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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진 바리스타 “커피 한 잔에 진실한 마음을 담습니다”
- 2015년 6월, 이유진(65) 씨는 그동안 운영했던 어린이집을 정리했다. 그러곤 자신의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종이접기지도사로도 활동했던 만큼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실버 패션이나 모델 쪽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바리스타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2016년 봄 커피의 세계에 입문해, 그해 겨울 바리스타 1·2급을 섭렵했다. 2급 취득 후 1급 준비 과정에서 18: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카페에 취업하는 기회도 얻었다. “한때는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종이접기를 했고, 그다음엔 손주들 생각하면서 어린이집을 운영했어요. 환갑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나를 위한 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바리스타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참 만족스러워요. 체력 소모도 적고, 카페라는 공간이 쾌적하기 때문에 일하면서도 상쾌하고 즐겁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 관련 경력이 없는데도 바로 취업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유진 씨 특유의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역시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고객 응대라고 설명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능숙하게 다루고 커피를 잘 제조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고객과의 유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커피 박람회를 갔는데 이제는 탬핑(tamping, 분쇄된 커피를 다지는 과정)까지 자동으로 되는 기계가 있더군요. 기기에 따라, 원두에 따라, 사소하게는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도 커피 맛은 미세하게 다를 수 있지만, 진실한 마음만큼은 늘 최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그 정성을 아시는 건지 특별히 제게 커피를 부탁하는 고객도 계십니다.” 자격증 따고도 연습 안 하면 ‘장롱면허’되기 일쑤 최근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바리스타 과정과 커리큘럼이 늘어나고 있다. 바리스타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가 높은 종목. 그는 아무래도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의 경우 시니어가 듣기엔 다소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교육기관이나 사설 학원 등은 젊은 수강생이 많고 그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돼 시니어가 따라가기에 버거울 수 있어요. 지자체 기관이나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진도도 알맞고 비용도 적게 들어 좋죠.”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하려면 필기와 실기를 모두 치러야한다. 필기 준비의 경우 학원이나 집 등에서 개인의 스케줄에 맞게 노력껏 공부하면 되겠지만, 실기는 상황이 좀 다르다. 실습에 꼭 필요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유무 때문이다. 아마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가정은 극히 드물 것이다. 때문에 학원이나 기관의 실습시간을 제외하면 연습할 기회가 딱히 없는 셈. 때문에 이유진 씨 역시 실습 이외의 시간에는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며 과정을 익혔다. “자격증 취득 후에도 마찬가지예요.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하지 않으면 장롱면허기 되듯 자격증을 땄더라도 커피를 만들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말아요. 교회 내 카페 등에서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를 하면서라도 손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커피를 내리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바리스타로 일하다 보면 그밖에 카페 업무에도 능숙해져야 한다. 이유진 씨도 바리스타로서 커피를 내리고 고객을 맞이하는 일 외에 재고 파악, 설거지, 테이블 정리 등 다양한 카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일이 제법 손에 익었지만, 새로운 도전 기회도 엿보고 있다. “지금 일하는 곳은 센터 내에 있어서 북적이지는 않아요. 일반 카페에서도 한번 일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젊은 바리스타가 많아 시니어 바리스타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또 여기서 일하는 것보다 힘들겠지요. 그래도 시니어의 한계라고 여기는 것들을 뛰어넘어보고 싶습니다.”
- 2019-07-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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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녘의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자란!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1925년 간행된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시이지요. 봄가을 없이 돋는 달이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나무를 하나하나 알아가기 전에는 그토록 많은 꽃이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특히 야생 난초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난초는 으레 ‘잘 빠진’ 화분에 담겨 집 안이나 사무실 등 실내에서 감상하는 원예종이라고 생각해온 탓이지요. 그런데 서울, 경기, 강원 등 겨울이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도 봄이 되면 감자난초, 은대난초, 나도제비란 등이 돋아나 희거나 노랗거나 붉은 꽃을 저마다 피워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1차로 크게 놀랐습니다. 이어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은 1순위 야생화로 꼽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복주머니란, 보춘화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친숙한 이름의 난초들과 으름난초, 흑난초, 무엽란처럼 다소 생소한 이름의 난초 등 무려 90여 종의 야생 난초가 이 땅에서 저절로 자란다는 걸 알고는 두 번째로 놀랐습니다. 자주색, 즉 ‘짙은 남색을 띠는 붉은 색’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 자(紫)와 난초 난(蘭)의 의미가 더해진 자란(紫蘭).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의 야생 난초는 이에 더해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하고 진한 홍자색 꽃 색으로 인해 열대 지역이나, 고온의 온실에서 자라는 이국적인 난초일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자란이 우리 땅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는 야생 난초라는 걸 알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나아가 한 야생화 애호가가 썼듯 “발에 밟힌다고 할 정도로 흔하게 자생”하는 걸 보는 순간 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2018년 5월 5일 차마 건너기를 주저했던 진도대교를 지나 진도(珍島)의 남쪽 바닷가에 도착해 갯바위를 밟았습니다. 그새 무성해진 산기슭을 살피니 군데군데 불쑥불쑥 돋아난 홍자색 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록의 숲에 홍자색 꽃이 피니 눈에 확 뜨입니다. 자란이란 단순명료한 이름의 연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자생 난의 화려한 개화 현장을 확인한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조금 뒤 더 놀라운 장면을 만났습니다. 수백 촉의 자란이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이는 해안 평지에 한데 뭉쳐서 홍자색 꽃잎을 일제히 벌리고 선 장관을 본 것이지요. ‘어린이날 교통 체증’을 무릅쓰고 서울에서부터 500km 가까이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Where is it? 전라남도 무안, 신안, 진도, 해남, 완도, 고흥, 그리고 제주도가 자생지다. 남쪽 바닷가와 제주에서 자란다는 것은 자란이 열대식물까지는 아니지만 추위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남쪽에서 자라다 보니, 다른 야생 난초들에 비해 키도 크고 꽃도 큰 편이다. 50cm 안팎의 꽃대를 포함해 키가 60cm 정도까지 자란다. 길이 20~30cm, 너비 2~5cm의 길쭉한 타원형 잎이 5~6장이나 나와 줄기를 감싸며 위로 뻗는다. 5~6월 잎 사이에서 나와 50cm까지 자라는 꽃대 끝에 3cm 크기의 홍자색 꽃이 6~7개까지 달린다. 남서해안 10여 곳 미만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생하지만, 개체 수는 지천이어서 진도나 해남 등 자생지 야산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 2019-04-2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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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구를 배우지 못한 이유
