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20대 초반쯤 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사택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담 너머로 무심코 눈길을 돌리던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무 막대기로 얼기설기 엮은 짐승우리 같은 곳에 발가벗은 사람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이 오물을 벽에 칠한다는 치매 환자임을 알게 됐다. 가족
몇 해 전 오십견이 와서 고생한 적이 있다.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해 뒷주머니에서 지갑 꺼내는 것도 힘들었고 팔이 똑바로 안 올라갔다. 누군가와 부딪히기라도 하면 온몸이 자지러지듯 아팠다. 늘 운동하는 사람이 왜 오십견에 걸렸느냐고 해서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쓰는 근육이 있고 안 쓰는 근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쓰
필자는 오카리나에는 문외한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은 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악기인데 청명한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일단 휴대가 간편해서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악기가 간단하게 생겼으니 배우기도 어렵지 않겠다는 추측도 했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 ‘한국 오카리나 박물관’이 있다. 거여역 2번 출구에서 첫 골
날씨도 매우 쾌청해서 여행 떠나기 딱 좋은 날이다.
군산은 얼마 전 다녀온 곳이지만 두 번 세 번 가보아도 볼거리와 느낄 점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군산의 밤을 체험하게 되어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기로 했다.
군산은 한편으로는 슬픈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비옥한 우리 땅에서 나는 곡물
고요히 혼자 떠나 볼 수 있는 때다. 물론 둘이, 여럿이도 괜찮다. 온몸에 한기가 엄습하고 찬 이슬이 피부에 촉촉이 느껴지는 저수지의 새벽이다. 일출 이전의 어둠 속에 서서 물체를 확인하는 시간이 주는 혼자만의 충만함, 여럿이 함께 있다 해도 이럴 때는 혼자가 된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괴산의 문광저수지에 도착한 것은 새벽 여섯 시가 될 무렵이었다.
어렸을 적 TV에서 본 사람이 맞나 싶다. 기억 속 그는 리듬을 타는 정도의 율동과 함께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노래를 불렀다. 옆집 오빠면 딱 좋을 것 같았던 그가 오십이 넘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중후한 매력을 내심 기대했지만 흥폭발은 기본이고 재치 넘치는 입담을 막기가 어려울 정도다. 1980년대 중반 ‘볼리비아發 염소 창법’으로 아이돌 인기를 구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벼루[硯], 먹[墨], 붓[筆], 종이[紙]를 말한다. 예로부터 선비나 문사(文士)들 곁에는 이 네 가지가 늘 함께 있었다. 벼루에 먹을 갈고 붓에 먹물을 적셔 종이에 글씨를 쓰면 서찰(書札)도 되고 시(詩)도 되고 서화(書畵)도 되고 상소문(上疏文)도 되었다. 보조기구로는 벼루와 먹을 넣어두는 연상(硯箱)이 있고 종이를 말아서 보관하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 고이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 중
당신이 정녕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이후 ‘브라보 세대’)가 맞는다면 찬바람 휑하니 부는 늦가을 저도 모르게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를 주절주절할 겁니다. 송창식, 1960년대 말 통기타 하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발효 식품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발효 식품의 종주국이라고 할 만큼 예로부터 발효 식품을 많이 먹었고, 한의학에서도 발효 약재를 많이 사용해왔다. 식품을 발효시키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비위가 안 좋다, 비위가 약하다’는 말에서 비위(脾胃)는 한의학 용어로 소화기관이다. 위(胃)는 음식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비(脾)는 음식을 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