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칼럼] 장미의 계절

기사입력 2016-05-20 17:28 기사수정 2016-06-22 12:43

▲요즘 곳곳에서 장미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박혜경 동년기자)
▲요즘 곳곳에서 장미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박혜경 동년기자)
잘 부푼 팝콘 같은 탐스러운 벚꽃, 어릴 적 병아리 떼 종종종, 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샛노란 개나리, 화전에 쓰이던 고운 분홍빛 진달래, 그 자태가 너무나도 우아한 자목련 백목련, 어느 향수 못지않은 향기로운 라일락, 거기에 쌀밥처럼 풍성해 보여 붙여진 이팝, 조팝나무 등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봄을 알리는 전령 꽃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즈음 우리는 계절의 여왕 장미를 만난다.

‘of all flowers me thinks a rose is best’ 모든 꽃들 중 최고는 장미라고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장미는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아름다운 장미가 전쟁에 얽힌 일도 있는데 15세기 영국의 왕위계승권을 두고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한 랭커스터 가와 하얀 장미의 요크 가와의 전쟁이다. 그래서 이름도 장미전쟁, 이름만은 낭만적이다. 그들은 두 가문의 결혼을 통해 화해하고 튜더왕조를 세웠다. 이를 기념하여 화합의 상징으로 튜더 장미 문양이 만들어지고 오늘날 영국의 국화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장미는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들의 꽃이기도 하다. 그게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상관없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장미 꽃다발을 여자에게 건네는 장면은 언제라도 가슴이 설레고 미소를 짓게 해 준다. 장미는 덩굴장미와 나무장미로 크게 나누어지며 수많은 품종이 있고 모양도 다르다. 화려한 모양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니 예쁘다고 함부로 만지면 안 되듯이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감춰진 가시가 있다고 장미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전 필자가 대학생일 때 5월이 되면 각 학교에서 메이퀸 뽑는 축제가 있었다. 필자는 마음이 곱지 않았던지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쁜 학생을 뽑아 여왕으로 추대한다는 그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은 여학생인데 한 명을 가장 높은 단상에 앉게 하고 시녀로 불리는 학생들이 그 옆으로 들러리를 선다는 게 싫었다.솔직히 말한다면 아마 내가 메이퀸이 될 수 없어서 난 심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대 메이퀸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유명한 축제였는데 내가 이대생이 아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기도 하다.

다른 여대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열려 메이퀸을 뽑았다. 그런데 청파언덕의 우리 학교는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멋진 메이퀸 축제가 있었다. 5월이 되면 다른 학교처럼 예쁜 여대생을 뽑는 게 아니라 본관 교정 앞 화단에 여러 품종의 장미를 심어 번호를 붙이고 가장 아름답게 핀 장미꽃에 학생들이 투표해서 5월의 메이퀸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장미의 품종은 잘 모르지만, 당시 나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활짝 웃고 있는 장미에 한 표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교정을 거닐며 화단에 핀 장미꽃을 감상하던 추억이 나를 아스라이 먼 동화의 나라로 이끌어 주는 것만 같다. 그때가 그리워 가슴이 먹먹하다.

새빨간 예쁜 넝쿨장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도 있다. 필자는 중학교까지 전차로 통학하던 전차 세대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동대문 넘어 창신동에 있었다. 우리 집은 돈암동이어서 돈암동에서 전차를 타고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동대문 광장시장 앞에서 내려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고 학교에 갔다. 혜화동 로터리에는 아치 모양으로 철제 터널이 있었고 이맘때쯤이면 그 위를 온통 새빨갛고 예쁜 넝쿨장미가 뒤덮였다. 댕댕댕~소리를 내며 달리는 전차에 앉아 꽃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전차가 없어졌다. 신나고 즐겁던 전차통학도 따라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혜화동을 지날 땐 꼭 그 자리를 바라보며 새빨갛고 예쁜 넝쿨장미를 추억한다. 장미의 계절에 잊고 있던 좋은 추억을 꺼내보니 그 시절 그때가 너무나 그리워 마음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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