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재봉틀

기사입력 2018-09-20 10:34 기사수정 2018-09-20 10:34

[남궁옥분과 수다, 남궁옥분 가수다]

▲엄마의 애장품 재봉틀. 백 년이 다 됐을 텐데도 아직 멀쩡하다.(남궁옥분 제공)
▲엄마의 애장품 재봉틀. 백 년이 다 됐을 텐데도 아직 멀쩡하다.(남궁옥분 제공)

백 년이 넘었을 재봉틀!

엄마가 물려받아 쓴 세월~

1923년생이신 엄마의 연세로 볼 때

엄마 손때가 묻은 재봉틀의 나이가

미루어 짐작건대 최소 70년은 됐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엄마 신경균 여사의

손때 묻은 유품이자

제 어린 시절 장난감이기도 했던 손재봉틀….

골동품 시장에서

높은 가격도 아니고

흔히 만날 수 있는 재봉틀이지만

제겐 돈으로는 환산되지 않는 보물이기도 하고

대를 물린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발재봉틀 있는 집이

양손을 쓸 수 있어서 부러웠던 적도 있었고

전기미싱이 나왔을 때

완전히 밀리는 게 아닐까 하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했던 재봉틀!


하지만

초저녁 잠 많은 우리 엄마를

잡아두었던 나쁜 녀석!

왼손잡이 우리 엄마를 배려하지 않은 채

오른 쪽에 돌리는 게 있어서

길들이느라 고생하셨을 걸 생각하니 괘씸한 녀석!

수많은 밤

일에 지쳤는데도 옷가지를 고치고 만드느라 쉴 시간까지 빼앗아가며 잡아두었던

인정머리 없는 녀석!

재봉틀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쪽잠 자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만들어내시던 엄마의 손재주는

고스란히 제가 물려받았지요.

그러하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재봉틀이기도 하답니다.


재봉틀에 대해 떠오르는 희미한 제 첫 기억은

5~6세 무렵입니다.

작은 나무뚜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바쁠 때도 언제나 쉬는 손을 제게 주셨던…

혼자 낑낑대는 저를 밀어주셨던 기억!


조금 커서는

엄마 앞에 앉아서 넘어오는 옷감을 잡아서 삐뚤어지는 걸

도와드린 일~

그러다 보니

고추북에

복잡하게 실 꿰는 것도 일찍 터득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저도 가끔 재봉틀을 사용해

인형 옷도 만들어 입히고

운동회 때는 광목으로

덧신을 만들어서 신곤 했답니다.


광목 덧신이라 하니

무슨 임진왜란 때 얘기 같겠지만

아마도 제 또래 분들은 이 같은 추억이 있으시리라!


이렇게

곁에 두고

엄마를 느낄 수 있는

재봉틀은 저도 애용했던지라

제 추억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봉틀은

일 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돌려주지만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제 차방에서 벌거벗은 채 앉아 빛나는,

우리 엄마 숨결이 담기고

추억이 담긴

남들에겐 그저 고물로

보일지라도

제겐 보물입니다.


엄마는 오늘

재봉틀과 함께 이렇게

제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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