- 모임이 있는 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술자리가 끝나고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저녁 자리까지는 의무에 속한다. 식사 겸 술 한잔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례적 행사가 끝나야 비로소 옵션이 풀리는 셈이다. 집에 일찍 갈 사람은 가고 각자 흩어진다.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은 한잔 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맥줏집을 찾기도 하고 요즘은 실내 스크린 골프장을 찾기도 하는데 주로 가는 곳은 당구장이다. 그런데 나는 당구를 배우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는 축구와 농구를 좋아해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반면 당구는 한때 불량 학생들이나 동네 건달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담배 연기 뿌옇고 신문지에 덮인 자장면 그릇이 놓여 있는 곳, 그것이 당구장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그래서 직장 다니면서도 당구가 끌리지 않았다. 당구 치러 가자고 하면 볼일 있다고 아예 빠져버렸다. 가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도 신문을 보거나 커피 한잔 하면서 무료하게 기다렸다. 그러면 짝이 안 맞는다고 당구 좀 배우라고 야단들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놀기에 좋은 운동이라면서 주변에서 강력히 권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 ‘그럼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는 길에 근처 당구장에 등록했다. 어떤 운동이든 기초를 배울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당구는 용어 자체가 대부분 일본어였다. 오시(밀어치기), 하끼(끌어치기), 비껴치기(비켜치기), 삐루(회전), 겐세이(방해) 등 외래어 일색이었다. 어쨌든 시원시원하게 진도를 나가면 좋겠는데 며칠 동안은 공도 안 주고 자세만 가르쳤다.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했고 자세도 불편했다. 얼마 후 겨우 공을 만지게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큐대를 다마(공)에 대고 몇 번 어르듯하다 그대로 밀어쳐야 하는데 몸이 흐트러지며 공이 계속 비켜나갔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면 별거 아니고 쉬워 보였는데 실제 해보니 전혀 달랐다. 정확한 계산도 있어야 하고 판단력도 필요했다. 그냥 대충해서 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맞은 공이 정확히 각을 이루어 다른 공을 맞힐 때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술이라 할 정도로 멋있었다. 그러나 초보인 내게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마는 핑핑 돌며 실수를 반복했다. 내 평생 구기운동을 이렇게 재미없게 해본 적이 없었다. 테니스를 할 때도 열심히 했고 재미도 있었다. 축구, 농구, 탁구 등도 그랬는데 당구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당구를 그만뒀다. 좀 더 인내했다면 지금쯤은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어울렸을 테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더 배우지 않기로 한 데에는 코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초보인 내게 칭찬보다는 질책을 많이 했다. 가뜩이나 억지로 배우러 왔는데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다. 못 쳐도 살살 달래가며 칭찬을 해줬더라면 그냥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한두 번 가르쳐주다가 다른 일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 졸다가 이따금 와서는 잔소리만 하고 갔다. 물론 당구는 가르쳐준 대로 혼자 열심히 익혀야 하는 운동이 맞다. 그러나 초보에게는 적절한 칭찬이 있어야 한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 후 바쁜 일이 있어 한두 번 빠지게 됐고 이내 가기가 싫어졌다. 결국 등록한 날짜도 남았는데 큐대를 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잘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칭찬을 해줬다면 아마 그 말에 속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의 기분은 이랬다. ‘내 돈 주고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당구를 배울 때도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그 후 지나가는 길에 올려다본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당구장 간판이 아닌 노래방 간판이었다.
- 2019-03-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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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하러 공원에 간다! 파크골프
- ‘파크(park)’와 ‘골프(golf)’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두 단어를 합친 ‘파크골프’는 생소하기만 하다. 골프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을 가진 파크골프를 배우기 위해 강신영(67), 윤종국(72) 동년기자가 춘천파크골프장을 찾았다. 촬영 협조 춘천파크골프장(강원도 춘천시 서면 현암리 889) 소규모 녹지공간에서 즐기는 골프게임 ‘파크골프’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즐기는 골프를 뜻한다. 1983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98년부터 보급되어 여의도 수변공원 파크골프장을 시작으로 현재 70여 개의 파크골프장과 2만여 명의 동호인들이 즐기는 생활스포츠로 발전했다. 파크골프장의 크기는 일반 골프장의 10분의 1 정도이며 벙커, 워터 해저드 등 일반 골프장과 다름없는 지형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파크골프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5000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하다. 또 여러 개의 클럽을 사용하는 골프와는 달리 나무 재질의 클럽 하나로 티샷부터 퍼팅까지 하므로 장비에 대한 부담 또한 적다. 파크골프 지도자 권대현 교수는 “초보자도 금세 감을 익힐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한다. 강신영 동년기자 ‘파크골프’에 대해 들어는 봤으나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와 매우 흡사한데 골프의 단점은 없애고 장점을 잘 뽑아놓은 것 같다. 코스가 짧고 홀컵이 커서 기술적으로 골프보다 쉽고 무엇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윤종국 동년기자 그동안 TV에서 보던 골프장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규모가 크지 않아 걷기에도 부담이 없었고 주 이용객이 50~70대의 시니어이다 보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골프가 비싸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파크골프를 시도해봐도 좋겠다. 파크골프는 매너의 스포츠 파크골프장은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매너가 중요하다. 공을 치고 난 후에는 그다음 팀을 위해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며, 특히 앞 홀이 비어 있고 뒤의 팀이 기다리고 있을 땐 먼저 홀을 지나가도록 양보(패스)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 같은 팀원이 샷을 준비할 땐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공이 비슷한 위치에 떨어졌을 경우엔 상호 간 순서를 정한 뒤 차례대로 친다. 순서를 정하지 않고 동시에 샷을 하는 행동은 절대 금한다. 복장으로는 운동화, 운동복이 있어야 하며 필요할 경우 모자를 써도 좋다. 이때 얼굴 전체를 가리는 햇빛 가리개는 제한된다. 운동화, 골프화가 아닌 잔디를 훼손할 수 있는 등산화도 피한다. 강신영 동년기자 에티켓은 그 종목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처음 접하는 종목일수록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를 숙지하고 갈 것을 권한다. 파크골프도 신사 스포츠답게 많은 룰이 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윤종국 동년기자 파크골프를 처음 배우다 보니 다른 팀보다 진도가 느렸다. 다행히 ‘패스’라는 에티켓이 있어서 뒤 팀은 앞 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앞 팀은 뒤 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 덕분에 좁은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이 밀리지 않고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산책과 운동을 동시에 장비가 없다면 파크골프장에서 1000원 안팎의 비용으로 클럽과 공을 대여할 수 있다. 장비와 복장을 다 갖췄다면 필드에 나갈 준비는 끝. 최대 4명의 팀원이 구성된다면 1번 홀에서 번호뽑기 또는 가위바위보 등으로 티샷 순서를 정한 뒤 홀을 향해 공을 치면 된다. 2번 홀부턴 전 홀에서 최저타한 조원이 첫 번째로 티샷을 한다. 공을 너무 세게 칠 경우 쉽게 OB(코스의 경계를 넘어선 경우)가 날 수 있다. 따라서 힘 조절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골프와 똑같이 18홀을 가장 적은 타수로 들어오는 사람이 승리하며 18홀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 정도. 파크골프장 3바퀴를 돌 경우 약 1만 보를 걷는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파크골프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파크골프 카페에 가입하거나 각 지부 협회나 연맹을 통해 수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 골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앨버트로스(규정 타수보다 3타 적게 치는 것)와 이글(규정 타수보다 2타 적게 치는 것)을 여러 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골프보다 쉽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웃음) 버디를 앞두고 공이 깃대를 맞고 튕겨 나왔을 땐 그 깃대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윤종국 동년기자 보기엔 분명 쉬워보였는데 막상 클럽을 휘두르고 보니 공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굴러갔다. ‘아이쿠!’ 하면서 동시에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한 홀 한 홀 발전해가는 모습에 나름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함께한 동료들이 “굿 샷” 하고 엄지를 치켜줄 땐 나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들어갈 듯 말 듯, 마치 나와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매력을 지닌 파크골프. 시니어에게 적극 추천한다.
