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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안 가는 MZ세대가 명절을 소비하는 방법
- 돌아온 대면 명절에도 2030세대는 귀향을 거부하고 돈을 벌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뿔뿔이 흩어진다. 선물 들고 지인을 찾아가기보다 ‘집콕’하며 미리 찜해둔 물건을 ‘셀프 선물’한다. 회사에서 받은 선물을 ‘당근’하기도 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명절 문화의 새로운 인식을 들춰본다. 3년 만의 대면 설 연휴지만 젊은 세대는 각자의 이유를 대며 집을 찾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중 추석 연휴 동안 ‘집을 떠날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이가 60.0%에 달했다. 이제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대면은 하나의 트렌드로 남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것들’이 그리는 신(新)명절풍속도 네 가지를 준비했다. 시간 고향 방문보다 값진 ‘알바’ “굳이 고향을 가야 하나요? 그 시간에 알바를 하면 돈이 얼마인데!” 경기는 계속 악화되고, 물가는 끝을 모른 채 치솟는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젊은 세대는 연휴 기간 가족을 찾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교통비나 선물 비용 등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기준,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왕복하려면 20만 원은 족히 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한 KTX 기차표를 구하려면 연휴 한 달 전부터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을 뚫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는 귀향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A(27) 씨는 “집에 가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부담이라 이번에도 명절 연휴를 피해 집에 미리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성인 15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1.1%가 “추석 연휴에 알바 계획이 있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생활비(56.8%), 저축(42.2%)에 쓰겠다고 답했다. 명절 연휴 동안 반짝 모집하는 아르바이트는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데 영향을 주지 않고도 용돈을 벌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평소보다 시급을 높게 쳐주는 점도 선호도를 높인다.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설맞이 단기 알바 시급은 현재 최저시급인 9180원보다 7~30%가량 높게 형성돼 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움직임이 많은 것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당근알바’에서는 지난해 설 연휴 직전 2주 동안(2022년 1월 11~24일) 구인 게시글과 구직 지원자 수가 전달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3.9%, 19.9% 증가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알바몬’, ‘알바천국’ 등 대표적인 플랫폼은 명절마다 채용관을 따로 열고 연휴 시즌에 특화된 인기 업·직종 공고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명절 특수 아르바이트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꼽히는 명절 연휴 특화 업·직종은 백화점·마트, 도소매·전통시장, 매장 관리·판매, 포장·분류, 택배·배달 등이다. 최근에는 집을 비우는 동안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펫시터, 전 대신 부치기 등 동네 소일거리에 가까운 알바를 구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맛집 ‘웨이팅 알바’(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를 구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장소 다시 대면 명절, 고속도로만큼 붐비는 ‘명절 대피소’ “명절도 그저 연휴일 뿐, 쉬는 동안 토익 공부나 할래요”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에 등재된 명절 대피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명절에 모인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여 쉬거나 공부 따위를 할 만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스터디카페, 학원 등으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취업 준비생들이 대다수였으나 최근에는 미·비혼 직장인들도 합세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온라인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 153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고향 방문을 피하는 이유를 묻자 ‘취업 준비, 시험공부 등 자기계발에 집중’(24.1%, 복수 응답)하거나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22.6%) 등이 꼽혔다. 2019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온라인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성인 319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3.3%가 ‘결혼(자녀) 언제쯤?’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명절 대목’을 맞아 명절 대피소를 운영하는 교육 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2015년부터 명절마다 전국 캠퍼스에서 피난처를 운영해왔다. 학원 내 스터디룸을 개방하고, 간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대면 모임이 어려울 때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온라인 명절 대피소를 운영했다. 가볍게 어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퀴즈를 풀거나, ‘임인년맞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른 교육 업체들 역시 명절 연휴에만 제공하는 한정 ‘프리패스’(자유이용권)를 통해 기간 내 무제한으로 인터넷 강의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한 업체는 스터디카페의 명절 정체 예상도를 발표했다. 스터디카페의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전문 업체 ‘오래’가 지난 3년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연휴에 집계된 300만 건의 이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로 만들어낸 것. 나흘의 연휴 기간에 전국 스터디카페를 대략 250만 명이 찾을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놓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스터디카페 이용객의 연령대는 10대 30%, 20대 50%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그러나 분석에 따르면 명절 연휴에는 20대 이용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명절 연휴 마지막 날 10대와 20대 이용객 비율이 20%와 60%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는데, 오래 측은 도피를 위한 스터디카페행의 영향일 것으로 풀이했다. 재테크 자취촌에 꽃피는 명절 선물 재테크 “되팔고 교환하고, 나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필요하겠죠” 나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플렉스(FLEX)·욜로(YOLO)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다. 불필요한 지출 활동을 줄이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적립금을 모으거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짠테크’ 역시 2030세대의 소비 성향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일을 해서 얻는 수입만 가지고는 돈을 모으기 어려우니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는 것이다. 애당초 제품을 되파는 ‘리셀 문화’는 고가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틀어막힌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구매로 폭발한 것.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 중고 거래까지 불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 플랫폼이 함께 성장했지만, 리셀 문화는 이제 생필품 영역까지 확장됐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는 ‘리셀’이라는 개념을 명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싼값에 되팔고, 필요한 물건 역시 저렴하게 사고 싶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성향에 고물가에 대한 부담이 맞물리면서 ‘명절 선물 재테크’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이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설명한 ‘체리슈머’에 부합하는 면모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선물을 되파는 건 성의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며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은 경기가 좋지 않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 명절 전후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햄, 참치, 홍삼, 샴푸·린스 등 흔한 명절 선물세트를 자주 접하게 될 전망이다. 선물 명절 선물, 대상은 좁되 돈은 많이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데, 친한 사람만 챙길래요” 명절 선물 구매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2021년 이베이코리아가 오픈마켓 G마켓과 옥션의 설 선물 판매 데이터 2년치를 비교 분석한 결과, 2030세대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4050세대는 선물 구매량이 많았다. 김태수 이베이코리아 영업본부장은 분석 결과에 대해 “미혼이 많은 2030세대는 부모님과 직계 가족에 집중하고, 4050세대는 주변 친척까지 두루 챙기는 경향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는 젊은 세대의 ‘미코노미’(Meconomy) 성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코노미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소비 성향을 뜻한다. 그런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명절이 익숙해지면서, 돈이나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남에게 쓸 돈을 줄여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 행태는 데이터 분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 사람들은 지인에게 건강식품(18%)이나 커피·음료(15%), 생필품(14%)을 주로 선물했다. 반면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는 생활·미용가전(14%), 골프용품(12%), 노트북/PC(9%) 등을 구매했다. 지난해와 2021년 추석 선물의 판매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피부관리기(130%), 명품 잡화(85%), 노트북(29%) 등의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주로 남에게 선물하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구매하는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히 2030세대 구매가 가장 크게 증가한 상품군은 노트북과 컴퓨터였다. 반면 4050세대는 일반적으로 구매하던 명절 선물 제품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건강식품이 17% 증가해 구매신장률이 가장 높았고, 생필품 11%, 커피·음료 10% 순서로 이어졌다.
- 2023-0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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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20명이 진단한, 계묘년 중장년 취·창업 트렌드는?
