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음식은 왜 소화가 안 될까

기사입력 2018-01-10 09:21 기사수정 2018-01-10 09:21

한약을 먹을 때 밀가루 음식을 주의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밀가루 음식을 주의해야 할까? 밀가루 음식은 정말 안 좋은 것일까? 밀가루는 ‘찰지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밀가루 음식의 부작용을 말할 때 글루텐을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없고, 반죽해서 면이나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보리를 이용해 보리빵을 만들고, 밀가루를 이용해 빵·국수·만두·라면을 만들며, 쌀을 이용해 떡을 만든다. 이들의 공통점은 찰지다는 데 있다. 찰지지 않으면 면·떡·빵을 만들 수 없다.

찰진 성질은 피부와 위장을 두텁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기름진 것을 먹으면 피부가 촘촘하고 두꺼워져 양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기름진 음식은 속에 열이 생기게 한다”라고 씌어 있다. 이때 기름진 음식은 고기뿐만 아니라 찰진 식재료까지도 포함한다.


이스트 속성 발효, ‘더부룩’의 원인

찰진 음식은 인체의 내부 껍질인 위장 점막을 두텁게 해서 소화기를 튼튼하게 한다. 또 피부와 땀구멍을 틀어막아 땀을 덜 나게 하고 인체 내부를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면·떡·빵은 추운 지역이나 겨울철에 적합한 음식이다.

찰진 음식이 피부를 두껍게 하고 몸에 열을 발생시키면 풍선이 부풀듯 덩치도 커진다. 위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유럽인들은 찰진 음식인 빵을 많이 먹는데 피부가 두텁고 단단하다. 중국의 북부 지역 사람들과 겨울이 몹시 추운 몽골 사람들 역시 밀가루로 만든 면·빵·만두를 많이 먹는다. 밀보다 찰기가 떨어지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일본 사람들은 이들에 비해 피부가 얇다. 푸석푸석한 안남미(安南米)를 주식으로 하는 동남아 사람들은 피부가 더 얇다.

찹쌀·찰기장·밀·보리·메밀 등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잘 자란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식은 그 지역에서 잘 자라는 법, 그야말로 신토불이다. “메밀묵 사려, 찹쌀떡!” 하는 소리가 겨울철에만 들리는 것은 찰진 음식이 겨울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을 살펴봐도 떡은 주로 가을과 겨울에 먹는다. 가을 송편, 동지팥죽에 들어간 새알, 설날의 떡국, 두텁떡 등. 그리고 만두와 붕어빵까지 모두 추운 날 자주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밀가루가 위장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음식을 잘못 먹으면 쉽게 체한다. 특히 이스트로 속성 발효시킨 빵이나 기계식 반죽을 한 면을 먹으면 위가 더부룩하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탄산음료를 같이 마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탄산음료가 소화를 도와 체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배탈이 났을 때 면·떡·빵을 피하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동의보감’에는 “살찐 사람에게 중풍이 많다. 살이 찌면 피부가 치밀해져 기혈이 막힐 때가 많아서 갑자기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찰진 음식이 피부를 너무 틀어막으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중풍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면·떡·빵의 재료가 되는 찰진 곡식들에는 모두 중풍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적당한 신맛은 소화에 도움

아토피는 피부가 호흡을 못하고 두꺼워지는 질환이다. 그런데 찰진 음식을 먹으면 피부가 더 두꺼워져 증상이 악화된다. 아토피 환자가 밀가루 음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감기나 열병을 앓을 때 밀가루 음식을 금하는 것도 피부를 틀어막아 체온을 더 올리기 때문이다. 술 먹고 나서 국수를 피하라는 이유도 똑같다. 술독을 땀이나 소변으로 빼야 하는데 국수가 피부를 틀어막아버리니 술독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면·떡·빵은 피하기 힘든 음식이다. 부작용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소화력이 좋은 아이들은 자장면을 좋아하고 소화도 잘 시키지만, 소화 기능이 떨어진 노인들은 자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체하는 것을 막아주려면 흩어줘야 한다. 흩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강한 신맛과 매운맛이다. 중국집에 가면 테이블 위에 식초와 고춧가루가 놓여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초고추장이나 냉면에 넣는 식초와 겨자도 같은 역할을 한다.

강한 신맛은 뭉친 것을 녹여버린다. 그래서 체했을 때 매실 엑기스를 먹으면 위장이 편안해진다. 소화가 안 되는 음식, 즉 육류나 면을 먹을 때 식초로 드레싱해서 먹고 식초를 이용한 소스를 곁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식초에 절인 단무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팥도 강한 신맛이 있어 밀가루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떡처럼 뭉친 음식도 잘 풀어준다. 그래서 붕어빵, 찐빵, 송편, 다이야키, 팥칼국수, 동지팥죽, 찹쌀떡 등에 궁합이 잘 맞는 팥이 들어가 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열이 나고 땀이 난다. 매운맛은 흩는 힘이 좋다. 중국집의 단무지는 생무다. 생무는 맵다. 같이 나오는 양파도 맵다. 밀가루로 만든 라면도 체하기 쉬운 음식이라 라면 스프가 모두 매운맛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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