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망자 대부분은 생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 가운데 중년은 퇴직·은퇴·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최근 9년간(2015~2023) 진행한 심리부검 면담 분석 결과를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 사망자의 가족 또는 지인의 진술과 고인의 기록을 검토해 자살 사망자의 심리·행동 양상과 변화를 확인하여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는 조사 방법이다. 분석 대상은 유족 1,262명으로부터 얻은 자살 사망자 1,099명에 대한 심리부검 면담 자료이다.
심리부검 대상 자살 사망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남성이 64.7%로 여성 35.3%보다 월등히 많았다. 평균연령은 44.2세로 집계됐다. 1인 가구는 19.2%로 나타났다. 고용 형태는 피고용인이 38.6%로 가장 많았고, 소득 수준은 월 1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이 46.5%를 차지했다. 또한 자살 사망자의 86%가량이 정신질환을 겪은 것으로 추정됐으며, 주로 우울(74.5%), 중독(27.2%), 불안(8.8%) 증세였다.
자살 사망자는 평균 4.3개 스트레스 사건을 다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주기별로 살펴보면, 실업자 비율이 청년기 다음으로 높은 중년기(50~64세)는 퇴직·은퇴·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났다. 부채 비율 역시 장년기(35~49세) 다음으로 높았고, 수입 감소와 파산으로 인한 스트레스 경험 비율 역시 상대적으로 높았다. 사망 전 추정 정신질환을 가진 비율이 가장 높은 생애주기이기도 했다.
노년기(65세 이상)는 다른 생애주기보다 대인 관계 단절 비율이 높았으며, 만성 질병으로 인한 신체 건강 스트레스, 우울 장애 추정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가족 관계 관련 스트레스 경험 비율이 높았는데,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 청년기(34세 이하)는 실업자 비율과 구직으로 인한 직업 스트레스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장년기(35~49세)는 직업과 경제 스트레스 경험 비율이 생애주기 중 가장 높았는데, 세부적으로는 직장 동료 관계 문제, 사업 부진 및 실패, 부채 등이 원인이었다.
1인 가구의 경우, 청년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43.8%로 다인 가구 청년기 비율(28.0%)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1인 가구의 비정규직 비율(43.7%)과 지속적 빈곤으로 인한 스트레스 비율(15.3%) 역시 다인 가구보다 높았다. 즉, 1인 가구 상당수가 고용 불안정과 낮은 소득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자살 사망자의 96.6%가 사망 전 경고 신호를 보였으나 이를 주변에서 인지한 비율은 23.8%에 불과했다. 주요 신호로는 감정 변화(75.4%), 수면 상태 변화(71.7%), 자살·죽음에 대한 잦은 언급(63.6%), 자기비하적 발언(47.0%), 주변 정리(25.8%) 등이 있었다.
심리부검 면담에 참여한 유족의 98.9%는 사별 후 심리·행동(97.6%), 대인 관계(62.9%), 신체 건강(56.5%), 가족 관계(52.2%) 등의 변화를 경험했고 심한 우울(20.0%), 임상적 불면증(33.1%), 복합 비탄(37.8%), 자살사고(思考, 56.3%)와 같은 정신건강 관련 문제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심리부검을 통해 파악한 자살 위험 요인을 향후 자살 예방 정책의 근거로 활용하겠다"라며, “올해 7월부터 의무화된 자살 예방 교육에 자살 위험 경고 신호를 파악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자살 시도자 등 자살 고위험군이 보내는 경고 신호에 대한 가족·친구·동료 등 주변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는 경고 신호, 주요 스트레스 요인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라며“이번 1인 가구 분석과 같은 심리부검 면담 자료를 활용한 심층적인 분석과 연구가 활성화되고 연구 결과가 자살 예방 사업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 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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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살다가도 혼자가 되고, 해로해도 두 사람이 같은 날 죽지 않는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병으로 먼저 죽으면 나머지 한 사람은 혼자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나탈리 말대로 삶이 끝난 게 아니다. 결혼 생활이 끝났을 뿐이고,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뿐이다. 즉 혼자 살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 30p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혼자 산다. 비혼,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경제활동 등 이유는 제각각이다. 1인 가구가 늘고 있으나 몇몇은 여전히 하나보다 둘이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믿는다. 혼자 사는 노인은 ‘빈곤하고 외로운 상태’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김남금 작가는 혼자 나이 드는 삶이 불완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더 면밀히 만날 소중한 기회라 말한다.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은 서른 편의 영화를 통해 혼자 사는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다. 여러 사정으로 홀로 서게 된 이들이 맞닥뜨리는 풍경과 극복 과정을 영화 속 사건과 인물로 보여준다.
외로움, 생계와 주거 문제, 관계의 어려움, 불확실한 노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밀려올 때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정서적 지원을 어디서 찾을지, 사회 변화와 과제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나이 듦과 죽음에 어떻게 대비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 주인공 나탈리는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남편의 고백 이후 아무런 준비 없이 ‘혼자 살기’에 내던져진다. 그저럭 보람찬 시간을 보냈고, 잘 굴러가는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두 발 동동거리며 기름칠하고 조였던 일상의 톱니바퀴 하나를 남편이 빼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엎어지고, 잘 따르던 제자마저 그의 사상이 죽은 것이라 비판한다. 한밤중 전화로 귀찮게 하던 엄마는 요양원에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나탈리에게는 온전한 자유만 남아 마음을 들쑤신다.
하지만 그는 “현실 부정은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 고정관념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을 뿐.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야.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라며 털어내려 한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나탈리의 말처럼 가구 형태가 어떠하든 일상을 지탱하는 요소는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 일, 사회 활동에서 맺은 인연은 여전히 우리의 위성이다.
은퇴해도 고유한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자녀가 품을 떠나도 가족이다. 혼자라는 사실이 매 순간 무섭고 아프기만 하진 않을 테다. 궁극적 문제는 ‘혼자 산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다. 두려움의 포로가 될지, 두 팔 벌려 자유를 품에 안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환영하기로 마음먹으면 다른 세계가 기다릴지 모른다.
슬기로운 홀로 라이프
“제 정체성이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 이 단어를 둘러싼 사회적인 구조나 시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비혼이라서 그래’, ‘이혼해서 그래’, ‘혼자 살아서 그래’라는 말이 익숙한 세상이라고 느껴요. 1인 가구라고 꼭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건 아니거든요. 고민의 주제나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를 뿐이죠. 다름을 규정하고 분류하기보다 서로를 그저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같은 50대여도 가사 노동에 힘쓰는 사람, 은퇴 후 다시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 1인분의 몫을 오래 살아서 이미 본인을 파악한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은 ‘혼자 살면 정말 외로울까?’라는 김 작가의 사소한 의심에서부터 시작됐다.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꾸려왔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가족을 기준으로 재단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평생 네 편은 한 명쯤 있어야 한다든가, 가족과 함께여야 일상이 심심하지 않고 다채롭다든가. 혼자는 외롭다는 선입견과 둘은 완전하다는 환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김 작가는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 속 영화들을 통해 그 가치관을 깰 만한 다양한 혼삶 방식을 제안하고, 같은 상황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나이 듦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한다.
