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사는 친구 김 형에게

기사입력 2019-08-30 09:10:09기사수정 2019-08-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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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박희채 박사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김 형,

입추와 말복이 지났으니 여름이 계절의 방을 빼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 유독 더웠던 작년 여름과는 달리 올여름은 그래도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네. 가는 여름이 아쉬워서일까. 오늘따라 매미 우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는군.

김 형이 정년퇴직하고 한일 관계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동경으로 간 지 벌써 3년이나 되었군.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오늘 문득 헤아려보고 놀랐네.

조금 전, 다음 달에 동경에서 열기로 했던 문화행사가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네.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쉬움이 남네.

한일 간의 문제는 문제 그 자체로 역사가 이뤄져왔다는 생각이 드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자체가 바로 역사가 되었다는 말이지. 우리나 그들이나 조상들이 저질러놓은 사건의 파편들 때문에 후손들이 아픈 형국이 되었군그래.

나의 부친은 19세에 결혼하셨는데. 이듬해에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네. 신혼의 단꿈을 꾸기도 전에 평양에 있는 일본 군사교육장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일본 이이치 현(愛知縣)에서 1년 넘게 고생을 하시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네.

올해 98세이신 아버지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이 있은 후, 가끔 후속 조치가

안 나왔느냐고,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했으면 그 이후는 우리 정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신다네. 답답하신 거지.

급부상한 중국으로 인해 3위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으니, 여전히 경제대국 아닌가. 이런 나라가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것 같네.

이 조치를 우리 정부는 경제보복이라고 하고, 일본 정부는 ‘신뢰관계의 훼손’이니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하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이 경제보복에, 당장은 뾰쪽한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라네.

오늘날 글로벌 산업사슬의 구조상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에 따른 국제 분업체제에서 세계 기술대국 일본을 배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 현재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력은 우리가 어떤 비장한 각오를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야.

최선의 방법은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으니 차라리 사법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 즉, 청구권협정 제3조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결하거나, 유엔의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양국이 공동 제소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보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 공동 제소는 일본이 응해야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제소를 요청하면 현재 자기들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일본으로서는 당연히 응하지 않겠는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양국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이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 하여금 공정한 결정을 하게 해보자는 것이지.

그리고 한일 관계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대상을 잘 분별하는 일이라고 보네. 일본 정부가 하는 짓은 미워도 일본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우리가 대항해야 할 대상은 아베 정권이지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말이야. 내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지내는 일본인들은 정직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인데 어떻게 저런 옹졸한 정부가 탄생했는지 모르겠네.

이번 한일 간의 사건 대응 태도를 보면서 유태인들에게서 지혜를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네. 나치에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마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신들이 나치에게서 당한 과거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것이라네.

세계를 움직이는 유태인들의 성숙하고 서늘한 지혜가 느껴지지 않나.

과연 우리는 유태인들이 나치의 만행을 용서한 것처럼 일본의 만행을 용서할 수 있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대원칙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의 부친께서 피해 당사자이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

그리고 일본과의 크고 작은 현안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단기적으로는 외교적으로 해야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친일파를 양성해 일본과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과거의 친일파가 청산의 대상이었다면 현재나 미래의 친일파는 육성해야 할 소중한 인적 자원이라는 말이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의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일세.

여러 사정상 내가 일본에 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으니, 알밤이 떨어질 때쯤 고향에 한번 다녀가게. 지난번 귀국 때 만나지 못했지만 부인께도 안부 전해주게.


박희채 마음디자인학교 대표

외교부에서 외무공무원으로 30년 이상 재직했으며, 프랑스, UAE, 가봉, 리비아, 헝가리, 캐나다, 수단 등의 국가에서 재외공관 근무를 했다. 현재 마음디자인학교 대표이사로 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장자의 생명적 사유’, ‘다니니까 길이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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