- 2018-10-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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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청학동에 사는 영화감독 김행수
- 지리산 중턱, 해발 800m, 계곡 물소리 쿵쾅거리는 산중이다. 한때 도류(道流)의 은둔 숲이었던 청학동 구역이다. 이젠 관광지로 변해 차들이 물방개처럼 활개 치며 드나들지만, 특유의 깊고 외진 풍색은 여전하다. 영화감독 김행수는 이 심원한 골을 일찍부터 자주 찾아들었더란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집을 짓고 눌러 산다. 우레처럼 요란히 소쿠라지는 개울물을 건너고, 허리띠처럼 비좁은 비탈을 오르자 길 끝에 나타나는 외딴집 한 채. 김행수의 거처다.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그가 장승처럼 우뚝 멈춰 서서 객을 맞이한다. 얼마 전 미친 듯이 퍼부은 폭우로 무너진 돌담 귀를 보수하던 참이었다. 웃통을 벗어젖힌 바람에 드러난 몸피가 듬직하다. 볕에 그을린 구릿빛 살갗으로 내비치는 근골이 두루 짱짱하다. 산중 살림이란 노역(勞役)의 연속이기 십상이다. 해서, 몸이 단련되고, 그 와중에 마음도 덩달아 양양해지는 바가 있을 테지. 암자 터에 혼자 지은 흙집 김행수의 나이는 예순다섯. 흔히들 은퇴를 해 세상의 뒷전으로 물러날 걸 고려하는 나이다. 경치 좋은 시골에 들어가 자연을 벗 삼은 평온한 생을 꿈꿀 만한 시점이다. 모아둔 재물이나 연금을 쪼개 쓰며 만족과 안식이 있는 일상을 추구할 시기다. 그러나 김행수의 생각과 지향과 현실은 사뭇 다르다. 영화를 삶의 반려로 삼은 그에게 일단 은퇴란 없다. 수려하고도 으슥한 산속으로 귀촌을 했지만 자연을 완상하며 한가하게 노닥거리길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다. 손에 쥔 게 별반 없는 물적 현실은 빈 술잔처럼 따분하지만 기죽을 일 없는 깡으로 버틴다. 독특한 양상이다. 남다른 이색과 이채가 서려 있는 삶일 게다. 김행수의 집터엔 과거 한때 암자가 있었단다. 불자 이상의 수행자이기도 한 그가 우연찮게도 폐사지에 들어앉았으니 궁합이 맞는 터다. 그는 한동안 이 터전에 비닐하우스를 대충 짓고 대충 지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흙집 한 채를 지어 붙박이로 눌러 살기 시작했다. 그가 ‘토굴’이라 부르는 이 집은 작고 허술하나 창의(創意)의 산물이다. 꾸밈과 치레가 없이 투박하나 통뼈의 집적처럼 늠름하다. 지붕 한쪽은 그저 투명 비닐 한 장으로 마무리해 별이 뜨고 지는 걸 바라볼 수 있게 해두었다. 햐, 놀라워라. 이 기발한 흙집을 혼자 지었다는 게 아닌가. “간신히 비바람이나 가릴 수 있는 비닐 움막도 딱히 나쁠 건 없었어요. 하지만 여기에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살려면 도로명 주소가 있어야 한다 하더라고. 그러자면 가건물이라도 지어야 했어요. 그래 혼자서 주변의 통나무와 흙을 모아다 근 1년에 걸친 공사로 집을 지었어요. 그런데 이게 완전 실패한 집입니다.” “실패? 어떤 점에서?” “집 안의 습기나 냄새를 빨아들인다는 점에 흙집의 장점이 있다는 걸 실감하지만, 그 외 이 집에선 보잘 게 없으니 실패일 수밖에. 집짓기 경험도 식견도 없는 채로 엉성하게 지은 탓입니다. 흙에 볏짚이라도 버무려 벽을 쌓았다면 좋았을걸, 그리 하지 않았더니 벽이 마구 갈라집디다. 쩍쩍 벌어진 틈새로 지네 따위 별별 벌레들이 다 기어들어 와요. 바람이 숭숭 새들어오고 말이죠.” “그건 적절하게 보완하면 되는 거 아네요? 이 후미진 산중에 손수 집 한 채를 지었다는 게 진기해요. 야생의 힘 같은 게 느껴져서.” “뭐 골병만 들었습니다.(웃음) 그나마 자랑할 건 구들장을 제대로 놔 불을 때면 바닥이 절절 끓는다는 점이죠. 하지만 여름엔 온실처럼 덥고 겨울엔 냉장실처럼 차가워요. 벽채 단열 부실하지, 판자와 비닐로 지붕을 대충 얹었지, 이거 참 심란합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었죠?” “별로 돈 들어간 건 없어요. 철근이나 쇠파이프, 중고 창문, 구들장 정도를 구입하느라 돈을 좀 썼을 뿐이니까. 좀 더 작게 지었다면 지출을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공사를 하다 보니 커지더라고.” 산방에 눌러앉아 쓴 소설, 올봄 출간 공사가 커졌다지만 자그마한 산방이다. 허세와 허영으로 뒤발한 건축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몸뚱이 하나 눕힐 공간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그런 생각으로 흙집을 지은 것 같다. 그런 소박한 태도로 이 난잡한 세속사회를 조용히 견뎌왔으며, 그런 허심한 인생관으로 애환의 연극무대인 삶을 줏대 있게 버텨온 것 같다. 그러하니 자신의 지향을 놓치지 않았다는 자족이 있겠으나, 상처 역시 은연중에 고여 일쑤 고독에 휩싸일 수도 있겠지. 훨훨 날아다니는 품새로 존재의 빛을 발하는 자에게만 눈이 쏠리는 게 세태이지 않던가. 김행수는 1985년 영화 ‘단(丹)’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후 다수의 시나리오를 썼다. ‘신라승 김교각’, ‘재일동포, 아! 나는 누구인가’ 같은 로케이션 다큐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지난 20여 년간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건 정신의 지옥을 사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 괴로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적막한 산방에 눌러앉아 소설 하나를 써 올봄에 출간했다. 불교 구도소설 ‘공유(空有)’가 바로 그것. 소설쓰기란 방울방울 혼신의 피를 뿜는 일. 그의 뚝심을 알아볼 만하다. “오래전부터 불교영화를 하나 만들고자 나름 치열하게 노력해왔어요. 시나리오를 완성해 주머니에 품고 살며 근 20년간 영화화하기 위해 진력했죠. 하지만 제작투자자가 붙질 않더라고. 자본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텐데 길이 열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꿔 출간했어요. 제작비 마련의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였죠.” “소설의 반응은?” “신통치 않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어요.” “제작자가 붙질 않는 이유, 뭐라 보시죠?” “상업영화 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자본논리로 돌아갑니다. 돈 될 영화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죠. 게다가 저처럼 나이 든 사람보다 말랑말랑한 신인을 선호해요. 나이 들었으니 고리타분할 것이다, 새롭지 않을 것이다,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요. 이게 한심한 편견이죠. 나이 먹어 오히려 새로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충분히 신선하다면, 충분히 흥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나리오라면 덤벼들지 않을까?” “불교영화? 그게 돈 되겠어? 그런 선입견이 팽배해 있어요. 비애를 느낍니다. 당신의 시나리오 품질에 혹은 연출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냔 얘기도 듣지만 진지한 감독이라면 누구나 최선을 다하기에 자부심을 갖게 마련이에요.” “물심양면으로 불황이 깊은 세월이었겠어요. 결례되는 얘기이지만, 영화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자그마치 20년을 공들인 일에 활로가 찾아지지 않는다면 후다닥 바꾸는 게 상책일 수도 있지 싶어서.” “영화가 아니면 무엇을 하나? 제작환경이 저열하고 열악하지만, 평생의 일이자 꿈인 영화를 포기하고서야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비슷한 처지의 감독들은 부업을 찾거나 아예 직업을 바꾸기도 하지만 제 경우는 그게 안 돼요. 내게 아직 운이 오질 않았어, 기다려보자, 그렇게 자위하며 때를 기다립니다.” 영화를 생각하면 소년처럼 들뜨는 사람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을 자처하는 김행수의 행보엔 갈지자가 없다. 비바람 속 난항이지만 주저앉을 수 없다는 결의는 날로 굳어진다. 운명의 여신은 거칠게 다룰수록 복종한다지? 우직한 열망, 김행수는 그 하나로 운명과 거칠게 겨루는 사람으로 보인다. 일테면 꾀를 쓰는 기회주의로 강자에게 빌붙는 방식 따위에 그는 관심도 요령도 없다. 자신의 적성과 실천은 불교적 수행에 부합한다는 게 아닌가. 실제로 그는 거의 승려처럼 산다. 그렇기에 김행수는 외롭고 적막하고 돈 없는 산방의 소탈한 살림살이에 자족한다. 가만히 바위처럼 눌러앉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산골에 들어왔지만, 물질에 시달리지 않을 무욕의 삶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도 산중 살림이 적격이었던 모양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물신에게 절을 하며 산다. 가난을 원수로 여긴다. 김행수의 생각은 썩 다르다. “소설 ‘공유’는 불교의 근본 교리인 ‘진공묘유(眞空妙有)’를 풀어나간 작품입니다. 생겨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절대의 진리, 공에도 유에도 치우치지 않는 경지, 이게 진공묘유인데 본래의 성품인 참마음을 닦을 수 있는 이치를 알려주는 묘리죠. 마음이라는 거, 그거 하나를 잘 쓰면 무엇에 걸리거나 시달릴 게 없어요. 모두들 돈, 돈, 돈 하지만, 돈을 산처럼 모았다고 마음이 저절로 편해질까? 오히려 재산을 지키려고 더 불편하게들 살지 않던가요?” “수행에도 예술에도 최소한의 물적 토대는 필요합니다. 돈에 목을 걸 일은 아니겠으나 지나친 궁색은 불편의 원천이기도 하죠.” “돈의 노예로 사는 건 위험하다는 얘기입니다. 