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식품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발효 식품의 종주국이라고 할 만큼 예로부터 발효 식품을 많이 먹었고, 한의학에서도 발효 약재를 많이 사용해왔다. 식품을 발효시키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비위가 안 좋다, 비위가 약하다’는 말에서 비위(脾胃)는 한의학 용어로 소화기관이다. 위(胃)는 음식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비(脾)는 음식을 삭혀서 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삭혀서 소화된 것은 소장에서 흡수된다.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은 음식을 받아들이고 삭히는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발효 식품은 삭힌 음식이기 때문에 비위가 해야 할 기능, 즉 소화를 도와준다. 또 위장이 다 삭히지 못해 몸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덩어리, 종양, 근종 같은 것도 발효 식품이 삭혀준다. 이러한 이유로 김치, 된장, 청국장 등을 항암 식품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술은 사람의 침으로 발효시키기도 한다. 침 속의 아밀라아제는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한다. 결국 소화효소와 발효는 같은 개념이며, 발효는 소화를 돕는다. 단식 후 위장이 가장 약할 때 묽은 된장국이나 일본식 전통 된장국인 미소시루부터 복용한다. 비위의 소화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다.
박테리아, 곰팡이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면 몸에 좋은 성분이 새로 만들어지고 몸에 흡수되기 좋도록 변한다.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도 우유보다 소화가 잘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발효 식품으로 알고 먹는 것은 전통 천연 발효 식품과는 다르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제빵 장인인 리처드 부르동(Richard Bour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연 발효는 박테리아와 이스트(yeast, 酵母)의 복합체로 이루어진다. 박테리아는 반죽 속의 탄수화물과 질긴 글루텐을 완전히 분해하고, 곡물 속의 좋은 무기물을 추출해 우리 몸이 흡수하기 좋게 만들어준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의존해온 천연 발효 식품에서는 소화 문제나 건강 문제가 별로 없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도입된 이스트 속성 발효는 단기간에 많은 소화 문제, 건강 문제를 야기했다. 이스트로 속성 발효시켜 만든 빵은 소화하기 힘들고 침이 나오지 않아서 콜라나 우유 같은 마실 것을 찾게 된다. 하지만 천연 발효로 잘 구워진 빵은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입에 침이 고인다.”
프랑스 제빵 장인인 미셸 이자르(Michel Izard)는 “천연 발효 빵은 미생물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발효 물질이 생성돼 향이 특히 깊다. 약간 시큼한 듯한 냄새도 난다. 빵 속은 희지만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띤다”고 했다. 그래서 천연 발효 빵을 주식으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발효 식품이 발달한 나라다. 술, 식초, 청국장,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젓갈 등 다양한 발효 식품이 있다. 콩 발효 식품이 특히 발달해서 메주, 된장, 간장, 청국장이 개발되었다.
술은 뜨겁고 향이 강하다. 약 기운을 전신에 운행시켜 온갖 사기(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 혈맥을 통하게 하고, 소화기관을 도우며, 피부를 윤기 있게 만든다. 술은 소화를 도와주기에 술 없이 먹으면 한 끼밖에 못 먹을 음식을 술과 함께 먹으면
1차, 2차, 3차, 4차까지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청국장은 콩을 짧은 기간(며칠)에 발효시킨 음식이다. 향이 강하고 차갑다. 땀을 내어 관절을 편안하게 해주고 독에 중독된 것을 풀어준다. 청국장은 비위와 콩팥 기능을 강화하는 효능이 있다. 가슴이 뭉쳐서 답답하고 열이 나는 것을 풀어주고 변비와 설사에도 좋다. 콩을 피부에 문지르면 열을 내려준다. 우리나라의 청국장은 일본의 낫토(納豆) 같은 식품이다.
된장은 오랜 기간(몇 달 또는 몇 년)에 걸쳐 발효된 식품이다. 콩의 기본 성질은 해독력에 있다. 한약의 성분까지 해독해버리기 때문에 한약을 복용할 때는 콩 섭취를 조심하는 것이 좋다. 발효된 콩은 소화를 돕기 때문에 오장(五臟)을 안정시킨다.
간장은 된장을 담글 때 만들어지는 장이다. 소금이 들어가서 매우 짜다. 벌레에 물렸을 때 간장을 피부에 바르면 해독이 된다. 해독력이 있는 콩이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변비가 있을 때 간장으로 관장을 하면 도움이 된다.
김치는 종류가 무척 많아서 그 효능을 한 가지로 말하기 힘들다. <동의보감>에는 “배추를 시큼하게 발효시키면 위장의 담연(痰延)을 토하게 할 수 있고 비위를 보하며, 술이나 국수의 독을 풀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소화를 잘되게 해서 몸에 독소가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다. 천연 발효를 시킨 김치는 유산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끝 맛이 달아 침을 잘 나오게 해줘 소화를 도와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