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손녀의 그림 솜씨

기사입력 2018-06-01 15:51 기사수정 2018-06-01 15:51

▲손녀의 그림으로 도배된 벽(박혜경 동년기자)
▲손녀의 그림으로 도배된 벽(박혜경 동년기자)

몇 해 전 집안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도배를 새로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벽지 색상 고르는 일부터 매우 고민이었다. 많은 샘플 중에서 전체 벽지는 깔끔한 베이지를 골랐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엔 포인트 벽지라 해서 한쪽 벽면을 포인트 주어 예쁜 벽지를 바르는 게 유행이었다. 여러 가지 중 나는 하얀 바탕에 분홍색 커다란 꽃이 구름처럼 피어있는 벽지를 선택했다. 도배한 후 바라보니 참 깨끗하고 예뻤다.


지금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사랑스러운 손녀가 그 당시 세 살이었다. 어느 날 놀러 온 손녀에게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쥐여 주었다. 점심을 차리다가 돌아본 나는 깜짝 놀랐다. 요 예쁜 녀석이 그리라고 준 스케치북은 놔두고 새로 한 포인트 벽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이라기보다 그저 둥그런 원을 수없이 그리고 줄을 그어대는 낙서였다. 아기의 눈에 작은 스케치북보다는 넓은 벽면이 그림 그리기에 더 좋아 보였나 보다.


새로 한 벽지가 아까워 깜짝 놀랐지만, 더 중요한 건 어린 손녀의 그림 솜씨여서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칭찬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까? 커서 화가 되겠네!”

그저 동그라미일 뿐인 그림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더욱 신이 나서 그려댄다. 새로 해서 깔끔해진 벽이 보기 좋아 흐뭇했는데 울긋불긋 줄이 그어지고 피카소 그림 같은 이상한 모양이 잔뜩 칠해졌다.


아들네가 돌아간 후 이걸 어떻게 할까? 벽을 바라보며 심란했다. 이쪽 부분만 새로 벽지를 바를까 생각했지만 매주 주말마다 놀러 오니 계속 그려 댈 것이어서 그냥 아기의 솜씨를 감상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당분간은 도배를 새로 하지 않을 일이 생겼다. 동생이 태어났다. 손녀에 이어 손자가 생겼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손자가 두세 살 되면 또 누나처럼 벽에 그림을 그릴 테니 아이들이 좀 더 클 때까지 벽지를 새로 바르는 일은 보류하기로 했다.


손녀가 다섯 살이 되니 제법 그림을 잘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집에 올 때마다 하얀 종이에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벽에다 붙여달라고 한다. 참 잘되었다. 조금은 지저분해 보였지만 손녀의 흔적이라 그냥 두었던 벽에 그림을 붙이니 낙서도 가려지고 손녀의 솜씨를 매일 볼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이제 우리 집 벽면엔 손녀의 솜씨로 가득 채워졌다. 더 붙일 곳이 없어지니 새로 그림을 그리면 어떤 건 떼어내고 새 그림을 붙인다.


이래저래 우리 집 도배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주엔 손녀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행복한 상상을 하며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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