움켜쥔 손, 즉 욕망을 탁 놔버리는 그 순간이 부처의 자리이며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조짐이에요. 그런 사람이라면 물질에 시달릴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고.” “욕망을 무슨 수로 탁 놓을 수 있을까? 욕망 중에서 좋은 욕망을 잘 가려 쓸 수만 있더라도 내공이겠죠. 무욕으로 포장된 말만의 청빈보다는, 때 묻을 수밖에 없는 돈벌이로 응분의 밥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더 떳떳한 수행이자 내공이겠고 말이죠.” “가족보다 직장보다, 오롯이 나 자신의 시간을 나답게 쓰고 가는 게 더 소중해요. 나 아닌 남들에게 시간을 다 빼앗기고 나면 결국 나 자신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두고 이기주의자라고도 하지만, 이건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김행수는 쉰 살이 넘어 결혼을 했다. 아내와 어린 딸은 현재 도시에 살고 있다. 영화 하나에 홀려 평생을 살아온 그는 용케도 가족부양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가족들이 그를 숫제 포기한 덕분이라지. 이토록 요상한 행운이라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행운은 언제 오려나. 자나 깨나 그가 기다리는 건 영화제작자의 출현이지만 아직은 진도가 더디다. 영화를 생각하면 그는 소년처럼 들뜬다. 세상의 외면에 분노의 아드레날린이 굶주린 짐승처럼 혈관을 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산이 성큼성큼 가슴으로 걸어 들어와 위안의 밀어를 건네줄 테지. “산중에 살며 점점 산을 닮아가는 걸 느껴요. 저의 몸이 영혼의 집이라는 걸 깨달아요. 남들은 무위도식하는 걸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영화 외의 모든 걸 다 놓고 사는 삶은 낭비가 없기에 분주하고, 지루할 게 없어서 생동해요. 물론 때로 오욕칠정에 휘둘리지만…. 영화를 생각하면 자주 괴롭지만….” 번뇌도 보약이겠지. 괴롭고 슬퍼야 빛깔이 짙어지는 법이니까. 영화를 향한 간절한 열망, 그게 투명한 감옥일지언정 허공으로 비끼는 몽환일 리가. 해 저물어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김행수가 소박한 밥상을 차려낸다. 텃밭 부추를 밥에 넣고 비빈 부추비빔밥이다. 상큼한 부추향이 산방에 번진다. 김행수 감독이 주는 귀촌 준비 Tip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사는 삶은 한결 만족스러울 수 있다. 도시에서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모으려는 사람들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질 경우엔 낙오자 취급을 받지 않던가. 그러나 산골에선 경쟁 대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닮게 마련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겠는가. 즉각 행동에 옮기는 게 옳다. 귀촌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 2018-09-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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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까머리 시절 필담을 나누던 벗에게…
- 50년 전쯤 편지를 주고받았던 짧은 인연에 기대어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나요?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 되어서 그대나 저나 서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밤잠을 설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이어가던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은 아직 저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답니다. 그때의 청소년들은 참 답답한 오리무중의 한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10대 중·후반을 지칭하던 ‘하이틴’이란 말은 붕붕 하늘을 향해 치솟던 꿈 많은 시절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온갖 금기와 규제를 짊어진 수행자의 시기라고 해야 할 정도로 힘겨웠지요.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중고생 남녀가 어깨를 나란히 해 걸어가는 것만으로 비행 청소년 취급을 받던 때이니까요.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겠지만 정말 그랬답니다. 그러니 소년 소녀가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간다든지 분식집에 마주 앉아 김밥이라도 나누어 먹고 있다면 교외단속반 선생님에 의해 단속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지요. 그렇다고 출구가 완전히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달리 보면 낭만과 품위를 갖춘 방식으로, 우리 세대 소년 소녀들에게는 펜팔이라는 서신을 통한 교제가 있었으니까요. 아, 맞아! 하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맞장구를 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대와 나도 그렇게 잠시 인연이 닿았던 것이겠지요. 1970년대 초입의 어느 시점, 그 즈음에는 학생들을 위한 각종 매체가 많았습니다. 잡지와 신문들, 저는 그 시절을 풍미하던 학생 잡지 뒷면에 실린 펜팔난에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의 여학생이 올려놓은 주소를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쓸 마음을 먹었습니다. 취미는 사색, 음악감상, 낙서 등, 들뜬 마음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며 미지의 소녀에게 첫 편지를 씁니다. 우선 자신의 소개부터 해야 했지요. 사는 곳과 학교, 취미와 장기, 장래 희망 같은 것 등등. 그렇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지 절반쯤 써내려가다가 구겨버리고, 또 한 바닥 가까이 쓴 자기소개가 마뜩찮아 또 구겨버립니다. 이 주소로 편지를 쓸 또래 학생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 정도 편지로는 답장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게 뻔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하이틴들은 사방 높게 둘러쳐진 담장 안의 어린 토끼들이어서 이렇게라도 뜀뛰기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편지로 소통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한 번으로 편지가 끝난 적도 있고 또 어떤 친구는 한참을 이어가며 소소한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편지로만 소통하는 것이니 과장과 허풍과 엄살도 심했을 테고 진도가 잘 나가면 가장 멋지게 나온 사진 한 장씩 교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저를 나무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편지를 쓰는 저를 탓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늙어 자식들 알면 민망스럽다고 손을 내저으실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그렇긴 해요. 환갑을 넘긴 제가 까까머리 중학생 때 이야기를 하려니 부끄럽기는 해요. 그러나 온갖 망상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 시절이 아름답게 추억되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요즘은 손전화 문자 발송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지만 편지는 여간해서 써볼 엄두가 나지 않는 구습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건 초등학생만 되어도 갖게 되는 편리한 손전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통해야 하는 오늘의 변화된 생활 방식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아이들의 경우 예전에야 집과 학교를 오가는 것이 정해진 동선이고 기껏해야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 공터에서 잠시 뛰노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방과 후 몇 군데 과외 학원을 거치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니 어른들 못지않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교감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흔치 않았어요. 그럴 만한 사회적 환경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콩나물시루 같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 교실은 만원이었고 이렇다 할 문화생활도 누리지 못하던 때여서 여유로운 문화적 혜택이나 친교가 이루어질 기회가 적었던 시절이었어요. 