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컬처 키워드] 대기만성 스타의 눈물과 영광

기사입력 2017-12-18 10:19 기사수정 2021-08-20 16:15

“방송이 너무 안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간절하게 기도했지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개그맨으로서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어요.”

한국 예능계의 최정상에 올라 예능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스타 유재석(45)의 말이다.

“칸 영화제에 오는 것은 배우로서 로망이다. 연기자로서 오래 일했지만, 칸에 온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다. 꼭 벼락 맞은 것 같다. 마치 70도 기운 고목에 꽃이 핀 기분이다.”

5월 20일 70회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에 선 중견 배우 변희봉(75)이 한 말이다.

연예계에는 한 작품 성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다 이내 사라지는 벼락 스타가 적지 않다. 노래 한 곡 히트로 반짝 스타가 됐다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가수도 있다. 물론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거성(巨星)도 있다. 그리고 유재석과 변희봉처럼 오랜 세월 무명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스타 반열에 오른 대기만성 스타도 있다. 최근 들어 대기만성 스타들이 대중문화계에서 맹활약하며 경쟁력 있는 연예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1년 KBS 1회 ‘대학개그제’ 입상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하며 남희석, 김국진, 김용만 등 동기의 화려한 스타 부상을 묵묵히 지켜봤다. 7~8년 동안 발버둥을 쳤는데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바로 유재석이다. “노력과 실력 부족으로 저에게 온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절망도 했지요. 게스트 등 작은 역할이라도 전력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임했지요. 그러다 보니 대중과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지요.”

짧지 않은 무명생활을 하며 고생을 하다 스타가 된 유재석은 스캔들 한 번 내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항상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노력으로 10여 년 넘게 최고의 예능 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소원이 이뤄지고 난 후 만일 내가 초심을 잃고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이룬 것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다짐했습니다.”

유재석이 무명생활 탈피 이후에도 방송활동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다.

최고의 연기력으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스타가 김명민(45)이다. 김명민 역시 오랜 무명생활을 견뎌내고 스타가 된 대기만성 배우다. “무명일 때 매니저와 코디가 없어 의상 등을 직접 구해 드라마 촬영장에 갔더니 PD가 출연자가 바뀌었다며 집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자괴감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무명의 고통과 가장의 책임 때문에 꿈을 접고 이민까지 갈 생각을 했지요.”

10여 년 동안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무명의 설움을 겪었던 김명민. 그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혼신의 연기로 시청자의 박수를 받고 연기대상을 거머쥐며 스타가 됐다. 스타가 된 뒤에도 볼펜을 물며 발성 연습을 하고 캐릭터 소화를 위해 20kg 이상을 감량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김명민은 “무명의 고통이 저를 늘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작품에 임할 때 무명 시절을 생각하며 열심히 합니다”라고 말했다.

1966년 MBC 성우로 출발해 연기자로 전업한 중견 배우 변희봉은 대기만성 스타의 전형을 보여준다. 변희봉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줬으나 비중 있는 배역을 맡지 못해 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드라마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등에서 잡범 등 악역을 연기하고 사극에선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대중의 환호를 받지 못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수많은 작품을 소화하며 연기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이름 없는 중견 연기자는 생계의 위협을 받고 배우 자존심에 상처받기 일쑤다. 변희봉 역시 그랬다. 1990년대 후반 IMF로 방송사들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중견 연기자를 기피하는 바람에 변희봉을 한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다. 변희봉을 재발견하고 스타화를 이끈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변희봉은 비로소 대체불가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옥자>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섰다. 3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무명의 고통을 견딘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을 만난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오랫동안 아웃사이더 연기자로 살아왔기에 시청자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라며 웃는다.

요즘 <동상이몽2>에 남편 우효광과 함께 출연하고 있는 배우 추자현(37) 역시 파란만장한 연기 인생을 살아온 대기만성 스타다. 1996년 드라마 <성장느낌 18세>로 데뷔한 뒤 <카이스트> 등에 출연해 중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시청자와 관객에게 존재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해 스타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점차 배역의 비중이 떨어지고 출연 기회가 줄어들었다.

“출연 기회가 줄면서 연기자로서 자신감도 사라지고 배우로서 위기감을 느꼈어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죠. 중국 진출은 배우로서 마지막 몸부림이었어요.”

중국으로 건너가기 직전 추자현이 한 말이다. 그녀는 혈혈단신 중국으로 건너가 맨땅에 헤딩하며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연기 스타일을 익히며 닥치는 대로 오디션에 임했다. 2005년 <대기영웅전>을 시작으로 중국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한류 스타로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것이 아니잖아요. 무명 연기자로 중국에 건너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단역부터 출발했지요. 힘들고 서러워 많이 울기도 했어요.”

추자현은 2011년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아내의 유혹>의 중국판 드라마 <회가적 유혹(回家的誘惑)> 주연을 맡아 한국과 중국에서의 길고 긴 무명 배우의 설움을 털어내며 스타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회당 1억원을 받는 한류 스타로 화려하게 비상한 추자현은 “한국과 중국에서 관심을 받는 것이 꿈만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초심을 잃지 않고 배우로서 임하는 작품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대기만성 스타들은 죽음보다 더하다는 무명의 설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정상에 오른 만큼, 탄탄한 실력은 물론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까지 갖춰 경쟁력 있는 스타로 군림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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