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열일곱 번째 주제는 ‘유럽’이다.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현지에서 느낀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1 ‘밀라노 대성당 아저씨’. 패션의 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신사분. 대성당을 배경으로 멋들어진 사진이 완성됐다.
2 ‘할리데이비슨 아저씨’. 밀라노를 구경하며 걷던 중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이 눈에 띄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우리는 여행자와 현지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사진작가와 모델로서 교감했다.
3 ‘피렌체 포토그래퍼’. 이탈리아 피렌체 길거리에서 만난 백발의 신사분은 자신도 포토그래퍼라고 했다. 사진을 메일로 보내자 그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4 ‘바리 러닝 아저씨’. 이탈리아 바리 해변을 따라 러닝을 하고 계셨다. 건강하고 젊게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프랑코 마제티’. 피렌체 큰 다리 앞에서 만났다. 살짝 타이트한 셔츠 핏과 완벽히 계산된 듯한 바지 핏, 이탤리언 패션의 정석이었다. 촬영을 마친 후, 그가 인스타그램 팔로어 17만 명을 보유한 유명 패션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6 ‘프랑크푸르트 멋쟁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재즈 패스티벌에서 인파 사이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촬영 제안에 그는 죄송하다며 거절했다. 내 작업물을 보여주자 그는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게 찍는 것은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분과 멀어진 다음 최대한 몰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줌 렌즈를 단 카메라였으니, 그도 어느 정도 인식했을 것이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다섯 번째 주제는 ‘넥타이’다.
1 ‘반스 아버님’. 그분의 화려한 옷차림에 매료돼 용기 내어 “아버님, 정말 멋지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버님은 시크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라고 짧게 대답한 후,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셨다. “사진 보내드릴까요?”라는 질문에도 “그냥 써”라고 답하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아버님의 독특한 패션 감각과 여유로운 태도는 잊지 못할 기억이다.
2 ‘빨강 슈트 아버님’. 동묘를 걷다가 길모퉁이에 서 돈을 세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강렬한 빨강 슈트, 그리고 고급스러운 넥타이였다. 아버님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는데, 그의 삶과 이야기 일부를 기록하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의 따뜻한 눈빛과 차분한 목소리는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3 ‘반소매 셔츠 아버님’. 알록달록 꽃이 핀 아버님의 넥타이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4 ‘멋쟁이 아버님’. 동묘가 런웨이인 듯한 착각을 안겨준 멋쟁이 아버님. 독특한 패턴의 넥타이가 멋을 더한다.
5 ‘노랑 슈트 아버님’. 화려한 노랑 슈트를 입은 아버님. 넥타이는 차분한 톤으로 균형을 잡아준다.
6 ‘영국 신사 아버님’. 양복점 앞에 계신 아버님은 영국 신사를 떠올리게 했다. 여러 색의 옷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7 ‘핑크 아버님’. 재킷, 셔츠, 넥타이까지 핑크 톤으로 통일한 아버님의 패션 센스가 엿보인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네 번째 주제는 ‘안경’이다.
1 ‘전경일 작가님’. 중절모와 콧수염이 인상적이어서 촬영 요청을 했다. 알고 보니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님이었는데, 꼭 쿠바에 가보라고 조언해주셨다. 한국과는 또 다른 낭만을 발견할 수 있다고.
2 ‘꼬꼬방 사장님’. 드럼 치는 사장님을 보고자 ‘꼬꼬방’을 찾았다. 그곳 분위기는 ‘화끈하다’란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어머님은 50세 넘어 드럼 연주를 배웠고, 단순히 돈이 아닌 재미와 열정 때문에 가게를 운영한다고 전했다.
3 ‘조현종 작가님’.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는 아버님은 유화 작업을 하는 작가님이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괜히 느껴진 게 아니었다.
4 ‘민호근 아버님’. 지팡이를 100여 개 보유하고 스타일에 맞춰 들고 다니시는 분이다. 이날의 의상 콘셉트는 ‘올 레드’로 보이는데, 단연코 안경이 가장 강렬하다.
5 ‘BTS 어머님’. BTS 팬클럽 ‘ARMY’(아미) 어머님을 통해 한류 열풍을 새삼 느꼈다.
