전 관리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다. 실기시험은 4분 이내에 정해진 코스를 주행하며 화물 적재, 운반, 하차 등을 해야 한다. 실기시험의 포인트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짧은 시간 안에 정해진 작업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지게차를 여러 번 운전해보며 잔 실수와 긴장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시험은 상시 검정 시행 종목으로 상세한 시험 일정 정보는 큐넷(Q-net)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큐넷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며, 국가 자격시험 원서 접수, 합격자 발표, 시험 일정 등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다. 다양하게 취업 가능해 지게차운전기능사를 요구하는 기업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주로 각종 건설업체 및 제조업체에서 수요가 높다. 그뿐 아니라 물품을 상하차해야 하는 배송 및 운송, 항만업체에서도 지게차 운전면허를 소지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알아야 할 것은 기업은 지게차 운전뿐 아니라 다른 업무도 병행 가능한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목표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개발할 것을 추천한다. 현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입의 나이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20~30대 젊은 층도,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50대도 많아지고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고 배척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다만 3년 정도 일을 해야 업계에서 경력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70대 고령자도 일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게차운전기능사로 경력을 쌓으면 개인 사업자로 전환해 일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비 지원 중장년 교육 활짝 사회적으로 퇴직 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정부도 40~60대를 위한 지게차 운전 양성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항만공사(IPA)와 한국폴리텍대학, 경기도 생활기술학교가 인기 있다. 이들 세 곳에서는 전액 국비로 전문 교육이 이뤄지며, 자격증 취득에 이어 취업이 이뤄지도록 지원해준다. 단점은 1년에 한 번 교육을 실시하며, 보통 15~20명으로 교육생을 소규모로 모집한다는 점이다.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고 빠른 취득을 원한다면 중장비 전문 교육 학원을 찾아 교육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민내일배움카드가 있으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이밖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자리지원센터에서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으니 거주지를 고려해 자신에게 꼭 맞는 방법을 찾아보자. 지게차 운전 교육기관 인천항만공사(IPA) 인천항만공사(IPA)와 노사발전재단이 공동으로 ‘중장년 생애경력설계 및 지게차 운전원 인력 양성과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1기, 2021년 2기 교육이 진행됐다. 중장년층의 항만 물류 기능인력 양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교육은 2주간 지게차 이론 및 70시간 실습, 생애 설계 교육 6시간 등 자격증 취득과 중장년의 새로운 경력 설계에 특화된 내용으로 구성됐다. 실제 제1기 교육생 13명은 전원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그중 6명은 일자리 연계를 통해 물류업체 취업에 성공했다 한국폴리텍대학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에서는 제2의 직업으로 새 출발을 원하는 40~60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 및 취업 지원을 4개월 과정으로 해준다. 자동차과 안에 지게차 운전 교육 과정이 있고, 지난해 18명이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캠퍼스에서는 연령에 상관없이 실업자를 대상으로 전기지게차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경기도 생활기술학교는 경기도 지원으로 경기과학기술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다. 경기도 생활기술학교는 5060세대를 위해 자동차진단평가 전문가 과정과 지게차운전기능사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은 주말에 진행돼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은퇴 후를 준비하는 이들도 자격 취득 및 취업 연계가 가능하다. 지게차운전기능사 과정은 2021년 개설됐는데 20명 정원 모집에 43명이 접수해 2.2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게차운전기능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새삼 입증됐다. ◇“지게차 운전 자격증, 활용도 높아”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지게차 교육 과정 1기 수료생 최명종(53) 씨 최명종 씨는 앞서 얘기한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지게차운전기능사 교육 과정 1기 수료생이다. 그는 무역 회사에서 15년 동안 근무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실업자가 됐다. 회사의 총책임자였던 그는 현장 근무도 했기 때문에 지게차 자격증 취득이 이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예전 직장에서 지게차 운전을 했었어요. 그때는 자격증이 없어도 운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전사고 때문에 자격증이 필수가 됐잖아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공부를 하는 와중에 아내가 이런 교육도 있다고 알려줘서 관심이 많았던 터라 수업을 듣게 됐어요.” 교육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주말 동안 이뤄졌다. 그사이 최명종 씨는 7월에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고,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취득 공부를 계속해 약 한 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최 씨는 “필기시험은 교육을 들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됐고, 실기시험은 과거에 지게차를 탔던 경험 덕분인지 어렵지 않았다”고 후기를 전했다. 그는 현재도 일을 할 때 지게차를 타면서 자격증을 잘 활용하고 있다. 또한 최명종 씨는 하반기 실시된 2기 교육에는 보조 강사로 함께했다. 뿌듯함을 느끼는 한편, 교육생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기 실습을 할 때 보니깐 여성분들도 계셨는데 긴장하고 겁을 먹는 분이 많았어요. 시험 시간이 4분으로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잘 지켜야 하고 선도 밟으면 안 되잖아요. 운전면허시험과 같다고 보면 되는데 지게차 운전사로 활동하는 분들도 면허 코스를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이와 함께 최 씨는 많이 개선됐지만, 교육 장소가 협소하고 지게차가 2대밖에 없어 연습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최명종 씨는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은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취득할 것을 추천했다. 그는 장점으로 “재취업이 쉽지 않은데, 자격증이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특히 3톤 이상 중장비 운전은 필수인 시대가 됐다”고 꼽았다. 반면 단점으로는 “꼬집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지게차라는 한 카테고리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중장비 자체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신중년에게 자격증이 좋은 이유에 대해 “일에도 활용되고,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귀농·귀촌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저는 자격증을 꼭 활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과정이 좋았고, 자기 성취감이 컸다”고 강조했다.
