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해도 쉬지 못하는 시니어

기사입력 2019-01-31 09:43 기사수정 2019-01-31 09:43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하고 후배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퇴직을 해도 쉬지 못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제 그만 일하고 쉬지 왜 자기네들 일자리까지 위협하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퇴직자들은 왜 계속 일하려고 하는가? 당장은 먹고살기 위해서다. 퇴직해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소비지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입 없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퇴직자라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노후를 불안해한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월 20만 원을 손에 쥐기가 힘들다. 여기에 세금 15.4%도 떼어야 한다. 은행 이자로 살아가기에는 이자가 너무 적다. 허드렛일로 월 100만 원을 번다 해도 은행에 6~7억을 예금한 것과 맞먹으니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목돈이 있다 해도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데 곶감 빼먹듯 하기가 불안하다. 수입이 없으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힘들다. 시골로 내려가거나 집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자녀들이 결혼도 안 하고 함께 살고 있다면 시골로 내려가기도 어렵다. 집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수입에 맞춰 생활비를 줄일 뾰족한 묘안을 궁리해보지만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다.

일을 계속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집에서 노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가장이 놀고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저기압으로 변한다. 공원 벤치나 산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면, 딱히 갈 곳이 없어도 이렇게라도 집을 나와야 아내도 숨을 쉰다고 말한다. 매일 출근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거실 소파에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으면 아내가 답답해한다는 소리다. “아빠 낼부터 출근한다”라고 가족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자들은 반 토막짜리 급여를 주는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다.

세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가 급속도로 단절되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대로 방구석에서 시체놀이하다가 어느 날 세상과 단절된 채 저세상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난다. 내가 활동하는 한국 블로거협회(회장, 김봉중)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지역별로 ‘배우자, 잘 놀자, 나누자’라는 3가지 슬로건으로 시니어가 모인다.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월요브런치클럽’인데 호응도가 높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동네 친구로 묶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소속하고 싶어 한다.

네 번째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실현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아실현’이다. 봉사활동을 하든 돈을 받고 일하든 퇴직 후의 인간관계가 여전히 풍성하기를 누구나 바라기 때문에 일할 곳을 찾는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시니어가 적절히 일하며 지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가적으로도 유휴 노동력 활용은 물론 일을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으므로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니어 일자리는 극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젊은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 또는 각종 사설 단체에서 시니어를 위한 직종을 개발하면 좋겠다. 일종의 ‘노소동반성장’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때 파트타임이나 요일별 근무 등 가변성 있는 일자리를 시니어에게 제공하면 좋겠다. 시니어는 큰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강도 높게 오랜 시간 일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시니어에게 알맞은 일자리 마련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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