6 ‘꽃가방 어머님’. 손에 고이 든 꽃가방뿐 아니라 재킷, 안경알까지 분홍색으로 눈길을 끈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세 번째 주제는 ‘셔츠’다.
1 ‘초록 가방 어머님’. 멀리서부터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셔츠와 주름치마를 매치한 패션이 개량한복 같기도 한데, 전혀 촌스럽지 않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2 ‘배태암 아버님’. 아버님은 건축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당시 매고 계신 넥타이도 한국에 ‘YSL’(생 로랑)이 처음 들어왔을 때 구입하신 것이라고 한다.
3 ‘원피스 어머님’. 청 소재 셔츠 원피스에 레이스 원피스, 밀짚모자를 매치한 어머님을 보니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4 ‘반지 아버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화이트 패션을 소화하신 아버님. 그래서일까, 손가락에 낀 알록달록한 반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5 ‘덕수궁 어머님’. 패션의 기본은 블랙 앤드 화이트라고 하지 않나. 깔끔하고 클래식한 패션이 덕수궁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분이다.
6 ‘멋쟁이 아버님’. 과거 TV 방송에 ‘멋쟁이 아버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노년의 멋이란 젊은 사람이 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 ‘첼시 부츠 아버님’. 추운 겨울, 첼시 부츠와 바지 핏이 멋져 보여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만난 아버님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계셨다. 단지 긴소매 셔츠가 반소매 셔츠로, 갈색 첼시 부츠가 빨간색 첼시 부츠로 바뀌었을 뿐이다. 패션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 찾기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두 번째 주제는 ‘니트’다.
1 ‘김우일 작가님’. 어느 날 길을 걷다 꽃 모양 자수가 인상적인 재킷을 입은 분이 눈이 띄었다. 사진 요청에 그분은 “너 진짜 운이 좋아. 나도 사진 찍는 사람이야”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알고 보니 1세대 광고사진 작가인 김우일 작가님이었다. 여전히 노출과 핀에 대해 고찰한다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시간의 대화는 선물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2 ‘스트라이프 아버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는 스타일링이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프 니트와 양말 색깔을 맞추셨는데, 패션 센스가 엿보인다.
3 ‘주황 카디건 어머님’.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원색으로 멋을 낸 어머님의 패션은 봄나들이 갈 때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동묘 칼라 카디건 아버님’. 카디건을 재킷처럼 매치해 전체적으로 댄디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5 ‘다홍색 조끼 아버님’. 가까이서 보니 조끼 안의 니트에는 영국의 빅벤 시계탑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영국 감성의 패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 ‘맨투맨 아버님’. 한눈에 봐도 이 구역의 패셔니스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맨투맨 니트와 함께 레드로 포인트를 준 패션이 멋스럽다.
7 ‘동묘 흰색 카디건 아버님’. 패션 트렌드인 올 화이트(All-White) 룩을 소화하셨다. 카디건 문양이 심심할 수 있는 패션에 포인트가 됐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의 일부를 옮겨 싣는다. 두 번째 주제는 모자다.
1 ‘노랑 아디다스 모자 아버님’.
2 ‘목토시 아버님’. 독특한 모자 덕분에 첫인상은 훈장님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낙원상가 앞 길거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동의를 구하고 가까이서 사진을 촬영했는데, 모자의 정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모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모자가 아니라 목토시였던 것. 어쩌면 패션은 일상 속 작은 시도로부터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3 ‘아디다스 할아버지’. 아디다스 브랜드 로고가 박힌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가방까지 맞춰 든 모습이다. 게다가 요즘 1020에게 가장 인기 있는 운동화인 나이키 에어포스까지.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왜 이 옷을 골라 입었는지는 구태여 여쭙지 않았다. 멋진 취향을 내가 직접 촬영해 남겼다는 점이 중요하니까.
4 ‘밀리터리 벙거지 아버님’.