-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풍요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20인의 중장년 취·창업 전문가에게 2023년 중장년이 주목할 만한 분야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잘 살펴 약간의 지혜를 더한다면 계묘(癸卯)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생 도전을 위한 2023 중장년 취·창업 트렌드를 소개한다. ▲ trend1 전체 시장 전망 창직과 N잡러의 해 2023년에는 경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중장년에게 적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에게 강도 높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직무는 한계가 있지만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직무 직종은 3D 업종을 기피하는 청년들로 인해 취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인·장애인 관련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대면 기술과 상담 능력 면에 강점이 있는 중장년이 유리할 수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은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돌봄, 디지털, 환경 분야를 중장년이 공략해볼 만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23년 중장년 취업‧재취업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경력, 취미, 특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은 “창직을 통해 긱이코노미(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고 구하는 경제 형태) 시장에서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될 중장년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창업, 무자본ㆍ무점포형 창업,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체크 포인트 전문가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인정하고, 업무 수행 성과 또한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내려놓고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더불어 건강관리는 필수다. ▲ trend2 취업 시장 전망 시간제 일자리가 대세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고, 자신의 적성과도 맞으면서, 업무 강도가 낮고, 수입은 적절하게 나오는 일이 중장년에게 가장 적합하다. 풀타임보다는 시간제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재취업 시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사발전재단 같은 기관을 통해 나에게 적합한 직무가 무엇인지 잘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자문 수준이 아니라 경험을 살려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중장년을 원한다”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기업에 적용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장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유망 직업 및 분야 장례·웰다잉 분야 기존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뿐 아니라 디지털 장례 수목장 등 새롭게 변하는 장례 문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돌봄 분야 인지건강지도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노인 돌봄 분야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안전관리 분야 기업재난안전관리사, 고령자 주택 개조사, 연구실 안전전문가 등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앞으로 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업·전직 상담 및 컨설팅 분야 전직지원 전문가, 직업상담사, 은퇴 코치 노년 플래너, 창직 컨설턴트, 스타트업 컨설팅, 귀농귀촌 컨설팅 등 코칭 분야가 유망하다. 이외에도 반려동물 간식 시장, 도시농업활동가, 건강식품 및 간편식, 도시농업관리사, 주택관리사, 조경기능사, 신용상담사, 손해평가사, ESG나 환경 관련 직업, 자연·문화해설사, 관광통역안내사 등이 꼽혔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신중년 적합 직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혹은 공공에서 지원하는 뉴딜 인턴십, 시니어 인턴십 등의 사업을 통해 훈련 후 일자리 연계를 노려볼 수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검색을 통한 취업 시도보다는, 일할 경험을 주는 공공 취업지원 플랫폼을 활용해보길 권유한다. ▲ trend3 창업 시장 전망 지식과 기술 창업 유망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창업이 대세일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적합한 분야는 ‘지식 창업’ 분야다. 사회에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다는 전망이다. 또한 시니어가 가진 사회 경험과 네트워크가 창업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은 “대기업이 접근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창업가에게는 적합한 규모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창업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중장년 창업은 소자본 창업, 직접 일하는 창업, 최소 인원으로 가능한 창업, 돈보다 일이 재미있는 창업, 오래 할 수 있는 창업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트렌드 프랜차이즈보다 무인 창업 최근 많은 중장년이 ‘오토 매장’(본인의 노동력 투입 없이 소수의 직원으로 자동 운영되는 매장)에 혹해 프랜차이즈를 고려하지만, 정말 수익성이 잘 나오는지 따져봐야 한다. 차라리 무인 매장이 나을 수 있다. 반찬, 고기, 문구, 옷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1인 지식 창업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인 1인 지식 창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한때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퍼스널 브랜딩(자신을 브랜드로 만드는 일)을 이제는 중장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영업보다 기술 창업 시니어 대상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 반려로봇 개발, 빅데이터 기반 노인 안부 확인 사업, 위급상황 대처 기술 사업, 기술을 통한 정서 교류 상담 등의 기술 창업이 유망하다. 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세대융합형 기술 창업도 도전해볼 만하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창업 청년에 비하면 창업 자금이 넉넉하다는 게 중장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청년보다 큰 것도 현실이다. 소자본 혹은 무자본 창업 가능한 온라인 창업이 유망하다.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인력난이 심각한 외식업계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대부분의 예비창업자들은 프랜차이즈 문을 두드리고 자본금을 과도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저렴한 값으로 전수창업을 배우는 것도 틈새시장이다. 전수받은 레시피에 나만의 색깔과 브랜드를 입혀 창업해보면 어떨까. 외식시장 인력난 기회를 놓치지 말자. ▲ trend4 새로운 시장 전망 떠오르는 新분야는? 중장년에게 적합한 새로운 분야로 디지털, 모빌리티(이동성을 높여주는 이동 수단 혹은 서비스), 시니어 뷰티 등이 꼽혔다.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는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40~50대의 비대면 활동 경험이 90%를 넘어섰다”면서 “디지털 중년 시대를 맞이해 체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비대면 분야에서 중장년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청년들은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이라 좋아하지 않는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에 라벨을 다는 작업) 같은 일자리에 대한 중장년의 만족도가 의외로 높다”면서 “정식 출시 전인 제품 및 서비스 결함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베타 테스터도 좋다. 앞으로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중장년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은 “일본에서는 화장을 해주며 심리상담과 만족감을 높여주는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이 생긴 지 오래”라며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년의 욕구인 ‘네버랜드 신드롬’이 트렌드라고 짚은 것처럼, 무인 ‘피터팬 스토어’ 같은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새롭게 눈여겨볼 직업 디지털 분야 디지털 라벨러, 베타 테스터, 디지털 문해 교육자, 디지털 중개사 모빌리티 분야 프리미엄 택시 운전사, 드론조종사, 이동수단용 콘텐츠 큐레이터, 운송 서비스 시니어 뷰티 분야 안티에이징, 젊은 감성 입힌 패션,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초고령사회로 흘러가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와 관련된 직무, 직업, 창업 분야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언택트, 메타버스 등의 기술 창업 분야도 커질 전망이다. 설문 참여 전문가 리스트 ▲강소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박사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원장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 ▲김찬흥 국민은행 경력컨설팅센터 센터장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변영조 한밭대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센터장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 ▲조연미 리봄 시니어플래너 대표 ▲한희윤 신한은행 은퇴사업부 수석 ▲희유스님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센터장
- 2023-01-0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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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단상] 요즘 어른
- MZ세대(Millennial Z)는 1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 세대를 말한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요즘 MZ세대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작가 김영기는 저서 ‘MZ세대와 꼰대 리더’에서 MZ세대의 특성을 6가지로 요약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수평적 소통, 빠른 보상(을 원하고), IT 원주민(으로), 사생활(을) 중시(하며), 모바일(에) 연결(돼 있다)”이라고 했다. MZ세대는 ‘공정’을 중시하고, 자기 목소리가 분명하다. 삶을 독립적으로 설계한다. 일터는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발휘하는 곳’으로 본다. 남녀 간 차이도 공정의 틀 안에서 해석한다. MZ세대의 이런 가치관은 정부 정책과 기업 문화, 정치 문화의 변화를 몰고 왔다. 기업은 수평적 조직 문화 조성, 새로운 리더십 찾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투어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차기 당권주자의 덕목 중 하나로 ‘MZ세대 인기’를 꼽았을 정도다. 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라는 점에서 이런 대응은 당연해 보인다.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요즘 어른’들은 어떤가. “라떼는(나 때는)~” 하면 바로 ‘꼰대’라는 낙인이 찍힌다. 권위주의에 똘똘 뭉친 어른으로 몰린다. 빈곤, 무능의 평가도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능력 저하, 기억력 감퇴 등 노화로 인해 상대적 무능력자가 된다”는 등의 주장이다.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의 저자 김용섭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우리는 요즘 애들뿐만 아니라 요즘 어른들도 잘 모른다”며 “4060세대 역시 변화와 진화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0년대 출생)는 사라진 것이 아니고, 거대한 인구 집단으로 경제사회적 영향력도 여전하다”며 “MZ세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식스티’로 거듭났다. 현재 시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트렌드 연구 집단 ‘샌드박스네트워크 데이터랩’은 최근 펴낸 ‘뉴미디어 트렌드 리포트 2023’에서 1964년생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전쟁 종식 11년 후에 태어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17세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했고, 25세에 서울올림픽을 지켜봤다. 30대에 무선호출기를 사용했고, 35세에 외환위기를 겪었으며, 45세에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다.” 정리하면 ‘60세 어른’은 전후 세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냈다.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이고, 디지털 전환의 가교를 탄탄하게 놓은 세대다. 통계청이 지난달 내놓은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부채, 소득 수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다. 이를 보면 국내 가계 평균치는 자산 5.47억 원, 부채 0.92억 원, 소득(이하 2021년 기준) 0.64억 원이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지, 부자인지 살펴보니 50대가 자산 6.42억 원, 소득 0.81억 원으로 최고였다. 60세 이상은 자산 규모에서 40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5.43억 원이다. 소득은 20대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지만, 연간 4000만 원 이상(0.46억 원) 벌었다. 50대가 가장 부자 세대이고, 60+ 세대도 살 만한 세대라는 결론은 자연스럽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늘 그래왔다. 50+ 세대의 경제사회적 영향력을 입증하는 연구 자료는 더 있다. 5060세대 10가구 중 7가구 이상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통계청). 순자산 상위 1%의 평균 연령을 살펴봤더니 63.5세다. 60대 비중도 35%나 된다(NH투자증권). 자산만 많은 게 아니다. 50+ 세대는 생각보다 젊다. ‘뉴미디어 트렌드 리포트 2023’의 내용을 인용하면, 20대 여성들이 사용하는 패션 앱 광고 모델로 등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 씨의 나이는 76세다. 개그맨 유재석, 배우 장동건, 문소리, 오나라, 신하균, 곽도원, 가수 서태지, 박진영 씨 모두 50대다. 생각보다 젊기만 한 것도 아니다. 통계청 인구 추계를 보면, 2023년 50세 이상 인구는 22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3%에 달한다. 5060세대로 좁혀도 31%나 된다.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나이 듦을 거부하며 과거의 삶을 다시 가꾸고, 아이처럼 놀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토끼해를 주도할 세대는 MZ세대가 아닌 시니어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경제가 나빠지면서 MZ세대는 지갑을 닫고 있다. 50+ 세대는 자산도 많고, 소득도 괜찮고, 여전히 젊고 더 젊어지려 한다. 노동(勞動)이 아닌 노동(老動)의 시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경험과 높은 완성도를 앞세워 일자리 시장의 주요 공급 세대로 부상하고 있다. 구매력과 노동력을 갖추고 소비력이 왕성한 50+ 세대는 한국 사회의 주류 세대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정치권, 기업은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청년 정책과 더불어 젊어진 50+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려면 말이다. 당장 시작하기 바란다.
