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어른들 차지가 된다.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그 곳에서 갖고 있다. 동양사상이나 그리스 철학 등 진지하고 묵직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다른 날과는 달리 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독서 토론을 할 땐 이야기를
5070세대 대부분은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주면 마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현재의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어른들이 굶주리며 일할
오래전에 우연히 라는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궁금할 정도로 흥미 있는 내용이었는데 ‘사토라레’의 뜻은 내 마음속 생각을 남에게 들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인공이 하는 생각을 1km 이내 누구든지 다 들을 수 있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른다. 가령 길을 가다가 ‘저 소녀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아,
사진의 대중화 시대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사진은 이제 더는 취미나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됐다. 예술의 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방편의 하나가 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활성화와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능향상과 확장으로 그런 경향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침팬지도 사진을 찍는 시대에 산다고도 한다. 그만큼 촬영 자체가 쉬워졌기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인 줄 알았다. 부처님이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현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얻는 고귀한 생각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친한 친구 삼총사 중 한 명인 이 여사는 독실한 불자다. 그래서인지 폭넓게 우리를 포용해주고 마음 씀씀이가 컸다.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절에 열심히 다니기도 하고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한국인들은 기계처럼 일해왔다.
그게 한국을 2차 산업의 승자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인간으로의 회귀,
그것은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멍청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문학작품을 고를 때 작가가 누군지 반드시 확인하면서 영화를 볼 때는 대부분 제목만 보고 선택해왔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영화를 봐왔으면서도 필자에게 영화는 감독의 메시지나 예술적 성취보다는 그저 한 시간 반 정도 즐기는 가벼운 문화적 소비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적어도 무더위가 절정에 오른 지난 주말까지는.
더위에 지친 날 영화를 보자는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아래 신조어 중 몇 개나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이거 실화냐?
□고흐흑 바흐흑
□뉘예뉘예
주책이라는 말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놀림조로 이야기할 때는 ‘주책없다’를 써야 옳다. 그런데 요즘은 반어법(?)처럼 ‘주책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언어는 시대 상황에 따라 그렇게 변화해가는 것 같다.
주책이 없는 사람을 예로 들라면 대표적인 인물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