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에 한 번씩 접객을 하는 직업이 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 하지만 그의 업장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명은 이곳을 지나친 사람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한 업무이지만 사선에 선 사람들은 그가 건넨 희망의 한마디를 꼭 붙잡는다. 강동성심병원에서 만난 나누미동행팀 김창원(金昶源·70) 씨 이야기다.
병원에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직종인 ‘이송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을 앞두었거나 막 수술을 마친 환자를 수술실과 병실로 옮기는 일을 주로 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안전하게 환자를 이동시켜야 하므로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 맡는다.
김창원 씨의 업무는 단순하다. 호출을 받으면 이송팀이 환자와 함께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이동형 침대의 승하차를 돕는 일이다. 시간을 때우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바라보면 예사롭게 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 씨의 소속은 강동성심병원 ‘나누미(美) 동행팀’. 병원 사회사업팀과 강동노인복지관이 주도해 진행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목적으로 지난 3월부터 운영 중이다.
2분마다 울리는 호출음
까톡!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그의 휴대전화에 암호 같은 메시지 ‘3 12 ㅎ’가 뜬다. 대부분의 업무 요청은 이렇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뤄진다. 바쁠 때는 2~3분 간격으로 계속 울려댄다.
“3층에서 12층으로 이동하는 환자가 있다는 뜻이죠. 다들 바쁘니까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간단한 메시지로 주고받습니다. 환자가 이동하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아요. 수술 전에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수술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회복실로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호출음으로 전달받은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기다렸다가 이송팀과 환자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겁니다.”
그와 이동하는 중에 문득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주변을 둘러보자 그가 핸드폰을 들어 보인다.
“환자분들을 대해보니 대부분 긴장하시더라고요. 큰일(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어찌 긴장이 안 되겠어요. 그래서 제가 유튜브에서 찾아봤죠. 환자의 회복에 좋은 추천 음악들이 있더라고요. 스무 곡 정도 다운받아 늘 틀고 다닙니다. 힘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요.”
이보다 환자들에게 더 힘이 되는 것은 그의 응원의 말이다. 강동성심병원 사회사업팀 관계자는 그가 건네는 여러 가지 위로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면서, 실제로 많은 환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소통에도 능숙하고 적극적이어서 병원 직원들이 그의 계약 종료를 걱정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환자들과 소통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환자의 감정 상태라고 말했다.
“무척 조심스럽죠. 처음 얼마간은 눈치를 많이 봤어요.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걸어야 하니까요. 이제는 환자의 이동 목적을 잘 알아서 ‘수술 잘될 겁니다’, ‘치료 잘 받으셔요’, ‘수고하셨어요’, ‘쾌유를 빕니다’ 등등 상황에 따른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여유가 있으면 조금 길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간혹 환자분들이 제게 감사 표시를 할 땐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어요.”
그는 자신의 업무가 비록 단순한 일이긴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쉽게 권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점 때문이에요. 엘리베이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동선도 고려해야 해요. 한꺼번에 들어온 요청을 차례대로 처리하는 게 좋을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나을지 빨리 판단해야 하고요.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요청 들어온 순서대로 처리하다 애를 먹기도 했죠. 지금은 요령이 생겨 운행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잘 해나가고 있어요.”
국가부도의 날에 나온 은행맨
김 씨는 외환위기 전까지는 꽤 잘나가던 은행맨 출신. 당시 5대 은행으로 불리던 곳에서 지점장까지 했다. 그러다 문제의 ‘국가부도의 날’이 도래하면서 실적에 시달리게 됐고 결국 은행을 나와야만 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본점에서 독려가 심했죠. 예금을 가져오라 하는데, 당시에 저축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어요. 결국 25년 만에 은행을 나와야 했어요. 다행히 안전용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아 10년 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그는 젊은 직원들과 즐겁게 소통하고, 스마트폰도 자유롭게 다룬다. 컴퓨터에 해박하고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선택한 직업도 컴퓨터 수리. PC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에 워낙 관심이 많아 몇 년 전까지도 관련 일을 해왔다. ‘K삿갓’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의 블로그에는 그가 만든 영상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들이 올라와 있는데, 800여 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는데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곧잘 불렀어요. 명국환 씨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애창곡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부르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레 김삿갓에 대한 동경도 생겼고요. 닉네임을 만들 때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게 실례 같아 K삿갓으로 지었어요.(웃음)”
그는 강동성심병원에서 나누미동행팀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최근 흥미가 생겨 드나들던 기원에서 지인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막걸릿값 벌어볼 생각 없냐는 제안에 솔깃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반가웠죠. 병원이 마침 집 근처라서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야겠다 했는데, 환자를 자주 대하다 보니 이제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제가 옮기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생명이니까요.”
근무시간은 일주일에 30시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근무하는데 금요일은 격주로 일한다. 급여는 월 27만 원 정도. 근무시간 내내 앉아 있을 틈 없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체력적으로 문제없냐고 물었더니 끄떡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직은 문제없어요.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요. 첫 월급을 탄 뒤 친구들에게 기분 좋게 막걸리 한턱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일을 통해 얻은 행복이에요.”
최근 김 씨는 또 다른 공부에 한창이다. 바로 마술. 인터넷에 게재된 영상과 게시물을 통해 여러 가지 마술 기법을 익히는 중이다. 여생에 꿈 하나 더 갖기 위해서다.