혼자 늙어가는 것에 왜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닐까?
혼자 독립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다양한 노인을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본 적이 없으니 상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혼인과 혈연 바깥에서 이루어진 가족 모델이
턱없이 부족하다.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97p
지속 가능한 혼삶에 필요한 요소
1인 가구로서 잘 나이 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잘 부양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일’은 삶의 습관과 방식을 만들어가는 채널이자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통로다. 이 채널을 통해 내 모습을 찾아내고 다듬을 수 있다. 생계 해결만큼 정서적 돌봄 역시 중요하다. 경제활동에 쏟은 노력은 공식적으로 응원과 보상을 받아도, 감정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행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진짜 위기는 감정을 잘 몰라서 자신을 돌보지 못할 때 겪는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는 주거도 생계도 안정된 노년에 접어든 남성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를 잃은 듯 혼자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 바깥세상과 통로 역할을 하던 배우자가 없어지니 스스로가 쓸모없어진 녹슨 고철 덩어리라 여긴다. 성격은 변해버려 깐깐함을 넘어 까칠하기 이를 데 없다. 옆집 남자가 자기 차보다 좋은 차를 새로 살 때마다 자랑해서 말을 안 섞은 지 수년째다. 다정하기는커녕 냉소적이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오베라는 인물은 오랫동안 일과 관련한 언어를 사용하는 데만 익숙해서 사적인 관계 맺기와 소통에 서툴다. 주변에서 흔히 있는 경우다. 사이좋은 부부였더라도 어느 날 혼자 남겨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을 가꾸는 기술을 갈고닦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오베처럼 외로움에 사무치고, 무쓸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일부러 다른 사람과 섞일 기회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관계 맺을 기회가 적어요. 온라인으로 편하게 쇼핑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눈인사나 느슨한 치댐이 사라졌죠. 나이 들수록 낯선 자리를 꺼리고 친구를 찾는 데 수고로운 기분이 들겠지만, 혼삶을 지속하려면 오히려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끈끈했던 단 한 사람이나 가족을 잃을 경우 생의 의미를 함께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더불어 살기
1인분의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 의견을 구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는 상황이 많아진다. 하지만 내 마음의 소리에만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면 타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영화 ‘멋진 하루’의 희수는 자기가 그린 일상 그림이 있다. 그 선 밖으로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다. 만들어둔 원칙을 고수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피해라고 여기는 편이다. 김 작가는 희수처럼 폐쇄적인 생활이 길어지면 ‘정신적 노화’를 막기 힘들다고 말한다.
“저는 신체적 노화보다 정신적 노화가 더 두려워요. 자칫하면 꼰대로 가는 특급 열차를 타게 되겠죠. 본인의 가치관과 신념이 곧 법이 되면 말 안 통하는 고집 센 노인이 되는 거예요. 내 몫을 살뜰하게 챙기되 필요하다면 상대방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해요. 더불어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유연함,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 배움에 대한 욕구,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다림질한 것처럼 주름 하나 없는 피부에 최신 유행하는 코트를 걸쳤다고 무조건 젊은 건 아니니까요. 새로운 가치와 악수할 줄 아는 사람이 젊음을 유지하면서 혼자 잘 나이 들 거라 생각해요.”
50대 이상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엔 항상 해외여행이 포함된다. 그러나 직장 생활 중인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행·여가 플랫폼 인터파크트리플이 운영하는 인터파크 투어와 국내 최초 액티브 시니어 플랫폼 ‘시놀’이 손을 잡고 시니어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이번에 선보인 여행 상품은 50대 이상의 또래들이 모여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인터파크 투어와 시놀은 시니어들이 20~30대 못지않게 새로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순한 휴양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던 독특한 체험들을 포함한 맞춤형 여행 상품을 선보인 것이다. 이번 상품은 동남아와 중국‧일본 지역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동남아 여행 상품 중에서는 ‘베트남 보름살기’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한 달 체류 기간이 너무 길다는 의견을 반영해 베트남 다낭에서 2주간 머무르며, 핵심 투어와 다양한 현지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5성급 호텔 숙박과 관광 일정을 포함한 이 패키지는 15일간 다낭 현지인처럼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가격은 229만 원으로 책정됐다.
또한 인기 작가 썬킴과 함께하는 대만 4일 역사탐방 상품도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대만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정 동안 썬킴 작가가 직접 역사 해설을 제공하며, 4성급 호텔 숙박과 특식이 포함된 일정으로 구성돼 있다. 썬킴 작가가 직접 기획한 개성 있는 역사여행이 준비된다.
이 외에도 와인 테마의 호치민 여행, 낚시 테마의 괌 여행 상품 등도 함께 선보여졌다.
중국‧일본 여행 상품 중에서는 중국 드라마 팬들을 위한 상하이‧헝디엔 드라마 성지순례 4일 투어가 눈길을 끈다. 중국 최대의 드라마 세트장 ‘연화루’와 ‘영안여몽’을 비롯해 상하이 촬영지 명소들을 밀도 있게 둘러볼 수 있어 관심이 예상된다.
또한 트레킹을 좋아하는 시니어를 위해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리는 차마고도 호도협 트레킹 상품도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문화연구소가 기획한 이 상품은 초보자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으며, 중국의 고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숙박과 함께 곤명, 여강의 핵심 관광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시놀과 인터파크투어의 시니어 여행 상품은 혼자 신청하거나 두 명 이상이 함께 신청할 수 있다. 2인 1실로 숙박을 이용할 수 있어 보다 저렴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며, 여행 중 만나는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시놀 관계자는 "이번 시니어 여행 상품은 시니어분들이 가장 원하고 즐길 만한 요소들로 구성된 최적의 맞춤형 상품"이라며 "여행을 떠나고 싶었거나 부모님 효도여행을 고려하고 있었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1962년생이다. 19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 이후 글 쓸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시간 ‘작문’ 수업이 있었지만, 그 시간조차 읽었다. 우리 세대는 읽기와 듣기에 능하다. 참으로 많이 읽고 많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수업 시간이 가장 길었다. 8교시, 9교시 수업을 하며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야간 자습까지 하며 읽었다.
많이 읽고 들으면 다섯 가지 특성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한다. 당시 우리 사회는 이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 사람을 필요로 했으며, 이런 사람이 직장 생활을 잘하고 인정도 받았다. 이들에게는 ‘공부를 잘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당시 공부는 읽기·듣기가 전부였다. 읽기·듣기를 열심히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부를 잘했다는 건 읽기·듣기를 많이 하고 잘했다는 의미다.
