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9

말레이시아, 실버경제 주목 ‘은퇴자 전용 소액금융 도입’

입력 2026-07-29 13:55

“노인은 복지 대상 아닌 경제 주체”

말레이시아, 은퇴자 전용 소액금융 도입

한국은 일자리, 재취업 중심...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노년층의 경험과 소비력, 창업 의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실버경제’가 세계 각국의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말레이시아는 최근 은퇴자가 사업을 시작하거나 키울 수 있도록 전용 소액금융 제도를 도입했다. 노인을 보호해야 할 대상에서 경제활동의 주체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프라빈 페리아사미 말레이시아철학회 사무총장은 말레이시아 국영통신사 베르나마에 “실버경제를 선도할 준비에 나선 말레이시아. 고령층의 경제 참여를 국가 성장전략에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칼럼을 통해 “은퇴자들이 사업을 하고 싶어도 자금과 신용에 접근하기 어렵다. 실버경제에 대한 투자는 고령층의 삶을 지원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령인구 8% 말레이시아, 은퇴자 창업에 투자

말레이시아 통계청(DOSM)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인구는 약 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전년대비 0.4%p 높아진 수치다. 60세 이상 인구 역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과 비교하면 아직 고령화 수준은 낮은 편이나, 저출생과 기대수명의 증가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020년 10억 명에서 2030년 14억 명, 2050년에는 21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층을 경제활동에서 배제하면 노동력과 소비시장이 함께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베르나마 칼럼의 진단이다.

말레이시아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은퇴자 창업’이다. 오랜 경력과 기술을 갖춘 은퇴자 가운데 사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소득과 담보 부족 등으로 일반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퇴직기금공사(KWAP)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60%가 은퇴 후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고, 그 주된 이유로 ‘소득 보충’을 꼽았다.

이에 KWAP는 올해 2월 은퇴자 전용 소액금융 프로그램인 ‘자나 마이페사라(Jana MyPesara)’를 출범했다. 투입 예산은 2000만 링깃(약 71억 2180만 원)이며, 최대 3만 링깃(약 1068만 원)까지 사업자금을 지원한다. 프로그램은 30년 이상의 소액금융 경험을 보유한 아만나 이흐티아르 말레이시아(AIM)가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다만 이 제도는 모든 은퇴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구 월소득 5880링깃(약 209만 원)이하 또는 1인당 월소득 1470링깃(약 52만 원) 이하인 공공부문 여성 은퇴자가 지원 대상이며, 소득·연령 조건을 충족한 여성이 우선 신청 자격을 가진다.

남성 은퇴자는 직접 신청할 수 없고, 여성 가족구성원을 통해서만 대리 신청이 가능하다. 즉 자나 마이페사라는 저소득 여성 은퇴자의 경제적 자립을 겨냥한 표적형 제도로 은퇴자 전반을 아우르는 보편적 지원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창업교육과 멘토링, 공동체 기반 관리, 정기적인 사업 점검도 함께 제공한다. 금융 접근성과 사업 역량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되는 제13차 말레이시아계획과도 맞닿아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이들이 은퇴 후에도 생산성과 경제적 자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버경제를 국가 차원의 성장 분야로 육성할 방침이다.


한국, 일자리는 늘렸지만 ‘은퇴자 창업금융’은 부족

한국은 말레이시아보다 고령화가 훨씬 앞서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인구는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했다.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정책의 무게중심은 현재 ‘고용 유지와 재취업’에 놓여 있다. 정부는 2026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역대 최대인 115만 2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2025년 대비 5만4000개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시니어인턴십과 민간 취업 연계 등을 포함한 취업·창업형 일자리는 24만 6000개로, 전체의 약 21%에 해당한다. 실버카페·도시락 제조 등 소규모 사업을 공동 운영하는 공동체사업단(6만 5000개)은 이와는 별도로 집계된다.

고용노동부는 중장년내일센터를 확대하고, 중장년 특화 직업훈련과 경력지원제도를 강화했다. 정년 연장·폐지 또는 퇴직자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중소·중견기업에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도 지급한다. 창업진흥원의 중장년 기술창업센터에서는 교육과 입주 공간, 멘토링, 사업화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원은 취업 알선이나 직업훈련, 기술 중심 창업보육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은퇴자의 소득·신용 특성을 고려해 소규모 생활형 창업자금을 공급하고, 교육부터 경영관리까지 연결하는 전용 금융제도는 뚜렷하지 않다. 지원사업도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개인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제도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노인을 위한 시장 넘어 ‘노인이 만드는 경제’로

말레이시아의 자나 마이페사라는 지원 대상이 공공부문 저소득 여성 은퇴자로 한정된 초기 사업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해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은퇴자를, 그것도 금융 접근성이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복지 수혜자가 아닌 투자와 금융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도 노인 일자리의 수를 확대하는 단계를 넘어, 축적된 경력과 기술이 지속 가능한 소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액 창업자금과 사업성 검증, 디지털·회계 교육, 판로 지원, 폐업과 재도전을 아우르는 사후 관리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실버경제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노년층이 직접 일하고 소비하며 사업을 만들어가는 경제까지 포함한다. 고령화를 비용으로 볼 것인지, 새로운 성장자원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에 따라 초고령사회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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