“마술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주변 노인복지관이나 노인생활시설을 돌며 공연을 하고 싶어요. 계속 같은 공간에 계시면 적적하잖아요. 유명 마술사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병원 일과 마술 공연 모두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국내 중장년 취업에 대한 지침의 상당수는 가짜 뉴스 수준입니다.” 2005년부터 한국과 미국계 전직지원(轉職支援) 회사를 통해 중장년 재취업과 인생 2막 설계 컨설팅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온 돈·일·꿈 연구소 간호재(簡鎬宰·49) 소장의 일갈이다. 현재 인력수급기업 ㈜에이치알맨파워그룹에서 4050 재취업컨설팅 사업부에 소속돼 활동 중인 그는 40~50대의 재취업을 위한 제도가 빈약하고,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장년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서 ‘4050 재취업 성공의 비밀’을 통해 중장년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 그를 만나 40~50대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5가지 원칙에 대해 들어봤다.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라
간 소장은 우선 퇴직 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랜 직장생활로 굳어진 몸과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조직생활은 사람을 경직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특히 공기업, 대기업 출신이 더 심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직장을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또 원하는 직장과 새로 진출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스스로 알아보고 기본 조사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수동적인 태도가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듭니다. 퇴직자들이 일자리 관련 기관에서 무턱대고 좋은 직장을 소개해 달라고 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에 현혹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구직자들을 만나보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다수가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간 소장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거나 관심 분야에 대한 시장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게 돼요. 그동안 쌓아온 인맥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방 안에서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정보는 한계가 있다
간 소장은 “갈 곳이 없다며 푸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구직자들을 만나 구직활동에 하루 몇 시간 투자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2시간도 채 안 돼요. 중장년 구직자, 특히 공기업·대기업 출신자들은 그렇게 해선 원하는 직장을 찾기 어려워요. 그 나이의 재취업은 부장급 이상을 바랄 텐데, 중견기업도 그 정도 직급은 채용공고를 통해 선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가 권하는 방식은 “나를 마케팅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일을 잘할 수 있을 만한 기업을 골라 해당 기업의 임원이나 대표에게 직접 접근해보라는 얘기다.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해왔으니, 자신이 조직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 점을 기업이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부장급 이상 직원 채용에 관여할 만한 임원이나 회사 대표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회사에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제안서’를 보내보라는 겁니다. 물론 정성을 들여 작성해야겠지요. 특히 우편을 통해 전달된 서류는 의사결정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결원이 생겼을 때 자연스레 후보 대상이 될 수 있지요.”
임원 채용 시에도 자소서를 본다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 전 입사해 지금까지 일만 해온 분들이라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 성장 과정 등을 작성할 때 빈칸 채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임원 채용을 할 때 자소서를 봅니다.”
간 소장은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할 때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했다. 바로 회사 입장을 생각하면서 쓰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작성하고 마는 것이죠. 하지만 서류에 들어갈 내용은 회사가 듣기 원하는 것들이어야 해요. 자신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태도와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줘야 해요. 그러려면 성장 과정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기업에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눈높이 낮출 필요 없다
중장년 취업과 관련된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부족한 일자리에 경쟁도 심하니 설령 낙오되더라도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 확보부터 하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간 소장은 반기를 든다. “그동안 전문성을 갖고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왔던 40~50대라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춘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최저임금 정도로 급여 수준이 낮다면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까요? 또 연봉을 낮춘다고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봉을 얼마나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재취업할 기업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할까를 고민하는 게 훨씬 합리적입니다.”
그는 만약 연봉을 낮춰야 한다면 그 마지노선을 전 직장의 70%로 잡으라고 조언하면서 100일 안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잡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발적인 준비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할 경우 취업 요령이 생겨 원하는 시점에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기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간 소장은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때 “돈부터 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돈부터 쓸 생각 버려라
“창업 업계에서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의 퇴직자는 주요 고객입니다. 금전적 여유도 있고 돈으로 투자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지요. 퇴직 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6개월 정도는 무작정 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다가 어느 날부터 주변 눈치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무턱대고 자격증부터 따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겪게 되는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체면을 세우기 위해, 창업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돈부터 쓸 생각을 해선 안 됩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으면 남은 삶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창업을 하고 싶다면 자산 규모에 맞춰 실패를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려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가 기술·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소자본 창업을 추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40~50대가 여생을 설계할 때는 일보다 삶을 우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요. 조직에서 오래 생활했던 사람은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고 온전한 독립을 이뤄내야 하고,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책임이 끝날 때는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이 시점에 이루고 싶었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도 고려 사항이 되는 것이죠. 일이 인생을 결정했던 평생직장 시대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서 그에 맞춰 직업을 고민해야 합니다. 충분한 사유를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평생 현역시대다. 이런 경향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0월 고용동향 발표를 살펴보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17년 같은 달에 비해 24만3000명이 늘었다. 중장년의 ‘일자리 찾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베이비붐 세대’의 진입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장년은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노사발전재단 경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임선화 소장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봤다.