다섯 가지에서 더 나아가기
첫째,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은 아는 게 많다는 특징을 띤다. 선생님 말과 책에 있는 글을 많이 읽고 들으면 아는 게 많아진다. 나는 1990년부터 직장 생활을 했는데 10년 가까이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는 세상을 살았다. 자기가 모르면 알 수 없었다. 요즘같이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아는 게 힘이었다. 각자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걸 갖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그렇다 보니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이 아는 게 많았고, 사회는 그들을 대우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금은 어떤가. 읽기·듣기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도 인터넷이나 유튜브, 심지어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면 얼마든지 잘 알 수 있다. 물론 많이 아는 사람이 인터넷이나 인공지능 활용도 더 잘하긴 하지만, 읽기·듣기를 하지 않았다고 무지의 암흑 상태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는 아니다. 학창 시절 읽기·듣기를 게을리했다고 평생 모르는 사람 취급받으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둘째,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은 모방 능력이 우수하다. 읽고 듣는 것의 본질은 이미 있는 걸 닮아가고 흉내 내는 데 있다. 읽고 듣는 행위는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있는 걸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고, 그 끝은 기존에 있는 것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나은 걸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의 말을 듣거나 교과서를 읽고, 아는 것에서 선생님과 교과서 수준에 근접해가는 게 읽고 듣는 공부다.
우리 시대는 모방 능력이 필요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만들 수 있는 게 없었다. TV나 자동차는 물론이고 라디오조차 만들 기술이 없었다. 베껴야 했다. 읽기·듣기를 많이 한 사람들이 잘 베꼈다. 처음엔 신발, 의류를 베끼다가 TV, 자동차, 선박, 반도체, 휴대폰 등으로 대상을 넓혀갔다. 급기야 그걸 처음 개발한 나라의 제품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 모두가 읽기·듣기를 많이 시킨 학교와 부모의 교육열, 읽기·듣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한 덕분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더 이상 베낄 데가 없다. 우리 기업은 이미 세계 최선두가 됐다. 뒤에서는 중국이 추격해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잘하는 건 중국이 금세 베낄 수 있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살아남으려면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걸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걸 만들려면 각자가 자기만의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그걸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개개인의 서로 다른 것들이 밖으로 나와 연결되고 결합되어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 남의 것을 읽고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것을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셋째,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은 그걸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참을성, 끈기, 집중력 등을 키웠다. 읽고 듣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읽고 듣는 것보다 노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걸 참고 남들이 하라고 하는 읽기·듣기를 잘했다는 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을 갖고 있었거나, 자신의 의지로 마음 근력을 키운 덕분이다.
그런 마음 근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시키는 일을 잘한다. 야근도 잘하고 힘든 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근면 성실하다. 이런 특성은 사람을 부리는 조직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다. 회사 조직이든 공무원 조직이든 말이다. 일을 시키면 군말이나 불만 없이 잘한다.
근면 성실은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필요로 하는 게 창의성이다. 우리 세대는 열심히 하면 됐다. 남들이 8시간 일할 때 10시간 일하고, 남들이 두 개 만들 때 세 개, 네 개 만들면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기업은 근면 성실성으로 승부하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충분히 쉬고 놀아도 좋으니 성과를 내놓으라고 한다.
읽기와 듣기는 과정이고, 말하기와 쓰기는 결과다. 읽고 들은 결과로 우리는 말하고 쓴다. 읽기·듣기만 하면 과정만 있고 결과는 없는 셈이다. 우리 세대는 읽고 듣는 과정을 참고 집중해서 끈기 있게 해내면 됐지만, 이젠 참고 집중하지 않아도 되니 결과로 보여달라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수백·수천 명의 몫을 하는 시대다. 자기 시간을 최대한 쏟아부어 그것으로 자신의 희생정신과 애사심을 보여주면서 근면 성실로 승부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넷째,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은 승부욕이 있고 경쟁심이 강하다. 학교 다닐 적을 생각해보라. 앞서 말했듯이 공부를 잘했다는 건 많이 읽고 들었다는 것이고, 많이 읽고 들은 결과로 석차가 높았다는 것이다. 학교 공부는 자기 반 친구를 이기기 위해, 등수를 높이기 위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부욕과 경쟁심이 전혀 없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긴 쉽지 않다. 승부욕은 또한 인정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승부욕이 센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또한 강하다.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직장에 가서도 열성적으로 잘한다. 열심히 해서 동기들보다 인사고과도 잘 받고 승진도 빨리 하려고 한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도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서 기필코 해낸다. 그럼으로써 인정받고자 한다. 성적이 안 나오는 과목을 열심히 해서 올려본 경험, 반에서 1등을 해본 경험과 그때 느껴본 성취감을 아는 사람은 어려운 과제를 줘도 그 희열을 다시 맛보기 위해 시도하고 도전한다. 지고는 못 배기는 성질이 강해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자존심이 상해 밤잠을 설치고, 다른 조직이나 다른 회사보다 앞서가려고 안달한다. 어떻게든 남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회사나 상사 입장에서 이런 사람이 어찌 기특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이런 승부욕과 경쟁심이 필요할까. 그렇다.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때로는 남과 겨루어 이기거나 앞서려는 욕심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개방과 공유,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내어놓고, 그것들을 섞고 융합해야 한다. 경쟁을 잘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연대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시대다. 남을 이기려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많이 읽고 들은 사람은 어디 출신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사회는 어디 출신이라는 간판을 중시했다. 실제로 그 간판을 가진 사람은 아는 게 많았고, 모방 능력도 있었고, 근면 성실했으며, 경쟁심과 승부욕도 강했다. 그래서 그 간판이 통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간판을 가진 사람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간판의 효험을 극대화했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도 간판이 좋으면 상부 조직과 선을 대는 데 쓸모가 있기에, 조직은 그런 사람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특정 간판을 가진 사람은 일을 잘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중요한 일을 할 기회를 많이 주고, 그런 일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일을 잘하게 됐다. 그럼으로써 특정 간판을 가진 사람은 유능하다는 일반화와 과대 해석의 오류를 범해왔다. 일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요령을 터득해 잘하게 되는 건데 말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디 나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내가 직장 다닐 적만 해도 ‘어디’가 중요했다. 어디 들어갔는지, 어디 나왔는지, 어디 다니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가 중요했다. 좀 더 나은 어디, 좀 더 높은 어디에 이르고자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그건 오프라인만 있을 적 얘기다. 온라인 세상이 활짝 열린 지금, 이제는 굳이 어딜 나오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 젊은이들은 어디까지 올라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를 언제 그만둘지 고민한다. 대신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궁리한다. ‘어디’로 살아가지 않고 ‘무엇’으로 살고자 한다.
역전의 기회될 글쓰기
이제는 오래 산다. 나 같은 1960년대 생도 살 날이 많이 남아 있다. 그게 50년이 넘을 수도 있다. 아니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더 길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세상은 읽기·듣기를 많이 하지 못했어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모방 능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됐고, 참을성과 끈기가 부족해도 상관없어졌다. 경쟁심과 승부욕, 간판도 의미가 없어졌다. 나같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쉰 살까지 반사체로 살았다. 나에게 일을 시킨 사람의 말과 글을 읽고 들어서 그 사람이 원하는 말과 글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말과 글을 받아서 말과 글로 되쏴주는 일로 월급을 받았다. 나뿐 아니라 직장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이와 유사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둔다. 더 이상 반사체로 살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땐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로 살아야 한다.
읽기·듣기 삶에서 뒤처지고 낙오했다는 사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패자부활과 역전의 기회가 있다.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를 돌파구로, 읽는 소비자에서 쓰는 생산자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그랬다. “죽어서 육신이 썩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든지 글로 남길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하라.”
