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심비(價心比)

기사입력 2018-01-29 11:15 기사수정 2018-01-29 11:15

‘가성비(價性比)’ 라는 단어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가심비(價心比)’가 떴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뜻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격이 싸면 품질이나 성능도 떨어지는 것이 일반 상식인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KS기준처럼 어느 정도 품질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세상이니 품질이 조악해서는 출시 자체가 무리이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이다. 커피 값이 천차만별이듯이 먹는 것도 반드시 비싼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잘 모르면 비싼 것으로 고르면 틀림은 없다”는 말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싼 것도 가격에 비해 그런대로 좋은 것이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즉 ‘마음의 만족도’를 말하는 것이다. ‘가성비’는 가격이 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심비’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마음이 만족하는 정도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작은 사치’라고 수입으로 봐서는 사치에 속하지만 단가 자체가 큰 금액이 아니면 가장 비싼 것을 사 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일 때 예전에는 자신이 희생했지만, 요즘은 자신을 위한 이런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소비 풍조로 올해 트랜드 중의 하나로도 꼽을만하다.

필자는 1993년에 ‘시시비비’라는 시사 평론집을 자비 출판했다. 당시 1천만 원이 들었다. 책을 내봐야 팔리지도 않을 텐데 굳이 출판까지 해야겠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책을 3쇄까지 찍었다. 책은 전국 유명 서점 및 GS25 편의점까지 호기 좋게 배포되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자 무참히도 상당한 양이 반품되어 폐기처분해야 했다. 그런데도 ‘가심비’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책을 출판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저서가 프로필에 올라가며 스펙을 한 단계 올려놓는 효과가 있었다. 1999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때 이 책이 결정적인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3,410페이지 초대형 볼륨의 ‘캉캉의 댄스 이야기’라는 책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책을 11권을 내게 되었다.

2003년 영국에 댄스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갔을 때도 1천만 원이 들었다. 댄스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런 투자가 필요하겠느냐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8개월의 대장정을 댄스스포츠 국제지도자 자격증(IDTA:International Dancesport Teachers Association) 취득이라는 결과로 가심비를 만족시켰다. 그 후로 위상이 달라지니 날개를 달고 댄스 계를 풍미했다. 1천만 원으로 제2의 인생에서 운명이 바뀐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시 필자 인생에서 ‘가심비’를 만족 시킨 잘한 결정이었다.

작년에 KDB 시니어 브리지 아카데미 총동문회장을 맡고 올해 마지막 사업으로 동문회보를 내기로 했다. 역시 수요도 조사해보지 않고 100만원이나 드는 공약을 꼭 해야 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밀고 나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시절 때도 동문회보 발행으로 호평을 받았고 ‘가심비’로 볼 때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은 가진 재산을 노후에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볼 나이이다. 한창 돈을 모을 때는 ‘가성비’를 따졌지만, 이제는 ‘가심비’를 따져봐야 할 때이다. 내가 그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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