1 진짜 원하는 것이 뭘까? ‘나를 알아야’
일자리 지원 기관의 실무자들은 “상당수 구직자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의 분야를 명확히 말하는 구직자를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심지어는 “그냥 좋은 곳으로 하나 소개해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일자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임선화 소장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아무데나 괜찮은 자리로 취업시켜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직무 경력을 상세히 설명하고 지원 가능한 일자리를 소개받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물론 원하는 일자리의 이상향을 구체화하는 것도 좋다. 업무 분야나 지역, 근무시간 등도 미리 생각해야 구직에 유리하고, 원하는 급여 수준도 어느 정도 정해놓아야 한다. 생계유지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된다면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 형태의 일자리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2 취업시장에 경로우대는 없다 ‘나를 가꿔라’
“면접 보는 날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시는 분도 적지 않아요.” 일자리 지원 기관 실무자들이 꼽는 가장 난감한 경우 중 대표적 사례다. 애써 면접까지 성사시켜놨더니 최소한의 예의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구직 행위는 기업에 나를 선보이는 일이다. 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다. 중장년 구직자 중 상당수가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기업의 구직자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이 종이 몇 장에 의해 판가름난다.
내가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자신 없다면 관련 기관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전직지원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재취업 상담을 통해 작성을 도와주기도 하고, 구직서류클리닉에선 작성된 서류를 점검한 후 모의면접을 통해 면접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3 나를 위한 ‘꿀’직장은 없다 ‘눈높이를 낮춰라’
중장년 구직자 선호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재취업 시장에서는 잘나가는 대기업 출신 퇴직자가 ‘기피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의외로 크다는 것이다. 의외다. 가장 체계적이고 선진화한 시스템의 첨병에 있던 인재라면 사람을 취업시켜야 하는 입장에선 가장 좋은 상품 아닐까? 하지만 전 직장보다 주먹구구식인 시스템에 불만만 쌓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출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중장년을 받아주는 일자리는 대부분 척박하다. ‘왕년에’ 근무했던 일자리와도 대부분 거리가 멀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취업한 50세 이상 취업자 고용 분야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은 농축산 숙련직이 차지했다.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이 뒤를 이었다. 이와 비슷한 통계가 있다. 바로 교육 정도별 취업자 통계다. 중졸 이하 취업자의 분야별 규모 역시 1, 2위가 농축산, 청소 및 경비 관련 순이다. 50세 이상 취업자 통계와 같다. 이는 결국 50세 이상이 얻은 일자리가 흔히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고 눈높이를 낮춰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유리하다.
4 퇴직 후는 늦다 ‘경력 관리는 미리 준비하라’
정년퇴직 후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 중 상당수는 자격증을 돌파구로 삼는다. 퇴직 후 자격증 획득, 그리고 취업의 순서를 꿈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퇴직 후 준비는 늦다”고 입을 모은다.
퇴직 후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구직 준비기간이 길어지면 이력서를 받아보는 기업 입장에선 경력 공백이 길어진 이유를 의심하기 쉽다는 것. 또 자격증 취득 후 해당 분야로 취직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준비기간은 말 그대로 허송세월이 될 뿐이다. 자격증이 들이대면 구직 문제가 술술 풀리는 ‘마패’ 같은 존재는 아니기 때문. 현장 전문가들이 “자격증 장사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 소장은 “퇴직 전 본인의 평판이나 경력, 인맥 등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생애경력설계서비스 등을 통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취득하고자 하는 자격증의 전망 등 정보가 궁금하다면 중장년 취업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같은 기관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5 선입견은 금물 ‘공공기관의 구직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라’
정부부처 산하의 기관이나 지차체 등에서 다양한 구직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구직 경험자들이 꼽는 공공기관 구직지원 서비스의 장점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대부분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사설기관에선 교재나 경력설계, 자격증 취득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별된 구직정보도 장점이다. 물론 공공기관이라고 모든 일자리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진 않지만, 문제가 될 만한 다단계 등 불량 기업은 어느 정도 선별된다.
마지막으로는 기관의 네트워킹에 있다. 중장년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관기관과 연계하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형식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용해보기를 권한다.
은퇴 뒤 길어진 후반생을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자 시니어 인턴에 도전하며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이 시대 시니어들. 시니어 인턴으로 시작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삶의 가치를 나누고 있는 ‘상상우리’ 수석 컨설턴트 박생규(66) 씨를 만났다. 그가 말해준 시니어 인턴 성공 노하우? 일단 꼰대만 아니라면 반은 성공이다.
서울시 중구 일대의 작고 큰 건물 사이.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의 아지트인 상상캔버스에서 박생규 씨를 만났다. 그가 하는 일은 ‘취업을 하고 싶은 시니어에게는 일자리를,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 업체에는 일손을 주선해주는 것’이라고 하면 쉬운 설명일 게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일궈낸 젊은이들의 회사에, 경력으로 다져진 시니어가 사업에 필요한 보편적 구조를 담당한다는 취지다. 사업체를 꾸리는 데 있어 신·구 세대의 소통이 원활하면 사회공헌활동에도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 일자리뿐만 아니라 봉사를 바탕으로 한 기업의 재능기부 현장에서도 박생규 씨는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났던 날도 악수를 나누기가 무섭게 업무와 관련한 전화를 받느라 바빠 보였다. 쉬는 날은 외부 강의를 하고 시니어 인턴도 찾아가 상담해야 하니 개인 시간 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하기 위해 급여를 낮추고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게 업무시간을 조율해서 쓰고 있다.
“제가 취업시켜드린 분과 전화하는 거예요. 올해 벌써 시니어 5명이 취업했네요. 취업 초기에는 자주 전화합니다.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서서히 연락을 줄이면서 관리합니다.”
2015년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에서 인턴기간 3개월을 마치고 정직원이 된 박생규 씨. 4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능력을 발판 삼아 일터를 취사선택하며 거듭 성장하고 있다.
