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57)은 봄바람 같았다. 세월의 흔적이 슬쩍 묻은 눈매, 말랑말랑한 화법 그리고 인사를 건넨 이들에게 짓는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봄날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녀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꿈만큼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시원시원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KBS ‘젊음의 행진’ 백댄서 팀이었던 짝궁들 출신 정유경은 1983년에 노래 ‘꿈’을 부르며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미국 국적을 가진 그녀는 큰 눈의 귀여운 외모와 성악과 출신답게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가수 활동은 성공을 거뒀으나, 이내 비자 만료로 인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중년이 되어 다시 우리들 앞에 섰다. 가수와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바로 연극배우로서 말이다. 제2의 인생을 촉망받는 연극배우로 맞이한 반가운 얼굴, 가수 정유경은 대학로 극단 거리에서 겨울 볕을 쬐고 있었다.
우연히 시작한 첫 연극, 배우로 마주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오랫동안 잊혔던 정유경이 다시 대중 앞에 선 것은 2012년 SBS ‘K팝스타’에 그녀의 아들 맥케이 김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맥케이 김은 당시 자작곡과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으며 톱5에 올라갈 정도로 성공했다. 당연히 그의 어머니인 정유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고, 이후 그녀는 방송 출연과 패널 활동을 이어나갔다. 연극은 그 과정에서 우연처럼 다가왔다.
“연극하는 친구와 모임을 하면서 나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연락이 왔어요. ‘연극 캐스팅이 필요한데 오디션을 보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무조건 보겠다 하고 갔더니 치매 할머니 역할이더군요.”
그녀가 지원한 연극은 ‘엄마의 레시피’. 대만을 배경으로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딸,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 중인 손녀가 만나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연극으로 매년 대학로에 올라가는 인기 레퍼토리다. 그녀에게 있어선 첫 오디션이고 첫 소극장 공연이었다. 그런데 연기를 너무 잘했다. 오는 2월 17일부터 시작하는 새 연극 ‘5인실의 그녀’(가제) 극단 대표도 그 연기를 보고 바로 같이하자고 했다.
“저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많은 분에게 칭찬받았어요. 이게 첫 연극이라는 걸 믿지 않더군요. 연극은 물론 마음에 들었죠. 사실 제가 평소에 음식을 잘하는 편이어서 정서적으로도 닮아 있었던 거죠. 제가 나이가 들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걸 연기해서 칭찬을 받은 셈이에요.”
천생 무대 체질, 무대가 너무 좋다
‘엄마의 레시피’ 제작자는 모든 게 처음인 정유경의 오디션을 볼 때, ‘대본을 하나도 안 떨고 읽더라. 이 사람은 연기가 되든 안 되든 무대에서 떨지는 않겠다’ 싶어 뽑았다고 한다. 제작자의 눈썰미처럼, 그녀에겐 배우로서의 자질이 이미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수 출신인 그녀의 발성이 무척 좋고 톤과 발음이 명확하다는 걸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가수 생활이 도움됐던 거 같아요. 사실 가수도 연기예요. 연기하면서 노래를 하는 거니까요.”
또 하나, 그녀는 무대공포증 따위는 없는 사람이다. 아니 되려 무대를 매우 사랑한다.
“어떤 무대든 올라가면 떠는 일이 없어요. 그냥 무대가 너무 좋아요. 가수 김장훈 씨가 한 말이 생각나요. 저랑 나이가 같다 보니까 응원 차 연극을 보러 왔는데, 자기가 집에 가서 생각을 했대요. ‘아니, 저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을까…’ 하고요.”
무대를 오래 떠나 있었어도 무대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람, 정유경 본인이 아닌 무대의 인물 그 자체가 된다는 사람이 그녀였다. 천생 무대 체질인 그녀는 ‘무대에서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고 했다.
“사실 제가 나이가 많잖아요. ‘너무 늦은 나이 아닌가?’ 싶어서 두렵기도 했죠. 그런데 연극을 하다 보니 그건 저만의 두려움이었어요. 실력만 있으면 나이는 상관없어요.”
정유경은 ‘다 때가 있고 기회가 있다’는 숙명론적인 말을 좋아한다. 그 기회가 왔을 때 주어진 자리에서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 그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모토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자 할 뿐이다.