5 ‘히피 아버님’. 그의 옷차림은 1960~70년대에 평화와 사랑을 외치고 반전(反戰)을 요구했던 히피(Hippie)를 연상시킨다. 긴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와 꽃무늬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거나 불을 피우며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면 지금도 자유분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히피 아버님은 막연한 상상 속 인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 같았다. 그의 모습에 매료된 나는 용기를 내 촬영에 대한 동의를 구했고, 시대의 흔적을 패션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세상은 늙음을 가리켜 ‘지루하고 멋지지 않다’고 말한다.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패션은 오롯이 젊음의 몫인 양 분리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의 무언가를 칭할 때 ‘Old-fashioned’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여기에 젊은 작가가 반기를 들었다. 김동현(30) 사진작가는 노인 ‘스트리트 패션’을 필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접하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참 멋있다.’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이다. 젊은 세대의 유행에서 시작되는 영역이라, 수많은 잡지를 장식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는 옷차림에 신경 쓴 청년들이 가득했다. 노인과 묶어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동현 작가는 2019년 동묘에서 우연히 그럴 기회를 얻었다. 가볍게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멋진 할아버지를 찍게 된 것. 그는 젊은 멋쟁이 사진을 찍던 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시니어의 스트리트 패션을 주구장창 찍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국내에선 단발성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그가 최초다.
‘나만 찍을 수 있다’는 확신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다.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간다.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넨다. “저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선생님 사진을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둔 사진 중 피사체로 점찍은 분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라 보여드린다. 운 좋게 허락이 떨어지면 신중히 촬영을 한다. 촬영 후에는 초상권 사용 허가와 출판에 대한 동의를 무조건 받는다. 혹 촬영한 다음이라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진은 폐기한다.
그의 연장은 필름 카메라다. 필름 위에 사진 36장을 다 찍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생각이다. 필름 카메라 사진의 투박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멋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다. 인화한 사진은 선물하거나, 사진 파일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다. 이 모든 과정이 사진 촬영의 과정이자 소통이라고 생각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는 촬영 날짜와 ‘디올 어머님’, ‘힙스터 아버님’, ‘부족장 아버님’ 같은 별칭으로 기록된 멋쟁이 노인들이 빼곡하다. 가끔은 ‘오늘 옷을 멋지게 입었는데 촬영하러 나오지 않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2021년에 유명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에서 연락을 받고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작업했어요. 걸어 다니는 그 잠깐 사이에 피사체를 놓칠까봐 자전거를 타고 다녔죠. 동묘앞역에서 시작해 남대문, 청계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사거리를 매일같이 다녔어요. 마땅한 벌이가 없던 때라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200번 거절당하면 10장은 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거리에 나갔어요.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죠.”
이렇다 할 경력이 없던 그가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고난의 길 그 자체였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동대문 창고에서 짐을 날랐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촬영하는 데 썼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에게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사진을 ‘나만큼 노력해서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워가는 결과물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사진 몇 장으로 동묘가 한순간 ‘힙’의 성지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금 확신을 얻었다. 2018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동묘의 어르신들 사진 몇 장과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best street in the world)라고 적어 올리자 언론이 해당 소식을 일제히 퍼 날랐다. 그렇게 동묘는 새로운 패션의 성지로, 노인의 패션이 ‘힙’한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동묘는 ‘고루한 노인들만 모여 있는 동네’이고, 그곳의 패션은 ‘멋지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낯선 거리를 흥미롭게 여겼던 유명한 외국인의 게시글 하나로 인식이 한순간에 뒤집혔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나도, 내 작업물도 언젠가 빛을 보겠구나.”
3년이 넘어가는 요즘도 운이 좋아야 하루에 서너 명의 어르신을 찍는다. 주말 내내 사진 한 장 못 건질 때도 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특성상 처음 보는 일반인을 붙들고 사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탕 치는 날이 많다. 하지만 김동현 작가는 굴하지 않고 서울의 멋쟁이 노인들을 찾아 주말마다 거리로 나선다.
젊음은 따라 할 수 없는 ‘멋’
그가 피사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젊은 사람도 공감 가능한 스타일(왼쪽 사진)이거나 스타일에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질 때(중간 사진), 혹은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면(오른쪽 사진) 섭외를 시도한다. 세 번째는 스타일만큼 성격이나 주관이 단단한 분들이 많다. 맷집과 시간을 무기로 내세우는, 수천 번 거절당해본 김 작가도 섭외하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대 시도하지 않을 천연색 정장, 과감한 단청 무늬 티셔츠 차림은 작가로서 가장 욕심나는 피사체다. 또 한 번 거절당할 각오를 하며 명함을 내밀 수밖에.