텔레비전도 동네에서 잘사는 친구 집 마루에 엉거주춤 앉아 눈동냥하듯 봐야 했는데 그때마다 안방에서 비스듬히 누워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또래와 너무나 먼 격차를 느끼기도 했지요. 그에 비하면 미지의 친구와 주고받던 필담은 참으로 낭만적인 교감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중학생 무렵부터 편지로 친구를 사귀는 걸 좋아했어요. 이른바 펜팔이라는 것이었지요. 그 디딤돌을 마련해준 건 여러 형태로 발간되던 청소년 잡지와 신문의 펜팔난이었어요. 자신의 취미와 나이, 주소 같은 걸 밝히면 편지로 맺어지는 친구가 생기던 시절 이야기예요. 그 시절의 학생 잡지는 말미에 독자문예란을 마련해 시와 산문들을 실어주었는데 제 글도 가끔 거기에 올라갔고 그 바람에 전국에 있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어요. 제 문장 수련은 그 시절 편지쓰기로 다 이루어진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삶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의 열대여섯 살은 그렇게 편지를 쓰며 성장했어요. 편지란 긴한 용무가 있어 작정하고 쓰는 경우도 있지만 불현듯 낙서처럼 끼적인 것에 진심을 살짝 얹어 쓰는 경우도 있는 것이겠지요. 어른들은 그걸 편지질이라고 면박을 주곤 했는데, 아마 쓸데없는 해작질 정도로 여겼던 것 같아요. 해외 펜팔은 글로벌한 친구 사귀기와 영어 학습의 한 수단으로 장려되었지만 또래끼리의 이성 펜팔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편지로만 소통하는 그 방식이 또래끼리의 고민과 현실 저 너머의 꿈을 이야기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었던 것도 같아요. 편지로 우정을 나누던 그리운 벗들, 이제 우리 나이가 예순을 넘기기는 했지만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담아 누군가에게 고운 꽃편지 한 통 띄워보내면 어떨까요. 최영철(崔泳喆) 시인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등이 있고 육필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변방의 즐거움’이 있다. 백석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 2018-09-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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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기도 궁합이 맞아야 오래간다
-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5위를 차지한 ‘한 가지 악기 마스터하기’에 대해 알아봤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동년기자단을 대상으로 배워보고 싶은 악기를 조사한 결과 1위 기타(44%), 2위 장구(25%), 3위 피아노(16%) 순이었다. 악기 레슨 전문 스튜디오 스마일라이프 이경연 대표는 시니어 수강생들이 선호하는 악기 중 하나가 색소폰이라 말한다. 김현정 음악교육 전문가 역시 시니어에게 추천할 만한 악기로 색소폰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자신에게 잘 맞는 악기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기타, 장구, 피아노 그리고 색소폰을 배우려는 이들을 위한 도움말을 담았다. 도움말 스마일 라이프 이경연(색소폰)·김선길(기타)·이미송(피아노) 강사, 마포문화재단 정종숙(장구) 강사 기타 추천 성향 7080세대, 20 ~30년 전 기타를 쳤거나, 반대로 그 시절 로망으로만 간직한 채 배우지 못한 분들이 선호한다. 통기타의 경우, 연주와 동시에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노래를 잘하는 이들에게 알맞다. 다른 악기에 의존성이 덜하고 장소에 제약이 적어 가족이나 모임에서 소소한 공연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권한다. 악기 구입 요령 입문자라면 20만~3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 악기 상점 두세 곳을 방문해 소리를 들어보고 사야 한다. 직접 기타를 쳐보고 소리를 가늠해야 하는데, 초보자라면 연주가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 악기상 주인들은 기타를 칠 줄 아니, 대신 연주를 부탁해 소리를 꼭 들어보자. 기타는 대중화한 악기라 중고 거래도 활발하다. 일반 중고판매 사이트나, 음악인들이 애용하는 ‘뮬(www.mule.co.kr)’을 통해 중고로 구입해도 괜찮다. 연습 과정 기타는 손에 굳은살이 박여야 하는데, 그 과정을 힘들어하는 이가 많다. 매일 1~2시간 정도 3주에서 한 달가량 연습하면 굳은살이 잡혀 그 뒤로는 진도가 빠르게 나간다.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손가락 끝에 통증이 생기는데, 증상이 심하다면 레슨 강사의 도움을 받아 잡기 편한 코드로 수정하는 등 융통성 있게 연습한다. 기타를 다시 배우는 이라면? 과거에는 친구들끼리 가르쳐주고, 한 곡만 특정지어 연습했다. 즉 기본기가 부족하거나, 응용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들인 습관을 고치는 게 힘들지만,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개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장구 추천 성향 사물장구는 율동이 더해져 체력소모가 있지만, 가락장구의 경우 앉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 우스갯소리로 ‘젓가락 들 힘만 있으면 된다’ 할 정도로 장구채 쥘 기력만 있다면 충분하다. 여럿이 왁자지껄하는 것보다 자기만의 싸움과 만족을 원하는 분들이 알맞다. 악기 구입 요령 처음 2~3개월은 기관이나 학원 등에 있는 장구로 연습한다. 어느 정도 배우다가 나에게 맞는 악기라고 여겨진다면 개인 장구를 구입한다. 종로 국악사 등에서 파는 장구는 10만~15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 연습 과정 군밤타령, 아리랑 등 귀에 익숙한 가락을 연주하다 보니 쉽게 잘 되리라 여기지만, 막상 가사와 장단을 맞추려면 시간이 걸린다. 끈기 있게 1년은 꼭 버티시라 조언한다. 장구는 소리가 위아래로 울려 층간 소음 문제가 있는 집에서는 연습하기 불편하다. 평상시 연주 장면을 찍어둔 뒤, 젓가락이나 스틱을 이용해 박스, 쿠션 등을 놓고 영상을 보며 익힌다. 장구가 익숙해졌다면 민요도 함께 부르며 연습한다. 민요가 곁들여져야 어디 가서 장구 가락에 노래 한 소절 뽑을 수 있다. 피아노 추천 성향 혼자 하는 악기이다 보니 감성적인 분들이나 차분한 성향의 분들이 하면 좋다. 성격이 급한 이들은 건반을 치다 잘 안 되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손주에게 동요 등을 연주해주고 싶어 오는 조부모도 있다. 악기 구입 요령 피아노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니 키보드와 같은 건반을 먼저 사서 익히면 좋다. 20만~30만 원대도 있지만, 너무 저렴한 것보다는 50만 원 정도의 국내 브랜드가 적당하다. 연습 과정 대부분 처음 특정 곡을 정해와 ‘이거 하려면 얼마나 걸려요?’라고 묻는다. 기본기가 전혀 없다면, 두세 달은 해야 원하는 곡을 완주할 수 있다. 다른 악기에 비해 악보를 잘 봐야 한다. 계이름이나 부호 등을 익히는 기초 과정에서 인내심이 요구된다. 오래 꾸준히 하면 좋은 취미가 되고, 힐링이 되는 악기이니 1~2년 정도를 기본으로 보고 해나가길 권한다. 색소폰 추천 성향 멜로디 악기이기 때문에 가수와 똑같다 생각하면 된다. 밴드를 이루면 색소폰은 가운데 서서 멜로디를 주도한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리더십 있는 분들에게 알맞다. 반면, 소심한 분들도 색소폰을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하는 사례도 많다. 악기 구입 요령 입문용 색소폰을 사서 쓰더라도 1~2년 이상 쓴다 해서 고장 나거나 못 쓰게 되지는 않는다. 한 번 사면 오래 연주할 수 있는 악기다. 색소폰 소리를 좌우하는 건 ‘마우스피스’다. 때문에 마우스피스는 가능한 한 좋은 것을 사시라 권해드린다. 연습 과정 관악기이다 보니 호흡에 어려움이 있는 시니어에겐 적합하지 않다. 그 외에는 비교적 쉽게 배워나갈 수 있는 악기다. 다만, 독학으로 알음알음 배워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잘못된 습관이 들면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힘들더라도 기초를 잘 다져야 한다. 악기에 도전하는 시니어를 위한 Q&A 도움말 김현정 음악교육 전문가 Q 악기를 배우다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처럼 악기도 저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악기가 좋아서, 뭐 하나 배우고 싶어서, 소리가 멋지고 좋아서 등등 노력의 대가와 성질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악기를 접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악기는 한 번 배우기 시작하면 적어도 1~2년은 배워야 일정 수준에 오르는데, 이때 악기와 내가 궁합이 잘 맞아야 오래 익힐 수 있습니다. 악기를 배우기 전 그 악기의 특징은 무엇인지, 내 성향에 잘 맞는지 알아보고 상담 등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내게 맞는 성향의 악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크게 리듬 악기와 멜로디 악기로 나눕니다. 장구나 드럼 등 리듬 악기는 다른 악기들을 리드하면서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소통 능력과 책임감이 강한 분에게 맞습니다. 