매일 조금씩 쓰면 된다. 한 문장으로 시작하면 된다.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쓰기만 하면 된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내자. 글을 쓰고 책을 써서 내가 가진 그 ‘무엇’을 세상에 보여주자. 그 무엇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자. 그런 당신의 앞길을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을 것이다.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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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렇대. 우리 나이가 한참 늙느라 바쁜 나이래.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면서
고장 나는 데 생기고, 마음은 공허하고. 살아 뭣하나, 싶은 나이라는 건데. 그게 당연한
마음이라니까 너무 난감해하지 마.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49p
‘피하고 싶은, 그러나 엄존하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소설가’(제9회 김현문학패 심사평) 김이설의 신작 소설이 출간됐다. 2006년 등단 이후 18년간 꾸준히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과 가족에 대해 질문해온 그가 이번에는 50대를 앞둔 난주, 미경, 정은, 세 친구의 강릉 여행을 통해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난주, 미경, 정은은 1975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오랜 친구지만 각자 사느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했다. 사는 거리가 먼 만큼 마음도 멀어진 무렵이었다. 매번 여행 한번 가자는 말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올해 강릉에 가자고 한 건 난주였다. 늘 그렇듯 말뿐일 게 뻔했다. 혼자 노모를 모시는 미경은 하루 시간 빼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 속으로는 올해도 여행은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데, 불쑥 미경이 “가자!”고 호응한다.
강릉 여행을 떠나기로 한 당일, 세 친구는 서울역에서 만난다. 강릉 여행은 스물넷 이후 25년 만이고, 셋이 다 함께 모인 건 난주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7년 만이었다. 낯선 것도 잠시, “왜 이렇게 부었어? 살찐 거야, 아픈 거야?”, “넌 왜 이렇게 늙었니?”라며 서로 장난스럽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X세대, 신세대, 수능 0세대. 한때 이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싱그럽고 통통 튀고 정의할 수 없는 젊음 그 자체로 예쁜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이제 요실금과 고혈압, 탈모 등 다양한 신체 변화를 겪고 있다.
세 명은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펜션을 잡고, 여행 내내 잔뜩 먹고 마신다.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순두부, 장칼국수를 먹거나 허난설헌의 생가도 가고, 커피도 여섯 잔씩 시켜 나눠 마시고, 질리도록 술을 마신다. 이렇게 셋이 모이는 날이 또 없을 거라는 듯 최선을 다해 즐긴다. 그간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부딪치는 구석도 많다.
기혼인 난주, 정은과 미혼인 미경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고, 투잡을 뛰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정은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전업주부인 난주는 자주 투덕거린다. 싸움을 푸는 방식은 간단하다. 마시고, 웃고, 푼다. 술 한잔에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누다 보면 당장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도 괜찮다. 이들의 여행 또한 술 한잔과 같다. 앞으로 똑같은 삶이 반복돼도 버틸 수 있는 잠시의 안도, 찰나의 틈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을 견디며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김이설 작가의 사이
“5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생각보다 없어요. 각자의 세계와 인생이 있을 텐데 그저 엄마, 아줌마, 며느리, 딸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표지 속 거위처럼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이미지가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는 2023년 6월 초, 김이설 작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하나에서부터 시작됐다. 무료 소설 연재를 구독할 독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을까지 경장편소설을 마감하려면 스스로를 강제해 진도를 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신청자들의 메일 주소로 매주 1회씩, 원고지 30매 분량을 전송하는 ‘소설가의 생초고 메일링’,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였다. 쉽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원동력이었단다.
“재앙이 매주 제법 많은 양의 원고를 써야 하는 저에게 해당하는 말인지, 정리 안 된 소설을 읽게 될 메일링을 신청한 분들인지 모호했지만 일단 썼어요. 어떤 노래를 들으며 무슨 마음으로 작업했는지도 함께요. 응원과 애정이 담긴 답장은 물론, 바다 사진을 꾸준히 보내기도 하셨어요. 두 번의 펑크를 내면서도 ‘무리하지 마라, 그저 기다리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강릉으로 떠난 중년 여성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의 주인공 난주와 정은, 미경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감 가는 구석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했다. 노안이 찾아왔지만 ‘안 보면 안 봤지, 돋보기라니’라며 마지막 자존심을 부리거나, 자녀들이 독립할 시기에 빈둥지증후군을 겪고, 요실금이 의심되는 상황에도 병원 가는 것을 미루는 등 낯선 몸, 낯선 자신을 만나며 혼란을 겪는다.
“50대가 되면 몸 여기저기가 하나씩 고장 나지만 마음은 여전히 설익은 상태인 것 같아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때랄까. 아직 힘은 있는데, 40대보다는 ‘쓸모’라는 영역에서 다소 밀려났다고도 느껴요. 우울하고 주눅이 들죠. 하지만 다들 각자만의 큰 세계가 있었을 거예요. 그걸 풀어내고 싶어도 세상이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겁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그걸 한꺼번에 터뜨리려니 목소리가 커지는 게 아닐까요. 난주와 정은이, 미경이 같은 ‘아줌마’들은 쓸쓸함을 견뎌내고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중인 거예요.”
“세상에 안 힘든 이십대가 어딨니? 이십대는 그냥 이십대인 것만으로 힘든 거야.”
미경은 끝을 내지 못했던 학생운동과 이뤄질 수 없었던 성희 언니와의 관계를,
정은은 일도 연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세상의 패자가 된 기분에 빠졌던 나날을,
난주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아줌마로 전락해버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셋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97p
삐거덕거리는 몸과 마음을 안고 세 친구는 강릉으로 떠난다. 김 작가는 강릉이라는 지명 자체가 동년배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하다는 생각에 배경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1970년대 대학가에 MT 문화가 퍼지면서 강원도는 그 시절 학생들에게 낭만의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강릉은 세 친구의 젊은 시절이 켜켜이 쌓인 상징적인 곳입니다. 저 역시 처음으로 부모님을 속이고 첫사랑과 여행한 곳이에요. 소설의 원제도 ‘강릉에 가자’였어요.”
등장인물들은 맛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카페를 찾거나, 관광지를 들르려 애쓰지 않는다. 안목해변 주변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순간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 와중에도 빠지지 않는 건 술이다. 과거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과 오해, 깊어진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다투지만, 담백한 건배와 함께 목구멍으로 털어 넘긴다.
“여행 왔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잖아요. 술에 잔뜩 취해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들이 인연을 이어온 25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데다 처한 환경이 너무도 다르니 적당히 술 한잔으로 흘려보내는 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방법이겠죠. 그래야 아프고 잊고 싶던 기억 위로 이번 여행이 씌워질 테고, 또 살아가니까요.”
앞으로 안도할 우리
김이설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달라져 있는 인생을 알아차리게 된다’(110p)는 강릉의 커피 명장 박이추 선생의 말을 빌렸다.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면서 사회적인 위치까지 공고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 고단하더라도, 살다 보면 지나고 보면 결국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단다.