젊은 사람 눈에도 멋있어 보이고, 누가 봐도 신경 썼음이 느껴지는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거울 앞에서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지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어떤 양말을 신을지’, 혹은 ‘오늘 입은 옷에는 어떤 형태의 모자를 써야 좋을지’. 웬만한 20대보다 옷 잘 입는 어르신들을 수두룩하게 만난 그로서는 나이 듦으로 멋의 유무를 구분 짓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나이 듦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하는 어른을 존경한다. 그래서인지 6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옷에 대한 태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추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멋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당당한 자세를 취한 노인들의 사진은 공연한 걱정을 지운다. 멋짐은 나이가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제 사진 속 어르신들은 지금보다 힘든 시절에도 옷차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분들이에요. 지금보다 패션을 등한시하던 시대, 남들과 다르면 눈총을 받던 시대를 살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거죠. 그건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에요. 젊은 사람은 옷을 똑같이 따라 입는다 해도 따라갈 수 없죠. 옷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반평생 패션에 진심인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3년, 6000장의 멋, 그 이상을 위하여
그는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패션 세계를 개척해나갔던 친할머니 덕분이다. 김동현 작가의 친할머니는 ‘교통비를 아끼려 2km를 걸어 다니더라도 고급 모피 코트를 사서 입을 줄 아시는 분’이었다. 작은 돈은 아껴도 옷은 좋은 것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이르던 멋진 할머니 덕분에 옷을 챙겨 입는 즐거움을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미디어는 노인을 지루하고 추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항 없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김동현 작가가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과 달랐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반박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가장 젊다고 여겨지는 영역인 패션 산업을 이끄는 건 나이 든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수장, 디자이너들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이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명품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어요. 우리는 젊은 사람이 입는 옷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옷은 나이 든 사람이 디자인한 결과물이에요. 그런데도 패션은 젊음의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누가 봐도 멋있다고 느낄 사진을 찍었다. ‘멋’(mut_jpg)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짤막한 대화를 갈무리한 글과 함께 사진을 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노인이 멋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찾는 사람들, 사진의 좋아요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해 5월 그는 첫 사진집 ‘멋’(MUT : the fasion of Seoul)을 냈다. 2019년부터 3년간 촬영한 약 6000장의 사진 중 400여 장을 추려서 책으로 출판했다. 사진집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였다.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김동현 작가의 목표가 반영된 것. 책을 제작하기 위해 한 달간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액인 200만 원을 훌쩍 넘긴 2225만 원이 모였다. 책을 내고 나서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영국 ‘가디언’지가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취재해 갔고, 지난 11월에는 영국 TV 방송사 채널5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우리나라의 시니어 패션을 직접 알리기도 했다.
그의 꿈은 현대 패션사(史)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의 사진과 ‘멋 작가’를 알리기 위해 모든 인터뷰에 응했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해에는 해외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올해 안에 ‘멋’ 사진집을 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시니어 헤어스타일 아카이빙 북 제작을 위한 촬영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동묘 스타일’에 세계가 반할 날이 머지않았다.
● Exhibition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무는 자리
일정 10월 24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지난 50년간 건물의 외부와 실내의 경계, 그리고 실내에 빛이 머무는 자리를 그려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해외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미스티’, ‘비밀의 숲’ 등에 아트 프린트가 소개돼 인기몰이를 한 ‘황혼에 물든 날’(Long golden day)의 오리지널 유화 작품과 마이아트뮤지엄 의뢰로 제작한 신작 3점을 포함해 2~3m 크기의 대형 유화와 파스텔화도 소개한다. 이외에도 작가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작품 8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소재와 인공 소재의 대비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은 빛과 물, 바람이 어우러진 청량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를 운영해 작품의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어린이 대상 키즈 아틀리에와 시즌 이벤트 프로모션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일정 2022년 2월 6일까지 장소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거리의 아트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행동하는 예술 세계를 관객들과 공유할 체험형 전시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다. 뱅크시는 사회·정치적인 문제와 예술의 허례허식, 미술계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도둑 전시와 길거리 그림 판매, 아트 테러, 다큐멘터리 연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잠식된 예술계를 조롱했다. ‘뱅크시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 그가 누군지 안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뱅크시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러한 익명성 덕분에 불평등하고 억압된 세상에서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담아 표현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 칭해온 뱅크시는 디스토피아 같은 장소에 그래피티 예술을 그려 넣음으로써 우리가 처한 현실을 풍자한다.