“2016년까지 상상우리에서 일했고, 이후 2년 여 정도는 시니어 세대와 이들의 전문성·역량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연결해주는 ‘사단법인 신나는조합’에 다녔습니다. 업무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두 곳 모두 개인 커리어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이었죠. 최근에 상상우리에서 다시 할 일이 생겨 돌아왔습니다. 2월부터 정식 출근입니다. 대표님과 제 업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적당한 선에서 방향을 잡게 될 것입니다.”
상상우리의 신철호 대표는 박생규 씨가 컨설팅 팀에서 수석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면 한다. 현재 박생규 씨는 2017년 성동구 성수동에 생긴 서울시 성장지원센터 ‘소셜 캠퍼스 온’에 관심이 많다. 그곳에 입주한 스타트업 회사에 적합한 시니어 인재를 찾아줄 계획이다. 이곳의 운영과 관리를 상상우리가 맡고 있기에 박생규 씨가 귀환을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시니어 개인에 맞춰 취업을 소개해왔는데, 이제부터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찾아 적합한 자리에 배치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그림을 그리는 곳이 ‘소셜 캠퍼스 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상상우리’에서 시니어 인턴 첫발
지난 2년 동안 박생규 씨가 일했다는 ‘신나는조합’은 상상우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다. 2015년 ‘신나는조합’에서 진행한 ‘시니어 혁신 사회적 기업가 발굴 육성 사업’에 참여한 박생규 씨는 7주간의 교육 과정을 마친 뒤 시니어 인턴 자격으로 상상우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턴생활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할 일이 없는 거였어요. 누구도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할 일을 찾는 것이 제일 급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심한 관찰도 이어갔다.
“가만히 보니까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더군요. 어느 날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마침 잘됐다’ 하면서 엑셀 작업 일을 넘겨주더라고요. 숫자만 기입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숫자를 집어넣다가 수식 몇 개 바꿔서 프로그램을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게 훨씬 간편하고 편했나봅니다. 그다음부터 엑셀 작업은 제가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인턴 기간은 다 끝나가는데 제가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더라고요. 가령 대표가 3개월 인턴 기간 끝났으니 나가라고 할 작정인데, 직원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을 수도 있죠. 나 대표님한테 물어봐야 되겠네요. 진짜!(웃음)”
그래서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 신철호 대표에게 직접 물어봤다! 박생규 씨가 상상우리를 떠나 있다 다시 들어오면서도 늘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를 멘토와 멘티로 생각할 만큼 돈독하다지만 인턴 기간이 끝났을 때 정말 고민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Q. 인턴기간이 끝난 후 정직원으로 뽑을 때 망설임은 없었습니까?
“박생규 님 같은 경우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저희한테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저와 직원 입장에서도 ‘시니어이기 때문에’라는 생각 별로 안 했고요.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채용한다’였습니다. 인품도 뛰어나신 분이시고요.
Q. 지나친 방송 멘트 아니신가요?
아뇨. 진심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계속 관계를 유지해왔고 또 제 롤 모델이십니다. 교육생들도, 저랑은 상담을 안 해도 박생규 님과는 해요.
Q. ‘상상우리’에 시니어 인턴십이 존재하나요?
저희 회사의 미션이 ‘경험과 지혜가 계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하자’이기 때문에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 다른 부서에서도 일곱 분 정도를 중장년층에서 채용했습니다. 저희는 인턴 채용 방식으로 시니어를 만나지 않습니다. 상상우리의 교육과정에 참여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충분히 모니터링한 뒤 채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니어를 채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어떤 분인지 충분히 봐야 돼서 적게는 3개월, 더 길게도 만납니다.
지난 세월 잊고 미래를 설계하라
박생규 씨의 얘기를 듣고 보니 한층 파격적이고 수준이 다른 시니어 일꾼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해야만 하는 ‘가장의 무게’ 말고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공군 중령으로 예편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생규 씨. 30년 군생활을 마치고 나니 그의 나이 49세였다. 평균 수명 백세 시대에 아직 창창한 나이였지만 재취업하기에는 쉽지 않은 나이였다.
“저는 그때 생각을 좀 달리했습니다. 이력서를 쓰되 제안서에 가깝게 썼습니다. 이력은 간단하게 쓰고 내가 당신 회사에 가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썼습니다. 퇴직할 때 대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 대기업 하면 생각나는 회사에 이력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내용증명으로요. 이게 채용 담당자에게로 다 전달됐습니다.”
공군에서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던 이력을 활용해 현대정보기술을 거쳐 SK 등에서 활약했다. 박생규 씨를 만나기 전 타 매체에 소개된, ‘공군 예편하고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했다’는 이력을 큰 의미 없이 읽었는데 모두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발굴해낸 자리였음에 새삼 놀랐다. 게다가 한창 일하던 시기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생각했던 것이 봉사였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새 삶을 주신다면 남을 위해서 한 손을 쓰겠다고요. 기도를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어떻게 남을 도와줄 것인가 고민했죠. 2012년도부터 항암치료를 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소속으로 NPO 단체 혹은 일반 기업에서 인사와 노무 관련 문제를 해결해드렸습니다. 시니어 인턴도 하게 되고 제에게 딱 맞는 기업을 만나 일하고, 연계하고요. 무엇보다 시니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잖아요. 저는 제 평생 직업을 봉사에서 찾았다고 말합니다.”
시니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오랜 시간에서 나오는 노련함이다. 한계를 모르고 도전하는 자세로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해온 것이 지금의 박생규 씨를 만든 게 아닐까.