- 2023-01-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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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2023 계묘년 트렌드 키워드 5
- 2023년을 전망한 도서들이 말하는 시니어 위한 5개 키워드. ‘라이프 트렌드 2023’ 中 과시적 비소비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투자 감소와 저축 중가, 중고 시장 확대, 소식 먹방 출연 등 기존의 ‘과시적 소비’를 역행하는 모습 ‘트렌드 코리아 2023’ 中 네버랜드 신드롬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피터팬이 사는 곳 ‘네버랜드’에서 착안해,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들이 많아지는 사회 유년화 현상 ‘2023 트렌드 모니터’ 中 리버스 멘토링 ‘역(易)멘토링’이라고도 하며, 기존에 젊은이가 시니어에게 조언을 구하던 ‘멘토링’과 반대로 시니어 멘티, 젊은이가 멘토가 되는 것 ‘트렌드 코리아 2023’ 中 알파세대 시니어의 손주 세대(2010년생 이후)를 말하며,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을 경험하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함 ‘라이프 트렌드 2023’ 中 세컨드 하우스 5도 2촌, 4도 3촌 등 간헐적 귀촌이 늘고, 2023년 고향사랑기부제 등의 시행으로 관계인구가 형성되며 세컨드 하우스 욕구 상승 전망
- 2022-12-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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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켜 도시재생, 박현정 북촌탁구 관장
- 박현정 북촌탁구 관장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 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새 인생을 펼치고 있는 중장년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북촌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상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런 점에 매료돼 차린 탁구장에 ‘도시재생’이라는 어렴풋한 꿈이 더해졌을 때, 그는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문화예술을 탐구하는 스포츠 공간’ ,북촌탁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아담한 탁구장을 마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보자는 마음은 차근차근 현실이 됐다. 북촌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북촌탁구를 찾는다. 박현정 관장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길거리 간식을 두고 가기도 한다. 영락없는 마을 사랑방의 모습이다. “북촌에는 지역 특성상 재능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과 협력해서 전시나 공연을 기획하고, 지도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했죠. 기획할수록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3년 전에는 아예 이사를 와서 북촌 홍반장을 자처하며 많은 일을 거들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자꾸 일을 벌이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즐겁기만 합니다.” 북촌 홍반장이 꾸린 사랑방 북촌탁구는 여느 탁구장과 달리 탁구대 두 대가 전부인 곳이지만,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 글쓰기 교육이나 기타 레슨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탁구대를 접어 넣고, 탁구장 벽면에 전시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로 협업사업을 통해 동네 어르신 9분의 사진을 모아 ‘당신의 빛나는 라떼’전을 열었다. 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함께 먼지 쌓인 앨범에 들어 있던 종이 사진을 디지털 사진으로 변환해 어르신께 드리는 작업을 거쳤다. 그 후 사진들을 탁구장에 내어 전시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시 덕분에 북촌탁구가 북촌 외부에도 알려지면서 탁구 관련 tvN 예능 프로그램 ‘올 탁구나!’ 1회 촬영지로 선정되기도 됐다. 북촌 사람들 사이에 호평이 자자한 주민 참여 프로그램 ‘아무연주대잔치’도 그와 북촌탁구의 작품이다. 그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탁구장 내에서 진행했는데, 올해는 종로구 원서공원에서 첫 야외무대를 가졌다. 종로구청과 진행하는 민간협치사업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덕분이다. 날씨까지 도와줘 이번 대잔치는 연주단원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단다. 요즘은 온라인 사랑방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점프업5060 프로젝트의 기존 수료생을 대상으로 하는 점프업5060 재도약 프로젝트에 선정돼 북촌탁구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밟는 중이다. 북촌탁구만의 로고송과 뮤직비디오는 이미 제작이 완료돼 세상에 공개됐다.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공간 자체를 꾸리는 데 집중했다면, 재도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지금은 북촌탁구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을 이장님이 확성기에 대고 공지사항을 안내하듯, 외부 사람들에게도 북촌 소식을 안내할 수 있는 온라인 확성기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좋은 행사들이 마을 안에서만 공유되고 끝나는 게 아쉬웠거든요. 또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관광할 때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온라인에 올려두려고 해요. 북촌에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북촌이 관광지로 워낙 주목받다 보니,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북촌 주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죠.” 주민·관광객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이는 최근 여행 트렌드인 공정여행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여행지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관광객은 지역을 즐김과 동시에 가꾼다. 그렇게 지속 가능한 여행이 만들어진다. 박현정 관장은 관광객이 더 잘 즐기고 가꿀 수 있도록 거들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만 알기 아까운 명소들을 소개하는 계동 지도를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다. 자주 걷는 북촌 산책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내기 위해 마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하는 일은 곧 북촌 주민들을 위한 일이 된다. 북촌 주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것,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것. ‘마을 경제를 활성화’하는 거창한 도움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선다. 비가 올 때 무료로 우산을 빌려주거나, 코로나19에 확진된 이웃을 위해 대신 약을 타오는 소소한 일쯤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북촌탁구는 꿈이 많다. 우선 올해가 가기 전 동네 잡지를 내려고 준비 중이다. 서울시시청자미디어센터의 ‘방방곡곡 마을미디어 교육지원사업’에 선정돼 무료 글쓰기 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기자가 될 예정이다. 취재한 북촌의 시시콜콜한 소식들은 한데 모여 새로운 소식지로 탄생할 것이다. 송년회를 겸하는 ‘뒹굴뒹굴 어린이 영화제’도 개최를 앞두고 있다. 아이들에게 영화 관람의 즐거움을, 엄마에게는 자유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박현정 관장이 정한 목표는 ‘3년 안에 북촌생활문화센터로 인정받기’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벌이는 일도 많은 사람이라, 시기를 정해두지 않으면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3년이라는 기한을 스스로 세워뒀다. 그러나 하교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북촌탁구로 향하는 것을 보면, 그 목표는 이미 이룬 듯하다.