● Book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시공사)
늙어가는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치매’다. 자식에게 끝을 알 수 없는 부담을 지게 하는 건 어떤 부모든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 노부토모 나오코의 어머니도 그랬다. 완벽한 주부이자 자랑스러운 어머니였던 그녀는 딸에게 뜻밖의 새해 인사를 전한다. “올해는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상감독인 노부토모 나오코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애틋한 나날을 기록한 에세이다. 치매 전후로 질병 당사자, 가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생활이 어떻게 바뀌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책은 치매를 슬프고 비참한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치매 진단을 받은 85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돌보는 아버지. 딸은 카메라를 통해 부모님을 바라보며 비참했던 일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치매 할머니와 귀먹은 할아버지의 맞물리지 않는 어긋난 대화는 훈훈하고 사랑스럽게도 느껴진다.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아버지가 간병에 뛰어들며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던 노부부는 사회와 다시 연결된다. 이 과정을 시간 순으로 전개하는 이 에세이는 우리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와 질병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편, 가족과 돌봄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저자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인간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저자의 간병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의 인생이 질병으로 정의되거나 기억될 수 없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고 약해지며, 결국 서로에게 의존해야 하는 연결된 존재라는 걸, 간병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상호 돌봄이라는 걸 알려준다.
◇보험, 인문학에 빠지다 (이경재 저·바른북스)
보험은 이제 필수품이 됐지만 아직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 30여 년 동안 보험을 연구하고 강의한 저자가 보험을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보험의 새로운 가치를 알려준다.
◇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마거리 애트우드 외 28인·인플루엔셜)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액자 소설 ‘데카메론’이 사람들을 위로했다. 700여 년 전 ‘데카메론’을 재현하기 위해 ‘뉴욕타임스’가 세계 각지 작가들의 단편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김영사)
한국인 최초 밀라노 패션 유학생, 이탈리아 정부 명예기사 작위 수여자, 구독자 87만 유튜버 밀라논나의 인생 내공을 담은 에세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위안과 희망의 언어를 전한다.
● Stage
◇하데스타운
일정 9월 7일~2022년 2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박소영
출연 조형균, 박강현, 시우민, 최재림, 강홍석, 김선영 등
제73회 토니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제62회 그래미어워즈 최고 뮤지컬 앨범상에 빛나는 최고의 무대가 한국에서 최초로 펼쳐진다. 극작과 작곡·작사를 맡은 아나이스 미첼의 동명 앨범을 극으로 만든 ‘하데스타운’은 2016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후 뮤지컬 애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작품이 됐다.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 사계절 중 봄과 여름은 지상에서, 가을과 겨울은 지하에서 남편인 하데스와 보내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가 지상과 지하 세계를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사랑했어요
일정 10월 31일까지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임영근
출연 조장혁, 정세훈, 성기윤, 고유진, 홍경인, 김용진 등
독보적인 음악 세계로 대중을 사로잡은 故김현식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가 광림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故김현식은 한국적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을 제시했다는 평가받는 싱어송라이터다.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명곡들을 편곡을 통해 되살린 그의 음악이 다시 한번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한다.
◇카포네 트릴로지
일정 9월 14일~11월 21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오루피나
출연 이건명, 고영빈, 박은석, 송유택, 장지후, 강승호 등
독보적인 갱스터 누아르 장르의 작품 ‘카포네 트릴로지’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3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20세기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알 카포네’가 주름잡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선과 정의가 위태롭게 흔들리던 시대의 ‘안티 히어로’ 이야기를 그려낸다. 탁월한 시대상 반영과 풍자, 위트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은퇴 후 딱히 내밀 만한 명함도 없는 인생 후반전에서는 ‘외모’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 악수를 하고 또 명함을 건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명함은 보는 둥 마는 둥 명함 지갑에 쑤셔 넣기 일쑤다. 반면 눈으론 스캔부터 한다.
