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가정의 달’이 지나고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오면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직접 체험하지 못했지만 듣고 배운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극심한 전란으로 출생 신고가 늦어지면서 이름이 뒤바뀌고 출생 연도가 늦어지는 사건 아닌 사건을 겪었다.
어느 해인가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한국전쟁 기념일이 다가오자 ‘6·25글짓기 대회’
주 무대는 압구정이다. 마피아가 주로 애용한다는 보르살리노 모자와 젊은 층이 열광하는 디젤 청바지를 즐겨 입는, 멋을 제대로 아는 사람. 패션 감각이 조금이라도 빠진다 말하면 서러워할 이 남자의 직업은 ‘서예가’다. ‘서예가’라고 해서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나? 완벽한 오산이다. 현재라는 프리즘으로 시공간 너머와 호흡하는 서예가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은 대부분 잃어버린 물건을 아깝게 생각하고 지금의 것보다 예전의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을 내가 직접 겪고 보니, 위 속담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진다.
주로 지하철로 출ㆍ퇴근하는 필자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5호선 전철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해 전철 안에
사진은 아마추어나 비전문가에게 일종의 ‘오락 부산물’ 같은 것이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즐거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즐거움과 기억, 과시하고픈 욕망을 사진에 담는다. 하지만 사진작가에게 사진은 창작의 고통이고, 노력만큼의 보상이다. 경기도 일산의 작은 작업실에서 만난 사진작가 이병용(李秉用·57)에게 사진은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상, 구태여 ‘사진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구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야기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나들이를 떠나면서 어깨 한 쪽에 혹은 목걸이처럼 카메라가 한 대 걸려 있지 않다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들이가 잦아지는 계절이 찾아온 지금 배우자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멋진 사진 한 장을
실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십여 년간 취재를 위해 수많은 병원을 들락거렸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의자가 없는 원장실이라니. 몸을 기댈 곳이라고는 서 있는 상대방 앞에 앉기 민망할 만한 높은 홈바 의자가 전부. 알파고를 바라보는 이세돌의 심정이 이랬을까. 상식을 깨는 리셋의원 박용우(朴用雨·53) 원장이 말하는 ‘건강한 걷기’ 역시 파격적인 그의 업무
나이가 들면 반드시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 중 하나는 노안(老眼)이다. 노시안(老視眼)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증상을 중국에서는 노화안(老花眼)으로 부르기도 한다. 될 화(化)자를 사용하지 않고, 꽃 화(花)자를 쓰는 이유는 이 증상이 인간이 가장 성숙하고, 지혜가 꽃 필 때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노안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는 개개인마다 다를
광복 이후 한국인을 설명하는 말은 ‘빠르게’다. 무조건 ‘빠르게’에만 집착한 우리는 너무 오래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놓치고 부수고 망가뜨렸다. 이제 우리는 걷기에 대해 물어봐야 할 때다. 신정일(辛正一·62) 우리땅걷기 이사장은 걷기를 하나의 문화로 정립하고 전파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동학을 복권시킨 황토현문화연구소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은 중년들에겐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로망이다. 굳이 ‘님과 함께’ 가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때문에 내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시선을 사로잡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직접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이 세운 학교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그날따라 신촌 길을 걷고 싶었다. 봄바람이 불던 첫날.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걷던 길 멀리서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다다른 곳은 신촌 홍익문고 앞 피아노. 많은 젊은이가 멈춰 서서 익숙한 선율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는 갈색 모자에 목도리를 단단히 두른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밤길 위의