- 2022-12-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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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글판, 감성 캘리그래피로 도시 따뜻하게
-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 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새 인생을 펼치고 있는 중장년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디지털이 아닌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했다. 캘리그래피 손글씨 카드를 만드는 이유다. 주변에서는 “요즘 누가 손편지를 쓰느냐”고 했지만, 6년째 캘리엠 카드를 찾는 이들은 줄지 않았다. 박서영 대표는 ‘진심’이 담긴 감성 디자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믿는다. 오랫동안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동한 박서영 대표는 2016년 ‘캘리엠’을 창업했다. ‘캘리그래피 모놀로그’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개인 블로그에서 이름을 따왔다. 박 대표는 캘리그래피 작가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문구가 적힌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 사업이 들이는 품에 비해 수익은 크지 않아요. 재고 관리도 어렵고요. 처음 창업했을 때 주변에서 조금 하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요즘 누가 종이를 쓰느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이 아닌 것들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드 한 장으로 사람들이 소통하는 거잖아요. 읽고 버릴 순 있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진심을 읽는 거니까요. 그래서 취미생활처럼 묵묵히 꾸준히 했어요. 신기하게도 수요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자 오히려 카드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디지털이 아닌 것들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박 대표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어떤 메시지를 카드로 전할까 매번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토끼해, 호랑이해처럼 시기에 맞는 문구를 매년 새로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버이날 문구다.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우리 엄마여서 고마워요’, ‘우리 아빠여서 고마워요’로 나누었는데 정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전히 캘리엠의 베스트셀러 카드이기도 하다. 공공디자인에 눈을 뜨다 박 대표는 2018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여름편 캘리그래피’ 작가로 선정돼 처음 공공 글판 작업을 했고, 이를 계기로 공공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저 도시에 문구 하나가 걸렸을 뿐인데 지나가던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그 글을 보러 일부러 누군가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고친 게 아니라 늘 지나가던 길에 문구 하나 더 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도시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더라고요. 오래됐다는 이유로 뭐든지 갈아엎는 건 재건축에 가깝겠죠? 제가 하고 싶은 도시재생은 오래된 것에 감성을 입혀서 활성화하는 일이에요. 약간은 손봐야 하겠지만, 사람이 모이도록 해서 그 지역 안에서 자부심을 갖고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이랄까요? 도시재생의 중심이 ‘사람’이 되는 거죠.” 공공디자인이 갖는 힘을 경험한 박 대표는 2019년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실시하는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신청했다. 항상 지나다니던 일산시장에 글판처럼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간판에 가게 이름만 적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메시지로 전달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순댓국 한 그릇으로 오늘 하루가 따뜻하기를’이라는 문구로 감성도 의미도 전달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간판 사업은 지자체, 협의체, 상인, 주민 등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야 했다. 또 도시계획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움직여야 할 일이라 개인이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간판이 아니라 제품 패키징에 그 가치를 담아보기로 했다. 지역에서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가게의 상품에 브랜드 가치를 녹여 예쁜 패키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군의 로컬 상품들을 패키징하는 일을 했다. 앞으로도 로컬 상품에 담긴 이야기를 패키징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 목표다. 감성 우체국 ‘엽서가게’ 박 대표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은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러오는 일이다. 예를 들면 동네 책방이지만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뜨개질도 하고 대화도 하는, 책을 판매하는 서점 역할뿐 아니라 사랑방 역할도 하는 것. 그래서 ‘점프업5060 재도약 과정’을 통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엽서가게’를 열었다. “감성 우체국이에요. 저희 캘리엠 문구 카드가 있고요. 지역 작가님들이 그린 그림으로 카드를 만들었어요. 지역에 판로가 없는 디자이너들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동네에 그림 잘 그리시는 분이 오시면 저희가 엽서로 만들어드리고 판매 수수료를 드릴 수 있겠죠. 엽서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이곳에서 엽서를 사서 편지를 쓸 수 있고요. 카드를 우체통에 넣으면 저희가 보내드리는 서비스를 하려고 해요. 또 해외 작가의 카드들도 가져와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엽서들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이제 막 문을 열었기에 어떻게 소문을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무엇이라도 되리라 생각한다. 동네 책방과의 협업도 생각하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디딤돌 만들어 올라서기 점프업5060과 같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좋은 점은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더 좋은 점은 같은 프로그램에 지원한 대표들과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것. 도시재생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며 소통이 중요한 만큼,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대표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무척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은퇴 이후의 삶은 무능력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현재 트렌드도 잘 못 따라갈 것 같죠. 어쩌면 그간의 경험이 현재 바뀌는 시류를 따라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마음으로 열정을 낼 수 있어요. 그럼 더 애착이 가요. 저는 은퇴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제 친구들에게도 늘 말해요. ‘그냥 창업해!’라고요.(웃음)” 박 대표는 2016년 캘리엠 창업, 2019년 주식회사 캘리엠 법인 전환, 2021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등을 밟으며 성과를 냈다. 그 배경에는 정부 지원사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초를 닦았다면 이제 스스로 디딤돌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원사업에 신청하고 선정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지원을 받았으니 결과보고서를 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 숙제하듯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기초를 닦았다면, 지원사업을 벗어나 자신의 것을 해보는 용기를 꼭 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2-12-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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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스타일 따라 하는 MZ 세대 ‘할메니얼’ 열풍
- “니들 맘대로 사세요” 2030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광고에 등장한 배우 윤여정은 특유의 시원한 어투로 말을 던진다. 2030 여성 쇼핑 광고에 시니어 모델인 윤여정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화려한 꽃무늬 카디건을 즐겨 입고, 고소한 흑임자 디저트를 즐긴다. 가방에는 고운 색의 전통 매듭 키링이 달려 있고, 손에 들린 스마트폰 케이스에는 할머니집 장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개 봉황이 반짝인다. ‘할메니얼’이라 불리는 2030이다. 할머니 취향 즐기는 ‘할메니얼’ ‘할메니얼’은 할머니를 뜻하는 사투리 ‘할매’와 1982년부터 2000년생을 뜻하는 ‘밀레니얼’의 합성어다. 흑임자·인절미·쑥 등 할머니 입맛을 선호하고, 펑퍼짐한 꽃무늬 스커트나 엉덩이를 덮는 카디건을 즐겨 입는 등 할머니의 취향을 즐기는 밀레니얼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도 할머니를 의미하는 ‘그래니’(Granny)와 멋과 우아함을 뜻하는 ‘시크’(Chic)를 결합한 ‘그래니 시크’, 할머니(Grandmother)와 밀레니얼의 합성어 ‘그랜드 밀레니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옛것을 세련되게 즐기는 밀레니얼의 부상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에 따르면 2021년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 1~10위 중 9개가 전통 간식이었다. 70만 개 이상 판매된 1위 제품은 달고나였다. ‘발효 보리건빵’, ‘달콤바삭 누룽지 과자’가 뒤를 이었다. 그 외에도 오란다, 연근부각, 두부스낵, 꿀약과 등이 순위에 들었다. 밀레니얼의 최근 관심사는 ‘건강’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대는 단백질이 들어갔거나 칼로리가 낮은 과자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운동 관련 산업도 함께 커질 정도로 밀레니얼은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팥, 인절미, 흑임자, 쑥은 왠지 건강할 것 같은 이미지의 식재료다. 밀레니얼에게는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맛이라는 경험을 선사한다. 할머니가 즐겨 먹던 간식이 ‘힙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재미와 개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에게 인기를 끌게 된 셈이다. 음식뿐 아니라 ‘할머니 패션’도 유행이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펑퍼짐한 라인이 특징으로 B급 감성을 표방한다. SNS에는 ‘그래니룩’(Granny Look), ‘할미룩’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이 인기다. 10~20대에게 인기 있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3개월간 롱스커트, 카디건 판매량이 전년 대비 각각 270%, 1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라인과 주름치마 등 과거 유행하던 제품이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매듭 공예품, 전통 무늬 스마트폰 케이스 등도 인기가 높아졌다. 인테리어 업계에서도 화려한 플라워 패턴 벽지 등이 유행하는 등 할메니얼 열풍은 음식, 패션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할메니얼 열풍에 시니어 모델 인기 배우 윤여정은 지그재그 광고 티저에서 “(광고) 잘못 들어온 거 아니니?”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13초짜리 이 티저 영상은 이틀 만에 100만 뷰를 돌파했다. 본편 광고인 ‘니들 맘대로 사세요’ 편의 조회수는 470만 회를 넘어섰다. MZ세대 패션 앱 ‘트렌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이번 지그재그 광고 모델 인지도는 93%로 매우 높았으며, 모델을 통해 플랫폼의 이미지가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답변 비율은 41%에 달했다. ‘매우 구입 의향이 생김’이라는 답변도 33%로 패션 플랫폼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윤여정 배우가 등장한 광고는 2021년 4월에 선보였는데, 이달 전체 거래액은 지난해보다 58% 상승했으며, 론칭 이래 최고 일간 사용자 수와 일 거래액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70대 시니어 모델이 2030 쇼핑 광고 모델로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패션이든 인생이든 왔다 갔다 하며 답을 찾는 것’이라는 메시지에 소비자가 공감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할메니얼 열풍에 힘입어 2030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심켈로그는 ‘첵스 팥맛’을 신 메뉴로 출시하면서 64년 차 배우 김영옥이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광고를 함께 선보였다. 던킨도너츠는 흑임자 꽈배기와 인절미 라떼 등의 제품을 내놓으며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모델로 선정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배민 오더’ 광고에는 배우 문숙이 등장하고, 리더스코스메틱의 바이럴 영상에는 배우 강부자가 나온다. 밀레니얼은 ‘시원하고 스타일리시한’ 할머니들의 멋을 새롭고 재미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며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멘토로 삼기도 한다. 푸근하고 정감 있는 ‘세련된’ 할머니가 트렌드로 거듭나는 이유다.
