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기④ 나주 석장승(石長丞)

기사입력 2018-07-27 19:39 기사수정 2018-07-27 19:39

우리들의 자화상, 익숙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습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 조형물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지킴이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 남장사, 경남 창녕 관룡사, 전북 남원 실상사, 전남 나주 불회사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대개 사찰장승은 전형적인 마을 장승과 불교풍의 인왕상이나 사천왕상 이미지가 결합된 경우가 많지만 나주 불회사 석장승은 사찰장승이면서 마을장승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근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다.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불회사(佛會寺) 일주문, 예로부터 차나무가 많아 다도면이며 불호사(佛護寺)라고도 한다.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중국의 동진을 거쳐 법성포로 들어와 불갑사를 창건하고 이곳 불회사를 창건 후 백제의 도성으로 갔다고 한다.(김신묵 동년기자)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불회사(佛會寺) 일주문, 예로부터 차나무가 많아 다도면이며 불호사(佛護寺)라고도 한다.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중국의 동진을 거쳐 법성포로 들어와 불갑사를 창건하고 이곳 불회사를 창건 후 백제의 도성으로 갔다고 한다.(김신묵 동년기자)
▲불회사 가는 길. 불회사는 크거나 화려한 절이 아니며 오히려 숲속에 숨은 듯 작고 차분한 곳이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일주문부터 걸어 들어가는 길이 한가하고 호젓하며 그 중간에 2개의 석장승(石長丞)이 서있다. (김신묵 동년기자)
▲불회사 가는 길. 불회사는 크거나 화려한 절이 아니며 오히려 숲속에 숨은 듯 작고 차분한 곳이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일주문부터 걸어 들어가는 길이 한가하고 호젓하며 그 중간에 2개의 석장승(石長丞)이 서있다. (김신묵 동년기자)
▲불회사 앞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1호). 오른쪽 할아버지(男) 장승이 2.3m, 왼쪽 할머니(女) 장승이 1.7m인데 각각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주장군(周將軍)이라고 새겼다. 통상 남장승을 상원주장군, 여장승을 하원당장군이라 하는 것과는 반대이며 남장승의 ‘下’를 ‘上’으로 바꾸려고 했는지 누군가 덧새긴 탓에 ‘正’자처럼 보인다.(김신묵 동년기자)
▲불회사 앞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1호). 오른쪽 할아버지(男) 장승이 2.3m, 왼쪽 할머니(女) 장승이 1.7m인데 각각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주장군(周將軍)이라고 새겼다. 통상 남장승을 상원주장군, 여장승을 하원당장군이라 하는 것과는 반대이며 남장승의 ‘下’를 ‘上’으로 바꾸려고 했는지 누군가 덧새긴 탓에 ‘正’자처럼 보인다.(김신묵 동년기자)

이 불회사 앞 석장승(石長丞)은 사찰장승이면서도 전형적인 마을장승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남장승은 얼굴 조각선이 깊고 뚜렷하며 입 좌우에 치아가 각 1개씩 나와 있고 커다란 주먹코와 길게 꼰 수염이 특징이다. 여장승은 웃음기 띤 온화한 표정으로 절집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닌 친숙한 할머니 표정 그대로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즈음하여 북인사동 안국동 로터리 부근에 불회사 석장승을 본뜬 큼직한 돌장승을 세워 한국의 미를 강조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소리 소문 없이 철거 되었다. 불회사가 위치한 반대편에는 운흥사가 있었다. 신라 효공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 차(茶)로 유명한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이기도 한데 6·25전쟁 때 전소(全燒)되어 폐사지가 되었으나 최근 절집을 새로 지어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그곳 입구에도 석장승(石長丞) 2기가 서 있으니 운흥사터 돌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이다. 역시 사찰장승으로 분류되며 과거 운흥사가 꽤나 번창했었는지 진입로 밖 멀찍이 2개를 세웠는데 절집이라기보다 동네 중간에 서있는 느낌이다.

▲운흥사터 석장승, 도로변 좌우로 마주보고 있는데 왼쪽이 할아버지 장승, 오른쪽이 할머니 장승으로 불회사와는 반대로 세웠다.(김신묵 동년기자)
▲운흥사터 석장승, 도로변 좌우로 마주보고 있는데 왼쪽이 할아버지 장승, 오른쪽이 할머니 장승으로 불회사와는 반대로 세웠다.(김신묵 동년기자)
▲왼쪽 할아버지 장승은 2.7m로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새겼고 오른쪽 할머니 장승은 2.1m로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새겨져 있는데 글자 역시 불회사와는 반대로 통상적으로 쓰는 방식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왼쪽 할아버지 장승은 2.7m로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새겼고 오른쪽 할머니 장승은 2.1m로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새겨져 있는데 글자 역시 불회사와는 반대로 통상적으로 쓰는 방식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여장승은 온화한 면이 없고 웃는 모습이지만 강해 보이며 남장승은 큼직하게 위엄이 있지만 인자한 모습의 노인상이다. 역시 좌우로 치아가 2개 나와 있으며 수염은 턱밑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불회사 석장승과 전체적인 모습이나 조각수법이 비슷하다.

▲할머니 장승 뒷면에는 강희(康熙) 58년(五十八年) 이월(二月), 즉 숙종 45년(1719)에 세웠다고 새겨져 있으며 화주승(化主僧) 변학(卞學)과 목청(木廳) 별좌(別座) 김노(金老) (?)이(?)(伊)라고 하였으니 변학 스님과 목청의 별좌 김노가 주관한 것으로 추정해본다. (김신묵 동년기자)
▲할머니 장승 뒷면에는 강희(康熙) 58년(五十八年) 이월(二月), 즉 숙종 45년(1719)에 세웠다고 새겨져 있으며 화주승(化主僧) 변학(卞學)과 목청(木廳) 별좌(別座) 김노(金老) (?)이(?)(伊)라고 하였으니 변학 스님과 목청의 별좌 김노가 주관한 것으로 추정해본다. (김신묵 동년기자)

우리나라 돌장승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이곳 운흥사터 석장승은 제작연대가 뚜렷하여 돌장승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불회사 석장승도 같은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장승의 당(唐)은 사당가는 길을 뜻하며 주(周)는 꼬불꼬불한 길을 뜻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중국의 당나라와 주나라 장군들을 뜻하는 사대주의 사상이라며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서는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세우거나, 미신이다 우상숭배다 하며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도 벌어지고 한국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현실인바, 장승에 대한 문화재로서의 평가와 올바른 자리매김이 절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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