“내가 나의 경쟁력을 만들지 않으면 힘들어요. 제가 일자리를 찾아드리는 분이 별 고생 안 하고도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01 꼰대는 안 된다(꼰대 체크리스트 참조).
02 취업이 아니고 봉사라고 생각하라.
03 업무시간은 때우는 시간이 아니다. 채우는 시간이다.
04 사회 초년생, 신입의 자세로 임하라.
05 나는 회사의 주인이 될 거다’라고 생각하라.
-돈 버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일 욕심도 내지 마라.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라.
-50대 이후 제2직업으로 사는 사람은 ‘회사’가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0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02 대체로 명령조로 말하는 습관이 있다.
03 후배의 업적에 대해 칭찬보다 약점을 언급한다.
04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05 유명인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과의 인연을 자주 자랑한다.
06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유난히 민감해한다.
07 칭찬을 들어도 그 칭찬의 양과 질에 불만이 많다.
08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해놓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주로 말한다.
09 연애사나 자녀 계획 같은 사적인 고민에 조언해주려고 자주 안달한다.
10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토라진다.
최근 일어난 KT 아현지사 화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기간 통신망과 같은 주요 시설에 대한 사고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은 물론, 마치 물과 공기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각종 인프라의 소중함도 일깨워줬다. 도시철도(지하철)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엄청난 인파의 발이 되어주는 도시철도는 우리 삶의 핏줄이자 생명선이다. 그 이면에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다. 부산에서 만난 이태현(李太鉉·62) 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다른 구성원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년퇴직 후에도 변함없이 부산의 도시철도를 지키고 있다는 것. 하지만 애정의 크기는 그대로다.
“1984년에 입사해 평생을 일했습니다. 부산직할시 지하철건설본부로 입사해 부산교통공단으로, 다시 부산교통공사로 바뀐 현재까지 함께했으니까요. 부산지하철 건설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참여했습니다. 건설에 필요한 토목, 건축, 설비 등 모든 과정을 꿰뚫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죠.”
당시의 명칭은 지하철이었다. 부산교통공사가 도시철도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 그가 34년 일하는 동안 차량을 지칭하는 이름과 사명 모두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도시철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다.
부산 도시철도 혁신성 ‘자부’
“흔히 서울지하철을 따라 한 모조품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다를 메워 철로를 만들고 지형에 맞게 중형 전동차가 처음 도입된 곳이 부산입니다. 또 최초로 마그네틱 승차권을 사용한 곳도 부산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부산 도시철도는 부산 시민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고저의 차가 크고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도시철도 의존도는 상당하다. 매일 100만여 명이 이용한다. 이제 도시철도가 멈추면 부산의 교통도 함께 멈춘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정도가 됐다.
퇴직 후 계획 틀어지며 방황
2016년 6월,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정년퇴직을 맞이했다.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정년퇴직을 앞둔 그의 계획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가게를 차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해보겠다는 평범한 꿈이었다.
“한식,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작은 가게를 운영해볼까 하고요. 그러나 곧 회사만 다니던 내가 바깥의 삶을 잘 몰랐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제 전문성을 살려볼까 했지만 워낙 수요가 한정된 분야이다 보니 마땅치 않더라고요. 수십 장의 이력서를 냈는데 연락을 준 곳은 건축 현장밖에 없었어요. 다니다가 오히려 건강만 해칠 것 같은 곳이었어요. 차라리 음식점이나 차려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죠.”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도시철도 보안관. 지난해 3월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도시철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집보다 훤히 꿰고 있었던 그였다.
물론 도시철도 보안관이라는 업무가 험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젊었을 때 태권도 3단 자격증을 딴 유단자 출신이라 사소한 물리적 접촉쯤은 겁나지 않았다.
자식 같은 삶의 터전 지키는 일 ‘행복’
도시철도 보안관은 열차와 역사 내 질서 유지를 담당하고, 안전저해 요소가 발생하면 초동조치와 함께 경찰 등 관계기관에 알리는 일을 한다. 업무의 특성상 경찰이나 공무원, 군인 출신의 지원자가 많다.
“도시철도 이용객들을 위한 모든 것들을 하죠. 잡상인이나 걸인 등의 활동을 제지하기도 하고, 최근 기승을 부리는 성추행, 몰카 범죄도 예방합니다. 또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문의에 응대도 해야 합니다.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민원이 많아요. 도시철도 보안관은 만능인이어야 합니다.”
사법권도 없는 입장에서 범죄자들과 맞서야 하고, 하루 8시간씩 격일로 근무해야 해서 주말도 따로 없다. 시급으로 계산되는 급여는 매월 100만 원 남짓. 그런데도 그가 도시철도 보안관 일을 하는 이유는 뭘까?