- 2022-11-2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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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속 고전머리 재현에, 삼국시대 이전 사료까지 연구"
- 2007년 전통복식 분야 1호 유희경 박사의 집에 신사임당 초상을 그리기로 한 이종상 화백과 한국조폐공사 관계자, 석주선 단국대 기념박물관장 등이 모였다. 5만 원 지폐에 넣을 신사임당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날 신사임당의 초상 모델이 바로 임수빈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장이다. 어딘지 모르게 닮은 선한 눈매와 은은한 미소를 가진 그를 만나 고전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에, 정말 이런 머리를 하고 살았을까?’ 고전머리 미용대회를 준비하던 30대 늦깎이 학생은 머리를 올리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대회에 출품된 화려하고 다양한 고전머리 스타일이 신비로워 보였다. 고전머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다. 1999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미용실을 운영하던 임수빈 협회장은 미용을 더 알고 싶었다. 파마약을 바르면 왜 머리가 구불구불한 채로 모양이 잡히는지, 머리카락 속 단백질과 미용 약품 사이에 어떤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건지 원리를 알고 싶었다. 2005년 국제대학교 피부미용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해 서경대 미용예술학과에서 불화에 표현된 고전머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니 세월 흘러가는 줄 모르고 젖어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하래도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과거에도 지금도 고전머리를 하나의 학문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어요. 한복만큼 전통 가치가 지켜지고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K-헤어의 뿌리를 찾아서 어디에서도 고전머리를 배울 수가 없어 임 회장은 역사책을 뒤져가며 스스로 공부했다. 그는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했다. 고전머리는 청동기,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도자기 항아리나 벽화 등에 그려진 여성을 통해 머리 모양을 추론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서민들은 쪽머리, 댕기머리, 둘레머리, 얹은머리 형태를 고수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시대에 따라 복식과 머리가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소 한 마리 값에 맞먹어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개화기에 우리 전통 고전머리가 사라졌어요. 역사적으로 쪽머리는 기생이 할 수 없는 머리예요. 용, 봉, 개구리 등으로 품계를 나타냈던 첩지머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개화기에 나라도 잃고 신분을 나누던 품계도 사라지면서 무거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생들이 쪽머리와 첩지머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신여성이 등장했고, 서양에서 들어온 머리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고전머리는 유야무야 사라지다시피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실은 1933년 화신백화점 미용부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조선인 미용사 오엽주가 시초다. 이 최초의 미용실이 우리나라 미용 역사의 시작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임수빈 회장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오다 개화기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우리 머리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5천 년이라는 우리 고유의 머리 역사와 뿌리가 있는데도, 오엽주 미용사의 신여성 머리 스타일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미용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뿌리부터 배우는 게 정석 아닐까요?” 고전머리에는 우리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한복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것처럼 머리 스타일도, 장신구도 역사에 따라 달라졌다. 한복에 관해서는 연구가 활발하고 이를 전통으로 지키려는 노력도 하지만, 고전머리에는 그 관심이 이어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미용은 ‘학문’이 될 수 없을까? 임수빈 회장은 미용을 ‘과학’이라고 말했다. 미용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르면 중학생 때부터 미용을 배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넘어 미용의 원리와 뿌리를 알고 싶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 더 깊이 있는 배움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머리의 역사에 대한 연구, 미용의 과학적 부분에 대한 연구, 조금 더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서 미용의 질을 높이고 싶었어요.” 각종 불화와 문헌을 뒤져 고전머리를 연구하던 임수빈 회장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5천 년 역사 속 장황하게 흩어져 있던 고전머리 자료를 모으고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귀족·사대부·천민들이 쓰는 장신구, 비녀, 꽂이, 장신구별 의미, 상징 등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문헌 속 고전머리를 전통 방식에 맞게 재현하고 트렌드에 맞춘 퓨전머리도 디자인했다. 이 내용을 학생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고전머리교실 : 이론과 실습’으로 펴냈다. 머리 스타일에 빠질 수 없는 게 장신구다. 또 복장과 머리 스타일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인터뷰를 하면서 머리 장식에 대해 묻자 협회 곳곳에서 최소 100년 넘은 온갖 장신구들이 나왔다. 임 회장의 할머니가 사용했다는 청색 족두리와 담비털 모자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도 등장했다. 거실 액자 속에 늘 걸려 있었다는 담비털 모자는 구한말 할머님이 사용하시던 것이라고. 임수빈 회장이 고전머리에 매력을 느꼈던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트레머리가 없어지고 쪽머리가 정착되면서 비녀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요. 서민들이 쓰던 비녀도 새겨진 무늬가 다 달라요. 천연 옥비녀에는 특유의 고운 빛깔과 흉내 내기 어려운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죠. 천연 옥의 종류도 이렇게나 다양해요. 여름에는 옥 소재 비녀를 많이 쓰고 겨울에는 따뜻한 소재를 썼죠. 뒤꽂이 종류도 무척 많아요. 주로 매미, 벌, 꽃, 나비 등이 소재로 쓰였죠. 조선시대에는 생콩을 빻아서 조롱박에 담아 세면대에 두었다가 세안할 때 비누 대신 콩을 비벼 사용했어요. 그러면 콩 비린내가 남거든요. 그래서 향주머니를 차고 다닌 거죠. 이 매미 모양의 향주머니는 매우 드문 거예요.” 고전머리는 머리 장식, 의복, 의복에 쓰이던 장신구까지 모두 이어져 있고, 각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역사 이야기와 임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온갖 장신구를 직접 눈앞에 펼쳐두고 강의를 하니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머리에 몰입한 20년이라는 시간 고전머리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그는 2012년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를 세웠다. 10여 년 동안 임 회장은협회비를 받지 않고 개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협회를 운영했다. 더 많은 이들이 고전머리 관련 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고 자신의 가치를 높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전가체 예능사 1~3급 자격제도를 만들었다. “고전머리도 머리를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미용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미용 관련 국가자격증이 여러 가지인데 고전머리 자격증은 없거든요. 수익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오색단장, 수빈헤어&메이크업, 한국방송협회 일을 현업에서 계속하다 보니 자격제도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면서 저를 재정비하게 됐죠. 미용하는 분들이 고전머리를 통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미용인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개척해나가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고전머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고전머리 정보를 퍼트릴 때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무리 궁금한 게 많아 공부가 즐거웠다 해도, 매일 역사서를 들여다보며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치 과거에 사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조금만 더 해서 학생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하나는 만들어두고 그만두자’고 마음을 달랬다. 미용을 시작한 후 20년을 온전히 고전머리에 몰입해 살았다. 처음 수빈헤어&메이크업을 열었을 때는 손님 한 명 보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주말이면 고전머리를 하려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 임 회장이 반한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것. 이제는 ‘고전머리’ 하면 많은 이들이 임수빈 회장을 떠올린다. 그럴 때 그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임수빈 회장은 우리나라 가체장 1호 명장이 됐으며, 2019년에는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문화예술부문 한국전통문화최우수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1년에는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을 받았다. 고전머리가 K-헤어 트렌드 임수빈 회장은 복장과 헤어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전통 한복이라면 전통 고전머리를, 퓨전 한복이라면 퓨전 고전머리로 꾸며야 한다는 것. 전통 고전머리를 응용하면 한국식 현대 스타일을 무궁무진하게 창작할 수 있다.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요즘 흔하게 하는 ‘당고머리’는 ‘쪽머리’가 원조다. 쪽머리는 비녀가 없던 시절부터 해오던 머리 스타일이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머리 스타일은 ‘벼머리’에서 시작됐다. ‘포니테일’이라고 불리는 묶음머리는 ‘후두부로 흩어진 머리’라는 고전머리에서 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리는 5:5 가르마예요. 우리나라의 기본 스타일이죠. 과거 여인들도 모두 반머리를 했어요. 우리가 반묶음을 하는 것처럼요. 다만 그것을 장식하는 장신구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현대의 의복에 맞춰 고전머리 스타일이 현대에 맞게 바뀐 거죠.” 임 회장은 고전머리를 기반으로 한 한국 스타일의 퓨전 헤어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고전머리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으니 미용사들도 배워본 적이 없어 응용을 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 하는 실정을 무척 아쉬워했다.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를 배워 자신만의 한국 스타일로 응용하면 그것이야말로 K-헤어가 되는 것 아닐까? “고전머리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에요. 고전머리를 만지는 기술도 서울무형문화재로 함께 인정받으면 금상첨화겠죠. 한복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처럼 고전머리도 우리의 것으로 역사성을 인정받고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합니다.”