“흔히들 특정 시절이 가장 찬란했다 말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거든요. 실수했던 순간이 자꾸 생각나고 숨고 싶어져도 어느 날부터는 되레 아름답게 여겨져요. 한동안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글을 전혀 못 읽고 못 쓰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극복했지만요. 작가에게 그건 죽음과 같은 건데요, 등단하고 10년 동안 육아와 원고 작업을 병행했더니 지쳤던 것 같아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날카롭고 거칠던 문체가 둥글둥글하고 편해졌어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도하고 감사하면서 계속 쓰다 보면 모르는 새 영글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쓸쓸함도 곧 잦아들기를 바라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이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며 언급해 더 널리 알려졌다.
소비자와 브랜드가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딩’ 세계에서도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처럼 개인의 가치관이 녹아든 ‘스몰브랜드’(Small Brand, 작은 브랜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몰브랜드를 정의하는 기준은 뭘까? 매출 규모, 직원 수, 공간 크기, 판매하는 제품 수 등 우리가 숫자로 볼 수 있는 것들은 기준이 아니다. 스몰브랜드라는 용어는 아직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브랜드’라고 정의한다.
왜 스몰브랜드인가?
프랑스 파리에서 ‘최고로 짐 잘 싸는 사람’으로 소문나 황후의 전담 패커까지 되었다가 여행 가방 전문 브랜드를 만든 것,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시작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해 최근에는 중년들도 즐겨 찾는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는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누구나 스몰브랜드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창업 시장에서 스몰브랜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소비의 개인화, 가치 소비, 1인 가구 증가, 취향의 다양성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1인 가구가 늘었고, 개인의 삶과 취향이 다양해졌으며, 브랜드의 철학을 보고 소비하는 것이 곧 나를 나타내는 시대가 되었다. 이청수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정책실 사무관은 “우리나라에서 기술 창업이 중요하게 언급되지만, 최근 비기술 창업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과거에는 ‘창업’이라면 은퇴 후 아버님들이 치킨집 차리는 걸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가치를 반영한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스몰브랜드를 나타내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철학’, 그리고 ‘나다움’이다. 전문가들은 창업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이런 현상이 스몰브랜드로 표현되는 셈이다. 작은 브랜드 전문 컨설팅 회사 ‘스몰브랜더’의 최용경 공동대표는 “과거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벤처기업과 혼용되어 쓰이다가 이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된 것처럼, 앞으로 스몰브랜드도 용어로 자리 잡을 것”이라 전망했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패턴에 더해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발전은 ‘스몰브랜드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이청수 사무관은 “산업혁명 이전이 소상공인 시대였다면 4차 산업혁명, 그러니까 디지털 혁명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이 개인화 생산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신애 스몰브랜더 공동대표도 다양한 디지털 도구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SNS 환경이 크리에이터를 등장시켰고, 디지털 마케팅 도구를 활용해 내가 브랜드가 돼 자신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무척 쉬워졌다”면서 “생산부터 고객 소통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봤다. 이제는 ‘작은 브랜드 창업’이라는 키워드로 강의나 동아리도 생겨나는 추세다.
‘나=브랜드’라는 공식은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은 스몰브랜드의 진정성에 지갑을 연다. 김신애·최용경 대표는 베이비붐 세대가 창업 시장에서 ‘스몰브랜드’로 거듭날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최 대표는 “‘강한소상공인’처럼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중장년이 많고, 장년을 위한 지원이 마련되어 있다. 인생의 과업을 많이 지나온 중장년이 이 시장을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젊은 친구들보다 더 유리할 것이라 본다. 지금까지는 젊은 세대가 스몰브랜드 시장을 주도했지만, 은퇴 후 자본과 시간이 있고 교육에 적극적인 베이비붐 세대에게 더 적합한 것이 스몰브랜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스몰브랜드 꿈꾼다면
성공한 스몰브랜드의 특징은 △창업자의 가치관을 따른다 △단순 판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브랜드 문화를 즐기게 한다 △팬덤이 확고하다 △정성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창업가로서 스몰브랜드를 꿈꾼다면 다음 다섯 가지를 유념하자.
첫째, ‘자기다움’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와 같이 나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창업자의 ‘나다움’이 브랜드의 방향성과 일치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결이어야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스몰브랜드 핵심 가치인 ‘진정성’도 전달될 수 있다.
둘째, 이야기를 전한다. 창업자의 일상도 좋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좋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나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보자. 실패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 변화하는 모습도 소비자에게는 메시지가 된다. 만약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게 어렵다면 페르소나(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를 설정하자. 브랜드를 나타내는 캐릭터를 만들어도 좋다. 초창기 캐릭터와 3년 뒤 캐릭터가 달라지는 과정조차 브랜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셋째, 꾸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매일’ 이야기를 전하라고 조언한다. 혹은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기록이라도 해두어야 한다. 이 기록이 쌓여 브랜드 역사가 된다.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짬을 내어 나의 브랜딩 과정을 아카이빙하자.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것이다.
넷째, 팬과 소통한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나의 브랜드 성장을 응원하고 브랜드 가치에 공감하는 팬덤이 생긴다. 스몰브랜드에게 ‘팬’은 브랜드의 위기를 함께 헤쳐나갈 든든한 지원군으로 뗄 수 없는 존재다. 팬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은 브랜드의 ‘신뢰 자본’이 되어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될 기반이 된다.
다섯째, 작게 시작한다. ‘적어도 누군가의 연봉만큼은 벌어야지’ 같은 기준보다 나만의 작은 기준을 세워 시작하자. ‘나는 하루에 딱 30개만 팔 거야’라고 규모를 정하는 것조차 스몰브랜드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스몰브랜드를 꿈꾸는 중장년에게 김신애·최용경 스몰브랜더 공동대표는 위의 다섯 가지 외에 다음의 조언을 덧붙였다. “아마 ‘나 은퇴하고 창업할 거야’라고 말하면 10명 중 9명은 말릴 거예요. 스몰브랜드를 만들겠다 마음먹었다면, 주변 지인들의 말에는 잠시 귀를 닫고 업계 사람들 혹은 전문가들과 소통하길 바랍니다. 스몰브랜드 대표가 된다는 건 누구나 처음 해보는 일일 거예요. 브랜드를 만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그냥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면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스몰브랜드를 위한 지원 사업
브랜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즉 나만의 독창성이다. 나와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기도 하다. 스몰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지원 사업을 소개한다.
네이버 프로젝트 꽃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중소 상공인과 창작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온·오프라인 지원 사업 및 ‘네이버 SME 브랜드’ 등 성장 프로그램이 시기별로 진행된다. 프로그램 참여 공지는 네이버 공식 블로그 ‘NAVER DIARY’를 참고하자. 교육을 받고 싶다면 ‘네이버 비즈니스 스쿨’도 활용해볼 수 있다.
배민 아카데미
외식업에 초점을 맞춘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정기 교육과 1일 교육을 선택할 수 있고, 시기별 집중 교육도 진행된다. 온라인 영상 교육과 다른 사장님들의 사례도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강한소상공인 성장지원사업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시행하는 지원 프로그램. 라이프스타일, 로컬 브랜드, 글로벌 세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초기 창업자보다는 창업 후 유지 기간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에 활용하기 좋다. 초기 창업자라면 초기 창업 패키지 등의 사업을 이용해보자.