“위험한 상황이 많습니다. 취객이나 범죄자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부상을 입는 일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돕는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정년퇴직 후에도 도시철도를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중장년 구직자를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저도 정년퇴직 후 많이 막막했어요. 가야 할 곳 없어 이대로 삶이 마무리되나 싶기도 했고요. 중장년을 원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도 구직을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찾다 보면 반드시 새 인생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주제로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 또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퇴직 평균 나이는 49.1세라 한다. 이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나 곧 퇴직을 앞둔 퇴직 예정자들은 노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을 보면, 신중년 대상 장기근속을 위한 개선방안, 전직 지원 및 신규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고용창출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고용안정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등 장년층 이상의 고용 및 일자리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만 45~60세 이상의 연령을 대상으로 신규 고용과 정년 연장 또는 임금 보전 형태의 지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4세인 중장년층은 평균 49.1세에 실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중 64.1%가 생활비에 보탬(59.0%), 일하는 즐거움(33.3%) 등의 이유로 평균 72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 대상의 나이와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도 정책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이 60세인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59세 김OO 씨. 정부의 고용안정 관련 지원금을 받아 정년을 62세까지 보장을 받았다. 김OO 씨는 일하고 싶어도 62세에 퇴직을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 경우 김OO 씨는 62세 이후 정부지원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가 고용유지 기간이 짧거나, 계약직 등으로 불안하다면 김OO 씨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OO 씨의 사례처럼 중장년,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여기서는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칭하겠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시니어가 소득 단절과 노년기 여가 및 사회활동 부족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2016년부터 정년 연령을 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정년을 초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더 커질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5세 이상의 인구는 1389만 명, 2024년도에는 1843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인턴 제도, 희망인가?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만 45~60세 내외의 고용유지 중심 정책을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도입 당시 공익참여형과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과 시장참여형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활동 유형이 세분화되고 신규 사업 유형이 개발되어 2011년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 기업 등과 같은 시장자립형 노인일자리사업, 2014년 재능나눔활동, 2017년 기업연계형 사업 등으로 나눠진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작동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직업 능력 강화 및 재취업 기회를 촉진함과 동시에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에게 인턴기간(3개월) 중 월 급여의 50%의 급여를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인턴기간 종료 후 계속근로계약(6개월 이상) 체결 시 최대 3개월간 급여의 50%를 추가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인턴형과 연수형으로 나뉜다. 인턴형은 단기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3개월간의 정부 지원 종료 후 기업이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연수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직무 연수생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인턴 채용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시니어 인턴십 운영기관에서 신청한 뒤 해당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 상담을 거쳐 결정된다. 현재 전국 100곳의 사업장에서 운영 중이다.
[표1]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니어 계층이 ‘일하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표2]와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강화된 지원 사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증가(단, 2017년은 기업연계형이 새롭게 진입해 실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취업유지율과 계속고용율, 1인당 월평균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시니어 계층에게 긍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 통계에 따르면, 시니어 인턴십의 경우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도매 및 소매업 등 단순 기능직 중심의 일자리 연계가 55.1%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니어 인턴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지원 사업이 기존 일자리를 기반으로 저숙련, 진입장벽이 낮은 직무로 연계되는 현실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시니어에게 여전히 고용불안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 창출
그렇다면 시니어 인턴 제도를 디딤돌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력과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해왔던 중장년 인턴제는 근로조건, 직무불일치(43.7%), 고령자 고용을 꺼리는 편견(34.8%), 건강상태(20.8%) 등의 문제가 지속되어 ‘신중년 적합 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으로 대체했다. 이는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신중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선발해 우선지원대상기업 월 80만 원, 중견기업 월 40만 원 등의 수준으로 고용지원을 하는 제도다. 이 사업은 신중년의 적합직무 유형을 경력활용, 역량강화, 신직업 도전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된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50플러스 보람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 50~67세까지 월 57시간 이내(월 52만5020원) 근무하는 인턴을 위한 공헌형·혼합형 중심의 일자리 지원 체제다.
[표4]에서 보듯이 시니어 계층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선택을 통해 직무와 직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 분야를 보다 전문화, 세분화해 취업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가 바라는 취업처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다른 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근력 등의 저하가 발생해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직 분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경험하지 못한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리고 퇴직 후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유지한 채 타 직무로의 전직을 해야 하는 노동생산성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일자리 지원 정책이 직업 또는 고용유지 정책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일자리 관련 정책과 연계해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각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부족한 인력이 각 분야에서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출중한 산업 현장 전문가들일 것이다. 시니어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 중심의 일자리 지원보다 시니어가 보유한 직무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이 직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 발굴과 지원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품질, 마케팅, 경영, 인재선발, 해외진출, 생산관리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예비 창업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장년 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은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시니어 계층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청년창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해결을 위한 문제해결 및 대안제공 전문가, 자문 및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산업별, 직무별 전문가 직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 인턴십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장년 인턴제 등을 포함한 시니어 인턴 제도가 복지수혜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정착되어야 한다. 시니어 일자리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부처를 통합한 컨트롤타워를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고령화 미래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가 창의융합형 인재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니어 대상 일자리 지원 방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앞으로 사라질 직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실무현장에서 은빛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니어 인턴들에게 재취업 혹은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시니어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직업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니어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업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의 일자리 정책은 시니어가 보유한 노하우나 자원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 기반 직업 마련을 위해 펼쳐나가야 한다.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하고 후배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퇴직을 해도 쉬지 못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제 그만 일하고 쉬지 왜 자기네들 일자리까지 위협하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퇴직자들은 왜 계속 일하려고 하는가? 당장은 먹고살기 위해서다. 퇴직해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소비지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입 없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퇴직자라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노후를 불안해한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월 20만 원을 손에 쥐기가 힘들다. 여기에 세금 15.4%도 떼어야 한다. 은행 이자로 살아가기에는 이자가 너무 적다. 허드렛일로 월 100만 원을 번다 해도 은행에 6~7억을 예금한 것과 맞먹으니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목돈이 있다 해도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데 곶감 빼먹듯 하기가 불안하다. 수입이 없으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힘들다. 시골로 내려가거나 집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자녀들이 결혼도 안 하고 함께 살고 있다면 시골로 내려가기도 어렵다. 집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수입에 맞춰 생활비를 줄일 뾰족한 묘안을 궁리해보지만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다.