- 2022-11-1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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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 남긴 시간의 흔적 읽고, 기록하다
- 건축물이 쓸모를 다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답일 것 같지만, 그 시간과 의미를 찾아 연결하고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건축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록하는 조성룡(78) 건축가를 만났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입구로 들어가 노래하는 분수를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꿈마루’가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 ‘피크닉정원’을 찾았다. 조명이 없어 어두운 듯하면서도 햇빛이 들어와 어둡지 않은 길을 돌아선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천장이 있지만 사이사이가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이고, 벽이 있지만 틈이 있어 볕이 닿았다. 내부의 나무들은 천장을 뚫고 자라 있었고, 외부의 나무들은 천장을 넘어 가지를 늘어뜨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가 엉켜 노래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읽던 소설 속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았다. 건물과 자연이 얽혀 있는 ‘꿈마루’ 밖에서 보면 무척 오래되어 낡은 건물 같지만 꿈마루는 건축학도들의 필수 답사 코스다. 2013년에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14위로 꼽혔다. 철거 직전 이 건물을 남기자고 설득한 사람이 조성룡 건축가다. 그는 꿈마루를 ‘보물 같은 건축물’이라고 했다. “천장을 조금 뚫어놓기만 해도 바람이 통하고 새소리가 들려요. 나무가 자라 넘어오기도 하고, 새가 날아 들어오기도 하지요. 전혀 다른 구조가 되는 셈이에요. 제가 한 건 이렇게 뜯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해서, 종종 이곳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했는데, 이쪽까지 올라오는 게 쉽지 않은가 봐요.” 꿈마루 철거가 정해진 뒤 최광빈 푸른도시국 국장이 그에게 자문했다. 당시만 해도 이 건물에 대한 기록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많이 낡은 데다 페인트가 덧칠된 상태였다.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지어졌지만 이후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관으로 쓰였다. 찾아보니 나상진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보통 솜씨로 지은 건물이 아니었어요. 당시만 해도 이렇게 짓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건물 외벽에 타일처럼 붙여둔 저 파란 조각들이 유럽에서는 흔했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나 하던 방법이에요. 곳곳에 그런 기법이 적용됐는데, 국내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이 많아요. 유학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이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설득력을 가지고 실현까지 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해요?” 꿈마루는 나상진 건축가가 최초에 설계한 그 원형을 최대한 지켜내면서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공간들을 ‘집 속의 집’처럼 지었다. 그는 건축물만 봐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상진 건축가가 1970년대에 남긴 흔적, 전시장으로 바뀌며 덧댄 흔적, 설계도를 보고 재생하며 조성룡 건축가가 넣은 장치,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의 흔적 남기는 ‘가치 재생’ 조성룡 건축가는 역사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 골프장이 생긴 시대적 배경, 클럽하우스를 사용했을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 교양관이 되어야 했던 사연까지. 건축 재료나 방법이 아니라 꿈마루라는 건축물의 끊어진 역사 속 퍼즐을 찾아 하나씩 맞추어가며 시간을 엮은 것이다. “건축물이라는 게 산업 사회의 산물이죠. 쓸모를 다했으니 결국 버리거나 고치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어떻게’ 버리고 고칠 것인가를 구별해야 하죠. 의미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없어요. 이 벽을 보세요. 금이 가 있어요. 기둥은 콘크리트고 그사이를 채운 벽은 벽돌이에요. 그런데 벽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금이 가게 되어 있어요. 이 벽 아래를 보세요. 뭐가 있던 자리죠? 뭐였을 것 같아요? 라디에이터예요. 이런 게 흔적이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라디에이터지만, 과거에는 여기에 도시락을 올려 데워 먹었다. 한 공간에 대한 여러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추억을 담은 흔적이다. “1910년부터 건물이 지어졌다고 생각하면 100년 넘는 시간이에요. 얼마나 많이 지었겠어요? 오래된 것 다 헐고 새로 짓는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건축은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흔적을 지우기가 쉽지 않거든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가 중요해요. 그런데 이 중요한 지점이라는 게 시대마다 바뀌어요. 그러니 재생이라는 건 결국 움직이는 생물 같죠. 쓸모를 다해가는 과거 건축물을 소생해내는 ‘재생’은 세계 트렌드예요. 그런데 재생이라는 게 반드시 새것으로 만드는 걸 뜻하는 건 아니에요. 못 쓰게 된 물건이라고 무조건 버리거나, 새롭게 만드는 것, 두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공간이 어떤 이유로 바뀌었는지, 사용하는 사람이 거쳐가는 과정은 어땠는지, 이 흐름을 현재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가 생각하는 ‘재생’이다. 이는 문화재청 위원으로 활동하며 유심히 살펴본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 방법과도 결을 같이한다. 유네스코는 긴 논의 끝에 복원에는 건축의 진정성을 담아 후대 사람들이 차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보강하는 방법을 택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같은 문화유산 복원 방식을 두고 유럽에서도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성룡 건축가는 꿈마루 재생 이전에 선유도공원에서 이런 방법을 적용해 이미 재생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그는 외국의 도시재생 사례들을 가져와 무작정 적용하는 게 아니라, 거리, 건축물, 공간마다 상황을 고려해 남길 것은 남기는 재생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꿈마루 재생 작업을 하면서 정부에 선유도공원과 꿈마루 두 곳을 시간의 흐름을 담은 재생 사례집으로 묶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담당자가 바뀌면서 결국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파트는 30년이 넘으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지만, 다른 건물들은 슬슬 문화재에 들어갈 수 있는 연한이 돼요. 문화재는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건축물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생각해봐야 하죠.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집의 시간을 잘 살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면 노출 콘크리트가 트렌드처럼 되어버렸는데, 아무 데나 적용하면 안 돼요. 건축물마다 가진 고유한 시간과 상황을 담아야 하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마을 ‘소록도’ 최근 조성룡 건축가가 마음을 쏟고 있는 곳은 소록도다. 10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폐교를 이용해 문화공간 만드는 사업을 하려고 그를 찾았다. 그저 병원인 줄 알았던 소록도를 처음 방문한 그는 이곳에서 100년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국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이곳에 가두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마을을 이루고 살 정도였는지는 몰랐다. 소록도에는 7개의 마을이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이 중 가볼 수 있는 마을은 두 군데뿐이다. 주민이 가장 많았던 때는 6000여 명이 살았지만, 이제는 400명 정도 남았다. “한센병이 있으면 결혼을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이들은 가족이 없어요. 있어도 숨기죠. 