◇사례로 보는 스몰브랜드
대표적인 스몰브랜드 사례를 소개한다. 브랜드별 이야기와 가치관, 그들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 등을 보며 나의 스몰브랜드를 상상해보자.
바다가 허락한 만큼, 동해형씨
동해형씨는 반려동물 수산물 간식 전문 몰이다. 반려동물 식품 중에서도 수산물에 집중한 사례로, 국내산 수산물을 원재료 그대로 쓴다는 특징을 강조한다. 체중 조절이 필요한 반려견이나 건강한 단백질 식품이 필요한 노령견 가족들이 동해형씨의 팬이 되었고, 이제는 해외 진출까지 준비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동해형씨는 “3년의 기획과 1년의 준비기간, 6개월 이상의 정리로 브랜드가 탄생했다”면서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해야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중용 23장’의 글귀를 믿는다”는 가치를 전한다.
청춘의 여신, 헤베더유스
헤베더유스는 가슴 사이즈가 B컵 이상인 여성을 위한 브래지어를 만드는 브랜드다. 회사에서 중요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중 꽉 끼는 속옷에 숨이 막혔던 경험을 계기로 창업을 결심했다. 이렇듯 ‘개인의 불편함’에서 창업 아이템이 나오기도 한다. 헤베더유스는 제품 출시 전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9개월간의 시장조사와 제품 개발로 첫 판매부터 6000만 원의 펀딩 매출을 달성했다. 이제는 한국 여성의 15%에 해당하는 “큰 컵 여성들을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답게 해줄, 오래 그리고 자주 손길이 닿는” 속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됐다.
제주 로컬 브랜드, 한림수직
한림수직은 1959년 아일랜드에서 온 신부가 설립한 제주 로컬 의류 브랜드다. 성이시돌 목장에서 자란 양의 양모를 채취해 뜨개질로 만든 니트인데, 품질이 너무 좋아 대대로 물려주는 니트로 유명하다. 요즘은 빈티지 애호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정도. 중국산 양털이 등장하며 사라진 브랜드인데, 콘텐츠그룹 재주상회와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가 2021년부터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로 상품을 복원하고 ‘장인니팅스쿨’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제주 여성의 자립을 도왔다는 한림수직만의 특별한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한림수직의 부활을 응원하고 있다.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문구류에서 시작해 NFT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오롤리데이는 고객을 ‘해피어’, 브랜드 캐릭터를 ‘못난이’라 부르며 ‘행복을 판다’는 세계관을 쌓은 브랜드다. 오롤리데이 대표가 개인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며 ‘롤리’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간 것에서 출발했다. ‘찐팬’들이 모이면서 오롤리데이의 ‘디자인 도용 사건’까지 함께 해결했다. 브랜드 커뮤니티 구축의 교과서라 불리는 오롤리데이는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다정한 제품을 만든다”는 모토로 진심을 전하고 있다.
참고 도서 ‘작지만 큰 브랜드’(우승우 외 3인 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지침서: 스몰브랜드북’ (김시내·최용경 저)
은퇴 후 자서전 쓰기. 많은 중장년의 로망 중 하나다. 얼핏 문턱도 낮아 보인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도, 대단한 조건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아보면 다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자서전이라니…’ 갑자기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자서전을 이렇게 바꿔보자. ‘나의 역사 쓰기’.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전하는 나의 역사 쓰기 3원칙이다.
1. 사실성과 객관성 유지하기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마치 제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한마디로 꾸밈없는 진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주관적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팩트에 따라 담담히 써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사진이나 일기장, 메모 등을 참고해도 좋다.
2. 연속성 있게 쓰기
연속성이란 나의 과거를 연대기처럼 서술하는 것이다. 출생, 가족, 고향, 학교, 친구, 직장 등을 시간 순서대로 적다 보면 평소 생각지 못한 기억과 경험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연대순으로 나의 역사를 써야 비로소 인생에서 관련 없던 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3. 가능한 구체적으로 적기
타인에게는 평범하고 사소한 내용일지라도 나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라는 사람만큼이나 나의 과거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다. 정말 나를 이해하고 관계 회복도 하고 싶다면 그대로의 나와 직면해야 한다. 최대한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써보자. 디테일에 힘이 있다.
한혜경 교수의 한마디
“나의 역사 쓰기란 내가 나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보는 거죠. 인생 2막, 3막을 준비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잘 이해해야 해요. 그 과정 속에서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도 할 수 있어요.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꼭 한번 써보길 권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내 역사를 꼭 한번 써보세요.”
에디터 조형애 취재 이지혜 도움말 한혜경 교수 디자인 이은숙
누군가와 관계 맺는다는 건 상대를 위한 ‘이타성’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이기성’이기도 하다.
노후에 믿을 만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것도 좋지만 조금 덜 믿음직스럽더라도
내 삶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줄 친구가 많다면 좋지 않을까.
결국 나를 위해서 말이다.
-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시니어 매거진 2024년 5월호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취재 이지혜 디자인 유영현
올해로 환갑에 이른 귀농인 진용기(은현농장 대표)에겐 좌우명이 하나 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뛰어드는 데 있다’는 것이란다. 자신의 이름을 위트 있게 풀어낸 기치를 삶의 돛대에 매단 셈이다. 그가 충주시 신니면으로 귀농한 건 5년 전이다. 남다른 용기를 쏟아부어 거둔 성과일까? 진용기는 험악한 암초 한 번 만난 일 없이 순항을 거듭했다. 전공으로 삼은 수박 농사로 귀농 첫해부터 7000여만 원에 달하는 순소득을 올렸다는 게 아닌가. 바야흐로 그는 귀농인의 본으로 떠오르고 있다.
귀농 이전에 진용기는 전국 각지의 농촌을 돌아다녔다. 귀농 또는 농업의 실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농부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이랬다. 농사란 믿을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 마지못해 매달려 하는 행위라는 것. 그건 귀농에 뜻을 둔 사람의 기를 꺾어놓을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러나 진용기의 관점은 달랐다.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바라봤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읽었다. 이렇게 그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농사에 입문했다. 신선한 시각으로 농업을 읽은 다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식의 신중한 태도로 사전 준비부터 철저히 했다. 그러곤 농사에 투신, 첫해부터 기세를 돋우었다. “서울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귀농을? 진짜 네가 농사를 짓는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렇게 힐난했던 지인들 사이에서 그는 이제 ‘농사로 성공에 이른 대단한 친구’로 회자되고 있다.
진용기는 대기업 임원 출신이다. 회사원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중에 모두 내려놓고 방향을 급선회해 농부로 변신했다. 무슨 이유로? 직장 생활의 만족도가 낮아서였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속박 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찾아 삶을 바꾸고 싶었다. 요식업을 할까, 해외여행을 할까, 갖가지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이 오래전부터 관심 가졌던 귀농을 하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귀농귀촌박람회에 구경 간 게 귀농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박람회에서 지자체들이 귀농 홍보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귀농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귀농 선진지 견학을 할 수 있었다. 유익한 탐방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귀농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귀농을 통해 삶을 좋은 쪽으로 이동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품었던 거다. 그래 우선은 농업 현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공부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2~3년간 틈틈이 특산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촌 곳곳을 견학했다.”