- 2022-02-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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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숨결 숨쉬는 익산 왕궁리 유적지
- 왕궁리 유적지로 들어가면서 ‘여유롭다’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유적지든 공원이든 시설물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볼거리가 많음을 보여주려는 듯한 복잡한 풍경이 늘 아쉬웠던 터다. 널찍한 익산의 왕궁리 옛터엔 휑한 여백의 미가 팍팍, 신선한 바람 맞으며 헐렁한 여유감으로 벅차기까지 하다. 물씬한 황량함이 어쩐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 넓은 터에 혼자 온 듯한 여행자 두 사람만이 각자 이쪽저쪽에서 뚝 떨어져 호젓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유난스러운 유적지의 시스템이 있을 법한데 여긴 그렇지도 않다. 딱히 꾸며진 모습 없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널널한 풍경이 된 역사 속을 걷는다. 관람 동선 안내문이 있지만 이 넓은 공간을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자유롭게 오가면 된다. 입구에서 호위하듯 고목이 숲을 이룬 길을 산책하듯 홀린 듯 걸으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맛,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멀리서도 홀로 오롯한 왕궁리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포토존 프레임 안으로 바라보는 석탑 또한 기품 있다. 오랜 세월 너른 터에 우뚝 서서 품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왕궁터를 돌아보건대 세련되고 웅장했을 백제 옛터다. 끊임없는 보존 노력으로 이제는 풍경이 된 역사 속에 서본다. 주변으로 몇 개의 건물터, 금당터가 자리를 지키고, 왕궁 둘레를 감아 도는 길에 단을 높인 대형 배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왕이 휴식하던 후원과 공방, 화장실까지 옛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조성했다는 설명서를 읽으니 그 시절 장인들의 디테일한 기술이 놀랍다. 이런 길을 따라 궁궐과 정원의 멋을 누렸을 백제 시대의 영화를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상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주, 부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당당히 자리 잡은 후에도 여전히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년 넘는 역사 속의 백제 문화유산은 무궁무진할 터. 왕궁리 유적 옛터에 내리는 노을을 보러 저녁 시간에 다시 와볼 생각이었는데 딴전 피우다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일몰이든 일출이든 천년이 훨씬 넘는 왕궁터가 배경이 되어준다면 그 풍경은 더 말할 게 없을 듯하다. 푸른 하늘과 늦가을 왕궁리의 조화가 이렇게나 멋진데, 날씨 따라 변화하는 백제 옛터 왕궁리의 사계는 또 어떨까. 미륵사지 석탑이 품은 이야기 왕궁리 유적지에서 미륵사지 석탑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정문에 들기 전에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쇼’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게 뭐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이 지역 주민인 듯한 분이 지나다가 얼마 전에 진행된 행사라면서 참 볼 만한 쇼였다고 말해준다. 미륵사지 석탑 동·서쪽에 프로젝션 매핑 및 드론을 이용해서 다양한 빛과 형상을 표현하고 음악을 활용한 종합 미디어 쇼로 구현된 행사였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익산 지역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의 가치 확산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들면서부터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너른 대지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미륵사지 석탑, 백제 시대 최대 사찰이던 미륵사지는 국보 제11호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절반 이상이 붕괴된 모습이다. 그동안 꾸준히 보강하고 섬세한 복원 작업을 해온 결과, 지금은 미완의 6층 석탑으로 우뚝 서 있다. 복원 작업 중 해체 수리하면서 내부에서 사리장엄구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내부는 입장할 수 없다. 우리의 기술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옛 석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 들어가 보았더니 시원하다. 그 서늘함이 그 옛날의 기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길 양옆의 연못이 차분하다. 연못 속으로 비치는 석탑의 반영이 오랜 세월 속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거길 지나 미륵사지 앞마당에는 동·서 방향으로 당간지주 두 기가 서 있다.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매우 크다.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놓는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주변으로는 큼직한 돌이나 파편들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석탑의 노반 덮기 돌이라고 한다. 동원 금당터가 있고 몇 군데 터마다 목탑이나 석탑이 있었지만 화재로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기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젊은 커플이 내 사진 속에 몇 번씩 담긴 걸 보았다. 널찍널찍한 터에 스며 있는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살피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예쁘구나 했다. 한적한 미륵사지 터를 돌며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그저 그림이다. 백제 유적지의 풍경 속에서 그들만의 하루는 참 멋진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일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가족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렇게 가족과 나들이하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백제 무왕의 흔적이 가득한 익산의 모습을 보려면 이곳 미륵사지를 빠뜨릴 수 없다. 한옥마을에서 호젓하게 하루 익산으로 떠나면서 그곳의 숙소를 검색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찌된 게 이 시기에 빈방이 없다고 나오는 곳도 제법 있다. 시내를 벗어난 곳의 숙소를 클릭해보았더니 한옥 숙소가 있다. 이름도 낯선 ‘함라’라는 곳에 위치했다. 일단 통화를 해보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익산시에서 20~30분 정도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한 ‘함라마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해 저무는마을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농촌 지형을 그대로 살린 울퉁불퉁 돌담길의 자연스러움, 토담에 매달린 주먹만 한 호박과 노란 호박꽃, 가을을 알리는 담쟁이들의 뒤엉킴…. 알고 보니 토석담이 주를 이루는 함라마을의 이런 토담, 돌담, 화초담 등의 전통 담장이 등록문화재 제263호라고 한다. 그리고 시·도문화재로 지정된 함라 삼부자집의 조해영 고가, 김안규 가옥, 이배원 가옥 사랑채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전통적 경관이 볼 만한 곳이다. 함라 삼부자가 베푼 인심은 호남을 대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노잣돈까지 얻어 갔다는데, 당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마당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정원의 꽃들이 선명하다. 풀잎에 아침 이슬이 송송송… 잔디 마당을 걸으니 운동화가 촉촉해진다. 관리동 어르신이 지나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며 이 먼 데까지 뭐하러왔냐신다.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라니까, “조용하기로야 예가 절간이지 뭐” 하신다. 더러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테지만 하루 있는 동안 정말이지 한 점 소음이 없었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함라향교가 마을을 품듯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조선 세종 19년에 세워진 함라향교는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느낌이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지만 여전히 실용적인 향교로 건재한 채 지금껏 이어져오는 듯했다. 어르신도 말하신다. “이게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던 향교지요. 그때도 지내던 제를 지금까지 빠짐없이 이렇게 지냅니다.” 점잖고 선한 인상으로 꼭 존대어를 하신다. 한옥 숙소엔 도문대작이라는 식당이 있다. 허균(許筠)이 함열 유배 시절인 광해군 3년,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해 정리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했다고 한다. 함열관아 객사터 가까운 곳이 허균 선생의 유배 생활공간이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곳 함라 숙소의 식당 이름이 ‘도문대작’이다. 정이 넘치는 마을분들이 차려주신 수수한 한 상으로 흐믓했던 아침 시간이다. 그냥 시내의 흔한 숙소에서 묵었다면, 따끈한 온돌의 맛도 모르고 덜컹거리는이중 창호문여닫이도 못 해봤을 것이다. 아침 이슬 촉촉한 담장이 이어진 멋진 아침 산책도, 새벽 정원의 이슬도, 정다운 아침밥상도, 점잖으신 향교 어르신도 못 뵈었을 텐데. 교외로 조금 더 달려가서 묵은 조용한 한옥마을의 하루가 기억 속에 이렇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호젓해보기의 진수, 익산 여행은 확실한 힐링이었다.