그러니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소록도’는 소멸할 거예요. 섬만 남겠죠. 그런데 아무도 이 마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록도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떻게 모르는 일로 넘길 수 있겠어요. 마치 코로나 팬데믹과 비슷하지 않아요? 국가가 강제로 격리하고, 양성이면 병원에서 치료하고 음성이면 마을에서 생활하도록 한 거죠. 전염도 되지 않고 완치 가능한 병이 되었는데도 1980년대까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용돼 강제로 노동하며 살았던 곳이에요. 그런데 그저 슬픈 이야기로만 구전되고 있죠.” 한센병에 관한 의학적 연구 자료는 많지만 이들이 살았던 마을, 집, 생활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그 역시 직접 보기 전에는 소록도에 100년간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를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만들어진 주차장 한가운데 남아 있던 장안리 마을 집 한 채를 발견해 안내소처럼 만들었다. 100주년 기념 조형물을 만들자던 병원 장을 설득해 기념관 조성을 제안한 것. 다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서생리 마을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가장 오래된 집은 1920년대에 지어졌고, 최소 80년이 지난 집들이었다. 소록도의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일단은 집들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파이프로 보호하는 작업까지만 할 수 있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처럼 무너져가는 집들과 나무·풀들이 한데 엉켜 있더라고요. 찾아보니 이 집들은 한센병 환자들이 직접 벽돌 한장 한장 쌓아가며 만든 거예요. 당시 병원장이 이곳에 벽돌 공장도 만들었더라고요. 강제로 노동에 동원된 거죠. 그러니 아무리 무너진 집이라 해도, 그 벽돌 한 장을 그냥 버릴 수 없는 거예요.”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인들이 남겨둔 기록이라도 있었지만, 해방 이후의 기록은 아예 없었다. 100년간 사람이 살았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 있었으니, 마을마다 집의 형태도 조금씩 다르고 시대마다 지어진 집도 달랐다. 또 처음에는 나무로 지었다가 무너지면 벽돌을 덧대는 등 여러 재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섞여 있었다. 조성룡 건축가는 이런 것을 연구하고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범하게 살았던 이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거예요.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걸 기록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증명하겠어요? 사진 몇 장으로 남아 있을 뿐이겠죠. 이 기록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야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도 고민하죠. 도시는 한 번 쓰고 말 게 아니라 지속해야 하니까요. 또 시대마다 도시의 모습이 다르잖아요. 어찌되었든 그것들을 기록해서 평가도 하고 반성도 하고 본받을 것은 본받고 고칠 것은 고쳐가야죠. 아파트는 재건축한다고 하면 항상 다 허물고 새로 짓잖아요. 그게 돈이 되니까요. 그러니 소록도 마을과 같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록도를 기록할 수 있도록 몇 년간 노력해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았다. 그런데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이 예산을 다 채어갔다. 무척 기운 빠지는 일이었지만, 소록도의 실상을 알았는데 돈을 주지 않는다고 기록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왕복 10시간 넘는 거리를 달리며 그는 아직도 소록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 “가치는 상대적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죠. 지금까지 문화유산은 보존의 필요성만 있었지 ‘왜’ 보존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연구자가 논문을 쓰면서 ‘불편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쓰더라고요. Difficult Heritage를 불편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인데, 특별한 해석이에요.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지만 사회가 불편해한다는 뜻이거든요.” 이를테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이 불편 문화유산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군부독재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에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조성룡 건축가는 그럴수록 ‘왜, 유산으로 남기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간을 기록한다는 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국가가 교과서에 남기는 역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개인의 역사도 역사지요. 역사가 쌓여서 축적되었다는 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준다는 게 중요해요.” 그가 하는 건축물과 공간의 재생은 어쩌면 역사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 2022-10-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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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는 시골이다!
- 초록으로 꽉 찬 산기슭이다. 널따란 농장 사방에 온갖 나무들이 길차게 자라 수려하다. 터의 가장자리로는 맑은 도랑물이 흐른다. 살짝 높은 지대다. 그래 세찬 골바람이 농장을 후려칠 일이 잦을 것 같지만 산의 품에 새 둥지처럼 깃들어 끄떡없다. 경관도 안전성도 결함이 없는 입지다. 적막감마저 깊으니 온갖 꿍꿍이와 아귀다툼으로 소란한 속세를 잊고 오붓하게 은거할 만한 피안(彼岸). 그러나 농장주 김기완(75, 평달교육농장)은 은거에 관심 없다. 가만히 눌러앉아 ‘멍 때리기’로 소일하는 건 도대체 그의 적성에 맞지 않다. 차라리 일벌레다. 해 뜨기 전부터 농장 일을 시작하는 식의 습성을 고수해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체험교육농장을 꾸려 끌고 왔으니까. 김기완이 서울을 벗어나 이곳 충북 옥천군 산골짝에서 새로운 삶을 구가한 지 어언 20여 년. 귀농 왕고참이다. 그러니 얻은 경험이 많다. 덩달아 견해도 많다. 그가 지닌 견해의 요점을 미리 말하자면, 귀농이든 귀촌이든 귀향이든 시골에 넘실거리는 자연과 깊은 친선 관계를 맺을수록 삶의 품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즉 그는 자연과 더불어 여생을 한바탕 재미있게 살아보겠다는 용무를 가지고 고향 산골로 이주했던 거다. 그리고 그 용무를 이미 완수했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김기완은 서울에서 건축자재상을 해 기반을 야무지게 다졌다. 고향에서의 성장기는 곤궁하기 그지없었다지. 또래 연배들이 흔히 그랬듯 생일에나 겨우 미역국에 쌀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 얄궂은 운명의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15세에 상경,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밥을 벌었다. 도둑질 말고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지경으로 서울이라는 정글을 바지런히 누빈 결과 중년 즈음엔 어엿한 자수성가의 본을 이룰 수 있었다. 취미 하나 가질 겨를 없이, 돈 한 푼 허투루 쓴 일 없이 오직 경제적 기반을 잡기 위해 천신만고와 맞붙어 싸운 덕분이었다. 피땀을 쏟아 목표로 삼았던 산정에 올랐던 것. 산꼭대기에 오르면 비로소 산 아래가 훤히 보인다. 징글징글한 가난의 기억이 싫어 아예 잊었거나 잊어버리고 싶었던 고향의 산천과 풍정이 사물사물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향수가 소리 소문 없이 그를 방문했다. 몹시 지독한 그리움으로 끙끙 앓았던 것 같다. 이제 가야 할 곳은 고향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치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이 그는 흔쾌히 낙향했다. “귀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 출세한 사람은 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망한 사람은 창피해서 못 내려간다는 것이다. 나는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진달래꽃을 따 먹고 도랑에서 가재를 잡았던 고향이 너무도 그리웠으니까. 언젠가는 내려가겠어, 기어이 고향에서 살겠어, 그렇게 오랫동안 벼른 끝에 드디어 귀향했던 거다.” 객지보다 오히려 심적 부담이 클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가급적 고향을 피해 귀농하는 게 좋다는 얘기도 있던데. “처신하기 나름이다. 나도 처음엔 텃세 비슷한 걸 겪었다. 