견학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
“농부들은 흔히 농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농사에 뛰어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직업이라는 얘기였다. 서울에서 그냥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낫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선진 농업을 한다는 귀농인들의 형편도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여의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지만 그 대가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녹록지 않은 농업 현장을 목도하고 귀농의 뜻을 접을 생각을 하진 않았나?
“오히려 귀농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농업의 문외한에서 벗어나 귀농에 관한 어느 정도 이해와 견해를 갖게 되었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투철한 사업 마인드를 가지고 농사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를테면 적당히 전원생활도 즐기며 적당히 농사짓자는 식의 적당주의는 아예 배제하는 게 옳다는 걸 확인한 기회였다. 귀농을 하나의 창업으로 간주하고 심도 있는 준비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
귀농인마다 나름 단단한 각오와 준비를 하고 농사에 뛰어든다.
“누군가 도시에서 치킨집을 차린다고 치자. 그는 치밀하게 상권을 분석해 위치 선정을 하는 등 주도면밀한 사전 작업부터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귀농인들의 준비 수준은 대체로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리스크를 끌어안고 귀농하는 셈인데, 난 그런 폐단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6개월 일하고, 6개월 쉬자는 목표
사실 농사를 은근히 만만하게 보고 귀농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시골에 들어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린 듯 곧장 과감하게 농사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괴이한 방식은 필패의 첩경이라는 게 진용기의 지론이다. 성공한 귀농인 대열에 올라선 그가 보기에 실패 확률이 매우 낮은 게 귀농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냉정한 사업 마인드를 장착하고, 물샐 틈 없는 사전 준비를 하는 게 필수 조건이라는 것. 그는 귀농 준비에 무려 7년여의 기간을 투여했다. 기이할 지경으로 오래 뜸을 들였다.
“최소 2~3년에 걸친 충실한 준비와 연구를 할 경우 성과가 주어지는 게 귀농이다. 난 다각도로 준비 작업을 했다. 잦은 귀농 투어로 농사 물정을 익힘과 동시에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갖가지 공부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비로소 귀농 창업을 결심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이 담긴 밑그림이었나?
“우선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가기로 했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희생을 강요할 순 없는 일이었다. 아내에겐 좋은 직장이 있기도 했다. 철수해야 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서울에 있는 자산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원칙도 정했다. 따라서 농토나 집은 임대해 사용하기로 했다. 귀농 첫해부터 수익을 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기본 지표로 삼기도 했다. 중요하게 여긴 게 더 있다. 노동에 매몰되는 귀농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생각해,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쉴 수 있는 농장 조성을 목표로 삼았던 거다. 이러한 청사진을 만든 뒤 다시 현장 투어에 나섰다.”
햐! 또다시 견학을? 이번엔 무엇을 얻었나?
“작목 선정을 위한 견학이었다. 숙고 끝에 수박 농사가 유망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비교적 수월한 재배 기술, 상당히 안정적인 수익성, 낮은 진입장벽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잘 하기만 하면 1년 중 6개월만 일해도 지속 가능한 작목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수박 주산지인 충주시 신니면을 재배지로 정했다. 이쯤에서 남은 문제는 수박 재배 기술을 어떻게 익히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기술을 숙달했나?
“신니면 수박 농가를 통해 6개월 동안 빡세게 기술을 배웠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면서. 일당 같은 건 받지 않았다. 밥만 얻어먹는 조건으로 일을 도우며 수박 농사의 메커니즘을 두루 익혔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됐으며, 비로소 농지와 집을 빌려 2019년에 귀농했다.”
귀농 이후 진용기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자비로운 힘의 보호와 감독을 받은 양 순탄하게 탕탕 질주했다. 사실 그 힘이라는 건 오직 진용기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서 발원했을 뿐이다. 그의 비결인즉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데 있었다. 어떤 리더십 연구자는 이런 말을 했다. ‘준비에 실패하는 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지닌 재능 중 위대한 건 준비 능력? 딱히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진용기가 노련하게 연출한 귀농 드라마에 박힌 키워드는 ‘준비의 파워’ 바로 그것이다.
40대 때 귀농이 바람직해
그는 3500평의 농지를 빌려 지은 비닐하우스 20개 동에 수박을 재배한다. 시설과 임대에 들어간 투자비 총액은 1억 5000여만 원. 지난 5년간의 연평균 순수익은 7000여만 원.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는 게 무척 많은 실적이다. 회사 생활을 할 때 그가 받은 연봉은 1억 원 수준이었단다. 수박으로 거둔 연 소득은 거기에 미치진 못한다. 그러나 지출 항목이 즐비한 도시에서보다 한결 여유로운 경제효과를 누리고 있다지. 게다가 그는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다. 농장 저편 마을에 얻어둔 셋집 대신 거의 모든 나날을 농장에 설치한 농막에서 숙식하는 그가 지닌 전자제품은 대부분 주변 지인들을 통해 구한 중고품이다. 집을 놔두고 굳이 불편한 농막에서 거주하는 건 왜일까?
“수박과 함께 24시간을 동행하다시피 해야 건강한 생육을 거들 수 있다. 가령 밤중에 돌풍이 몰아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하우스로 달려가 단속한다. 농막의 활용도는 굉장히 크다.”
충실한 사전 준비를 한 귀농인도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수박 농가들도 예외는 아닐 것 같은데?
“농가 대다수가 안정적인 운영을 한다. 아이고, 좀 더 빨리 귀농할걸! 그렇게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두어 농가는 실패해 철수하기도 했다. 성패를 가르는 건 수박의 품질이다. 제대로 잘 기를 경우 수집상들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밭떼기로 통째 가져간다. 유통 문제로 신경 쓸 게 없다는 얘기다. 재배 시기엔 푼돈이 연달아 나가지만 수확기엔 일거에 목돈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수박 농사의 매력이기도 하다. 아직은 진입장벽도 낮다. 향후 시장성도 밝다. 그래서 내가 귀농인들에게 수박 농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예전엔 드물었던 청년 귀농이 요즘엔 흔해졌다. 귀농 시점은 언제가 적합하다고 보나?
“농사에 뜻을 두었다면 가급적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귀농하는 게 좋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체력 싸움이다. 따라서 60대 이후의 귀농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귀농 정책자금도 주로 청년층에게 지원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이래저래 인생의 단맛 쓴맛을 아는 40대쯤에 귀농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귀농할 뜻은 있지만 실패가 두려워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사실 초기에 이미 궤도에 오른 당신의 사례는 상당히 독특하다.
“실패의 불씨는 준비 부족에 있다.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한다면 실패란 있을 수 없다. 40대에 준비를 잘하고 귀농할 경우, 초기엔 좀 고생을 하겠지만 신속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농업도 즐거운 직업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도시에서보다 스트레스 덜 받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농촌이라는 걸 널리 알리고 싶다.”
애초 진용기의 목표는 6개월간 일하고 6개월간 노는 데에 있었다. 이건 아직 미완이다. 하지만 머잖아 완성될 조짐이 완연하다. 이미 8개월은 일로, 4개월은 휴식으로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니까. 이쯤의 귀농이면 발군(拔群)이다.
진용기가 주는 귀농 Tip
•철저한 사전 준비와 치열한 사업 마인드. 이 두 가지에 귀농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걸 유념하자.
