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인현동 인쇄 골목’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요즘은 성수동, 파주 출판단지 등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그래도 인현동은 인근 필동, 을지로동, 광희동과 함께 전통의 인쇄골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현동 인쇄골목은 충무로역을 중심으로 중부세무서, 대한 극장 맞은편의 작은 한 구역이다. 원래 인현동이라는 지명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인현동이 되었으며 인쇄 골목이 된 이유는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관청인 주자소와 책자 인쇄를 관할한 교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시내 인쇄소가 총 2,400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 60%인 1,500여개소가 인현동 일대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인현동이 인쇄골목으로 유명해진 것은 여기 오면 인쇄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디자인과 편집에서 시작해서 출력, 인쇄, 후가공까지 다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원래 영세한 업체들이라 한 공장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하기 어렵다 보니 협력체제로 컨베이어 벨트 흘러가듯이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오프 셋 인쇄과정만 봐도 인쇄전 공정부터 인쇄 공정, 인쇄 후 공정까지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는 것을 마치 한 회사가 해내듯이 처리해 내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 밀집된 인쇄 골목은 각 가공 공정에 맞게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도로 폭도 3.5톤 트럭이 들어갈 수 있는 도로 폭 10m가 있는가 하면 도로 폭에 따라 트럭도 1톤, 다마스, 삼발이, 오토바이, 손수레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골목도 있다.
인쇄업에 사람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출판물과 홍보물을 비롯하여 문화국가에서는 인쇄업이 발달한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으며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업종이지만, 인쇄와 관련된 직업들이 있었다. 근대 활판 인쇄에서는 활자를 일일이 뽑아서 인쇄 활판을 만들어서 인쇄에 들어갔으므로 여러 직종이 있었다. 조각공, 문선공, 식자공, 그리고 청타수 등인데 컴퓨터 조판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월급이 3~4배 높았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들 숙련공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전에는 잡지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회사가 설립되고 그 안에 편집기자, 사진 기자, 그리고 출판, 영업을 따로 두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자는 외부 용역을 쓰고 잡지 만드는 일은 여기 인쇄 골목에 맡기면 알아서 잡지를 만들어줄 정도로 정 직원 한 명 없어도 잡지 하나가 버젓이 만들어진다.
여기 인쇄 골목이 현재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강북 재개발로 인근 땅값이 뛰자 여기도 땅 주인들이 집값을 올려 받게 되고 아예 옮겨달라는 요청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음에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대형업체들은 준 공업지역인 성수동, 파주 출판단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다고 인현동이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고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 없이 민주주의, 정의로운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지혜의 숲은 문화 융성의 기지이자 인문한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김언호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4월 개관 예정인 열린 도서관 ‘지혜의 숲’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혜의 숲은 100만권 수장을 목표로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과 지식연수원 지지향 호텔 로비에 조성되는 24시간 도서관이다.
재단은 원로 연구자 등 기증자와 출판사로부터 헌책 30만권을 확보하고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책의 바다, 책의 숲을 만들어 독서를 일상화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기증자들이 평생 연구하면서 읽은 책을 한자리에 모은 만큼 책 수명을 연장하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지혜의 숲은 기존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라는점을 강조했다.
기존 도서관과 같이 주제별로 책을 분류하지 않고 기증자나 기증 출판사별로 서가를 꾸몄다. 기증자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 와 그의 세계관과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목적이다.
개관 뒤에는 국내·외 지식인들을 초청해 전문 주제별로 강연을 개최하고, 북 콘서트 등도 연다는 계획이다. 강연자 중에는 책 기증자도 포함된다.
김 이사장은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책을 권유하고 안내하는 권독사 제도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단지 책만 모으는 곳이 아니라 지식 생산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혜의 숲 조성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수차례 만나 지원을 당부해 올해 예산으로 7억원을 확보했다. 책 대출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자가 유급 직원을 대신하도록 해 운영 비용도 최대한 아꼈다.
김 이사장은 “의원들도 지혜의 숲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지방에도 이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경험과 방법을 전해주고돕고 싶다”고 말했다.
지혜의 숲 개관 소식이 전해지자 고전번역원 등 국가 연구기관은 물론 해외의 개인들도 책을 보내온다.
김 이사장은 “일본, 미국 등에서 전혀 모르는 분들도 책을 보낸다”며 “책을 기증하고도 ‘책을 받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일본, 대만의 출판사들도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다며 파주출판도시의 다른 출판사와 함께 지혜의 숲을 아시아 책의 전당으로 키워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도서관 운영은 문화·지식운동이다. 책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줄 수 있다”며 “지혜의 숲으로 한국의 지적 르네상스 건설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병윤 대전대 교수, 김현선 박사 등 국내의 대표적인 건축가, 디자이너들도 지혜의 숲의 서가 디자인과 설계에 참여했다.
설계를 맡은 김 교수는 “어떻게 하면 기존 건물에다 많은 책을 꽂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린 아이부터 장년층이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현선 박사는 숲과 훈민정음 이미지를 결합해 서가를 디자인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김 이사장은 “지혜의 숲은 국가와 민간의 독서가가 힘을 합쳐 만든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이라며 “우리가 책 속으로 들어가고, 책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열린 지식과 정보의 공간이다. 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장엄한 광경만으로 모두 압도당할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