- 2022-01-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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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에게 추천, 성탄절 어울리는 넷플릭스 크리스마스 영화
-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이고 캐롤 음악이 들려오더니 결국 성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집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들과 보내는 오붓한 성탄절도 충분히 따뜻하고 즐겁다. 이번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콕’ 크리스마스를 풍성하게 채워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크리스마스에 로맨스를 빼기는 아쉽다. 매해 크리스마스부터 연말연시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정통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통한다. 2003년 처음으로 개봉한 후 2013년과 2015년, 2017년,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12월 23일에 재개봉했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부부간의 사랑부터 남매간의 사랑, 영국수상과 직원의 사랑, 소설가와 가정부의 사랑,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등 저마다의 사랑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따뜻하게 그려낸다.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키이라 나이틀리 등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전하는 여덟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다양한 사연을 담은 만큼 모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 삽입된 OST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Christmas is all around’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 노라 존스의 ‘Turn me on’,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1998년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멜로영화 중 손꼽히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정원’은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여름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햇살처럼 불쑥 찾아온 그녀는 정원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한다. 뜨거운 태양의 한여름에서부터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시한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를 제작한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허 감독은 “생활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더 빛나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가 그려내는 90년대의 아담하고 소박한 아날로그적인 배경은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빽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 크리스마스에 로맨스 영화가 지겹다면, SF 장르의 ‘빽 투 더 퓨쳐’를 추천한다. 시간여행과 그에 따른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1985년부터 1990년에 걸쳐 총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됐는데, 개봉 당시 전 세계 무려 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흥행작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별 볼 일 없는 가족사를 가진 소년이 기상천외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 개인의 역사를 바꾸고 뒤틀린 미래를 바로잡으려는 모험극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모든 세대가 흥미로워 할 주제 안에 역사, 연애, 가족 등의 요소를 유려한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중장년층에게는 지금은 없어진 유년의 놀이동산에 지금의 자녀와 노니는 기분을 선사한다. 당시 상상하던 미래의 패션과 지금의 패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 2021-12-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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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陶瓷)의 소우주,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 흙보다 사람과 가까운 게 있을까. 무슨 덧말이 필요할까. 사람도 종국엔 흙으로 돌아간다. 초봄이면 싹눈을 틔우는 상추씨 하나는 흙에서 올라오는 기적적인 함성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귀소(歸巢)인 흙. 김해시에 있는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이 원초적 물질인 흙으로 빚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도자(陶瓷) 전문 미술관이니까. ‘클레이아크’(Clayarch)란 무슨 뜻일까. 흙을 의미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을 뜻하는 아크(Arch)를 합성한 단어다. 흙과 건축의 좋은 사이를, 즉 양자의 협력에 따른 조화로운 관계를 함의한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하 ‘김해미술관’)은 2006년 3월에 문을 연 공립미술관이다. 김해시에 딸린 김해문화재단이 만들었다. 도자는 건축을 통해 그 영토를 확장하고, 건축은 도자를 도입해 재료적 다양성과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조 관계의 모색과 실험을 위해 설립했다. 과거 분청사기의 한 본거지였던 김해 지역의 문화적 특질을 돋우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해미술관 입구에 닿자 미술관의 웅장한 동체가 시야를 압도한다. 햐! 대형 미술관이다. 크고 폼 나고 야무진 문화공간들이 주로 수도권에 쏠려 있는 현실에 비출 때 반가운 이변이라 할까. 더구나 김해라는 소도시에 있으니 담대한 에너지의 결집으로 개관한 걸 알 수 있어 한결 돋보인다. 과연 관람객이 오긴 오려나? 애초 그런 걱정이 앞섰을 테다. 대중의 일상과 유리되다시피 한 게 미술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미술관엔 찾아오는 발길이 잦다. 볼 만한 걸 볼 수 있고, 즐길 만한 걸 즐길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 들어서 맨 먼저 눈길이 꽂히는 건 거대한 전시관인 돔하우스의 외관이다. 도자기 물레를 형상화한 이 원형 건축물 외벽은 통째 예술이다. 도예의 거장 신상호의 ‘파이어드 페인팅’(Fired Painting, 구운 그림) 타일 4000여 장이 빼곡히 박혀 있다. ‘파이어드 페인팅’이란 흙에다 그린 그림을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 작품이다. 쉽게 말해 ‘타일 예술’이다.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건축재로서의 일반 타일과 달리, 신상호는 판 하나하나마다 다른 그림을 손수 그려 넣어 그 가치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아우라를 뿜는 것이다. 건축물에 입힌 ‘예술의 옷’에 해당하는 이 웅장한 조형물은 김해미술관의 ‘1호 소장 미술품’이다. 아울러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와 의미를 알리는 심벌이다. 재미있게도 이 예술적 타일들은 접착제를 통해 벽에 붙여지는 진부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끼워 벽에 고정했으니까. 따라서 부착 과정에서 건물에 아무런 부상을 입히지 않았으며, 필요할 경우 옷을 갈아입히듯 다른 패턴의 타일로 손쉽게 교체할 수도 있다. 건축과 도자의 자유분방한 협연이 가능한 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의 메인 전시관인 돔하우스로 들어서자 넓고 높아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중앙홀의 지붕을 이룬 대형 유리 돔으로 들이치는 빛살로 환하다. 벽에 낸 사각형 유리창들 역시 자연광을 끌어들인다. 창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광량이 달라 반영(反影)의 농담 역시 다르다. 수직으로 곧추 선 하얀 벽, 둥글게 휘어진 회색 벽, 원형 기둥, 층계 커브 등의 배합으로 공간에 생동감과 미감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층고가 어마어마하다. 해서 개방감으로 후련하다. 기하학적인 선들로 분할한 유리 돔은 우람해 공간감을 더욱 확장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곳이 도자의 소우주라는 은유? 