그러나 아량으로 포용하면 마찰이 생길 리 없거니와, 아하 이게 바로 고향 좋다는 거구나, 그렇게 안도할 만한 일은 더 많이 벌어진다.” 처음엔 혼자 내려왔다지? 부인은 서울에 머물고. 귀향 문제를 놓고 부부간에 이견이 있었나? “한창 일할 54세에 무슨 귀향? 아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이른 은퇴라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에서 스스로 퇴직시키고 귀향을 결심한 터라 혼자서라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으로서 할 역할을 다했는데 망설일 게 뭐란 말인가. 게다가 뭔가에 수틀려 ‘자연인’처럼 살겠다는 것도 아니니 보류할 이유가 없었다.” ‘나 홀로 귀농’으로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더라. “난 성격상 매사 치밀하게 숙고해서 최선책을 찾은 뒤에 움직인다. 아내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버릇도 있다. 따라서 아내와 억지 동행을 하는 대신 일단 내가 먼저 내려가서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해두겠다는 쪽으로 일을 구상했다. 나 먼저 내려가겠으니 당신은 마음 내킬 때 천천히 내려오시오! 아내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그토록 합리적인 처신을 하다니. 그렇더라도 부인이 마침내 내려올 거라 장담하긴 어려웠겠지? 세상의 아내들 대부분이 시골 생활에 호감을 갖지 않으니까. “아내의 마음에 쏙 들게 터전을 가꾸는 게 관건이라 봤다. 이건 새들의 행태에서 얻은 힌트다. 어느 날 TV에 수컷 새가 암컷 새를 유혹하기 위해 근사한 둥지를 짓는 장면이 나오더라. 죽기 살기로 멋진 집을 지어 마침내 마음에 드는 암컷을 짝으로 끌어들이더라고. 아, 바로 저거다! 농장을 제대로 꾸며놓으면 아내가 제 발로 내려올 거라는 생각을 한 건데 이건 적중했다.(웃음)” 화재로 공들여 지은 집을 잃기도 김기완이 귀향을 해 홀로 산골에서 보낸 세월은 자그마치 6년. 고독한 독신남도 아니면서, 끈 떨어진 홀아비도 아니면서 6년을 외롭게 정진했다. 정진? 아내를 한시 빨리 불러들이겠다는 생각 하나에 쏠린 채 오로지 농장 구축에 전념했으니 말 그대로 정진이며, 심지어 득도를 목표로 삼은 고행에 맞먹을 고달픈 행진이었을 게다. 술이나 담배는 애당초 입에 붙이질 않았으니 근로가 주 종목이었다. 터는 넓어도 겁나게 넓어 처음 사들인 1만 평에 나중에 사들인 것까지 도합 3만 5000평이나 된다. 허리 휠 신역이 자심했을 테다. 그러나 즐겁더란다. 매번 성취감을 맛보며 피곤하지 않더란다. 허풍이 아닌 게, 그는 스스로 기꺼이 뛰어든 일엔 뭐든 툴툴거리거나 남몰래 돌아앉아 한숨을 토해내는 나약한 성향의 소유자가 아니다. 요컨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복한 게 없다’는 인생의 공리를 그는 몸소 실행하는 기쁨을 맛봤던 것 같다. 그는 결국 체험교육농장의 틀을 완비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아내가 합류했다. 아내를 각별히 사로잡은 건 김기완이 손수 밑그림을 그려 지은 살림집이었다. “아내를 위해 지은 크고 보기 좋은 캐나다식 2층 목조주택이었다. 차를 좋아하는 아내를 배려해 다실까지 만들었다. 암컷 새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가 가미된 집이었다.(웃음) 나중에 그 집이 누전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지만.” 다시 지은 집 역시 2층으로 매우 크다. 굳이 커다란 집을 지은 이유가 있겠지? “자식들이나 친지들이 방문할 경우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새집은 다시는 불이 나지 않게끔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지었다. 건물 골조를 불에 약한 목재 대신 콘크리트로 세웠고, 외벽도 불에 강한 벽돌을 마감재로 썼다. 지붕 역시 구리 자재를 도입해 화재를 단속하고자 했다. 팔각형 구조로 방들을 배치한 것도 만약의 화재 대비에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해서였다. 이 모든 구조는 화재의 충격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어 동원한 방책이다.” 교육농장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당시 농업의 새로운 트렌드가 교육농장이었다.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갖가지 농사 체험과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게 교육농장이다. 이건 부부가 함께 즐기며 일할 수 있는 괜찮은 분야라 판단했다. 하지만 운영이 힘들더라. 관내에 폐교되는 학교가 속출하고,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지금까지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선 방향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 “그냥 이대로 갈 참이다. 난 귀농을 통해 농업 현실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귀농으로, 농사로 돈 벌기 어렵다는 걸 주변 농가들의 실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거다. 가끔 귀농 강의를 할 때면 빼먹지 않고 하는 얘기가 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삼은 귀농은 위험하다는 걸, 돈을 벌려면 도시가 훨씬 낫다는 걸 말해줘야 하는 것이지.” 현실이 그럼에도 당신은 태연하다. “난 서울에서 실로 열심히 일했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신념 하나로 살았다. 덕분에 먹고사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다. 한편 아이들과 어울리는 농장 생활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고 재미가 있다. 운영은 부실하지만 불만이나 불안은 없다. 농장 잔디밭에서 깔깔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석처럼 아름답더라. 뜰에 심은 나무들이 자라는 걸 바라보며 자연의 순리와 교감하는 순간 역시 행복하다.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서 그냥 이대로 지속하기로 했다.” 어라! 개와 멧돼지가 어울리더라 손에 쥔 것 없이 귀농했다면, 경제적 불확실성이 컸다면 김기완의 양상은 달랐으리라. 다시 말해 그는 충분히 자족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농업으로 더 이상의 부를 확장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냉철한 인식도 현실을 긍정하게 하는 배경이 됐을 테다. 즉 그는 오랫동안 삶의 주된 이슈였던 경제문제에서 벗어나, 이젠 자신과 아내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쪽으로 날랜 머리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막대한 매력 덩어리를 내면에 들여놓을 경우 행복을 거머쥐기가 더 쉽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단언하건대 인간관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도시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는 시골이다. 정신마저 피폐해지는 과도한 인적 관계에서 자연과의 관계로 무게중심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롭고 복잡한 삶에서 해방돼 자연과 소통하며, 생명 가진 것들을 존중하면서 한적하게 지내는 일보다 다행스러운 게 있을까?” 이른바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한다지? 이건 자연을 존중하는 방식의 하나인가? “사람과 농작물이 싸우지 않고 서로 태평하게 공존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 해온 농법이다. 농장에서 문득문득 깨닫는 게 많다. 내가 멧돼지를 퇴치하기 위해 개를 기른다. 그런데 가만 보니 개와 멧돼지가 어울려 놀더라고. 이거 재미있지 않나? 아, 저게 자연의 이치구나. 멧돼지 역시 원래 이 터전의 주민이었구나. 그런 값진 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참다운 진수는 노경(老境)에 구현된다는 얘기가 있다. 황혼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초상이 어떤 것이길 바라나?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술 한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으며 홀연히 떠나가는 김삿갓의 풍모를 선망한다. 이건 욕심을 다 내려놔야 가능한 경지지만.” 그의 얘기는 자주 럭비공처럼 튀어 핵심에서 이탈했다. 이 역시 그가 보유한 생태 경관일 텐데, 반짝이는 뼈가 들어 있는 말이 드물지 않아 지루하진 않았다. ◆김기완이 주는 귀농 Tip◆ •농토를 구입할 경우 2년쯤은 벼르며 판단하라. 값이 싸다고 덜컥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이 가는 농토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내 공간이 된다. •맹지 매물을 소개하면서 ‘차후 잘 협의하면 길을 낼 수 있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을 믿지 마라. 매입 후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니까. •귀농 이전에 밑그림을 충실하게 구상하자. 목표 설정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어서다. •가급적 전답, 산, 냇물과 동시에 접한 토지를 사라. 그래야 활용도와 생산성이 높아진다. •국유림과 접한 농토는 이상적이다. 불필요한 개발 행위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한결 안정적인 농사를 할 수 있어서다.
- 2022-10-25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