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지금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이 현실은 단지 통계상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 재가서비스, 요양시설을 가리지 않고 고령자를 돌볼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돌봄의 최일선에 서 있는 요양보호사의 고령화는 구조적인 위기를 예고한다. 2024년 기준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은 61.7세, 70대 이상 활동자는 10만 명을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 업계는 ‘외국인 인력 도입’이라는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접근은 한결같이 ‘값싼 노동력 확보’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외국인은 값싼 노동력이라는 착각
서울시는 지난해 ‘돌봄비용 완화’를 앞세워 필리핀 국적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100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필리핀 정부의 자격 인증을 받은 인력이었지만, 실제 파견된 가정의 43%가 강남 3구에 몰렸고, 일부는 임금 체불, 숙소 통금, 업무 범위 논란 등에 휘말렸다. 돌봄비용 완화는커녕, ‘강남 전용 서비스’라는 조롱을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을 유보했고, 서울시는 확대 필요성을 주장하며 중앙정부와의 갈등 속에 있다.
최근에는 대한노인회 이중근 회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얀마 간호·요양 인력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월 100만~200만 원 수준의 저임금 인력을 확보해 재가돌봄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기적 공급 확대를 위한 저임금 구인 중심 논의에 머물고 있다. 1974년생까지인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고령기에 진입할 2050년을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외국인 노동을 단지 비용 절감 수단으로 보는 시선은 아쉽다. 돌봄이란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삶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학생 제도, 매력 없는 유인구조
정부가 추진 중인 모델 중 하나는 외국인 유학생을 요양보호사로 양성하는 제도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시작된 이 제도는 대학 졸업 또는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비자를 특정활동(E-7)으로 변경해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이 제도를 통해 실제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외국인 유학생은 단 2명에 불과하다. 한국에 유학을 오는 외국인 청년들에게 요양보호사 직무는 매력적인 진로가 아니다. 자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하며 한국행을 택한 이들이 자격 취득 후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만이 보장되는 요양보호사직을 선호할 지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던진다.
참여하는 대학들의 평가지표를 봐도 그렇다. 출입국 관련한 비자 제도나 교육 내용에만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구조는 ‘취업’보다는 ‘유학’을 목적으로 한 제도에 가깝고, 실질적인 인력 유인 효과는 미미할까 우려된다.
日 EPA 제도, ‘인재’ 육성의 롤모델
이와 비교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의 EPA(경제연계협정) 제도다. 일본은 2008년부터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 협정 체결을 통해 외국인 개호(介護, 돌봄의 일본식 표현) 인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입국 전 자국에서 1년간 일본어와 개호 기초 교육을 이수하며, 이 과정의 모든 비용은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 항공료, 교재비, 숙소, 일당까지 포함된 전면적 지원 체계다.
입국 후 이들은 일본의 개호시설에 배치돼 실무를 쌓고, 개호복지사(우리의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의 중간 성격인 자격제도) 국가시험에 응시한다. 합격 시에는 ‘개호’ 자격으로 체류자격을 변경하고 일본인과 동일한 임금과 지위를 보장받는다. 불합격 시에도 최대 5년까지 체류가 가능하며, ‘특정기능 1호’ 자격으로 개호 근무를 지속할 수 있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 내 정규직 개호 종사자의 평균 초봉은 약 260만 원 정도다. 일반적으로 경험이 쌓이면서 연봉은 매년 인상되며, 지방으로 갈수록 급여수준은 높아진다. 개호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면 초봉은 300만 원 수준으로 인상된다. 일본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여, 외국인 개호인력에게도 일본인과 동등한 수준의 처우를 제공한다.
EPA 제도의 실무를 진행하는 JICWELS(국제후생사업단)의 이나가키 키이치 수용지원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EPA는 고용이 아니라 협력 프로그램이다.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보다 ‘어떻게 존중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제도가 일본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철저한 준비와 인재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고령자나 가족들과의 표면적인 갈등이 많지 않은 것도 존중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시행착오로부터 배운 것이다. 말 그대로 고령사회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셈이다.
NHK의 다큐멘터리 ‘介護人材の未来(돌봄 인재의 미래)’에서는 외국인 인력들이 일본의 각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자격 취득 이후 중간관리자로 성장해가는지의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일본인 동료와 협업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례들은 “성장 가능한 돌봄 인재”라는 관점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장 가능한 인재’를 위한 제도 설계
우리가 외국인 돌봄 인력을 필요로 한다면, 단지 사람을 ‘수입’할 것이 아니라 길러야 한다. 동남아 국가에 무한정한 인적 자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고령화 문제를 앓고 있고,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 성향 등을 고려하면 이 동북아 국가들이 선호하는 돌봄 인력 공급국도 제한적이어서 앞으로는 ‘인력 확보 경쟁’도 예상된다.
한국만의 유인 요인, 다시 말해 ‘한국형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최저임금 지급’이 아닌, 자격을 갖추면 안정적 체류와 경력 설계가 가능한 길을 열어줘야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발판 삼아 사회복지사 등으로 성장하고 자신만의 돌봄 시설을 개업할 수 있는 커리어 경로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노년 세대를 외국인에게 맡기는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긴 시행착오를 겪고, 고령자와의 문화적 충돌을 조율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를 참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몇 명을 데려올 것인가' 혹은 ‘얼마에 데려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할 것인가'다. ‘임금’이 아니라 ‘능력’을 기준으로, ‘인력’이 아니라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돌봄의 미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