이쯤이면 건축도 예술이다. 김해미술관은 세계 3대 디자인상에 꼽히는 ‘2020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설계자는 건축가 김경훈(정림건축 디자인그룹장)이다. 그는 자연과 인공이 공존함으로써 감성적 소통이 가능한 건축 디자인을 추구한다. 1, 2층 전시실에서는 기획전 ‘일곱 개의 달이 뜨다’가 펼쳐진다. 상상과 이상의 대상으로 인류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달을 테마로 한 전람회로, 7명의 도예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 경향은 분방하다. 전통 분청을 슬쩍 모던하게 변용한 작품도 있지만, 이것을 과연 도예라 할 수 있을지 의아할 지경의 탈장르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과감한 이미지 차용, 회화적이고 조각적인 양상, 중의적인 심미성과 고도의 조형성 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빛 그림이 서서히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까지 볼 수 있다. 실용성에 기반을 둔 전승 도예의 고루한 형식을 해체, 증대된 표현력과 메타포로 달을 얘기하고 삶과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현대 도예의 외연과 흐름이 어떤 것인지 엿보게 하는 전시회다. 김해미술관은 이처럼 수준 있는 전시회의 연쇄적 개최로 도예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한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예상보다 기발한 현대 도예를 통해 따분한 일상을 일깨울 만한 자극과 감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다. 도예 전시만 이 미술관의 전공은 아니다. 흙으로 만든 가장 유능한 사물에 속할 건축에도 관심을 쏟는다. 일찍이 개관 이듬해인 2007년에는 아프리카 흙집 전시회인 ‘아프리카전’을 펼쳤다. 김해미술관이 도자와 건축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으로 행진할 것임을 예고했던 셈이다. ‘아프리카전’에서는 묵직한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했다. 말리의 흙집 전문가를 불러들여 전시관 안에 직접 흙집 사원을 짓게 했던 것. 김해미술관의 면적은 1만 평이 넘는다. 이 너른 부지에 돔하우스 외에도 갖가지 건물이 있다. 전기 가마를 설치한 세라믹창작센터는 해외 작가까지 입주시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자체험관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도자 교육이 펼쳐진다. 공간 뒤편 언덕에 있는 클레이아크 타워는 미술관의 등대 역할을 맡았다. ‘파이어드 페인팅’ 타일 1000여 장을 붙인 20m 높이의 탑이다. 건물 외부를 치장한 유리와 중정의 수변 공간으로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큐빅하우스는 돔하우스와 쌍을 이루는 대형 전시관이다. 한마디로 있을 것 다 있다. 중요한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들을 채워 넣었다. 김해미술관을 가거들랑 소풍처럼 노닐 일이다. 그러라고 정원과 산책로, 벤치 등을 공들여 꾸며놓았다. 정원은 다양한 수종들의 경합으로 싱그럽고 수려하다. 나직한 언덕을 오르내리게 돼 있는 산책로의 굽이들은 선율처럼 부드럽고. 전시장의 작품들에서 받은 감상의 여흥을 한잔의 차처럼 음미하기 좋은 산책길이다. 미술관엔 역시 산책로가 있어야 제맛이 난다.
- 2021-12-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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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한량이 사랑한 풍류가 흐르는 곳 … 거창 용암정
- 차 한잔 마실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뜻일까. 용암정 별서(別墅)엔 별반 있는 게 없다. 물가에 정자 하나 세우고 끝! 조선의 별서치고 이보다 가뿐한 구성이 다시없다. 별서란 요즘 말로 ‘세컨드 하우스’다. 상주하는 살림집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지은 별장으로, 사교와 공부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었다. 그래 일쑤 멋 부려 꾸몄다. 연못을 파거나 정원을 꾸리고, 객실을 보태기도 했다. 용암정은 다르다. 치레를 극구 삼갔다. 은자의 심중은 허허롭다. 차 몇 잔이면 하루가 가득 찬다. 그러니 정자 외에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 용암정은 거창의 경승지인 위천(渭川) 중에서도 빼어나다는 요수천 계곡에 있다. 예로부터 신선이 살 만한 동천이라 이름난 골이다. 가을이 깊어 물가에 서린 고적한 정취가 짙다. 숲에선 단풍이 곱게 무르익다 못해 어느덧 잎잎이 지상으로 추락한다. 발길에 밟히는 마른 낙엽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짠해 정이 간다. 접때는 은성한 초록 잎이었던 게 순식간에 저물다니. 이게 잎사귀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나. 목숨 가진 것들 모두 머잖아 시들 수밖에 없다. 나날이 조락으로 가는 길이다. 가을은 이렇게 문득 삶의 순리를 바라보게 한다. 낭만과 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계절이지만 그 뒷면엔 서러운 게 있다. 용암정으로도 낙엽이 분분히 흩날려 내린다. 고요한 눈길을 매달고 하늘하늘 내려오는 낙엽들. 스산하다기보다 애틋한 정경이라 가슴을 파고든다. 물가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늦가을의 정자 하나. 이는 어쩌면 내향적 풍경의 절정이다. 거기엔 뭔가 사람을 위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그대여, 지친 마음을 여기에서 내려놓아라, 야윈 등을 기둥에 기대고 까짓것 세상 근심일랑 헹구어라. 정자가 그리 속삭이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정자란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한 전위적 시설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안는 시(詩)이자 추상화다. 하기야 정자를 폼 잡자고 지었으랴. 허영으로 지었으랴. 마른 멸치대가리처럼 누추한 게 삶일망정 마음을 돋워 생기를 얻을 방편으로 지은 공간일 것이다. 정자에 올라 자연으로 진입, 뿔과 발톱이 없어도 야성으로 생동하는 초목을 닮고자 지은 ‘정신의 집’일 테다. 용암정은 향촌의 선비 임석형(林碩馨, 1751~1816)이 지은 별서다. 그는 행실과 학문이 빼어나 당세는 물론 후세까지 추앙받았다더라. 그의 가문에는 벼슬길에 오르기보다 초야에 묻히기를 좋아하는 풍조가 대대로 이어졌다. 청빈을 삶의 꽃으로 삼았던가 보다. 임석형 역시 가풍의 영향을 받아 출세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백수로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과 권세라면 껌뻑 넘어가는 게 사람이다. 임석형은 여기에서 예외였다. 취직을 한 바 없어 생계는 팍팍했겠지만 배포는 태산이었나? 그는 적게 먹고도 유유하게 노니는 재능을 발휘했다. 일러 안빈낙도다. 생의 절반쯤을 백수로 살며 찬연한 족적을 남긴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조선의 인걸들 중엔 궁색한 호구에도 아랑곳없는 뚝심으로 기차게 활갯짓한 아웃사이더가 많았다. 임석형이 바로 이 늠름한 계보에 속한다. 그는 숲을 소요하는 낙을 최상으로 쳤다. 용암정을 지어놓고 읊조린 노래가 이랬다. ‘이곳에 만약 학을 탄 나그네가 찾아온다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숲에서 늙으리라.’ 숲 사이 계곡으로는 물이 흐른다. 덕유산과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합쳐진 물길로 수정처럼 맑다. 깊디깊은 산골짝 물도 아닌 것이 티 없이 순수하니 희한하다. 여름철엔 여기서 텀벙, 저기서 풍덩, 물놀이하는 이들이 숱하다. 늦가을의 물은 차가워 물빛조차 푸르다. 파란 유리를 얹어놓은 듯이. 물 위로는 당싯당싯 낙엽이 떠내려간다. 물 아래는 숫제 낙원이다. 크리스털로 세공한 양 투명한 물고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풍처럼 몰려다닌다. ‘초사’(楚辭)에서 어부가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는다.’ 청정한 물에서 담백한 처신의 방법을 읽은 셈이다. 임석형이 청명한 물을 그윽이 관조할 수 있는 냇가에 정자를 지은 이유가 또렷해진다.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 요란한 소동을 청류로 빗자루 삼아 쓸어냈을 테다. 그런 뒤에야 풍류도 옹골찬 법이다. 물만이 용암정의 뜻과 멋을 돋우는 건 아니다. 보라! 희디흰 기암괴석이 지천으로 널브러져 한바탕 경연을 벌이는 게 아닌가. 물에 발목을 담근 바위들. 바위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沼). 바위벼랑을 쏜살처럼 내닫는 물살의 아우성. 이를 일러 임석형은 ‘하늘의 작품’이라 했다. 이곳을 ‘별유천지’라 일컬었다. 물과 바위의 컬래버레이션은 늘 성황리에 펼쳐지게 마련이다. 옛 선비, 자그만 정자 하나 짓고 볼 것 다 봤다. 큰돈 안 들이고 놀 것 다 놀았다. 풍류란 돈으로 살 수 없다. 주저앉은 생각을 탓할망정 주머니 사정 핑계될 일이 아니다. 답사 Tip 위천변엔 호젓한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다시 경승을 만날 수 있다. 용암정 위쪽에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와 강선정이, 아래쪽으로는 요수정과 수승대가 있다.
