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대추꽃이 여물고 원추리꽃이 피었어요.
그간 잘 계셨는지요.
지난해 추석 지나 애들이 집을 장만했다고 해서 보고도 할 겸 찾아뵙고는 꽤 여러 달이 지났어요. 그때 선산에는 검불이 내렸고 큰 소나무 가지에서 부엉이가 귀를 쫑긋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두 분이 생전 그렇게 불화했는데 나란히 누워 산천을 바라보고 계시는 걸 보면 많은
자신의 직업이 산악인인지 가수인지 모르겠다며 웃는 남자. 1990년 ‘난 바람 넌 눈물’의 작사·작곡자이면서 노래까지 불러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지만 마치 그 노래의 가사처럼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가수, 신현대(62)를 마주했다. 대중의 시선 밖에 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가수다. 그리고 산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산악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의미와 재미’ 모 방송 채널의 슬로건이기도 한데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이 둘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험성이 강해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 흥행에 실패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고, 진부한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는 일은 흔하다. 욕하면서 본다는 우스개처럼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런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많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고려청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근래 들어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우리 곁에서 존재감이 부각되는 문화재가 있다. 바로 ‘달항아리[白瓷大壺]’다.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 역시 백자 달항아리 형상이었던 것을 보면 달항아리에 대한 전 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넓게 자리 잡고 있는지가
반려견, 아니면 더 넓게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학생은 제대하고 복학한 친구인데, 수업시간에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다 자기가 키우던 개가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 글자 그대로 엉엉 울었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자 다섯 달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예를 제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서도 들었습니
중학교 2학년 여름, 사춘기라서 감성에 젖어 있을 때였다. 원고지를 묶어놓고 토요일이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지도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감정에 취해 생각나는 대로,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그마저도 여름 한 계절밖에 쓰지 못했다.
3학년 때, 작문시간에 글짓기를 해서 제출했는데 작문 선생님이 부르셨다. 영문도 모른 채 갔더니 이미
액션, 공포, 애니메이션 등 몇 장르 영화는 극도의 피로감으로 보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반면에 시대극, 서부극, 뮤지컬, 전기 영화는 시사회 초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관심 갖고 본 다큐멘터리 알렉산드라 딘의 ‘밤쉘(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 2017)’과 스티븐 노무라 쉬블의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RYUICHI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돈키호테 이야기다. 오늘날 ‘돈키호테’라는 말은 현실을 무시한 공상가에 비유하거나 그런 인물의 유형을 ‘돈키호테형’이라 부르며 쓰이고 있다.
돈키호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자신이 기사라 생각하며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어릴 적 동화책을 통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산초라는 좀 모자라는 듯한 하인을 거
우아하다는 건 무엇일까. 직장이 우아할까? 가정이 우아할까? 부대끼는 현실 속에서 ‘우아’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이 스스로 우아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에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의 저자 박홍순(朴弘淳·55)은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창작된 것을 접할 때”라고 답한다. 즉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삶이 우아
시내 중심가 중앙로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후 4시가 넘었고 날씨는 무더웠다. 무심히 내려가는데 계단 중간지점에 할머니가 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담긴 빨간 플라스틱바구니를 앞에 놓고 구걸하고 있다. 고개 숙인 채 챙이 넓은 썬 캡을 쓰고 있다.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마치 작은 돌하르방 같다. 내 앞에 가던 아이가 자기 주머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