혼자만의 음악을 즐기고 싶고 차분한 성향이라면 난해하지 않은 베이스 악기가 좋습니다. 성격이 급한 분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등 멜로디 악기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리듬 악기는 치면 바로 소리가 나고 반응이 있는 반면, 멜로디 악기는 음정을 맞추고 멜로디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Q 시니어에게 추천할 만한 악기가 있다면요? 요즘은 색소폰을 많이 배우십니다.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고, 소리도 크게 잘 들리고, MR기기를 휴대할 수 있어 반주자 없이도 연주가 가능한 게 매력입니다. 음악에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배우고, 실력 향상도 잘되는 편입니다. Q 악기를 배우는 시니어들의 고충은 무엇인가요? 악보 보는 것을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별문제 아닙니다. 그보다는 악기마다 기본자세를 잡는데, 이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올린만 하더라도 허리 펴고 어깨나 손목 등의 자세를 익히는데, 레슨 한 번 받으면 몸살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악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중요 단계이므로 무리하지는 말되, 소홀하지 않게 잘 다져야 합니다. 몸에 불편한 곳이 있다면, 악기를 배우기 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악기를 배우며 찾아오는 슬럼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대부분 성인은 3개월이 고비입니다. 개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자기 능력을 끄집어내주는 것은 물론, 힘든 고비마다 일으켜주고 다독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악기를 배우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 섣불리 악기를 내려놓지 말고, 배움터를 바꿔 다른 선생님과 색다른 분위기 속에서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하던 사람이라면 앙상블에 들어가거나, 모임 위주로 했다면 개인 레슨을 받는 등 환경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Q 악기를 배우는 분들에게 격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악기는 실력이 계단형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나면 정체기가 오고, 또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실력이 부쩍 오르게 됩니다. 그 꼭짓점을 하나씩 짚어가며 실력이 나아진다는 믿음을 갖고 넉넉한 마음으로 배워나가시길 바랍니다.
- 2018-09-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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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을 선물로 '운젠지옥'
- 올여름 일본은 연이은 자연재해로 홍역을 치렀다. 서일본 지역에 그야말로 물 폭탄이 쏟아져 한바탕 난리더니 초대형 태풍으로 오사카공항이 물에 잠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홋카이도에 진도 7의 강진이 몰아쳐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때에 일본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가사키는 안전하겠냐는 눈초리를 뒤로 하고 올해 두 번째 초저가 여행을 감행했다. 나가사키 근방에 있는 운젠지옥이 목적지였다.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다. 제아무리 인간이 준비하고 대비를 철저하게 한다 할지라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은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운젠지옥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1991년, 50만 년 동안 활동해온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마을을 집어삼켰다. 2500채 가옥이 소실되고 마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버렸다. 화산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마을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운젠을 인기 있는 온천 여행지로 만들어 놓았다. 운젠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인천에서 나가사키까지 1시간, 나가사키공항에서 운젠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아사햐야에서 갈아타야 했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아사하야 터미널까지 1시간, 아사하야에서 운젠까지 1시간 30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운젠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을 돌다가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기사에게 운젠지옥을 순례하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으려는데, 입에서는 그저 ‘지코쿠(지옥)’라는 외마디만 나왔다. 두 손으로 뽀글뽀글 물이 끓는 형상을 만들어 보이며 지코쿠를 외치자 기사는 웃으면서 그곳 일대 어디서 내려도 된다고 했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 내리면서 ‘지옥’, ‘지옥’을 거듭 외치는 내 모습을 그려보니 웃음이 났다. 운젠지옥은 냄새로 먼저 다가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진한 유황내가 진동했다. 땅 밑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와 열기가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차도건 인도건 틈이 있는 모든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운젠지옥으로 가는 길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근 주차장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운젠지옥 순례를 시작하였다. 30여 개의 화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슉슉’ 발밑에서 물이 솟는 소리가 마치 압력솥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와보면 이곳에 왜 지옥온천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옥엘 간다고 말할 때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펄펄 끓는 물과 땅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달걀이 썩는 것과 같은 진한 유황냄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과 너무나 비슷해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이곳을 진짜 지옥으로 만든 건 약 350년 전 있었던 종교탄압이다. 에도시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펄펄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여 서서히 목숨이 끊어지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운젠지옥이라 불렸다는 설도 전하는데, 야트막한 동산 위에 30여 명의 신자순교비가 있다. 지금까지 들었던 지옥의 소리가 그들의 비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운젠지옥을 걷는 내내 유황 냄새가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깊게 들이마시면 폐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유황내를 깊이 받아들이는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길이라 걷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척박한 땅에도 나무가 자라고 새가 울었다. 운젠지옥 주변은 가스와 지열 때문에 억새나 철쭉, 적송 등 악조건을 견디면 살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식물들이 힘겹게 뿌리 내린 그 땅에서 새들이 울고 사람들도 산책을 즐겼다. 산책 후에 어여쁜 고양이와 눈맞춤을 하며 지열로 삶은 달걀과 운젠의 명물인 레몬사이다를 마셨다. 운젠지옥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일지 몰라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극복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화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바마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산길을 돌아가면서 인간은 왜소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운제지옥이 내게 들려준 값진 교훈이다.