- 2021-12-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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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에서 들러 볼 만한 아름다운 숲, 나남수목원
- 숲에 들면 차분해진다. 그리고 푸근하다. 나무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은혜롭다. 더 바랄 것 없이 관대해지기까지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밀린 숙제 하듯 허둥대며 떠밀려온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느긋하고 풍요해지는 마음이다. 걷기만 해도 지지고 볶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하다. 차분해지고 감사함이 생겨난다. 숲이 주는 고마움, 풍성하게 누린 날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온 것 같진 않았다. 고갯길을 넘고 간간히 조붓한 길을 주춤주춤 달리기도 했지만 자동차는 어느새 나남수목원 앞에 다달았다. 나남수목원은 한평생 책을 만들며 살아온 사람의 인생을 전해주는 숲이다. 경기도 포천의 산비탈에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나남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숲에 들었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수목원의 검둥개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선다. 느릿느릿 두리번거리면서 사진도 찍느라 늦장 부리면 가다가 뒤돌아서 한참씩 멈춰서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일루 와요, 나만 따라오면 된다니까' 하는 표정이다. '알았어,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수목원의 개와 노닐며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책과 나무의 숲에 살다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우리’라는 포부를 담고 시작한 나남출판사의 조상호 회장이 2008년부터 일군 나남 수목원. 포천의 왕방산 산자락에 20여만 평의 땅에 만들어낸 숲이다. 이런 숲을 개인이 가꾸다니... 언감생심 부러워할 수조차 없지만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이 생각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짐작이 된다. 적어도 고된 노동과 긴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수목원의 아름다움은 역시 아침 무렵이다. 숲 사이로 유난히 도드라지는 빛이 눈부시다. 온누리에 아침빛을 받은 숲의 투명함 또한 참 이쁘다. 숲길에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자연스럽게 무더기를 이루어 피어났고 꽈리꽃의 붉은빛이 선명하다. 산책로 옆으로 5리쯤 된다는 실개천이 촉촉하게 흐른다. 숲길을 걸으면서 와, 좋구나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굽이진 산속이다 보니 여타 수목원처럼 주변과 입구에 음식점이나 카페도 없다. 내부에 놀이 공간이나 즐길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포토존이나 무슨 촬영지였다는 표지판도 없다. 인위적 기교 없이 수수한 숲은 마냥 자연스럽다. 온전히 숲을 받는 느낌이다. 그저 숲이기만 한 게 이렇게나 고맙구나 싶다. 책 박물관으로 이르는 길의 연못에 푸른 하늘이 풍덩 빠져 있다. 연못 앞에서 세찬 바람에 머리를 날리는 듯한 여자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짐바브웨이의 조각가 Witness Bonjisi의 A Windy Day라는 작품이라는데 그 풍경 속에서 잘 어울린다. 수목원 중턱쯤에 있는 책 박물관에 오르니 딱 그 자리가 제 자리인양 앉혀져 숲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이 편안하고 멋스럽다. 안이 훤히 보이는 3층 건물에 가을볕이 에워싸고 숲이 둘러있다. 숲지기인 조상호 회장이 나남출판사를 통해서 평생 만들어 낸 책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리고 책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책 박물관, 이 또한 책의 숲이다. 나남출판사에서 40년간 3500여 권의 책을 펴낸 숲지기 조상호 회장이 직접 심은 나무가 10만여 그루라 했다. 이젠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라 일컫는 나무를 키우는 일에 파묻혀 있으니 더 할 일이 있을지. 서가 벽면에는 몇 해 전 나남출판 40주년 기념으로 펴낸 조상호 회장의 '숲에 산다' 포스터가 멋지게 붙어 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책과 나무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나남에서 펴낸 책으로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책으로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이러한 것들을 들여다볼만한 공간이다. 특히 3층에는 책과 인연인 된 사람들이 모여 서가를 채워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숲과 책에 둘러싸인 날의 행복 북카페는 널찍하고 시원하게 트여서 그저 여유롭다. 한적한 실내엔 군데군데의 책장이 인테리어 몫을 다한다. 세미나룸인 듯한 아늑한 공간도 따로 있어서 의미 있는 모임을 계획할만하다. 북카페 안과 테라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데크에 앉아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1층 북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숲, 눈앞에 꽉 찬 짙푸른 숲이 압도한다. 숲이 주는 힐링, 세상 더 할 말을 잊는다. 숲을 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초록빛에 왜 그리 환호하지?" 그럴 리가, 생생한 자연의 색감만으로 눈앞에 있으니 감동이 아닐지. 가을 색으로 물들면 또 그것으로 미칠 듯 반할 것이다. 나남 수목원 저편의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의 풍경은 또 어떨지 상상해 보게 된다. 숲을 앞에 두고 보니 철마다 달라지는 나남 숲의 풍경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다. 북카페의 직원에게 조회장님에 관해 궁금해 했더니 지금 마침 숲에서 수목 전지작업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접 나무를 가꾸고 관리하느라 늘 바쁘시다며 숲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연락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벌써 산 능선을 훌쩍 넘어가서 너무 멀리 계시어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괜찮다.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숲 속에서 나무를 가꾸는 숲지기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일, 전망 좋은 인수전과 자작나무 숲을 지나 언덕을 올라 산을 넘어가 더 많은 숲을 보는 일을 남겨두는 것, 어찌 한두 번으로 숲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길 다시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냥 숲과 책에 둘러싸인 채, 서늘한 마젠타 빛으로 가득 채운 레몬 블루베리 에이드 한잔 앞에 놓고 나니 세상 더 바랄 게 없다. 