걸음걸이, 표정, 옷맵시, 액세서리 같은 정보들로 먼저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직 악수도 하기 전이고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보이는 그대로 ‘저장’ 버튼부터 누른다. 그의 옷차림과 패션센스 그리고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 등이 먼저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보여주는 패션코드가 악수보다 먼저인 세상이다. 머지않아 명함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날이 올 것이다.
이미 명함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연락처 파일을 주고받거나 SNS 네트워킹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그럴수록 외모와 패션은 그 중요성이 더해갈 것이다. 요즘에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으로 말이나 느낌을 간단하게 그러나 꽤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외모와 패션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모티콘’이다.
사람의 외모를 구성하는 요소 중 으뜸은 아무래도 얼굴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몸매와 옷차림 그리고 구두와 핸드백, 안경, 팔찌 등 액세서리도 무시할 수 없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성형과 미용, 화장기술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 얼굴 외의 구성 요소들이 결국은 승패(?)를 좌우한다.
“부모님 날 나으시고 원장님 날 빚으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잘 빚은 비슷비슷한 얼굴들은 넘쳐난다. 패션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얼굴이 완벽해도 패션이 꽝이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오히려 옷 잘 입는 스타일 쩌는 얼굴꽝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비싼 옷 안 사도 내가 명품이 돼보자
꼭 명품을 입어야 옷맵시가 나고 외모가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니다. 옷맵시가 나면 싼 옷도 비싸 보인다. 유명 브랜드가 정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변신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우선 유명 브랜드에 목매기보단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으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루즈핏 오버핏은 예외다. 신체가 더 이상 자랄 것도 아닌데 왜 자기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단 입고 싶은 것부터 입어라.
남자들의 경우 바지를 제발 질질 끌리게 입지 마라. 과감하게 밑단을 자르자. 복숭아뼈는 감춰놓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소매도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길게 입지 말자. 양말도 무시하지 말자. 양말은 일반적으로 바지의 컬러와 매칭하는 게 좋다. 요즘 진짜 멋쟁이는 아주 튀는 컬러를 매칭하기도 한다. 사시사철 검은색 양말을 고집하는 당신은 매일이 장례식 참석 모드다. 회색이나 감색 양복에는 브라운 컬러의 구두가 제격이다. 검은색 구두는 장례식 참석할 때나 꺼내 신으면 된다. 안경도 이제는 액세서리다. 패션의 완성을 위한 소품으로 안경에 투자하라. 투자 대비 효과 만점이다. 가성비 ‘갑’이다.
아직은 중년 남자들이 어색해하는 팔찌도 시도해봄직하다. 필자의 팔뚝은 시계 대신 팔찌에 양보한 지 오래다. 팔찌로 남성미를 물씬 풍길 수도 있다. 남성들이여, 팔찌나 목걸이를 과감히 시도해보라. 건강 팔찌, 황금 목걸이 같은 건 말고. 겨울철엔 비니도 시도해보자. 당신의 패션 나이가 몰라보게 젊어질 것이다. 어쩌면 길 가다 뒤돌아보는 사람들도 생길지 모른다.
“나이 들수록 외모가 경쟁력이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나이가 들면 외모는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슬프다. 결국은 생물학적 늙음과 퇴보는 어쩔 수 없다. 세상 기준의 외모 경쟁력은 차츰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혹자는 진짜 뼈를 깎기까지 한다. 현대의료과학기술 발전의 쾌거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활력, 역동성 등은 아무리 좋은 현대의료과학기술로도 어림없다. 스스로 내면을 바꾸려는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외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해야 한다. 결국은 애티튜드부터 바뀌어야 한다. 애티튜드의 변화가 수반되는 내적 충실함이 외모라는 스크린에 자연스레 투영되어 나타나야 비로소 진정한 경쟁력이 있는 외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 닉 우스터. 필자의 패션 스승(?)이다. 그를 주목했던 이유는 단순히 옷을 잘 입어서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못생겼고 키도 작았기 때문이다. 깊게 패인 주름, 170cm도 안 되는 키와 지나치게 큰 근육형 몸매는 패셔니스타가 되기엔 매우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의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흠모하면서부터 필자의 패션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패션관’이 달라졌다. 용기도 급상승했다. 주위 시선에서도 조금씩 자유스러워졌다. 주변의 반응도 덩달아 점점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조금씩 패션 아이콘이 되어가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주위의 시선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필자가 주재하던 중국 상하이 패션 업계에선 꽤 유명한 옷 잘 입는 ‘韩国大叔’(한국 아저씨)로 불렸다. 패션 감각만 젊어진 게 아니다. 라이프스타일도 함께 젊어졌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걷기를 생활화하기 위해 지하철 역 두세 정거장은 걸었다. 옷 입는 것도 점점 더 과감해졌다.