- 2018-09-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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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 배우기, 아기 옹알이하듯 차근차근
-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4위를 차지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해 알아봤다. 도움말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 학생, 직장인 시절 외국어는 시험이나 취직을 위한 통과 의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와 취업 경쟁에서 벗어난 중장년의 경우, 취미 또는 도전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이가 많다. 외국어 교육 전문가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는 “시니어가 젊은 시절 외국어를 배울 때는 주로 문법 위주였다. 때문에 중년 이후에는 생활 영어를 취미 삼아 하거나, 해외여행을 위한 실용 회화를 공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준비하거나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을 느끼시는 분들도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설명한다. 배우고 싶은 이유가 다양한 만큼, 그 실천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수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영어 초보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아봤다. 독학보다는 맨투맨 회화가 효과적 박 대표는 “시대가 바뀌면서 인터넷 강의나 스마트폰 앱 등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도 다양해졌지만, 아무래도 시니어는 아날로그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외국어를 배우기 전 스마트폰 앱 사용에 능숙해져야 하고, 컴퓨터나 휴대폰 화면을 오래 보면 눈과 몸이 쉽게 피로해져 시니어에게는 무리가 있다는 것. 아울러 문법보다는 회화를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소싯적 달달 외우듯 독학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박 대표가 적극 추천하는 것은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한 강좌다. 일반 학원 강좌는 입시생이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진도도 빠르고 공부량도 버거울 뿐더러 다른 학생과 수준 차이가 나면 위축되기도 한다. 반면 주민센터나 복지관 수업 등의 경우 가격도 저렴하고, 시니어의 패턴에 맞춰 수업 스케줄과 목표를 잡아 차근차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외국어 초급 딱지 떼기 단계 [step1] 필수단어 100개 익히기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그림 카드에 적힌 이미지를 보고 단어를 말하듯,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100개를 그림과 함께 익혀보자. 이때 발음이나 스펠링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 가족, 동물 등등 장르별 6~7개 정도 단어이면 충분하다. 먼저 100개의 단어가 친숙해졌다면 수준에 따라 200개, 300개까지 늘려간다. 너무 쉽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쉬운 것부터 즐겁게, 꾸준히 그리고 익숙해지는 것을 외국어 배움의 목표로 여겨야 한다. step2] 필수표현 50개 익히기 박 대표는 다수의 외국어 관련 서적을 집필한 경험으로 볼 때 ‘안녕’, ‘고맙습니다’, ‘잘 가요’ 등 유용한 필수 표현은 50개 남짓으로 정리된다고 말한다. 앞서 기초 단어를 익히듯 글자나 발음보다는 표현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공부한다. 한두 단어로 이뤄진 짧은 문장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라면, 막상 써야 하는 순간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thank you’, ‘sorry’처럼 굳이 머리로 생각해내지 않고도 곧바로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올 정도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step3] 글자 익히기 아이들이 먼저 ‘엄마’라고 말하고, 나중에 ‘엄마’라는 글자를 배우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입에서 익숙해진 단어와 표현을 글로 배웠을 때 더 재미있고 가속도가 붙는다. 영어라면 알파벳, 일어라면 히라가나 등을 익히는 게 이번 단계의 목표다. 앞서 두 단계가 없이 바로 글자 쓰는 법을 배우면 철자와 단어의 뜻을 한꺼번에 익혀야 한다. 먼저 단어와 표현이 익숙해지면,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글자를 익힐 때도 효율적이다. step4] 문장의 뼈대 익히기 마지막 단계는 문장의 패턴을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I want it’(나는 그것을 원한다), ‘I want coffee’(나는 커피를 원한다), ‘I want love’(나는 사랑을 원한다) 등 ‘I want ~’(나는 ~를 원한다)라는 기본적인 패턴을 외우고 그동안 외운 단어를 접목하는 단계다. 반복해서 응용하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말로 문장을 내뱉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여기까지가 초보자가 목표로 할 수 있는 단계이고, 약 1년 정도 시간을 두면 좋다. 영어가 아니라면? 일본어에 도전! 대부분 외국어를 배운다 하면 1순위로 영어를 떠올린다. 이미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면 또 다른 언어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중장년의 학창 시절에 남자는 독일어, 여자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익히는 것도 좋겠지만, 40~50년 전 이후로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면 새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언어는 익힌 뒤 자주 활용해야 입에 붙고 수준이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여행하거나 언어를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이에 박 대표는 비교적 활용도가 높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추천한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 발음이나 어순, 문법 등이 비슷해 공부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라고. 물론 일본어를 포함한 다른 외국어 역시 말부터 익히고 글로 쓰는 과정을 따를 것을 권한다. [Tip] 소리의 바다에 빠져라 외국어에 익숙해지려면 자주 그 나라 언어를 소리로 접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팝송을 듣거나 미국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공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팝송의 경우 시적인 표현이나 슬랭(slang: 비속어, 은어)이 많고, 드라마와 영화 대사는 줄임말이나 유행어 등이 많아 초·중급 단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영어 동요를 불러보면 좋다. 따라 부르기도 쉽고, 거의 직역으로 뜻이 전달돼 노래를 통해 단어와 표현을 익히기에도 효과적이다. 어린 손주와 놀아주며 함께 영어 동요를 익혀보는 건 어떨까?