감성도 깊어지는 시절이다. 이 계절에 이만한 여행 없다는 생각에 숲을 찾은 자신에게 뿌듯하다. ◎가볼 만 한 곳 1. 술이 익어가는 느린 마을, 산사원 포천에 가면 술 익는 마을 산사원을 빠뜨릴 수 없다. 이 계절의 따사로운 햇볕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두 팔 벌려 안아도 모자랄 커다란 술독 500여 개에 내려앉은 햇살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쏟아지는 볕을 받으며 술이 익어가는 포천 산사원의 세월랑에 들면 느긋하게 계절의 풍류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술독 사이를 걸으며 저만치 한시름 밀어내고 술 향기만으로도 취하고픈 시절이다. 포천의 느린 마을 양조장 배상면주가는 입구에 술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그곳을 지나 '느린 마을'이라는 문패가 높이 매달린 정원으로 먼저 마음이 간다. 약 4천 평 규모의 산사원에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술항아리 행렬들이 맞아주고 있다. 전통주들의 숙성 공간 '세월랑'이다. 한 켠의 풀밭 근처 '줄행랑'에는 그 옛날 술이 만들어지던 모습과 술통을 매달고 배달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산사원 저편으로 펼쳐진 너른 정원에는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뜬 취선각이 마주 보인다. 건너편으로 2층 석조 누각이 멋스러운 우곡루, 바로 옆으로 경주 포석정과 같은 유상곡수가 있으나 코로나19가 방문자의 만고 시름 잊고 취해도 좋을 한나절 풍류를 온통 막아버린다. 그리고 전통술에 빠질 수 없는 부재료 누룩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부안당. 누룩의 미생물을 이용해서 술의 주원료 쌀과 곡류를 분해해서 알코올을 생성하는 과정. 한 줄기 빛으로 술의 향기와 맛을 내는 부안당의 누룩을 비춘다. 이제 그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술을 빚어낸 우곡 배상면 선생의 양조 철학을 살피고 우리 술의 역사를 풀어낸 박물관에서 술 문화의 면면을 살피는 시간이다. 전통주의 규제가 심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고유의 술을 살리기 위한 그 분만의 노력을 본다. '백번을 시도하고 천 번을 고쳐라' 누룩 왕으로 불리던 배상면 선생의 기록실에서 술을 향한 일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볼 만 한 곳 2. 허브 마을에서 만난 산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허브아일랜드 위로 푸른 하늘이 빼꼼하다. 지중해식 건축이 얼핏 이국적이다. 허브 정원, 허브 식물박물관, 허브힐링센터... 무수한 허브 이야기로 가득한 '어쨌든 완전히 허브나라에 들어왔습니다'... 하는 듯하다. 언덕 위 스카이 허브팜에 오르면 핑크 뮬리로 핑크 핑크 하다. 잔털처럼 피어나 너른 산 아래 밭에 함께 모여 뭉쳐있는 핑크빛 물결의 군락들, 핑크 뮬리는 개화기간이 길다. 아직도 산속에 갇힌 듯 조용히 피어나 환하다. 숨차게 올라 땀 식히며 핑크 뮬리에 담뿍 빠져볼 수 있다. 이곳은 허브관광농장으로써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볼거리는 물론이고 갖가지 체험과 먹고 자고 사색하고 힐링하는 것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서울을 떠나 멀리 산속으로 들어오니 강원도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곳은 경기도 포천이다. 허브 숲에 드니 심리적으로 온몸이 이완되는 듯한 느낌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곳이다. 쭉 돌아보고 나오기 전에 허브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숨겨진 듯 나타나는 곳, 거기 산타마을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 2021-12-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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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예치료로 코로나 우울증 치료해요
- 전염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2021 건강생활 통계정보에 따르면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주요 정신과 질환 진료를 받은 사람이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정신과 환자의 1인당 진료비도 늘었다. 이런 가운데 그저 공기 정화나 관상용으로 치부됐던 식물이 ‘반려’와 ‘치유’의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원예치료가 코로나 블루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는 평화롭던 우리의 일상을 헤집었다.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쓰는 마스크는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려 타인과의 기본적인 소통을 방해한다. 더불어 반강제적으로 늘어난 실내 활동, 막혀버린 여행길, 기약 없이 미뤄지는 모임에 답답함이 커진다.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기는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이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칠 수 있다. 이를 막을 방법으로 최근 ‘원예치료’가 급부상하고 있다. 원예치료는 전문 치료 원예사가 식물을 이용해 경증 치매를 앓는 노인, 우울증 환자와 같은 이들의 정신적·신체적 향상을 돕는 활동이다. 특히 근력과 시력 저하로 미세 운동 기능이 약화되고 기억력이 감퇴하는 노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물 이름을 익히는 과정은 인지기능을 자극하고 가위 사용하기, 리본 매듭 묶기, 수저로 모래 담기 등은 오감을 깨운다. 식물을 만지고 가꾸는 과정은 경증 치매 노인의 소근육을 강화하고 감각 둔화를 늦춘다. 즉 원예치료는 손상된 인지기능 회복과 더불어 후각, 시각, 촉각을 아우르며 동시에 여러 감각을 자극해 뇌의 가소성(뇌세포의 일부분이 죽더라도 재활치료를 통해 그 기능을 다른 뇌신경망이 일부 대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증가시킨다. 원예치료는 코로나19로 인해 겪는 고립감과 우울, 소통 단절로 인한 불안 증세를 잠재우기도 한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주 1회 27시간씩 27주간 텃밭 가꾸기, 공동체 밥상 차리기 등을 진행한 결과 노인들의 우울감은 60% 감소하고, 콜레스테롤 5%, 체지방률이 2% 감소했다. 현재 복지관, 병원, 요양원 등 여러 기관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화유플라워앤원예치료센터는 50세 이상 경력 단절 여성,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정서 안정을 위한 원예 수업을 진행한다. 또 원예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해 경력 단절로 고립감을 느끼는 여성을 돕는다. 참여자들은 다육 미니정원, 플라워박스·케이크, 압화 액자 등을 제작하며 지적·사회적·정서적 효과를 얻는다. 이현주 화유플라워앤원예치료센터 대표는 “원예치료는 노인들의 무료한 여가를 다채롭게 바꿔줄 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감, 스트레스를 완화한다”고 전했다. 이어 “치매 예방 및 재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식물을 직접 키우고 관리하면서 성취감을 심어준다”고 덧붙였다.