“연극의 매력은 숨소리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다른 사람과 함께 숨 쉬는 것조차 연기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관객이 호응하니까요. 그래서 1초도 허투루 할 수 없어요. 거기에 매력이 있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이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중년의 베테랑과 얘기를 한다기보다는 막 사회에 나온 열정 넘치는 청년 신예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물론 제2의 인생을 맞이한 사람을 만났을 때 으레 그런 패기를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정유경의 에너지는 남달랐다.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졌다.
“현지 아나운서를 했어요. 교회 성가대 지휘도 했고. 집에만 있진 않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남편더러 ‘힘들겠어, 저런 여자를 와이프로 데리고 살려면. 아이고 끼가 보통이 아니야’라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이혼했어요.”
인터뷰 중에 불쑥 나온 이혼 얘기.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자연스러움에는 당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직 전 남편과는 친구예요. 가족들과도 계속 교류하고 있고요. 나쁘게 헤어진 게 아니고 남편 사업이 실패하고, 그리고 제가 예술적 끼가 많다 보니 그리 됐어요. 이혼하기 전에 아이들에게도 말했어요. 엄마는 아무래도 미국에서 행복하지 않으니 이혼해야겠다고요. 아이들이 상처를 안 받진 않았겠죠. 하지만 이해해줬어요.”
억지로 사는 부부들은 좀…
정유경의 지론은 ‘이혼하면서 서로 원수가 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헤어져도 아이들의 부모인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보는 한국 사회의 부부들은 이상하다.
“한국에서 제 나이 또래 부부들을 보면 ‘따로 또 같이’예요. 대화도 안 하고 방도 따로 쓰고…. 왜 그렇게 사냐고 물으면 ‘어쩌겠어, 자식 때문에…’라고 답해요. 참 안타깝지요. 그게 진정 가족일까요? 그렇게 살면서 부모들이 싸우면 아이들은 싸우는 게 당연한 줄 알게 돼요. 그럴 거면 차라리 쿨하게 이혼하고 서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식들에게 정서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생각해요.”
틀린 부분이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졸혼이 수용되는 이유도, 어쩌면 이혼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의미에서의 부부간 절충점을 찾은 결과 때문이 아닐까. 미국에서 남편과 친하게 지내니까 사람들이 다시 재결합하라고 하는데, ‘친한 것과 합치는 건 다른 것’이라며 딱 부러지게 선을 긋는 그녀의 당당함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더 자주 만나게 될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자연스러운 삶이야말로 행복
“나이 먹는 걸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름다워요. 거기서 헤어나려고 할수록 추해지죠. 그 나이대로 그대로 가는 게 익어가는 거지. 설익은 과일을 억지로 익히면 맛이 없잖아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정유경의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옮겨졌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 때문이다.
“풋볼, 골프선수였던 아들은 노래를 하고 싶어서 지금 음악을 공부하고 있어요. 딸은 어릴 때부터 남 돕는 일을 좋아해서, 가난한 사람을 병원과 연결해 도와주는 소셜 워커로 일하고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가끔 ‘누가 하버드 갔대, 예일대 갔대’ 하면 ‘야, 공부 잘하는 사람만 있으면 세상 안 돌아가. 너처럼 음악하는 사람, 밥 잘하는 사람도 있어야 돌아가지’라고 말해줬어요.”
그녀는 “오늘 50점 받았으면 내일은 51점 받으면 된다. 내려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 기준으로 아이들을 믿었기에 그녀의 아이들도, 그녀 자신도 행복해진 것 아닐까. 그녀에게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온 대답도 그 행복의 증거였다.
“이혼했지만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낳은 것, 그리고 마음 모질게 살지 않은 것이에요. 저는 받는 것보다는 주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제가 그런 사람이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연기자 되고파
정유경의 삶의 틀을 마련해준 건 아버지였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원래 제가 성악을 했잖아요. 그런데 가수를 한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딱 한마디하시더라고요. ‘유경아, 가수를 하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네 노래가 사람들 술안주가 되게 하진 말아라.’ 그걸 지키며 살았죠. 술 담배는 아예 안 했고 밤무대도 안 섰어요.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그게 제가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녀의 인생은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다. 물론 아무런 굴곡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응어리를 안고 추락하기보다는 되려 발판 삼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익혔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삶에 대해 묻자 그녀는 담담하게 답했다.
“물론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고민은 있죠. 그런데 그런다고 당장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스텝 바이 스텝, 한 걸음씩 가다 보면 해결되겠지 싶어요. 그렇게 신중하게 가다 보면 좋은 기운도 만나게 될 테고…. 그걸 믿고 가려고 해요.”
정유경이라는 사람 안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찾았다. 착한 그녀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