- 2018-08-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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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 통기타 입문기' 우리에겐 우리만의 문화가 있다
- “엄마, 기타 치는 모습 너무 귀여워.” 휴대폰으로 찾은 동영상을 보면서 기타를 이리도 잡아 보고 저리도 잡아 보는 나를 향해 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타를 잘 치냐 하면 반대로 왕초보다. 이제 막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어려서부터 늘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기타를 치는 모습, 가수들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실 누구라도 따라 하고 싶은 폼나는 모습 아닌가? 악기상점이 모여 있는 종로의 낙원상가는 물론이거니와 지나다 우연히 기타가 세워져있는 상점이라도 발견하면 진열장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나뿐만 아니었다. 윤이 반짝반짝 나는 기타가 바로 보이는 진열장 앞에는 늘 나와 같은 아이들이 두 서넛은 기웃거렸다. 왜 하필 기타였을까?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끌림이 가는 것들이 있는데 기타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은 그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통기타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가수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기타를 치던 시대였다. 특히 종로의 ‘쎄시봉’ 하면 떠오르는 가수 김세환이나 팝송을 번안해서 부르던 트윈폴리오의 윤형주와 송창식, 특유의 목소리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양희은 등등의 인기는 지금의 빅뱅이나 방탄소년단 못지않았다. 종일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는 DJ가 있어서 신청곡을 즉석에서 틀어주기도 했고 여름만 되면 기타를 메거나 라디오를 손에 든 청춘들이 삼삼오오 기차를 올라타고 서울을 벗어나던 시대였다. 지금쯤 중년이 되었을 그 시대 청춘들. 첫 수업에서 A 코드와 E 코드를 배우고 동요 ‘비행기’를 쳤다. 단 두 개로 치는 거라 쉬워 보였는데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 세 개가 나란히 있는 코드 A에서 자연스레 코드 E로 넘어가는 것은 나에겐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었다. 잘도 넘어가는 다른 분들을 보면서 자괴감보다는 ‘아마 예전에 하던 사람일 거야’ 하고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발동시켰다. 두 번째 수업에서도 나의 비행기는 바닥을 설설 기어갈 뿐 높이 뜨지 못했다. 함께 시작한 분들의 비행기는 대부분 높이 날아올라 강의실이 좁다고 허공을 뱅뱅 날아다니는데 가여운 나의 비행기는 슬쩍 뜨려다 멈칫멈칫 주저앉았다. 이유는 있다. 연습을 거의 못 했다. 못 뜨는 것이 당연하다. “기타를 가방에 모셔두지 말고 꺼내놓고 자주 만져주세요. 그냥 한 번씩 안아주기만 해도 좋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기타를 안아주지만 더 시간이 지나면 기타가 여러분들을 위로해주는 날이 옵니다.” 두 번쯤 수업을 들었을 때 강사님이 말했다. 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기타가 나를 위로해 주다니! 더 신기한 건 그 말을 내가 이해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수업까지도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만져 주리라 하고는 거실에 기타를 꺼내두었다. 주말에 손녀가 오더니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는 장난감이 되었다. 띵 똥 거리며 소리가 나는 물건이 어린 눈에도 신기했나 보다. 기타를 처음 시작할 때 입문용으로 하다가 교체하는 게 좋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물려 줄 꼬맹이를 염두에 둔 것도 있다. 비행기를 쳐 주니 전혀 엉뚱한 소음이 들린다. 음이 맞지 않았다. 튜닝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네 번째 수업이다. 강사님이 세 번째 수업 즈음 7월 말경 ‘김광석 따라 부르기’가 있다면서 “우리도 한 곡 참여하죠?” 하더니 이내 “우리도 한 곡 하기로 했어요”로 바뀌었다. “별로 어렵지 않아요. 코드 두세 개로만 하는 거라 연습하면 가능해요.” ‘물론... 연습만 열심히 하면, 물론 그렇겠죠.’ 모두 입을 쩍 벌리곤 고개를 절레절레(나와 같은)하거나, 깔깔대고 웃거나(틀림없이 예전에 좀 하던 분들이다) 했다. 실력을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이라 일단은 좋다. 벌써 일곱 번째 수업이 진행되었다. 연습 부족인지 수업이 진행될수록 다른 분들과 격차가 생기는 느낌이다. 강사님이 말했다. “여러분! 연습 잘되고 있는 거죠?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절대 연습 안 되고 있어요!!’라고 속으로만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잘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여러분 아주 잘하는데요! 이대로만 하면 되겠어요!” 합주를 하고 난 후 강사님이 말했다. 나도 잘한 것은 맞다. 오직 G 코드 하나만 누르고 그 순간에만 오른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합주를 하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는지 그 부분에서 유독 소리가 커졌다가 코드가 바뀌면 소리가 확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합주를 마친 후 강사님은 “어 이상한데?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네요”라고 말했다. 모두 고개까지 젖혀가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강사님은 수강생들의 편법 연주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르고 싶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기타를 집어 든다. 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기타를 잘 치기엔 내 손은 너무나 작았다. 물론 다 핑계라고 할 수 있지만 동영상에서 가르쳐 주는 그 손동작이 나는 안 된다. 엄지손가락을 6번 줄 위에 멋지게 걸칠 수가 없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피아노에서만 유리한 줄 알았더니 기타도 마찬가지였다. 감사한 것도 있었다. 내 손가락은 길이만 짧은 것이 아니라 가늘기도 했다. 남들보다 다른 줄을 건드릴 확률이 낮다. 역시 신은 공평하시다. 코드를 잡아 본다. C 코드, D 코드, E 코드. 비행기도 열심히 친다. 코드를 정확히 익히니 연결도 전보다 편하다. ‘하긴, 코드를 잘 모르는데 연결이 부드럽게 되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지’하고 스스로 반성도 한다. 어설프게 알다가 확실히 알게 되는 순간의 기쁨은 배움의 과정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깜박이던 형광등에 반짝하고 불이 켜지면서 환해지는 느낌과 같다. 오늘도 밤늦도록 기타 코드를 잡는다. 비행기가 자연스레 되나 쳐보고 “오! 제대로 들린다!” 혼자 뿌듯해한다. 몸으로 하는 것은 자세를 바로잡으면 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에 동영상을 검색한다. ‘기타 칠 때 바른 자세’, ‘왕초보 기타 코드 배우기’, ‘자연스럽게 기타 코드 연결하기’ 등등. 신기하게도 인터넷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동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따라 해본다. 손가락 끝이 얼얼하다. 많이 연습한 증거라 그마저도 싫지 않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다가 비행기를 다시 친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전보다 좋다. “이게 비행기로 들리니?” 거실에 나온 딸에게 비행기를 물었더니 “ 그럼, 그럼. 비행기로 들려! 엄마 이제 잘하네!” 하고는 웃는다. 어설프게나마 비행기 코드를 연결하게 된 내가 자랑스럽다. 진도를 높여 본다. 수업 중에 G 코드 하나만으로 껑충 연주를 했던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악보를 펼친다. 처음엔 역시 G 코드다. 거북이처럼 목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이어지는 Em코드를 시도해 본다. 된다. 알고 보니 연결이 쉬운 코드였다. 엄청난 발전이다. 시간은 자정이 훌쩍 넘었다. 이러다 언젠가는 정말 기타에게 위로받는 날이 올 것만 같다. 기타를 배우노라고, 배워서 홍대 버스킹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더니 “에이, 버스킹은 힘들 걸요” 하던 젊은 선생님의 얼굴도 떠오른다. 꿈은 이루지 못하면 꿈에 머물지만 이루고 나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첫 수업에서 난생처음 기타 코드를 잡았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공중에 띄웠다. 가능성은 늘 열어두어야 한다. 혹시 아나? 앞으로 5년쯤 지나 혹은 그 이후에 어떤 머리카락 희끗한 할머니가 최고령 홍대 버스킹으로 신문에 날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내 손으로 기타를 치며 비행기를 부르게 될지 몰랐으니까. “떠~어~따 떠~어따 비~행~기~날~아~라~날~아~라~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 2018-07-27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