- 2021-11-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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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임대정 원림, "세 겹 물 정원 꾸린 까닭"
- “지구는 외계 행성의 지옥일지도 모른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훈수가 이렇다. 지지고 볶는 경쟁과 빙하처럼 차가운 인간관계로 굴러가는 현실 세계의 단면을 은유한 얘기다. 그러나 여기가 지옥이기만 할까. 마음에 난초 하나만 들여놓아도 흐뭇한 법이다. 구겨진 인생일망정 자연을 벗 삼으면 유토피아가 가깝다. 조선 선비들은 눈 뜨고는 못 볼 시절을 만날 경우, 여차하면 귀거래사를 읊으며 산림에 은거했다. 못 믿을 게 벼슬이다. 정 수틀리면 팽개치고 향촌에 지은 산방에 여생을 맡겼다. 고사리처럼 소탈하게 살았다. 조선 원림(園林)은 대체로 선비들의 이런 생리에서 비롯되었다. 임대정(臨對亭)은 조선 중엽의 선비 남언기(南彦紀, 1534~?)가 은둔했던 초가 고반원(考槃園) 옛터에 지어진 원림이다. 남언기가 뉘신가. 실력은 짱짱했으나 벼슬 보기를 애초부터 닭벼슬 보듯 했던 이로 평생 백수로 살았다. 걸친 벼슬이 없으니 자유자재가 그의 것이었나? 남언기가 주력한 건 자연과 더불어 물처럼 흐르는 방법에 대한 궁구였던 모양이다. 자연에 달통하면 인생에 화통해진다. 퇴계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남언기는 동방의 도학을 세상에 전수할 만한 그릇이다.” 사람들은 권세와 부귀를 좇지만 자연에 심취한 이에겐 그게 하수들의 서커스다. 남언기의 고반원이 가뭇없이 사라진 지 300여 년 뒤, 이번엔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이 자연과 밀접한 교제를 하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 고반원 옛터에 임대정 원림을 꾸렸다. 세도정치의 적폐에 반발해 대찬 상소를 올리고, 병조참판으로 10만 군사 양병을 주장하다 뜻이 꺾이고서였다. 지금의 임대정은 태깔 고운 기와 정자다. 시초엔 허술했다. 민주현이 남긴 ‘임대정기’의 귀띔을 볼까. “한 칸 초가를 지어 비바람을 가렸다. 멀리서 보면 버섯을 닮았다.” 민주현의 담백한 성정이 드러난다. 산천이 이미 오롯한데 더 보탤 게 뭐람. 일출과 일몰, 나무와 햇살과 바람, 밤하늘에 모이는 달과 별을 무시로 즐길 수 있으니 비를 가리고 들어앉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겠다. 임대정 원림에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을 찾을 일 아니다. 속세에서 자연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눈을 돌린 조선 선비의 지향과 상상력을 더듬어보는 게 더 옹골차다. 그러기에 하자가 없는 게 임대정이다. 흔히 원림마다 연못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원림을 선계로, 연못을 천상계로 간주했다. 임대정엔 이채롭게도 연못이 셋이다. 하나는 언덕배기 위의 정자 옆댕이에 자그맣게, 나머지 둘은 언덕 아래에 널찍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연못을 풍성하게 조성했을까? 지척에 물 맑은 사평천이 있음에도 세 겹 물 정원을 만들었다. 물은 낮은 자리로만 흘러 겸손하다. 물은 길 없는 길에서 헤매는 인간에게 지혜의 눈을 달아준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다. 물을 향한 도학자들의 애호와 애착엔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완연하다. 더러운 세상에게 한 방 얻어맞고 불어터진 산림처사로 살망정 그들은 훨훨 비상하고 싶었다. 해탈인들 꿈꾸지 않았으랴. 물을 족집게 레슨 교사로 삼아서. 연못이라는 게 고작 물의 감옥이지만, 그게 물인 한 통찰과 영감을 얻게 한다. 연못에선 제철이면 연꽃이 벙그러진다. 향기로 한가락 하는 게 연꽃이다. 미인은 주렴 사이로 보라 했다.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 연꽃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맑다 했다.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이 전하는 뉴스가 그렇다. 그럼 임대정 연꽃 향은 어디쯤에서 가장 맑아지는가. 정자 옆에 있는 사각 석상(石床)에 앉으라. 이 바윗돌엔 ‘피향지’(披香池)와 ‘읍청당’(揖淸塘)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맑은 연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향원익청’에서 유래한 글귀로 추정된다. 여기에 앉으면 저 아래에 있는 연꽃 못은 정작 보이지 않는다. 향기만 은은하다. ‘멀수록 맑은 연꽃 향기’가 코끝에 희미하게 감돈다. 멀수록 맑아지는 게 연꽃 향기뿐일까. 되바라지지 않은 처세, 과욕을 삼가는 운신에도 관조와 관용의 향기가 서려 맑다. 연꽃을 탐하더라도 선비들은 고고한 기품으로 탐했다. 꽃 향도 처신도 자제할수록 청아해지는 이치에 밝았다. 이게 진정한 리얼리즘이자 진보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답사 Tip 아쉽게도 원림 앞으로 도로가 나 예스러운 운치가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원림의 전형이다. 높직한 터에 자리한 정자가 구현한 차경(借景) 효과가 특히 빼어나다. 이곳에서처럼 탁 트인 전망을 가진 원림이 거의 없다.
- 2021-11-1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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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강릉선 타고 가을 여행, 가 볼 만한 곳은?