수많은 길고 펑퍼짐한 바지들은 테이퍼드핏으로 리폼했다. 필자의 발목은 더 자주 노출되었다. 양말들도 크레파스처럼 갖가지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자의 패션은 차츰 회자되었다. 심지어 필자의 착장을 찍어 여기저기로 퍼 나르는 패션 블로거들까지 생겨났다. 또한 길거리 캐스팅도 되어 TV 광고를 찍는 기적까지 일어났다. 화보 모델로도 데뷔를 했다. 내 자신이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게 좋았다. 행복했다. 그리고 감히 다짐했다. 한국의 닉 우스터가 되겠다고.
당신도 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닉 우스터 워너비 그레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는 과거 모 패션 대기업 중국 법인장을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1세대 중국통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통보된 퇴직 소식에 쓰라린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되려 적극적으로 제2의 인생 기회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중국어 교육 스타트업 기업 차이나다의 공동대표이자 SNS 시니어 패셔니스타, 그리고 안티에이징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 저자로 자리 잡았다. 그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묘미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환갑이 되던 해에, 앞으론 매년 한 살씩 더 먹는 게 아니라 한 살씩 빼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주위에 공언도 했습니다. 덕분에 올해 주민등록증 나이 65세인 저는 아직 55세 팔팔한 청춘입니다. 그리고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드디어 40대에 진입하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젊게 살기 위한 고된 그러나 즐거운 행군(?)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는 일반인임에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출판계에서, SNS에서 그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유명한 시니어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돼 TV 광고를 찍을 정도로 성숙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그지만, 정작 자신은 옷을 그리 많이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의외다.
시니어 패셔니스타의 코디법
“제가 직접 작정을 하고 구매한 옷은 별로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패션 대기업의 중국 법인장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자사 브랜드 옷을 얻을 기회가 많았고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뒤로는 협찬도 꽤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옷은 많지만, 구매할 때부터 매칭을 고려하고 산 옷들은 별로 없어요.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매치해서 멋스러움을 창출할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지 대표는 단순히 옷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구두나 운동화, 양말 같은 소품으로 변화를 많이 주고, 팔찌 등의 액세서리로 살짝 에지를 더하는 방법을 애용한다. 그의 패션 포인트를 요약하면 ‘재킷은 기본에 충실하되 젊은 실루엣의 팬츠, 그리고 애교 있는 액세서리다.’ 그는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죠”라고 말하며 웃는다.
“재킷은 가능하면 다소 짧은 기장으로 상하 비율이 좋아 보이게 하고, 팬츠의 밑단 폭은 18cm 전후로 하고 기장은 복숭아뼈가 보일락 말락 하는 정도로 맞춰야 전체적으로 젊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상·하의가 다소 밋밋하면 과감한 신발로 액티브함을 더하기도 하고 재킷에 부토니에르를 꽂아 클래식함을 연출하기도 하죠.”
은퇴 후에는 ‘나눔’이 삶의 방향
패션 철학에 대한 단호하고 간략한 설명을 듣다 보니 지 대표의 경력이 다시금 떠올랐다. 과거의 경력과 함께, 그는 지금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이자 자신의 안티에이징 노하우를 소개한 책 ‘그레이트 그레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일로 제2의 인생을 채우는 지금의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래전부터 은퇴 후에는 ‘나눔’이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30년 넘게 중국 주재원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 경험과 노하우를 후학들과 나누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인생 2막의 큰 방향과 지금 하는 일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레이트 그레이’를 쓴 것도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경험, 특히 은퇴 후의 새로운 도전들과 그로부터 얻은 행복의 비결들을 여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다.
“책이 나온 후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제 강연을 들은 분들이 인생 2막 설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주실 때 더없이 행복함을 느낍니다. 말로만 듣던 ‘선한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할 때가 많습니다.”