일을 계속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집에서 노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가장이 놀고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저기압으로 변한다. 공원 벤치나 산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면, 딱히 갈 곳이 없어도 이렇게라도 집을 나와야 아내도 숨을 쉰다고 말한다. 매일 출근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거실 소파에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으면 아내가 답답해한다는 소리다. “아빠 낼부터 출근한다”라고 가족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자들은 반 토막짜리 급여를 주는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다.
세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가 급속도로 단절되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대로 방구석에서 시체놀이하다가 어느 날 세상과 단절된 채 저세상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난다. 내가 활동하는 한국 블로거협회(회장, 김봉중)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지역별로 ‘배우자, 잘 놀자, 나누자’라는 3가지 슬로건으로 시니어가 모인다.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월요브런치클럽’인데 호응도가 높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동네 친구로 묶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소속하고 싶어 한다.
네 번째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실현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아실현’이다. 봉사활동을 하든 돈을 받고 일하든 퇴직 후의 인간관계가 여전히 풍성하기를 누구나 바라기 때문에 일할 곳을 찾는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시니어가 적절히 일하며 지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가적으로도 유휴 노동력 활용은 물론 일을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으므로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니어 일자리는 극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젊은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 또는 각종 사설 단체에서 시니어를 위한 직종을 개발하면 좋겠다. 일종의 ‘노소동반성장’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때 파트타임이나 요일별 근무 등 가변성 있는 일자리를 시니어에게 제공하면 좋겠다. 시니어는 큰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강도 높게 오랜 시간 일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시니어에게 알맞은 일자리 마련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글 김대중 본부장(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듯 연초가 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 기관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말에 퇴직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거나 취업을 위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근로가 끝났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취업을 해야 할지, 창업 또는 귀농·귀촌·귀어를 해야 할지, 봉사활동을 하며 살 것인지, 취미생활이나 하며 쉴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9년은 창업보다는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있다. 창업은 ‘운7 기3’이라고 말하곤 한다. 즉 창업의 성공은 기술이나 능력, 아이템보다 운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창업을 시작하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대박의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1년도 채 안 되어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준비도 오래했고 도와주겠다는 지인도 많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외의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출을 줄인다. 소비나 구매에 대한 사고도 ‘있으면 좋겠네, 하면 좋겠네’에서 ‘없어도 되겠네, 안 해도 되겠네’로 180도 바뀐다. 개인들이 하는 사업 중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가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육체적 문제나 고령자 일자리 한계 등의 이유로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필요하다면 창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면서 무모한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대의 재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준비하고 도전해야 성공한다.
최근 통계상으로 봐도 구직단념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개인 상황이 안 좋다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 시니어 계층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경제적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이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IMF 외환위기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세대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재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유도한다고 해서 욜로(YOLO)족을 꿈꾸는 세대에게 통할 리 없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는 부모 세대인 중장년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재취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퇴직자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적 기업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민간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도 있다. 이외 민간 지원 내실화를 통한 시니어 인턴십 사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 신설되는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참여 방법이 궁금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중장년 일자리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세까지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년퇴직 후 무려 20여 년을 더 노동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인식 틀을 깨야 한다. 정년퇴직 연령과 기대수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50대는 30대, 60대는 40대, 70대는 50대로 봐야 한다. 신체나이와 사회적 나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년퇴직이나 일반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졸업과 함께 첫 번째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했듯이, 이제는 퇴직 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재취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 시장형 일자리, 시간제, 인턴제 가릴 것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시니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대중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
고려대 및 동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중앙대 HRD정책학 박사(수료). 노사공동 전직지원센터 본부장,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본부장,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센터장, NCS 및 일자리위원회 전문가 활동 중. 저서로는 춘추전직시대(春秋轉職時代), 전직으로 당신의 인생을 환승하라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엔슬의 활동은 인생을 향유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엔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배영효 이사장은 엔슬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임이 분명하다. 엔슬은 엔슬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슬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와 경험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지식 나눔, 재취업, 스타트업 투자까지 경험
인생을 즐기고, 봉사하고, 배운다는 차원에서 지난 4년 동안 엔슬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했다. 여행과 답사, 지식 나눔, 재취업, 창업 멘토링과 스타트업 투자까지, 엔슬협동조합 회원들은 퇴직자들의 도전과 실수와 보람 등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엔슬협동조합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serving, 즉 봉사활동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같은 차원의 활동이 아니다.
“기업 경력이 30년 넘는 임원이 많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요. 최근 창업이 붐이잖아요. 대부분의 창업자가 젊은 친구들이고요.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창업자라 해도 네트워크나 사업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우리 멤버들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엔슬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멘토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아 실험적 단계입니다만,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고요. 창업 멤버들 중 일부는 투자 전문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루라고 해도 끝까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내부적으로는 투자 기업 형태의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슬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엔슬 조직은 위계도 없고, 멤버들이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유지되느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업이라면 계층 구조 아래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지만, 엔슬은 그런 조직하고는 다릅니다. 멤버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기대도 다르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40명의 멤버가 4년간 활동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엔슬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자’이다. 송덕호 이사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엔슬이라고 했다.
“퇴임 후 시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죠. 집에서 쉬고 싶고, 돈이 많으니 골프나 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엔슬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라든지,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 오면 됩니다. 공부와 성장은 혼자만으론 힘듭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 니즈를 아는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다.”