- 가을이라 해도 날씨는 여전히 온화하다. 강릉으로 떠나며 날씨를 검색해보았더니 기온이 뚝 떨어질 거라는 예보다. 환절기의 쌀쌀함을 즐길 때는 아닌 것 같아 머플러랑 니트를 주섬주섬 더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릉은 언제나 따스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그곳은 언제나 따스하게 날 맞는다. 아마 앞으로도 또 그럴 것 같은 강릉. 명주동 거리, 강릉의 ‘핫플레이스’이라고 했다. 명주(溟州)는 신라 시대에 강릉을 이르던 지명으로 ‘바다와 가까운 아늑한 땅’이란 뜻이다. 1500년 전의 고도 명주는 예부터 문화·행정의 중심지이던 곳인데 강릉 시청이 옮겨가면서 한물간 구도시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구도심 귀퉁이 마을인 명주동 일대가 요즘의 레트로 바람을 타고 찾아가고 싶은 원도심으로 변신했다. 가을볕 아래 명주동 문화마을 천천히 걷기 강릉 대도호부 관아 건너편에서 시작해 그 주변 동네와 골목 한 바퀴를 느릿느릿 걸으며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어릴 적 추억도 소환하고, 숨겨진 예쁜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가 걷는 내내 이어지는 풍경. 드라마 시대극을 연상케 하는 오래된 주택과 상점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나미 명주. 시나미는 ‘천천히’ 또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하는 강원도 말이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공존하는 뉴트로 강릉의 모습이 보인다. 시공을 넘나드는 이 골목에서는 저절로 천천히 걷게 된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벽돌담 모퉁이를 돌면 유년의 뜰에서 늘 보았던 백일홍이 옹기종기 모여서 피어 있다. 반쯤 열린 나무 대문 앞으로 한 무더기씩 뿌리내린 채 꽃을 피워 올린 소박한 식물들이 예쁘다.골목 여행을 하는 이들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배려다. 저절로 따스함을 얻는다. 낡은 담벼락에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바른 글씨체로 세 줄 적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세월이 느껴지는 담장에 켜켜이 스며 있는 옛이야기를 느끼며 그 길을 걸어간다. 쭉 걷다 보면 빈티지하면서도 멋스러운 건물들이 간간이 눈길을 끈다.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봉봉 방앗간’ 건물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장면으로 더 유명해진 집이다. 근처의 작은 공연장, 박물관, 예술마당, 프리마켓 등의 문화공간에 슬슬 가을 분위기가 덧입혀지는 중이다. 골목길을 걷다 잠깐 앉았다 갈 수 있도록 가게 앞에 의자를 놓은 인심이 더 멋진 풍경을 만든다. 그 의자에 한 번씩 앉아 사진을 담는 여행자들 덕분에 아예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찾아가 보고 싶은 ‘인싸들의 강릉 여행지’가 되었고, 곳곳에 젊음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도 풍겨난다. 오래된 건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 단장한 소박한 점포들, 골목상권의 소상공인을 여행자와 연결해주고 쇠락한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원도심 거리답게 옛집을 개조한 카페 ‘오월’의 격자무늬 창문 너머로 동네 할머니가 뒷짐 지고 걸어가시던 골목길 풍경 또한 가을볕에 아련하다. 정겨운 가을날이다. 강릉의 구도심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실 가듯 천천히 느릿느릿 타박타박 걸었던 명주동 골목 나들이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 명주거리를 벗어나기 전에 건너편 강릉 대도호부 관아(사적 제388호)에 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 있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곳이다. 강릉 임영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대청이 있는데 '임영관'이라고 쓴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 가는 길에 들러서 쓴 친필이다. 현재 객사문은 이 터의 남측에 국보 제51호로 지정 보존되어 있고, 서측은 임진왜란 이후 경주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다 봉안했던 집경전(集慶殿) 터다. 해설사님의 해박하고 구수한 해설로 역사적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누구나 원하면 미리 신청해서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관아 곳곳에 우뚝 선 고목이 되어버린 은행나무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바다 언덕 위에 펼쳐진 예술 세계 이제는 시원한 바다를 보며 예술과 자연, 인간이 공존하는 전시 공간에서 감성을 충전할 때다. 묵은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시간이다. 강릉의 괘방산 자락을 배경으로 등명마을에 자리 잡은 ‘하슬라 아트월드’. 산과 바다와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 함께하는 아트월드다. 조각가 부부가 힘을 모아 만들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움을 선보이고 있는 하슬라 아트월드. 하슬라는 고구려 때 부르던 강릉의 옛 지명이다. 현대 미술관, 아비지 갤러리, 터널 설치미술, 체험학습실,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관 등 볼거리가 한가득이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가 터널을 통과하고 고래 뱃속 터널을 지나 지하 계단, 그리고 피노키오 전시관과 마리오네트 전시관까지 감상하는 내내 눈이 즐겁고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야외 조각공원은 예술 정원으로 3만3000평의 드넓은 자연 속에 있다. 어딜 돌아보아도 산과 바다. 이처럼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또 어딜지. 이어지는 스카이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자연을 만끽한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건강하게 로스팅한 산야초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다. 문화예술 공간에서 하루나 이틀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해 아트월드 안에 호텔도 있다. 설화 속의 월화거리 즐기기 강릉을 떠나기 전 전통시장인 강릉중앙시장에도 잠깐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강릉역으로 가는 길에 들른 시장통엔 매스컴을 통해 이미 유명해진 아이스크림호떡과 치즈호떡을 맛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맛집들이 즐비하다. 마늘빵과 닭강정 역시 인기여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모습이다. 군것질을 하며 시장 구경을 즐기다 보면 여행은 더욱 흐뭇하다. 중앙시장을 지나 KTX를 타러 가는 길목에 월화거리로 가는 화살표가 있다. 강릉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교동의 ‘월화거리’는 강릉 도심을 지나던 폐철도 부지에 조성된 공원 시설이다. KTX 강릉선 개통으로 강릉 도심 철도가 지하화되면서 옛 지상 철길은 유휴지로 남게 됐다. 강릉시는 기차가 달리지 않게 된 이 공간을 공원화한 것이다.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월화 풍물시장은 기존에 있던 시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졌다. 메밀전병이나 감자떡 등 강원도 토속음식은 물론이고 다양한 간식거리로 옛 분위기를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월화거리는 강릉 월화정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 화랑 무월과 강릉 지방 토호의 딸 연화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경주로 돌아간 무월에게서 연락이 없고 연화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상황에 처한다. 이에 연화는 산책하던 연못의 잉어에게 편지를 전달함으로써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혼인하게 된다는 것이 월화 설화의 주요 내용이다. 사랑의 메신저가 잉어라니. 무월과 연화의 이름에서 따온 월화정이 있는 이곳을 월화거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걷는 내내 눈길을 끄는 갖가지 구조물이나 꽃 조형물들이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강릉역에서 부흥마을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노선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시장과 월화거리를 지나며 강릉역이 저편으로 보인다. 2017년 12월에 서울 강릉 간 KTX가 개통되면서 114분 만에 강릉에 도착할 수 있어 강릉 당일 여행이 쉬워졌다. 강릉선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청량리-상봉-양평-만종-횡성-둔내-평창-진부-강릉 도착이다. 일상을 벗어나 바다도 보고 하루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을 때 강릉이 있다.
- 2021-11-12 0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