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에 맞는 표현에 대하여

기사입력 2016-10-18 11:21 기사수정 2016-10-19 08:46

지난 남도 여행에서 민박집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같은 한국 사람끼리 이렇게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귀도 잘 안 들리고 전라도 토종 사투리를 쓰니 더 못 알아들었다. 내게도 잘못이 있다. 영감이 물려준 초가 집 하나로 먹고 사는 민박인데 내가 “펜션”이냐고 물으니 못 알아들은 것이다. “내비게이션으로 찾아 가려는데 주소를 불러 달라”고 했더니 역시 못 알아들었다. 내비게이션을 “내비”라고 한데다 자동차 운전에 필요한 내비게이션과는 전혀 관계없는 80대 할머니이니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 것이다. 낙안읍성 근처에는 펜션이라고는 없고 대부분 민박집이니 “펜션”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더라도 외래어의 경우 상대방을 봐서 써야 한다.

작년에 케이블 TV 방송국과 휴먼다큐멘터리 작업을 보름 간 한 적이 있다. 내 일상 생활을 따라다니며 찍어서 방송에 내보내는 작업이다. 육중한 카메라를 메고 담당 PD와 여기저기 다니며 촬영을 해야 했다. 가는 것마다 “휴먼다큐 찍는 중인데요” 하며 양해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대부분 못 알아듣고 일단 손사래부터 쳤다. 뭔지 모르니까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해준 말이 “인간 극장 찍는다고 해요”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이 술술 풀렸다.

어느 책에 보니 어떤 사람이 라디오 진행자를 맡았는데 게스트를 모시고 대담을 나누는 형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게스트마다 각계의 전문가라서 그때마다 그 방면의 공부를 해서 겨우 진행을 했지만, 상대는 이미 그 계통의 전문가이고 본인은 이제 와서 대충 겉만 훑어서 방송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는 것이다. 자격도 없는 것 같고 너무나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 하던 중에 마침 일이 생겨 한 주 다른 사람이 그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는 것이다. 역시 전문가가 나왔는데 진행자도 그 방면의 전문가라서 대담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 평은 자기네들끼리는 잘 아는 내용이니까 대화가 잘 된 것 같지만 시청자들은 너무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진행자는 일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나 혼자 보는 글이라면 내 마음대로 쓰면 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보고 읽는다. 그렇다면 평소 말하는 것처럼 대화체나 구어체가 좋다. 평소 안 쓰던 말을 글에서는 마구 써 놓으면 읽는 사람들이 피곤해 한다.

내가 전국의 유명 댄스 카페에 댄스 칼럼을 쓰면서 호평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글을 쉽게 쓴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댄스 강사들은 몸으로는 잘 하는데 말로는 쉽게 설명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러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쉽게 설명 잘 하는 사람이 명강사이다.

수필 공부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 유명 작가일수록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툭툭 튀어 나온다. 한자 세대라도 잘 모르는 한자로 된 단어가 나올 뿐 아니라 순수 우리말이라며 굳이 안 들어가도 되는 풀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래야 할까 하며 의견을 묻는다. 공부하는 우리들은 한결같이 평소 안 쓰던 단어에 대하여 성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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