엔슬은 녹슬지 않는다
2019년의 엔슬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끼리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입회원 모집입니다. 지난 4년간은 초창기 멤버들만 활동을 해왔는데 엔슬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신진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 작용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품앗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새해부터는 모든 회원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줄이는 것이 이런 성격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엔슬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엔슬의 가치가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장과 배움을 이루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든지 해야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느냐, 학교가 어디냐, 어떤 직장을 다녔냐 등등. 특히 시니어 세대를 이루는 50~60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 직장 선후배 모임, 종교 모임, 기타 취미활동 동호회 등이 인간관계의 주된 축이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 관계들인 것이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발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문학, 물리학, 블록체인 등의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사유를 넓혀가듯 말이죠.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계급장을 떼고 진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해보자.’ 엔슬은 그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났던 베테랑 엔슬 멤버들이 그런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얻는 게 더 많으리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당장의 욕구는 인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배영효 이사장에게 엔슬의 회원이 될 수도 있는 이들, 바로 곧 퇴임할 베테랑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무얼 어찌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시간을 잘 쓰자’ 정도의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시간을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way of life(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삶의 한 방법이다)’ 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문제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향점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가 되면 온갖 욕망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배 이사장은 그런 욕망이 지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보통은 옷을 벗고 나올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욕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욕구이지요. 억압이 풀리면 그 욕구 역시 의미가 사라져요.”
구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
엔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루(guru)다. 자신들을 구루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구루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엔슬은 구루 모임이 아니라 구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엔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루로서의 첫걸음을 지향한다.
“구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혜가 중요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향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그걸 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변화를 마음에 품고 사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 이사장이 인생의 고수야말로 진정한 구루라고 말하자, 송 이사가 받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설명했다.
“구루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살면서 성장하겠다는 욕구죠. 모든 사람이 성장하려 하지는 않거든요. 둘째는 분야를 정해야 합니다.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셋째는 과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 과거를 무시하고 구루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겠다면 즐길 수는 있지만 구루가 되기란 어렵죠. 넷째는 십 년은 더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4년을 걸어온 엔슬의 새로운 도전은 2019년부터 전개된다. 신입회원은 최근 1~2년 내에 퇴임한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2019년 1~2월에 걸쳐 모집 선발하고, 3월에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들이 바라는 구루의 길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는 고수들에게 어떤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일 일자리 정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700만 베이비붐 세대’까지 은퇴 후 유입되면서 취업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경쟁이 심해졌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더욱 일자리가 필요해졌다는 뜻.
정년 후 20~30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니어 입장에선 단 한 번의 실패도 극복하기 어렵기에, 제2직업에 대한 선택과 도전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선택하는 게 좋을까?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대표적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대중(金大重·51)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을 만나 물었다.
김대중 본부장은 퇴직자나 재직자의 전직(轉職)지원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많은 정부부처에서 운영 중인 공공부문 전직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가 개발한 모델을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그가 중장년일자리사업 총괄 본부장으로 돌아왔다. 순환보직으로 4년 만의 귀환이다.
수요 늘었지만 기관 규모는 제자리
과거와 변화가 느껴지느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시장이 확대된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중장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나선 기관이나 지자체도 많이 늘었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장년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의 성격이 개인별 맞춤 서비스보다는 단체를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교육이나 취업 알선에 국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일자리 정책 하면 우리는 흔히 두 가지를 떠올린다. 바로 교육훈련과 취업 정보다. 구직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술을 알려주고, 교육훈련을 마치면 갈 만한 일자리를 알려주는 방식. 하지만 김 본부장은 이런 단편적인 접근은 전직자들이 재취업 일자리에서 1년 버티기도 힘들게 한다고 단언한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은 적성과 무관하게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과 무관하게 직장을 고른 사람이 많아요. 다시 말하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젊을 땐 학습능력도 있고, 시행착오를 이겨낼 힘도 있으니까 버틸 수 있지만, 중장년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방황할 수 있는 1~2년의 여유도 없어요. 개개인에게 맞지도 않는 교육과 알선은 오히려 인생 후반부 역시 그분들을 그릇된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 뭔지 알아야
그래서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인 일이 9월 11일 진행된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다. 단순히 구직정보만 나열해 즉흥적인 취업을 유도하기보다는 중장년들이 재취업과 재취업 후의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장년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의 조건들이 정해져 있어요. 본인 진로에 대한 계획 없이 근무 지역이나 급여 등의 조건만 챙기면 전직에 실패하게 돼요. 또 엉뚱한 교육을 받느라 시간만 낭비하기도 하죠. 이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구인의 주체인 기업이다. 중장년 구직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고 싶다는 것.
“나이가 많으면 열정이 없다, 급여 수준이 높다, 고집이 세다는 선입견이 커요. 기업들이 중장년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이유죠.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이러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임원 대상 간담회나 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 등을 늘려나가고 싶습니다.”
중장년이 청년 일자리를 침범한다는 인식도 개선해야 할 부분. 그는 “중장년은 자식(청년) 보살피고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가정의 기둥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되레 전통적으로 중장년이 해왔던 일자리에 청년들이 진출하는 것이 가정까지도 해체시킬 수 있는 더 큰 문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인생의 2모작, 3모작을 원하는 중장년들은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열의가 생겨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계발에 나서기도 합니다. 또 조건보다는 일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면 구직자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구직자가 그러니까요. 전국에 있는 저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는 이런 분들을 위한 전문 컨설턴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제2직업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