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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은 '순화동천'
- 서소문 호암아트홀 건너편에 한길사 출판사가 운영하는 ‘순화동천’ 서점이 있다. 한길사 창립 초기인 1970년대에 머물렀던 순화동이 재개발되면서 덕수궁롯데캐슬 컬처 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순화동천’은 책 박물관·갤러리·강의가 하나로 이뤄지는 인문과 예술의 통합 공간이다. 서점에 들어서자 공간을 가득 채운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길사가 지난 40년
- 2018-09-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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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석4조의 즐거움, 문화관광해설사
- 젊은 시절 외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해외공사를 많이 하는 건설업체에 취직했다. 업무상 유럽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주말에는 출장지 부근 관광지를 다닐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현지의 많은 관광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과 열정이 넘쳤고, 내가 그들 나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 2018-09-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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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千佛千塔 이야기② 보은 법주사(法住寺)
-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7곳’ 두 번째는 보은 법주사이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에 위치한 법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로 사적 제503호이며, 속리산 천황봉과 관음봉을 연결한 그 일대는 명승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황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 2018-08-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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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 소환,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
- 발은 거실 소파에 편히 앉아 있지만 눈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TV 화면 속 할배들과 동행하여 체코 프라하의 추억을 반추해 본다. 한국에서 동유럽 여행 코스는 대부분 독일에서 시작하여 체코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를 경유하여 비엔나로 향한다. 프라하는 체코 공화국의 수도이며 프라하 구시가지에는 체코의 상징물인 프라하성이 있다. 남쪽 오스트리아 국경지대근
- 2018-08-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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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이 먼저다”
- ‘중국’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게 더 많이 떠오른다. 아마도 ‘점철되어온 괴로움의 역사’가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작아도 한참 작은 국가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 문화 권력’을 지척에 두고도 예로부터 아주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온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 2018-07-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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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에게 최적의 스포츠 '당구'
-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취미는 다양하겠지만 당구를 추천하고 싶다. 당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5세기에 크리켓과 비슷한 옥외 스포츠를 실내 게임으로 개량한 뒤 유럽 각지에서 오락으로 발달시켰다는 것이 정설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당구가 도입된 것은 1912년. 순종이 창덕궁에서 ‘옥돌대’라는 이름의 당구대 두 대를 설치한 것이 시
- 2018-07-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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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읽기 좋은 신간들
-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2 (신정일 저ㆍ박하) ‘길 위의 시인’, ‘현대판 김정호’ 등으로 불리는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다. 시리즈의 제1권 ‘서울’ 편에는 한반도 5000년 역사 속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해온 서울의 역사를 살펴보고 해설사와 함께 곳곳을 답사하는 형태로 구성
- 2018-07-1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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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배우는 컬러링] 왕이 사랑한 꽃 ‘작약’
- 작약은 역사적 기록에 종종 등장하는 꽃 중 하나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 수령궁(壽寧宮)에 작약이 만발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조선 태종, 중종 때의 기록에도 궁궐 근처에 작약이 만개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특히 귀족과 왕족에게 사랑받았던 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을 기다리는 시간, 작약 한 송이로 집 안을 궁궐처럼
- 2018-06-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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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옆 후궁들의 신당, 문을 활짝 열다
-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효성이 지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7세 남짓 어린 나이에 무수리로 입궁했다. 그 후 숙종에게 성은을 입기까지 15년 동안 궐내에서 온갖 천한 일을 도맡아 하며 힘들게 살았다. 어머니가 침방 나인 시절에 세누비가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조는 평생 누비옷을 걸치지 않았다고 한다. 기록에
- 2018-06-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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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고 궁궐에서 찾는 '궁궐의 우리 나무'
- 창경궁에는 영조 38년(1762),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지켜본 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선인문 앞 금천 옆 회화나무와 광정문 밖의 아름드리 회화나무다. 이렇듯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나무들을 궁궐에서 찾아보는 것 어떨까? 유익한 안내서가 되어줄 ‘궁궐의 우리 나무’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
- 2018-06-04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