•일단 귀농 현장 경험부터 충분히 쌓아라. 그러면 안목이 생긴다. 과연 내가 농업의 현실에 어울리는 능력과 소양을 지녔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땅이나 집은 서둘러 사지 말고 우선 임대해 귀농하자. 나중에 철수할 경우 팔리지 않아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귀농을 반대하는 가족을 억지로 설득해 동반 귀농하지 마라. 심각한 갈등이 빚어져 정착에 실패할 수 있다. 단독 귀농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남편만의 ‘나 홀로’ 귀농, 이게 요즘의 귀농 트렌드다.
•대부분의 텃세는 귀농인의 오만한 태도에서 발생한다. 자세를 낮추라. 그러면 융화되기 쉽다. 약간 어수룩한 처신을 하면서 합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초기엔 농사 수입이 전무할 수 있다. 최소한 1년 정도는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비축하고 내려가자.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니며 여행의 묘미를 깨달은 시니어들이여, 이제 고수로 발돋움할 때다. 여행 고수란 비단 위험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과 색깔을 갖고 ‘나만의’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시니어 여행 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레벨 업을 해보자.
여행은 모름지기 자는 곳과 먹는 것으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외로 여행에서 중요한 것을 ‘이동 수단’으로 본다. 그리고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차를 직접 운전하는 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로드 트립’(Road Trip)이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나만의 길과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여행법으로, 자유롭고 낭만이 녹아 있다.
시니어들의 로망
시니어 여행 지침서 ‘트래블 그레이’의 저자 한경표 작가는 로드 트립의 대가로 꼽힌다. 미국·캐나다 북미대륙 횡단·종단 자동차 여행, 남미 5개국 자유 배낭여행, 캐나다 로키산맥 트레킹 등 수차례 자유여행을 직접 기획·실행했다.
로드 트립 하면 대표적으로 땅 면적이 9억 헥타르가 넘는 미국이 거론되는데, 직업군인 출신인 한 작가는 미국만 20번 이상 다녀왔다. 그는 “미국은 산·강·사막과 지평선 등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역사와 문화·예술이 녹아 있는 곳”이라고 매료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한경표 작가는 아내와 함께 미국 국립공원 일주 여행을 펼쳤다. 미국은 ‘애뉴얼 패스’(Annual Pass)를 갖고 있으면 1년간 모든 국립공원을 들어갈 수 있다. 비용도 80달러(약 10만 원)로 저렴한 편이다. 애뉴얼 패스가 없어도 괜찮다. 국립공원마다 입장료가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다. 그는 미국 본토에 있는 51개 국립공원을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자연재해라는 불가피한 이유로 서부지역 국립공원 25개 트립을 완료했다.(5/18~8/8) 동부지역도 다시 계획을 세워 떠날 예정이다.
한경표 작가는 “미국 국립공원 일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니어들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페이스북에서 여행 클럽 ‘시니어 여행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미국 여행을 하면서 글을 종종 올렸다. 그랬더니 4000명이었던 회원이 귀국 후 2만 명으로 껑충 뛰었다. 미국 교포 회원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높은 관심에 한경표 작가는 최근 ‘미국 국립공원 로드 트립 클럽’ 교육을 시작했다. 로드 트립을 원하는 시니어들이 모였고, 한 작가는 자신의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1기 회원은 8명으로, 이들은 다 같이 여행을 가도 되고 각자 떠나도 된다. 한 작가는 “여행에 동행할 수는 있지만 내가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시니어들이 직접 계획을 짜고 차를 운전해서 여행의 진정한 매력을 알길 바라는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행복을 찾아서
한경표 작가는 행복해지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두 번째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 작가는 여행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매달 25일 수입이 들어오는데, 여행 모임 통장으로 돈이 바로 빠져나간다고. 또 여행을 즐기다 보니 술을 많이 마시는 친구들과의 모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남는 돈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여행은 행복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여행을 우선순위에 두면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행 고수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면, “Let’s Go(렛츠 고)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작가는 말한다. “그 말 속에는 내가 어디를, 누구와, 얼마를 들고 갈 것인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고 싶은 곳은 있지만 언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구체적인 시기를 정해놓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버킷리스트로 적어놓고, 언제 갈지도 정해놓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저는 결혼 50주년에 가족들과 함께 그랜드캐니언에 갈 예정입니다. 과거 가족들과 그랜드캐니언에 갔을 때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가서 똑같이 사진을 찍어보는 거죠. 아마 우리 모습도 많이 변했고, 가족 구성원도 늘어나 있겠죠. 이렇게 정해진 게 없으면 여행은 흐지부지됩니다. 특히 시니어들은 ‘몸이 안 좋다’, ‘돈이 없다’ 등 못 갈 이유를 100가지 정도 만들어요. Let’s Go를 선언하면 무조건 여행을 가게 되고, 진정한 고수가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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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작가 “여행 마니아의 종착지”
또 다른 고수의 영역인 오지 여행은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김성태 작가는 ‘오지 여행 전문가’로 꼽힌다. 은퇴 후 오지 여행을 떠난 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기도 한 그는 히말라야, 안데스, 티베트, 파미르고원, 중남미, 아프리카, 사막, 빙하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1년에 3~4개월은 오지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낸다.
김성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오지 여행 방법을 전해주는 책 ‘히말라야에 미치다’, ‘안데스 파타고니아에 미치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티베트고원 종단에 성공한 사람이 극소수인데,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중국 동티베트에서 라오스, 미얀마, 태국 치앙마이까지 한 달 가까이 한 오지 탐사도 좋은 추억이다”라고 전했다.
김성태 작가는 오지에 대해 ‘여행 마니아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김 작가는 “오지 여행은 모험심, 호기심, 설렘을 극대화하며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익스트림 스포츠와 가깝다.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탄력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지인과 하나 되어 생활하는 것도 값진 체험이다”라면서 유목민이나 원시 소수민족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정화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놀랍게도 오지 여행가 중에는 시니어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시간과 경제적 여건, 그리고 체력까지 모두 갖췄다. 다만 김성태 작가는 자신감이 넘쳐도 혼자 오지 여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었다.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명이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는 “체력적·정신적 한계 상황에서 인내·끈기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포용하는 인성을 갖춰야 트러블 없이 재밌게 여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지 여행에서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여행자는 여행에 앞서 이동 수단, 숙식, 트레킹 등을 미리 계획해놓아야 한다. 그러나 오지는 교통·숙식 등 인프라가 열악하고 정보가 부족해 일정 짜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는 현지에 있는 한국인 에이전트를 통해 정보를 얻거나 예약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오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인적 네트워킹이 형성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에 있는 전문가를 추천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성태 작가는 오지 여행을 자유여행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을 하면 여행의 맛, 인생의 멋을 알게 된다는 그는 시니어들이 오지 여행으로 그 정점을 찍길 바란다. “친구들이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해요. 그런데 저한테는 힐링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힘입니다.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이 남았어요. 코카서스산맥의 오지 마을, 원주민이 사는 보르네오섬 밀림 등에 꼭 가보고 싶어요.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오지 여행을 80대, 90대까지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