그는 책을 낸 덕분에 방향을 다잡으며 삶에 대한 다짐도 한 번 더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책을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포기했을지 모르는, 책 속에서 언급한 소위 ‘멋있게 나이 드는 법’들은 독자들과의 약속이니만큼 계속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설령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도 저 자신은 알잖아요? 저부터 배신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위 마인드 에이지(Mind Age)를 매년 더 젊게 가지니,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피지컬을 갖추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패션 감각도 해가 갈수록 더 젊어졌다. 쉽지 않은 일들일 텐데, 얘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무척이나 즐겁게 나이 들어가고 있기에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뛰는 일은 도전만으로도 승리한 것
“일단 초긍마(초긍정 마인드) 스위치를 켜야겠지요.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크고 작은 재미 요소도 많아집니다. 그 재미 요소를 진짜 재미로 승화하려면 평소 습관이 중요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하잖아요? 일상의 작은 것에서 자주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그게 일상이 되고, 행복한 일상이 모여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게 되는 거죠.”
지 대표는 즐겁게 나이 드는 대단한 비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어쩌면 아는 사람한테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데, 모르는 사람들한텐 너무 어려운 게 재미있게 살면서 나이 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는 소확행이라는 단순하고 우직한 해법을 확고하게 믿기에 그게 가능한 사람인 듯했다.
“먼저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가슴이 뛰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가슴 뛰고 즐거운 일들을 리스트 업한 후에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하나씩 해보는 겁니다. 은퇴 후의 이런 도전들은 굳이 대단한 목표일 필요도 없습니다. 도전해보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그 도전은 성공한 것이고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부부관계의 해법은 ‘공감’과 ‘공간’의 조화
지 대표를 촬영하는 날, 아내도 함께했다. 그가 아내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부 사이는 곧잘 위기에 처한다. 그가 생각하는 중년 부부의 아킬레스건과 위기 대처 비법은 무엇일까?
“은퇴 후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중년 부부들이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비법은 부부가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친구처럼 잘 지내기 위해선 ‘공감’과 ‘공간’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고요.”
나이 들수록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줄고 공감 능력, 공감할 소재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는 부부끼리 할 수 있는 놀이나 취미를 일부러라도 갖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가 촬영 현장에 아내와 동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편이 하는 일에 아내도 참여하면 공감대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하면 좋은 운동 중 최고는 걷기입니다. 같이 걷는 동안 그냥 걷기만 하지는 않잖아요.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쉼 없이 주고받습니다. 부부가 걷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건강은 물론, 따로 소통의 시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공감 능력이 증가됩니다.”
아울러 지 대표는 중년 부부들에겐 ‘공감’, ‘함께하기’도 중요하지만 ‘공간’, ‘따로 하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년 부부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야 아내나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기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지요. 각자 하고 싶고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배우자가 원한다면 딴지(?) 걸지 말고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일정 부분 상대방만의 ‘공간’을 허락해야 친구처럼 잘 살 수 있습니다. 상대는 내 아내, 내 남편이기 훨씬 이전부터 독립된 한 인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래와 연결된 시니어가 돼라
얘기를 듣다 보니 그가 겉으로만 젊어지려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젊어지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SNS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한 생각에서였다.
“100세 시대죠. 아직도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다가올 미래와의 접속은 꼭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거든요.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추억만 먹으며 살기엔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요. 그러므로 SNS 같은 새로운 소통 도구들도 적극 활용하고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손주들과의 소통도 SNS로 해야 더 활발해지고 공감대도 넓어집니다.”
손주 얘기가 나오니 그에게서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 나왔다. 시니어 패셔니스타에게도 손주는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존재인가보다. 그에게 손주의 존재는 지켜야 할 삶의 법칙을 다시금 되새기는 이유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목숨 다하는 날까지 멋진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애쓰다 떠난, 닮고 싶은 진짜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손주들아! 몇 년만 더 지나면 너희들은 훌쩍 클 것이고 할아버지는 오히려 작아지고 허리도 굽고 더 쭈글쭈글해지겠지. 그때 냄새 난다고, 말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걸음 늦다고 타박하기 없기다. 그냥 지금처럼 할아버지를 보면 빛의 속도로 활짝 웃으며 달려와서 와락 안겨주렴. 그리고 귀에 대고 조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해주렴.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